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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섬뜩한 게임에서 죽었다
아이와 함께 이 지옥 같은 곳에 갇힌 지 정확히 열 달째였다. 나는 고열로 신음하는 하은이를 겨우 나무 판자 위에 눕히고, 차가운 물속으로 뛰어들었...
Chương (1)
第1章
아이와 함께 이 지옥 같은 곳에 갇힌 지 정확히 열 달째였다.
나는 고열로 신음하는 하은이를 겨우 나무 판자 위에 눕히고, 차가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온 힘을 다해 판자를 밀며 앞으로 헤엄쳤다.
어두운 해수면 아래로 굶주린 상어들이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오는 게 보였다. 절망이 온몸을 잠식하던 그 순간,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하은이가 탄 판자를 앞으로 강하게 밀어냈다.
그리고 나는 깊고 어두운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상어 떼가 내 몸을 갈기갈기 찢어발길 것이라 생각하며 눈을 감은 순간이었다.
갑자기 사방에서 눈이 멀 것 같은 조명이 터졌고, 연극 무대의 막이 오르듯 스크린이 서서히 걷혔다.
그 뒤에서 내 남편, 주현우가 내가 가장 믿었던 친구 채서아의 어깨를 감싼 채 걸어 나왔다. 현우의 얼굴에는 장난기 어린 유쾌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서아 야, 얘가 네 뺨 한 대 때린 것 때문에 내가 1년 동안 벌을 줬는데, 이제 좀 속이 시원해?”
“이제 얘보고 너한테 제대로 사과하라고 할 테니까, 지난 일은 다 잊는 거다?”
현우는 그렇게 말하더니, 판자 위에 쓰러져 있는 하은이를 보며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하은아, 네 엄마는 어디 갔어? 애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애를 이 지경이 되도록 굶겨?”
수면은 이미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잔잔해져 있었다. 영혼이 되어 허공을 떠돌던 나는, 저 깊은 물 밑바닥에 가라앉은 내 차가운 육신을 내려다보았다.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난 1년 동안 나와 내 아이를 지옥으로 몰아넣었던 그 끔찍한 조난 생활이, 고작 주현우가 내린 ‘징벌 게임’에 불과했다니.
그는 마침내 원하는 결말을 얻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이제 두 번 다시 그들이 있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
“엄마 좀 살려주세요…… 엄마 좀 구해주세요…….”
하은이는 갈라진 목소리로 눈물을 흘리며 애처롭게 울부짖었다.
현우는 가슴이 미어지는 얼굴로 아이를 품에 안아 올렸지만,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이를 갈며 읊조렸다.
“네 엄마, 지 잘못은 알아서 먼저 도망친 게 분명해. 정말 이렇게 이기적이고 속 좁은 여자는 처음 보겠네.”
하은이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하얗게 튼 입술을 달작거렸지만 더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이는 필사적으로 물가를 가리키다, 이내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스르륵 정신을 잃었다.
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하은이를 안아주기 위해 허겁지겁 달려갔지만, 내 손은 허공을 속절없이 통과할 뿐이었다. 나는 멍하니 제자리에 멈춰 섰다.
“의사! 의사 불러요!”
현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그는 소리치며 구급차를 향해 달렸다.
이송되는 동안 현우는 하은이의 몸을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이의 몸. 그의 눈에 분노와 죄책감이 서치며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내가 분명히 섬에 주기적으로 보급품을 보냈는데, 임민서는 눈이 삐었어? 그것 하나 제대로 못 찾아?”
“애를 이 지경으로 굶겨놓다니, 그래서 양심은 있어서 나를 못 보고 도망친 거였군!”
옆에서 눈물을 훔치던 서아가 은근한 말투로 거들었다.
“민서도 참 너무하다…… 현우 네가 미워도 그렇지, 어떻게 애까지 굶기면서 화풀이를 해.”
그 순간 현우의 얼굴이 겉잡을 수 없이 어두워졌다. 그는 당장 휴대폰을 꺼내 나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임민서, 지금 당장 나타나. 안 그러면 나도 더는 안 참아. 너 그러고도 엄마야?]
그는 나지막이 욕설을 뱉었지만, 시선은 우리 두 사람의 마지막 통화 기록에 멈춰 있었다.
열 달 전, 나와 하은이가 여행에서 돌아왔던 날이었다.
문을 열었을 때, 나를 맞이한 건 침대 위에서 나체로 주현우의 품에 안겨 있던 내 가장 친한 친구, 채서아였다.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타들어 갔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으며 두 사람에게 달려들어 할퀴고 때렸다.
현우는 필사적으로 서아의 앞을 가로막더니, 나를 거칠게 바닥으로 밀쳐냈다. 그리고 혐오감이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미쳐 날뛰어. 나 그냥 술 좀 취했던 것뿐이야. 세상에 실수 한 번 안 하는 남자가 어디 있어?”
