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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을 퍼붓던 전 남자친구가 분신자살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남자친구인 지훈이가 송금을 하겠다며 나를 데리고 은행을 찾았다. 그는 굳이 아장아장 걷는 시늉을 하는 소꿉친구이자 은행원인 세아에게 업무를 맡...
Chương (1)
第1章
남자친구인 지훈이가 송금을 하겠다며 나를 데리고 은행을 찾았다.
그는 굳이 아장아장 걷는 시늉을 하는 소꿉친구이자 은행원인 세아에게 업무를 맡기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말로는 세아가 업무에 빨리 익숙해지도록 돕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내가 보안 OTP 카드를 막 삽입한 순간, 소꿉친구 임세아는 우리 회사의 자금 전액을 상장 폐지 직전의 쓰레기 잡주에 올인해 버렸다!
세아는 얄밉게 나를 향해 손키스를 날리며 콧소리를 냈다.
“언니, 너무 사납게 굴지 마요오. 오늘 별자리 운세에서 세아 재물운이 완전 대박이랬단 말이에요.”
“저 파란 불 켜진 주식들 좀 봐요. 너무 불쌍하잖아. 세아가 돈 두 배로 불려주면, 전부 언니 용돈 하라고 줄게요. 응?”
속이 뒤집힌 내가 당장 거래를 취소하라고 소리치자, 강지훈은 오히려 주식 매수 허가서에 직접 서명하며 임세아의 뒤를 봐주었다.
“네 그 알량한 월급은 물론이고, 네 집안 가산이 다 날아간대도 내가 다 메꿔줄 수 있어!”
하지만 그 돈은 시청에서 막 내려온 수해 방지 제방 보강 공사의 정부 지원 특별 교부금이었다. 자그마치 1,000억 원이었다!
전생의 나는 은행 창구를 부수고 랜선을 뽑아버린 끝에야 그 공금을 지켜낼 수 있었다.
덕분에 회사는 무사히 자재를 조달해 댐을 보강했고, 혹독한 장마철을 안전하게 넘겼다.
그러나 남자친구는 소꿉친구를 곤경에 빠뜨려 해고당하게 만들었다며 나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공금을 횡령했다는 헛소문을 퍼뜨렸고, 급기야 나를 회사 문서고에 가둔 뒤 불을 질렀다.
“우리 세아는 그렇게 순진한 애인데, 네가 뭔데 겁을 줘? 이 썩어빠진 장부들이랑 같이 재가 되어버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임세아가 ‘매수 확인’ 버튼을 누르기 직전의 그 순간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조용히 뒤로 물러서서 팔짱을 꼈다.
살 테면 사봐라. 이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인 네가 직접 허락한 주식 투자니까.
그때가 되어서도 너희의 그 잘난 별자리 운세가 파멸을 예측할 수 있을지 똑똑히 지켜봐 주마.
……
1
“띠링— 거래가 완료되었습니다.”
화면 속의 예금 잔액이 순식간에 제로로 변했다.
1,000억 원의 제방 보강 자금이 ‘한성 에코’라는 이름의, 거래 정지 직전인 인공호흡기 가동 중인 주식으로 둔갑했다.
임세아가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비명을 질렀다.
“우와! 매수 완료! 지훈 오빠, 이것 봐! 파란색이야! 시원한 바다처럼 예쁘지!”
그녀는 엄지손가락을 깨물며 강지훈의 품으로 쏙 안겼다.
콧소리를 섞어 애교를 부리는 목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가증스러웠다.
“지훈 오빠, 세아 진짜 잘했지?”
“세아가 오늘 오빠 재테크 확실하게 도와준 거야!”
강지훈의 눈에는 꿀이 뚝뚝 떨어졌다.
그는 임세아를 품에 꼭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오만한 눈빛으로 나를 비웃었다.
“한서우, 봤어? 세아가 이렇게 똑똑해!”
나는 서둘러 앞으로 다가가는 척하며 마우스를 빼앗으려다 멈추고,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강지훈, 이거 방재본부에서 받은 제방 보강 공사 대금이야. 자재비로 써야 할 1,000억 원이라고. 문제 생기면 네가 다 책임져야 해.”
