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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자신에게 거는 전화
아이를 낳고 바로 이튿날, 나는 번호를 잘못 눌렀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3년 후의 나 자신과 전화가 연결되었다. 갓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고, 나는 잔...
Chương (1)
第1章
아이를 낳고 바로 이튿날, 나는 번호를 잘못 눌렀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3년 후의 나 자신과 전화가 연결되었다.
갓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고, 나는 잔뜩 들뜬 목소리로 화면 속 나에게 아이를 보여주었다.
“3년 뒤에 우리 애기 말은 잘 들어? 예쁘게 자랐어?”
그리고 조금 수줍게 덧붙였다.
“저기…… 3년 뒤에도 나랑 태주 씨는 여전히 엄청 행복하지?”
화면 속 ‘나’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담긴 절절한 그리움은 금방이라도 흘러넘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온 목소리는 나를 끝없는 심연으로 밀어 넣었다.
“너 방금 아이 낳았는데, 왜 하태주가 네 곁에 없는지 알아?”
“지금 이 순간, 그는 바로 옆 병실에 있거든. 원래대로라면 교도소에 있어야 할 가짜 딸, 강서윤이 방금 그의 아이를 낳았으니까.”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고, 내 얼굴에서 웃음기가 서서히 걷혔다.
“나중에 하태주는 제 혼외자를 호적에 올리려고, 납치범을 사주해 내 아이를 살해하는 자작극을 벌여.”
화면이 갑자기 세차게 흔들렸다. 화면 속 ‘나’는 어느 고층 빌딩 옥상에 서 있었고, 수화기 너머로 거친 바람 소리가 윙윙 울렸다.
“내 아이는 겨우 세 살이었어. 그 어둡고 차가운 폐공장에서 숨을 거뒀지. 부검할 때 부검의마저 눈물을 흘릴 정도였어. 이제, 나도 아이를 따라가려고 해.”
……
툭, 하고 전화가 끊겼다. 육중한 무언가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거대한 소음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했다.
나는 병실 침대 위에서 몸을 웅크린 채 품 안의 아기를 필사적으로 끌어안았다.
태동을 느끼며 내 배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던 하태주의 다정한 미소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런 그가 어떻게 내 원수와 바람을 피우고, 그 여자의 아이를 위해 우리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단 말인가?
그때 병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하태주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의 시선이 병실 안을 빠르게 훑더니, 이내 내 품에 안긴 아기에게 멈췄다.
그의 얼굴 선은 기억 속보다 조금 더 성숙해져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묘한 복잡함이 서려 있었다.
설마……
“나야. 3년 후에서 온 하태주.”
내 표정을 본 그는 전혀 놀라지 않은 듯 담담하게 말했다.
“전혀 놀라지 않는 눈치네.”
이불을 쥔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나는 애써 요동치는 감정을 누르며 물었다.
“당신들…… 언제부터였어?”
그가 생각에 잠긴 듯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을 보며 내 심장은 바짝 타들어 갔다.
그가 아니라고 부인해 주기를, 방금 보고 들은 모든 것이 그저 악몽일 뿐이라고 말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하태주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지독하리만치 무심했다.
“미안, 잘 기억 안 나네.”
“굳이 꼽자면, 우리 사귀기 시작한 지 한 두 달쯤 되었을 때였나? 서윤이가 먼저 내 침대로 들어왔던 것 같아.”
“한번은 네가 바로 옆방에 자고 있을 때였는데. 내가 그랬잖아, 너 감기약 먹고 깊이 잠들었다고. 그런데도 서윤이는 엄청 긴장하더라고.”
그렇다면 강서윤은 처음부터 교도소에 간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태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기만했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나는 머리맡에 있던 유리컵을 그를 향해 사정없이 집어던졌다.
내 처절한 비명 속으로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섞여 들었다.
“하태주, 대체 왜! 강서윤이 우리 부모님을 차로 받아 죽인 걸 뻔히 알면서 어떻게 네가!”
나는 어릴 적 버려져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다 지금의 양부모님을 만났다.
두 분은 나를 금지옥엽으로 키워 주셨다. 하지만 어느 날, 강서윤이 도로에서 광란의 질주를 벌이다 두 분을 치어 숨지게 했다.
분노와 슬픔에 쌈 싸여 경찰에 신고하고 그 여자가 죗값을 치르게 하려 몸부림쳤다.
그러나 강가의 세력은 너무나 막강했다. 우연히 내가 강가의 진짜 잃어버린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내 목숨조차 보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환자복 깃을 거칠게 잡아 뜯자, 강서윤이 남긴 흉측한 상처가 드러났다. 나는 목이 터져라 울부짖었다.
