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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케이지
한밤중, 아주 미세한 기척이 나를 잠의 나락에서 강제로 끌어올렸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남편 진우의 뒷모습이었다. 그는 얼마 전 업...
Chương (1)
第1章
한밤중, 아주 미세한 기척이 나를 잠의 나락에서 강제로 끌어올렸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남편 진우의 뒷모습이었다. 그는 얼마 전 업무 스트레스를 해소하겠다며 사 온 실물 크기의 리얼돌을 품에 안고 있었다. 인형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지독하리만치 전유적이었고, 그 집착의 깊이는 어딘가 비정상적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내 머릿속에 기괴한 글자들이 마치 인터넷 방송의 실시간 채팅창처럼 스쳐 지나갔다.
[여주가 또 공감 시스템을 썼네. 자기 의식을 인형 몸속으로 옮겨서 조연 눈앞에서 남주랑 애정 행각이라니, 진짜 짜릿하다!]
[이 남주 여주 커플, 노는 수준 좀 봐. 저 조연 여자는 아마 지금까지도 꿈에도 모르겠지? 하하하!]
나는 시선을 옮겨 소파 위에 놓인 인형을 보았다. 인형의 입꼬리가 기괴한 각도로 비틀리며 비죽, 올라가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네가 그렇게 인형 놀이에 진심이라면 내가 기꺼이 도와줄게. 평생 그 인형 속에 갇혀서 '충직한' 인형으로 살게 해줄게.
…
1.
남편 진우에게 이상한 취미가 생긴 건 약 석 달 전이었다.
어느 날 그가 집으로 커다란 실리콘 인형을 들고 왔다.
성인 여성 크기에 밤색 웨이브 헤어, 도톰한 입술, 그리고 묘하게 사람을 홀리는 눈매를 가진 인형이었다. 그는 회사 워크숍 경품으로 받은 거라고, 스트레스 해소용이라며 변명했다.
“요즘 다들 이런 거 하나씩 두고 산대. 안고 자면 심리적으로 안정된다나 뭐라나.”
나는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보던 중 고개를 들어 그 인형을 무심히 쳐다봤다.
만듦새는 지독할 정도로 정교했다. 피부를 만지면 체온이 느껴질 것 같은 촉감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 입꼬리에 걸린 미묘한 미소만큼은 보면 볼수록 불쾌했다.
“마음대로 해. 침대 위에만 올리지 마.”
내 말에 진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인형을 거실 1인용 소파에 앉히고는 정성스럽게 담요까지 덮어주었다.
그날 이후, 그 인형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아침에 나갈 때도, 저녁에 돌아올 때도.
하지만 위치는 교묘하게 변했다.
어떤 날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고, 어떤 날은 베란다 안락의자에 기대어 있었다. 한밤중에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침실 문 앞에 서 있는 인형의 실루엣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도 두어 번 있었다.
진우에게 인형을 옮겼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늘 시치미를 뗐다. 오히려 집에 귀신이라도 있는 것 아니냐며 농담조로 웃어넘길 뿐이었다.
나는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지난주 금요일 전까지는.
그날 나는 밤 11시까지 야근을 하고 귀가했다. 진우는 이미 잠든 상태였다.
조심스럽게 씻고 침대에 누워 막 잠이 들려던 찰나, 귓가에 가느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거친 숨소리 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억누르는 신음 같기도 했다.
나는 눈을 떴다.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바라본 진우는 나를 등진 채 몸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혼자 욕구를 해소하는 중이라 생각하니 역겨움이 치밀어 몸을 돌려 눈을 감으려 했다.
하지만 소리가 이상했다.
혼자의 호흡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호흡이었다. 극도로 가늘고 떨리는, 목구멍 깊은 곳에서 쥐어짜는 듯한 소리.
나는 거칠게 몸을 돌려 확인했다.
진우는 그 인형을 품에 꼭 안고 있었다.
그는 인형의 얼굴을 제 가슴팍에 파묻고 한 손으로는 인형의 뒷머리를 감싸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인형의 몸을 거칠게 훑고 있었다.