강지훈은 내 경고가 우습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나를 한심하게 바라봤다.
“유난 떨기는. 장마는 다음 달에나 오는데 뭐가 걱정이야? 세아가 며칠 뒤에 주식 두 배로 불리면 그때 채워 넣으면 되잖아!”
강지훈의 철없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내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회사에서 모든 직책을 내려놓았고, 오늘은 순전히 그가 일을 처리하는 데 동행했을 뿐이다.
제 발로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겠다는 자들을 굳이 말릴 이유는 없었다. 그저 너희가 어떻게 스스로를 파멸시키는지 가만히 구경해 주마.
나는 평온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돈이 움직였으니 허가서 원본은 잘 챙겨둬. 그게 네 책임의 증거니까.”
확실한 물증을 남겨 그가 핑계를 대지 못하게 해야 했다.
강지훈은 콧방귀를 뀌며 테이블 위의 공문을 집어 들려 했다.
그때 임세아의 눈동자가 구르더니 또다시 쓸데없는 짓을 시작했다.
그녀는 잽싸게 허가서를 가로채며 징징거렸다.
“이 종이 너무 빳빳해서 싫어! 세아는 이런 거 만지기 싫단 말이야!”
그것으로 모자라 명품 가방에서 립스틱을 꺼내더니, 공문의 붉은 관인 위에 마구 덧칠을 해댔다.
“헤헤, 지훈 오빠! 이것 봐, 내가 거북이 그렸어!”
낙서가 끝나자 그녀는 허가서를 양손으로 잡았다.
“찌익—”
수십만 명의 안전이 걸린 기밀 공문서가 순식간에 찢어발겨졌다.
“아, 스트레스 풀려!”
그녀는 깔깔거리며 찢어진 종이 조각들을 공중에 뿌렸다.
종이 가루가 먼지처럼 바닥으로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내가 임세아를 빤히 쳐다보자, 강지훈은 마치 제 영역을 지키려는 들개처럼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핏대를 세우며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뭘 봐! 왜 사람을 째려보고 지랄이야!”
“내가 이 프로젝트 총책임자야! 자금 운용은 내가 결정해!”
“세아가 찢고 싶다는데, 까짓거 내일 종이 한 트럭 사다 줄 테니까 마음껏 찢으라고 하면 돼! 그 썩어빠진 눈빛으로 우리 세아 겁주지 마!”
임세아는 강지훈의 등 뒤에 숨어 나를 향해 메롱을 해 보였다.
“맞아! 종이 몇 장 찢은 게 대수야? 지훈 오빠가 나 다 지켜줄 건데!”
바로 그때, 주식 시장이 열렸다.
그 쓰레기 종목은 단 1초의 반등도 없이 수직으로 폭락하더니, 곧바로 하한가로 직행했다.
1,000억 원의 자금은 하한가 매도 잔량에 단단히 묶여버렸다.
불과 몇 초 만에 장부상으로 100억 원이 증발했다.
폭락하는 숫자를 본 임세아는 짜증스럽게 마우스를 내던졌다.
“아 진짜! 이 주식 왜 이래? 짜증 나게!”
“파란색이라 시원해 보였는데 갑자기 마음에 안 들어. 벌을 줘야겠어!”
그녀는 다시 마우스를 쥐고 은행 기업 뱅킹 화면으로 돌아갔다.
“다른 자금도 더 끌어와서 물타기 할래! 설마 이것도 안 오르겠어?”
은행의 다른 예비 금고 자금까지 손을 대려 하는 것이었다.
강지훈은 말리기는커녕 흐뭇하게 웃으며 칭찬했다.
“우리 세아, 대차고 멋지네.”
그 순간, 테이블 위에 있던 강지훈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액정 화면에는 붉은 글씨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공사 현장 본부]
강지훈이 전화를 받으려 손을 뻗자, 임세아가 원숭이처럼 날쌔게 가로채 전화를 가로챘다.