나는 피눈물을 흘리며 하은이를 품에 안았다.
현우는 내 손목을 꽉 움켜쥐며 나지막이 명령했다.
“사람 쳐놓고 그냥 가려고? 서아한테 제대로 사과해.”
서아는 현우 뒤로 비굴하게 숨어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무해하고 불쌍한 피해자처럼.
위장 속에서 묵직한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나는 현우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꿈 깨. 당신들 천벌 받을 거야. 주현우, 당장 이혼해.”
나는 겁에 질려 떨고 있는 하은이를 안고 집을 뛰쳐나와 작은 원룸을 얻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나와 하은이는 아무것도 없는 외딴섬에 버려져 있었다.
식량도, 사람의 흔적도 없었다. 무엇보다 절망적인 건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통신 장비가 단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물속으로 뛰어들어 탈출을 시도해 보았지만, 몇십 미터도 가지 않아 물속에서 거대한 상어의 지느러미가 나를 가로막았다.
이제야 깨달았다. 그 외딴섬도, 상어도, 모두 그가 꾸며낸 정교한 세트장이자 조작된 홀로그램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 거짓을 온전히 진실로 믿었고, 죽음을 각오한 채 내 손끝을 깨물어 피로 유서를 썼다.
남겨질 하은이만큼은 현우가 부디 잘 키워주길 바라며.
그때, 응급실 문이 열리고 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하은이에게 심정지가 와 고비를 넘겨야 한다는 긴박한 설명이었다.
수술 동의서를 건네받은 현우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황급히 서명을 마쳤다.
서아는 옆에서 연신 눈물을 닦으며 속삭였다.
“민서도 참 독해…… 애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끝까지 안 나타나네.”
현우는 하은이의 목에서 떼어낸, 흙때 묻은 작은 실크 주적 주머니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그것은 하은이가 어릴 적 크게 앓았을 때, 우리 부부가 전국을 수소문해 유명한 사찰에서 받아온 건강 부적이었다.
그날 밤, 비가 쏟아지는 산길을 우리는 한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며 절벽 위 사찰까지 기어 올라갔었다.
저혈당으로 현우가 발을 헛디뎌 절벽 아래로 추락할 뻔했을 때, 나는 몸을 던져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무릎과 팔꿈치가 온통 찢어지고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나는 그를 끝내 끌어올렸다. 현우는 내 상처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었다.
“다음부턴 이러지 마, 바보야. 나 때문에 너까지 떨어졌으면 우리 하은이는 고아가 됐을 거 아냐.”
나는 아파서 신음하면서도 그를 보며 행복하게 웃었다.
“당신이랑 하은이가 내 전부잖아. 난 죽어도 두 사람 절대 포기 안 해.”
“전부 다 거짓말이었어.”
현우가 짓눌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에 분노가 번졌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때 묻은 부적 주머니를 쓰레기통에 거칠게 던져버렸다.
그 순간 그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인공섬 세트장의 현장 책임자였다.
기대감으로 밝아졌던 현우의 얼굴이 상대의 말을 듣자마자 싸늘하게 식어내렸다.
“무슨 일이야.”
“대표님, 섬 수색 중에 사모님이 바닥에 남기신 피 묻은 유서를 발견했습니다.”
“유서?”
현우의 미간이 좁혀지며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이젠 죽는 시늉까지 하면서 나를 협박하겠다는 건가? 꿈도 야무지군!”
“그 섬에 맹수 같은 건 풀어놓지도 않았는데 대체 무슨 엄살이야!”
“당장 샅샅이 뒤져서 그 여자 찾아내.”
전화를 거칠게 끊은 현우가 차갑게 실소를 터뜨렸다.
“그렇게 겁 많은 여자가 자살은 무슨 자살. 섬이 좁아서 숨을 데도 없을 텐데, 내 앞에 나타나면 뭐라고 변명할지 두고 보지.”
나는 허공에서 현우가 나를 모욕할 계획을 세우는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 좁은 섬을 아무리 뒤진들 내가 나올 리가 없었다.
나는 차가운 물속에 있으니까.
수술실 불이 꺼지고, 의사가 무거운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급히 다가오는 현우를 향해 의사가 말했다.
“아기 위장 속에서 풀잎과 가공되지 않은 거친 열매들이 다량 발견되었습니다. 극심한 영양실조로 장기 기능이 억제되고 면역 체계가 완전히 붕괴된 상태입니다.”
“우선 고비는 넘겼지만, 혼수상태가 지속되고 있어 더 지켜봐야 합니다.”
“풀잎이라니요?”
