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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위장된 죽음, 나의 진짜 무덤
강성그룹이 부도나던 날, 남편 강승현은 나를 지키려다 절벽 아래로 밀려 떨어졌다. 시신조차 찾지 못한 처참한 죽음이었다. 그가 남긴 천문학적인 빚...
Chương (1)
第1章
강성그룹이 부도나던 날, 남편 강승현은 나를 지키려다 절벽 아래로 밀려 떨어졌다. 시신조차 찾지 못한 처참한 죽음이었다. 그가 남긴 천문학적인 빚을 갚기 위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지하 클럽의 무대로 내려서야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실크 슬립 한 장만 걸친 채 무대 한가운데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때, 귓가를 파고드는 익숙한 목소리가 소란스럽던 클럽 안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가장 친한 친구였던 채유라가 내 앞에 서서 입을 가린 채 생긋 웃고 있었다.
"승현 오빠, 이번에도 오빠가 이겼네!"
"서우처럼 돈 밝히는 애가 오빠 하나 때문에 이런 데서 무려 3년이나 버틸 줄은 몰랐어."
나는 굳어버린 채,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살아 돌아온 강승현을 멍하니 응시했다.
그는 아무런 동요도 없는 얼굴로 내 손에 들려 있던 현금을 가로챘다.
"서우야, 네가 사랑한 게 결국 나라는 사람 자체였다는 걸 이제야 알겠네. 유라랑 내기하느라 위장 부도에 거짓 죽음까지 꾸며서 널 속인 건 내가 미안해."
"하지만 승현의 아내였던 네가 어떻게 이런 천박한 곳에서 몸을 흔들며 얼굴을 팔 수 있지?"
"됐다. 이 모든 게 나를 위해서였다니 이해는 하마. 하지만 이런 더러운 돈은 남겨두지 마."
허공으로 흩날리는 지폐들을 바라보며, 심장이 통째로 도려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에게는 그저 장난삼아 던진 달콤한 내기였을지 몰라도, 그 장난 때문에 나는 세계적인 무대를 누비던 수석 무용수에서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한 댄서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그가 남겼다는 막대한 빚은 내가 이미 오래전에 모두 갚았다는 것을.
그리고 방금 그가 흩뿌려버린 돈은, 위암 판정을 받은 내가 그와 함께 묻힐 무덤 자리를 사기 위해 절박하게 모아둔 마지막 적금이었다는 사실을.
…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바닥에 흩어진 지폐들을 주우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승현이 내 손목을 억세게 낚아챘다.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줍지 마! 네 꼴을 좀 봐. 어떻게 이렇게까지 망가질 수가 있어?!"
뒤늦게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나는 내 초라한 몰골을 내려다보다가, 결국 헛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침묵하자, 그의 눈동자에 신경질적인 분노가 스쳤다.
"알았어. 내가 사과할게. 됐지?"
옆에 서 있던 유라가 눈시울을 붉히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서우야, 너무 화내지 마. 처음에 네가 그런 일만 없었어도... 승현 오빠가 굳이 이런 식으로 널 시험해 봤겠어?"
"오빠는 여전히 널 사랑하잖아. 그러니까 오빠 화나게 하지 마, 응?"
나는 유라를 바라보았다. 입가에는 여전히 허탈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럼 내가 고마워해야 하는 거니? 너희 둘이 짜고 나를 이 바닥까지 끌어내려 줘서 감사하다고 절이라도 해야 해?"
유라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그녀는 억울하다는 듯 눈물을 글썽이며 승현의 소매를 붙잡았다.
"아니야, 서우야... 난 그런 뜻이..."
"그만해!"
승현의 눈빛에서 온기가 싹 사라졌다. 그는 매몰차게 나를 밀쳐냈다.
"네가 이 지경이 된 건, 네 스스로 천해지기를 선택했기 때문이야!"
중심을 잃은 나는 차가운 바닥 위로 볼품없이 쓰러졌다.
위장이 뒤틀리며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고, 목구멍으로 비릿하고 뜨거운 액체가 울컥 치밀었다.
나는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그 메스꺼움을 억지로 삼켜냈다.
승현의 눈빛이 복잡하게 흔들렸다. 본능적으로 손을 뻗으려다 이내 거두어들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가 사과까지 했는데 도대체 뭘 더 바라는 거야? 꼭 이렇게 모두의 얼굴을 붉혀야 속이 시원하겠어?"
나는 그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고통이 한 차례 가라앉기를 기다린 뒤, 간신히 몸을 일으켜 흩어진 만 원짜리 지폐들을 한 장씩 다시 줍기 시작했다.
