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드세요? 그럼 버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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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드세요? 그럼 버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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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는 밥을 먹는 일이 조선시대 어전회의보다 더 엄격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향해 무려 일곱 번을 청해야 했다. 그래야만 할아버지가 수...

Chương (1)

第1章

우리 집에서는 밥을 먹는 일이 조선시대 어전회의보다 더 엄격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향해 무려 일곱 번을 청해야 했다. 그래야만 할아버지가 수저를 드셨다. 한 번이라도 덜 부르면? 안 드신다. 어조가 마음에 안 들면? 처음부터 다시. 삼십 년. 우리 가족 모두가 그 미친 짓에 순응하며 살았다. 내 아내가 이 집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는. 아내는 차갑게 식어버린 반찬들을 한 번, 그리고 다섯 번째 부름을 기다리며 눈을 감고 있는 할아버지를 한 번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밥그릇을 치웠다. "안 드세요? 네, 그럼 버리겠습니다." 1 내 이름은 서도진, 올해 스물여덟이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두려웠던 게 뭐냐고 묻는다면? 시험도, 매를 맞는 것도, 한밤중에 화장실에 가는 것도 아니었다. 바로 '식사 시간'이었다. 우리 집에서 매 끼니는 한 편의 지루한 지구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괴한 행위예술에 가까웠다. 어머니가 주방에서 반찬을 내와 상을 차리고, 수저를 놓은 뒤 깊은숨을 들이마신다. "아버님, 진지 드세요." 첫 번째. 할아버지는 거실의 낡은 원목 안락의자에 앉아 손에 오래된 라디오를 쥔 채 눈길조차 주지 않으셨다.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 '규칙'이니까. 나는 어릴 때부터 첫 번째 부름에는 절대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마치 직장 상사에게 카톡으로 "부장님, 계십니까?"라고 보냈을 때 절대 1이 바로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머니는 30초를 기다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버님, 식사 다 준비되었습니다. 따뜻할 때 드세요." 두 번째. 할아버지의 코끝이 미세하게 씰룩였다. 음식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미동조차 없었다. 나와 아버지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우리 앞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갈비찜, 고등어조림, 시금치나물, 그리고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는 진한 꼬리곰탕까지.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아무도 수저를 들지 않았다. 감히 그럴 수 없었다. 이 집에는 철칙이 하나 있었다. 할아버지가 수저를 들기 전까지는 온 가족이 밥을 먹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할아버지가 수저를 드는 조건은 단 하나였다. 어머니가 반드시 '일곱 번'을 청해야 한다는 것. 한 번도 모자라선 안 됐다. 토씨 하나 틀려서도 안 됐다. 내가 지금 코미디 대본을 쓰고 있는 것 같나? 아니, 나는 우리 집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버님, 오늘 좋아하시는 꼬리곰탕 푹 끓였습니다. 시장 가서 제일 좋은 걸로 사 왔어요." 세 번째. 할아버지가 가볍게 "어." 하고 소리를 내셨다. 하지만 기뻐하긴 일렀다. 이 "어"는 일어난다는 뜻이 아니라, 그저 '수신 확인'을 의미할 뿐이었다. 기획서에 팀장이 결재 도장을 찍은 것, 딱 그 정도의 의미였다. 나는 슬쩍 스마트폰을 보았다. 6시 18분. 음식이 상에 올라온 건 5시 50분이었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 모든 프로세스가 끝나려면 대략 6시 40분은 되어야 했다. 다시 말해, 저 윤기 흐르는 고등어조림이 냄비에서 나와 내 입으로 들어오기까지 최소 50분의 냉각기를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50분. 뜨거운 반찬이 미지근해지고. 미지근한 반찬이 차가워지고. 차가운 반찬이 결국엔... 하나의 행위예술 조형물로 변해버리는 시간. "아버님,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네 번째. 어머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고, 얼굴에는 적당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30년의 내공. 이 미소는 이미 근육에 각인되어 절대 흐트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앞치마 끝을 꽉 쥐고 있는 어머니의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할아버지가 라디오를 끄셨다. 좋은 징조였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진 않으시고, 대신 찻잔을 들어 여유롭게 한 모금 축이셨다. 아버지가 식탁 밑으로 내 발을 툭 쳤다. 무슨 뜻인지 알았다. '조용히 해, 곧 끝난다.' 나는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를 억지로 삼켰다. "아버님, 다 좋아하시는 반찬이에요. 갈비도 두 시간이나 푹 쪄서 아주 연하게 잘 익었습니다." 다섯 번째.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쉬어 있었다. 티가 나진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20년 넘게 이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으니까. 할아버지가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순간 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드디어! 곧이다! 할아버지가 식당 입구까지 걸어와 우뚝 멈춰 섰다. 식탁 위의 반찬들을 쓱 훑어보셨다. 그러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국자는?" 어머니가 흠칫 놀라며 서둘러 주방으로 뛰어가 국자를 가져왔다. 조심스레 세팅이 끝났다. "아버님, 앉으세요. 이제 다 됐습니다." 여섯 번째. 할아버지가 상석을 향해 걸음을 옮기셨다. 내 목구멍에서 침이 꼴깍 넘어갔다. 아버지의 젓가락은 이미 식탁 위에서 3밀리미터 정도 허공으로 떠올라 있었다. 할아버지가 자리에 앉으셨다. 두 손을 식탁 위에 올렸다. 하지만... 수저는 들지 않으셨다. 그렇다. 아직 한 번이 남았다. 7이라는 숫자는 흔히들 행운이나 완전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할아버지도 그런 뜻으로 7을 고집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무조건 일곱 번이어야 했다. 한 번이라도 모자라면, 온 가족이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할아버지는 조각상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계셨다. 어머니가 할아버지 곁에 서서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 진지 드세요." 일곱 번째. 3초의 정적. 할아버지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움직이더니, 마침내 손을 뻗어 수저를 드셨다. 갈비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으셨다. 천천히 씹으셨다. "음, 오늘 갈비가 괜찮네." 이 한마디는 우리 집 식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아버지의 젓가락이 빛의 속도로 튀어 나가 고등어조림의 뱃살을 정확히 명중시켰다. 나 역시 왼손으론 갈비를, 오른손으론 수저를 들고 얼굴을 접시에 처박을 기세로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가장 마지막에 자리에 앉으셨다. 항상 그러셨다. 제일 마지막에. 당신들은 이 이야기가 터무니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도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여덟 살 무렵이었을 거다. 처음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던 때가. 옆집 철수네는 왜 밥 먹으라는 한마디에 다들 식탁에 모여 앉는 걸까? 나는 베란다에 엎드려 철수네 집 창문 너머의 불빛을 바라보며, 그 집 식구 세 명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 너무도 자연스럽게 수저를 들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밥을 먹는 걸 지켜보았다. 의식 따위는 없었다. 기다림도 없었다. 일곱 번의 부름도 없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철수네 집은 참 야생적이구나.' 한 번 부르고 바로 밥을 먹다니? 예의가 없는 건가? 이것 보라. 사람이 길들여지면, 자신이 갇힌 새장이 정상이라고 믿게 되는 법이다. 나중에 커서 대학에 가고 룸메이트들과 자취를 하며, 밖에서 몇 년 동안 자유로운 식사를 해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비정상인 건 우리 집이었다는 걸. 하지만 아는 것과 현실은 달랐다. 집에 돌아오면, 규칙은 여전히 규칙이었다. 할아버지가 그 자리에 앉아 계시는 한, 그건 절대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산이었다. 치울 수 없었다. 아무도 치울 수 없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큰아버지도, 고모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어른이시잖니." "노인네 고집인데 우리가 맞춰 드려야지." "본인이 저렇게 좋아하시는데 둬라." 