딥블루: 가면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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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블루: 가면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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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여배우다. 소속사는 내게 새로운 야생 생존 리얼리티 쇼의 출연 계약서를 내밀었다. 조건은 딱 하나. 철저하게 악...

Chương (1)

第1章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여배우다. 소속사는 내게 새로운 야생 생존 리얼리티 쇼의 출연 계약서를 내밀었다. 조건은 딱 하나. 철저하게 악역을 자처하며, 그들이 새로 밀어주는 ‘국민 여동생’을 돋보이게 만드는 발판이 될 것. 하지만 진짜 문제는 촬영 첫날 발생했다. 제작진 전체와 연락이 완전히 두절되어 버린 것이다. 대본이 있던 리얼리티 쇼는 순식간에 날 것 그대로의 진짜 생존 상황으로 변해버렸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임시 거처를 짓고, 야생 동물을 덫으로 잡고, 불을 피웠다. 그곳은 내게 지옥이 아니라 완벽한 놀이터였다. 반면, 카메라 앞에서 그토록 ‘무결점’을 연기하던 아이돌들은 서로 소리를 지르고, 보급품을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며 밑바닥을 드러냈다. 그리고 우리 중 누구도 알지 못했던 사실 하나. 숲속에 숨겨진 카메라들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고, 우리의 모든 추태와 생존기는 24시간 내내 전 세계로 실시간 스트리밍되고 있었다. *** 1. “2억. 내 최종 제안이야.” “3억,” 내가 차분하게 받아쳤다. “단 한 푼도 깎을 수 없어.” 내 매니저인 민 실장은 금방이라도 뒷목을 잡고 쓰러질 것 같은 표정이었다. “서윤아! 너 지금 제정신이야? 네 이미지는 이미 바닥을 쳤어. 제작사에서 너 같은 애를 써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지, 감사한 줄을 몰라!” 그 바닥을 친 이미지라는 게 대체 누구 때문인데. 투자자와 단둘이 ‘술자리’를 가지라는 제안을 거절했을 때, 소속사는 내가 촬영장에서 갑질을 일삼는 안하무인이라는 찌라시를 퍼뜨렸다. 눈병에 걸려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을 때는 선배 배우에게 눈을 흘겼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났다. 같은 소속사의 남동생 뻘인 신인 아이돌이 대기실에서 내 몸을 더듬기에 밀쳐냈더니, 나는 순식간에 ‘신인 괴롭히는 무서운 선배’가 되어 업계에서 매장당했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머금고 천천히 삼켰다. “단순히 출연하는 대가로 2억이라면 받아들일게. 하지만 전국민이 보는 방송에서 온갖 밉상 짓은 다 해가며 당신들이 새로 키우는 채유리를 천사로 만들어주는 값이라면, 1억은 더 받아야지.” 내 전속 계약 만료는 두 달 뒤였다. 민 실장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씩씩거리며 콧김을 뿜었지만, 결국 계약서에 서명했다. <야생: 열흘 밤낮>의 출연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오며,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완벽했다. 계약이 끝나면 이 더러운 바닥을 완전히 뜰 생각이었다. 연예계 은퇴. 내 첫 번째 목적지는 이미 정해두었다. 남미의 깊은 아마존 우림. 아, 생각만 해도 온몸의 피가 도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이 아는 여배우 ‘한서윤’이 되기 전, 나는 구독자 100만 명을 거느린 익명의 야생 생존 전문 스트리머 ‘하늘’이었다. 일 년에 두 번, 나는 문명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오지 한가운데로 들어가 홀로 생방송을 진행하곤 했다. 그러다 길거리 캐스팅이라는 덫에 걸려 이 지옥 같은 연예계에서 꼬박 2년을 썩은 것이다. 몸이 근질근질하던 참이었다. 거친 야생의 냄새가 그리웠다. 내게 이 쇼는 돈까지 쥐여주는 달콤한 휴가나 다름없었다.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야,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 좀 봐.] 보지 않아도 뻔했다. 소속사의 홍보 기계들이 어떻게 톱니바퀴를 굴리고 있을지 안 봐도 눈에 선했으니까. #악녀_한서윤 #채유리 #야생_열흘_밤낮 댓글창은 예상대로 양극단을 달렸다. 