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의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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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의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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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숨이 쉬어졌다. 정신병원에서 비참하게 굶어 죽은 뒤, 나는 거짓말처럼 회귀했다. 오늘은 전국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가 열리는 날이다. 나의 쌍둥...

Chương (1)

第1章

다시 숨이 쉬어졌다. 정신병원에서 비참하게 굶어 죽은 뒤, 나는 거짓말처럼 회귀했다. 오늘은 전국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가 열리는 날이다. 나의 쌍둥이 언니, 심서우는 지금 내 악보를 들고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생에서 나는 언니가 내 곡을 훔쳤다는 사실을 폭로했었다. 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처참했다. 부모님은 언니와 한패가 되어 나를 정신병원에 쳐넣었다. 그들은 나를 피해망상 환자라고 몰아세웠고, 언니의 천재성을 질투해 헛소리를 지껄이는 열등감 덩어리로 만들었다. 심서우는 그렇게 나의 곡들을 하나씩 가로채며 악단의 가장 눈부신 ‘천재 소녀’가 되었다. 마지막에 그녀는 나를 철저히 잊었다. 내가 정신병원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며 비참하게 죽어가는 동안에도 말이다. 천재의 후광이 반드시 선혈로 물들어야만 얻어지는 것이라면. 이번 생에서 나는 기꺼이 그녀를 그 신성한 제단 위로 밀어 올려줄 생각이다.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다다랐을 때,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녀를 처참하게 떨어뜨릴 것이다. 뼛가루조차 남지 않도록. 그래서 이번에는 예전처럼 부모님께 울며 불며 매달리지 않았다. …… 1 “다희야, 나 연습 끝났는데 한번 들어봐 줄래?” 언니, 서우의 목소리가 가깝게 들려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익숙한 내 방, 검은색 그랜드 피아노, 그리고 피아노 위에 놓인 악보. 내가 사흘 밤을 꼬박 새워 완성한 곡이었다. 죽지 않았다. 살아났다. 그 차가운 정신병원에서 아사한 뒤, 나는 다시 돌아왔다. 허기짐이 쇠사슬처럼 위장을 옥죄던 감각, 차가운 철문과 부패한 냄새가 여전히 기억 속에 생생했다. 죽기 직전, 나는 그 철문을 향해 절망적으로 울부짖었다. 성대는 찢어지고 목구멍에선 비릿한 피 냄새만 맴돌았다. 내 생명력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동안, 문밖에서는 서우의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나의 장례식을 축하하는 행진곡처럼 경쾌하게. 그 곡은 그녀가 갓 발표한 <휘황>, 바로 내 목숨을 깎아 만든 곡이었다. 나는 곧바로 눈을 감고 몸을 웅크렸다. 문을 등진 채 자는 척을 했다. 서우의 발소리는 조심스러웠다. 떠보는 듯한 걸음걸이. 그녀는 피아노 앞으로 다가가 망설임 없이 내 피와 땀이 서린 악보를 집어 들었다. <심해의 고래>. 이불 속 내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이 곡은 그녀가 명성을 얻기 시작한 출발점이자, 지난 생 나의 숨통을 끊어놓은 급소였다. 곧 거실에서 서우와 부모님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우야, 이걸 정말 네가 썼다고? 이 선율… 서사가 너무 압도적이야!” 엄마의 목소리엔 경탄과 자부심이 가득했다. “내 딸이지만 정말 대단하구나. 우리 서우는 음악을 위해 태어난 아이야! 이 재능은 아무도 못 막지!” 아빠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뒤따랐다. 서우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기고만장하게 대답했다. “당연하죠, 아빠. 누구 딸인데요.” 아빠가 살짝 의구심을 드러냈다. “그런데 평소 연습하던 곡들이랑은 느낌이 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아유, 아빠! 그건 제가 실력을 숨겼던 거죠! 이번 대회가 얼마나 중요한데, 아껴뒀던 보물을 꺼낸 거예요!” 뻔뻔한 거짓말을 들으며 나는 입안에 고인 피의 맛을 느꼈다. 그때, 내 방 문이 살며시 열렸다. 엄마가 들어왔다. 내가 깬 것을 보고 그녀의 얼굴에 잠시 어색함이 스쳤다. “다희야, 일어났니? 언니가… 너무 들떠서 너 깨운 건 아니지?”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요? 저 너무 깊게 잠들어서 아무것도 못 들었어요.” 엄마는 눈에 띄게 안도하며 다가와 이불을 여며주었다. “별일 아냐. 언니가 아주 중요한 대회에 나가게 됐거든. 우리 모두 기뻐하는 중이란다.” 엄마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덧붙였다. “다희 너도 힘내야지. 