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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녀는 내 목숨값을 치렀다
엄마는 치매를 앓고 계신다. 그래서 늘 나와 언니를 헷갈려하셨다. 언니가 집에 돈을 빌려 갈 때면, 엄마는 가계부에 내 이름을 적어두었다. 내가 선물...
Chương (1)
第1章
엄마는 치매를 앓고 계신다. 그래서 늘 나와 언니를 헷갈려하셨다. 언니가 집에 돈을 빌려 갈 때면, 엄마는 가계부에 내 이름을 적어두었다. 내가 선물한 안마의자 사진을 SNS에 올리며 언니가 효녀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픈 엄마를 배려해 나는 늘 묵묵히 참아왔다.
이번 어버이날에도 사건이 터졌다. 내가 선물한 금팔찌를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 언니가 사준 것이라 말했다. 친척들이 댓글로 "연우 씨는 뭘 해드렸나요?" 하고 웃으며 묻자, 엄마는 지난 세월 언니가 빌려 간 차용증을 댓글로 올렸다.
[자, 여기 사천만 원 미상환 내역이야. 아직 한 푼도 안 갚았지.]
내가 억울해 해명하려던 찰나, 고개를 들어 마주친 엄마의 눈동자 속에는 묘한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순간, 어젯밤 우연히 들었던 엄마와 언니의 대화가 머릿속을 스쳤다.
"그 아파트 계약하고 싶은데, 잔금이 사천만 원 모자라요."
"걱정 마라. 그 돈, 네 동생이 내게 해줄 테니까!"
그제야 깨달았다. 치매라는 병은 그저 엄마의 지독한 편애를 감추기 위한 가면일 뿐이었다는 것을.
멍하니 서 있는 내 눈앞으로, 엄마는 미리 준비해 둔 계좌번호를 불쑥 내밀었다.
"일시불로 보낼래, 할부로 할래?"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묵묵히 스마트폰을 꺼내 송금 버튼을 눌렀다.
그 돈과 함께, 20년 넘게 이어온 모녀간의 인연도 깨끗이 정리되었다.
……
1
송금 확인을 누른 순간, 언니의 휴대전화에서 알림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KB국민은행 입금금액: 40,000,000원, 잔액...]
언니의 눈빛이 순식간에 반짝이더니, 고개를 들어 엄마와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한쪽은 환희로 가득했고, 다른 한쪽은 한없이 다정한 눈빛이었다.
내가 빤히 쳐다보자, 엄마는 찔리는지 헛기침을 해댔다.
"네 언니가 그동안 집안일을 얼마나 많이 도왔는데. 이 돈은 언니의 효도에 대한 포상이라고 생각하거라. 불만 없지?"
나는 나직하게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불만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따져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어릴 때부터 엄마는 나와 언니를 늘 헷갈려했다. 언니가 꼴찌를 했을 때, 전교 1등인 내 머리채를 잡고 흠씬 두들겨 팬 것도 엄마였다. 생활비가 필요하다고 사정한 것은 나였는데, 정작 돈은 언니 계좌로 들어갔다.
그럴 때면 엄마는 늘 눈물을 글썽이며 내게 사과했다. "미안하다, 연우야. 엄마가 이 몹쓸 병 때문에 너희 자매를 자꾸 헷갈려하는구나."
자책하는 엄마를 보기 괴로워, 나는 늘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반성했다. 내가 아직 부족해서 엄마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거라고.
그래서 더 이 악물고 공부했고, 더 착한 딸이 되려 애썼다. 반에서 1등,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수능에서는 수석을 차지했다. 취업 후에는 매달 생활비를 제하고 남은 월급을 전부 집에 보탰다. 매해 어버이날이면 엄마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미리 알아내어 온 마음을 다해 선물했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해도 엄마는 나를 기억해주지 않았다. 오늘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부족했던 게 아니라, 애초에 엄마의 마음속에 내 자리는 없었다는 것을.
내 슬픔을 보이고 싶지 않아 야근이 있다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언니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걔가 무슨 불만이 있겠어? 그동안 이 집에 얹혀살면서 먹고 자고 한 생활비만 해도 사천만 원은 훌쩍 넘을 텐데!"