승현은 짜증이 머리끝까지 난 듯 다가와, 내가 차곡차곡 정리한 돈뭉치를 다시 빼앗아 들었다.
"말 안 들려? 이런 더러운 돈 만지지 말라고 했잖아!"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차올랐다.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이야... 그게 왜 더러워..."
그는 내 말을 신경질적으로 가로막았다.
"네가 번 돈? 이런 데서 옷이나 벗고 춤추면서, 몸이라도 팔아 번 돈이?"
그가 말을 멈췄다. 하얗게 질려버린 내 얼굴을 보더니, 마음이 불편한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한서우! 명색이 국립 발레단 수석 무용수였던 네가, 고작 이런 데서 딴따라 짓이나 하고 있는 게 정말 나 때문이라고?"
유라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서우야. 아무리 돈이 급해도 그렇지, 어떻게 자신을 이렇게까지 망가뜨릴 수가 있어."
그녀는 말을 아끼며 내 드러난 어깨 위로 멸시가 담긴 시선을 스치듯 던졌다.
그 부추김에 힘을 얻은 듯, 승현이 차가운 눈으로 나를 쏘아붙였다.
"조금이라도 자존심이 있었다면 다른 일을 찾았겠지. 그냥 여기가 쉽게, 빨리 벌리니까 주저앉은 거잖아?"
멍해진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럼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했을까? 내가 뭘 더 할 수 있었는데? 다시 발레단으로 돌아가 수석 자리에 서기라도 할까?"
나는 몸을 일으켜, 그와 유라가 보는 앞에서 절뚝거리는 오른쪽 다리로 겨우 두 걸음을 내디뎠다.
"강승현, 나 장애인이야. 이제 평생 춤 못 춰."
3년 전, 승현이 거짓 죽음으로 자취를 감추었을 때, 빚쟁이들은 내 집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은 내 발목을 뼈가 으스러지도록 짓밟았고, 나를 계단 아래로 굴려 버렸다.
차가운 병실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뱃속의 아이를 잃었고, 다시는 무대에 설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다.
나는 시선을 내린 채, 손을 뻗어 그의 손등에 쥐어져 있던 내 돈을 거칠게 빼앗아 왔다.
이 돈은 내게 꼭 필요했다.
살아서는 더없이 비참했으니, 이제 죽음을 앞둔 지금, 내 몸 누일 작은 무덤 하나는 스스로 사서 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승현의 눈이 순식간에 붉게 충혈되었다. 그는 옆에 있던 대형 스피커를 신경질적으로 걷어찼다.
"어떤 새끼가 그랬어?! 누가 널 이 지경으로 만들었냐고!"
그때 클럽 사장이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와, 슬쩍 유라와 눈빛을 교환했다.
"강 회장님, 그때 이 여자가 어떤 돈 많은 영감탱이를 꼬셨다가, 그 집 본처한테 걸려서 두들겨 맞은 겁니다..."
"저희 클럽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일입니다!"
머릿속의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나는 사장을 향해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거짓말 마! 난 그런 적 없어! 너희가 다 지어낸 얘기잖아!"
승현은 멍하니 서 있더니, 이내 혐오와 경멸로 가득 찬 눈빛을 띠며 내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
"한서우, 너 정말 더럽고 천하구나."
나는 차가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참아왔던 통증이 폭발하듯 밀려왔고, 고개를 돌려 붉은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의식이 멀어져 가는 와중에, 승현이 사색이 되어 내게로 달려오는 실루엣이 흐릿하게 보였다.
나는 미련 없이 눈을 감았다.
만약 신이 있다면, 그를 만나기 전으로 나를 돌려놓아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낯선 병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승현이 차트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은 지극히 복잡해 보였다.
"내가 널 얼마나 귀하게 키웠는데... 어떻게 네 몸을 그렇게까지 망가뜨릴 수가 있어?"
나는 멍해진 채 손가락을 미세하게 까딱였다.
그가 내 병명을 알아버린 걸까?
그때 유라가 눈물을 글썽이며 내 손을 잡았다.
"서우야, 이제 고집 그만 부려. 의사 선생님이 위궤양이 너무 심해졌대. 여기서 더 무리하면 정말 몸이 무너질 수도 있어."
나는 유라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녀의 눈동자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초조함과 안도감을 포착한 순간, 모든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지만 나는 굳이 진실을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너무 지쳤다. 그저 집으로 가고 싶었다.