“나를 보면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잖아! 나 대신 복수해 주겠다고 약속했잖아!”
“근데 왜 그랬어, 왜!”
하태주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처음엔 정말 복수해 주려고 그 여자를 납치했지. 그런데 그 대담한 여자가 무서워하기는커녕, 내 품으로 뛰어들어 입을 맞추더라고.”
“밖에서 몇 번이나 관계를 가졌는지 몰라. 너보다 훨씬 잘 느끼고 개방적이더군.”
“너처럼 고리타분하게 자란 여자는 평생 이해 못 하겠지.”
“그 짓이 얼마나 짜릿하고 자극적이었는지 말이야.”
제왕절개 수술을 한 부위가 불타는 듯 아려와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가해자에게 마땅한 벌을 내리기 위해 나는 몇 번이고 경찰서를 드나들고, 소송을 제기하고, 1인 시위를 벌였다.
강서윤이 보낸 깡패들에게 두들겨 맞고, 강제로 정신병원에 갇혀 포기하라는 협박을 당하며 피눈물을 흘릴 때.
하태주는 강서윤과 한 침대에 누워 사랑을 속삭이고, 아이까지 가졌던 것이다.
“이제 그만 울어. 정 억울하면 내가 서윤이더러 사과하라고 할 테니까.”
하태주는 예전처럼 나를 품에 안고 눈물을 닦아주려 했다.
마치 내일 날씨가 어떻냐는 듯 부드럽고 평온한 말투였다.
그리고 내가 버둥거리며 반항하는 틈을 타, 내 품 안의 아이를 낚아챘다.
품이 순식간에 허해지자, 나는 아연실색하며 소리쳤다.
“하태주, 지금 뭐 하는 짓이야!”
하태주는 아이의 뺨을 아무렇게나 쿡쿡 찔렀고,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아, 깜빡하고 말을 안 해줬네.”
“내가 이 고생을 하며 3년 전으로 돌아온 건, 이 아이를 미리 치워버리기 위해서야.”
하태주는 회상에 잠긴 듯, 강서윤을 향한 애틋함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는 모르겠지만, 서윤이가 출산 후에 심각한 산후우울증을 앓았어. 우리 아이 울음소리가 조금만 커져도 극도로 발작할 정도로 말이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납치 자작극을 꾸며 이 아이를 죽은 것으로 위장하려 했던 건데.”
“생각해 보니 더 좋은 방법이 있더라고.”
그는 한 손으로 아이를 안은 채, 다른 한 손으로 내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쓸어 넘겨주었다.
“바로 과거로 돌아와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거지. 서윤이가 알아채기 전에, 우리 아이를 멀리 아주 멀리 보내버리는 거야.”
보내다니? 어디로?
하태주의 입에서 나온 목적지를 들은 나는 눈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정신병원!
강서윤을 위해, 그는 우리의 아이를, 자신의 친딸을……
나를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고문했던 그 지옥 구덩이로 밀어 넣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침대 아래로 기어 내려갔다.
“내 아이 내놔! 당장 내놔!”
실밥이 터져 환자복이 순식간에 붉은 피로 물들었다.
하태주가 한 걸음 물러섰고, 나는 겨우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채 꺼져가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제발 부탁이야, 내 아이만 돌려줘. 이혼해 줄게. 그 자릴 강서윤한테 다 넘겨줄게.”
“아이 데리고 멀리 떠나서 다신 당신들 눈앞에 안 나타날게. 제발……”
하태주의 눈에 언뜻 흔들림이 스쳤다. 그가 몸을 숙여 나를 부축하려던 순간이었다.
“태주 씨……”
갑자기 병실 문이 열리며 강서윤이 눈을 비비며 들어왔다.
“태주 씨, 나 악몽 꿨어. 당신한테 다른 아이가 있는 꿈을……”
그녀는 하태주의 품에 안긴 아기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그게 누구야!”
“내 아이 말고 또 다른 자식이 있는 거야? 그런 거야?!”
하태주의 눈에 서렸던 일말의 망설임이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는 내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나를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그리고 신속하게 아이를 경호원에게 넘기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강서윤을 달랬다.
“서윤아, 이건 그냥 분만실에서 아무나 데려온 쓸데없는 애야. 신경 쓸 거 없어.”
“아니야, 아니야!”
복부의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무릅쓰고 나는 앞으로 기어갔다.
“내 아이 데려가지 마! 안 돼!”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양부모님이 그 자리에서 차에 치여 돌아가셨을 때처럼, 지금 내 아이를 빼앗기는 순간에도 나는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하태주가 보지 못하는 틈을 타, 강서윤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스쳤다.
그녀는 떼를 쓰며 악을 쓰기 시작했다.
