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스웨터를 입은 상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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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스웨터를 입은 상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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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이 든 통장은 오빠한테. 그리고 이 스웨터는 네가 가져라.” 할머니는 오빠에게 빳빳한 통장을 건넨 뒤, 옷장 구석에서 낡은 스웨터 하나를 꺼내 ...

Chương (1)

第1章

“2억이 든 통장은 오빠한테. 그리고 이 스웨터는 네가 가져라.” 할머니는 오빠에게 빳빳한 통장을 건넨 뒤, 옷장 구석에서 낡은 스웨터 하나를 꺼내 내 앞에 툭 던졌다. 우중충한 쥐색. 여기저기 일어난 보풀. 목덜미가 다 늘어난 스웨터. 할아버지가 생전에 십 년도 넘게 입으셨던 바로 그 옷이었다. 거실에는 열 명이 넘는 친척들이 빙 둘러앉아 있었다. 누구 하나 그 배분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내 앞에 던져진 낡은 스웨터를 보았다. 그리고 오빠 손에 들린 통장을 보았다. 2억 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바닥에 떨어진 스웨터를 주워, 품에 조용히 안았다. 그들은 모른다. 이 낡은 스웨터가, 그 2억 원이라는 돈보다 훨씬 더 무겁다는 것을. 1.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임종을 지킨 건 나였다. 새벽 3시,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 나는 집에서 40분을 미친 듯이 운전해 병원으로 달려갔다. 어두운 1인실 병실에는 할아버지와 나, 단둘뿐이었다. 할아버지는 이미 말씀을 하실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의 앙상한 손은 내 옷소매를 꽉 쥐고 있었다. 아주 강하게. 마치 내가 떠나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나는 그 거칠고 차가운 손을 맞잡았다. “할아버지, 저 여기 있어요. 윤서 여기 있어요.” 할아버지가 나를 바라보았다. 마른입술이 달싹였지만, 소리는 새어 나오지 않았다. 이내, 내 옷소매를 쥐고 있던 손에서 스르르 힘이 풀렸다. 나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는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빠는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병원에 나타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로 산 듯한 깔끔한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나는 병원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워 눈이 토끼처럼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오빠는 영안실에 안치된 할아버지의 시신을 힐끗 보더니 딱 한 마디를 뱉었다. “가셨네.” 그러고는 곧장 할머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통장은요?” 그게 오빠가 병원에 도착해서 꺼낸 첫 번째 질문이었다. ‘할아버지 가시는 길은 편안하셨어?’가 아니었다. ‘그동안 간병하느라 고생 많았지’도 아니었다. ‘통장은요?’ 였다. 할머니는 그 질문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눈치였다. 그녀는 눈가를 대충 훔치며 대답했다. “집에 가서 얘기하자.” 장례를 치르고 삼우제가 끝난 다음 날. 할머니는 본가 거실에 다과상을 차려놓고 친척들을 모두 불렀다. 고모가 왔다. 작은아빠가 왔다. 큰아빠네 식구들도 왔다. 우리 아빠도 왔다.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좁은 거실을 가득 채웠다. 상석에 앉은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너희 할아버지가 가시면서, 남겨둔 게 좀 있다.” 할머니는 사람들을 한 번씩 훑어보더니, 마지막으로 오빠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집에 남은 통장, 전부 합쳐서 2억 3천만 원이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이 돈은, 태훈이한테 준다.” 태훈이는 우리 오빠다. 거실 구석에 앉아 있던 나는 순간 멈칫했다. 전부 다? 할머니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 행동했다. 