비록 지금 내가 사는 곳은 3평 남짓한 눅눅한 반지하 단칸방이었지만, 이 가식적인 얼굴들 앞에 서 있는 것보다는 백배 나았다.
나는 링거 바늘이 꽂힌 손등을 들어 올려, 망설임 없이 바늘을 뽑아냈다. 목소리는 더없이 건조했다.
"내가 알아서 해."
승현이 거칠게 내 손을 내리누르며 미간을 한껏 찌푸렸다.
"고집 피우지 마! 너 지금 아픈 거 안 보여? 치료부터 받아!"
나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화를 낼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아, 그저 가만히 한숨을 쉴 뿐이었다.
"강승현, 나 돈 없어."
나는 협탁 위에 놓인 낡은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 은행 앱의 잔액 화면을 보여주었다.
14,230원.
이것이 내가 가진 전 재산이었다.
나는 화려하고 안락한 1인실 병실을 둘러보며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여기 엄청 비싸겠지? 하루에 수십만 원은 할 텐데. 내 목숨값은 싸구려라, 이런 과분한 곳에는 어울리지 않아..."
내 말이 그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듯, 승현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누가 네 목숨이 싸구려래? 한서우, 내가 있는 한 넌 평생 귀하게 살 거야!"
그는 충동적으로 말을 내뱉고는 스스로도 놀란 듯 멈칫했다.
병실 안은 순식간에 차가운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시선을 내린 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 역시 과거의 그날을 떠올렸음을 알았기에.
중학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나를 귀찮은 짐짝 취급했다. 하루 한 끼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해 늘 굶주려 있던 내게, 승현은 첫눈에 반했다며 불쑥 다가왔었다.
"너 되게 불쌍하다. 갈 데 없어? 내가 평생 책임져 줄까?"
나는 겁에 질려 웅크렸지만, 그는 말하는 대로 실천했다. 정말로 나를 돌봐주기 시작한 것이다.
매일 아침 따뜻한 샌드위치를 챙겨주었고, 방과 후에는 항상 내 손을 꼭 쥐고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유라 역시 곧 내게 접근해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주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녀의 웃음 뒤에 숨겨진 차가운 적의를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 나는 학교 화장실 칸에 갇혀 머리 위로 쏟아지는 찬물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문밖에서는 낄낄거리는 조롱이 울려 퍼졌다.
"한서우, 진짜 불쌍한 년. 거지새끼처럼 강승현 옆에서 꼬리나 흔들고 말이야. 보기만 해도 토 나와!"
나는 비참하게 몸을 웅크린 채 숨을 죽였다.
그때 화장실 문이 쾅 하고 부서지듯 열리며, 서늘한 표정의 승현이 나타났다.
"누가 한서우가 불쌍하대? 내가 있는 한, 서우는 세상에서 제일 귀하게 살 거야!"
그는 물에 젖은 나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아 올리며 다정하게 달래주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유라의 눈빛은 마치 독을 바른 칼날처럼 나를 찌르고 있었다.
그 시절의 내게 승현은 구원 그 자체였다.
그래서 나는 망설임 없이 그의 손을 꽉 잡았다.
그는 내 등을 토닥이며 속삭였다.
"평생 내가 네 곁에 있을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줄게."
나는 그 말을 믿었고, 그는 실제로도 그렇게 해주었다.
나를 공주처럼 아끼며 어머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고, 오직 무용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가치 있는 존재라는 걸 느꼈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강성그룹의 핵심 기술 문서가 유출되면서 자금줄이 막혀 회사가 파산 위기에 처했다.
승현은 미친 듯이 배후를 추적했고, 모든 단서는 결국 나를 가리켰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 채 결백을 주장했지만, 오랫동안 연락 두절이었던 어머니의 계좌에 갑자기 입금된 50억 원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온몸을 떨었다.
"너는 모르는 일이지? 네가 그런 거 아니지, 그렇지?"
나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눈을 맞추었다.
"나 아니야, 승현아. 제발 날 믿어줘!"
그는 오랜 침묵 끝에 나를 품에 안아주었다.
그때의 나는 모든 오해가 풀린 줄로만 알았다.
그가 단 한 번도 "널 믿어"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는 사실은 망각한 채로.
손등을 찌르는 통증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붉은 피가 수액 줄을 타고 거꾸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바늘을 움켜쥐고 망설임 없이 뽑아 버렸다. 피가 뚝뚝 떨어졌지만 개의치 않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발을 딛기도 전에 위장이 칼로 찌르는 듯 뒤틀리며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바닥으로 쓰러지려는 찰나, 익숙한 우디 향과 함께 따뜻한 손길이 내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그를 밀쳐내고, 벽을 짚은 채 격렬하게 헛구역질을 해댔다.
