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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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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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일. 이른바 ‘안전가옥’이라 불리는 이 좁고 폐쇄적인 공간에 갇힌 지 정확히 삼십 일이 되었다. 코를 찌르는 진한 피비린내가 혼미한 정신을 강...

Chương (1)

第1章

삼십 일. 이른바 ‘안전가옥’이라 불리는 이 좁고 폐쇄적인 공간에 갇힌 지 정확히 삼십 일이 되었다. 코를 찌르는 진한 피비린내가 혼미한 정신을 강제로 깨웠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내렸다. 바닥에 쓰러진 엄마. 손목의 상처에서는 여전히 붉은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린 엄마의 얼굴에선 희미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 옆에는 비뚤비뚤한 글씨로 적힌 쪽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나 하나만 없으면, 너랑 아빠는 며칠 더 버틸 수 있을 거야.] 쪽지 곁에는 다섯 개의 통조림이 자로 잰 듯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지난 열흘 동안 엄마가 종이를 씹고 화분의 풀떼기를 뜯어 먹으며 목숨 걸고 아껴둔, 우리 가족의 마지막 식량이었다. 눈물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나는 배낭을 낚아채듯 들고 밖으로 돌진했다. “엄마, 조금만 기다려! 내가 약 사 올게. 제발 기다려야 해!” 방탄문을 온 힘을 다해 밀쳤다. 밖으로 나가자마자 쏟아지는 햇살이 눈이 멀 정도로 눈부셨다. 하지만 그곳에 좀비는 없었다. 무너진 폐허도 없었다. 그곳은 활기 넘치는 영화 세트장이었다. 근처 샤브샤브 식당 안, 실종된 줄 알았던 아빠가 앉아 있었다. 내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정한 미소를 지은 채로. 그리고 그 곁에는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유라 아줌마가 몸을 기대고 있었다. 강유라는 교태 섞인 웃음을 흘리며 아빠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진호 씨, 당신 진짜 대단하다. 대충 연기 좀 섞었을 뿐인데, 그 모녀는 진짜로 세상이 망했다는 말을 믿더라고. 좀비라니, 너무 웃기지 않아?” 아빠는 고기 한 점을 집어 유라의 입에 넣어주며 가벼운 말투로 대꾸했다. “누가 감히 당신을 지하실에 세 시간이나 가두래? 난 그냥 똑같이 갚아주고 싶었을 뿐이야. 지하실에 갇힌 절망감이 어떤 건지 뼛속까지 새겨주려고 시작한 연극이니까.” 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굳어버렸다. 전신을 타고 흐르는 혈액이 순식간에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지난 삼십 일 동안 내가 겪은 그 모든 공포와 굶주림, 그리고 죽음보다 깊었던 절망이... 고작 엄마를 향한 복수를 위해 그들이 정성껏 준비한 연극이었다니. … 얼굴에 범벅이 된 피와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비틀거리며 그들에게 달려갔다. “아빠! 왜 우리를 속였어? 제발 119 좀 불러줘, 빨리! 엄마가... 엄마가 손목을 그었단 말이야!” 아빠는 아주 느긋하게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어떻게 나왔니? 좀비한테 잡아먹힐까 봐 무섭지도 않아?” 그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마치 평범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농담이라도 던지는 사람처럼. “이미 나왔으니 다시 들어가라고는 안 하겠다만, 그런 서툰 연기로 날 속일 생각은 마라. 네 엄마를 일찍 꺼내 주려고 작전을 짠 모양인데, 어림없어.” “거짓말 아냐!” 나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입 하나라도 줄여야 나랑 아빠가 살 수 있다고 했어. 그래서 종이를 씹어 먹고 화분 뿌리를 캐 먹으면서 버텼단 말이야! 흙까지 파먹었다고! 제발, 아빠, 지금 안 가면 늦어!” 강유라는 얄밉게 푸아그라 한 점을 집어 아빠의 입가에 갖다 댔다. “진호 씨, 이것 좀 봐. 당신 주려고 프랑스에서 공수해 온 거야. 며칠 동안 그 눅눅한 지하에서 통조림만 먹느라 얼굴 반쪽 된 것 좀 봐. 내 마음이 다 아프네.” 아빠는 유라가 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며 눈매를 부드럽게 휜다. 