발걸음이 뚝 멈췄다.
뒤를 돌아보니 언니는 멸시와 비열한 미소로 가득 찬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편애를 받고 자란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막무가내인지 정말 모르는구나.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받아쳤다.
"내가 집에 있었던 건 엄마 저혈당 쇼크 올 때 돌보려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나 매달 생활비로 백만 원씩 보냈어. 얹혀사는 게 아니라고."
언니는 코웃음을 쳤다. "말은 잘하네. 실제로 이체했는지 누가 알아?"
왈칵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안방에 있는 엄마의 가계부를 가지러 가려 했다.
"엄마는 모든 지출과 수입을 가계부에 기록하셔. 내가 거짓말을 하는지 보면 알겠지."
그때 내내 침묵하던 엄마가 다급하게 앞을 가로막았다.
"어머, 깜빡했네. 그 가계부 며칠 전에 잃어버렸단다."
그러면서 은근히 언니를 말렸다.
"네 동생이 생활비를 안 보냈어도 뭐가 문제겠니. 내가 엄마인걸. 자식한테 뜯기는 것도 다 내 팔자지."
날 위하는 척하면서도 은근히 내가 무임승차를 했다는 낙인을 찍는 교묘한 화법이었다.
언니는 기세등등해져 소리를 질렀다.
"당장 가계부 찾아내! 증거가 나오면 그 뻔뻔한 낯짝으로 어떻게 발뺌하는지 똑똑히 볼 테니까!"
하지만 막상 가계부가 눈앞에 나타나자, 언니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2
언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가계부의 빽빽한 내역을 응시하는 그녀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갔다.
[2026년 4월 1일, 연우 생활비 100만 원 입금...]
뒤로 넘겨보니, 2018년부터 시작해 매달 이 내역이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 꼬박 8년. 약 1억 원에 달하는 돈이었다.
반면 언니는 2015년에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주식 투자를 한답시고 모은 돈을 날리고 빚만 잔뜩 지고 있었다. 이 집을 먹여 살린 진짜 주역이 누구인지는 초등학생도 알 수 있었다.
내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지자 엄마가 허겁지겁 변명을 늘어놓았다.
"내가 또 사람을 착각했구나. 연우를 지수로 착각하고 적었어."
예전 같았으면 이 한마디에 마음이 약해졌겠지만, 이제는 더 이상 스스로를 속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엄마를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정말 착각하신 건가요, 아니면 일부러 언니 편을 드시는 건가요?"
"그리고 엄마의 그 인지장애, 진짜인가요, 아니면 연기인가요?"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자 엄마는 우물쭈물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옆에 있던 언니가 가계부를 낚아채며 소리쳤다.
"엄마가 날 좀 더 챙겨줬다고 해도 그게 뭐 어때서! 네가 워낙 싹수없고 정 안 가게 구니까 그렇지!"
그 당당함에 기가 차서 대꾸할 말조차 잃었다.
그래, 두 딸 중 하나는 말수 적고 무뚝뚝한 나였고, 다른 하나는 싹싹하고 애교 넘치는 언니였으니 누구라도 언니를 더 예뻐했겠지. 하지만 그것이 내가 오랜 세월 차별받고 학대당해야 했던 면죄부는 될 수 없었다.
나는 엄마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이 일억 원에 방금 보낸 사천만 원, 그리고 그동안 사드린 명품과 보석들까지 합치면 이억 원은 족히 넘을 거예요."
"이걸로 절 키워주신 은혜는 전부 갚은 걸로 하죠."
나는 가방을 챙겨 다시 걸어 나갔다.
"서라!"
뒤에서 분노와 황당함이 섞인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작 이런 일로 엄마를 안 보겠다는 거냐?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엄마의 목소리는 너무나 가벼워서, 내가 정말 사소한 일로 유난을 떠는 건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심장 깊은 곳에서 몰아치는 쓰라린 통증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 '착각'의 순간들은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것들이 내 가슴속에 무거운 바위가 되어 나를 옥죄고 있었다는 것을. 엄마의 병이 평생 낫지 않아 내 삶이 영원히 저당 잡힐까 봐 불안해했던 밤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 모든 것이 지독한 거짓말이었다니.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동안 뼈를 깎아가며 갈구했던 엄마의 인정 같은 건, 이제 내게 아무 쓸모가 없어졌으니까.