절반은 채유리를 향한 맹목적인 주접이었다. [헐, 우리 유리 도현 오빠랑 같이 예능 나오는 거야? 대박!] [근데 생존 예능이라니? 우리 애기 살도 연하고 눈물도 많은데 어떡해ㅠㅠ] [유리야, 언니들이 지켜줄게!]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나를 향한 저주였다. [한서윤은 아직도 안 망함? 대체 누구 백이길래 계속 기어 나오는 거임?] [진짜 쟤 얼굴 볼 때마다 토나옴. 하차 청원 안 올라오냐?] [한서윤 야생 나가면 애들 음식에 독 탈 듯ㅋㅋㅋ] [우리 유리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라, 미친년아.]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화면을 쓸어 넘긴 뒤, 편안하게 낮잠을 청했다. 2. 촬영 당일이 밝았다. 우리는 헬기를 타고 남태평양의 한 외딴 무인도에 내려졌다. 제작진은 우리 가방을 샅샅이 뒤져 모든 음식물을 압수하고, 인당 단 한 병의 생수만을 지급했다. 유리는 가방 깊숙이 숨겨두었던 감자칩을 빼앗기자, 카메라를 향해 입술을 삐죽이며 작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내 소중한 감자칩... 보고 싶을 거야.” 나는 속으로 올라오는 헛웃음을 삼켰다. 실시간 채팅창이 저 가식적인 모습에 자지러질 게 뻔했다. ‘어머, 너무 사랑스럽다’ 하면서. 유리는 대중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출연진은 나를 포함해 총 다섯 명이었다. 나와 유리, 그리고 세 명의 남자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세 번이나 올랐던 톱배우 강도현, 그리고 전직 보이그룹 멤버였던 지한과 민우. 내 지독한 운명답게도, 지한은 작년에 대기실에서 내 몸에 손을 댔던 바로 그 신인이었다. 지금은 다른 대형 기획사로 옮겨 솔로 가수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고 다가왔다. 나는 가차 없이 등을 돌려 걸어 나갔다. 이 행동 하나로 또 온갖 욕을 먹으리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내 자유는 고작 60일 뒤였다. 눈치 볼 것 따윈 없었다. 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지도에 표시된 ‘사전 구축된 베이스캠프’까지 각자 도보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곳에 우리 짐이 먼저 도착해 있을 거라고 했다. 출발하기 전, 나는 소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스위스 아미 나이프를 슬쩍 손안에 감추었다. 그 찰나의 순간, 강도현이 나를 유심히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테이블 위의 라이터를 조용히 주머니에 넣었을 뿐이다. 3. 우리는 한 시간 동안 빽빽한 정글을 헤맸다. 마침내 좌표에 표시된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모기 떼가 들끓는 습하고 울창한 밀림뿐이었다. 텐트도, 스태프도, 우리 가방도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다들 어디 간 거예요?” 유리가 징징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길을 잘못 든 거 아냐?” 지한이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도현은 늘 그렇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락해 보죠.” 이동하는 동안 우리를 따라온 카메라 스태프는 없었다. 하지만 각자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을 때, 화면에는 약속이나 한 듯 ‘서비스 없음’이라는 글자만 떠 있었다. 순간, 유리의 ‘국민 여동생’ 가면이 쩍 갈라졌다. “씨발!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지한과 민우가 멍하니 유리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알던 순진무구한 채유리의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지한 역시 본색을 드러내며 양말 속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 들었다. 유리는 기다렸다는 듯 손을 뻗었다. “나 한 대만 줘.” 담배를 입에 문 유리가 그제야 깨달은 듯 인상을 썼다. “아, 좆같네. 불 있는 사람?” “아, 진짜 씨발!” 지한이 애꿎은 나무 밑동을 걷어찼다. “여기 대체 어디야? 제작진 미친 새끼들 다 어디로 꺼진 건데?” 나는 도현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는 이 아수라장을 아주 흥미롭다는 듯 관찰하고 있었다. 그의 주머니 속 라이터는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을 터였다. 