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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 다 복수를 위해서만 돌아왔다
엄마를 따라 친구의 장례식장에 조문을 가던 날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우연히, 부쩍 자란 미래의 나와 마주쳤다. 나는 반가움에 겨워 어른이 된 나를 ...
Chương (1)
第1章
엄마를 따라 친구의 장례식장에 조문을 가던 날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우연히, 부쩍 자란 미래의 나와 마주쳤다.
나는 반가움에 겨워 어른이 된 나를 쫓아가 과거에 대해 캐묻기 시작했다.
“우리 집 빚은 다 갚았어? 아빠는 이제 지방 파견 근무 안 가도 돼?”
“엄마도 이제 덜 힘든 거지?”
“나는? 나 아무 일 없이 잘 커서 가고 싶던 대학에 합격한 거야?”
하지만 어른이 된 나는 갑자기 불같이 화를 냈다.
“그 인간은 아빠라고 불릴 자격도 없어.”
“너랑 엄마는 철저하게 속은 거야. 빚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어. 그 인간, 지방에서 자기 첫사랑 임신 수발들고 있었던 거야. 매번 전화할 때마다 그 여자가 옆에서 비웃고 있었는데…….”
“우리만 바보처럼 그 세 식구 생활비 대주면서, 아빠가 돌아오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린 거지.”
“결국 진실이 밝혀졌을 때 엄마는 화병으로 쓰러졌고, 너도 과로로 몸이 망가져서 반년도 채 남지 않은 시한부 선고를 받았어. 그러니까 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엄마 데리고 도망쳐야 해.”
……
이야기는 거기서 뚝 끊겼고, 나는 멍하니 제자리에 멈춰 섰다.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반박했다.
“그럴 리 없어.”
내가 기억하는 한, 집안일은 늘 아빠가 도맡아 했다.
매일 겹치지 않게 국 하나와 반찬 네 가지를 새로 요리해 주었고, 엄마의 속옷까지 손수 빨아주던 사람이었다.
마치 도라에몽처럼, 때마다 나와 엄마를 위한 깜짝 선물을 준비하곤 했다.
그러다 2년 전, 아빠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회사에 막대한 빚을 지게 되었다며 빚을 갚기 위해 멀리 떨어진 지방 지사로 자원해 떠났다.
떠나기 전, 그는 남겨진 모녀의 살림이 곤궁해질까 봐 자기 명의로 된 집까지 팔아 그 돈을 전부 엄마에게 송금해 주었다.
그런 아빠에게 다른 살림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내가 막 따져 물으려던 찰나, 등 뒤에서 엄마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은아, 왜 혼자 거기 서 있어?”
“장례식 시작하겠다. 얼른 가자.”
나는 엄마의 손을 붙잡은 채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 방금 나랑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났어.”
“그 사람이, 아빠가 우리를 속였다고 그랬어. 그 사람이…….”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내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골목길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엄마는 애틋한 눈빛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하은이,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환상을 본 걸까?”
“세상 사람들이 다 엄마를 속여도 아빠만큼은 안 그래. 그러니까 걱정 마.”
“오늘 아침에도 전화 와서 차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더라.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엄마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하지만 왠지 그 미소가 눈가까지는 닿지 않는 듯한 기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엄마의 말이 맞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알고 지낸 시간은 이미 인생의 3분의 2를 넘어서고 있었다.
겨우 미래의 나라고 주장하는 이방인의 말 한마디 때문에 아빠를 의심할 수는 없었다.
“응, 엄마 말이 맞아. 가자, 명숙 이모 위로해 드려야지.”
금세 나는 방금 있었던 일을 머릿속에서 말끔히 지워버렸다.
하지만 장례식이 끝난 그날 밤, 나와 엄마가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아빠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피곤함이 묻어났지만, 애써 밝은 척 웃음기를 띠고 있었다.
“오늘 어땠어? 명숙이는 좀 어때? 내 친구 일인데 자기가 고생이 많네. 고마워.”
엄마가 웃으며 장난스레 대꾸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싹싹하게 굴어? 혹시 뒤가 구린 짓이라도 한 거야?”
왠지 모르게 엄마의 농담에 가시가 돋친 것 같았지만, 이내 엄마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근데 자기는 언제 돌아와? 다음 달에 우리 하은이 생일이잖아. 자기를 엄청 기다려.”
그 말에 아빠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회사에 갚아야 할 돈이 너무 많아서 쉽게 보내주질 않네.”
“하지만 걱정 마. 하은이 생일엔 어떻게든 시간 내서 갈 테니까. 둘 다 아프지 말고 잘 지내고 있어.”
엄마는 전화를 내게 건네주었다.
나도 늘 그렇듯 아빠에게 몸조심하라고 말했다.