비록 서우 같은 영감은 부족해도, 성실함으로 보완하면 되니까. 비현실적인 꿈 꾸느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나는 차가운 눈빛을 감추기 위해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네, 엄마.” 엄마는 안쓰러운 듯 내 머리를 쓰다듬고는 방을 나갔다. 그녀는 거실로 돌아가 곧 세상을 놀라게 할 ‘천재 딸’을 위한 축제를 이어갈 것이다. 거실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를 배경 삼아, 나는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이번 생에서, 나는 서우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단두대를 세워줄 생각이다. 2 일주일 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심서우는 내 곡 <심해의 고래>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신문사와 방송국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그녀를 에워쌌다.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조명 아래 앉은 그녀는 흡사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요정 같았다. 그녀는 카메라 앞에서 막힘없이 인터뷰를 이어갔다. “이 곡의 영감은 심해 다큐멘터리에서 얻었어요. 거대한 고래가 깊은 바닷속에서 홀로 죽어갈 때, 그 사체가 가라앉으며 만물을 살찌우죠… 그 웅장하고도 비장한 죽음이 제 마음을 강하게 뒤흔들었습니다.” 내가 이 곡을 쓸 때 들려주었던 창작 노트를 단 한 토씨도 틀리지 않고 복사해 자신의 ‘영감’으로 둔갑시켰다. 부모님은 그녀의 뒤에서 마치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예술품을 감상하듯 자부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면 나는 집에 머물라는 엄명을 받았다. 명분은 그럴싸했다. “기자들이 괜히 우리 집안 사정 캐묻다가 언니 이미지 망칠 수도 있으니까.” 나는 빛 한 점 들지 않는 곳에 처박힌 ‘부록’ 같은 존재였다. 서우가 금의환향한 날, 집에서는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친척과 지인들로 북적이는 거실에서 사람들은 그녀를 떠받들며 찬사를 보냈다. “서우는 우리 집안의 가문의 영광이야! 분명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될 거야.” “어릴 때부터 눈빛이 남다르더니, 역시 크게 될 재목이라니까!” 나는 오렌지 주스 한 잔을 든 채 구석진 그늘에 몸을 숨기고, 그녀가 여왕처럼 군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서우가 나를 발견했다. 그녀는 샴페인 잔을 들고 하이힐 소리를 내며 인파를 헤치고 다가왔다. 내 앞에 선 그녀는 묵직한 금색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오직 나만이 들을 수 있는 낮은 목소리로 비웃듯 속삭였다. “심다희, 봤어? 이게 바로 네가 있어야 할 곳과 내가 있어야 할 곳의 차이야.” 그녀의 눈빛은 경멸로 가득했다. “더는 헛된 꿈 꾸지 마. 너 같은 애는 평생 내 밑바닥이나 깔아주는 깔개로 사는 게 딱 어울리니까.” 나는 고개를 들었다. 예상했던 분노나 억울함 대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언니, 정말 대단해.” “언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멋진 음악가야.” 내 반응에 서우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준비했던 조롱들이 목구멍에 걸린 듯했다. 그녀는 아마 내가 지난 생처럼 히스테리를 부리며 내 영광을 돌려달라고 발악할 거라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모른다. 내가 그녀를 더 높은 곳으로, 더 처참하게 떨어질 절벽 끝으로 밀어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날부터 나는 서우의 가장 충실한 ‘그림자’가 되었다. 그녀가 연습실에 가면 따뜻한 차와 간식을 챙겼고, 그녀의 ‘영감’이 고갈될 때면 내가 쓴 습작들을 연주해 주며 고르게 했다.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은 전부 그녀를 위한 절판 악보와 독주회 티켓을 사는 데 썼다. 서우는 처음엔 나를 경계하며 의심 어린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내가 진심으로 ‘운명에 순응’했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 봉사를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나를 자신의 전속 ‘뮤즈’이자 뒷바라지꾼으로 취급했다. 부모님은 나의 이런 ‘철든’ 변화에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다희가 이제야 철이 났구나. 언니가 우리 집의 희망이라는 걸 깨닫고 심술도 안 부리고 말이야.” “그래, 자매란 모름지기 이래야지. 하나는 무대 위에서 빛나고, 하나는 뒤에서 받쳐주며 서로 돕는 법이야.” 