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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 파티에서 순식간에 결혼식을 올렸어요
백현우와 나의 결혼은 끝이 났다. 지독하게 서로를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떠밀리듯 갈라섰다. 하지만 우리는 기괴한 방식을 선택했다. 서류...
Chương (1)
第1章
백현우와 나의 결혼은 끝이 났다.
지독하게 서로를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떠밀리듯 갈라섰다.
하지만 우리는 기괴한 방식을 선택했다. 서류상으로는 남남이되, 몸은 헤어지지 않는 ‘위장 이혼’ 상태의 동거.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밤이었다.
폭풍 같은 정사가 끝난 직후, 고요를 깨고 현관문이 부서질 듯 울렸다.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복도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분노와 질투가 뒤섞인 비명이었다.
“이 화냥년아, 당장 문 열어! 감히 누굴 건드려? 백현우 상무님 옆에 붙어서 안 떨어지면 무사할 줄 알았어?”
나는 본능적으로 옆자리를 더듬었다. 하지만 손끝에 닿는 건 서늘하게 식어버린 빈자리뿐이었다.
그가 없었다.
다급히 휴대폰을 들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은 무심하게 이어졌지만, 끝내 응답은 없었다.
심장이 터질 듯 조여오는 찰나,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단 네 글자였다. [당장 피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백 씨 집안에서 나를 사람 취급도 안 한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었다.
이혼하고 지난 2년 동안, 그들은 현우에게 수많은 명문가 규수들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현우가 이토록 다급하게, 나를 숨기려 한 적은 처음이었다.
문 밖의 욕설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
“열쇠 수리공 왔으니까 곧 따고 들어갈 거야. 잡히기만 해봐, 가만 안 둬!”
나는 공포에 질려 신발을 신을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맨발로 테라스로 뛰어 나갔다.
우리가 사는 이 빌라는 옆집과 테라스가 거의 붙어 있는 구조였다.
그때, 건너편 테라스에 서 있는 낯선 남자가 보였다.
그는 스피커폰으로 통화 중이었는데, 흘러나오는 여자의 목소리가 가관이었다.
“도준 오빠, 얼른 문 열어줘요. 나 오빠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단 말이야.”
허공에서 그와 나의 시선이 얽혔다.
거의 동시에, 우리 두 사람의 입이 열렸다.
내가 먼저 내뱉었다. “1억 줄게요. 내 남자친구인 척해줘요.”
그가 받아쳤다. “1억 줄게. 내 여자친구인 척해.”
01
남자는 짙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오만하면서도 나른한 말투로 대꾸했다.
“2억 줄 테니까, 이쪽으로 넘어와.”
망설이던 찰나, 현관 쪽에서 문이 열리는 굉음이 들렸다.
이성이 마비된 나는 낮은 목소리로 애원했다.
“제발, 도와주세요.”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승리자의 여유였다.
남자는 긴 팔을 뻗어 내 허리를 단단히 낚아챘다.
난간을 딛고 반동을 이용해 나를 제 품 안으로 가뿐히 끌어당겼다.
그와 동시에 ‘쾅!’ 하고 내가 있던 집의 방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성지안, 당장 나와!”
날카로운 비명에 나도 모르게 안쪽으로 몸을 숨기려 했지만, 남자는 나를 강하게 붙들어 제 가슴팍에 밀착시켰다.
버둥거려봤자 소용없었다. 나는 그저 그의 거대한 체구 뒤로 몸을 한껏 웅크릴 뿐이었다.
“이혼하고도 정신 못 차리고 어디서 또 꼬리를 쳐? 근본 없는 것들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
욕설과 함께 발소리가 테라스 쪽으로 다가왔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다음 순간, 여자의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나긋나긋하게 변했다. 아첨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였다.
“어머, 차 도준 대표님? 여긴 어쩐 일로… 그런데 이분은…?”
둘이 아는 사이인가?
놀라서 고개를 들려 하자, 그가 더 강한 힘으로 나를 억눌렀다.
“내 여자친구야. 침대에서 좀 격하게 놀았더니 화가 많이 났네.”
지나치게 노골적인 농담에 수치심과 분노가 치밀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의 가슴팍을 콱 깨물었다.
“윽… 하아.”
낮게 읊조리는 그의 신음이 공기 중의 묘한 분위기를 더 짙게 만들었다.
어쩔 줄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너무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희야.”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백현우였다.
“주희야, 착하지. 그만해.”
“별 상관도 없는 사람 때문에 건강 해치면 내 마음이 아프잖아.”
그의 말투엔 다정함이 가득했다.
현우와 함께한 7년.
