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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에 앉아 흘린 당신의 눈물은 너무 늦었습니다
하준의 외도를 목격한 그날, 나는 미친 사람처럼 집 안의 모든 물건을 부수기 시작했다. 극도로 치닫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붉은 피가 흥건한 바닥 ...
Chương (1)
第1章
하준의 외도를 목격한 그날, 나는 미친 사람처럼 집 안의 모든 물건을 부수기 시작했다.
극도로 치닫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붉은 피가 흥건한 바닥 위로 쓰러졌을 때야, 하준은 비로소 겁에 질린 얼굴로 나를 안아 들고 병원으로 달렸다.
차가운 병상 옆에서, 하준은 내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서윤아, 내가 잘못했어. 제발 일어나기만 해줘.”
“내 모든 걸 다 바쳐서 평생 네 곁만 지킬게. 절대 우리 안 헤어져.”
그 말은 마치 끔찍한 예언이 되었다.
그가 내 약을 타러 급히 나가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잃은 것이다.
나는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유산으로 인해 영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고 그때부터 중증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날 이후로 그는 매일 스스로의 몸을 쇠사슬로 묶어둔 채, 내 곁을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았다.
바늘끝으로 자신의 살을 찔러 상처투성이를 만들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노라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하지만 그 모든 참회는 가식에 불과했던 걸까.
어느 날 방문을 열었을 때, 나는 휠체어 앞에 무릎을 꿇고 하준의 가랑이 사이에 머리를 묻고 있는 어린 입주 도우미 아라를 보았다.
그 순간 내 세계가 무너져 내렸지만, 하준은 오히려 내게 사납게 고함을 질렀다.
“강서윤, 나 겨우 딱 한 번 실수한 거야. 네 눈에는 내가 그렇게 더럽고 징그러워?”
“아라는 내 불편한 다리를 닦아주고 있었을 뿐이야. 두 다리까지 잘려 나가며 속죄했는데, 아직도 부족해?”
“고작 아이 하나 잃은 것 가지고 온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굴더니, 대체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 나를 들볶을 셈이야?”
그가 대수롭지 않게 입에 올린 그 ‘유산’은, 우리가 5년 동안 간절히 바라고 기다렸던 유일한 희망이었다.
독기로 일그러진 하준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가슴 속에서 뜨겁게 끓어오르던 무언가가 기이할 정도로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 결혼생활을 더 이상 이어갈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
나는 그의 몸을 칭칭 감고 있던 쇠사슬을 가차 없이 풀어 바닥에 던져버렸다.
“민하준, 이제 안 붙잡아. 네 마음대로 해.”
그가 멈칫하더니, 발밑에 떨어진 쇠사슬을 옆으로 걷어차며 나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강서윤, 너 정말 적당히 좀 해.”
“지난 5년 동안 난 네 그림자가 되어 살았어. 한순간도 네 곁을 떠난 적 없어.”
“그런데 넌 아주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이혼하자, 집 나가겠다 협박이지. 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네 그 잘난 기분을 맞춰줄 수 있는데?”
하준은 분에 못 이겨 격하게 기침을 쏟아냈고, 곁에 있던 아라가 다급히 다가와 그의 등을 쓸어내렸다.
음울하고 초췌해진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문득 5년 전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 시절의 하준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당당했다.
회사가 상장하던 날, 그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미래를 선물하겠다며 가슴 벅찬 약속을 건넸었다.
하지만 그의 커리어가 정점에 달했던 바로 그 순간, 나는 그의 첫 번째 외도를 목격했다.
그리고 지금, 휠체어에 의지한 채 살아가는 하준을 보면서도, 나는 결국 그를 용서할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아라는 하준을 꼭 껴안으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하준 오빠, 화내지 마요. 몸 상해요.”
서로에게 밀착해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심장을 콕콕 찌르듯 아려왔다.
언젠가 서울 신림동의 눅눅한 반지하 단칸방에서, 시린 손을 모아 컵라면 하나를 나누어 먹으며 얇은 이불 한 장을 같이 덮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도 한때는 저렇게 서로의 품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안고 지냈었는데.
