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한 아내가 결혼식을 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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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아내가 결혼식을 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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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남편의 오랜 고향 친구 둘과 우연히 마주쳤다.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체를 하려던 찰나,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화가 내 발을 묶었다. "서...

Chương (1)

第1章

길을 걷다 남편의 오랜 고향 친구 둘과 우연히 마주쳤다.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체를 하려던 찰나,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화가 내 발을 묶었다. "서준이 녀석, 결국 고생 끝에 낙이 오네. 드디어 재혼한단다." "그러게 말이야. 전처가 명 짧은 인간이라 결혼하고 얼마 안 돼서 죽어버렸잖아." 머릿속이 하얗게 굳어버렸다. 내가 이렇게 눈을 뜨고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는데, 누가 죽었다는 건가? 그리고 재혼이라니, 그건 또 무슨 미친 소리란 말인가? 주서준과 내 아들은 이제 곧 세 살이 된다. 우리의 결혼식은 무려 5년 전에 올렸는데, 대체 그가 누구와 재혼을 한다는 말인가.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신부의 이름이 '서다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전혀 모르는 이름이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결혼식의 장소와 시간을 조용히 메모하고는, 기척 없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 주말, 나는 메모해 둔 주소대로 호텔 식장에 도착했다. 번쩍이는 조명 아래, 로비는 하객들로 북적였다. 나는 신부 측 축의금 접수대로 가, 5만 원권 몇 장을 툭 던지듯 내려놓았다. 축의금 명부를 적던 남자가 나를 올려다보며 이름을 물었다. 나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차갑게 읊조렸다. "‘죽었다 살아난 전처’라고 적어주세요." ……………… 1 명부를 적던 남자가 나를 힐끗 보더니 혀를 찼다. "좋은 날에 왜 이리 재수 없는 소리를 한대요." 대꾸할 가치도 없어 등을 돌리자마자, 예식장 입구에 큼직하게 세워진 대형 웨딩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액자 속 남자는 내 남편이 맞았고, 그 옆의 여자는 생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한눈에 봐도 억 소리 나게 비싸 보이는 웨딩 화보였다. 결혼할 당시, 나도 유명 스튜디오에서 웨딩 촬영을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서준은 이렇게 말했었다. "웨딩 사진은 그냥 형식일 뿐이야. 그렇게 비싼 돈 들여서 찍는 건 진짜 돈 낭비야."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잘 살면 그게 남는 거지, 겉치레가 뭐가 중요해." 결국 그가 고른 곳은 우리 집 골목 구석에 있는 낡은 사진관이었고, 그마저도 가장 저렴한 기본 패키지였다. 하객들 틈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전부 서준의 친척들이었다. 이 인간이 이토록 대담하고 뻔뻔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친척들 눈앞에서 대놓고 바람을 피우고, 새살림을 차려 결혼식까지 올리다니. 무심코 혼주석 쪽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전신이 얼어붙는 듯한 오한이 들었다. 혼주석에 버젓이 앉아 있는 이들은 다름 아닌 서준의 부모, 즉 나의 시부모였다. 친척들이 차례로 다가가 축하를 건넸고, 두 사람은 얼굴에 화색을 띠며 싱글붕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웅성거리는 하객들의 말소리가 내 귀로 찌르듯 꽂혔다. "다희 씨가 참 참하고 복스럽네. 