바로 그때, 수화기 너머로 또렷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선우 씨, 샤워타월 좀 갖다줘요.”
아빠의 당황한 기색이 수화기를 타고 흔들렸다.
내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버렸고, 머릿속에는 미래의 내가 했던 경고가 어지럽게 소용돌이쳤다.
나는 덜컥 전화를 끊어버렸고, 엄마가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은아, 왜 그래?”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 나는 본능적으로 방금 들은 것을 엄마에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런 증거도 없이 말해봤자 엄마는 믿지 않을 터였다.
나는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엄마. 졸려서 먼저 잘래.”
엄마는 불을 끄고 내 곁에 누웠지만,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밖에서 놀겠다는 핑계를 대고 다시 그 골목길을 찾았다.
역시나 그곳에는 어른이 된 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내가 거짓말한 게 아니라는 걸 믿겠지?”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머리를 감싸 안았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내 입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내가 어떻게 해야…… 엄마를 도울 수 있어?”
그녀는 안쓰러운 듯 내 어깨를 다독였다.
“넌 겨우 여덟 살이잖아. 원래는 네가 고민해야 할 일이 아닌데…….”
“하지만 나도 정말 방법이 없어서 그래.”
“어떻게든 엄마 휴대폰을 가져와 봐. 증거를 수집해야 해. 최소한 엄마가 우리 말을 믿게 만들어야 하니까.”
점심때 호텔로 돌아온 나는 묵묵히 밥만 먹었다.
엄마는 내 이상한 기색을 눈치채고 다정하게 물었다.
“우리 하은이, 왜 그래? 여기가 재미없어서 집에 가고 싶어?”
“명숙 이모는 아빠한테 정말 소중한 친구잖아. 상을 당하셨으니 우리가 곁에 있어 줘야 해. 이틀만 더 버텨보자,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싶다고 슬쩍 핑계를 댔다.
예상대로 엄마는 선선히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휴대폰을 받아 든 나는 어른이 된 내가 일러준 대로 아빠의 SNS 프로필을 열었다.
최근 사흘 내 게시물만 보기로 설정되어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동영상 플랫폼 앱을 켰다.
아빠와의 대화창에는 엄마가 보낸 소소한 일상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하지만 아빠의 답장은 늘 성의가 없었다.
“응, 알았어.”
“예쁘네.”
“그래.”
……
아빠의 개인 페이지를 이리저리 뒤졌지만 여전히 이렇다 할 흔적은 없었다.
포기하려던 찰나, 최근 방문자 명단에 있는 한 프로필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진은 언젠가 아빠의 차 안에서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아빠가 운전석 옆 작은 수납공간에 아주 소중하게 보관해 두었던 사진.
내가 그것을 발견했던 날, 아빠의 눈동자에는 찰나의 흔들림이 스쳤다. 이내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내 어깨를 짚었다.
“우리 하은이, 방금 뭘 봤니?”
내가 솔직하게 말하자, 아빠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건 아빠한테 아주 소중한 친구가 준 사진이라 조심히 보관하는 거야. 하은이도 학교에서 친한 친구가 준 선물을 소중히 다루지 않니?”
나는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알지 못한 채 그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날 밤, 부모님은 그 사진 때문에 크게 다투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엄마가 그렇게 서럽게 운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서선우, 당신 아직도 그 여자 못 잊은 거야? 나와 우리 딸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해?”
아빠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애원하듯 빌었다.
“혜란아, 정말 당신이 오해하는 거야. 맹세코 아무 일도 없어.”
“벌써 다 정리했어. 내 삶엔 당신이랑 하은이뿐이야. 다시는 한눈팔지 않을게.”
“우리 예전처럼 잘 지내자, 응? 하은이도 어린데 상처받으면 안 되잖아.”
결국 엄마는 양보했고, 아빠는 슬며시 엄마를 품에 안았다.
“정말 미안해, 혜란아. 다시는 오해할 만한 일 절대 안 만들게.”
엄마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마지막에 혼잣말처럼, 혹은 아빠에게 묻듯 나직이 중얼거렸다.
“정말…… 다 정리된 거 맞지?”
그 뒤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빠가 또다시 엄마를 속였다는 사실이다.
아니, 줄곧 속여왔던 것이다.
나는 그 여자의 계정을 클릭했다. 그녀는 수많은 영상을 올려두고 있었다.
얼굴은 단 한 번도 비추지 않았지만, 영상 곳곳에 낯익은 남자의 팔이 보였다.
나는 첫눈에 그것이 아빠의 팔임을 알아차렸다.
손이 제멋대로 떨려왔다. 옛날에 엄마가 아빠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을 때처럼.
하지만 과거의 내가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나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꾹 눌러 담았다.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증거를 캡처해서 남겨두어야 한다.