대외적으로 그는 늘 나를 존중하는 척했지만, 이토록 조심스럽고 애틋한 말투는 내게 단 한 번도 써준 적이 없었다.
만약 오늘 이렇게 행패를 부리는 게 나였다면, 그는 아마 불같이 화를 내며 꺼지라고 소리쳤을 것이다.
그 잔인한 깨달음이 가슴을 헤집었다.
“흥! 됐고, 그년 어디 숨겼어? 내 친구가 들어가는 거 똑똑히 봤단 말이야!”
“자기야, 맹세해. 이혼하고 나서 걔랑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침대에서 나를 ‘지안아’라고 부르며 사랑을 속삭이던 그가, 너무나 능숙하게 다른 여자를 ‘자기’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혼하던 날, 그는 말했다.
‘이건 그냥 종잇조각일 뿐이야. 어른들 기분 좀 맞춰드리는 것뿐이라고. 내 아내는 평생 성지안 너 하나야.’
나는 바보같이 그 말을 믿었다.
자존심도 버리고 수치심도 잊은 채, 2년 동안이나 이 구질구질한 관계를 이어왔다. 그 대가가 고작 ‘아무 사이도 아니다’라는 말 한마디였다니.
가슴이 꽉 막힌 듯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비겁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그럼 이 방에 있는 여자 물건들은 다 뭔데?”
서주희가 끈질기게 물어졌다.
“여긴 그냥 야근할 때 잠깐 머무는 오피스텔일 뿐이야. 내가 있을 땐 걔가 없고, 걔가 있을 땐 내가 없어. 이혼한 뒤로는 철저히 공적으로만 움직였어. 선 넘는 일 따위 절대로 없었단 말이야.”
현우는 짜증 한번 내지 않고 부드럽게 설명했다.
“내 문자 기록 봤잖아. ‘나 지금 오피스텔이야’라고 보내는 건, 오지 말라는 뜻이야.”
나는 결국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우리 사이의 암호였다.
‘나 오피스텔이야’라는 말은, 한 시간 뒤에 와서 데이트하자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의 입을 거치니, 그것이 관계를 부정하고 결백을 증명하는 구실이 되어 있었다.
멍한 정신 사이로, 그동안 보지 못했던—혹은 보지 않으려 했던—진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백현우에게 나는 그저 쓰기 편한 도구였을 뿐이다.
밖에서는 유능한 비서, 안에서는 고분고분한 파트너.
이 ‘특별한 존재’라는 착각이 나를 속였고, 나는 매년 타협하고 인내했다.
비정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침몰해갔던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소리 내어 웃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크게.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때였다.
“성지안?”
현우가 조심스럽게 이름을 불렀다.
남자는 살짝 몸을 틀어 나를 더 완벽하게 가려주었다.
02
“백현우 상무님, 그만하시죠.”
서주희가 끼어들었다.
“이분은 신천그룹 차도준 대표님이세요. 성지안 같은 애가 감히 넘볼 수 있는 분이 아니라고요.”
현우는 잠시 멈칫하더니,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말을 이었다.
“차 대표님, 실례지만 얼굴 좀 뵐 수 있을까요? 제 비서와 너무 닮아서요. 그 친구가 워낙 순진해서 혹시나 감당 못 할 분께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을까 걱정이 돼서 그렇습니다.”
차도준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뱉었다.
“백 상무, 이혼을 했으면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예의지. 전처를 디딤돌 삼아 서씨 집안에 붙어보려는 꼴이 참으로 볼만하군. 군자답지 못해.”
현우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간신히 분노를 억누르며 차갑게 대꾸했다.
“제 집안일입니다. 차 대표님이 신경 쓰실 일이 아니죠.”
“마찬가지야. 내 여자친구야. 선 넘지 마, 백 상무.”
공기가 얼어붙었다.
“현우 오빠!” 서주희가 그를 잡아끌었다. “어머님 밑에서 기다리셔.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 하지 마.”
결국 서주희는 강제로 그를 끌고 나갔다.
‘쾅!’ 하고 문이 닫혔다.
나는 내 몸을 누르던 그를 밀어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을 쫓아오던 그 여자는 어디 있죠?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될까요?”
차도준은 입가에 비스듬한 미소를 띄우며 나른하게 대꾸했다.
“아니, 됐어. 걔가 멍청해서 문을 잘못 찾았나 봐.”
그는 휴대폰을 꺼내며 덧붙였다. “번호 줘. 약속한 돈 보낼게.”
나는 손을 내저었다. “필요 없어요. 제가 딱히 한 일도 없는데요.”