그때였다. 인형의 입이 살짝 벌어지더니, 극도의 쾌락에 젖은 듯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피가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바로 그 순간, 머릿속에서 기계적인 알림음이 터졌다.
당황할 틈도 없이 눈앞으로 글자들이 미친 듯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왔다 왔다! 여주 누나, 오늘 밤도 남편한테 제대로 사랑받네~]
[옆에 조연이 누워 있는데 진짜 짜릿하다. 진우는 이런 스릴을 즐긴다니까.]
[유나는 지금 인형 몸속에서 날아갈 것 같겠지? 원룸에 있는 자기 진짜 몸은 아마 덜덜 떨고 있을걸? ㅋㅋㅋ]
[조연 저 바보 같은 표정 좀 봐. 남편이 그냥 변태인 줄로만 아네. 웃겨 죽겠다.]
[우리 여주 연기력 대박. 낮에는 청순한 신입사원, 밤에는 요염한 인형. 조연을 아주 원숭이 취급하네.]
[진우도 대단하다. 와이프 면전에서 상간녀랑 즐기다니. 저 멘탈 인정.]
나는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무슨 뜻이지?
‘여주’는 누구고, 유나는 또 누구야?
문득 이름 하나가 스쳤다.
진우의 회사 신입 인턴, 이유나.
얼마 전 집에 두어 번 놀러 왔던 여자애였다.
마르고 왜소한 체구에 조용조용 말하던, 겉보기엔 참 순해 보이던 아이.
그 애가 이 인형이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글자들은 멈추지 않았다.
[조연은 아직도 상황 파악 중. 불쌍해라. 남편이랑 상간녀가 자기 얼굴 앞에서 대놓고 노는데도 몰라.]
[유나 내일 또 이 집으로 밥 먹으러 온다는데? 그때 진우 티셔츠 입고 와서 조연 자극할 거래. 대박.]
[조연 성격에 절대 못 참을 텐데. 싸워라! 싸워라!]
[에이, 조연 완전 겁쟁이잖아. 저번에 유나가 남편 무릎에 앉았을 때도 아무 말 못 하던데 뭘.]
나는 이불 끝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몸을 뒤척여 천장을 바라보았다.
곁눈질로 진우의 품에 안긴 인형을 훑었다.
어둠 속에서, 인형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그것은 분명한 비웃음이었다.
2.
다음 날은 토요일이었다.
진우는 회사 동료들이 집으로 오기로 했다며 음식을 넉넉히 준비해달라고 했다.
나는 새벽 6시부터 일어나 갈비찜을 하고, 새우를 볶고, 달콤한 디저트까지 준비했다.
오전 11시 반, 초인종이 울렸다.
진우가 문을 열러 나갔고 나는 주방에서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현관에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낮게 묶은 젊은 여자가 과일 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진우 선배님 안녕하세요. 언니, 안녕하세요!”
나를 향해 싱그럽게 웃는 얼굴.
이유나였다.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조금 마른 듯했지만, 안색은 오히려 발그레하니 좋아 보였다.
머릿속 창에 실시간 글자들이 쏟아졌다.
[여주 등장! 오늘 룩 완전 청순 섹시 그 자체다. 진우 눈 돌아가는 것 봐.]
[목에 저 키스마크, 어제 진우가 남긴 거겠지? 조연은 절대 눈치 못 채겠지?]
[유나가 일부러 안 가린 거야. 조연 보라고.]
나는 유나의 목덜미를 유심히 살폈다.
깃 아래로 아주 옅은 붉은 자국이 보였다. 얼핏 보면 모기에 물린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그런 흔적.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 주방으로 향했다.
유나가 내 뒤를 따라 들어와 채소를 써는 내 옆에 바짝 붙어 섰다.
“언니, 칼질 정말 잘하시네요. 선배님은 진짜 복 받으셨다.”
“그래?”
나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유나는 도마 위에 썰어놓은 오이 조각 하나를 집어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언니, 이 앞치마 너무 예뻐요. 어디서 사셨어요?”
나는 내 몸에 둘러진 꽃무늬 앞치마를 내려다보았다.