서준이 앞길을 훤히 밝혀줄 상이야. 이제 두 분은 두 다리 뻗고 살 일만 남았어요!" 시어머니는 그 말에 입이 귀에 걸렸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우리 서준이가 다희를 만나고부터 일이 술술 풀린다니까. 저번 기집애는 복도 없고 명도 짧은 살성 맞은 년이었잖아. 에유, 좋은 날에 그 불길한 년 얘기는 꺼내서 뭐 해……" 시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잔인한 한마디가 내 가슴을 사정없이 도려냈다. 그 세월 동안 그들에게 온 정성을 다해 효도하고 공경했건만, 결국 그들 눈에 나는 그저 '불길한 년'에 불과했다. 내가 정말로 남편 앞길을 막는 살성을 품은 인간이었다면, 당신들 무덤가에는 벌써 잡초가 허리까지 자랐을 텐데. 시아버지가 옆에서 거들었다. "애초에 서준이가 그년이랑 결혼한다고 했을 때부터 난 반대했어!" 누구를? 나를 말하는 건가? "에이, 아버님도 참. 걔는 예단이니 혼수니 한 푼도 요구 안 하니까 우리 집 문턱이라도 밟아본 거지, 안 그랬음 어림도 없었죠." "공짜로 굴러 들어온 복치고 쓸 만한 거 없다더니 딱 그 꼴이었지. 그래서 이번엔 우리도 엄청 신경 썼잖아. 예단비만 무려 1억 5천을 줬다고! 이번 며느리는 아주 흡족해." 그 시절, 그들의 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배려해 예물도 혼수도 받지 않고 결혼한 것이 내 잘못이었을까. 그들은 나를 '공짜로 얻은 싸구려' 취급하며 비웃고 있었다. 정작 서다희가 요구한 1억 5천만 원은 기쁜 마음으로 갖다 바쳤으면서 말이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당장이라도 그들 앞으로 뛰쳐나가 따지고 싶었지만, 나는 간신히 이성을 붙잡았다. 이 더러운 빚은 조금 이따 한꺼번에 청산하리라. 발걸음을 돌려 식장 밖 대기실로 향했다. 신부 주변에는 들러리 친구들이 모여 입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희는 내가 대기실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생긋 웃으며 아는 체를 해왔다. "어머, 서준 씨 회사 동료분이세요?" 속이 뒤집히고 심장이 요동쳤지만, 진실을 폭로하고 싶은 충동을 꾹 누른 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신부 들러리 중 한 명이 다희의 손을 붙잡고, 그녀의 손목에 빛나는 비취 팔찌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다희야, 너 진짜 시집 잘 간다. 서준 씨가 네 고집 다 받아주고, 이 팔찌만 해도 천만 원은 족히 넘겠는데?" "내가 사지 말장고 말렸는데도, 평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인데 가장 좋은 걸로 해주고 싶다면서 굳이 사주더라고요." 다희는 팔찌를 매만지며 행복한 듯 미소를 지었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기분이었다. 나와 서준이 결혼할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주 소박한 커플링이라도 맞추자고 내가 먼저 제안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부질없는 걸 왜 사?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는 건데. 자기 그런 허례허식 따지는 속물 아니잖아." 내가 대놓고 서운해하자, 그는 나를 달래며 속삭였었다. "내가 돈 많이 벌면 나중에 꼭 더 좋은 걸로 해줄게." 이후 그의 커리어는 승승장구했고, 연봉도 매년 올랐다. 그리고 내게 한 약속을 지키는 듯했다. 해마다 연말 보너스를 받으면 내게 조그만 골드바를 하나씩 선물하며, 이것이 나와 아들의 든든한 미래가 되어줄 거라고 말했으니까. 그런데 잠깐, 그렇다면 그는 대체 무슨 돈으로 저 여자에게 천만 원이 넘는 팔찌를 사준 걸까? 매달 월급은 내 통장으로 들어왔고, 연말 보너스 액수도 뻔히 알고 있었는데. 의문이 꼬리를 물던 찰나, 다른 친구가 부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듣기로는 남편 분 회사 실적이 엄청나서 매년 나오는 배당금만 수억 원이라며? 저런 팔찌 열 개는 더 사주고도 남겠더라." 배당금? 결혼 생활 6년 동안 그에게 회사 지분이 있다는 사실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서준이 매달 나에게 보여주던 급여 명세서는 세후 350만 원이었다. 그중 300만 원은 생활비로 내게 보냈고, 남은 50만 원은 본인 용돈으로 썼다. 나는 그 숫자를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실제로는 매년 수억 원의 특별 배당금을 챙기고 있었다니. 