온 가족이 똑같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30년이 흘렀다. 30년. 어머니는 매년 겨울마다 인후염을 앓으셨다. 의사는 말을 줄이고 물을 많이 마시라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말을 줄일 수 있을까? 하루 세끼, 한 끼에 일곱 번, 일 년 365일. 계산해 보라. 일 년에 7,665번이다. 그 짓을 30년 동안 하셨다. 하지만 이게 내 고민의 핵심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내가 곧 결혼을 한다는 거였다. 나는 내 아내 될 사람을 이 집안으로 데리고 와야 했다. 나는 스마트폰 속 배지윤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햇살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그 얼굴. 하지만 한번 화가 나면 에어컨 실외기조차 욕해서 멈추게 만들 수 있는 성깔의 소유자.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우리 집의 이 빌어먹을 규칙, 머지않아 박살 날 것 같다는 예감이. 2 이야기는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리 집의 이 '일곱 번 부르기' 규칙이 단군 할아버지가 나라를 세웠을 때부터 있었던 건 아니었다. 어머니의 기억에 따르면, 어머니가 이 집에 처음 시집왔을 무렵만 해도 규칙은 '세 번'이었다고 한다. 그렇다. 세 번. 그때 할아버지는 막 지역 농협 조합장 자리에서 은퇴하셨을 때였다. 평생 감투를 쓰고 대접받는 데 익숙했던 분이라, 집안에서도 그 '존경받는' 느낌을 유지하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나를 밥상에 부를 때는 세 번은 청해야 한다. 그게 예의라는 거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그렇게 선언하셨다. 아버지는 그때 막 결혼을 한 풋내기였고, 한창 효심이 깊을 나이라 앞뒤 재지 않고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갓 들어온 새댁이 무슨 힘이 있어 반대를 하겠는가. "아버님, 진지 드세요." "아버님, 상 다 차렸습니다." "아버님, 이쪽으로 오시지요." 세 번. 간단하고 빠르다. 15초면 끝났다. 반찬도 여전히 따뜻했다. 그 몇 년간은 모든 게 정상적이었다. 만약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우리 집은 그저 '조금 유별나게 예의를 따지는 평범한 집안' 정도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욕망이란 부풀어 오르기 마련이다. 처음엔 회사에서 10분만 딴짓을 하려던 사람이, 나중엔 8시간 근무 중 7시간 반을 월급루팡으로 보내게 되는 것처럼. 점진적으로, 그리고 소리 소문 없이. 5년 뒤, 세 번이 다섯 번으로 늘어났다. 이유는... 내가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의 논리는 이러했다. "집안에 식구가 늘었으니, 가풍도 그에 맞게 격을 높여야지. 며느리가 시아버지 밥 챙기는 것에 정성을 안 들이면 집안의 기강이 무너진다." 아버지는 지당하신 말씀이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머니는 이번에도 참았다. 다섯 번. 그래, 그까짓 거 두 번 더 말하면 되는 거니까. 또 5년이 흘러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되었다. 다섯 번은 어느새 일곱 번이 되어 있었다. 이번 이유는 더 황당했다. 할아버지가 우연히 사극 드라마를 보셨는데, 거기 나오는 대감마님 상을 차릴 때마다 온 집안 식구가 일제히 "대감마님, 수라를 드시옵소서" 하고 외치는 장면이 나왔다는 거다. 할아버지는 그날 밤 이렇게 선언하셨다. "저게 진짜 근본 있는 집안의 법도지. 칠(七)은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루는 완벽한 숫자다. 앞으로는 일곱 번이다." 어머니는 그날 저녁 반찬에 소금을 두 줌이나 더 넣으셨다. 아버지는 그날 반찬이 목구멍이 타들어 갈 정도로 짰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규칙은 결국 일곱 번으로 굳어졌다.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물론 반항을 시도했던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다. 큰어머니 장미화 여사는 성격이 급한 편이었다. 어느 해 설날, 온 가족이 모여 떡국을 먹을 때였다. 명절처럼 식구가 많을 때는 할아버지가 누가 자기를 부를지 지목하곤 했는데, 그날은 큰어머니 차례였다. 큰어머니는 다섯 번을 부르다가 짜증이 났는지 빽 소리를 질렀다. "아버님! 얼른 좀 오세요! 떡국 다 불어 터지겠네 진짜!" 할아버지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문을 잠그셨다. 안 드시겠다는 시위였다. 그 설날 저녁 내내 할아버지는 방 밖으로 나오지 않으셨다. 큰아버지는 방문 앞에서 두 시간 동안 싹싹 빌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할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나오며 던진 첫마디는 이거였다. "법도는 법도다. 감당 못 하겠으면 이 집에서 나가라." 그날 이후로 큰어머니는 두 번 다시 우리 집 밥상에 앉지 않으셨다. 매번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마침' 급한 일이 생겨서 못 온다고 했다. 이 사건 이후로 집안의 그 누구도 감히 이 규칙에 토를 달지 못했다. 결국 어머니가 유일하고 영구적인 '일곱 번의 호명자'가 되었다. 하루 또 하루, 일 년 또 일 년. 일곱 번을 부르고. 수저를 드시길 기다리고. 뜨겁게 요리해서 차갑게 식은 밥을 먹는 일상. 나는 그걸 태어날 때부터 보고 자랐다. 어릴 땐 몰랐지만, 머리가 굵어지면서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미리 내게 단단히 예방주사를 놓았기 때문이다. "네 할아버지 성정이 원래 저러시다. 딴 건 몰라도 체면 깎이는 건 죽기보다 싫어하시는 분이야. 네 엄마도 평생을 맞춰주며 살았는데, 굳이 네가 나서서 벌집 쑤시지 마라." 우리 아버지라는 사람은... 참, 뭐라고 해야 할까. 세계 갈등 회피 올림픽이 있다면 무조건 금메달을 딸 위인이었다. '상황 덮어두기'라는 학문이 있다면 종신 교수를 할 분이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아버지가 취하는 기본 행동 수칙은 다음과 같다. 고개 숙이기, 침묵하기, 전화 온 척하기, 화장실 가기. 30년 동안 아버지는 할아버지 앞에서 단 한 번도 "아니요"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를 위해 편을 들어준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의 인생철학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참으면 다 지나간다.' 대체 뭘 참는다는 걸까? 평생을? 하지만 나 역시 아버지를 비난할 자격은 없었다. 나도 20년 넘게 닥치고 참아왔으니까. 배지윤을 만나기 전까지는. 지윤이는 내 대학 동기다. 예쁘장한 외모에, 머리도 비상하게 잘 돌아가고, 무엇보다 성격이 깡다구 그 자체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대학교 3학년 때, 학생 식당 아주머니가 제육볶음을 한 주걱 덜 퍼줬다고 배식구 앞에서 15분 동안 물러서지 않고 논리정연하게 따진 적이 있다. 결국 뒤에 줄 서 있던 학생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아주머니가 백기를 들며 고기를 산더미처럼 쌓아주는 것으로 끝이 났다. 대학원생 시절, 지도교수가 주말에 무급으로 나와서 논문 작업이나 도우라고 하자 그녀는 곧바로 카톡을 보냈다. "교수님, 근로기준법 제36조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리고 정말로 안 나갔다. 교수도 딱히 그녀를 어쩌지 못했다. 그런 사람이었다. 세상 무서울 것 하나 없지만, 지루하고 부조리한 건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 우리는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사귀었다. 졸업 후 2년간 장거리 연애를 하다가, 그녀가 내가 있는 도시로 직장을 발령받으면서 우리는 동거를 시작했다. 우리의 일상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둘이 밥을 먹을 때면 먼저 배고픈 사람이 요리를 하고, 다 되면 "밥 먹어!" 하고 소리쳤다. 그럼 다른 한 명은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며 식탁으로 달려왔다. 청할 필요도 없었다.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먹고 싶을 때 먹으면 그만이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따뜻한 밥 한 끼 먹는 게 이렇게 쉽고 당연한 일이었다는 걸.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결혼을 한다는 건, 적어도 우리 고향에서는 아주 명확한 한 가지 관문을 의미했다. 그녀를 고향 집으로 데려가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 나는 이 일을 반년이나 미루고 또 미뤘다. 지윤이는 세 번이나 물었다. "도대체 집에 언제 인사 갈 거야?" 첫 두 번은 얼토당토않은 핑계로 넘어갔다. 세 번째 물었을 때, 그녀의 눈빛은 말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미루면 다음은 없다.' 아마 여자친구가 통째로 사라질 위기였다. 결국 어느 토요일 아침, 나는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고향 집으로 그녀를 태우고 출발했다. 운전대를 잡고 가면서 나는 한 가지 중대한 작업을 시작했다. 이른바 '예방주사 놓기'. "저기, 지윤아." "응?" "내가 하나 고백할 게 있는데, 너무 놀라지 말고 들어." "뭔데? 너희 집에 내가 모르는 비밀이라도 있어? 저번에 너희 집 화장실 문에 잠금장치 없다고 했을 때 이미 충분히 충격받았거든?" "화장실 문제는 아니고. 밥 먹는 거." "밥 먹는 게 왜? 너희 집 식사 예절 엄청 빡세? 젓가락질 정석대로 안 하면 혼나고 뭐 그런 거?"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어머니가 할아버지께 진지 드시라고 일곱 번을 청해야 해." 