사흘이라는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줄곧 창밖만 바라보았다.
엄마는 내 기색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가만히 내 손을 잡아주었다.
“왜 그래, 우리 딸? 앞으로 이런 자리 오기 싫으면 엄마랑 안 와도 돼.”
“엄마한테는 우리 하은이 기분이 가장 중요하니까.”
순간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 평생을 한 남자에게 매여 좁은 세상 속에서 울화병으로 생을 마감해야 하다니.
어쩌면 미래의 내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내가 반드시 엄마의 눈을 뜨게 만들어야 한다.
나는 휴대폰에 저장된 캡처 화면들을 엄마에게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입을 열기도 전에 엄마의 휴대폰이 울렸다.
액정 화면에 뜬 발신인은 '서선우', 아빠였다.
“혜란아, 나 집에 다 와 가.”
“저녁에 뭐 먹고 싶어? 내가 집에서 요리해 둘게.”
엄마의 목소리는 평온하다 못해 건조했다.
“난 아무거나 괜찮아. 우리 딸한테 물어봐 줄래? 기분이 좀 안 좋아 보여서.”
엄마는 전화를 내게 건넸다.
하지만 내 입에서는 끝내 '아빠'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침묵하자 엄마도 억지로 전화를 강요하지 않았다. 내가 평소에 잘 먹는 반찬 몇 가지를 말해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세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오는 내내, 나와 엄마는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내 손을 쥔 엄마의 아귀힘은 점점 더 세어졌다.
이윽고 아파트 단지 아래에 다다랐을 때, 멀리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드는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오느라 고생했지? 선물 가져왔어.”
아빠는 자랑하듯 등 뒤에서 장미 한 송이와 인형 하나를 꺼내 들었다.
“마음에 들어?”
엄마는 기쁘게 받으면서도 타박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빚도 다 못 갚았으면서 쓸데없이 이런 돈을 왜 써?”
아빠는 사랑스럽다는 듯 엄마를 바라보았다.
“난 아직 젊잖아. 이 정도 돈은 금방 갚아.”
“그리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와이프 고생시키는 건 못 보지!”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행복하기 이를 데 없는 세 식구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선물도 받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한숨을 쉬며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이 애가 갑자기 왜 이럴까? 이번에 멀리 다녀온 뒤로 계속 이상하네.”
나는 대답 대신 아빠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명백한 당황스러움이 스쳤다. 이내 그는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피곤해서 그렇겠지. 얼른 올라가서 쉬자. 음식 다 데워 놨어!”
집에 들어서자 집안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엄마에게 가벼운 먼지 알레르기가 있어서 아빠는 늘 청소에 유독 신경을 쓰곤 했다.
집을 단 이틀만 비워도 온 집안을 싹 쓸고 닦아두는 사람이었다.
“얼른 손 씻어. 아빠가 음식 내올게.”
여전히 정갈한 국 하나와 네 가지 반찬이었지만, 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가라앉았다.
나는 그 여자가 올린 영상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생선을 좋아하지만 아주 까다로워서, 조금만 비린내가 나거나 살이 너무 흐물거려도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아빠가 가장 자신 있게 만드는 요리가 바로 생선이었다.
그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기 위해 누구 밑에서 그 요리를 연습했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
울컥 감정이 치밀어 오른 나는 식탁 위의 반찬들을 전부 바닥으로 밀쳐버렸다.
두 사람 모두 굳어버렸지만, 나를 혼내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데이지는 않았을까 걱정하며 안절부절못했다.
특히 아빠는 급히 나를 차가운 물가로 데려가 손을 씻겨주고, 허둥지둥 약상자를 찾아오면서도 엄마를 안심시키는 데 열을 올렸다.
이렇게 우리 모녀를 끔찍이도 아끼는 듯한 가식적인 인간이, 결국 우리 두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주범이라니.
나는 울며 방으로 뛰어 들어갔고, 엄마도 뒤따라 들어왔다.
“하은아, 도대체 왜 그래? 엄마한테 말해봐, 무슨 일 있었어?”
나는 곁눈질로 아빠가 거실의 난장판을 대충 치운 뒤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것을 보았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마자 나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아빠가 우리 속인 거야!”
“빚 같은 건 없어. 밖에 딴살림 차렸단 말이야. 그날 밤 전화기 너머로 어떤 아줌마 목소리도 들었어.”
“엄마 휴대폰에 내가 증거 다 저장해 놨어. 엄마, 제발 더는 속지 마.”
하지만 엄마는 아무런 동요도 없이, 그저 가만히 내 두 손을 닦아줄 뿐이었다.
나는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엄마, 내 말 안 믿는 거야? 나 진짜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이건 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하은아, 사실…… 엄마 다 알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