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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 어린이날, 스물아홉 살이나 먹고 심각한 ‘애기병’에 걸린 시누이가 분홍색 프릴 드레스를 입고 막대사탕을 문 채 내 집무실 문을 가로막았다...

Chương (1)

第1章

5월 5일 어린이날, 스물아홉 살이나 먹고 심각한 ‘애기병’에 걸린 시누이가 분홍색 프릴 드레스를 입고 막대사탕을 문 채 내 집무실 문을 가로막았다. “언니, 오늘은 우리 애기 날이잖아. 애기는 어린이날 선물로 회사 대표이사 자리 갖고 싶어!” 나는 기가 막혀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법인 대표이사는 회사 부채랑 법적 책임을 전부 혼자 짊어지는 자리야!” 남편이 그런 나를 싸늘하게 흘겨보았다. “민지혜, 좋게 말할 때 까불지 마. 우리 유유가 갖고 싶다잖아. 굴러온 돌인 네가 이제 그만 물러나서 양보해.” 나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위해 허벅지를 피가 나도록 꼬집어야 했다. 3,000억 원이 넘는 이 썩은 부채더미에서 어떻게 탈출해야 하나 머리를 싸매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제 발로 구덩이에 들어가 주겠다니. “당신들이 등 떠민 거야. 나중에 절대 후회하지 마.” 나는 떨리는 손을 연기하며 누구보다 빠르게 대표이사 변경 서류에 서명했다. 법인 인감이 찍히는 순간, 이유유는 신이 나서 손뼉을 쳤다. “와아! 애기 오늘부터 큰 회사 주인 됐다!” 우리 애기 유유야. 나중에 차디찬 구치소에서 노역복을 입고 재봉틀을 돌릴 때도, 부디 오늘처럼 해맑게 웃어주길 바랄게. …… 1 이유유는 온 세상을 얻은 듯 기뻐했다. 입에 공갈 젖꼭지를 문 채 ‘다다다’ 집무실로 뛰어 들어가더니, 회장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제자리에서 여덟 바퀴나 빙글빙글 돌았다. “오늘부터!” 그녀는 입에서 젖꼭지를 쏙 빼며 선언했다. “이 회사는 전부 우리 애기 거야! 다들 애기 말만 들어야 해!” “말 안 듣는 사람은 애기가 전부 잘라버릴 거야!” 사무실 안, 나와 함께 3년 동안 피땀 흘려 일해 온 임원들은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침묵을 지켰다. 내 남편이자 이 회사 사장인 이진우가 차가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다들 들었지? 앞으로 유유가 새 대표이사다. 이견 있는 사람은 지금 당장 짐 싸서 꺼져.” 숨이 막힐 듯한 정적이 흘렀다. 나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묵묵히 내 개인 물품들을 상자에 담았다. 상자가 책상 모서리에 부딪히며 ‘탁’ 하고 맑은 소리를 냈다. 크지 않은 소리였지만, 얼어붙은 사무실 안에서는 유독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이유유의 시선이 즉각 내게로 쏠렸다. “언니이……” 그녀가 말끝을 길게 늘어뜨리며 나를 불렀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애기가 말하고 있잖아. 왜 안 들어?” 나는 대꾸하지 않고 계속 짐을 정리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다음 순간, 스물아홉 살 먹은 여자가 고위 임원 열댓 명 앞에서 보란 듯이 행동했다. ‘털썩.’ 의자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 카펫 바닥에 그대로 누워버린 것이다. “으아아앙!” 그녀가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다리를 구르고, 엉엉 울어대며 양발로 바닥을 미친 듯이 찼다. “우아앙! 언니가 애기 무시해! 언니가 애기 괴롭혀!” 눈물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바닥에서 일어난 그녀가 나를 가리키며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언니가 대표이사라고 지금 우리 애기 깔보는 거지?!” “언니가 그동안 대표 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밖으로 남자 바이어들 꼬시고 다닌 거, 회사 사람 다 알거든?!” 임원 몇 명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아무 감정 없는 눈으로 그녀를 한 번 보고는 다시 책상 위의 서류들을 정리했다. 무반응에 그녀는 더 미쳐 날뛰었다. 내게 달려들더니 책상 모서리에 놓아둔 액자를 낚아챘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겨주신,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족사진이었다. ‘쨍그랑!’ 