현우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그의 목소리에 당혹감과 분노가 뒤섞였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내가 주기적으로 통조림이랑 신선한 과일 팩을 가득 담은 보급상자를 보냈는데, 애가 왜 그걸 먹어요!”
아니, 현우. 네가 보낸 보급품은 처음 석 달 동안 겨우 몇 개 찾은 게 전부였어.
그 이후로는 아무것도 오지 않았지.
나는 나무에 열린 야생 열매를 따고, 흙을 파서 곤충과 풀뿌리를 찾아내 하은이를 먹였다.
어떤 날은 물조차 구하지 못해, 아이가 잠든 사이 내 손목을 그어 피를 먹이기도 했다.
아이는 너무 착해서, 배가 고파 걷지도 못하면서도 늘 나를 위로했다.
“엄마, 나 배 안 고파. 조금만 더 참으면 아빠가 우리 구하러 올 거야.”
영혼인 상태에서도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그러니 주현우, 네가 떳떳하게 말하는 그 보급품들은 전부 다 비열한 거짓말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한 분노 속에서, 문득 곁에 서 있던 서아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간 부자연스러운 긴장감.
서아는 입술을 깨물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원래 극한의 상황에 닥치면…… 모성애도 시험대에 오르는 법이잖아.”
그 한마디에 현우는 번쩍 정신이 든 듯, 가슴속에서 다시 증오가 불타올랐다.
“맞아…… 임민서 그 여자가 보급품을 혼자 다 처먹은 게 분명해!”
그는 서아의 너무나 얄팍한 이간질을 단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어버렸다.
그녀의 입가에 핀 비열한 미소는 보지 못한 채.
현우는 무거운 걸음으로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하은이는 여전히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작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여린 입술을 비집고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엄마…… 물…… 엄마, 물 줘…….”
현우는 멈칫하며, 본능적으로 탁자 위의 물컵을 집어 들었다.
“하은아, 물 마시고 싶어?”
그러나 하은이는 눈을 뜨지 못했다. 그저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현우의 가슴이 무언가에 꽉 막힌 듯 답답해졌다.
그때 그의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대표님, 섬 전체를 두 번이나 이 잡듯 뒤졌지만 사모님의 흔적은 찾을 수 없습니다.”
휴대폰을 쥔 현우의 손가락끝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러나 그는 곧 차가운 조소를 지었다.
“자기가 저지른 짓이 들통날까 봐 어디 숨어서 안 나오는 거겠지. 찾을 필요 없어. 그 독한 여자가 얼마나 버티나 보자고.”
비서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대표님, 그리고 섬 개발 프로젝트 일정이 나와서 세트장 구역 내 호수의 물을 곧 배수해야 합니다. 어떻게 진행할까요?”
“배수해. 예정대로.”
현우는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망설이다가 나와의 대화창을 열었다.
하지만 대화창은 차갑게 비어 있었다.
그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입술을 깨물며, 누워 있는 하은이의 사진을 찍어 메시지를 보냈다.
[하은이 상태가 아주 안 좋아. 네가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는 엄마라면, 당장 와서 애 얼굴이라도 봐.]
그는 휴대폰을 던져두고, 쓰레기통에서 꺼내 둔 때 묻은 부적 주머니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서두를 필요 없어, 현우야. 물이 다 빠지고 나면 우린 아주 곧 만나게 될 테니까.
정적이 흐르는 병실 안, 갑자기 서아가 비명을 지르며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녀가 당황하며 휴대폰을 주우려 했지만, 현우가 더 빨랐다.
액정 화면에는 서아가 교묘하게 조작한, 내 필체를 흉내 낸 유서의 사진이 떠 있었다.
[주현우, 채서아. 너희 둘 다 천벌 받아 죽어버려. 너희 같은 쓰레기들의 실체를 온 세상에 알릴 거야. 하은이가 굶주린 건 다 너 때문이야. 넌 죽어 마땅해.]
현우의 이마에 푸른 힘줄이 솟구쳤다.
콰앙! 그가 주먹으로 벽을 거칠게 내리쳤다.
“하, 죽는 시늉으로 날 평생 괴롭히시겠다? 어림없지!”
서아는 고개를 숙인 채 억울하다는 듯 흐느꼈다.
“다 나 때문이야…… 내가 직접 민서한테 가서 무릎 꿇고 빌게. 우리 용서해 달라고 빌 테니까 제발…….”
“그럴 필요 없어!”
현우가 싸늘하게 비웃었다. 그의 눈빛에 남아 있던 마지막 일말의 죄책감마저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추악한 혐오감만 남았다.
“설마 이렇게 악랄한 여자였을 줄이야. 자식을 굶겨 죽이려 해놓고, 이제는 위장 자살로 날 협박해? 돌아오기 싫다면 영원히 돌아오지 말라고 해.”