씁쓸한 헛웃음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때 아라가 고개를 들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서윤 언니, 왜 자꾸 하준 오빠를 아프게 해요?”
“오빠가 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요? 밤마다 잠꼬대로 언니 이름만 불러요.”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되물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라는 볼을 붉히며 하준을 바라보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언니가 잠든 후에, 제가 오빠 방에 가서 다리 마사지해 드리면서 피로를 풀어드리거든요. 오빠가 기분 좋아질 때마다 부르는 이름은 늘 언니였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그 한마디에 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매일 밤 나를 품에 안고 다정하게 재워주던 손길이, 실은 다른 여자와의 은밀한 시간을 더 편하게 만들기 위한 연극이었다니.
나는 입술이 짓이겨져 핏물이 배어 나올 때까지 깨물며 하준을 보았다.
“민하준, 너 진짜 짐승만도 못하구나. 다리가 잘려 나가도 그 짓거리만큼은 못 끊겠던?”
“바람피우는 게 얼마나 짜릿하길래, 나를 이 지옥에 처넣고도 또 그래?”
내가 흥분하자 하준은 본능적으로 아라를 제 등 뒤로 숨기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윤아, 이건 바람이 아니야. 지난 몇 년 동안 네가 나한테 손끝 하나 대지 못하게 했잖아.”
“나도 남자야. 몸이 멀쩡하든 아니든 욕구가 있는 사람이라고. 아라를 만난 건 그냥 단순한 해소였을 뿐이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평생 너 하나야. 내 아내는 오직 너뿐이라고.”
사랑하는 사람은 나뿐이라니.
우리가 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때, 남산 타워에서 나에게 반지를 건네며 했던 말도 바로 그 말이었다.
5년 전, 그의 첫 외도가 발각되었을 때 병상에 무릎 꿇고 제발 떠나지 말아 달라고 울부짖으며 했던 말도 그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또다시 더러운 배신을 들키고도 아라를 뒤로 숨긴 채 내뱉는 변명 역시 똑같았다.
그는 늘 숭고한 사랑을 입에 담으면서도, 육체는 너무나 쉽게 아무 여자에게나 던져주었다.
5년을 함께 울고 웃었던 남자의 낯선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심장이 완전히 얼어붙는 느낌과 함께, 나는 힘겹게 입술을 떼어 읊조렸다.
“그럼 평생 이 여자 보살핌 받으면서 살아. 난 이제 안 해.”
몸을 돌려 벗어나려는데, 아라가 내 손목을 억척스럽게 낚아챘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득 고이더니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윤 언니, 어떻게 그렇게 사람을 함부로 매도해요?”
“저는 제 일을 충실히 하면서 아픈 오빠를 간호했을 뿐이에요.”
“근데 제 정성을 한순간에 더러운 불륜으로 몰아가다니요. 제가 그렇게 쉬운 여자인가요?”
울먹이는 아라의 시선이 하준에게 닿았다.
하준은 마치 영웅이라도 된 양 아라를 품에 안으며, 나를 향해 혐오와 피로가 가득 찬 서늘한 눈빛을 보냈다.
“강서윤, 적당히 좀 날뛰어.”
“이건 너랑 나 사이의 문제야. 왜 아무 죄 없는 아라를 걸고넘어져?”
“그리고 너라고 그렇게 깨끗해? 맨날 유산 타령하면서 징징대는데,”
“네가 과거에 다른 놈들한테 짓밟히지만 않았어도, 고작 유산 한 번 했다고 불임까지 됐겠어?”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믿을 수 없었다.
그 상처는 내 영혼 가장 깊은 곳에 묻어둔 흉터였고, 우리는 서로 묵인하야 절대 꺼내지 않기로 약속한 금기였다.
그런데 아라를 지키기 위해, 그는 너무나 가볍게 내 가슴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신림동의 차가운 반지하 단칸방을 벗어났던 건, 내가 첫 직장에 합격했을 때였다.
합격 통지서를 들고 그에게 자랑하며, 우리 드디어 이 지독한 가난을 벗어나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기뻐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옥의 시작이었다.
직장 상사가 내 음료에 약을 탔고, 나를 유력 자산가들의 접대방에 밀어 넣었다.
