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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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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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이혼하고 3년이 지났을 무렵, 나는 강남의 한 유명 훠궈 음식점에서 엄마를 마주쳤다. 그녀는 예쁘장한 여자아이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Chương (1)

第1章

부모님이 이혼하고 3년이 지났을 무렵, 나는 강남의 한 유명 훠궈 음식점에서 엄마를 마주쳤다. 그녀는 예쁘장한 여자아이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그녀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계산을 마치고 나가기 전, 그녀는 자신의 메신저 QR 코드를 내밀었다. “친구 추가해. 돈 좀 보내줄 테니까, 너랑 네 아빠 맛있는 것 좀 사 먹어.” 나는 떨리는 손을 억누르며 그녀의 핸드폰을 밀어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신지연 씨.” “예전엔 우리한테 이렇게 관대하신 분이 아니었잖아요.” 그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더니 미간이 깊게 패였다. “너는 왜 네 아빠를 닮아서 그렇게 고집불통이니? 그때 나를 따라왔으면 이런 데서 서빙이나 하고 살았겠어?” “네 아빠한테 전해. 이제라도 자기 잘못 인정하고 고개 숙이면, 너 데려가서 제대로 살게 해주겠다고.” 나는 대답 대신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는 정말 모르는 걸까. 내 아빠가 3년 전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 엄마는 내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때가 꼬죄죄한 앞치마와 동상에 걸려 퉁퉁 부은 내 손을 보더니 나지막이 한숨을 내뱉었다. “애초에 네 아빠가 널 데려가게 두는 게 아니었어.” “고생이 많았겠구나. 능력이 안 되면 자식을 놔줬어야지.” 나는 감정을 죽인 채 대꾸했다. “신지연 씨가 신경 쓸 일 아닙니다. 우린 이제 남이나 다름없는데, 이런 식의 대화는 오해를 사기 딱 좋거든요.”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무언가 더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던 그녀는 결국 침묵 속에 몸을 돌려 가게를 나갔다. 그녀가 사라진 뒤에도 나는 쟁반을 든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손가락 끝이 감각을 잃은 듯 딱딱하게 굳어갔다. 옆에 있던 동료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민준아, 괜찮아?”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다른 동료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방금 그분, 신성 그룹 신지연 대표 아니야? 전남편한테 그렇게 지극정성이었다던데. 예전에 사랑 하나 믿고 집안 반대까지 무릅쓰고 결혼했다는 기사 본 적 있어.” “인터뷰에서도 그랬잖아. 자기 인생에서 가장 미안한 사람이 전남편이랑 아들이라고.” 나는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정말 미안했다면,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떠나진 않았겠죠.” 내 냉소적인 태도에 동료가 당황한 듯 설명을 덧붙였다. “그분, 남편 위해서 빈손으로 집을 나왔대. 양육권도 포기하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더라고. 심지어 저기 산간 지역에 아들 이름으로 학교까지 세웠다던데? 난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내 목소리는 소름 끼칠 정도로 차분했다. “그 여자는 남편 앞에서 가난한 척 연기했을 뿐이에요. 빈손으로 이혼하는 척하면서 모든 빚을 남편에게 떠넘겼죠. 남편은 그 빚을 갚으려고 간을 기증하고 피까지 팔아야 했어요.” “아빠가 수술 후 감염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그 여자는 경매장에서 내연남한테 줄 수억 원짜리 시계를 사고 있었죠. 아빠 수술비 단 몇 푼이 아까워서 외면하면서 말이에요.” “심지어 그 내연남을 감싸겠다고 자기 친아들 귀가 멀 정도로 때려서, 다시는 피아노를 못 치게 만든 사람입니다.” 순간 주변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동료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설마 네가...” “네, 제가 그 여자 아들입니다.” 그들은 입을 닫았다. 한참 뒤, 누군가 참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그런데 아까 아버님이 이미...”