2
“시끄러워 죽겠네! 진짜 짜증 나게!”
임세아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연결되자마자 수화기 너머에서 다급하고 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 소장님! 보강 대금 1,000억 원이 왜 아직도 입금이 안 됩니까!”
“제방 바닥에 벌써 균열이 가기 시작했어요! 한 달이라는 보강 기간도 빠듯한데, 대금이 안 들어오니 자재 업체들이 철근 납품을 전면 거부하고 있습니다!”
“제방이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빨리 송금해 주세요! 사람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절규에 가까운 비명이었다.
하지만 임세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전화를 귀에서 멀찌감치 떨어뜨렸다.
“왜 이렇게 소리를 질러요! 귀청 떨어지겠네!”
“제방이든 철근이든, 고작 몇 푼 하는 돈 가지고 왜 이리 보채요? 주식 오르면 줄 테니까 기다려요!”
“다시는 전화하지 마요, 귀찮으니까! 메롱이다!”
“뚝.”
그녀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여 현장 본부의 번호를 수신 차단 목록에 등록했다.
마지막으로 휴대폰 모서리를 더럽다는 듯 쥐어 올렸다.
“이 폰에서 흙내 나는 것 같아. 세균 덩어리잖아, 퉤.”
마침 VIP실 한구석에는 커다란 관상용 수조가 있었다.
그녀는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풍덩!”
휴대폰이 수조 속으로 가라앉았다.
물보라가 사방으로 튀었지만, 강지훈은 화를 내기는커녕 손수건을 꺼내 임세아의 손을 정성스럽게 닦아주었다.
“세아 잘했어. 저런 독촉 전화는 애초에 상대 안 하는 게 상책이야.”
나는 그들을 마치 산송장을 보듯 바라보았다.
“방금 네가 끊은 전화, 재난대응본부 총지휘관 연락이었어.”
내 목소리는 무서울 정도로 담담했다.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강지훈은 콧방귀를 뀌며 비아냥거렸다.
“가식 떨지 마.”
“내가 이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야.”
“돈 몇 일 늦게 들어간다고 어떻게 안 돼. 제방이 무슨 종이로 만든 줄 알아? 장마는 다음 달에나 온다는데 왜 사서 걱정이야?”
“나 자극하지 마. 기분 잡치면 돈 한 푼도 안 보낼 테니까.”
바로 그때였다.
“쾅!”
VIP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지점장이 땀 범벅이 된 채 거의 기어 들어오다시피 했다.
그는 컴퓨터 화면에 하한가로 묶여 있는 주식을 보자마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온몸이 눈에 띄게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누가… 누가 이 짓을 한 겁니까!”
“그건 1,000억 원 규모의 재난 특별 공금이라고요! 이 미친 인간들아!!”
지점장은 미친 사람처럼 컴퓨터로 달려들어 거래 취소를 시도했다. But 이미 자금은 동결되었고, 신이 와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임세아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엄마야! 아저씨 왜 그래요? 세아 무서워 죽겠단 말이야!”
강지훈은 격분하여 지점장의 코앞에 삿대질을 해댔다.
“고작 1,000억 원 가지고 왜 이리 호들갑이야? 떨어진 만큼 내가 채워 넣으면 되잖아! 우리 강 부회장 집안에 그 정도 돈이 없을 것 같아?”
지점장은 절망감에 바닥을 치며 통곡했다.
“그건 제방을 지킬 철근을 살 생명줄 같은 돈이었습니다! 돈이 없으면 제방이 버티지 못해요!”
지점장이 울부짖자 임세아는 기분이 상한 듯 입술을 내밀고 다가갔다.
“세아는 천사 같은 사람이에요. 천사가 어떻게 잘못을 저질러요? 주식 좀 산 거 가지고 왜 이렇게 소란을 피워요!”
지점장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쓰러졌다.
나는 벽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았다.
이미 자금은 완전히 묶였고, 1,000억 원을 고스란히 건져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현장의 제방은 이제 보강 작업을 완료할 시간조차 부족할 것이다.