지윤이가 고개를 홱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매 끼니마다 우리 어머니가 할아버지 앞에 서서 일곱 번을 부르셔야 해. 그래야 할아버지가 식탁에 앉으시고, 수저를 드셔. 그제야 온 가족이 밥을 먹을 수 있어." 지윤이는 5초간 말이 없었다. "너 지금 나랑 장난해?" "아니, 진짜야." 다시 5초의 정적. "일곱 번?" "어, 일곱 번." "매 끼니마다?" "매 끼니마다." "하루 세끼 다?" "하루 세끼 다." 지윤이의 표정은 정확히 3단계를 거쳤다. 1단계: 의심. 내가 무슨 실없는 농담을 지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2단계: 경악. 내 표정이 장난이 아님을 깨달았다. 3단계: 학술적 호기심. "잠깐만... 이거 무슨 심리 조종이야? 가스라이팅? 아니면 할아버지한테 무슨 강박증 같은 질환이라도 있으셔?" "아니야. 할아버지는 그게 법도고, 어른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하셔." "누구 맘대로 정한 법도인데? 누굴 위한 존중이고?" "할아버지 본인이 정하셨어. 본인을 존중하라는 거지." 지윤이가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래, 알았어. 오늘 그 대단한 법도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평온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6년이나 겪었다. 평온할수록 폭풍은 거세다. 나는 갑자기 뼈저리게 후회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가다가 핸들을 꺾어 논두렁에 처박히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러면 최소한 집에 도착하진 않을 텐데. 3 집에 도착한 건 낮 11시 반이었다. 어머니는 벌써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계셨다. 아버지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현관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아이고, 왔냐! 네가 지윤이구나? 어서 와라, 어서 들어와!" 지윤이가 싹싹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아버지는 입이 귀에 걸려 지윤이를 집 안으로 이끌었다. 거실에는 할아버지가 언제나처럼 그 낡은 원목 안락의자에 앉아 계셨다. 여든둘의 연세에도 머리는 새하얗지만 허리는 꼿꼿하셨고, 손에는 여전히 오래된 라디오가 쥐어져 있었다. "할아버지, 저 왔습니다. 이쪽은 배지윤이라고 해요." 나는 지윤이를 앞으로 살짝 밀었다. 지윤이는 아주 당당하고 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님." 할아버지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지윤이를 위아래로 3초간 훑어보셨다. 그러고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셨다. "어." 단 한 글자. 하지만 나는 알았다. 이 "어"는 '당장 내쫓지는 않겠다'는 뜻이었다. 할아버지의 사전에서 이 정도면 격렬한 환영 인사나 다름없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0여 분간의 가벼운 담소가 이어졌고, 어머니가 주방에서 나오셨다. 아직 앞치마도 풀지 못했고, 이마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우리 지윤이 왔어? 아이고, 참 곱기도 해라. 어서 앉아, 뭐 좀 마실래?" "어머님, 안녕하세요. 신경 쓰지 마세요, 전 아무거나 다 괜찮아요." 어머니는 활짝 웃으셨다. 내가 며느릿감을 데려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리셨던가. 다시 20분이 지났다. 12시가 조금 넘자 모든 음식이 식탁에 세팅되었다. 전통 수육, 묵은지 고등어조림, 매콤한 낙지볶음, 시금치나물, 그리고 커다란 뚝배기에 담긴 할아버지용 꼬리곰탕까지. 식탁 위가 빈틈없이 꽉 찼다.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고 군침 도는 냄새가 진동했다. 냄새를 맡은 지윤이의 눈이 반짝였다. "와, 어머님 요리 솜씨가 장난 아니신데요? 냄새 진짜 좋아요." "다 그냥 집 반찬이지 뭐. 입에 맞을지 모르겠다. 자, 다들 앉자."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나, 지윤이, 그리고 아버지. 셋이서 식탁에 둘러앉았다. 맛있는 반찬들이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앉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앞치마를 풀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거실 쪽으로 걸어갔다. 지윤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시작됐어." 어머니는 거실과 식당을 잇는 복도 한가운데 서서, 할아버지가 계신 곳을 향해 헛기침을 한 번 하셨다. "아버님, 진지 드세요." 첫 번째. 할아버지는 미동도 하지 않으셨다. 지윤이의 시선이 어머니에게서 할아버지로, 다시 어머니에게로 옮겨갔다. 식탁 밑에서 그녀의 주먹이 꽉 쥐어지는 걸 나는 볼 수 있었다. 5초. 10초. "아버님, 오늘 도진이가 며느릿감 데려왔습니다. 이리 오셔서 같이 드시지요." 두 번째. 할아버지는 라디오 볼륨을 아주 약간 줄이셨다. 그게 다였다. 지윤이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그녀가 나를 휙 돌아보았다. 나는 차마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저 식탁 위에 놓인 묵은지 고등어조림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뜨겁던 국물 표면에 벌써 얇은 기름 막이 굳어가고 있었다. "아버님, 좋아하시는 꼬리곰탕 끓였습니다. 세 시간이나 푹 고았어요." 세 번째. 할아버지가 "어." 하고 소리를 내셨다. 지윤이는 이 기막힌 상황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의아함에서 '확신'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이것이 내가 미리 짠 몰래카메라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확신. "아버님,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반찬 식으면 맛없어요." 네 번째. 어머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상냥했고, 얼굴에는 한결같은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프로페셔널했다. 30년이란 세월이 깎고 다듬은 완벽한 프로의 모습. 아버지는 식탁 밑에서 말없이 두 손을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지윤이도 그걸 눈치챘다. 그녀는 아버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마디도 거들지 않는다는 사실도 똑똑히 목격했다. "아버님, 라디오 그만 들으시고 이쪽으로 오세요. 사람 많으니 시끌벅적하고 좋잖아요." 다섯 번째. 할아버지가 마침내 라디오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하지만 그는 식탁으로 오지 않고 세면대로 가더니 아주 느긋하게 손을 씻기 시작했다. 일곱 번의 부름이 완성되기 전까지 할아버지는 온갖 종류의 '막간 행동'을 할 수 있었다. 손 씻기, 물 마시기, 화장실 가기 등등. 단지 식탁에 앉지만 않을 뿐이다. 지윤이의 호흡이 미세하게 거칠어졌다. 나는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참고 있었다. 대체 뭘 참고 있는 걸까? 실소? 분노? 아니면 밥상을 엎어버리고 싶은 충동? 확실하진 않지만, 어쨌든 그녀가 맹렬히 참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아버님, 얼른 오세요. 오늘 특별히 아버님 좋아하시는 반찬으로 더 준비했습니다." 여섯 번째. 손을 다 닦은 할아버지가 뒷짐을 진 채 느릿느릿 식당으로 걸어오셨다. 식탁 앞에 서서 차려진 음식들을 쓱 훑어보았다. 그리고 지윤이를 한 번 쳐다보셨다. 지윤이도 지지 않고 할아버지와 눈을 맞췄다. 그녀의 눈빛은 무서울 정도로 차분했다. 할아버지가 자리에 앉으셨다. 하지만 젓가락은 들지 않았다. 두 손은 여전히 식탁 위에 평행하게 놓여 있었다. 마지막 의식. 어머니가 식탁으로 다가와 할아버지 곁에 섰다. "아버님, 수저 드시지요." 일곱 번째. 3초. 할아버지가 마침내 수저를 드셨다. 수육 한 점을 집어 드셨다. "음, 먹을 만하네." 개시 신호가 떨어졌다. 아버지의 젓가락이 번개처럼 허공을 갈랐다. 나 역시 서둘러 젓가락을 들었다. 하지만 지윤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수저는 밥그릇 옆에 가지런히 놓인 채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어머니가 식탁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의자를 빼고 앉는 모습을 응시했다. 어머니가 수저를 들 때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까지. 그건 긴장해서가 아니라, 내내 무거운 솥을 들고 국자를 저어대느라 팔 근육이 뭉친 탓이었다. 지윤이는 그 모습을 꼬박 3초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없이 반찬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식사 내내 그녀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어머니가 이따금 건네는 질문에만 예의 바르고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미소는 잃지 않았지만, 그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6년이나 겪었다. 나는 그녀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도 잘 알았다. 화산이 폭발하기 전은, 언제나 이렇게 끔찍하게 고요한 법이다. 그날 저녁 돌아오는 길, 차는 20분째 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단 한 글자도 내뱉지 않았다. 나도 감히 입을 뗄 엄두가 나지 않았다. 21분째 되던 순간, 마침내 그녀의 입이 열렸다. "서도진." "어, 응." "너희 어머니, 매일 저러셔?" "응." "30년 동안?" "응." "너희 아버지는 저걸 그냥 보고만 있고?" "응." "너도 그냥 보고만 있었고?" 핸들을 쥔 내 손에 땀이 뱄다. "나는..." "일곱 번."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매 끼니마다 일곱 번. 