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일을 이어갔다. 세상의 모든 가십으로부터 나를 격리시키고 싶었다. 퇴근길, 나는 꽃집에 들러 하얀 국화 한 다발과 작은 생일 케이크 하나를 샀다. 공동묘지에 도착해 꽃을 내려놓고, 비석 앞에 케이크를 차렸다. 사진 속 아빠는 여전히 해맑게 웃고 있었다. 나는 비석 앞에 주저앉아 촛불을 켜고, 나직한 목소리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아빠, 생일 축하해.” “나 오늘 그 사람 만났어.” “아직도 모르나 봐. 아빠가 이미 곁에 없다는 거.” 다음 날 출근했을 때, 매장 안의 공기는 기괴할 정도로 정적이 감돌았다. 홀 중앙에 엄마가 앉아 있었다. 앞에 놓인 차는 식어버린 지 오래인 듯 보였고, 그녀의 얼굴은 살벌하게 굳어 있었다. 점장이 식은땀을 닦으며 굽신거리고 있었다. “신 대표님, 어제 일은 저희가 확실히 조사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엄마의 시선이 나를 꿰뚫었다. 숨 막히는 압박감이 밀려왔다. 직감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나를 겨냥하고 왔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딱딱한 어조로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신지연 씨?” 그녀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제 이 집 음식이 문제였나 봐. 내 딸이 집에 가서 밤새 설사했어.” “애 아빠가 화가 많이 났더구나.” 나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래서요?” “이런 핑계로 날 찾아오신 건가요? 아니면 3년 전처럼 나랑 우리 아빠를 끌고 가서 구승우 앞에 무릎이라도 꿇리시게요?” 순간 그녀의 표정이 무너졌다. 눈동자 너머로 짧은 갈등과 죄책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도 기억해낸 것이다. 3년 전 그 끔찍했던 밤을. 그녀가 어떻게 우리 부자를 나락으로 밀어넣었는지. 당시 아빠와 나는 그녀가 정말 파산한 줄로만 알았다. 회사가 망했다며, 빚더미에 올라 앉아 더는 버틸 수가 없다고, 우리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이혼뿐이라며 눈물을 흘리던 그녀를 믿었다. 아빠는 그녀의 빚을 갚아주겠다고 하루에 열 개가 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서서 잠들 정도로 몸을 혹사했다. 사채업자들이 들이닥치자 아빠는 결국 그들을 따라 불법 병원으로 향했다. 자신의 간 일부를 떼어 팔아넘겼다. 수술 후 돌아온 아빠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하얬다. 그런데도 아빠는 이를 악물고 나를 위해 작은 케이크를 사고 정성껏 저녁상을 차렸다. 나는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았지만 수저를 들지 않았다. 아빠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기다리자. 엄마 오면 같이 촛불 꺼야지.” 우리는 어둠 속에서 동이 틀 때까지 기다렸다. 식탁 위의 음식은 식었다가 데워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엄마는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전광판과 뉴스에는 온통 한 가지 소식뿐이었다. 최고급 웨딩드레스를 입은 엄마가 구승우의 손을 잡고 모든 이의 축복 속에 ‘세기의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다. 나는 전광판 아래 서서 아빠의 옷자락을 꽉 쥔 채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빠, 저기 있는 사람 엄마 맞아?” 아빠는 온몸을 떨고 있었다. 내 손을 잡은 아빠의 손바닥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아빠는 그대로 나를 이끌고 결혼식장으로 쳐들어갔다. 아빠가 식장에 나타나자 장내엔 찬물이 끼얹어졌다. 아빠는 핏발 선 눈으로 미친 듯이 소리쳤다. “파산했다며! 다 거짓말이었어?” “당신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내가 당신 남편인데, 왜 저 자식이랑 결혼을 해!” 아빠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구승우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엄마 품에 파고들었다. “지연 누나, 저 사람이 하는 말이 정말이야? 무서워...” 엄마는 그를 품에 안고 다독였다. 하지만 우리를 돌아보는 그녀의 눈빛은 쓰레기를 보는 듯 차갑기 그지없었다. “사람들 안 부르고 뭐 해! 당장 이 미친 인간들 끌어내!” 주변에서 수군거림이 터져 나왔다. 날카로운 조롱들이 우리 부자의 뺨을 때리는 것 같았다. “애까지 달린 혹덩이가 감히 어딜 넘봐. 염치도 없지.” “구승우 씨랑 신 대표님은 원래 소꿉친구였다잖아. 신 대표님이 사랑꾼이라 저런 잡상인 같은 놈이 꼬였나 보네.” 얼마 후, 엄마는 선물을 들고 아빠를 찾아왔다. 