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마음은 절대 녹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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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마음은 절대 녹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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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태가 났을 때, 구조 헬기는 단 두 명만 태울 수 있었다. 남편은 채원을 감싸며 밧줄 사다리에 태우고는, 뒤를 돌아보며 한마디를 툭 던졌다. "채원...

Chương (1)

第1章

눈사태가 났을 때, 구조 헬기는 단 두 명만 태울 수 있었다. 남편은 채원을 감싸며 밧줄 사다리에 태우고는, 뒤를 돌아보며 한마디를 툭 던졌다. "채원이는 몸이 약하잖아. 당신은 늘 씩씩했으니까 다음 구조대를 기다려." 3년 전 눈보라가 치던 밤, 그를 찾으러 헤매다 다리를 다쳐 추위를 전혀 견딜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렸다. 의식이 흐려지기 직전까지도 나는 생각했다. 만약 그가 지금이라도 돌아온다면, 남부 지사로 가라는 발령을 거절하고 그의 곁에 남겠노라고. 밤새 기다려도,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휴대폰을 켜는 것이었다. 매번 그에게 실망하면서도 바보처럼 그가 나를 찾았는지 확인하고 싶어지는 버릇 때문이었다. 역시나, 아무것도 없었다. 소셜 미디어를 켜자 채원이 어젯밤에 올린 게시물이 보였다. 살짝 긁힌 듯한 손등 사진, 그리고 그 옆에 찍힌 익숙한 옷소매. "누구 씨가 유난을 떨며 밤새 곁을 지키느라 한숨도 안 자네요." 그 익숙한 옷소매를 바라보자,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던 마지막 서글픔마저 깨끗이 사라졌다. 그녀의 작은 생채기에는 밤을 새우는 사람이, 눈 속에 파묻혀 밤을 지샌 나에게는 안부 전화 한 통조차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가슴이 아려와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며 스스로를 다독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감정도 일지 않았다. 너무 오래 얼어붙어 있어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간호사가 보호자에게 연락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담담하게 화면을 껐다. "아뇨, 연락할 가족 없어요." 창밖에 아직 녹지 않은 잔설을 바라보며 변호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혼 합의서 더는 미루지 말고 진행해 주세요.] 그리고 사내 시스템을 켜고, 남부 지사 전근 신청서의 승인 버튼을 눌렀다. …… 1 왼쪽 다리에 보조기를 찬 채 욱신거리는 다리를 끌며 택시에서 내렸다. 기사님이 목발을 건네주며 내 하얗게 질린 얼굴을 살폈다. "학생, 집 앞까지 부축해 줄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 벽에 몸을 기댄 채 도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퇴원했어. 다리를 꽤 심하게 다쳐서 의사가 다시는 추위에 노출되면 안 된대.] 전송한 뒤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30초를 기다렸다. 그가 보낸 답장은 짧은 한 단어였다. [응.] 실소가 흘러나왔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열쇠로 문을 열려는데, 거실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현관에는 크림색 메리제인 구두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목발을 짚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 소파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도현이 보였다. 그의 손에는 면봉이 들려 있었고, 채원의 손등에 난 미세한 상처에 조심스레 약을 바르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포비돈 소독약, 거즈, 멸균 패드, 밴드 등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무슨 대단한 수술이라도 하는 듯 정성스러운 몸짓이었다. 채원이 손을 흠칫 뒤로 빼며 신음했다. "아파라……" "조금만 참아, 움직이지 말고." 도현의 목소리는 한없이 낮고 다정했다. "살살할게, 금방 끝나." 나는 현관에 멈춰 서 있었다. 목발을 짚고, 왼쪽 다리에 보조기를 찬 채, 병원 환자복 외투를 걸친 몰골로.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내가 눈밭에 파묻혀 밤새 얼어붙어 가던 다리에 대해선 묻지도 않던 남자가, 그녀의 살짝 긁힌 상처 하나에는 온 정성을 다해 떠받들고 있었다. "다 됐다." 도현이 밴드를 붙여주고 고개를 들었다가—— 마침내 나를 발견했다. 그의 눈동자가 찰나의 순간 흔들렸다. 시선이 내 얼굴에서 다리 보조기로, 그리고 목발로 이어졌다. 그의 목젖이 크게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왔어?" 그의 말투는 덤덤했다. "다리는 왜 그래?" "동상이야." 내가 말했다. "의사가 석 달 동안은 무조건 안정 취하래." "그래." 