역시 영리한 남자다. 민우는 어두워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곧 해가 지겠어요.” 지한은 여전히 신경질적으로 나무를 발로 차고 있었다. 그들 중 누구도 수풀 속에 교묘하게 숨겨진 모형 바위 틈에서 붉은 카메라 불빛이 깜빡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실시간 스트리밍 화면은 지한의 분노에 찬 얼굴로 가득 차 있었다. <야생: 열흘 밤낮>은 두 시간 전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실시간 시청자 수 1,000만 명을 돌파하며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이 쇼의 진짜 기획 의도였다. 숨겨진 카메라를 통해,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믿을 때 ‘완벽한’ 스타들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 이 극비 프로젝트는 출연자들의 소속사조차 전혀 알지 못했다. 실시간 채팅창은 그야말로 폭발 직전이었다. [와... 채유리 담배 쥐는 폼 보소. 한두 번 피워본 솜씨가 아닌데?] [성인인데 담배 좀 피울 수도 있지.] [아니 근데 지한 욕설 실화냐? 내 순둥이 오빠 어디 감? 😭] [야, 너희도 무인도에 덩그러니 버려지면 욕 안 나오겠냐?] [인정ㅋㅋㅋ 오히려 인간미 넘쳐서 좋은데?] [근데 한서윤은 왜 저렇게 침착함? 혼자 주변 둘러보고 있네.] [쟤 지금 뭐 하려는 거지?] 4. 나는 쓰러진 커다란 고목을 발견하고, 주머니에서 꺼낸 칼로 썩은 부분을 깎아내기 시작했다. “너 지금 뭐 하냐?” 유리가 가시 돋친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밤 잘 곳 만드는 중이야.” 지한이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야, 힘쓰는 일인데 이 오빠가 좀 도와줄까, 자기야?” “꺼져.” 내가 낮게 읊조렸다. 그가 비열하게 비웃었다. “작년 일로 아직도 삐쳐 있냐? 야, 내가 언제 네 몸에 제대로 손이라도 댔냐?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너보다 몸매 잘 빠진 애들 널렸거든...”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칼로 고목의 한 부분을 강하게 내리치자 콰직! 하는 거친 파열음이 정글에 울려 퍼졌다. 나는 가볍게 칼을 손안에서 회전시켜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날카로운 칼끝이 정확히 그의 목덜미를 향해 고정되었다. 지한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5. 실시간 채팅창이 뒤집어졌다. [잠깐... 방금 지한이 뭐라고 한 거야?] [예전에 ‘한서윤이 신인 괴롭혔다’던 그 사건... 설마 이거였어?] [지한 팬들아, 정신이 좀 들어? 느이 오빠 방금 성추행 자백했는데?] [와, 지한 매장 확정이네. 진짜 소름 돋는다.] [한서윤은 저런 쓰레기 때문에 1년 넘게 마녀사냥 당한 거임?] [나였으면 벌써 칼로 찔렀다.] [대박... 근데 한서윤 저 나무 깎아서 쉘터 만드는 것 좀 봐. 5분 만에 뚝딱인데?] [어... 저 손놀림, 생존 유튜버 ‘하늘’이랑 존똑인데?] [그나저나 강도현은 어디 갔냐?] 6. 나는 고목의 빈 공간에 넓은 야자수 잎을 촘촘히 깔았다. 좁았지만 비바람을 피하기엔 충분히 아늑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도현은 이미 높은 나뭇가지 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는 튼튼한 덩굴들을 엮어 제법 그럴듯한 해먹을 완성해 둔 상태였다. 우리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솜씨 좋네요,” 내가 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비가 오면 어쩌려고요?” ...말이 씨가 된다더니, 곧바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소리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유리와 다른 이들은 비가 새는 얕은 바위 절벽 밑에 옹기종기 모여 덜덜 떨고 있었다. 도현이 나무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 서서 속수무책으로 젖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작년 시상식 날이 떠올랐다. 소속사는 내게 실오라기 같은 드레스를 강요했고, 나는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때 내 곁을 지나치던 도현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수트 재킷을 내 어깨에 툭 걸쳐주고는, 태연히 걸어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들어올래요?”