그때 다희가 나를 돌아보며 살갑게 물었다. "언니는 서준 씨랑 같이 일하시니까 대충 아시죠? 서준 씨 연봉이 정확히 얼마나 돼요? 저한테만 살짝 귀띔해 주세요. 나중에 딴주머니 차지 못하게 감시해 두게요." 가슴 깊숙한 곳을 무딘 칼로 무자비하게 난도질당하는 기분이었다. 그가 얼마를 버는지, 네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가 벌어들인 막대한 돈은 대부분 너에게 흘러갔고, 내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고가의 비취 팔찌로 변해 네 손목에 걸려 있는데. 심지어 매년 나오는 수억 원의 배당금 이야기조차 나는 오늘 처음 들었다. 그런데 뻔뻔하게 내게 그의 수입을 묻다니. 입꼬리가 가늘게 경련했다. 표정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 내 굳어버린 안색을 눈치챘는지 다희가 서둘러 멋쩍게 웃으며 분위기를 전환하려 했다. "아, 동료라도 그런 개인적인 부분까지는 잘 모르실 수 있겠네요. 죄송해요." "서준 씨 회사 분들은 거의 다 뵈었는데 언니는 오늘 처음 뵙는 것 같아요. 혹시 최근에 이직하셨어요?" 나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네,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요. 그 사람 진짜 수입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릅니다." 옆에 있던 어린 친구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진짜 남편 복 터졌다. 얼굴 잘생겼지, 능력 있지, 게다가 담배도 안 피우잖아." 다희가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원래는 애연가였어요. 근데 신혼여행 가서 아기를 갖고 싶다면서 본인이 알아서 끊더라고요." 순간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임신 초기에 입덧이 너무 심해 담배 연기만 맡아도 욕지기를 하며 변기를 붙잡고 울던 날들이 있었다. 제발 담배 좀 끊어달라고 사정했을 때, 그는 영업직이라 술자리와 담배는 어쩔 수 없다며 단칼에 거절했었다. 그런데 불과 석 달 전, 그는 갑자기 마음을 고쳐먹은 듯 담뱃갑을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매일 간접흡연 때문에 기침하는 나와 아이의 건강을 위해 이번 기회에 독하게 끊어보겠다면서. 나는 바보같이 그 말에 감동의 눈물까지 흘렸었다. 결국 그 결심은 나와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새 출발을 약속한 다른 여자를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다희가 내게 수줍은 미소를 건넸다. "민망하게 해드렸네요. 친구들이 장난기가 많아서 그래요." 이성이 마비되는 듯한 분노 속에서 나도 모르게 뼈 있는 말이 튀어나갔다. "서준 씨를 그렇게 100% 신뢰하세요? 혹시 알아요, 어딘가에 다른 가정을 두고 있을지." 다희가 당황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뜻이세요?" 친구들이 먼저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본인 남편이 바람피웠다고 남의 귀한 결혼식 날 초치시는 거예요?" 나는 자조 섞인 헛웃음을 삼겼다. "어머, 용하게 맞히셨네요." 다희는 묘한 우월감이 담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서준 씨는 다른 남자들과는 달라요. 날 절대 배신할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래요? 그렇게 완벽하고 일편단심인 남자가 왜 아직도 신부 대기실에 얼굴 한 번 안 비치나요?" "대학 동창들이 멀리서 올라와서 마중 나갔어요. 곧 도착할 거예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다희는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어, 자갸! 어디쯤이야?" 친구들이 약속이나 한 듯 조용해졌고, 스피커폰을 통해 남자의 들뜬 목소리가 대기실 안으로 흘러나왔다. — 다 와 가, 여보. 드디어 너랑 결혼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떨리고 설렌다. 다희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그녀는 콧소리를 섞어 타박했다. "운전이나 조심해요. 안전운전하고 얼른 와." 통화 내용을 들은 친구들이 짓궂게 놀려대기 시작했다. "어머어머, 들었어? 