그는 고개를 숙이고 테이블 위의 구급약 상자를 정리하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채원이 손등 상처가 좀 덧난 것 같아서 이것만 마저 정리해 줄게. 들어가서 쉬고 있어." 또다시 반복되는 일이었다. 언제나 채원이 우선이었다. 그제야 나를 발견한 채원은 기다렸다는 듯 걱정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원 언니! 괜찮으세요? 세상에, 다리가 왜 그래요? 어제 눈사태 정말 무서웠는데……" 그녀가 말을 흐리더니 이내 덧붙였다. "도현 오빠가 어젯밤에 제 곁을 지키느라 밤을 새웠어요. 제가 언니 쪽이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가보라고 했는데도, 언니는 워낙 씩씩하니까 괜찮을 거라고 하면서……" 늘 씩씩하니까. 아무 일 없을 테니까. 예전 같았으면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눈시울이 붉어져 그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홀로 눈물을 훔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떤 감정도 일지 않았다. "그래, 고생했어." 내가 말했다. 그리고 목발을 짚고 안방으로 향했다. 등 뒤로 몇 초간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도현이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평소처럼 내가 문을 쾅 닫고 들어가거나, 붉어진 눈으로 왜 나한테 늘 이러느냐며 따져 묻기를.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조용히 문을 닫고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휴대폰을 켰다. [발령 신청 상태: 심사 중. 근무일 기준 3일 이내 결과 통보 예정.] 캘린더를 열어 디데이를 표시했다. '앞으로 3일.' 2 밤 9시가 지나서야 채원이 돌아갔다. 집 안이 고요해지자 다리에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동상에 오랜 지병까지 겹쳐 무릎이 밤처럼 퉁퉁 부어올랐고, 뼛속까지 시린 통증이 신경을 찔러댔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삼켰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안방 앞을 지나던 도현의 발걸음이 미세하게 멈칫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혹시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와 "병원에 가볼래?"라는 한마디라도 건네준다면……. 문밖의 적막은 이내 발소리가 멀어지며 깨졌다. 이윽고 얇은 벽 너머로 그가 누군가와 통화하는 목소리가 선명하게 전해졌다. "채원아, 잘 들어갔어? 날씨 추운데 고생했네. 내일 병원 재진 예약은 내가 데려다줄 테니까 손에 물 닿지 않게 조심해……"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휴대폰 화면이 반짝였다. 변호사의 메시지였다. [이혼 합의서 초안 작성이 완료되었습니다. 발송할까요?] 나는 답장했다. [네, 보내주세요.] 3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요란스럽게 이삿짐을 싸는 대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조용히 하나씩 정리해 나갔. 중요 서류와 신분증은 늘 메고 다니는 가방에 넣고, 책 몇 권은 캐리어 맨 밑바닥에 밀어 넣었다. 책장에 있던 액자들을 내려 옷가지 사이에 겹겹이 끼워 넣었다. 도현이 외출하기 전 서재 앞을 지나가다 슬쩍 안을 들여다보았다. "뭐 정리해?" "계절이 바뀌어서 옷장 좀 정리하려고." 그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차 키를 챙겨 집을 나섰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확인하고 벽에 걸려 있던 웨딩 사진을 내렸다. 사진 속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채희 언니에게 비극이 닥치기 전, 도현이 나를 바라보던 눈빛에는 따스한 온기가 어려 있었다. 채희—— 채원의 친언니이자 도현의 오랜 소꿉친구. 3년 전 그 끔찍했던 교통사고로 채희 언니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내가 그 언니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었다. 사고 당시 바로 옆에 있던 나는 그녀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미처 닿지 못했다. 도현은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내 탓이라 단정 지었다. 해명도 했다. 수없이 많이. 하지만 그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해명을 포기한 나는 그저 묵묵히 그의 곁을 지키는 것으로 내 진심을 증명하려 했다. 그해 겨울 눈보라가 몰아치던 밤, 연락이 두절된 그를 찾아 온 동네를 헤매다 빙판길에 넘어져 무릎뼈가 바스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평생 안고 가야 할 고질병을 얻었음에도 그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의 마음속에서 나는 채희 언니의 목숨을 앗아간 죄인이었기에, 내가 어떤 고통을 감내하든 그것은 당연한 대가에 불과했다. …… 점심 무렵, 변호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원 씨, 합의서 세부 조항을 확인해 드리고자 합니다. 