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가왔다. “고마워요.” 고목 안은 비좁았다. 성인 남성의 커다란 체구가 들어오자 숨이 막힐 정도로 밀착되었다. “미안합니다.” 그가 낮게 속삭였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내 몸을 돌려 제 품에 안기게 한 뒤 뒤에서 나를 감싸 안았다. 그의 넓은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빗소리 속에서 내 등을 따뜻하게 데워왔다. 둘 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군말 없이 받아들였지만, 그날 밤, 나는 정말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7. 실시간 채팅창: [나... 나 왜 이 주식 잡고 있냐...] [내 눈이 의심된다. 이 조합 찬성일세. #딥블루] [강도현한테서 떨어져, 이 불여시 같은 년아!] [눈이 삐었냐? 비 맞고 서 있는 도현이 서윤이가 들여보내 준 거잖아. 도현이 극성팬들 진짜 답 없다.] [이 방송 역사에 남을 듯.] [새벽 2시인데 동접자 1,200만 명 실화냐?] [그 와중에 쓰레기 지한은 뭐 함?] [다 대본이겠지! 믿지 마라!] [두고 보면 알겠지...] 8. 동이 트자마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헬기가 우리를 내려주었던 해변으로 돌아가 볼 생각이었다. 도현에게 같이 가자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묵묵히 내 뒤를 따랐다. 해변에 도착했으나 역시 제작진의 흔적은 없었다. 대신 나뭇가지에 걸려 펄럭이는 코팅된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출연진 여러분께. 기상 악화로 인해 주요 장비가 파손되었으며, 현장 스태프 중 전염성 바이러스 의심 환자가 발생하여 긴급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구조대를 보내겠습니다.] 우리는 버려졌다. 진짜로. 나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뭘 보고 있어요?” 도현이 물었다. “하늘이 너무 맑아서요.” “그러네요.” “신도 이 상황이 어이없나 봐요.” “...” 좋다. 여기는 내 구역이다. 정글에서 78일 동안 홀로 생존했던 게 내 최고 기록이었다. 이 정도 무인도는 껌이었다. 우선 제대로 된 보금자리부터 만들어야 했다. 나는 도현을 이끌고 밀림 안쪽으로 들어갔다. 계곡 근처에서 부들을 발견한 나는 뿌리를 통째로 뽑아 그에게 건넸다. “녹말이에요. 씹어 먹어요.” 그는 군말 없이 받아들여 입에 넣었다. “아주 침착하네요,” 그가 뿌리를 씹으며 말했다. “마치 이런 상황을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TV를 많이 봐서 그래요,” 나는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 “사실 그거 독초일지도 몰라요.” 그가 피식 웃었다. “나를 독살하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겠네요. 평생 내 생각만 하면서 살 테니,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결말이군요.” 뼈속까지 멜로 배우다운 대사였다. 9. 오후 1시쯤, 나는 비바람을 완벽히 막아줄 마른 동굴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미 선객이 있었다. 지한, 민우, 그리고 유리였다. 그들의 몰골은 처참했다. 지한과 민우는 손바닥이 벌겋게 벗겨지도록 나무막대기를 비비며 불을 피우려 애쓰고 있었다. 나는 그냥 발길을 돌리려 했다. “잠깐만요!” 민우가 내 손에 들린 야생 베리를 보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여기 동굴 넓어요. 같이 써요.” 그들은 하루가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민우에게 베리를 던져주었다. 지한이 그것을 가로채려 손을 뻗었다. 나는 가차 없이 그의 손등을 걷어찼다. “조심해, 태오야,” 내가 싸늘하게 말했다. “손 더러워지면 안 되잖아. 너는 더... ‘잘 빠진’ 것들을 만지는 데 익숙할 텐데.”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내 뒤에 서 있는 도현의 덩치를 보더니 이내 입을 다물었다. 구석에 앉아 있던 유리가 코방귀를 꼈다. “난 저런 거 안 먹어. 곧 제작진이 데리러 올 텐데, 너희 진짜 한심하다.” 나는 실소가 터져 나오는 것을 참았다. 한심하다고? 이건 게임이 아니다. 굶주림 앞에서는 자존심이 가장 먼저 썩어 없어지는 법이다. 곧 뼈저리게 배우게 되겠지. 그날 밤, 지한이 손에 물집이 잡혀 끙끙 앓아누운 뒤에야 도현이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지한이 눈을 부릅뜨며 분노했다. “이 미친...! 