그녀는 여전히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며 뻔뻔하게 굴었다. 파산 이야기는 아빠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던 테스트였을 뿐이라고, 구승우가 시한부라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조금만 참아달라고 했다. “정말이야. 승우 죽고 나면 당신이랑 우리 아들 당당하게 데려올게. 그때 배로 보상해 줄게.” 아빠는 눈물을 쏟으며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아빠는 그녀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치며 절규했다. “당신 빚 갚겠다고 내가 간까지 팔고 피를 뽑은 걸 알면서! 당신 아들이 학비가 없어서 학교도 못 가고 있는 걸 알면서!” “신지연, 당신이 어떻게 우리한테 이래! 난 당신이 죽도록 미워!” 당시 내 신발 밑창은 다 닳아서 구멍이 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 힘들까 봐 한 번도 투정 부리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 돈 아껴줘야 한다고 말하던 아이였다. 엄마의 눈에 잠시 죄책감이 서렸다. 하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문밖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구승우가 창백한 얼굴로 서 있었다. “지연 누나,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어?” 순식간에 엄마의 태도가 돌변했다. 그녀는 아빠를 거칠게 밀쳐내고 구승우에게 달려가 매달렸다. “승우야, 오해하지 마. 그냥 미친놈이야. 저 사람이 계속 나를 스토킹하는 거야.” 말을 마친 그녀는 아빠를 혐오스럽게 쳐다봤다. “당신 때문에 승우가 놀랐잖아! 당장 사과해!” 그날 밤, 경호원들은 아빠를 문밖에 꿇렸다. 나도 아빠 옆에 나란히 무릎을 꿇었다. 문 안쪽은 그들의 신혼밤이었고, 문밖의 우리는 살을 에이는 추위 속에 눈을 맞으며 떨고 있었다. ... “그만해라.” 엄마의 목소리가 나를 현실로 끌어올렸다. 눈앞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반복되는 고통에 더는 아파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도 모른다. 아빠가 그녀 때문에 목숨까지 잃었다는 것을. 내가 침묵하자 엄마의 눈에 짜증이 서렸다. “네 아빠가 널 잘못 가르쳤어. 버릇없게 말이야. 그 인간은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예전처럼 무례하고 철이 없니?” 나는 멍하니 그녀를 보았다. 기가 막혀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철이 없다고요?” “저랑 아빠, 지난 3년 동안 당신들 근처에도 안 갔어요. 우리끼리 조용히 살겠다는데 왜 이제 와서 시비인 건가요?” 그녀의 미간이 좁아졌다. “나랑 네 아빠 사이의 일을 네가 뭘 안다고 그러니?” “제가 모른다고요? 그럼 당신은 아나요? 아니면 구승우가 알까요?” 그녀의 목소리도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혼할 때 네 아빠가 너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한 적이 있는 줄 알아? 자기 자존심 챙기느라 너 뒷바라지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한 사람이야. 그 고집만 아니었어도 네가 지금 이렇게 살겠니?”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처럼 가슴에 박혔다. “어떻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있죠? 우리를 쫓아낸 건 바로 당신이잖아요!” 그녀는 내 말을 못 들은 척 말을 이어갔다. “승우는 몸이 약해. 자극받으면 안 된단 말이야. 그때 너희를 내보낸 건 모두를 위한 최선이었어. 게다가 승우는 내가 고생하며 살았던 그 옛날 집에서 나와 같이 살고 싶어 했어. 마음이 예쁜 사람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손끝이 싸늘하게 식었다. 아빠와 내가 지켜온 소중한 기억들이, 그녀의 말 한마디에 저질스러운 농담거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요? 우리 아빠랑 내가 다리 밑에서 자고 공원 벤치에서 밤을 지새운 게 당연하다는 건가요?”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내 귀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알아요? 아빠랑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아냐고요!” 이혼 후 우리는 모든 걸 잃었다. 쫓겨나던 날, 나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그녀가 휘두른 손바닥에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 자리에서 귀가 터져 피가 흘렀다. 아빠는 혼비백산하여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고, 그 뒤로 그녀를 찾아갔지만 경비원들에게 몽둥이질을 당하며 쫓겨났다. 