하루 세끼. 일 년이면 천 번이 넘고. 30년이면 무려 3만 번이야."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너희 어머님, 겨울마다 목소리 쉬시지?" "그걸 어떻게..." "아까 네 번째 부르실 때부터 벌써 헛기침하시면서 목 가다듬으시더라." 차 안에는 다시 숨 막히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게다가." 지윤이가 말을 이었다. "오늘 반찬들, 다 막 해서 따끈따끈하게 상에 올라왔잖아. 근데 너희 할아버지 앉으실 때쯤엔 꼬리곰탕 국물 다 식어서 기름 떠 있는 거 봤어? 어머님이 반나절 내내 땀 뻘뻘 흘리며 고생한 게 다 차가운 쓰레기가 되어버렸다고." 나는 입을 벌렸지만, 목구멍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먹고 자랐으니까. 다 식어버린 차가운 밥과 반찬은 우리 집에선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었다. 지윤이가 내 눈앞에 현실을 들이밀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그게 비정상이라고 뼈저리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서도진." "응." "만약에 우리가 나중에 결혼해서." "응." "내가 저 집에 들어가 살게 되더라도." "..." "난 일곱 번 안 불러."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 평온했다. 마치 변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이야기하듯. 마치 '내일 해는 동쪽에서 뜬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하고 단호했다. 나는 슬쩍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그녀의 옆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표정은 여전히 고요했다. 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아주 기묘한 감정. 어쩌면 그것은... '기대감'이었을지도 모른다. 4 나와 지윤이가 혼인신고를 한 건 이듬해 봄의 일이었다. 결혼식은 소박했다. 양가 모두 허례허식을 싫어해서 가까운 친척들만 모여 식사 한 끼 하는 것으로 끝냈다. 하지만 결혼 후 한 가지 명확해진 사실이 있었다. 지윤이가 우리 본가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녀가 원해서가 아니었다. 순전히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우리가 살던 전셋집 계약이 만료되었는데,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는 아직 인테리어 공사가 덜 끝난 상태였다. 아버지가 전화를 걸어왔다. "집도 넓은데 들어와서 몇 달 지내라. 월세도 아끼고 좋잖냐." '월세를 아낀다'는 말은 나와 지윤이의 치명적인 약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지윤이도 잠시 눈을 감더니 "알았어, 몇 달만 참지 뭐." 하고 동의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시한폭탄 같은 뇌관이 하나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는 것을. 바로 그 '일곱 번 부르기'라는 뇌관 말이다. 우리가 본가로 들어간 날은 어느 토요일이었다. 아직 짐도 다 풀지 못한 채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왔다. 어머니는 며느리가 들어온 첫날이라고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장만하셨다. 갈비찜, 도미구이, 잡채, 각종 나물, 그리고 구수한 된장찌개까지. 상 위로 온갖 맛있는 냄새가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식탁에 앉았고, 지윤이는 내 옆에 앉았다. 모든 것이 예전과 같았다. 어머니가 앞치마를 풀고 거실 쪽으로 걸어가셨다. 나는 반사적으로 지윤이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를 위로하려는 건지, 나 자신을 진정시키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버님, 진지 드세요." 첫 번째. 익숙한 프로세스가 가동되었다. 지윤이의 어깨가 빳빳하게 굳어졌다. 나는 그녀의 손가락을 살짝 주물렀다. '참아, 첫날이잖아. 제발 아무 일도 일으키지 마.'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움직이지도 않았다. "아버님, 오늘 도진이 내외 들어왔다고 반찬 좀 여러 개 놨습니다." 두 번째. 할아버지는 안락의자에 거만하게 앉아 다리를 꼬고 계셨다. 오늘은 라디오조차 틀지 않고 그저 눈을 감고 계셨다. 지윤이의 매서운 시선이 할아버지에게 꽂혔다. 나는 그녀의 손바닥에서 땀이 배어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았다. 표준적인 매뉴얼. 여섯 번째 부름이 끝났을 때, 마침내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걸어오셨다. 지윤이의 등 뒤를 지나갈 때 할아버지가 멈칫하셨다. "새아기가 들어왔구나." 지윤이가 몸을 반쯤 돌리며 "네, 할아버님." 하고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짧게 "어." 하더니 자리에 앉으셨다. 약속된 일곱 번째 부름이 울려 퍼졌다. 할아버지가 수저를 드셨다. 온 가족이 식사를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지윤이도 젓가락을 들고 말없이 밥을 먹었다. 그렇게 첫날의 식사는 무사히 끝났다. 밤에 방으로 돌아왔을 때, 지윤이는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스마트폰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내가 물었다. "아니." "오늘 저녁 괜찮았어?" "괜찮았어." 그녀가 나를 쓱 올려다보았다. "첫날이니까." 첫날. 그렇다. 이제 겨우 첫날이었다. 둘째 날도 무사히 지나갔다. 셋째 날도 그랬다. 일주일이 흘렀다. 모든 것이 태풍의 눈처럼 고요했다. 나는 슬금슬금 착각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지윤이도 이 집에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어머니처럼 이 미친 짓을 가벼운 통과의례쯤으로 넘길 수 있게 된 걸까?' 내가 너무 순진했다. 운명의 8일째. 그날 점심, 어머니는 평소처럼 식사를 준비하셨다. 그런데 그날 어머니의 목 상태가 최악이었다. 전날 밤 찬 바람을 쐰 탓에 감기 기운이 심해져 계속 기침을 하고 계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변함없이 거실 복도 앞에 서셨다. "아버님... 콜록콜록... 진지 드세요." 첫 번째 부름, 목소리가 형편없이 갈라져 있었다. 식탁에 앉아 있던 내 미간이 찌푸려졌다. 내 옆에 앉아 사과를 깎고 있던 지윤이의 손이 우뚝 멈췄다. "아버님... 켁... 오늘 좋아하시는... 콜록콜록..." 두 번째. 어머니의 목소리는 갈수록 심하게 쉬어갔다. 그녀는 목을 부여잡고 힘겹게 단어들을 쥐어짜 냈다. 마치 사포로 식도를 박박 긁어대는 듯한 소리였다. 할아버지는 안락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계셨다.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마치 어머니의 처절한 기침 소리가 단순한 백색소음이라도 되는 것처럼. 세 번째. 어머니가 말을 채 맺기도 전에 발작적인 기침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허리를 꺾고 벽을 짚은 채 온몸을 파르르 떨며 기침을 쏟아냈다. 곁에 서 있던 아버지가 마침내 움직였다. 물 한 잔을 떠서 건넨 것이다. "물 좀 마셔, 쉬었다가 해."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인류애의 최대치였다. 물 한 잔. 어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물을 받아 두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허리를 펴고, 고통스러운 의식을 다시 이어가려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됐습니다." 내 옆에서 선명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진 않았지만, 귀에 콱 박히는 소리. 지윤이가 반쯤 깎던 사과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팔을 낚아채려 했다. 하지만 허공을 갈랐다. 그녀는 성큼성큼 어머니에게 다가가, 어머니 손에 들린 물컵을 쓱 빼앗았다. 그러고는 휙 돌아서서 할아버지를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할아버지, 밥 드세요. 식탁에 다 차려놨습니다. 드시든 말든 마음대로 하세요. 저희는 먼저 먹겠습니다." 단 한마디. 일곱 번이 아니었다. 과하게 공손한 말투도 아니었다. 그냥, 딱 한마디였다. 오늘 오후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를 전달하듯 지극히 건조하고 평온한 억양. 집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아버지의 손은 허공에 박제된 듯 멈춰 섰다. (그는 방금 물을 마시려던 참이었다.) 어머니는 입을 반쯤 벌린 채 눈만 커다랗게 뜨고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미간이 무서운 속도로 좁아졌다. 무거운 눈꺼풀을 번쩍 들어 올려, 라디오 너머 지윤이에게 시선을 꽂았다. 그 눈빛. 내가 30년 동안 보아온, 너무나 익숙하고 두려운 그 눈빛. 불쾌함.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당혹감. 감히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는 인간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짐승의 표정. 이 집에서 이런 일은 30년 만에 처음이었다. 정적. 대략 10초의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지윤이는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그 자리에 꼿꼿이 서서 할아버지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그러더니, 그녀는 더욱 경악스러운 행동을 감행했다. 휙 돌아서서 식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자리에 앉았다. 