그녀가 액자를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었다가 바닥에 내팽개쳤다.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녀는 깨진 유리를 바라보며 손뼉을 치고 깔깔 웃어댔다. “히히, 애기는 이 장난감 싫어!”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깨진 유리 틈에서 조심스럽게 사진을 건져 올려 코트 안주머니에 소중히 넣었다. 그리고 다시 남은 서류를 챙겼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그녀에게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유유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자신의 치트키 같은 ‘애기병’이 전혀 통하지 않는 상대를 평생 처음 만난 모양이었다. 갑자기 그녀가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내가 들고 있던 프로젝트 기획서 뭉치를 강제로 빼앗더니, 구석에 있는 문서 파쇄기 속으로 밀어 넣어버렸다. ‘드르륵, 드르륵.’ 하얀 종이들이 순식간에 잘게 찢겨 나갔다. 그녀는 손가락을 깨물며 고개를 갸웃하고 나를 보며 웃었다. “파쇄기가 맘마 달라고 배고프대서, 애기가 종이 맘마 준 건데?” 나는 하던 일을 멈추었다. “이유유.” 나는 지극히 평온한 어조로 그녀를 불렀다. “방금 네가 깨뜨린 액자는 내 개인 소유물이야.” “그리고 네가 파쇄한 서류들 역시 내가 사비로 구입한 바인더와 개인적으로 정리해 둔 업무 기록이지.” “타인의 재물을 고의로 손괴하는 행위는 변상 의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상황이 엄중할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돼.” 말을 마치며 나는 휴대폰을 꺼내 동영상 녹화 버튼을 눌렀다. “지금 네가 하는 모든 행동, 전부 증거로 남겨둘게.” 이유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등 뒤에서 임원 몇 명이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큭큭댔다. 그녀가 사납게 뒤를 돌아보며 웃음소리가 난 쪽을 째려보았다. 임원들은 즉시 입을 다물었지만, 실룩거리는 입꼬리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이유유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서 씩씩거리며 회장 의자로 돌아가 다시 몸을 팽이처럼 두 바퀴 돌렸다.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애기가 오늘 여기 온 진짜 목적은 회사 장부 검사하러 온 거야!” 그녀가 서랍에서 지출결의서 한 뭉치를 꺼내 탁자 위에 내동댕이쳤다. “당신들 같은 고인 물들은 맨날 회사 돈으로 영수증 처리나 할 줄 알지? 다 흡혈귀들이야!” “앞으로 회사 돈은 애기 분유 타주고, 이불 개주는 사람들한테 제일 먼저 보너스로 줄 거야!” 그녀는 말을 마치며 서류 몇 장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남편 이진우의 백으로 입사한 친척 무리가 즉시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유유 대표님, 역시 현명하십니다!” “이런 고인 물들은 진작에 정신 교육을 시켰어야죠!” 이유유가 장부를 계속 넘겼다. 그러다 어느 한 페이지에서 손을 멈추었다. 마지막 장, 청구 금액 란에 선명하게 적힌 숫자 ‘20,000,000원’. 그녀가 그 영수증을 높이 치켜들었다. “이거 누구 거야? 대체 어떤 낯짝 두꺼운 인간이 한 번에 2천만 원을 청구해?” 사무실에 3초간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는 차분하게 손을 들었다. “내 거야.” 2 이유유는 내 손을 보더니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 그럴 줄 알았어!” 그녀가 책상을 세게 내리치며 일어나 손가락으로 내 코앞을 가리켰다. “민지혜! 당신 결국 꼬리가 밟혔네!” “몇 년 동안 대표이사 자리 앉아 있더니 회사 돈을 쌈짓돈처럼 빼돌린 거지?!” 사무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남편 쪽 친척들은 서로 귓속말을 나누며 나를 경멸 어린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내용은 다 읽고 떠드는 거니?” 내가 물었다. 이유유가 멈칫했다. 나는 그녀가 쥐고 있는 서류 하단을 가리켰다. “밑을 봐. 용도 란에 뭐라고 적혀 있어?” 