그리고 이 눈먼 두 바보는 여전히 자신들이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3
지점장은 강지훈에 의해 VIP실 밖으로 쫓겨났다.
문이 무겁게 닫혔다.
소파에 앉은 임세아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입을 삐죽였다.
“세아는 좋은 뜻으로 도와준 건데, 저 사람들이 왜 나한테 성질을 내냐고!”
그녀는 눈동자를 굴리더니 가방에서 여분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안 되겠어. 세아 억울해. 우리 팬들한테 다 일러바칠 거야!”
임세아는 수십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SNS 인플루언서였다.
평소 앳된 목소리로 아이 같은 척을 하며 남성 팬들의 후원을 받아 연명하는 부류였다.
그녀는 익숙하게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켰다.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수천 명의 시청자가 몰려들었다.
임세아는 대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표정으로 변신해 악어의 눈물을 흘렸다.
“흑흑, 여러분… 세아 오늘 너무 괴롭힘당했어요.”
실시간 채팅창이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누가 우리 세아 공주를 울렸어? 당장 나와!]
[세아 울지 마, 오빠가 다 해결해 줄게!]
임세아는 코를 훌쩍이며 카메라 렌즈를 나에게 향하고 하소연했다.
“여기 있는 회사 직원이랑 은행의 나쁜 할아버지가 그랬어요!”
“세아가 오늘 좋은 마음으로 재테크 도와주려고 안 쓰는 돈으로 주식 좀 샀거든요. 용돈 벌어 주려고 한 건데…”
“그런데 직원이 나한테 소리 지르고, 그 할아버지는 나를 때리려고 했어요! 둘이 짰나 봐요, 세아 마음이 너무 아파요.”
방송 시청자들은 순식간에 흥분하여 나를 향해 입에 담지 못할 악플을 쏟아냈다.
[저 여자 누구야? 얼굴만 봐도 아주 고집 세게 생겼네.]
[호의를 베풀어 주는데도 지랄이네. 은혜도 모르는 인간.]
[신상 털자! 사회적으로 매장해 버려!]
강지훈은 기회를 포착했다는 듯 카메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임세아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든든한 보호자 행세를 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이번 수해 보강 사업의 책임자입니다.”
“제가 보증합니다. 세아는 정말 순수하고 착한 아이입니다.”
강지훈이 뒤를 받쳐주자 채팅창의 반응은 더욱 광적으로 변했다.
임세아를 응원하는 후원금이 쏟아졌다.
임세아는 기세등등하게 턱을 치켜들며 나를 도발했다.
“한서우, 봤지? 대중의 눈은 정확해!”
“지금 당장 무릎 꿇고 사과해! 안 그러면 우리 팬들이 너 가만 안 둘 줄 알아!”
나는 의자에 조용히 앉아 광대처럼 날뛰는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
“사과?”
나는 차갑게 비웃었다.
“임세아, 네가 주식 샀다는 그 ‘안 쓰는 돈’이 정확히 무슨 돈인지 팬들한테 말해봐.”
임세아는 눈을 흘기며 카메라를 향해 당당하게 소리쳤다.
“그냥 제방 보강 공사 대금 1,000억 원인데, 왜요!”
“어차피 통장에 묵혀두면 썩는 돈이잖아요! 세아가 주식으로 두 배 불려준 다음에 더 튼튼한 댐 지어주면, 저 사람들이 나한테 고맙다고 절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녜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채팅창이 한순간 얼어붙었다.
그리고 이내 폭발적인 속도로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1,000억? 국가 재난 방지 자금이라고?! 미친 거 아냐, 그걸 건드렸다고?]
[세아가 산 주식 종목이 뭔데?]
임세아는 자랑스럽게 모니터 화면을 비췄다.
“이거요! ‘한성 에코’! 파란 게 아주 예쁘죠?”
주식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시청자들은 비명을 질렀다.
[미쳤네! 그거 오늘 상장 폐지되는 폭탄 주식이야! 하한가 맞았어!]
[공금 1,000억을 상폐 직전 주식에 쏟아부었다고? 이거 사형감인데?]