젓가락을 들었다. 갈비찜 한 덩이를 집어, 밥통에서 갓 푼 뜨거운 쌀밥 위에 얹어 입으로 가져갔다. 오물오물 두 번 씹고 꿀꺽 삼켰다. 할아버지가 아직 수저 근처에도 가지 않은 상황에서. 경악에 찬 온 가족이 지켜보는 한가운데서. 그녀가 '먼저' 밥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내 머릿속에서 '삐-' 하는 이명이 울렸다. 누군가 내 귓가에 대고 징을 후려친 것 같았다. 끝났다. 우리 집이, 산산조각 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밥을 먹는 일이 조선시대 어전회의보다 더 엄격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향해 무려 일곱 번을 청해야 했다. 그래야만 할아버지가 수저를 드셨다. 한 번이라도 덜 부르면? 안 드신다. 어조가 마음에 안 들면? 처음부터 다시. 삼십 년. 우리 가족 모두가 그 미친 짓에 순응하며 살았다. 내 아내가 이 집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는. 아내는 차갑게 식어버린 반찬들을 한 번, 그리고 다섯 번째 부름을 기다리며 눈을 감고 있는 할아버지를 한 번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밥그릇을 치웠다. "안 드세요? 네, 그럼 버리겠습니다." 1 내 이름은 서도진, 올해 스물여덟이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두려웠던 게 뭐냐고 묻는다면? 시험도, 매를 맞는 것도, 한밤중에 화장실에 가는 것도 아니었다. 바로 '식사 시간'이었다. 우리 집에서 매 끼니는 한 편의 지루한 지구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괴한 행위예술에 가까웠다. 어머니가 주방에서 반찬을 내와 상을 차리고, 수저를 놓은 뒤 깊은숨을 들이마신다. "아버님, 진지 드세요." 첫 번째. 할아버지는 거실의 낡은 원목 안락의자에 앉아 손에 오래된 라디오를 쥔 채 눈길조차 주지 않으셨다.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 '규칙'이니까. 나는 어릴 때부터 첫 번째 부름에는 절대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마치 직장 상사에게 카톡으로 "부장님, 계십니까?"라고 보냈을 때 절대 1이 바로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머니는 30초를 기다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버님, 식사 다 준비되었습니다. 따뜻할 때 드세요." 두 번째. 할아버지의 코끝이 미세하게 씰룩였다. 음식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미동조차 없었다. 나와 아버지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우리 앞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갈비찜, 고등어조림, 시금치나물, 그리고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는 진한 꼬리곰탕까지.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아무도 수저를 들지 않았다. 감히 그럴 수 없었다. 이 집에는 철칙이 하나 있었다. 할아버지가 수저를 들기 전까지는 온 가족이 밥을 먹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할아버지가 수저를 드는 조건은 단 하나였다. 어머니가 반드시 '일곱 번'을 청해야 한다는 것. 한 번도 모자라선 안 됐다. 토씨 하나 틀려서도 안 됐다. 내가 지금 코미디 대본을 쓰고 있는 것 같나? 아니, 나는 우리 집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버님, 오늘 좋아하시는 꼬리곰탕 푹 끓였습니다. 시장 가서 제일 좋은 걸로 사 왔어요." 세 번째. 할아버지가 가볍게 "어." 하고 소리를 내셨다. 하지만 기뻐하긴 일렀다. 이 "어"는 일어난다는 뜻이 아니라, 그저 '수신 확인'을 의미할 뿐이었다. 기획서에 팀장이 결재 도장을 찍은 것, 딱 그 정도의 의미였다. 나는 슬쩍 스마트폰을 보았다. 6시 18분. 음식이 상에 올라온 건 5시 50분이었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 모든 프로세스가 끝나려면 대략 6시 40분은 되어야 했다. 다시 말해, 저 윤기 흐르는 고등어조림이 냄비에서 나와 내 입으로 들어오기까지 최소 50분의 냉각기를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50분. 뜨거운 반찬이 미지근해지고. 미지근한 반찬이 차가워지고. 차가운 반찬이 결국엔... 하나의 행위예술 조형물로 변해버리는 시간. "아버님,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네 번째. 어머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고, 얼굴에는 적당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30년의 내공. 이 미소는 이미 근육에 각인되어 절대 흐트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앞치마 끝을 꽉 쥐고 있는 어머니의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할아버지가 라디오를 끄셨다. 좋은 징조였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진 않으시고, 대신 찻잔을 들어 여유롭게 한 모금 축이셨다. 아버지가 식탁 밑으로 내 발을 툭 쳤다. 무슨 뜻인지 알았다. '조용히 해, 곧 끝난다.' 나는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를 억지로 삼켰다. "아버님, 다 좋아하시는 반찬이에요. 갈비도 두 시간이나 푹 쪄서 아주 연하게 잘 익었습니다." 다섯 번째.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쉬어 있었다. 티가 나진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20년 넘게 이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으니까. 할아버지가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순간 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드디어! 곧이다! 할아버지가 식당 입구까지 걸어와 우뚝 멈춰 섰다. 식탁 위의 반찬들을 쓱 훑어보셨다. 그러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국자는?" 어머니가 흠칫 놀라며 서둘러 주방으로 뛰어가 국자를 가져왔다. 조심스레 세팅이 끝났다. "아버님, 앉으세요. 이제 다 됐습니다." 여섯 번째. 할아버지가 상석을 향해 걸음을 옮기셨다. 내 목구멍에서 침이 꼴깍 넘어갔다. 아버지의 젓가락은 이미 식탁 위에서 3밀리미터 정도 허공으로 떠올라 있었다. 할아버지가 자리에 앉으셨다. 두 손을 식탁 위에 올렸다. 하지만... 수저는 들지 않으셨다. 그렇다. 아직 한 번이 남았다. 7이라는 숫자는 흔히들 행운이나 완전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할아버지도 그런 뜻으로 7을 고집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무조건 일곱 번이어야 했다. 한 번이라도 모자라면, 온 가족이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할아버지는 조각상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계셨다. 어머니가 할아버지 곁에 서서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 진지 드세요." 일곱 번째. 3초의 정적. 할아버지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움직이더니, 마침내 손을 뻗어 수저를 드셨다. 갈비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으셨다. 천천히 씹으셨다. "음, 오늘 갈비가 괜찮네." 이 한마디는 우리 집 식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아버지의 젓가락이 빛의 속도로 튀어 나가 고등어조림의 뱃살을 정확히 명중시켰다. 나 역시 왼손으론 갈비를, 오른손으론 수저를 들고 얼굴을 접시에 처박을 기세로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가장 마지막에 자리에 앉으셨다. 항상 그러셨다. 제일 마지막에. 당신들은 이 이야기가 터무니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도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여덟 살 무렵이었을 거다. 처음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던 때가. 옆집 철수네는 왜 밥 먹으라는 한마디에 다들 식탁에 모여 앉는 걸까? 나는 베란다에 엎드려 철수네 집 창문 너머의 불빛을 바라보며, 그 집 식구 세 명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 너무도 자연스럽게 수저를 들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밥을 먹는 걸 지켜보았다. 의식 따위는 없었다. 기다림도 없었다. 일곱 번의 부름도 없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철수네 집은 참 야생적이구나.' 한 번 부르고 바로 밥을 먹다니? 예의가 없는 건가? 이것 보라. 사람이 길들여지면, 자신이 갇힌 새장이 정상이라고 믿게 되는 법이다. 나중에 커서 대학에 가고 룸메이트들과 자취를 하며, 밖에서 몇 년 동안 자유로운 식사를 해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비정상인 건 우리 집이었다는 걸. 하지만 아는 것과 현실은 달랐다. 집에 돌아오면, 규칙은 여전히 규칙이었다. 할아버지가 그 자리에 앉아 계시는 한, 그건 절대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산이었다. 치울 수 없었다. 아무도 치울 수 없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큰아버지도, 고모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어른이시잖니." "노인네 고집인데 우리가 맞춰 드려야지." "본인이 저렇게 좋아하시는데 둬라." 온 가족이 똑같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30년이 흘렀다. 30년. 어머니는 매년 겨울마다 인후염을 앓으셨다. 의사는 말을 줄이고 물을 많이 마시라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말을 줄일 수 있을까? 