그녀는 의아한 듯 고개를 숙여 훑어보더니 입술만 달싹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녀 대신 담담하게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용도: 한성 유통 7월 대금 잔금, 개인 선지급. 자금 출처: 대표이사 개인 계좌.” 내가 그녀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지난달에 거래처에서 대금 결제 독촉 들어왔을 때 회사 법인 계좌에 잔고가 없었어. 그래서 내 개인 자금 2천만 원을 임시로 수혈해 둔 거야.” “은행 이체 내역, 거래처 영수증, 재무팀 입금 전표까지 전부 보관되어 있으니 언제든 대조해 봐도 좋아.” 이유유의 표정이 보기 좋게 굳어졌다. 3초의 정적 후, 그녀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치솟았다. “거짓말! 쫓겨나기 직전인 이혼녀 주제에 당신한테 2천만 원이 어디서 나?!” “개인 자금? 당신 돈이 결국 다 우리 오빠 돈이잖아!” 흥분한 그녀의 손가락이 내 눈을 찌를 듯이 다가왔다. “회사 돈 훔쳐 가놓고 가짜 차용증 써놓은 거겠지! 착한 척 코스프레 하려고 자기가 메꿨다고 구라치는 거잖아!” “회계 조작이야! 이건 명백한 분식회계라고!”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유유, 회사의 모든 자금 집행은 감사 절차를 거쳤어.” “정 못 믿겠으면 지금 당장 은행이랑 회계법인에 전화해서 확인해 봐.” 한참을 씩씩대던 그녀는 갑자기 의자에 주저앉더니, 오히려 더 큰 소리로 떼를 쓰기 시작했다. “나 몰라! 어쨌든 지금 대표이사는 우리 애기야! 애기가 결정해!” 그녀는 2천만 원짜리 결의서를 반으로 쫙 찢어버렸다. “이 2천만 원, 애기는 안 갚아줄 거야! 당신이 좋아서 낸 돈이니 기부한 셈 쳐! 회사는 당신한테 단돈 1원도 빚진 거 없어!” 바닥으로 흩날리는 종이 조각들을 보며 나는 침묵을 지켰다. 이유유는 자리에서 일어나 친척 무리를 향해 선언했다. “이 2천만 원은 앞으로 우리 애기 놀이공원 기금으로 쓸 거야! 우리 애기 응원해 주는 착한 사람들에게 상금으로 나눠줄게!” 그녀가 친척들과 아첨꾼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어때? 좋지?” “너무 좋습니다!” “유유 대표님 만세!” “역시 우리 대표님이 사람 볼 줄 아신다니까요!” 환호성 속에서, 나와 함께 고생했던 몇몇 원년 직원들은 고개를 숙인 채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들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이유유.” “네가 방금 찢은 건 복사본이야. 원본은 내 변호사가 가지고 있어.” 이유유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변호사? 누굴 겁주려고! 이제 이 회사는 내 거야! 애기가 짱이라고!” 그녀가 목청을 높였다. “너 자꾸 까불면 오빠 불러서 아주 박살을 내버린다?!” 그러자 친척 무리들이 즉시 맞장구를 쳤다. “에이, 다 큰 어른이 애를 상대로 너무 쩨쩨하게 구네.” “이제 갓 취임한 어린애 기를 꺾으려고 빚 독촉이나 하고 말이야,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지혜 씨, 적당히 해. 눈 밖에 나서 한 푼도 못 건지고 쫓겨나기 전에.” 나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내 침묵을 항복으로 받아들였는지, 이유유는 문가에 서 있는 비서에게 소리쳤다. “야! 당장 오빠 들어오라고 해! 어떤 미친 여자가 우리 애기 괴롭히고 있다고 전해!” “지금 당장, 롸잇 나우 오라고 해!” 3 안하무인으로 날뛰는 이유유의 꼴을 보며, 내 마음속에서는 쾌재가 울려 퍼졌다. 내가 이 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려 왔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3년 전, 남편의 감언이설에 속아 대표이사 자리에 앉았을 때, 이미 회사 장부에는 수천억 원에 달하는 부채 구멍이 뚫려 있었다. 당시 이진우는 내게 속삭였었다. “여보, 이름만 올려두는 요식 행위야. 서명만 하면 돼.” 실제 회계 장부를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깨달았다. 나는 그의 아내가 아니었다. 그의 법적 고기방패이자, 언제든 터질 시한폭탄을 대신 쥐고 있는 대역이었다. 지난 3년 동안 돌려막기를 해가며 친정에서 가져온 혼수와 내 개인 적금까지 털어 도합 30억 원에 가까운 돈을 밑 빠진 독에 부었다. 이혼을 수없이 생각했다. 하지만 변호사는 자칫 부부 공동 채무로 묶여 평생 빚쟁이로 살 수 있으니, 확실한 증거를 수집하며 때를 기다리라고 조언했다. 