[당장 신고해! 저 여자 지체장애 있는 거 아냐?]
여론은 순식간에 뒤집혔다.
응원 댓글은 온데간데없고 공포와 분노 섞인 욕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채팅창에 자신을 향해 ‘대가리 총 맞았냐’, ‘사형 확정’이라는 단어들이 도배되자 임세아는 이성을 잃었다.
“헛소리 마요! 세아는 죄지은 거 없어요! 세아는 천사란 말이에요!”
그녀는 거칠게 방송을 종료하고 스마트폰을 소파에 내던졌다.
“지훈 오빠! 저 사람들이 나 욕해! 빨리 어떻게 좀 해봐!”
강지훈 역시 안색이 굳어졌지만, 여전히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이빨을 드러내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에 독기가 서렸다.
“한서우! 네가 수작 부린 거지!”
“지금 당장 해명 글 올려. 이 돈 네가 억지로 세아 시켜서 사게 한 거라고 해! 네가 배후라고 말해!”
기가 막혀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파멸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여전히 연약한 소꿉친구를 구하는 재벌 2세 놀이에 빠져 있다니.
4
강지훈은 일그러진 얼굴로 테이블 위의 백지를 낚아챘다.
그는 순식간에 자백서를 갈겨쓴 뒤 내 앞에 거칠게 내던졌다.
“지장 찍어! 당장!”
나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 종이 조각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대신 손을 들어 천장 네 귀퉁이를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붉은 표시등이 희미하게 깜빡이는 폐쇄회로 카메라가 작동하고 있었다.
“강지훈, 네가 총책임자야.”
“누가 OTP 카드를 빼앗았고, 누가 마우스를 클릭했으며, 국가 기밀 공문서를 찢고 전화를 무단 차단했는지.”
“전부 실시간으로 클라우드 서버에 백업됐어.”
“네가 방금 나한테 누명을 씌우려 한 대화까지 전부 다.”
“내가 네 덤터기를 쓸 것 같아? 꿈 깨.”
강지훈의 손이 허공에서 굳어버렸다.
그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고, 이마에서 굵은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임세아는 카메라가 작동 중이라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는 내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붉은 점을 발견하자마자 발작을 일으키듯 소리를 질렀다.
“저 더러운 눈! 세아 찍지 마!”
그녀는 강지훈의 손을 뿌리치고 창구 위에 놓인 무거운 스태플러를 집어 던졌다.
“깡!”
카메라 렌즈가 처참하게 박살 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임세아는 손뼉을 치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히히! 이제 증거 없어졌지롱! 아무도 세아 못 잡아!”
나는 조용히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마음대로 해, 아무 소용 없으니까.”
“네가 부정하더라도, 그 돈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아.”
강지훈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통제할 수 없는 공포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는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도 여전히 마지막 자존심을 쥐어짜 소리쳤다.
“겁주지 마!”
“제방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 것 같아? 장마는 다음 달이라고!”
“설령 그 돈을 당장 못 쓴다 해도 우리 집은 부자야! 오늘 오후에 당장 아버님께 말씀드려서 1,000억 원 채워 넣으면 돼!”
“일이 수습되면 너부터 묻어버릴 줄 알아!”
그의 장담이 끝난 바로 그 순간이었다.
벽에 걸린 대형 모니터의 화면이 거칠게 깜빡였다.
전국의 정규 방송이 일제히 중단되고 긴급 재난 속보가 송출되었다.
화면 속 아나운서의 안색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기상청 긴급 대피령입니다!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인해 다음 달로 예상되었던 유량 도달 시기가 대폭 앞당겨졌습니다!]
[현재 제방 하부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해 붕괴 직전입니다!]
[인근 주민 여러분께서는 지금 즉시 고지대로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쿠르릉.
강지훈의 머릿속이 하얗게 타들어 갔다.
기습적인 폭우… 제방 붕괴 위기.
그의 무릎이 꺾이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늘 순진한 척 표정을 꾸며내던 임세아의 얼굴에도 비로소 감출 수 없는 경악과 공포가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