정신을 잃어가던 마지막 순간, 내가 번호를 누른 사람은 오직 하준뿐이었다.
당시 하준은 정말 미친 사람 같았다. 눈이 벌겋게 뒤집힌 채 현장으로 달려와 그 짐승들을 사정없이 때려눕혔다.
주먹뼈가 으스러지고 관절이 뒤틀려 피가 흘러내려도 멈추지 않았다.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나보다 더 서럽게 울며, 내 잘못이 아니라고, 절대로 네 잘못이 아니라고 몇 번이고 말해주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에게 내 온전한 평생을 바치기로 맹세했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내게는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찾아왔다.
누군가와 살을 맞대는 스킨십이 있을 때마다 몸이 먼저 반응해 헛구역질을 하고 구토를 유발했다.
그럴 때마다 하준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며 속삭였다.
천천히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네가 준비될 때까지 언제까지고 곁에 있겠다고.
하지만 그 약속을 가장 먼저 짓밟아버린 사람 역시 그였다.
눈앞의 하준은 이제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냉혈한처럼 보였다.
“네가 내내 그 잘난 고고한 척을 하면서 내 손길을 거부하지만 않았어도, 5년 전에 내가 딴생각을 품었겠어?”
“서윤아, 난 너 하나 때문에 사교계에서 온갖 비웃음을 당했어.”
“다른 남자들이 손탄 더러운 여자 한 명 지키겠다고, 목에 쇠사슬을 감고 5년 동안 개처럼 살았다고 조롱당했다고.”
그는 아라의 손을 지그시 맞잡았다. 그의 눈빛에 담긴 다정함은 내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나를 욕하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아라는 착하고 불쌍한 애야.”
“지난 몇 년간 아라마저 없었으면 난 벌써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거야.”
“서윤아, 난 이제 아라 없이는 못 살아. 그러니까 우리 그냥 셋이 같이 지내자.”
“내가 네가 좋아하는 랍스터 사 오면 아라한테 껍질 까라고 할 테니까, 넌 그냥 하준의 아내로 자리만 지키고 있으면 되잖아.”
온몸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파르르 떨렸다. 이를 악물고 겨우 세 글자를 내뱉었다.
“꿈 깨셔.”
잔인한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가슴을 쳤다.
어느 날 갑자기 하준이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키워본 적도 없으면서 무슨 소리냐며 타박했었다.
하지만 그는 고양이 사료와 품종을 밤새 공부하더니 기어코 작고 사랑스러운 랙돌 고양이를 데려왔다.
주말이 되면 멋진 카페나 맛집에 가서 사진을 찍자고 성화를 부려, 나는 다 큰 남자가 주말에 쉬지 않고 유난이라며 핀잔을 주었다.
그런데도 그는 고집스럽게 인스타그램 핫플레이스를 뒤져가며 가장 예쁜 각도로 사진을 남기곤 했다.
그리고 나와 함께한 5년 동안, 그는 내가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어서 랍스터는 입에도 대지 못한다는 사실을 여전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그는 무심한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그 대상이 내가 아니라 아라였을 뿐이다.
더 이상 이 지옥 같은 공간에서 구걸할 정은 남아있지 않았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 마침내 마지막 선언을 뱉었다.
“민하준, 이혼하자. 우리 진짜 끝이야.”
그의 대답을 들을 가치도 없었기에 방으로 들어가 짐을 싸기 시작했다.
5년 동안 쌓인 나의 흔적들은 쓸쓸하게도 단 하나의 캐리어 안에 모두 담길 만큼 초라했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덤덤하게 말했다.
“잡지 마, 하준아.”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아라였다.
그녀의 눈밑은 발갛게 부어있었지만, 입꼬리는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서윤 언니, 사과드리고 싶어서요……”
가증스러운 목소리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순간 그녀의 약지에 끼워진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직접 하준을 위해 디자인해서 맞춘 맞춤 반지였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끼워주겠다던 반지가, 지금 도우미의 무명지 위에서 번쩍이고 있었다.
방문이 닫히자마자 아라는 순식간에 표정을 싹 바꿨다.