그때, 집무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이진우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이유유는 잽싸게 달려가 오빠의 팔에 매달리며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오빠아!! 으앙! 언니가 애기 괴롭혀!” “가짜 영수증 들고 와서 애기한테 2천만 원 내놓으라고 협박했어! 애기가 안 준다고 하니까 막 동영상 찍으면서 고소하겠대!” 이진우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으며 나를 향했다. “민지혜, 너 또 무슨 수작이야?”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이유유가 훌륭한 연기로 판을 키웠다. 다시 의자 위로 기어 올라간 그녀는 허공에 다리를 휘저으며 징징대기 시작했다. “흑! 오빠, 언니가 왜 그렇게 급하게 돈을 요구하는지 알아?” “그 돈 받아서 밖에 숨겨둔 젊은 놈한테 바치려고 그러는 거야!” 사무실 안의 공기가 싸늘하게 굳었다. “애기가 회사 사람들한테 다 들었어!” 눈물콧물을 질질 짜며 그녀가 소리쳤다. “언니 오래전부터 바람피우고 있었대! 키 크고 잘생긴 놈이래!” “회사 돈 털어서 야반도주하려고 밑작업 치는 거야! 오빠한테 대놓고 바람피우는 거라고!” 이진우의 얼굴이 분노로 시커멓게 죽어갔다. 그가 거친 걸음으로 다가와 내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미처 손을 빼기도 전에, 그의 다른 손이 내 왼손 약지를 거칠게 움켜쥐고 결혼반지를 강제로 뽑아냈다. 반지 안쪽의 날카로운 프롱이 내 손가락 마디를 인정사정없이 긁고 지나갔다. 약지 뿌리부터 손끝까지 붉은 핏줄기가 선명하게 피어올랐다.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통증에 온몸이 사르르 떨렸다. 이진우는 피가 묻은 다이아몬드 반지를 이유유에게 툭 던져주었다. “가져. 유유 반짝이는 거 좋아하지? 이거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아.” 반지를 받아 든 이유유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는 조명 빛에 반지를 비춰보며 배시시 웃었다. “우와, 너무 예쁜 반짝이다! 고마워 오빠!” “오빠! 애기는 이 나쁜 년이랑 같은 회사에 있기 싫어!” “당장 쫓아내고 이혼해 버려! 애기는 이 언니 싫단 말이야!” 이진우는 깊은 한숨을 쉬더니, 서류 가방에서 서류 한 뭉치를 꺼냈다. “민지혜.” 그가 내 눈앞에 ‘이혼 합의서’를 팽개치듯 던졌다. “사인해. 위자료는 없어. 오늘부로 너랑 우리 집안은 아무 상관 없는 남이야.” 나는 테이블 위의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재산 분할 조항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을(민지혜)은 혼인 중 형성된 공동 재산에 대한 모든 권리를 자발적으로 포기한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일말의 미안함도, 주저함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시선을 거두고 아직 피가 흐르는 왼손으로 책상 위의 펜을 쥐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내 이름을 서명해 내려갔다. 밀려오는 희열에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여 눈물을 닦는 척했다. 실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터질 듯이 깨물고 있었다. 4 한 달 뒤. 새로 구한 오피스텔에 앉아 있을 때였다. 테이블 위 휴대폰이 ‘카톡’ 하고 울렸다. 우편함에 택배가 와 있다는 알림이었고, 열어보니 이유유가 보낸 파티 초대장이 들어있었다. 봉투 입구에는 앙증맞은 하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카드를 꺼내 읽어내려갔다. [이유유 대표이사 취임 한 달 기념 초호화 파티] 아래에는 삐뚤빼뚤한 이유유의 손글씨가 적혀 있었다. 「전임 언니야, 애기가 대표이사 된 지 벌써 꼬박 한 달이 지났어! 회사는 애기 지휘 아래 매일매일 엄청 잘 나가고 있지롱! 오늘 밤 해성호 크루즈 요트에서 기념 파티를 열 건데, 특별히 관람할 기회를 줄게. 진짜 진짜 대단한 CEO가 뭔지 네 눈으로 똑똑히 봐봐! 아, 올 때는 옷 좀 신경 써서 입고 와. 애기 부끄럽게 만들지 말고!」 나는 그 초대장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휴대폰을 켜고, 캘린더에 한 달 전 표시해 둔 알람을 확인했다. ‘주거래 은행 최종 상환 유예 기한: 오늘 밤 22:00 만료.’ 휴대폰을 내려놓고 옷장을 열었다. 