지난달 내 생일에 진우가 선물해 준 것이었다. 아까워서 아껴두다 오늘 처음 꺼낸 것이었다.
“진우 씨가 사준 거야.”
“와, 선배님 안목 진짜 좋으시다.”
그녀가 눈을 초승달처럼 휘며 웃었다.
“저번에 저한테 주신 티셔츠도 진짜 예뻤거든요. 저 요즘 매일 그거 입고 자요.”
칼질하던 내 손이 멈췄다.
“진우 씨가 너한테 티셔츠를 줬다고?”
“네! 저번에 야근하느라 옷 갈아입을 시간이 없었는데, 선배님이 자기 옷 하나 빌려주셨거든요. 나중에 그냥 가지라고 하셔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어요.”
유나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덧붙였다.
“언니, 혹시 기분 나쁘신 건 아니죠?”
글자들이 요동쳤다.
[나왔다! 전형적인 대사, "기분 나쁘신 건 아니죠?"]
[조연 얼굴 썩어가는 것 봐. 하하하.]
[유나가 일부러 저러는 거야. 그 티셔츠에 진우 냄새가 배어 있거든. 매일 밤 그거 입고 자면서 진우 품에 안긴 상상을 하는 거지.]
[조연아, 제발 화 좀 내라! 화내면 진우가 너 속 좁다고 싫어하게 될 텐데.]
나는 심호흡을 하며 썰어둔 오이를 접시에 담았다.
“아니, 옷 한 벌인데 뭐 어때.”
유나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예상치 못한 내 반응에 조금 실망한 기색이었다.
그녀는 주방을 나가 거실로 가더니,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보던 진우 옆에 찰싹 달라붙어 앉았다.
진우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지나치게 능숙한 손길. 처음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선배님, 언니 요리하느라 너무 힘드시겠다. 선배님이 잘해주셔야겠어요.”
유나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힘들긴 뭐가 힘들어. 밥 한 끼 하는 건데.”
진우는 눈길조차 내 쪽으로 주지 않았다.
유나는 까르르 웃으며 진우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비벼댔다.
주방 유리문 너머로 그 광경을 보며, 나는 손에 든 접시를 바닥에 내던지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조연이 주방에서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네. 통쾌하다.]
[유나의 '면전 애교' 필살기! 조연은 감히 나오지도 못하고.]
[진우는 조연 감정 따위 안중에도 없어. 오직 유나뿐이지.]
[오늘 밤 유나가 다시 인형으로 접속할 텐데, 진우가 조연 옆에서 인형을 안고 자는 상상만 해도 짜릿해.]
나는 눈을 감고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래.
그렇게 짜릿한 걸 원한다면.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고.
3.
식사가 끝나고 진우는 유나를 데리고 거실에서 TV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뒷정리를 하며 유리문 너머로 그들을 관찰했다.
유나는 진우의 어깨에 기댄 채, 한 손으로는 그 인형의 다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녀는 인형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고, 진우는 그런 그녀를 꿀이 떨어지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에게는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다정한 시선이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가자, 유나는 어느새 옷을 갈아입은 상태였다.
진우가 예전에 입던 회색 후드티였다. 소매가 너무 길어 손을 다 덮을 정도였다.
“언니, 제 옷에 국물이 튀어서 선배님 옷 좀 빌려 입었어요. 괜찮죠?”
그녀가 나를 향해 윙크를 했다.
“상관없어.”
나는 맞은편 1인용 소파에 앉았다.
유나는 그 인형을 자기 무릎 위에 올려 안더니 진우에게 말했다.
“선배님, 이 인형 너무 귀여워요. 저도 하나 갖고 싶다.”
“너 가져.”
진우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정말요?”
유나의 눈이 반짝이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아니에요. 언니가 기분 나빠하실 거예요.”
진우가 나를 힐끗 보더니 툭 뱉었다.
“내 물건인데 얘가 상관할 게 뭐 있어? 갖고 싶으면 가져가.”
유나는 슬쩍 내 표정을 살피더니 입가에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럼 사양 안 할게요!”