하루 세끼, 한 끼에 일곱 번, 일 년 365일. 계산해 보라. 일 년에 7,665번이다. 그 짓을 30년 동안 하셨다. 하지만 이게 내 고민의 핵심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내가 곧 결혼을 한다는 거였다. 나는 내 아내 될 사람을 이 집안으로 데리고 와야 했다. 나는 스마트폰 속 배지윤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햇살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그 얼굴. 하지만 한번 화가 나면 에어컨 실외기조차 욕해서 멈추게 만들 수 있는 성깔의 소유자.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우리 집의 이 빌어먹을 규칙, 머지않아 박살 날 것 같다는 예감이. 2 이야기는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리 집의 이 '일곱 번 부르기' 규칙이 단군 할아버지가 나라를 세웠을 때부터 있었던 건 아니었다. 어머니의 기억에 따르면, 어머니가 이 집에 처음 시집왔을 무렵만 해도 규칙은 '세 번'이었다고 한다. 그렇다. 세 번. 그때 할아버지는 막 지역 농협 조합장 자리에서 은퇴하셨을 때였다. 평생 감투를 쓰고 대접받는 데 익숙했던 분이라, 집안에서도 그 '존경받는' 느낌을 유지하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나를 밥상에 부를 때는 세 번은 청해야 한다. 그게 예의라는 거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그렇게 선언하셨다. 아버지는 그때 막 결혼을 한 풋내기였고, 한창 효심이 깊을 나이라 앞뒤 재지 않고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갓 들어온 새댁이 무슨 힘이 있어 반대를 하겠는가. "아버님, 진지 드세요." "아버님, 상 다 차렸습니다." "아버님, 이쪽으로 오시지요." 세 번. 간단하고 빠르다. 15초면 끝났다. 반찬도 여전히 따뜻했다. 그 몇 년간은 모든 게 정상적이었다. 만약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우리 집은 그저 '조금 유별나게 예의를 따지는 평범한 집안' 정도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욕망이란 부풀어 오르기 마련이다. 처음엔 회사에서 10분만 딴짓을 하려던 사람이, 나중엔 8시간 근무 중 7시간 반을 월급루팡으로 보내게 되는 것처럼. 점진적으로, 그리고 소리 소문 없이. 5년 뒤, 세 번이 다섯 번으로 늘어났다. 이유는... 내가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의 논리는 이러했다. "집안에 식구가 늘었으니, 가풍도 그에 맞게 격을 높여야지. 며느리가 시아버지 밥 챙기는 것에 정성을 안 들이면 집안의 기강이 무너진다." 아버지는 지당하신 말씀이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머니는 이번에도 참았다. 다섯 번. 그래, 그까짓 거 두 번 더 말하면 되는 거니까. 또 5년이 흘러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되었다. 다섯 번은 어느새 일곱 번이 되어 있었다. 이번 이유는 더 황당했다. 할아버지가 우연히 사극 드라마를 보셨는데, 거기 나오는 대감마님 상을 차릴 때마다 온 집안 식구가 일제히 "대감마님, 수라를 드시옵소서" 하고 외치는 장면이 나왔다는 거다. 할아버지는 그날 밤 이렇게 선언하셨다. "저게 진짜 근본 있는 집안의 법도지. 칠(七)은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루는 완벽한 숫자다. 앞으로는 일곱 번이다." 어머니는 그날 저녁 반찬에 소금을 두 줌이나 더 넣으셨다. 아버지는 그날 반찬이 목구멍이 타들어 갈 정도로 짰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규칙은 결국 일곱 번으로 굳어졌다.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물론 반항을 시도했던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다. 큰어머니 장미화 여사는 성격이 급한 편이었다. 어느 해 설날, 온 가족이 모여 떡국을 먹을 때였다. 명절처럼 식구가 많을 때는 할아버지가 누가 자기를 부를지 지목하곤 했는데, 그날은 큰어머니 차례였다. 큰어머니는 다섯 번을 부르다가 짜증이 났는지 빽 소리를 질렀다. "아버님! 얼른 좀 오세요! 떡국 다 불어 터지겠네 진짜!" 할아버지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문을 잠그셨다. 안 드시겠다는 시위였다. 그 설날 저녁 내내 할아버지는 방 밖으로 나오지 않으셨다. 큰아버지는 방문 앞에서 두 시간 동안 싹싹 빌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할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나오며 던진 첫마디는 이거였다. "법도는 법도다. 감당 못 하겠으면 이 집에서 나가라." 그날 이후로 큰어머니는 두 번 다시 우리 집 밥상에 앉지 않으셨다. 매번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마침' 급한 일이 생겨서 못 온다고 했다. 이 사건 이후로 집안의 그 누구도 감히 이 규칙에 토를 달지 못했다. 결국 어머니가 유일하고 영구적인 '일곱 번의 호명자'가 되었다. 하루 또 하루, 일 년 또 일 년. 일곱 번을 부르고. 수저를 드시길 기다리고. 뜨겁게 요리해서 차갑게 식은 밥을 먹는 일상. 나는 그걸 태어날 때부터 보고 자랐다. 어릴 땐 몰랐지만, 머리가 굵어지면서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미리 내게 단단히 예방주사를 놓았기 때문이다. "네 할아버지 성정이 원래 저러시다. 딴 건 몰라도 체면 깎이는 건 죽기보다 싫어하시는 분이야. 네 엄마도 평생을 맞춰주며 살았는데, 굳이 네가 나서서 벌집 쑤시지 마라." 우리 아버지라는 사람은... 참, 뭐라고 해야 할까. 세계 갈등 회피 올림픽이 있다면 무조건 금메달을 딸 위인이었다. '상황 덮어두기'라는 학문이 있다면 종신 교수를 할 분이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아버지가 취하는 기본 행동 수칙은 다음과 같다. 고개 숙이기, 침묵하기, 전화 온 척하기, 화장실 가기. 30년 동안 아버지는 할아버지 앞에서 단 한 번도 "아니요"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를 위해 편을 들어준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의 인생철학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참으면 다 지나간다.' 대체 뭘 참는다는 걸까? 평생을? 하지만 나 역시 아버지를 비난할 자격은 없었다. 나도 20년 넘게 닥치고 참아왔으니까. 배지윤을 만나기 전까지는. 지윤이는 내 대학 동기다. 예쁘장한 외모에, 머리도 비상하게 잘 돌아가고, 무엇보다 성격이 깡다구 그 자체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대학교 3학년 때, 학생 식당 아주머니가 제육볶음을 한 주걱 덜 퍼줬다고 배식구 앞에서 15분 동안 물러서지 않고 논리정연하게 따진 적이 있다. 결국 뒤에 줄 서 있던 학생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아주머니가 백기를 들며 고기를 산더미처럼 쌓아주는 것으로 끝이 났다. 대학원생 시절, 지도교수가 주말에 무급으로 나와서 논문 작업이나 도우라고 하자 그녀는 곧바로 카톡을 보냈다. "교수님, 근로기준법 제36조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리고 정말로 안 나갔다. 교수도 딱히 그녀를 어쩌지 못했다. 그런 사람이었다. 세상 무서울 것 하나 없지만, 지루하고 부조리한 건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 우리는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사귀었다. 졸업 후 2년간 장거리 연애를 하다가, 그녀가 내가 있는 도시로 직장을 발령받으면서 우리는 동거를 시작했다. 우리의 일상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둘이 밥을 먹을 때면 먼저 배고픈 사람이 요리를 하고, 다 되면 "밥 먹어!" 하고 소리쳤다. 그럼 다른 한 명은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며 식탁으로 달려왔다. 청할 필요도 없었다.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먹고 싶을 때 먹으면 그만이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따뜻한 밥 한 끼 먹는 게 이렇게 쉽고 당연한 일이었다는 걸.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결혼을 한다는 건, 적어도 우리 고향에서는 아주 명확한 한 가지 관문을 의미했다. 그녀를 고향 집으로 데려가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 나는 이 일을 반년이나 미루고 또 미뤘다. 지윤이는 세 번이나 물었다. "도대체 집에 언제 인사 갈 거야?" 첫 두 번은 얼토당토않은 핑계로 넘어갔다. 세 번째 물었을 때, 그녀의 눈빛은 말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미루면 다음은 없다.' 아마 여자친구가 통째로 사라질 위기였다. 결국 어느 토요일 아침, 나는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고향 집으로 그녀를 태우고 출발했다. 운전대를 잡고 가면서 나는 한 가지 중대한 작업을 시작했다. 이른바 '예방주사 놓기'. "저기, 지윤아." "응?" "내가 하나 고백할 게 있는데, 너무 놀라지 말고 들어." "뭔데? 너희 집에 내가 모르는 비밀이라도 있어? 저번에 너희 집 화장실 문에 잠금장치 없다고 했을 때 이미 충분히 충격받았거든?" "화장실 문제는 아니고. 밥 먹는 거." "밥 먹는 게 왜? 너희 집 식사 예절 엄청 빡세? 젓가락질 정석대로 안 하면 혼나고 뭐 그런 거?"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어머니가 할아버지께 진지 드시라고 일곱 번을 청해야 해." 지윤이가 고개를 홱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매 끼니마다 우리 어머니가 할아버지 앞에 서서 일곱 번을 부르셔야 해. 그래야 할아버지가 식탁에 앉으시고, 수저를 드셔. 그제야 온 가족이 밥을 먹을 수 있어." 지윤이는 5초간 말이 없었다. "너 지금 나랑 장난해?" "아니, 진짜야." 다시 5초의 정적. "일곱 번?" "어, 일곱 번." "매 끼니마다?" "매 끼니마다." "하루 세끼 다?" "하루 세끼 다." 