내 귀를 고치기 위해 아빠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나 역시 학교가 끝나면 폐지를 줍고 전단지를 돌렸다. 겨울엔 갈 곳이 없어 공원 벤치에서 잤다. 아빠는 유일한 겉옷을 내게 덮어주고 자신은 밤새 기침을 토해냈다. 그러다 내가 심한 고열에 시달리게 되었다. 귀에선 이명이 끊이지 않았다. 아빠는 나를 안고 병원을 전전했지만, 우리가 살 수 있는 건 가장 싼 약뿐이었다. 그때부터 내 귀는 서서히 멀어갔고, 결국 보청기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리고 아빠의 몸도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몸이 붓고 어지러움증을 호소하더니 결국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게 되었다. 간 수술 후유증과 감염으로 간 기능이 완전히 소실되었다는 판정을 받았다. 수술비는 1억 원이 넘었고, 그 뒤로 들어갈 치료비는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엄마에게 수백 통의 전화를 걸었다. 단 한 통도 연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엔 그녀와 구승우의 소식이 넘쳐났다. 수억 원대 시계 경매 낙찰, 초호화 요트 파티... 실시간 검색어는 온통 그들의 화려한 삶뿐이었다. 결국 나는 아빠의 병위통지서를 들고 그녀를 직접 찾아갔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내려다보며 분노를 터뜨렸다. “네 아빠랑 지낸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거짓말부터 배웠니?” “어떻게든 다시 돌아오고 싶어서 이런 연극까지 벌여? 지긋지긋하다 정말.” 그녀는 내 얼굴에 카드 한 장을 내던졌다. “여기 1억 들어있어. 이거 가지고 당장 꺼져. 승우랑 보내는 마지막 시간을 방해하지 말란 말이야.” 날카로운 카드 모서리에 얼굴이 베였지만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이 돈이면 아빠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수술을 앞두고 구승우가 병원으로 찾아왔다. 복도에서 나를 가로막은 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본색을 드러냈다. “지연 누나랑 네 아빠가 결혼했던 거, 네가 그 여자 아들인 거 진작 알고 있었어. 내가 살짝 머리 좀 썼더니 누나가 나한테 홀딱 넘어가서 너희를 쓰레기처럼 버리더라? 눈치 있으면 이제 그만해. 누나랑 나 사이엔 이미 딸도 있어. 네가 자꾸 질척거리면 네 아빠, 여기서 죽어나가게 할 수도 있어. 내 말 알겠니?” 나는 미친 듯이 그를 밀쳐냈다. 그런데 어느새 나타난 엄마가 내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나는 문기둥에 부딪혀 고꾸라졌고, 귀에서 웅 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보지도 않았다. 그저 구승우를 살피며 다급하게 물었다. “내가 널 너무 오냐오냐 키웠구나! 감히 네 동생을 다치게 해?” “너희 부자는 정말 탐욕스럽기 짝이 없어. 그 1억도 아깝다!” “그 카드 정지시킬 거야. 이건 네가 네 동생을 괴롭힌 대가다. 앞으로 네가 굶어 죽는다 해도 난 절대 마음 약해지지 않을 거야!” 나는 바닥을 기며 그녀에게 울부짖었다. 아빠 살려달라고, 수술비 없으면 아빠 죽는다고 빌고 또 빌었다. 소란에 잠에서 깬 아빠가 비틀거리며 나와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죽어도 상관없으니 제발 우리 아들만은 거둬줘... 제발!” 그녀의 눈빛에 혐오가 서렸다. “아들이 거짓말만 늘어놓는 건 다 당신 교육 탓이야!” “오늘부터 생활비고 뭐고 국물도 없어! 당신들이 승우한테 진심으로 사과하고 다신 나타나지 않겠다고 맹세할 때까지!” 그녀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 뒤로 우릴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다시 닥치는 대로 일했다. 고된 나날이었지만 사회단체의 도움으로 아빠의 병세도 잠시 안정을 찾는 듯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눈가를 훔치며 엄마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신지연 씨, 대체 어떻게 해야 우릴 놓아줄 건가요?” 식당 안은 죽은 듯 고요해졌다. 주변 손님들도 수저를 멈추고 우리를 주시했다. 그녀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어렵사리 입을 뗐다. “네 아빠를 직접 만나야겠다.” 그 말에 나는 결국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너무나 역겨웠다. 신지연은 내가 미친 사람이라도 된 양 미간을 찌푸렸다. “뭐가 우스워?” “당신이 웃겨서요.” “어쩜 그렇게 뻔뻔할 수 있는지.” 나는 눈물을 닦아내며 증오를 담아 뱉어냈다. “아빠 죽었어요.” “3년 전에 이미 죽었다고요.” 순간 엄마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너 미쳤니? 