만난 지 5년이나 됐고 이제 부부가 되는데도 아직도 저렇게 꿀이 떨어지네." "그럴 만도 하지. 주말부부처럼 1년 중에 고작 반년밖에 같이 못 지냈잖아."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은 듯 이명이 울렸다. 그들의 만남이 시작된 지 벌써 5년이 지났다고 했다. 내가 둔감했던 걸까, 아니면 그가 무서울 정도로 치밀했던 걸까. 아니다. 그가 잘 숨겼기보다, 내가 그를 너무 어리석게 믿었던 탓이었다. 지방 지사로 발령이 나서 승진하려면 어쩔 수 없이 한 달 주기로 장기 출장을 가야 한다는 그의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나는 그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그의 발목을 잡지 않으려 혼자 모든 짐을 짊어졌다.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독박 육아와 가사 노동을 묵묵히 버텨냈고,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불평 한마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한밤중에 아이가 고열로 앓아누웠을 때도, 타지에서 고생할 남편의 단잠을 깨울까 봐 전화를 걸지 못했다. 홀로 아이를 품에 안고 병원 응급실 차가운 의자에서 꼬박 밤을 지새웠던 그 시간 동안, 그는 다른 여자의 곁을 지키며 단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들은 부러움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진짜 서준 씨 같은 사람 또 없다. 잘생기고, 돈 잘 벌고, 담배 안 피우고, 다정하기까지 하니 세상 불공평해." "그러니까. 억지로라도 꼬투리 잡을 단점 없어? 우리 배 아프니까 단점 하나만 말해봐!" 친구들의 성화에 등 떠밀려 미소 짓던 다희가 골똘히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음…… 굳이 꼽자면, 아침마다 내 건강 챙긴다고 몸에 좋은 보양 수프를 억지로 먹여요." "귀찮지도 않은지 이른 아침부터 직접 끓여서 대령한다니까요." 들러리들의 원성이 터져 나왔고, 나는 가슴에 또 한 번 깊은 내상을 입었다. 아침마다 요리를 해준다고? 서준은 결혼 생활 6년 동안 내게 단 한 번도 아침 식사를 차려준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내가 만삭의 몸으로 거동조차 힘겨워할 때, 그가 큰소리를 치며 아침을 준비하겠다고 나선 적이 있었다. 하지만 냄비를 다 태워 먹기 일쑤였고, 내가 아무리 차근차근 설명해 주어도 요리 실력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나는 그저 그가 손재주가 없고 가사 일에 젬병인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이제야 깨달았다. 그의 요리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그 정성의 대상이 내가 아니었던 것이다. 내 심장은 서서히 차갑게 식어갔다. 친구들은 다희가 교묘하게 자랑을 늘어놓는다며 야유를 보냈다. 장난치지 말고 진짜 단점을 말하라고 재촉했다. 다희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사실 정말 조심해야 할 이야기가 있긴 해요. 너희들 나중에 서준 씨 앞에서는 절대 꺼내지 마." "사실 서준 씨, 예전에 결혼했었어." "그런데 2년 전에 전처랑 아들이……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세상을 떠났대. 그 충격이 너무 커서 서준 씨는 아직도 그 얘기만 나오면 심하게 흔들려." 그 순간, 뜨거운 피가 머리끝까지 솟구치며 주먹을 쥔 손끝이 부르르 떨렸다. 남편의 시나리오 속에서 나는 죽은 사람이 되어 있었고, 심지어 내 소중한 아들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아빠의 가슴에 매달려 "아빠 사랑해"라고 속삭이던 영리하고 사랑스러운 내 아이였다. 자신의 새로운 출발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친자식의 존재마저 지워버린 잔혹함에 치가 떨렸다. 이기적이고 악랄하기 짝이 없는 인간. 그의 가면을 갈기갈기 찢어발기지 않는다면 나와 내 아들의 억울함은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분노에 가득 찬 발걸음을 내딛으려던 찰나, 내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시어머니'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자 나는 전화를 받으며 구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 얘, 지윤아. 