하지만 나를 돌아보는 시선은 서늘하기 짝이 없었다. “하은아, 이 아빠가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라는 걸 잊었니? 내 앞에서 연기하지 마, 아주 어설프니까. 내가 계산해 둔 식량은 삼십 일을 버티기에 충분했어. 자살할 이유 따위 없다는 뜻이야.” 나는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목구멍에 뜨거운 것이 걸려 신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식량이 충분했다고? 엄마와 나는 하루에 딱 한 끼만 먹었다. 그것도 손톱만 한 압축 비스킷을 입안에서 녹여가며 겨우 버텼다. 위경련이 일어나 배를 부여잡고 쓰러져도 식량에는 손도 대지 못했는데. 나는 미친 사람처럼 아빠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뺏으려 달려들었다. 하지만 아빠는 무자비하게 나를 밀쳐냈고, 나는 차가운 바닥 위로 나뒹굴었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이하은! 아비한테 이게 무슨 말버릇이냐!” 그는 휴대폰을 깊숙이 집어넣으며 오만하기 짝이 없는 투로 덧붙였다. “걱정 마라. 내일이면 딱 한 달이야. 유라 씨 화도 풀렸을 테니, 내일 내가 직접 네 엄마 데리러 갈 거니까.” “세상에서 네 엄마를 가장 잘 아는 건 나야. 그 여자는 겁이 많아. 작년에 촬영장 왔을 때도 유라 씨한테 발등 좀 밟혔다고 아프다며 사흘을 누워 지낸 여자야.” “그런 여자가 죽고 싶어서 손목을 그어? 거짓말을 하려거든 머리를 써서 해.” 강유라는 입을 가리고 꺄르르 웃어댔다. “맞아, 민주 언니가 좀 유난스럽긴 했지. 진호 씨니까 그 성격 다 받아주며 산 거야.” 나는 온몸을 떨며 오열했다. 거짓말. 엄마는 누구보다 잘 참는 사람이었다. 작년 촬영장에서 유라 아줌마가 연습하기 귀찮다며 검을 휘두르다 엄마의 아킬레스건을 끊어놨을 때도, 엄마는 유라 아줌마가 비난받을까 봐 ‘살짝 긁힌 것뿐’이라며 모두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사흘 만에 다시 촬영장에 나와 아빠의 수발을 들었다. 입안에 피멍이 들 정도로 고통을 삼키면서도 아프다는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던 엄마였다. 그때, 등 뒤에서 익숙한 짐승의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매일 밤 안전가옥 문 앞에서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그 변종 괴물의 소리였다. 경호원들이 커다란 셰퍼드 세 마리를 끌고 아빠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이진호 씨, 지시하신 대로 매일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지하 입구에서 짖게 했습니다. 녀석들 목이 다 쉬었네요.”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밤마다 우리를 갉아먹던 그 처절한 공포. 엄마가 나를 품에 안고 바들바들 떨며 보냈던 그 긴 밤들. 내가 조금이라도 잠들 수 있게 하려고 엄마 홀로 문 뒤를 지키며 뜬눈으로 지새웠던 그 모든 시간이... 전부 아빠가 설계한 ‘징벌’이었다니. 이진호는 셰퍼드들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배낭에서 통조림 두 개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수고했다. 먹어.” 나는 엄마와 내가 수만 번도 더 만져보았던 그 통조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머릿속으로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 열흘 전, 엄마가 간절한 마음으로 아빠의 배낭에 넣어주었던 바로 그 통조림이었다. 그날 아빠는 식량을 구해오겠다며 밖으로 나섰다. 엄마는 망설임 없이 소중한 식량을 건네며 말했다. “진호 씨, 든든히 먹어야 힘을 내지. 꼭... 꼭 무사히 돌아와야 해.” 그때 아빠는 눈시울을 붉히며 그 통조림을 가슴에 품었다. “민주야, 기다려. 내가 반드시 식량을 가져올게.” 그는 우리 가족의 마지막 희망을 들고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매일 남은 다섯 개의 통조림을 세고 또 셌다. 캔을 쓰다듬으며 아빠에게 통조림을 더 챙겨주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울었다. 쓴맛이 나는 뿌리를 씹으며 모래 섞인 흙을 삼키면서도, 아빠의 몫이라며 그 통조림에는 끝내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가 목숨처럼 아꼈던 그 진심을, 아빠는 지금 개 사료로 던져주고 있었다. 나는 미친 듯이 달려들어 통조림을 낚아챘다. 