그가 더 붙잡기 전에 나는 서둘러 문을 열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내 집으로 돌아가 짐을 대충 챙겨 건물 후문으로 빠져나갔다.
막 문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누군가 내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챘다.
고개가 뒤로 꺾임과 동시에 매서운 손바닥이 내 뺨을 후려쳤다.
“천박한 것. 이혼하고도 내 아들 곁에서 떨어지질 않아?”
고개를 들자, 2년 만에 보는 시어머니 고금희가 여전히 오만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쯧쯧… 그 가련한 척하는 눈빛 좀 봐. 그 엄마에 그 딸이라더니, 첩질이나 하던 네 에미랑 똑같구나. 낯짝도 두껍지.”
독설이 쏟아지자 금세 행인들이 모여들었다.
나는 두 눈을 감았다. 과거의 수치스러운 기억들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첫 만남의 무시, 결혼 생활 내내 이어진 모욕, 두 번의 유산 끝에 돌아온 차가운 말들…
‘팔자가 드세서 우리 집 귀한 씨를 못 품는구나’라며 혀를 차던 그 목소리를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결국 이혼으로 끝난 이 모든 비극은 그녀의 작품이었다.
나는 눈을 떴다. 비굴했던 예전의 나는 이제 없었다.
“어머님, 저를 괴롭히기 전에 아드님이나 단속하세요. 이혼하고 나서 제 바짓가랑이 붙잡고 제발 떠나지 말라고, 2년만 기다려주면 정식으로 다시 청혼하겠다고 매달린 건 백현우였으니까요.”
“이, 이 발칙한 년이! 현우가 눈이 멀어도 단단히 멀었지!”
고금희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려 하자, 서주희가 그녀를 말리며 다가왔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우아하게 청첩장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이번 달 27일, 나랑 현우 오빠 약혼식이야.”
“장소는 팰리스 호텔 펜트하우스 스타가든. 성지안 씨가 그렇게 꿈꾸던 결혼식장이지?”
내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지난달, 현우는 내게 특별히 당부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식장을 예약하라고. 중요한 의식을 치러야 한다면서.
나는 드디어 그 2년의 약속이 끝나는 줄 알았다. 드디어 내게 제대로 된 자리를 주려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다 다른 여자를 위한 준비였다니.
심장을 누군가 꽉 쥐고 비트는 것처럼 아팠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청첩장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쓰디쓴 미소를 지었다.
“27일, 두 사람 약혼식 못 할 거예요.”
03
서주희의 안색이 변했다.
“그 식장, 내 인맥 동원해서 잡은 곳이에요. 서주희 씨가 쓰고 싶으면 직접 다시 예약하시죠.”
서주희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이 됐다.
“성지안! 너 감히—!”
고금희가 다시 손을 치켜들고 달려들었다. 나는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 그대로 밀쳐냈다.
노인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어머님, 전 이제 당신 며느리 아니에요. 앞으로 저를 대할 땐 예의를 갖추세요. 한두 번은 참았지만, 다음엔 저도 똑같이 되돌려 드릴 겁니다.”
“너, 너…!”
“그리고.” 나는 그녀의 말을 잘랐다. “우리 엄마 돌아가셨어요. 입조심 하세요. 그러다 밤중에 엄마가 찾아가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고금희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나를 가리키다, 결국 “내 아들 주변에 얼씬도 하지 마!”라는 말만 남기고 도망치듯 사라졌다.
잠시 후, 휴대폰이 울렸다. 백현우였다.
나는 그 이름을 3초간 내려다보다 전화를 받았다.
「지안아, 어디야? 괜찮아?」
조심스러운, 간을 보는 듯한 목소리.
나는 나를 손가락질하며 수군대는 인파를 보며 웃었다.
「백 상무님, 결과 확인하러 전화하셨나요?」
「사람들 다 보는 길거리에서 당신 약혼녀랑 어머니한테 돌아가며 모욕당했어요. 상간녀, 천한 년, 죽일 년… 백 상무님이 원하던 결과가 이런 건가요?」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당황으로 물들었다. 「아니야, 지안아. 두 분 다 화가 나서 좀 심하게 말씀하신 것뿐이야. 네가 조금만 참아줘. 참으면 다 지나가잖아.」
참으라고…
나는 가슴 깊은 곳이 마비되는 기분이었다.
「서주희… 백 씨 집안이 제일 잘나갈 때 정해뒀던 정략결혼 상대였지? 당신이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던, 그 대단한 ‘첫사랑’ 말이야.」
정적이 흘렀다.
심장이 따끔거렸다. 내가 평생 우러러본 남자의 마음속에는 늘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유능해지고,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그저 그 빈자리를 채우는 대용품이었을 뿐이다.