지윤이의 표정은 정확히 3단계를 거쳤다. 1단계: 의심. 내가 무슨 실없는 농담을 지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2단계: 경악. 내 표정이 장난이 아님을 깨달았다. 3단계: 학술적 호기심. "잠깐만... 이거 무슨 심리 조종이야? 가스라이팅? 아니면 할아버지한테 무슨 강박증 같은 질환이라도 있으셔?" "아니야. 할아버지는 그게 법도고, 어른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하셔." "누구 맘대로 정한 법도인데? 누굴 위한 존중이고?" "할아버지 본인이 정하셨어. 본인을 존중하라는 거지." 지윤이가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래, 알았어. 오늘 그 대단한 법도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평온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6년이나 겪었다. 평온할수록 폭풍은 거세다. 나는 갑자기 뼈저리게 후회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가다가 핸들을 꺾어 논두렁에 처박히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러면 최소한 집에 도착하진 않을 텐데. 3 집에 도착한 건 낮 11시 반이었다. 어머니는 벌써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계셨다. 아버지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현관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아이고, 왔냐! 네가 지윤이구나? 어서 와라, 어서 들어와!" 지윤이가 싹싹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아버지는 입이 귀에 걸려 지윤이를 집 안으로 이끌었다. 거실에는 할아버지가 언제나처럼 그 낡은 원목 안락의자에 앉아 계셨다. 여든둘의 연세에도 머리는 새하얗지만 허리는 꼿꼿하셨고, 손에는 여전히 오래된 라디오가 쥐어져 있었다. "할아버지, 저 왔습니다. 이쪽은 배지윤이라고 해요." 나는 지윤이를 앞으로 살짝 밀었다. 지윤이는 아주 당당하고 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님." 할아버지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지윤이를 위아래로 3초간 훑어보셨다. 그러고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셨다. "어." 단 한 글자. 하지만 나는 알았다. 이 "어"는 '당장 내쫓지는 않겠다'는 뜻이었다. 할아버지의 사전에서 이 정도면 격렬한 환영 인사나 다름없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0여 분간의 가벼운 담소가 이어졌고, 어머니가 주방에서 나오셨다. 아직 앞치마도 풀지 못했고, 이마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우리 지윤이 왔어? 아이고, 참 곱기도 해라. 어서 앉아, 뭐 좀 마실래?" "어머님, 안녕하세요. 신경 쓰지 마세요, 전 아무거나 다 괜찮아요." 어머니는 활짝 웃으셨다. 내가 며느릿감을 데려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리셨던가. 다시 20분이 지났다. 12시가 조금 넘자 모든 음식이 식탁에 세팅되었다. 전통 수육, 묵은지 고등어조림, 매콤한 낙지볶음, 시금치나물, 그리고 커다란 뚝배기에 담긴 할아버지용 꼬리곰탕까지. 식탁 위가 빈틈없이 꽉 찼다.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고 군침 도는 냄새가 진동했다. 냄새를 맡은 지윤이의 눈이 반짝였다. "와, 어머님 요리 솜씨가 장난 아니신데요? 냄새 진짜 좋아요." "다 그냥 집 반찬이지 뭐. 입에 맞을지 모르겠다. 자, 다들 앉자."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나, 지윤이, 그리고 아버지. 셋이서 식탁에 둘러앉았다. 맛있는 반찬들이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앉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앞치마를 풀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거실 쪽으로 걸어갔다. 지윤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시작됐어." 어머니는 거실과 식당을 잇는 복도 한가운데 서서, 할아버지가 계신 곳을 향해 헛기침을 한 번 하셨다. "아버님, 진지 드세요." 첫 번째. 할아버지는 미동도 하지 않으셨다. 지윤이의 시선이 어머니에게서 할아버지로, 다시 어머니에게로 옮겨갔다. 식탁 밑에서 그녀의 주먹이 꽉 쥐어지는 걸 나는 볼 수 있었다. 5초. 10초. "아버님, 오늘 도진이가 며느릿감 데려왔습니다. 이리 오셔서 같이 드시지요." 두 번째. 할아버지는 라디오 볼륨을 아주 약간 줄이셨다. 그게 다였다. 지윤이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그녀가 나를 휙 돌아보았다. 나는 차마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저 식탁 위에 놓인 묵은지 고등어조림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뜨겁던 국물 표면에 벌써 얇은 기름 막이 굳어가고 있었다. "아버님, 좋아하시는 꼬리곰탕 끓였습니다. 세 시간이나 푹 고았어요." 세 번째. 할아버지가 "어." 하고 소리를 내셨다. 지윤이는 이 기막힌 상황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의아함에서 '확신'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이것이 내가 미리 짠 몰래카메라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확신. "아버님,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반찬 식으면 맛없어요." 네 번째. 어머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상냥했고, 얼굴에는 한결같은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프로페셔널했다. 30년이란 세월이 깎고 다듬은 완벽한 프로의 모습. 아버지는 식탁 밑에서 말없이 두 손을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지윤이도 그걸 눈치챘다. 그녀는 아버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마디도 거들지 않는다는 사실도 똑똑히 목격했다. "아버님, 라디오 그만 들으시고 이쪽으로 오세요. 사람 많으니 시끌벅적하고 좋잖아요." 다섯 번째. 할아버지가 마침내 라디오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하지만 그는 식탁으로 오지 않고 세면대로 가더니 아주 느긋하게 손을 씻기 시작했다. 일곱 번의 부름이 완성되기 전까지 할아버지는 온갖 종류의 '막간 행동'을 할 수 있었다. 손 씻기, 물 마시기, 화장실 가기 등등. 단지 식탁에 앉지만 않을 뿐이다. 지윤이의 호흡이 미세하게 거칠어졌다. 나는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참고 있었다. 대체 뭘 참고 있는 걸까? 실소? 분노? 아니면 밥상을 엎어버리고 싶은 충동? 확실하진 않지만, 어쨌든 그녀가 맹렬히 참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아버님, 얼른 오세요. 오늘 특별히 아버님 좋아하시는 반찬으로 더 준비했습니다." 여섯 번째. 손을 다 닦은 할아버지가 뒷짐을 진 채 느릿느릿 식당으로 걸어오셨다. 식탁 앞에 서서 차려진 음식들을 쓱 훑어보았다. 그리고 지윤이를 한 번 쳐다보셨다. 지윤이도 지지 않고 할아버지와 눈을 맞췄다. 그녀의 눈빛은 무서울 정도로 차분했다. 할아버지가 자리에 앉으셨다. 하지만 젓가락은 들지 않았다. 두 손은 여전히 식탁 위에 평행하게 놓여 있었다. 마지막 의식. 어머니가 식탁으로 다가와 할아버지 곁에 섰다. "아버님, 수저 드시지요." 일곱 번째. 3초. 할아버지가 마침내 수저를 드셨다. 수육 한 점을 집어 드셨다. "음, 먹을 만하네." 개시 신호가 떨어졌다. 아버지의 젓가락이 번개처럼 허공을 갈랐다. 나 역시 서둘러 젓가락을 들었다. 하지만 지윤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수저는 밥그릇 옆에 가지런히 놓인 채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어머니가 식탁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의자를 빼고 앉는 모습을 응시했다. 어머니가 수저를 들 때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까지. 그건 긴장해서가 아니라, 내내 무거운 솥을 들고 국자를 저어대느라 팔 근육이 뭉친 탓이었다. 지윤이는 그 모습을 꼬박 3초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없이 반찬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식사 내내 그녀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어머니가 이따금 건네는 질문에만 예의 바르고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미소는 잃지 않았지만, 그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6년이나 겪었다. 나는 그녀의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도 잘 알았다. 화산이 폭발하기 전은, 언제나 이렇게 끔찍하게 고요한 법이다. 그날 저녁 돌아오는 길, 차는 20분째 달리고 있었다. 그녀는 단 한 글자도 내뱉지 않았다. 나도 감히 입을 뗄 엄두가 나지 않았다. 21분째 되던 순간, 마침내 그녀의 입이 열렸다. "서도진." "어, 응." "너희 어머니, 매일 저러셔?" "응." "30년 동안?" "응." "너희 아버지는 저걸 그냥 보고만 있고?" "응." "너도 그냥 보고만 있었고?" 핸들을 쥔 내 손에 땀이 뱄다. "나는..." "일곱 번."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매 끼니마다 일곱 번. 하루 세끼. 일 년이면 천 번이 넘고. 30년이면 무려 3만 번이야."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너희 어머님, 겨울마다 목소리 쉬시지?" "그걸 어떻게..." "아까 네 번째 부르실 때부터 벌써 헛기침하시면서 목 가다듬으시더라." 차 안에는 다시 숨 막히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게다가." 