3
나는 가방에서 메모지를 꺼내 거침없이 글씨를 써 내려갔다. 그리고 종이를 찢어 언니의 손에 쥐여주었다.
"엄마 식사는 매끼 정해진 시간에 챙겨드려. 혈당 조절 약은 서재 두 번째 서랍에 있어."
"참, 지난번 신장 수술받으신 뒤로 밤에 최소 세 번은 깨서 화장실 가셔. 알람 맞춰두고 일어나서 부축해 드려. 밤에 어지럼증 있으시니까 꼭 옆에서 잡아드려야 해."
언니의 손이 바르르 떨리더니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이... 이걸 어떻게 다 해! 난 못 해, 이런 구질구질한 뒤치다꺼리 딱 질색이야!"
언니는 질색하며 메모지를 내게 다시 돌려주려 버둥거렸다. 마치 오물을 피하듯.
입안이 씁쓸해졌다. 나는 이 '구질구질한 뒤치다꺼리'를 무려 8년 동안 매일같이 해왔다.
8년 동안 단 하루도 쉬어본 적이 없었다. 엄마를 돌보기 위해 이직할 때도 무조건 출퇴근 시간이 10분 이내인 곳만 고집했다. 매끼를 챙겨야 했으니까. 3년 전 엄마가 신장 수술을 받았을 때는 한 달 동안 휴가를 내고 병간호를 하느라 승진 기회마저 날려 보냈다. 연애할 시간도 없어 서른이 다 되도록 혼자였다.
슬프게도, 내 모든 청춘을 바쳤음에도 물 한 컵 떠다 준 적 없는 언니보다 못한 존재였다는 사실이 뼈아팠다.
"모르면 배워야지.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겠어."
나는 메모지를 신발장 위에 올려두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 마치 지금 내 마음 같았다.
나는 곧장 회사로 가 나를 숨 막히게 하던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나를 스카웃하려 했던, 멀리 떨어진 서울의 유명 외국계 기업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답장은 금방 왔다.
[연우 씨 자리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언제든 환영합니다!]
이직을 확정 짓고 서울로 떠날 채비를 시작했다.
며칠 후, 4대 보험 전출 건으로 서류를 처리하고 있는데 며칠 전 받았던 엄마의 건강검진 결과지가 모바일로 도착했다. 검진 결과란에 선명히 박힌 '췌장암'이라는 세 글자.
나는 멍하니 서 있다가, 결국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메일함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나를 낳아준 어머니와 어렵게 찾은 내 인생의 시작점 사이에서 고통스럽게 갈등하며 마침내 집 앞에 섰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머뭇거리며 문을 열었을 때, 거실에는 낯선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엄마가 나를 보며 손짓했다.
"얘, 재개발 조합에서 가구원 확인하러 오셨단다. 마침 잘 왔다. 여기 서명하거라!"
내밀어진 종이 위에 적힌 '상속 분할 및 보상금 포기 각서'를 본 순간, 내 손에 들려 있던 펜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내가 멍한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자, 옆에 있던 언니가 비웃음을 터뜨렸다.
"너 아직도 몰랐어? 네 등본상 주소, 이미 8년 전에 시골 외삼촌 댁으로 이전됐어."
언니는 기고만장해져서 떠들었다.
"엄마가 선견지명이 있으셨지. 안 그랬으면 너 같은 불효녀가 또 우리 집 재산 탐냈을 거 아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4
8년 전?
기억이 났다. 그해에 자식을 잃은 먼 친척 외삼촌이 언니를 대학 교직원으로 취직시켜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단, 조건은 언니를 외삼촌 밑으로 입적하고 주소지를 시골 본가로 옮기는 것이었다. 비록 그 일자리는 언니가 힘들다며 금방 그만두었지만, 엄마는 약속대로 언니의 주소지를 시골로 이전했었다.
그리고 바로 그해에, 엄마는 내게 서울의 고액 연봉 직장을 포기하고 곁에 남아달라 애원했었다.
"네 언니는 이제 남의 집 딸이나 다름없잖니. 엄마가 믿을 건 너뿐이야."