날카로운 캔 뚜껑에 손바닥이 깊게 베였지만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피가 캔을 적셨다. “이진호! 우리는 지하실에서 굶어 죽어갈 때도 이 통조림 하나 못 땄어! 근데 이걸 개한테 줘? 당신이 사람이야?” 아빠는 귀찮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너랑 네 엄마는 연기에 너무 몰입했어. 밖은 멀쩡한 세상인데 말이야.” 셰퍼드 한 마리가 통조림 냄새를 맡더니 킁킁거리다 고개를 돌려버렸다. 강유라가 입을 가리고 비웃었다. “어머, 개도 안 먹는 쓰레기였네? 너희 모녀는 참 취향도 독특해. 그런 쓰레기를 보물처럼 모셔두고.” 심장이 갈가리 찢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래, 우리가 바보였지.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라는 그 남자의 연기를 진심이라 믿은 우리가 멍청이였어. 엄마, 이 말도 안 되는 연극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엄마의 그 고귀한 진심이 고작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어. 엄마, 제발... 제발 살아만 있어 줘. 나는 ‘쿵’ 소리가 나게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아빠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아빠, 제발 빌게. 엄마부터 살려주면 안 돼? 진짜 손목을 그었어. 지금 안 가면 정말 죽는단 말이야. 내 평생 처음으로 하는 부탁이야, 제발...” 아빠는 잠시 멈칫했다. 그의 눈동자에 아주 잠깐 흔들림이 스쳤다. 벌겋게 부어오른 내 이마를 보던 그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항복하듯 일어났다. 그가 나를 따라 안전가옥으로 향하려던 찰나였다. 강유라가 노트북을 꺼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네? 스마트 워치 모니터링에는 민주 언니 바이탈 수치가 다 정상으로 나오는데? 그냥 저혈당으로 잠든 것뿐이야.” “진호 씨, 역시 마음이 너무 약해. 또 속을 뻔했잖아.” 나는 내 손목에 채워진 스마트 워치를 내려다보았다. 두 달 전, 아빠가 신년 선물이라며 직접 채워준 물건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애정 어린 선물이라 믿었던 것은 그의 감시 장치에 불과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워치를 풀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아악!” 강유라가 갑자기 짧은 비명을 지르며 아빠 앞에 손가락을 내밀었다. 눈가에는 금세 눈물이 맺혔다. “진호 씨, 파편에 긁혔나 봐. 너무 아파.” 이진호는 혼비백산하여 그녀의 손을 잡고 그 미세한 상처를 조심스레 불어주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는 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험악해졌다. “이하은! 내가 너희 모녀를 너무 오냐오냐했구나! 경호원들, 얘 서재에 가둬! 반성할 때까지 절대 꺼내 주지 마!” 경호원들의 강철 같은 손이 내 팔을 낚아챘다. 나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하지만 이진호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품 안의 연약한 강유라를 달래는 데만 온 정신이 팔려 있었다. 서재 문이 잠기고, 나는 손에서 피가 날 때까지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삼십 일을 굶주린 몸은 결국 한계에 다다랐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강유라가 위압적인 자세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증스럽게도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였다. “하은아, 일어났니? 아빠가 마음이 약해지셔서 말이야. 내가 너 데리고 엄마 마중 나가라고 하시네.” 나는 떨리는 손끝을 말아 쥐며 일어났다. 이미 꼬박 하루가 지나 있었다. 엄마, 제발 살아있어 줘. 조금만 더 버텨줘. 운전기사를 재촉해 안전가옥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아빠를 쏘아보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고작 며칠 가둔 것 가지고 표정이 왜 그래? 네 엄마 나오면 근사한 데 가서 외식이나 하자고. 그 정도면 보상이 되겠지?” 강유라가 슬그머니 아빠의 팔짱을 꼈다. “진호 씨, 차라리 라이브 방송을 켜는 건 어때? 이런 리얼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기라면 분명 대박 날 거야. 