급하게 쓸 데가 있으니까 지금 당장 천만 원만 이체해라. "어머니, 무슨 급한 일인데 갑자기 천만 원이나 필요하세요?" — 지난번에 얘기했잖니. 아범이랑 내가 친한 지인 결혼식 돕고 있다고. 그쪽에서 우리를 수양부모로 삼고 싶다는데, 첫 대면인데 두둑하게 절값은 줘야지. 천만 원 정도는 줘야 체면이 서지 않겠니. 기왕 주는 거 좋게 좋게 빨리 좀 보내라. 지금 급하다니까. 수양부모 절값으로 천만 원을 태운다고? 내 촉이 틀림없었다. 이 돈은 지인 아들이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새신부 다희에게 줄 봉채비나 예물 값으로 쓰일 게 뻔했다. 나를 완벽하게 호구로 보고 등쳐먹으려는 속셈이었다. 내가 결혼할 때 시어머니가 쥐여준 절값은 고작 30만 원이었다. 사람이 바뀌었다고 금액의 단위가 몇십 배로 튀어 오르는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어머니, 그 지인이 나중에 두 분 상주 노릇이라도 해준답디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굳어졌다. — 너 지금 무슨 말버릇이니! 좋은 인연 맺는 일에 웬 해괴망측한 소리야? 교양 없이 그게 무슨 태도야! "지인 자식한테 몇천만 원을 절값으로 준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요.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새로운 며느리한테 비싼 봉채비라도 건네는 줄 알겠네요." 전화를 건 건너편에서 숨이 멎는 듯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이성을 잃은 시어머니의 카랑카랑한 윽박지름이 고막을 찔렀다. — 너 그 말 뼈가 있다? 평소에는 고분고분 얌전한 척하더니,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똑똑히 알아둬라. 이거 다 내 아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이야. 내가 어떻게 쓰든 네가 왈가왈부할 권리 없어! 사람을 기만하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나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어머니 아들이 매달 버는 돈 350만 원 중에 300만 원은 이 집 가계부로 들어와요. 대출금 갚고, 생활비 쓰고, 아이 키우는 데 다 들어간다고요. 잊으셨나 본데, 저도 번듯한 직장 있고 제 수입도 서준 씨 못지않아요." 시어머니는 신경질적으로 콧방귀를 꼈다. — 그래, 너 잘났다 잘났다! 그리고는 신경질적으로 통화를 끊어버렸다. 옷매무새를 다듬고 대기실로 다시 걸어가는데, 안에서 다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님께서 원래 주시려던 절값 대신 골드바 다섯 개로 주시겠대요." "살다 살다 골드바를 예물로 받는 날이 올 줄은 몰랐어요.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골드바 다섯 개라니. 서준이 지난 수년간 내게 사죄와 사랑의 징표라며 건넸던 그 골드바의 개수와 정확히 일치했다. 친구들은 아직 웃고 떠들었지만, 내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서늘해졌다. 마음껏 웃어두거라. 지금의 그 화사한 웃음이 잠시 후 얼마나 처참한 절망으로 얼룩지게 될지 똑똑히 보여줄 테니. 저 멀리 복도 끝에서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다. 서준이 여러 사람의 축하를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마침내 본식 음악이 웅장하게 울려 퍼졌고, 다희는 하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버진로드를 걷기 시작했다. 주서준은 단상 위에 서서 턱을 치켜들고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새로운 신부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희가 버진로드 중간쯤 다다랐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단상 중앙으로 걸어 올라갔다. 그리고 마이크를 움켜쥐고 얼어붙을 듯 차가운 목소리로 홀 전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여보, 결혼이라는 일생일대의 대사를 치르면서 왜 나한테는 한마디 상의도 없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