그녀는 인형을 품에 꼭 안고 턱을 인형 머리 위에 괸 채 나를 보며 생긋 웃었다.
[하하하, 조연 얼굴 솥뚜껑처럼 시꺼매졌네.]
[유나가 인형 가져가면 진우는 오늘 밤 뭐 하고 놀아?]
[바보야, 유나가 인형을 가져가서 자기 집에 두고 밤에 접속하면, 진우는 원격으로 즐기는 셈이잖아? 더 자극적이지.]
[조연은 그것도 모르고 인형 치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겠지? 순진하긴.]
[이게 바로 '성동격서'라는 거다. 조연 머리로는 평생 이해 못 해.]
유나가 인형을 안고 일어서며 진우에게 말했다.
“선배님, 저 오늘 여기서 자고 가면 안 돼요? 너무 늦어서 택시 잡기도 힘들 것 같아서요.”
“그래, 손님방 비어 있으니까 거기서 자.”
진우가 대답했다. 유나가 나를 보며 웃었다.
“언니, 신세 좀 질게요.”
나는 말없이 일어나 손님방에 침구류를 세팅해 주었다.
그녀는 인형을 안고 들어와 베개 옆에 눕히더니 후드티를 벗기 시작했다.
나는 시선을 피하며 돌아서려 했다.
“언니,” 그녀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선배님이 언니한테 잘해줘요?”
나는 멈칫했다.
“무슨 뜻이야?”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요.”
그녀는 슬립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인형을 끌어안았다.
“선배님 참 좋은 분 같아요. 다만… 표현이 좀 서투르신 것 같긴 하지만요.”
그녀는 나를 등지고 누우며 웅얼거렸다.
“언니, 잘 자요.”
나는 문을 닫고 안방으로 돌아왔다.
진우는 이미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유나 자?”
“어.”
“애가 타지에서 혼자 고생이 많잖아. 네가 언니로서 좀 챙겨줘.”
나는 대답 대신 불을 끄고 누웠다.
어둠 속에서 진우가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그는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문은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손님방 문이 열리는 소리, 그리고 아주 낮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유나야?”
글자들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대박 대박! 진우가 유나한테 갔다!]
[조연이 바로 옆방에 있는데 대놓고 가네? 진짜 야생이다.]
[유나는 이미 인형 속으로 접속 완료. 지금 손님방 침대 위 인형 몸속에 유나 의식이 들어 있어.]
[조연이 눈치챌까? 아니, 쟤 머리로는 절대 몰라.]
[스릴 대박이다. 손님방에선 인형이랑 놀고, 안방엔 멍청한 조연이 누워 있고.]
나는 시트를 꽉 움쥐었다.
글자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곧이어 손님방에서 익숙한 소리들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억눌린 숨소리, 가느다란 신음, 그리고 진우의 낮게 깔린 짐승 같은 음성.
나는 눈을 뜬 채 천장을 바라보며 밤을 지새웠다.
4.
새벽녘이 되어서야 진우가 안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온몸이 땀 범벅이 된 채 눕자마자 코를 골며 곯아떨어졌다.
나는 소리 없이 일어나 손님방 문을 열었다.
유나는 침대 위에 이불을 덮고 평온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녀의 품에는 어제와 같은 자세로 인형이 안겨 있었다.
하지만 인형의 입가에 묻은 가느다란 물줄기가 내 시선을 붙들었다.
나는 다가가 얼굴을 밀착했다.
침이었다.
실리콘 인형의 입가에 침이 묻어 있었다.
무생물인 인형이 어떻게 침을 흘린단 말인가?
글자들이 즉각 반응했다.
[조연이 확인하고 있어! ㅋㅋㅋ 근데 봐도 절대 모를걸?]
[유나가 방금 자기 몸으로 돌아갔거든. 인형 속 의식은 빠져나갔고 이제 그냥 인형이야.]
[아까 의식 전환할 때 조절을 못 해서 인형 입이 살짝 움직이면서 침이 흐른 거야.]
[조연은 아마 진우 침인 줄 알겠지? 하하하!]
나는 한참을 서 있다가 방을 나왔다.
오전 8시, 유나가 깼다.