우리 차기작 홍보도 할 겸 말이야.” 아빠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보며 웃기까지 했다. “좋네. 하은아, 너는 좀비 분장하고 들어가서 네 엄마 좀 놀래켜줘 봐. 연기 연습도 할 겸 말이야. 조만간 내 작품에 꽂아줄 테니까.”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이진호! 평생 살면서 오늘처럼 당신이 추악해 보인 적이 없어! 당신 아내잖아! 어떻게 사람 탈을 쓰고 이럴 수가 있어!” 그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먼저 잘못을 저지른 건 네 엄마야. 난 충분히 관대했어. 대체 뭘 더 바라는 거냐?” 강유라가 신호를 주자 경호원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하은아, 아빠 화나게 하지 마.” 그들은 거칠게 내 겉옷을 벗기고 좀비 의상을 강제로 입혔다. 반항할 틈도 없이 나는 어두운 지하 통로로 밀쳐졌다. 이진호와 강유라는 내려오지 않았다. 경호원 중 한 명이 라이브 중계 카메라를 들고 내 뒤를 따랐고, 화면에는 구경거리를 찾은 시청자들의 댓글이 쏟아졌다. 통로를 가득 채운 진한 피비린내가 나를 덮쳤다. 나는 비틀거리며 안전가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바닥에 쓰러진 엄마가 보였다. 손목의 상처는 이미 검붉게 굳어 있었다. 엄마를 품에 안았지만, 몸은 이미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떨리는 손을 코밑에 가져다 댔다. 하지만 그 어떤 숨결도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 엄마, 제발 눈 좀 떠봐!” 엄마의 창백한 얼굴 위로 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어... 미안해, 엄마...” 나는 떨리는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노려보았다. 목소리는 쇳소리처럼 갈라져 나왔다. “엄마가 죽었어. 이제 만족해?” 이어폰 너머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전히 오만하고 냉소적인 목소리였다. “내 앞에서 연기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나도 시체 연기는 수도 없이 해봤어. 사람이 죽으면 몸이 뒤틀리고 굳는 법이지, 네 엄마처럼 평온하지 않아. 뻔하네, 자는 척 연기하는 거야.” 나는 바닥을 가득 메운 검은 핏자국을 가리키며 울부짖었다. “이 피를 봐! 이 많은 피가 안 보여? 엄마 죽었다고!” 강유라가 가식적으로 입을 가리며 속삭였다. “어머, 민주 언니가 너무 무리수를 두네. 진호 씨, 걱정 마. 그냥 그날인가 봐. 양이 좀 많은 모양인데? 경호원 씨, 가서 언니 좀 깨워봐요.” 경호원이 실시간 댓글의 재촉을 받으며 엄마의 몸을 거칠게 흔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미동도 없었다. 채팅창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연출 맞아? 분위기가 좀 이상한데?] [생존 게임이 아니라 고문 같은데?] 강유라의 재촉이 이어폰을 때렸다. “시청자들이 지루해하잖아. 뺨이라도 때려봐. 깰 때까지!” 아빠의 얼굴에 찰나의 망설임이 스쳤지만, 끝내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엄마가 죽어서까지 저들에게 모욕당하는 꼴을 보며 심장이 도려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를 온몸으로 감싸 안았지만, 경호원의 거친 발길질에 카메라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벽에 부딪힌 충격에 입안에서 핏덩이가 왈칵 쏟아졌다. 경호원의 손바닥이 엄마의 생기 잃은 얼굴 위로 내리꽂혔다. 날카로운 파열음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여러분 걱정 마세요! 방금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습니다!” 그제야 이진호는 안심한 듯 숨을 내뱉었다. “그래, 나랑 하은이를 생각해서라도 죽을 리가 없지.” 거짓말. 엄마는 이미 숨이 멎어 있었다. 경호원이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거다! 나는 카메라를 죽일 듯이 쏘아보았다. “이진호, 당신은 왜 남의 거짓말은 믿으면서 네 친딸 말은 한 번도 안 믿어주는 거야?” 나는 부서진 몸을 이끌고 기어서 엄마 곁으로 다가갔다. 마음속에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실낱같은 희망이 끊어졌다. “이진호, 오늘부로 당신과의 부녀 관계는 끝이야. 당신이 엄마와 나한테 진 빚, 내가 하나도 빠짐없이 다 갚아줄게.” 채팅창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이진호? 