지윤이가 말을 이었다. "오늘 반찬들, 다 막 해서 따끈따끈하게 상에 올라왔잖아. 근데 너희 할아버지 앉으실 때쯤엔 꼬리곰탕 국물 다 식어서 기름 떠 있는 거 봤어? 어머님이 반나절 내내 땀 뻘뻘 흘리며 고생한 게 다 차가운 쓰레기가 되어버렸다고." 나는 입을 벌렸지만, 목구멍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먹고 자랐으니까. 다 식어버린 차가운 밥과 반찬은 우리 집에선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었다. 지윤이가 내 눈앞에 현실을 들이밀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그게 비정상이라고 뼈저리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서도진." "응." "만약에 우리가 나중에 결혼해서." "응." "내가 저 집에 들어가 살게 되더라도." "..." "난 일곱 번 안 불러."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 평온했다. 마치 변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이야기하듯. 마치 '내일 해는 동쪽에서 뜬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하고 단호했다. 나는 슬쩍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그녀의 옆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표정은 여전히 고요했다. 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아주 기묘한 감정. 어쩌면 그것은... '기대감'이었을지도 모른다. 4 나와 지윤이가 혼인신고를 한 건 이듬해 봄의 일이었다. 결혼식은 소박했다. 양가 모두 허례허식을 싫어해서 가까운 친척들만 모여 식사 한 끼 하는 것으로 끝냈다. 하지만 결혼 후 한 가지 명확해진 사실이 있었다. 지윤이가 우리 본가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녀가 원해서가 아니었다. 순전히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우리가 살던 전셋집 계약이 만료되었는데,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는 아직 인테리어 공사가 덜 끝난 상태였다. 아버지가 전화를 걸어왔다. "집도 넓은데 들어와서 몇 달 지내라. 월세도 아끼고 좋잖냐." '월세를 아낀다'는 말은 나와 지윤이의 치명적인 약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지윤이도 잠시 눈을 감더니 "알았어, 몇 달만 참지 뭐." 하고 동의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시한폭탄 같은 뇌관이 하나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는 것을. 바로 그 '일곱 번 부르기'라는 뇌관 말이다. 우리가 본가로 들어간 날은 어느 토요일이었다. 아직 짐도 다 풀지 못한 채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왔다. 어머니는 며느리가 들어온 첫날이라고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장만하셨다. 갈비찜, 도미구이, 잡채, 각종 나물, 그리고 구수한 된장찌개까지. 상 위로 온갖 맛있는 냄새가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식탁에 앉았고, 지윤이는 내 옆에 앉았다. 모든 것이 예전과 같았다. 어머니가 앞치마를 풀고 거실 쪽으로 걸어가셨다. 나는 반사적으로 지윤이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를 위로하려는 건지, 나 자신을 진정시키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버님, 진지 드세요." 첫 번째. 익숙한 프로세스가 가동되었다. 지윤이의 어깨가 빳빳하게 굳어졌다. 나는 그녀의 손가락을 살짝 주물렀다. '참아, 첫날이잖아. 제발 아무 일도 일으키지 마.'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움직이지도 않았다. "아버님, 오늘 도진이 내외 들어왔다고 반찬 좀 여러 개 놨습니다." 두 번째. 할아버지는 안락의자에 거만하게 앉아 다리를 꼬고 계셨다. 오늘은 라디오조차 틀지 않고 그저 눈을 감고 계셨다. 지윤이의 매서운 시선이 할아버지에게 꽂혔다. 나는 그녀의 손바닥에서 땀이 배어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았다. 표준적인 매뉴얼. 여섯 번째 부름이 끝났을 때, 마침내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걸어오셨다. 지윤이의 등 뒤를 지나갈 때 할아버지가 멈칫하셨다. "새아기가 들어왔구나." 지윤이가 몸을 반쯤 돌리며 "네, 할아버님." 하고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짧게 "어." 하더니 자리에 앉으셨다. 약속된 일곱 번째 부름이 울려 퍼졌다. 할아버지가 수저를 드셨다. 온 가족이 식사를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지윤이도 젓가락을 들고 말없이 밥을 먹었다. 그렇게 첫날의 식사는 무사히 끝났다. 밤에 방으로 돌아왔을 때, 지윤이는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스마트폰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내가 물었다. "아니." "오늘 저녁 괜찮았어?" "괜찮았어." 그녀가 나를 쓱 올려다보았다. "첫날이니까." 첫날. 그렇다. 이제 겨우 첫날이었다. 둘째 날도 무사히 지나갔다. 셋째 날도 그랬다. 일주일이 흘렀다. 모든 것이 태풍의 눈처럼 고요했다. 나는 슬금슬금 착각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지윤이도 이 집에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어머니처럼 이 미친 짓을 가벼운 통과의례쯤으로 넘길 수 있게 된 걸까?' 내가 너무 순진했다. 운명의 8일째. 그날 점심, 어머니는 평소처럼 식사를 준비하셨다. 그런데 그날 어머니의 목 상태가 최악이었다. 전날 밤 찬 바람을 쐰 탓에 감기 기운이 심해져 계속 기침을 하고 계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변함없이 거실 복도 앞에 서셨다. "아버님... 콜록콜록... 진지 드세요." 첫 번째 부름, 목소리가 형편없이 갈라져 있었다. 식탁에 앉아 있던 내 미간이 찌푸려졌다. 내 옆에 앉아 사과를 깎고 있던 지윤이의 손이 우뚝 멈췄다. "아버님... 켁... 오늘 좋아하시는... 콜록콜록..." 두 번째. 어머니의 목소리는 갈수록 심하게 쉬어갔다. 그녀는 목을 부여잡고 힘겹게 단어들을 쥐어짜 냈다. 마치 사포로 식도를 박박 긁어대는 듯한 소리였다. 할아버지는 안락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계셨다.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마치 어머니의 처절한 기침 소리가 단순한 백색소음이라도 되는 것처럼. 세 번째. 어머니가 말을 채 맺기도 전에 발작적인 기침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허리를 꺾고 벽을 짚은 채 온몸을 파르르 떨며 기침을 쏟아냈다. 곁에 서 있던 아버지가 마침내 움직였다. 물 한 잔을 떠서 건넨 것이다. "물 좀 마셔, 쉬었다가 해."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인류애의 최대치였다. 물 한 잔. 어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물을 받아 두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허리를 펴고, 고통스러운 의식을 다시 이어가려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됐습니다." 내 옆에서 선명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진 않았지만, 귀에 콱 박히는 소리. 지윤이가 반쯤 깎던 사과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팔을 낚아채려 했다. 하지만 허공을 갈랐다. 그녀는 성큼성큼 어머니에게 다가가, 어머니 손에 들린 물컵을 쓱 빼앗았다. 그러고는 휙 돌아서서 할아버지를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할아버지, 밥 드세요. 식탁에 다 차려놨습니다. 드시든 말든 마음대로 하세요. 저희는 먼저 먹겠습니다." 단 한마디. 일곱 번이 아니었다. 과하게 공손한 말투도 아니었다. 그냥, 딱 한마디였다. 오늘 오후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를 전달하듯 지극히 건조하고 평온한 억양. 집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아버지의 손은 허공에 박제된 듯 멈춰 섰다. (그는 방금 물을 마시려던 참이었다.) 어머니는 입을 반쯤 벌린 채 눈만 커다랗게 뜨고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미간이 무서운 속도로 좁아졌다. 무거운 눈꺼풀을 번쩍 들어 올려, 라디오 너머 지윤이에게 시선을 꽂았다. 그 눈빛. 내가 30년 동안 보아온, 너무나 익숙하고 두려운 그 눈빛. 불쾌함.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당혹감. 감히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는 인간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짐승의 표정. 이 집에서 이런 일은 30년 만에 처음이었다. 정적. 대략 10초의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지윤이는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그 자리에 꼿꼿이 서서 할아버지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그러더니, 그녀는 더욱 경악스러운 행동을 감행했다. 휙 돌아서서 식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자리에 앉았다. 젓가락을 들었다. 갈비찜 한 덩이를 집어, 밥통에서 갓 푼 뜨거운 쌀밥 위에 얹어 입으로 가져갔다. 오물오물 두 번 씹고 꿀꺽 삼켰다. 할아버지가 아직 수저 근처에도 가지 않은 상황에서. 경악에 찬 온 가족이 지켜보는 한가운데서. 그녀가 '먼저' 밥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내 머릿속에서 '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