승현의 얼굴이 흙빛으로 굳어졌다. 그는 내 손목을 잡아채 침대 위로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한서우! 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그는 턱 끝에 핏대를 세운 채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때 네가 강성그룹을 통째로 날려 먹을 뻔했을 때도 난 널 탓하지 않았어!"
"그저 그때 그 50억만 갚아주면, 서로 과거는 묻고 다시 시작하자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
목구멍에서 다시 비릿한 피 냄새가 올라왔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감각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는 대답 대신 간신히 주머니에서 싸구려 진통제를 꺼내 물도 없이 삼켰다.
한참을 웅크려 고통을 흘려보낸 후에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병세가 심각해진 모양이었다. 이제는 진통제마저 제대로 듣지 않았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승현아. 내가 그때 너무 욕심을 부렸나 봐..."
그가 주던 온기가, 그 다정함이 너무나 탐이 나서 과분한 욕심을 부렸던 대가겠지.
나는 흉측한 상처로 가득한 내 발목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돈은 이미 다 갚았어. 대가도 치를 만큼 치렀고... 그러니까 제발, 나 좀 집에 가게 해줘."
옆에 있던 유라가 그의 소매를 살며시 잡아당겼다.
"승현 오빠, 일단 나가서 좀 쉬어. 내가 서우랑 이야기해 볼게, 응?"
승현은 무섭도록 굳어진 얼굴로 뒤를 돌아 병실을 나갔다.
병실 안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나는 갈라진 목소리로 먼저 침묵을 깼다.
"전부 네 짓이었지?"
유라가 낮게 콧노래를 부르며 생긋 웃었다.
"눈치는 채고 있었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늘 평범했던 내가 학교에서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했던 것.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어머니가 갑자기 내 명의로 50억이라는 거금을 쥘 수 있었던 것.
아무리 바보라 해도 이 모든 배후에 누가 있는지 모를 리 없었다.
그때 병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낯선 사내들이 들이닥쳐 나를 침대 밑으로 끌어내려 바닥에 무릎 꿇렸다.
유라가 다가와 내 뺨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녀의 눈빛이 광기로 일렁였다.
"한서우, 이 길바닥 유기견 같은 년이 감히 누굴 넘봐? 승현 오빠는 처음부터 내 거였어. 천박한 년!"
뺨을 때리는 둔탁한 마찰음이 병실을 가득 채웠다.
내 뺨은 순식간에 부어올랐고, 유라는 비참하게 일그러진 내 얼굴을 감상하며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핸드백에서 천천히 초음파 사진 한 장을 꺼내 내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이거 기억나, 서우야? 네가 채 낳지도 못하고 잃어버린 그 핏덩이 사진."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나는 나를 짓누르던 손길을 미친 듯이 뿌리치고 초음파 사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는 콧방귀를 끼며 내 가슴팍을 사정없이 걷어찼다.
침대 모서리에 부딪히며 입안 가득 고여있던 선혈이 바닥으로 울컥 쏟아져 내렸다.
나는 그녀를 죽일 듯 노려보았지만, 다시 사내들에게 붙잡혀 바닥에 처박혔다. 무자비한 폭행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나와 인연을 맺지 못하고 떠난 아이. 내 유일한 혈육이자 전부였던 존재.
단 4달 동안 내 품에 머물다 세상 빛도 보지 못하고 사라진 아이의 흔적은, 오직 이 한 장의 사진뿐이었다.
흘러내린 피가 눈물과 섞여 바닥을 붉게 적셨다.
나는 피를 토해내며 갈라진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돌려줘... 채유라, 제발 돌려줘..."
시야가 붉게 물들며 눈앞의 풍경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때, 문밖에서 분노에 찬 고함이 들려왔다.
"뭐 하는 짓거리들이야? 당장 꺼져!"
승현이 달려와 나를 품에 안았다. 그의 눈동자에 다급함이 서려 있었다.
유라는 찰나의 당황을 지우고는 금세 눈시울을 붉히며 가련한 척 연기를 시작했다.
"승현 오빠, 이 사람들이 그러는데... 서우가 밖에서 다른 유부남이랑 바람피워서 사생아까지 가졌었대..."
그녀는 말을 얼버무리며 다급히 손 뒤로 초음파 사진을 감추려 했다.
나를 안고 있던 그의 품이 일순간 딱딱하게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