저 목소리 국민 배우 이진호 아냐? 근데 아내랑 딸한테 왜 저러는 거야?] 강유라가 서둘러 수습에 나섰다. “아유, 여러분, 저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속지 마세요.” 그녀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덧붙였다. “사실 저 아이는 제 친구 딸이에요. 진호 씨가 좋은 마음으로 후원해 줬더니, 모녀가 수년째 스토킹하며 괴롭히고 있거든요. 이번에 단역 일자리라도 주려고 데려왔더니 또 저러네요.” 사람들은 유명 배우인 그녀의 말을 믿기 시작했고, 나와 엄마를 향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채팅창을 뒤덮었다. [불륜녀 지망생이었네. 끼리끼리 노는구나.] [죽은 척해서 동정표 얻으려고? 역겹다. 진짜 죽었어도 할 말 없겠네.] 이진호는 그저 미간을 찌푸릴 뿐, 그 어떤 해명도, 제지도 하지 않았다. 경호원들에게 끌려 나갈 때, 나는 더 이상 저항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창밖의 햇살은 눈이 시리도록 밝았지만, 나의 세상은 이미 영원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다음 날 오전, 논란이 가열되자 강유라는 흥분한 기색으로 다시 라이브 방송을 켰다. “오늘 특별 게스트로 의대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어제 그 모녀가 벌인 ‘가짜 죽음’ 연극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밝혀드릴게요.” 접속자 수는 순식간에 십만 명을 돌파했다. 강유라는 직접 휴대폰을 들고 교수와 이진호의 뒤를 따라 안전가옥으로 향했다. 화면에는 그녀의 완벽한 메이크업이 비쳤다. 나 역시 경호원들에게 등 떠밀려 그 지옥 같은 통로로 다시 들어섰다. 발을 들이자마자 강유라가 코를 막으며 헛구역질을 했다. “무슨 냄새가 이렇게 지독해?” 이진호 역시 불쾌한 듯 인상을 썼다. “청소를 너무 오랫동안 안 했군. 더러워 죽겠어.”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무더운 날씨 속에서, 그것은 엄마의 몸이 부패해가는 냄새라는 것을. 세 사람은 방독면을 쓰고 두꺼운 방호복까지 챙겨 입은 채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통로 바닥에는 이미 구더기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고, 채팅창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아무리 세트장이라도 위생 상태가 너무한 거 아냐?] 지하 10미터 아래, 칠흑 같은 안전가옥 내부. 이진호가 탐조등을 비추며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이제 그만하고 일어나! 연극 끝났으니까.” 당연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탐조등 불빛이 테이블 위, 말라붙은 핏자국이 선명한 유서 위를 비췄다. 강유라가 다가가 슬쩍 확인하더니 카메라를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민주 언니는 참 제멋대로라니까요. 제가 언니를 제일 잘 알잖아요. 진호 씨한테 죄책감 주려고 일부러 이러는 거예요.” 이진호가 유서를 집어 들었다. [나 하나만 없으면, 너랑 아빠는 며칠 더 버틸 수 있을 거야.] 그 문장을 본 시청자들의 반응이 격해졌다. [와, 설정이라지만 감정선 대박이다.] [남편이랑 자식 위해서 희생하는 엄마라니... 연기력 미쳤는데?] 아빠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한참을 침묵하던 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어쩌면... 이번 벌은 좀 과했을지도 모르겠군.” 불빛이 벽면을 비췄다. 벽에는 손톱으로 긁은 자국들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었다. 어떤 곳은 살점이 떨어져 나간 듯 핏자국이 선명했다. 이진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이건... 이건 진짜가 아닐 거야.” 불빛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 마침내 엄마의 몸 위에 멈췄다. 그 순간, 시끄럽던 라이브 방송의 채팅창이 얼어붙듯 멈췄다. 고작 이십사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엄마의 하얗던 피부 위에는 이미 청보라색 시반이 가득 피어 있었다. 드러난 손목 부위는 검푸르게 부풀어 올라 썩어가는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진호의 손에서 탐조등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