그녀는 뒤적거리며 비닐봉지 하나를 꺼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봉지가 열렸다. 그 안에 든 것은 낡은 스웨터였다. 쥐색. 할아버지가 십 년 넘게 입었던 것. 목덜미는 다 늘어났고, 보풀이 잔뜩 일어난 옷. “그리고 이건, 윤서 주련다.” 윤서는 나다. 할머니는 스웨터를 내 앞에 툭 던졌다. 마치 다 쓴 걸레 조각을 던지듯이. 나는 스웨터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오빠 손에 들린 통장을 보았다. 2억 원. 그리고 낡은 스웨터 한 벌. 차를 홀짝이던 고모가 한마디 거들었다. “엄마가 분배를 참 잘하셨네.” 작은아빠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태훈이가 우리 집안 장손인데, 앞으로 집안 대소사 챙기려면 기둥 역할을 해야죠.” 큰어머니는 나를 힐끗 보더니 피식 웃었다. ‘네가 어쩔 건데’라는 비웃음이 섞인 미소였다. 아빠는 내 옆에 앉아 있었다. 그는 푹 숙인 고개를 들지 않았다. 입을 굳게 다문 채. 나는 아빠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끝내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오빠는 통장을 펼쳐보았다. 찍힌 숫자를 확인한 그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감사합니다, 할머니.” 그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밝았다. 나는 바닥에 놓인 스웨터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가 이 스웨터를 입고 베란다 의자에 앉아 볕을 쬐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주말마다 내가 끓여주는 찌개를 기다리며 이 옷을 입고 계시던 모습. 내가 가지 못하게, 내 소매를 꽉 쥐고 있던 그 마른 손. 나는 바닥에서 스웨터를 주워 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현관으로 향했다. 등 뒤로 할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와 꽂혔다. “임윤서, 넌 왜 고맙다는 소리 안 하니?”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2. 6년. 내가 할아버지를 돌본 시간이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할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후, 왼쪽 편마비가 왔다. 할머니는 병수발이 고되다며 손을 내저었다. 아빠는 직장 핑계를 댔다. 타지에 있던 오빠는 일이 바빠 내려올 수 없다고 했다. 내가 하겠다고 했다. 매주 주말마다, 나는 서울 자취방에서 본가까지 차를 몰았다. 편도 40분이 걸리는 그 길을 6년 동안 오갔다. 300번이 넘는 주말이었다. 할아버지의 식사를 차렸다. 목욕을 시켜드렸다. 부축해서 마당으로 모시고 나가 햇볕을 쬐어드렸다. 병원 정기 검진을 모시고 다녔다. 할아버지의 약은 매달 내가 타 왔다. 할아버지가 타시던 휠체어, 내가 산 거였다. 60만 원. 할아버지 방에 놓인 환자용 전동 침대, 그것도 내가 산 거였다. 120만 원. 할아버지는 총 세 번 입원하셨다. 첫 번째, 8일 입원. 350만 원이 나왔다. 내가 냈다. 두 번째, 12일 입원. 500만 원이 나왔다. 내가 냈다. 세 번째, 마지막이었던 중환자실. 19일. 병원비만 750만 원이 넘게 나왔다. 그것 역시 내가 냈다. 기타 잡비까지 합치면 얼추 1,800만 원. 그 6년 동안, 나는 오빠에게 단돈 만 원 한 장 달라고 한 적이 없다. 할머니에게도 손 벌리지 않았다. 나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가족이니까, 내 희생을 다 보고 알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틀렸다. 오빠가 그 6년 동안 할아버지를 보러 온 게 몇 번이었을까? 딱 네 번이다. 올 때마다 두 시간을 넘긴 적이 없었다. 첫 번째 방문. 30분 앉아 있다가 전화 한 통 받고 가버렸다. 두 번째 방문. 병실에서 사진 세 장을 찍더니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해시태그는 ‘#할아버지병문안 #건강하세요’. 세 번째 방문. 설날이었다. 밥 한 끼 먹고 설거지도 안 한 채 도망치듯 떠났다. 네 번째 방문.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그가 영안실에 도착해 처음 한 말. ‘통장은요?’ 언젠가 할머니가 내게 한 말이 있다. 할아버지가 두 번째로 입원하셨을 때였다. 병원비를 내가 먼저 결제했다고 전화로 알리자,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손녀가 친할아버지 돌보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 네 도리를 한 거다.” 당연한 것. 