"걱정 마라. 네 희생은 잊지 않을 테니, 나중에 이 집은 다 네 차지가 될 거다."
내 소유권이 빠진 가족관계증명서를 쥐고 있는 내 손이 사정없이 떨려왔다. 그렇다면 그때 엄마가 서류에 올린 이름은 언니가 아니라 나였단 말인가?
엄마는 내 눈을 피하며 고개를 푹 숙인 채 모르는 척했다.
언니는 안달이 나 재촉했다.
"얼른 사인해! 넌 이제 엄마 딸도 아니니까 우리 집 돈 탐낼 생각 추호도 하지 말고!"
나는 눈물을 훔치며 펜을 들어 서명 란에 거침없이 이름을 적었다. 일이 이렇게 쉽게 해결되자 언니와 엄마는 동시에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언니가 냉큼 서류를 낚아채려 할 때였다.
"잠깐만."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가방에서 미리 준비해 둔 '인연 단절 서약서'를 꺼냈다. 서약서 맨 아래 서명 란을 가리키며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 사인해 줘요. 이제 우리 모녀 관계는 완전히 끝난 겁니다."
"나도 이 집 재산에 단돈 일 원도 욕심내지 않겠다고 맹세하죠."
엄마의 눈동자에 망설임이 스쳤다. 펜을 쥔 손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엄마가 망설이는 건 나와의 헤어짐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나의 헌신적인 돌봄이 아쉬워서라는 것을. 아무리 돈을 많이 준대도 나처럼 무조건 참고 비위를 맞춰줄 간병인은 구할 수 없을 테니까.
언니는 엄마가 망설이자 얼른 엄마의 어깨를 주무르며 안심시켰다.
"엄마, 걱정 마. 연우 없어도 내가 엄마 평생 잘 모실게. 나 한 번만 믿어줘, 응?"
결국 언니의 부추김에 못 이겨 엄마는 서약서에 사인을 마쳤다.
언니는 포기 각서를 손에 쥐고 입이 찢어지게 웃었다.
"이제 이 집이랑 상관없는 사람이니까 당장 나가!"
나를 문밖으로 밀쳐낸 언니는 곧바로 엄마와 재개발 보상금을 어떻게 쓸지 신나게 의논하기 시작했다. 문틈 사이로 그들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건강검진 결과지를 꽉 쥔 채 쓸쓸히 웃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서울의 빠른 템포는 고향과 완전히 달랐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 위의 커다란 돌덩이가 내려앉은 듯 홀가분했다.
이곳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메뉴로만 삼시 세끼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고, 더 이상 엄마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출 필요가 없었다. 퇴근 후에는 저녁을 하러 서둘러 집으로 달려갈 필요도 없었기에 여유롭게 한강 변을 거닐었다.
가장 좋은 것은 밤에 깨지 않고 푹 잘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오랜 불면증과 신경쇠약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동안 엄마에게서는 단 한 통의 전화도 오지 않았다. 마치 내 존재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언니의 SNS를 보니 내가 쓰던 방은 이미 언니의 드레스룸으로 바뀌어 있었다. 언니는 보상금을 받아 엄마와 여행을 다니고 있었다. 제주도, 넓은 초원... 사진 속 두 사람의 모습은 참으로 다정한 모녀의 전형이었다.
언니는 두 사람의 다정한 사진 아래에 이런 글을 남겼다.
[눈에 가시 같던 인간이 사라지니, 우리 인생이 한층 더 찬란하고 아름답다!]
사진 속 맵고 짠 음식을 보며, 나도 모르게 '엄마 위궤양 있어서 매운 거 드시면 안 되는데...' 하고 댓글을 쓰려다 지웠다. 엄마가 그 거짓말을 시작했던 순간, 이미 우리의 연은 완벽히 끝난 것이었다.
뛰어난 업무 실적과 열정적인 태도로 나는 금세 팀장으로 승진했다. 축하 파티가 열리던 밤, 동료들의 축하 속에서 술잔을 들어 올리려던 찰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전화를 받자마자 언니의 다급하고 울먹이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왔다.
"연우야, 큰일 났어! 엄마가... 엄마가 이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