오늘 밤 펼쳐질 무대는, 충분히 화려하게 차려입고 갈 만한 가치가 있었다. 마리나 선착장에 정박한 해성호 요트는 멀리서 봐도 화려한 불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갑판 위에는 고급 카펫이 깔려 있었고, 곳곳에 ‘우리 애기가 최고’, ‘유유 대표님 만세’ 같은 오색풍선들이 가득 매달려 있었다. 중앙에는 거대한 10단짜리 케이크가 놓여 있었고, 맨 위에는 깃발이 하나 꽂혀 있었다. [축! 이유유 대표님 취임 1개월 축하!] 이유유는 공주풍 프릴 드레스를 입고 의기양양하게 갑판 중앙에 서 있었다. 내 전남편 이진우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젊은 여자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서 있었고, 그 주변은 죄다 낙하산으로 들어온 친척들과 아첨꾼들로 득실거렸다. “대표님만 믿고 가면 저희 다음 달에 나스닥 상장하는 겁니까?” “그럼요! 상장만 하면 여기 계신 분들 강남 아파트 한 채씩 돌아갑니다!” 내가 요트 갑판에 발을 들이는 순간, 시끌벅적하던 사방의 소음이 잠시 잦아들었다. 이유유가 나를 발견했다. 그녀의 눈이 반짝이더니 즉시 수신호를 보냈다.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 두 명이 다가와 나를 갑판 가장자리의 구석진 자리로 밀어내며 시야를 가로막았다. 이유유가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주목해 주세요! 우리 전임 대표이사님이 오셨습니다!” 야유와 폭소가 터져 나왔다. “언니, 지금 속 쓰려 죽겠지? 애기가 회사 맡으니까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잘 굴러가는 거 봐봐!” “언니가 있을 땐 회사가 아주 초상집 같았는데, 애기가 오니까 얼마나 활기차고 좋아!” 이진우는 새 파트너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뱉어내듯 말했다. “이혼하고 나니까 확실히 알겠더군. 당신은 그냥 무능한 짐짝에 불과했어.” 그의 곁에 선 여자가 까르르 웃으며 동조했다. 나는 와인 잔을 든 채 묵묵히 그들의 조롱을 들었다. 이유유가 케이크 앞으로 걸어가 커팅 칼을 쥐고 나를 보았다. “아, 맞다! 전임 언니, 애기가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 줄게!” 고개를 갸웃하며 세상 무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 여기서 무릎 꿇고 멍멍 짖는 시늉 세 번만 해봐. 그럼 애기가 이 맛있는 케이크 한 조각 줄게. 어때?” 갑판 전체가 떠나갈 듯한 웃음소리와 조롱으로 가득 찼다. “꿇어라! 꿇어라!” “멍멍이 해봐! 멍멍이!” 모든 눈동자가 나를 향해 쏟아졌다. 나는 구석에 서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21시 59분. 정확히 1분 남았다. “다섯.” 나는 아주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넷.” 내가 무얼 중얼거리는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셋.” 그때, 이진우의 바지 주머니에서 요란한 진동음이 울렸다.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꺼내기도 전에, 재무 담당 김태식 상무의 휴대폰이 울렸다. 이어서 법무팀장의 폰이 울렸다. 갑판 위에 있던 임원들의 휴대폰이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비명처럼 울리는 벨 소리들이 밤공기를 가르고 요트를 뒤흔들었다. 파티장의 왁자지껄하던 웃음소리가 마법처럼 뚝 끊겼다. 이진우가 떨리는 눈빛으로 발신자 번호를 확인하더니 급히 전화를 받았다. 그의 얼굴이 3초 만에 핏기 없이 하얗게 질려갔다. ‘툭.’ 휴대폰이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갑판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선착장 저편에서 요란한 경찰 사이렌 소리가 밤하늘을 갈랐다. 사방에서 강렬한 서치라이트 불빛이 동시에 켜지며 요트를 대낮처럼 비추었다. 이유유가 쥐고 있던 케이크 칼이 ‘댕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요트 안은 쥐 죽은 듯한 고요에 휩싸였다. 나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사시나무 떨듯 떠는 스물아홉 살의 ‘금쪽이’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건넸다. “취임 한 달 축하해, 대표이사 애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