내가 6년 동안 1,800만 원을 쓰고, 300번이 넘는 주말을 반납한 것은 ‘당연한 도리’였다. 하지만 오빠가 6년 동안 딱 네 번 찾아와서 인스타그램에 사진 세 장을 올린 대가로 2억 원을 가져가는 것. 그것 역시 이 집안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스웨터를 안고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침대 머리맡에 그것을 내려놓았다. 보풀이 잔뜩 일어난 낡은 목덜미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문득 내 옷소매를 부여잡던 할아버지의 손길이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으셨던 걸까? 마지막으로 내게 전하고 싶었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억울해서가 아니었다. 스웨터에서 풍기는 어떤 냄새 때문이었다. 오래된 섬유유연제 냄새, 볕에 말린 냄새. 그리고 아주 짙은 나프탈렌(좀약) 냄새. 너무 짙었다. 평소에 늘 입고 다니던 옷에서 날 법한 냄새가 아니었다. 마치… 아주 오랫동안 어두운 곳에 밀봉되어 있었던 것처럼. 3. 유산 분배가 끝나고 5일 뒤. 오빠의 인스타그램에 새로운 게시물이 올라왔다. 은행 창구에서 찍은 번호표 사진.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드디어 신축 아파트 계약금 해결 완료!] 2억 원. 그는 그 돈을 고스란히 새 아파트 계약금으로 밀어 넣었다. 댓글 창에는 새언니가 남긴 답글이 보였다. [우리 자기 최고! 드디어 우리도 서울에 내 집 마련!] 나는 그 사진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6년. 300번의 주말. 1,800만 원의 병원비. 그는 6년 동안 나에게 카카오톡 이모티콘 하나 선물한 적이 없었다. 다음 날,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윤서야. 너한테 할 말이 좀 있다.” 감정의 동요가 전혀 없는, 평온한 목소리였다. “너희 할아버지가 남긴 거, 내가 다 정리해서 태훈이 줬다만… 법적으로 따지면 너한테도 상속권이라는 게 있다더라. 작은아빠가 그러던데.”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니까, 네가 이 ‘상속포기각서’에 도장 하나만 찍어라.”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였다. “나중에 골치 아픈 일 안 생기게, 깔끔하게 정리하자는 거다.” 나는 헛웃음이 났다. “무슨 각서요?” “상속 포기한다고. 네 오빠랑 나머지 식구들은 다 도장 찍었어. 너만 남았다.” 나는 몇 초간 침묵했다. “…할머니. 저한테는 다 해진 스웨터 하나 던져 주셔 놓고, 이제 와서 상속포기각서까지 쓰라고요?” 할머니의 목소리 톤이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다. “너 지금 말이 그게 무슨 본새냐? 네가 감히 네 오빠랑 재산 싸움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싸우겠다는 게 아니라—” “임윤서.” 그녀가 내 말을 싹둑 잘랐다. “너는 기집애야. 시집가면 남의 집 귀신 될 애라고. 네 할아버지 재산을 왜 남의 집 제사에 바칠 애한테 주니?” 스마트폰을 쥔 내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네가 몇 년 동안 할아버지 병수발든 거, 우리 식구들 다 안다. 다 고맙게 생각해. 근데 그건 네가 손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어.” 또 ‘당연한 일’. “태훈이는 우리 집 장손이다. 할아버지 남기신 거 장손이 물려받는 건 하늘의 이치고, 천륜이야.” 나는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말들을 쏟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머릿속에 스친 단 하나의 의문 때문이었다. 그 스웨터. 왜 그렇게 나프탈렌 냄새가 지독하게 났을까? 할아버지가 십 년 넘게 입고 수십 번도 넘게 빨았던 옷인데. 그렇게 코를 찌르는 좀약 냄새가 날 리가 없었다. 만약, 이 옷이 옷장에서 꺼낸 게 아니라면?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아주 오랫동안 밀봉해 둔 상태였다면? 나는 전화를 툭 끊어버렸다. 침대 머리맡으로 다가갔다. 스웨터를 집어 들었다. 형광등 불빛 아래서 옷을 이리저리 뒤집으며 샅샅이 살폈다. 목덜미. 소매 끝. 그리고 밑단. 내 손길이 멈췄다. 스웨터 안쪽, 왼쪽 밑단 부분. 그곳에 봉제선 하나가 어색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기계로 박음질한 다른 곳들과 달랐다. 이 부분만, 삐뚤빼뚤한 손바느질이었다. 할아버지의 바느질. 나는 그 서툰 땀수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양복점 재단사셨다. 하지만 뇌졸중으로 편마비가 온 뒤로는 바늘을 잡는 것조차 힘겨워하셨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서랍에서 가위를 꺼내 왔다. 