“하태주! 나를 바보로 아는 거야? 저 여자가 지 애라고 악을 쓰잖아!”
분노가 이성을 마비시켰고, 육체의 고통마저 집어삼켰다.
나는 바닥을 짚고 일어나 온 힘을 다해 내 가정을 짓밟은 그 악녀에게 달려들었다.
“강서윤, 네가 감히…… 이 뻔뻔한 가짜 년, 죽여버릴 거야!”
퍽, 하태주의 무자비한 손바닥이 내 뺨을 후려쳤고, 나는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말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이어 그는 가면을 쓰듯 부드러운 표정으로 강서윤을 안아주며 속삭였다.
“서윤아, 저 미친년이 하는 소리 들을 필요 없어. 정신이 아픈 애라 헛소리하는 거야.”
강서윤의 흐느낌이 뚝 멈췄다. 그녀는 바닥에 쓰러진 나를 내려다보며 잔인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 그럼 옛날처럼 다시 정신병원에 처넣어.”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하태주 역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내가 예전 정신병원에서 어떤 비인간적인 학대를 받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연애 시절, 나는 그의 강한 포옹조차 거부하곤 했다. 온몸을 조여오는 그 압박감이 정신병원에서 반항적인 환자들을 묶어두던 구속대를 연상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하태주는 나를 품에 부드럽게 안고 등을 토닥이며 속삭였었다.
‘무서워하지 마, 다은아. 내가 여기 있잖아.’
‘아무도 너를 다치게 하지 못해.’
하지만 이제 그 구원자가 가장 잔인한 가해자가 되었다.
하태주는 내 눈에 서린 깊은 절망을 보며 차마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서윤아, 그래도 네 동생이잖아. 정신병원에 대한 발작 증세가 심한 걸 뻔히 알면서……”
강서윤은 즉시 눈물을 쏟아내며 벽을 향해 달려가 머리를 박으려 했다.
“당신 날 사랑하지 않는구나!”
“나도 싫고 내 아이도 싫은 거지? 그럼 우리 둘 다 죽어버리면 되잖아! 그냥 죽을래!”
하태주가 다급하게 그녀의 허리를 안아 채며 빌었다.
“내가 어떻게 널 사랑하지 않겠어?”
“그런 소리 마, 내 가슴이 찢어져.”
한참을 달랜 끝에야 강서윤이 간신히 진정되었다.
하태주는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더니, 내 머리를 쓸어내리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다은아, 날 위해서라도 제발 얌전히 있어 주면 안 될까?”
얌전히.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강가에 마지못해 거두어졌을 때, 강가의 부모 역시 내게 그렇게 말했다.
얌전히, 착하게 굴어라. 우리 곤란하게 만들지 말고.
강서윤의 말 한마디 때문에.
예전에는 부모님의 억울한 죽음을 가슴에 묻어야 했고,
지금은 십 개월 동안 배 속에서 힘겹게 키워 낳은 아이를 포기해야 한다.
왜. 대체 왜 내가 그래야 하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경호원들에게 사지가 붙들려 끌려나가는 순간에도, 나는 두 사람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하태주, 넌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야.”
하태주는 내 얼굴에 어린 고통과 절망, 그리고 서릿발 같은 증오를 보며 멈칫했다.
5년의 연애 동안 그가 가장 자주 본 것은, 턱을 괴고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나의 모습이었다.
그는 알았다. 자신이 손만 뻗으면 내가 언제든 그의 품으로 달려갈 것이라는 걸.
그렇기에 하태주는 본능적으로 주춤했다.
자신만을 바라보던 여자를 이렇게까지 짓밟아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은 모양이었다.
“잠깐……”
“하태주! 0.1초라도 더 망설이면, 나 지금 당장 이 아이 안고 여기서 뛰어내릴 거야!”
강서윤의 협박에 하태주는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당장 끌어내!”
그렇게 나는 정신병원에 처박혀 사흘을 보냈다.
그곳의 관리자들은 나처럼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을 피 말리게 하는 방법을 수만 가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육체적인 고통은 더 이상 내 마음에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다.
나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3년 후의 ‘나’가 스스로 몸을 던진 장소였다.
그리고 그 비극의 장소는, 지금의 내가 그들을 지옥으로 끌고 내려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터였다.
나흘째 되던 날 새벽.
나는 병원 밖으로 끌려 나왔다.
하태주는 내 몸에 새로 생긴 상처들을 보며 안타까운 듯 혀를 찼다.
“몸도 성치 않은 애가 왜 사서 고생을 해…… 얌전히 있었으면 서윤이도 자극받지 않았잖아.”
내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하태주, 그거 알아? 사실 난 이미 죽었어.”
“네가 죽인 거야.”