아파트와 차량, 예금 등 혼인 중 공동으로 모은 재산에 대해 절반을 요구할 권리가 있으십니다만……" 내가 단호히 가로막았다.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깔끔하게 정리해 주세요." 변호사는 잠시 침묵하더니 되물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확실합니다." 통화를 끝내고 캐리어를 옷장 깊숙이 밀어 넣은 뒤 두툼한 코트 몇 벌로 가렸다. 저녁에 귀가한 도현은 내가 소파에 앉아 멍하니 TV를 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의 기분은 꽤 좋아 보였다. 신발을 벗고 걸어와 내 옆자리에 풀썩 앉더니, 내 보란 듯이 휴대폰을 꺼내 채원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 "채원아, 내일 병원 검진은 내가 같이 가줄 테니까 택시 타지 말고 기다려." 아이를 달래는 듯한 다정한 목소리였다. 그는 내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다 알고 있었다. 예전에는 그가 내 앞에서 채원을 살뜰히 챙길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참지 못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제발 내 앞에서 이러지 마라"며 애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쏘아붙이며 말했다. "채원이는 채희 동생이야. 내가 챙기는 건 당연한 일이지. 당신이 켕기는 게 없다면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매번 그런 식이었다. 채희 언니의 죽음을 빌미로 내 입을 막아버리는 식. 하지만 이번에 나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는 몇 초간 정적이 흐른 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오늘은 조용하네." "피곤해서 그래." 내가 대답했다. 그는 콧방귀를 뀌며 소파 깊숙이 몸을 묻고 다리를 꼬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였다. 내가 또 속으로 무슨 벼르고 있으려니 생각했을 터였다. 조만간 또 소란을 피우고 이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다가, 며칠 뒤 제풀에 지쳐 울며 겨자 먹기로 매달릴 거라 믿고 있을 터였다. 지난번에도 그랬고, 그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이혼을 입에 올릴 때마다 그는 콧방귀도 끼지 않았다. 결국 늘 내가 먼저 꺾이고 말았으니까. 그렇기에 이번에는 아주 확신을 가졌을 것이다. 나를 방치해 두면 떼를 써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을 것이라고. 오랜 침묵 끝에 내가 툭 던지듯 물었다. "도현 씨." "응?" "만약 내가 정말로 당신 곁을 떠나면, 슬플 것 같아?"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단단히 착각에 빠진, 비웃음이 섞인 미소가 걸려 있었다. "당신이 날 떠날 수나 있어?" 그 가벼운 대답은 마치 우스갯소리처럼 허공에 흩어졌다.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내가 결코 제 곁을 떠나지 못할 것임을. 이혼하겠다는 외침이 그저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한 어린아이의 투정쯤이라 여기고 있었다. 나는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알림이 와 있었다. [인사 발령 신청이 최종 심사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영업일 기준 1-2일 내에 완료됩니다.] 화면을 끄며 그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내가 어떻게 당신을 두고 떠나겠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도현이 채널을 돌렸다. 승리가 보장된 싸움에서 이긴 장수 같은 태도였다. 그 옆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앞으로 이틀.' 4 회사 종무식 겸 연말 시상식이 열리던 날, 나는 '올해의 프로젝트 최우수 담당자상'을 받았다. 이 도시에서 내가 맞이할 마지막 영광의 순간이었다. 무대에 오르기 전, 후배 임 대리가 내 드레스 자락을 매만져주며 속삭였다. "송 팀장님, 오늘 밤 주인공은 팀장님이시니까 마음껏 즐기세요." 나는 엷은 미소만 지어 보였다. 사흘 뒤면 이곳을 완전히 떠난다는 사실은 비밀로 한 채. 시내 중심가의 호텔 대연회장, 내가 트로피를 받기 위해 무대 위로 올라섰을 때 객석에선 천둥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트로피를 품에 안은 순간, 곁눈질로 연회장 한구석이 보였다. 도현이었다. 채원이 그의 팔짱을 낀 채 뒷자리의 원형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가 여기에 온 것은 나를 축하해 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나는 시선을 거두고 객석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수상 소감을 이어갔다. 무대에서 내려오자 사람들이 잔을 들고 다가와 축하의 말을 건넸다. 임원들과 잔을 부딪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팀장님, 축하드려요!" 채원이 주스 잔을 든 채 생글거리며 걸어왔고, 도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고마워." 