“서윤 언니, 드디어 주제 파악을 하셨네요. 조용히 짐 싸서 꺼져주신다니 고마울 따름이에요.”
“오빠가 그러더라고요. 언니는 침대에서 통나무 같아서 아무 느낌도 안 난다고. 제가 훨씬 더 뜨겁고 다루기 좋대요.”
그녀의 도발에도 나는 동요하지 않고 차가운 시선으로 응수했다.
“억지로 연기할 필요 없어. 너 가져. 남이 쓰다 버린 쓰레기 같은 놈, 마음껏 주워 먹으라고.”
내 무덤덤한 태도에 아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녀는 내 쪽으로 다가와 휴대폰 화면을 눈앞에 들이밀었다. 화면 속에서는 자극적이고 난잡한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하준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아라를 제 아래에 눕히고 짓누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옷가지는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고, 침대 시트는 바닥으로 가차 없이 밀려나 있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지만, 목소리만큼은 평온함을 유지했다.
“고작 이딴 걸로 날 자극하려고?”
그러자 아라가 눈을 가늘게 뜨며 악마처럼 미소 지었다.
“서윤 언니, 자세히 좀 봐요.”
그제야 비로소 보였다. 영상 속 하준의 두 다리가 너무나도 멀쩡하고 튼튼하게 아라를 지탱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비디오의 타임스탬프는 정확히 5년 전, 내가 그의 첫 외도를 잡았던 바로 그날로 찍혀 있었다.
귀가 먹먹해지며 눈앞의 풍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신의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듯한 오한이 들었다.
이 여자가 바로 5년 전, 하준이 처음으로 내 등에 칼을 꽂았던 그 불륜녀였다. 그리고 하준은 지난 세월 동안 이 여자를 버리지 않고, 내 눈을 피해 곁에 도우미로 둔 것이었다.
차가운 바닥에 뿌려졌던 내 아이의 붉은 피가 떠올라 더는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달려들어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채고 사정없이 뺨을 내리쳤다.
짝, 비명이 방 안에 무겁게 울려 퍼졌다.
아라의 입꼬리에서 즉각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만족스럽다는 듯이 입꼬리를 일그러뜨려 웃어 보였다.
그리곤 비정상적일 정도로 몸을 뒤로 날려 바닥에 요란하게 쓰러졌다.
“서윤 언니…… 전 그냥 사과하고 싶었을 뿐인데, 왜 이래요? 제가 그렇게 죽을죄를 지었나요?”
“그렇게 제가 꼴 보기 싫으셨어요?”
아라는 입술을 깨물며 세상에서 가장 가련한 피해자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동시에 문밖에서 다급하고 요란하게 굴러오는 휠체어 소리가 들렸다.
쾅, 문이 세차게 열리며 하준이 들이닥쳤다.
바닥에 쓰러져 우는 아라를 보자마자 그의 눈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뒤집혔다.
그는 휠체어에서 상체를 뻗어 내 어깨를 거칠게 밀쳐냈다.
무방비 상태였던 나는 중심을 잃고 뒤로 고꾸라졌고, 옆구리가 날카로운 화장대 모서리에 강하게 부딪혔다.
아랫배가 찢어지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하준은 쓰러진 아라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아 올리며, 핏발 선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강서윤, 너 미쳤어?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아라한테 손을 대고 난리야!”
“네 몸이 더러워져서 애를 못 가지는 걸, 왜 애먼 사람한테 화풀이해서 망가뜨리려 드는데?”
“그때 네 상사놈한테 험한 꼴 당했던 것도, 사실 네가 싸가지 없게 굴어서 자초한 일 아니었어?”
날카로운 칼날이 심장을 후벼 파는 것 같은 통증과 함께, 차가운 한기가 온몸의 혈관을 타고 퍼져나갔다.
“너같이 심보가 뒤틀린 독한 년은, 그때 그냥 그놈들 손에 짓밟히게 내버려 뒀어야 했어.”
그는 그 잔인한 폭언을 마지막으로, 아라를 안고 방을 서둘러 빠져나갔다.
쾅 소리와 함께 대문이 닫혔고, 나는 바닥에 쓰러진 채 한참 동안 일어설 수 없었다.