손이 덜덜 떨렸다. 조심스럽게, 봉제선을 따라 가위질을 했다. 스륵, 하고 실이 풀리며 안감이 벌어졌다. 그 안에는. 비닐 지퍼백 하나가 단단하게 밀봉되어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지퍼백을 열었다. 그 안에는 세 가지 물건이 들어 있었다. 종이 한 장. 두툼한 편지 봉투 하나. 그리고, 열쇠 한 개. 4. 그 종이는, 유언장이었다. 그냥 종이에 쓴 글이 아니라, 법적 효력을 갖춘 공증 유언장. 작성 일자: 2023년 4월 12일. 할아버지가 처음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석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유언장에는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본인 임학수는 명료한 정신으로 다음과 같이 유언을 남긴다. 성북구 정릉동 128번지에 위치한 아파트(부동산 등기번호 XXXXXXXXX)를, 본인 사후에 손녀 임윤서가 단독으로 상속받도록 한다. 본 유언은 공증 사무소의 공증을 거쳤으며 법적 효력을 지닌다.] 그 아래에는 공증 사무소의 붉은 직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나는 그 문장들을 세 번이나 다시 읽었다. 호흡이 가빠졌다. 성북구 정릉동 128번지. 그 집.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샀던 낡은 빌라가 있던 자리. 몇 년 전 그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조합원 분양으로 받은 신축 아파트였다. 그 아파트, 지금 시세가 얼마더라? 나는 황급히 부동산 앱을 켜서 동일 평형의 실거래가를 검색했다. 8억 5천만 원. 8억 5천.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두 번째 물건, 편지 봉투를 열었다. 할아버지의 친필 편지였다. 글씨는 어린아이가 쓴 것처럼 삐뚤빼뚤했다. 뇌졸중 이후 굳어버린 오른손으로, 이 편지를 쓰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펜을 쥐고 연습하셨을지 눈에 선했다. [우리 예쁜 윤서에게. 할아버지는 안다. 네 할미가 내가 죽고 나면 통장을 몽땅 태훈이한테 줄 거라는 걸. 내가 말려도 소용없을 거다. 그 통장에 든 2억, 할아비가 일부러 눈에 잘 띄는 곳에 둔 미끼란다. 그냥 그놈들 가져가게 둬라. 정릉동 아파트, 할아비가 벌써 공증 다 마쳐놨다. 이건 네 거다. 네가 6년 동안 내 손발이 되어준 거, 할아비가 하나도 안 잊었다. 봉투 안에 집 열쇠가 있다. 가서 집을 한번 둘러보렴. 할아비가 우리 윤서 주려고 남겨둔 게 있단다. 내가 죽더라도 너무 울지 마라. 너는, 이 할아비의 가장 자랑스러운 강아지다.] 편지를 다 읽었을 때, 눈물이 후드득 떨어져 편지지를 적셨다. 할아버지는 알고 계셨다. 전부 다 알고 계셨다. 할머니가 얼마나 장손만 챙기는지. 오빠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이 차가운 집안에서, 오직 나만이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했다는 것을. 그래서 할아버지는 진짜 소중한 것을,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이 낡고 냄새나는 스웨터 안에 꿰매어 숨겨두신 거였다. 할머니가 쓰레기 취급하며 나에게 던질 것을 미리 아시고. 모두가 나를 '적선하듯' 대할 때, 내 품에 안길 유일한 유품이라는 것을 아시고. 2억 원. 그것은 탐욕스러운 자들의 밑바닥을 끌어내기 위해 할아버지가 던져둔 미끼였다. 나는 유언장과 편지, 열쇠를 소중히 품에 안았다. 소매로 눈물을 닦아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들어, 로펌에서 일하는 지윤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바빠요? 저 공증 유언장을 하나 찾았는데, 확인 좀 부탁할 수 있을까요?” 내가 사진을 찍어 보내자, 잠시 서류를 검토하던 언니가 낮게 탄성을 내뱉었다. “윤서야, 이거 완벽해. 공증까지 마친 유언장은 가족들끼리의 구두 합의나 일반 법정 상속 비율보다 무조건 우선해.” “그러니까 그 말은…” “이 집, 법적으로 완벽하게 네 거라는 뜻이야. 누가 소송을 걸어도 절대 못 뺏어가.” 나는 침대 위에 놓인 회색 스웨터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저 무지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세상을 보고 계셨네요. 저들은 지금도 자기가 다 이긴 줄 알고 웃고 있겠죠. 나한테 상속포기각서를 내밀며 빨리 굴복하라고 윽박지르고 있죠. 좋아. 각서, 안 쓴다. 안 쓰는 걸 넘어서, 당신들에게 똑똑히 가르쳐주겠어. 당신들이 쓰레기 취급하며 내게 던진 이 스웨터가, 도대체 얼마짜리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