그녀는 진우의 후드티를 걸친 채 하품을 하며 거실로 나왔다.
“언니 좋은 아침이에요. 선배님은요?”
“아직 자고 있어.”
“아….”
그녀는 주방으로 가 물 한 잔을 마시더니 조리대에 기대어 내가 계란 프라이를 하는 걸 구경했다.
“언니, 어제 잘 주무셨어요?”
“그럭저럭.”
“전 진짜 잘 잤어요. 이렇게 푹 잔 게 얼마만인지 몰라요.”
그녀는 컵을 싱크대에 내려놓고 거실로 가 소파 위에 둔 인형의 머리를 톡톡 쳤다.
“아가야, 어제 고마웠어.”
[하하하, 유나가 인형한테 말 거는 것 봐. 조연은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지.]
[‘아가’가 사실 자기 자신인 거잖아? 어제 인형 속에서 밤새 즐겼으니까.]
[조연은 지금 계란이나 굽고 있네. 남편은 밖에서 딴짓하는데 상간녀 아침밥이나 해주고. 불쌍한 수준을 넘어섰다.]
나는 프라이를 접시에 담아 식탁에 놓았다.
유나가 자리를 잡고 앉았고, 진우도 속옷 차림으로 방에서 나왔다.
“진우 씨, 바지 좀 입고 나오지?” 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내 집인데 뭐 어때.”
그는 유나 옆에 털썩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유나는 자기가 한 입 베어 문 계란을 진우의 밥 위에 올려주었다.
“선배님, 이거 맛있어요. 드셔보세요.”
진우는 그걸 한입에 먹어 치우더니 젓가락까지 쪽 빨았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다 문득 미소를 지었다.
“진우 씨, 그 인형 이제 세탁 좀 해야 하지 않아?”
진우가 멈칫했다.
“갑자기 그건 왜?”
“입가에 침 자국 같은 게 말라붙어 있더라고. 좀 지저분해 보여.”
나는 티슈로 손을 닦으며 덧붙였다.
“오늘 내가 좀 닦아줄까?”
식탁 위에 정적이 감돌았다.
진우의 젓가락이 허공에 멈췄고, 유나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헐! 조연이 인형을 닦겠다고? 유나 의식의 매개체를 분해해 버리려는 건가?]
[유나 당황한 거 봐. 절대 안 된다고 하겠지.]
[진우야, 제발 허락하지 마!]
진우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부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안 닦아도 돼. 내가 알아서 할게.”
“당신 매일 바쁜데 시간이 어디 있어? 나 오늘 마침 쉬는 날인데.”
나는 거실로 향했다.
“안 해도 된다고 했잖아!”
진우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다. 명백한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손가락으로 식탁을 초조하게 두드렸다.
“이거… 특수 재질이라 물로 닦으면 안 돼. 망가진단 말이야.”
“그럼 뭘로 닦아? 드라이클리닝이라도 맡겨?”
“그냥 둬!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그는 일어서서 나와 인형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유나는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식탁보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진우 반응 빠르네. 유나 지키려고 애쓴다.]
[조연 저 여자, 괜히 오지랖이야.]
[유나 울 것 같아. 인형 안에 있는 컨트롤러 들킬까 봐 겁먹은 듯.]
나는 진우를 한 번, 유나를 한 번 번갈아 보고는 웃었다.
“그래, 그럼 당신이 알아서 해.”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내 식사를 이어갔다.
진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지만,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젓가락질만 할 뿐 한 입도 먹지 못했다.
유나는 아예 넋이 나간 듯 얼굴이 종잇장처럼 하얘져 있었다.
글자들은 여전히 떠다녔다.
[조연이 일부러 저러는 건가? 왜 갑자기 인형을 닦는대?]
[우연이겠지. 쟤가 뭘 알겠어. 그냥 심심하니까 저러는 거야.]
[우리 유나 공주님 놀라 죽을 뻔했네.]
[진우야, 오늘 밤엔 인형 꼭 숨겨라.]
나는 조용히 죽을 삼키며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일부터 이 인형은 단순한 진우의 장난감이 아니게 될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