그들은 나의 음악 교육비를 삭감해 서우에게 몰아주었다. “다희야, 너는 피아노를 취미로만 생각해. 비싼 선생님 붙이는 건 돈 낭비니까. 그 시간에 언니 잘 보살피고 뒷바라지하는 게 네가 이 집에 기여하는 가장 큰 일이야.” 나는 온순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빠. 언니한테 더 필요한 거니까요.” 알고 있었다. 내가 먼저 모든 걸 내어줄수록, 그들은 그것을 권리로 여길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두 딸이 모두 빛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저 가문의 영광을 가져다줄 단 하나의 천재만을 원했다. 나머지 하나는 조용히, 고분고분하게, 길을 가로막지만 않으면 그만인 존재였다. 좋다. 정확히 내가 원하던 바다. 3 눈 깜짝할 새 3년이 흘렀다. 서우는 이제 국내에서 가장 핫한 ‘천재 피아노 소녀’로 자리매김했다. 그녀가 내놓는 곡들은 하나같이 파격적이었고, 클래식과 현대 음악을 넘나드는 상상력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오직 나만이 알았다. 그 스타일과 영감들이 전부 내 침대 밑 상자에 가득 쌓인,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나의 원고들이라는 것을. 낮에는 순종적인 동생을 연기했고, 밤에는 내 작은 방에서 미친 듯이 음악적 자양분을 흡수했다. 화성학을 파고들고 거장들의 작품을 분석했으며, 심지어 독학으로 미디(MIDI) 작곡까지 익혀 더 복잡한 편곡 기법을 실험했다. 나의 음악적 깊이는 지난 생의 정점을 이미 훌쩍 넘어섰다. 반면 서우는 사인하는 법만 능숙해졌을 뿐, 화려한 연주 테크닉 뒤에 숨겨진 음악적 이해도는 3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조금씩 음악계에서도 잡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심서우의 곡은 듣기 좋긴 한데, 뭔가…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야.” “맞아요. 게다가 스타일이 너무 중구난방이에요. 어떤 날은 바로크풍이었다가, 다음 날은 낭만파가 됐다가. 자기만의 음악적 언어가 전혀 없달까.” “지난번에 대기실에서 만났는데, 자기 곡에 쓰인 대위법에 관해 물어보니까 어버버하면서 대답을 못 하더라고요. 무슨 비전공자처럼 말이야.” 이런 뒷말들이 서우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녀는 점점 더 초조해졌고 히스테릭하게 변해갔다. 어느 날, 한 평론가가 그녀의 연주를 두고 “기교는 넘치나 감성이 부족하다”고 평하자 그녀는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지들이 뭘 안다고! 내 재능을 질투하는 거야!”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내가 정리해 둔 악보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종이 조각들이 눈송이처럼 흩날렸다. “전부 쓰레기들이야! 질투밖에 모르는 무능한 족속들!” 엄마는 안쓰러운 듯 그녀를 껴안고 달랬다. “서우야, 화내지 마. 저런 천박한 사람들 상대할 거 없어. 네 고결한 예술 세계를 이해하기엔 역부족인 거지.” 아빠는 화살을 나에게 돌렸다. 내가 이 집에 ‘불운’을 몰고 와 언니의 운세를 방해한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심다희! 네가 또 언니 앞에서 쓸데없는 소리 지껄인 거 아냐? 내가 말했지, 네 그 음침한 기운이 언니 컨디션을 망친다고!” 나는 눈을 내리깔고 어깨를 미세하게 떨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에요. 전 그냥 언니를 위로해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위로? 비웃으려고 간 본 거겠지!” 아빠가 호통을 쳤다. 서우는 엄마 품에 안겨 세상에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아이처럼 서럽게 울었다. “엄마, 사람들이 다 나를 괴롭혀! 다 나를 무시해! 다들 나를 끌어내리려고 안달이야!” 그 조잡한 연기를 지켜보며 속으로 비웃었다. 진짜 공연은 이제 시작인데. 나는 더욱 대인배인 척 다가가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언니, 그런 말 듣지 마. 내 마음속에 언니는 영원히 최고니까.” “언니는 독보적인 천재야. 그 누구도 그 자리를 뺏어갈 수 없어.” 서우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녀는 벌겋게 부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의존과, 거의 광기에 가까운 집착이 서려 있었다.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 그녀의 요구는 더욱 노골적이고 당당해졌다. “심다희, 나 다음 주 자선 파티 때 연주할 따뜻하고 치유되는 느낌의 곡이 필요해. 무슨 뜻인지 알지?” “심다희, 이번 페스티벌 주제가 ‘부서짐’이래. 세상에서 제일 처참하게 부서지는 곡 하나 써와.” “심다희, 나 돈 떨어졌어. 네 카드 내놔.” 그녀는 내 모든 것을 훔쳐 갔다. 생각, 작품, 그리고 금전까지. 