어떻게 아빠한테 그런 저주를 퍼부어!” “그 인간, 동정 유발하는 거라면 선수잖아. 그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어!” “또 어디 숨어 있는 거지? 아빠가 시키더냐?” 나는 싸늘한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못 믿겠으면 가서 찾아봐요. 능력 좋으시니까 땅이라도 파서 데려오든가.” 그녀는 내 얼굴에서 거짓의 흔적을 찾으려는 듯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녀의 어깨에서 서서히 힘이 빠졌다. 그녀는 “후회하지 마라”는 말을 남긴 채 도망치듯 가게를 떠났다. 점장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민준아... 오늘은 일단 들어가 봐라. 매장 상황이 좀...” 뒷말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묵묵히 짐을 챙겨 고시원 방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자 좁은 방 안 상 위에 놓인 영정 사진이 보였다. 그 옆엔 국화꽃과 향로가 놓여 있었다. 나는 다가가 아빠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억눌렀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빠...” “내가 돈을 조금만 더 많이 벌었으면...” “그럼 아빠 안 죽었을까?”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영정 사진을 품에 안았다. 3년 전 마지막 그 며칠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의사는 수술 날짜를 잡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선입금 1억 원이 필요했다. 그게 마지막 기회였다. 그 돈을 구하려고 나는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어느 날 깊은 밤, 엄마의 차가 시장통 옆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분명 나를 보았다. 하지만 내리지 않았다. 비서를 시켜 내가 팔던 꽃을 전부 사게 했을 뿐이다. 나는 멀어지는 차 뒷모습을 보며 그녀가 마음을 돌린 줄 알았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구승우가 병실로 들이닥쳤다. 그는 내 뺨을 갈겼다. “염치없는 것들.” “네 아빠는 내 여자를 뺏으려 들더니, 너까지 동정 구걸이야?” 그는 병원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내 아빠를 불륜남으로, 나를 사생아로 몰아세웠다.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게 꽂혔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당신이 불륜남이잖아!" 그는 비웃으며 결혼증명서 두 권을 내밀었다. “네 아빠가 가진 건 가짜야. 이게 진짜라고.” “내가 지연 누나의 유일한 법적 남편이란 말이야!” 내가 그걸 확인하려 달려들자, 그는 비명을 지르며 스스로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지연 누나 살려줘! 당신 아들이 우리 딸을 죽이려 해!” 그리고 엄마가 나타났다. 나는 그녀의 발길질에 차여 계단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귀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벌레 보듯 쳐다봤을 뿐, 구승우를 안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나는 마지막 희망으로 그 카드를 들고 수납처로 향했다. 하지만 간호사는 잔액이 없다고 말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어떻게 병실로 돌아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빠는 가냘픈 손으로 내 손을 잡으며 웃어주었다. 겁내지 말라고, 다 나으면 멀리 떠나서 매년 생일 같이 보내자고 약속했다. 나는 울면서 말했다. “아빠 죽지 마. 내가 어떻게든 돈 구해올게!” 나는 장기 매매 서류에 서명하려고 어둠의 경로까지 알아봤다. 하지만 다시 병실에 돌아왔을 때, 의사와 간호사들이 아빠를 둘러싸고 있었다. 인파를 헤치고 들어갔을 때, 아빠는 이미 숨을 멈춘 상태였다. 그로부터 3년. 나는 아빠의 사진을 단 한 순간도 몸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야 신지연이 나타나 아빠를 만나겠다고 한다. 나는 영정 사진을 끌어안고 숨이 막힐 정도로 울었다. “아빠, 보고 싶어...” “내가 아빠 데리고 멀리 갈게. 그 여자가 다신 아빠 못 찾게...” 얼마나 울었을까. 문밖에서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엄마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나를 지나 상 위의 영정 사진과 벽에 가득 붙은 아빠의 흔적들에 머물렀다. 다음 순간, 그녀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