더 이상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붉은 핏자국을 보며 심장이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5년의 지독했던 사랑은 여기서 끝이었다.
나는 껍데기만 남은 몸을 이끌고 겨우 일어나 휴대폰을 켰다. 그리고 이 도시를 떠나는 가장 빠른 해외행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하준이 병원에서 아라의 입원 수속을 밟는 동안,
나는 비행기 좌석에 몸을 싣고 활주로를 날아올랐다.
새벽 세 시, 창문 너머로 이 도시의 화려한 네온사인들이 아득한 점이 되어 멀어졌다.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 더 이상 내가 기댈 곳은 없었다.
5년 동안 길들여진 익숙한 휴대폰을 꺼내 모든 과거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화면이 켜지자마자 하준이 보낸 메시지들이 폭탄처럼 쏟아졌다.
[강서윤, 너 또 어디로 도망친 거야? 당장 기어 와서 아라한테 사과해.]
[한 시간 안에 얼굴 안 비치면, 네 명의로 된 카드 전부 다 정지시킬 줄 알아.]
[내가 주는 돈 없으면 넌 밖에서 밥 한 끼도 못 사 먹는 거지 수준이야. 나중에 기어 들어와서 살려달라고 빌지나 마.]
그 오만하고 강압적인 협박 문자들 사이에, 아주 드물게 섞여 있는 초조함이 섞인 문자들도 보였다.
[바닥에 있는 이 피 뭐야? 너 다쳤어? 도대체 어디 간 거야?]
[왜 전화를 안 받아? 이 늦은 시간까지 안 들어올 거면 영원히 들어오지 마!]
나는 차갑게 비웃었다.
그래, 난 정말 영원히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다.
이제 그의 바람대로, 남은 생은 아라와 함께 안온하게 지내길 바란다.
그는 내 5년의 순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내가 절대 떠나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내가 매번 결국 고개를 숙이고 들어올 거라 믿었기에, 내 눈앞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아라와 부둥켜안고 불륜을 저지를 수 있었겠지.
머리가 좋은 하준은 실은 알고 있었을 터다. 이 모든 소동이 아라가 꾸며낸 자작극이라는 걸.
그럼에도 그는 나를 시험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어디까지 참고, 어디까지 자신을 위해 밑바닥까지 낮아질 수 있는지.
자신이 나를 한 번 구해주었고, 그 대가로 다리까지 잃었으니 내가 평생 그의 손아귀에서 인형처럼 놀아나야 한다고 믿었겠지. 배신과 상처를 주어도, 대충 몇 마디 속삭여주면 내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가 줄 거라 생각했겠지.
미안하지만, 난 더 이상 이 바닥 없는 늪에서 내 영혼을 갉아먹으며 버틸 생각이 없다.
사람의 인생에서 5년이란 시간은, 그리 흔하게 낭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니까.
……
새벽이 깊어갈수록, 하준의 마음에 처음으로 묵직한 공포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간 수없이 싸우고 갈등이 있었지만, 내가 이렇게 완벽하게 연락이 두절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연달아 메시지를 보내며 조금씩 목소리를 낮추기 시작했다.
[너 수중에 돈도 없잖아. 밖에서 헤매지 말고 빨리 집으로 와.]
[정지시켰던 카드 다 풀었어.]
[장난치지 말고 빨리 와.]
그러나 대화창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어떤 응답도 돌아가지 않았다.
다시 한 시간이 흐르고, 하준은 좌불안석이 되어 초조함에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가족 카드의 결제 내역을 조회해 보았지만, 단 1원도 쓰인 흔적이 없었다.
집 앞 CCTV를 돌려보았지만, 낮부터 깊은 밤까지 내 모습은 그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다.
거실 바닥에 굳어가고 있는 거뭇한 핏자국에 시선이 닿자, 그의 미간이 격렬하게 찌푸려졌고 가슴 밑바닥에서 거대한 불안이 솟구쳤다.
바로 그때, 하준의 휴대폰으로 연동된 가족 계정의 실시간 알림 팝업이 떴다.
화면 위에는, 지금 이 순간 하늘을 날고 있는 실시간 항공편의 상세 정보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하준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것은 유럽행 편도 티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