한번은 그녀가 내 보물 같은 어린 시절 연습장을 발견하고는, 그 안에 적힌 초창기 노트들을 내 눈앞에서 경멸스럽게 찢어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이런 쓰레기 종이를 뭐하러 간직해?” 하지만 나는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녀가 더 거창하고 공허한 ‘음악 철학’을 구축하도록 기꺼이 도왔다. 인터뷰에서 어떻게 하면 빈틈없이 말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화려한 수식어로 자신의 빈약한 내면을 포장할 수 있는지 가르쳤다. 부모님은 날로 ‘프로’다워지는 그녀의 모습에 확신을 가졌고, 그녀가 세계의 정점에 서는 모습을 이미 보고 있는 듯했다. 반면 나는 여전히 그림자 속에 사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동생이었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조차 안타까운지 내게 슬쩍 말을 건넸다. “작은아가씨, 언니한테 그렇게 잘해주는데 언니는 왜 맨날 구박만 한다니?”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그녀에게 베푸는 ‘친절’은, 달콤한 꿀로 코팅된 비소라는 것을. 4 서우의 열여덟 살 생일날, 부모님은 시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콘서트홀을 빌려 성대한 성인식 피아노 독주회를 열어주었다. 그것은 생일 축하 파티인 동시에 그녀가 세계 무대로 도약하기 위한 사전 예고제였다. 독주회 팸플릿에는 스타일이 판이한 열 곡의 피아노곡이 적혀 있었고, 모든 곡에는 <작곡: 심서우>라는 이름이 박혀 있었다. 한 곡 한 곡이 나의 밤샘과 피눈물로 빚어낸 곡들이었다. 공연 당일, 객석은 명사들로 가득 찼다. 음악계의 원로들, 유명 평론가들, 심지어 해외 유수 음대에서 온 입학 사정관들까지 참석했다. 그중에는 ‘독설가’로 악명 높으며 단 한 번도 빈말을 하지 않는 세계적인 지휘자, 지승헌 씨도 있었다. 지난 생에서 서우를 무너뜨린 것도 그였다. 국제 콩쿠르에서 그녀의 연주를 듣고 “기교만 있을 뿐 영혼이 없다”는 단 한마디로 그녀를 결선에서 탈락시켰다. 그때 나는 이미 정신병원에 갇힌 미친년이었기에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지만. 이번 생에서 나는 그를 기다렸다. 아주 오랫동안. 서우는 은하수를 수놓은 듯한 오트쿠튀르 드레스를 입고, 거만한 공작새처럼 대기실을 누비며 찬사를 만끽하고 있었다. “서우 양은 정말 젊은 거장이군요. 이 <여명>이라는 곡은 정말 신의 한 수입니다!” “맞아요, 이 화성과 텍스처… 생동감이 넘쳐서 마치 첫 햇살이 어둠을 뚫고 나오는 장면이 그려져요!” 서우는 우아하게 미소 지으며 자신의 것이 아닌 영광을 취했다. 나는 대기실 입구의 어두운 구석에 서서 그 광경을 차갑게 지켜보았다. 그때, 한 젊은 기자가 나를 발견했다. 서우와 닮은 내 외모에 흥미를 느낀 모양이었다. “혹시 심서우 씨 자매분이신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본인도 음악적 재능이 남다르시겠어요. 언니의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서우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얘가 음악을 뭘 안다고요!” 그녀는 성큼성큼 다가와 나를 제 뒤로 거칠게 밀치며 기자를 경계했다. “제 동생은 몸이 약해서 줄곧 집에서만 지냈어요. 음악엔 문외한이니까 더는 방해하지 말아 주시죠.” 내게 단 한 톨의 스포트라이트도 뺏기지 않겠다는 결연한 태도였다. 기자는 어색하게 웃으며 물러났다. 서우는 낮은 목소리로 내 귓가에 경고했다. 얼음장 같은 목소리였다. “심다희, 내가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했지?” “오늘 이 자리에선 숨소리조차 죽이고 있어. 안 그러면 네가 어떻게 될지 알지?” 나는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숙였다. “알았어, 언니.” 그때, 장내가 갑자기 정적에 휩싸였다. 지승헌 지휘자였다. 검은 수트에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머리 모양. 그는 특유의 위엄과 아우라를 뿜어내며 등장했다. 그는 누구와도 인사하지 않고 벽에 걸린 커다란 곡목 포스터 앞으로 직진했다. 포스터의 대미를 장식하는 곡은 오늘 세계 초연될 곡, <작열>이었다. 그는 그 제목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눈빛이 깊어졌다. 서우의 호흡이 순식간에 가빠졌다. 부모님도 긴장한 채 다가가 아부 섞인 미소를 지었다. “지 선생님, 와주셔서 영광입니다. 저희 애가 성격이 내성적이라 말주변이 없으니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지승헌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여전히 제목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가 천천히 입을 뗐다. “이 곡 제목이 <작열>이라고 했나?” 아빠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서우의 최신작입니다. 영감은 그… 뜨거운 태양에서 얻었다고….” 그가 손을 들어 말을 가로막았다. 평온하지만 묵직한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이 곡, 문제가 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