운명이 얄궂어 잠시 내가 그 옆자리를 차지했을 뿐.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백 상무님도 이제 강남의 떠오르는 실세가 되셨으니, 그 집안이랑은 찰떡궁합이겠네요. 축하드려요.」
「지안아, 그런 거 아니야!」 현우의 목소리가 급해졌다. 「믿어줘. 우리 사이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어. 2년만 더 기다려줘. 2년 뒤면 내가—」
「현우 씨.」
나는 그의 말을 잘랐다. 내 목소리는 나조차 낯설 만큼 평온했다.
「나한테 다음 2년은 없어.」
「사직서는—」
뚝.
전화가 끊겼다.
곧바로 문자가 왔다.
[지안아, 지금 감정적이야. 우리 좀 냉정해지자. 당분간 연락하지 말고 자숙해.]
자숙이라니…
해결할 수 없으면 냉전으로 몰고 가는 방식. 예전처럼 내가 스스로 반성하고, 자책하고, 결국 비굴하게 먼저 사과하게 만들려는 수법이다.
비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왜? 그가 나를 이렇게 함부로 대하게 놔뒀던 걸까?
그는 내가 얼마나 외롭게 버텨왔는지 다 알면서. 내가 간절히 원한 건 화려한 자리가 아니라 따뜻한 집 하나였다는 걸 다 알면서.
“아아아악—!”
나는 비명을 지르며 휴대폰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사람들이 놀라 뒤로 물러났다.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 이제야 좀 사람 같네.”
나른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성 씨로 성 바꾸고 도시로 오더니, 예전의 그 당당한 기개는 다 팔아먹은 줄 알았는데 말이야.”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거칠게 몸을 돌렸다.
차도준이 벽에 기대어 은색 라이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를 쏘아보았다. “당신 대체 누구야?”
그가 천천히 다가왔다. 나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미소 지었다.
“내 이름도 기억 못 하는 거야?”
그는 허리를 숙여 내 귀에 입술을 바짝 대고, 한 글자 한 글자 속삭였다.
“나, 진나래의 1호 꼬봉, 차아제.”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진나래—
그 이름, 십수 년 동안 그 누구도 불러준 적 없는 나의 진짜 이름이었다.
04
열 살 전까지, 나는 시골에서 엄마 성을 따 ‘진나래’로 살았다.
그때의 나는 세상 무서울 게 없는 골목대장이었고, 내 뒤에는 늘 꼬마 추종자들이 줄을 섰다.
차아제…
갑자기 울린 요란한 벨 소리에 꿈에서 깨어났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한참을 더듬거려 전화를 받자마자 고함이 터져 나왔다.
「성지안! 클라이언트가 회의실에서 30분째 기다리고 있어! 너 대체 어디야?」
백현우였다. 공과 사가 철저하신 우리 백 상무님.
나는 숙취의 고통을 억누르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백 상무님, 사직서는 이미 제출했습니다. 인수인계 파일도 팀장님들께 전부 공유했으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그가 이를 갈았다. 「사적인 감정을 일에 끌어들이지 마. 그게 네 원칙이었잖아. 그리고…」
나는 냉정하게 말을 잘랐다. 「죄송합니다. 3년 동안 제 할 일 다 했습니다. 지금부턴 제 연차 휴가 기간이니 방해하지 마세요.」
전화를 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침대 옆 협탁에 놓인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혼인신고서? 청첩장? 답례품?
나는 떨리는 손으로 하나씩 확인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신랑 차도준, 신부 성지안]
머리를 세게 흔들어봤지만 기억은 백지상태였다.
그때 전화가 다시 울렸다.
「여보, 일어났어? 머리는 안 아파?」
나는 횡설수설했다. 「차도준 씨? 우리… 우리가 대체…」
수화기 너머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재회해놓고, 굳이 술 마시러 가자고 우긴 게 누구더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술 취해서 나 예전부터 좋아했다고, 27일에 꼭 자기 신랑 해달라고 청첩장까지 쓰게 한 건 기억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당신을 좋아했다고요? 그럴 리가!」
「네 정성이 하도 갸륵해서 받아준 거야. 근데 내가 좀 보수적인 집안이라, 결혼식 전에 혼인신고부터 해야 한다고 했더니 네가 흔쾌히 사인하던데?」
나는 다급히 해명했다. 「어제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이건 무효예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고, 곧바로 메시지가 왔다.
[마누라, 남편은 회의 중이니까 푹 쉬어. 저녁에 시댁 가서 밥 먹자.]
그리고 1초 뒤, 또 하나의 메시지가 떴다.
[나 지금 오피스텔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