너 불 갖고 있었어? 지금까지 계속?” 도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물어보지 않았잖아요.” 그는 모닥불에 불을 붙인 뒤, 지한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물어봤어도 안 줬겠지만.” 나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돌려야 했다. 10. 둘째 날. 나는 사냥을 나섰다. 도현과 민우가 동행했다. 나는 그들에게 통발을 엮는 법과 올가미 덫을 놓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오후가 되어 두 남자가 덫을 확인하러 간 사이, 나는 통발을 수거하기 위해 홀로 강가로 향했다. 그리고 지한이 내 뒤를 밟았다. 그는 순식간에 내 뒤에서 덮쳐와 나를 진흙탕 바닥으로 밀어트렸다. “독종 같은 년, 꽤나 잘난 척하더니?” 그가 내 셔츠깃을 거칠게 잡아 뜯으며 씩씩거렸다. “여기선 널 구해줄 사람 아무도 없어! 여기서 널 강간하고 강물에 처박아 죽여도 아무도 모른단 말이야! 겁나냐? 빌어봐, 이 년아!” “내가 겁나는 건... 네 앞날이다, 새끼야!” 나는 강바닥에 널린 날카로운 돌을 움켜쥐고 그의 관자놀이를 강하게 내리쳤다. 그가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리는 틈을 타, 나는 수백 번도 더 연습했던 관절기를 이용해 그의 팔을 꺾어 바닥에 메쳤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차가운 강물 속에 처박았다. “너 같은 건 인간도 아냐,” 나는 그의 머리를 짓누르며 차갑게 읊조렸다. “너 같은 쓰레기한테 돈을 바친 팬들이 불쌍할 뿐이지.” 11. 실시간 채팅창은 지한을 향한 분노와 욕설로 도배되다가,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세상에... 나 저 새끼 앨범 샀는데... 토할 것 같다...] [한서윤! 내 여왕님! 저 새끼 그냥 담가버려요!] [손이 떨리고 눈물이 난다. 진짜 미친놈이었네.] [경찰에 신고한 사람 있음? 나 지금 당장 신고한다.] [이건 명백한 증거 영상이다. 빼도 박도 못함.] 12. 동굴로 돌아왔을 때, 나는 덩굴로 지한의 양손을 단단히 결박한 상태였다. 나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잡은 물고기를 구웠다. 노릇하게 익은 물고기를 내려놓으며, 나는 지한을 앞으로 끌어당겼다. “물고기도, 게도, 뿌리채소도 다 내가 잡고 캤어. 그러니까 누가 먹을지는 내가 결정해. 불만 있는 사람?” 도현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고, 민우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잘 구워진 구황작물 하나를 지한의 코앞에 흔들었다. “먹고 싶어?” 지한과 유리는 굶주림에 눈이 뒤집히기 직전이었다. 음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유리가 엉금엉금 기어왔다. “나... 나도 좀 줘...” “차례를 지켜야지,” 내가 유리를 제지했다. 나는 지한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굴욕감에 몸을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가 차갑게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네가 데뷔한 이래로 괴롭히고 손댔던 사람들 전부 말해. 이름, 날짜, 장소. 시작해.” 굶주림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게다가 그는 아무도 자신을 보고 있지 않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결국 그의 입이 열렸다. “2019년 3월... 대기실에서... 내 담당 스타일리스트...” “우울증 때문에 일을 그만뒀다던 그 사람 말이지,” 내가 말을 받았다. “계속해.” “2019년 1월... 소속사 엘리베이터 안에서... 너한테...” “더 말해.” “2020년 7월... 콘서트 끝나고... 팬 한 명... 약을 타서...” “그리고 자살한 그 팬 말이지,” 내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경찰이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덮었던 그 사건.” “그리고... 방금 전,” 그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강가에서... 너한테...” 나는 검지손가락을 흔들었다. “친절하게 짚어주는데, 그건 ‘강간 미수’라고 하는 거야.” 13. 대한민국 인터넷 전체가 서버 마비 수준의 대폭발을 일으켰다. [그 자살했다던 팬... 부모님이 우울증 아니라고 피눈물 흘리며 호소하셨는데...] [저 새끼 연쇄 성범죄자였잖아.] [진짜 속이 울렁거린다. 쓰레기 새끼.] [구속 수사 안 하냐? 당장 감옥으로 보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