하태주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멀쩡히 제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연고 하나를 내던지며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진짜 미쳤군.”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실소했다.
하태주는 모르는 걸까?
그의 앞에서 나는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내가 이미 죽었다는 것도, 그가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것도 모두 진실이었다.
나는 도망쳤다.
모두의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길바닥을 헤매며 눈에 보이는 정신병원들을 샅샅이 뒤졌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발바닥이 짓무르고 온몸의 진이 빠질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마지막 정신병원에서도 아이의 흔적을 찾지 못해 절망하고 있을 때, 머리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강서윤의 비열하게 일그러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꼴 좋네. 길거리에 버려진 유기견 꼴이야.”
그녀는 내 정강이를 구두 끝으로 툭툭 차며 비웃었다.
“너 같은 년이 가만히 안 있을 줄 알고 태주 씨한테 미리 손을 써뒀지. 아이는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겼어.”
“내가 경비원들의 눈을 피하게 해 준 것도 다 계획된 거였단다.”
“네까짓 게 날 이길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려고 말이야.”
강서윤은 천천히 몸을 숙였다. 그녀의 날카로운 손톱이 내 살갗을 파고들며 붉은 핏자국을 남겼다.
“네 부모가 죽은 게 뭐 어때서? 너희 모녀가 찢어진 게 뭐 어때서? 내가 마음먹은 이상, 넌 평생 내 밑바닥에서 기어 다녀야 해.”
심장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에 꽉 쥐인 채 짓겨지는 것 같았다.
그 안은 핏빛 증오와 살의로 가득 찼다.
강서윤은 만족스러운 듯 몸을 일으키며 경호원들에게 손짓했다.
“데리고 가.”
도착한 곳은 공동묘지였다. 저 멀리 부모님의 묘비 앞에 하태주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밤새 헤맨 탓에 목소리는 쇳소리처럼 갈라져 나왔다.
“여기서……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하태주는 몹시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은아, 사흘 동안 갇혀 있으면서도 아직 복종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구나.”
“서윤이 말이 맞아. 주인에게 으르렁거리는 개는 흠씬 매를 맞아야만 비로소 기는 법을 배우지.”
그가 잔인하게 손을 흔들었다.
“파헤쳐.”
체계적으로 훈련된 경호원들이 삽을 들고 부모님의 묘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눈앞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하태주! 미쳤어?! 당장 멈춰!”
강서윤이 나를 바닥에 짓누르며 귓가에 속삭였다.
“이게 네 오만에 대한 대가야.”
“너 때문에 네 부모는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는 거야. 우리 손에 묘가 파헤쳐 지고 한 줌의 재가 되어 흩어지겠지.”
그 끔찍한 고문은 무려 두 시간 동안 이어졌다.
강서윤은 내 눈꺼풀을 억지로 뒤집어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하태주는 방관자처럼 곁에 서서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놀이가 끝나자 강서윤은 나를 쓰레기처럼 바닥에 버려두고, 생긋 웃으며 하태주의 팔짱을 꼈다.
“태주 오빠, 우리 집에 가자. 엄마가 갈비탕 끓여 놨대. 진짜 맛있어.”
두 사람은 다정하게 묘지를 빠져나갔다. 하태주는 단 한 번도 내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나는 흙바닥에 쓰러진 채, 손가락 사이로 허무하게 흘러내리는 부모님의 유골 가루를 보며 피눈물을 흘렸다.
“엄마, 아빠…… 조금만 기다려요.”
빌딩 옥상.
나는 내 아이를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겼다.
그리고 휴대폰을 켜고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
모아둔 전 재산을 털어 트래픽을 구매하자, 순식간에 수만 명의 시청자가 몰려들었다.
댓글 창을 차단한 채, 화면을 똑바로 응시하며 내 잔인한 잔혹사를 담담히 읊조리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뺑소니로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으나 법의 심판을 피한 가해자들의 이야기.
갓 낳은 아이를 빼앗기고 강제로 정신병원에 처박혀 짐승만도 못한 학대를 당한 이야기.
조회수와 시청자 수가 폭발적으로 치솟았다.
그때 옥상 문이 거칠게 열리며, 사색이 된 하태주와 강서윤이 뛰어 들어왔다.
“너 지금 무슨 짓거리야! 당장 꺼!”
나는 가볍게 웃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양팔을 벌린 채, 경악하는 사람들의 시선 속으로 몸을 던졌다.
하얗게 질려 비명을 지르는 하태주의 얼굴을 보며, 추락하는 내 입가에 얇은 미소가 걸렸다.
하태주, 말했잖아. 나 네 앞에서는 거짓말 안 해.
자, 이제 같이 파멸할 시간이야.
“다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