분노에 눈이 먼 현우는, 그 조작된 유서의 글씨가 내 진짜 필체가 아니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대학 시절, 우리는 수백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었다.
그 편지들은 지금도 우리 집 책장에 고스란히 꽂혀 있다.
우리가 말다툼을 할 때면, 현우는 늘 내가 보낸 사랑의 편지들을 꺼내 들어 장난스레 낭독하곤 했다.
부끄러움에 화가 난 내가 편지더미에 불을 붙여버렸을 때, 현우는 미친 사람처럼 맨손으로 불길을 덮어 껐다. 그의 팔 전체에 끔찍한 화상 물집이 잡혔다.
그 무모한 행동에 내가 울음을 터뜨렸을 때, 그는 아픔조차 잊은 채 나보다 더 크게 울었다.
“민서야, 네가 나한테 준 마음이잖아. 너라도 이건 마음대로 못 없애.”
그 후 우리가 화해했을 때, 그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장난스레 속삭였다.
“네가 다 태워버려도 괜찮아. 난 다 외우고 있으니까. 내용뿐만 아니라 네 독특한 필체까지 똑같이 따라 쓸 수 있어.”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에게도 오직 서로만 보이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있었다.
내 영혼의 눈가에 붉은 눈물이 맺혔지만, 가슴속에는 더는 아무런 동요도 일지 않았다.
나는 이미 죽었고, 내 유일한 소원은 남겨진 내 딸 하은이의 행복뿐이니까.
그 소원이 하늘에 닿았던 것일까. 다음 날 아침, 하은이가 드디어 눈을 떴다.
하지만 정신적인 충격이 너무 컸던 탓인지, 아이의 인지 상태는 흐려져 있었다.
“엄마…… 물 좀 주세요…….”
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때 곁에 서 있던 서아가 서둘러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어머, 가엾어라…… 하은아, 엄마가 너한테 물도 안 줬던 거니?”
현우의 안색이 한층 더 굳어졌다.
그러나 하은이는 그저 말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몹시 슬프고, 무언가 다급해 보였지만 혀가 굳은 듯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현우는 가슴이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아이의 마른 손을 꼭 쥐었다.
“하은아, 아무 생각 하지 말고 푹 쉬어. 며칠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아빠…… 제발…… 엄마랑…… 싸우지 마…….”
하은이는 눈을 감은 채, 작은 얼굴을 눈물로 적셨다.
“하은이…… 가슴이 너무 아파요…….”
현우의 온몸이 굳어졌다. 심장이 아래로 쿵 하고 주저앉는 기분이었다.
그는 다시 휴대폰을 켜 내 메시지 창을 확인했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때 병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현우의 어머니가 들어섰다.
“임민서 그 물건은 아직도 안 나타났냐?”
“내 말 들어라, 당장 실종 신고하고 사람 찾으면 바로 이혼 서류 도장 찍어. 대를 이을 아들 하나 못 낳는 주제에 배짱만 두둑해서는, 시도 때도 없이 남편한테 대들고 엇나가기나 하고.”
“그 물건이 네 아내로서 쥐꼬리만큼이라도 마음이 있었으면, 너한테 이따위 짓은 못 해.”
“친정부모도 없고 뒷배도 없는 고아년인데, 군말 말고 이 기회에 갈라서라.”
시어머니는 누워 있는 하은이를 흘긋 바라볼 뿐, 손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현우는 어머니의 말을 무시한 채, 주먹목을 꽉 쥔 채 고집스럽게 중얼거렸다.
“그 여자가 끝까지 버티겠다면, 나도 끝까지 갈 겁니다.”
“이대로 쉽게 이혼해 주면 그 여자가 원하는 대로 되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무책임하게 제 자식을 버려둔 엄마라는 작자에게, 대체 무슨 낯짝으로 그랬는지 내 눈으로 똑똑히 따져 물을 겁니다.”
시어머니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기집애가 딴 마음 품고 도망쳤을지 누가 아냐! 왜 미련하게 붙잡고 있어!”
“옆에 서아처럼 참하고 든든한 애를 두고서 말이다. 이참에 서아랑 살림 합쳐라.”
서아는 곁에서 얼굴을 붉히며 수줍은 척 고개를 숙였다.
현우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두 사람을 향해 혐오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누가 그 여자를 기다린답니까! 단지 그 악독한 여자가 어디까지 가나 보려는 것뿐입니다. 제 발로 돌아오는 날이 바로 이혼하는 날이 될 겁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병실 문이 다시 한번 다급하게 열렸다.
현우의 비서가 숨을 헐떡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현우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겉으로는 냉정함을 가장했다.
“왜 그래. 그 여자 찾았어? 비겁하게 숨어 있다가 이제야 나타나겠대?”
비서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사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표님…… 세트장 호수 바닥에서 여성의 시신 한 구가 인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