나는 예의상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채원이 내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오며 오직 나만 들을 수 있는 크기대로 목소리를 낮췄다. "언니는 일도 이렇게 잘하고 참 부러워요. 저처럼 미련 곰탱이 같은 애는 도현 오빠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데……" 그녀가 짐짓 말을 멈추더니 눈꼬리를 접어 웃었다. "우리 언니도 살아생전에 그랬거든요. 지원 씨는 자기가 본 여자 중에 제일 독하고 자존심 센 사람이라고." 또 채희 언니다. 채원의 입에서 언니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도현의 얼굴은 사정없이 구겨졌다. 예상대로 그의 턱관절에 팽팽하게 힘이 들어갔다. 평소의 나였다면 침묵하며 억울함을 삼켰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이 내가 이곳에 서는 마지막 날이었다. "채원 씨." 나는 그녀를 똑바로 쏘아보며 낮지만 또렷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이 정말 언니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채원의 얼굴에서 가식적인 미소가 순식간에 굳어졌다. "도현이 마음에 채희 언니는 영원히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야. 그런데 당신은?" 나는 샴페인을 가볍게 한 모금 들이켰다. "당신은 그저 그 남자가 언니를 그리워하기 위해 곁에 둔 대용품에 불과해." 채원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이내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채 도현을 돌아보았다. "오빠……" 도현의 안색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금방이라도 베어버릴 듯 차갑고 날카로웠다. "송지원, 지금 뭐라 그랬어?"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그가 비틀린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단상을 향해 걸어갔다.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그가 마이크를 쥐기 전까지는. 웅성거리던 홀 안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여러분," 그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으나 장내 스피커를 타고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방금 수상한 최우수 프로젝트에 대해 덧붙이고자 합니다. 송지원 팀장이 이끈 대기 관측소 프로젝트의 핵심 데이터 모델링 작업은 사실 여기 있는 민채원 씨의 헌신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공을 한 사람에게만 돌리는 것은 불공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꽂혔다. 트로피를 쥔 내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려갔다. 거짓이었다. 그 프로젝트는 내가 꼬박 8달 동안 밤을 새워가며 홀로 완성한 결과물이었다. 채원은 단순히 문서 수발신 같은 후행 관리만 맡았을 뿐, 핵심 데이터엔 접근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도현은 그렇게 말했다. 이 수많은 동료와 업계 사람들 앞에서. 내 커리어의 가장 찬란한 순간에, 그는 내 손을 뿌리치고 나를 시궁창에 처박아 버렸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파도처럼 사방에서 밀려들었다. "어머, 혼자 한 게 아니었어?" "어쩐지 채원 씨가 조용하더라니……" "민망해서 어떡해……" 도현의 등 뒤에 서 있는 채원은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가늘게 떨고 있었다. 우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가증스럽고 완벽한 연기였다. 온몸이 얼어붙은 듯 굳어진 채, 가슴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내 명예가 더럽혀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남자 때문이었다.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를 무시해도, 다른 여자를 품에 안아도 다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최소한 인간으로서, 내가 피땀 흘려 지켜온 마지막 보루마저 짓밟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들으려던 잔을 테이블에 조용히 내려놓고 뒤돌아 걸어 나왔다. 구차한 해명도, 분노에 찬 항변도 하지 않았다. 연회장을 막 벗어났을 때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변호사의 메시지였다. [법원에 소장이 접수되었습니다. 상대방의 서명 여부와 관계없이 소송 절차는 차질 없이 진행됩니다.] 이어 또 하나의 알림이 떴다. [인사 발령 절차가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72시간 이내에 남부 지사로 출근 등록을 완료해 주시기 바랍니다.] 72시간. 사흘이었다. 차가운 복도 벽에 몸을 기대자 통증이 밀려오는 다리가 심하게 떨렸고, 눈가가 뜨거워졌다. 사흘만 버티면, 이 진흙탕 같은 삶도 모두 남의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