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미망인의 결혼식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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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미망인의 결혼식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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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국가에서 주관하는 ‘백 인의 합동결혼식’ 날이다. 내 약혼자 민준과 나 역시 그 수많은 신랑 신부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전국으로 생중계되...

Chương (1)

第1章

오늘은 국가에서 주관하는 ‘백 인의 합동결혼식’ 날이다. 내 약혼자 민준과 나 역시 그 수많은 신랑 신부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전국으로 생중계되는 이 거대한 예식을 통해 쉰 쌍의 부부가 동시에 혼인신고를 마치고 부부로서의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 절차에 따라 신랑들은 아래층에서 ‘신부 맞이 게임’에 한창이었고, 신부들은 각자의 대기실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민준에게 작은 깜짝 이벤트를 해주고 싶은 마음에 몰래 방 창문을 넘어 빠져나왔다. 그가 가장 먼저 나를 찾아내길 바라며 구석진 소화전 뒤에 숨어 숨을 죽였다. 그때였다. 소화전 너머로 민준과 친구들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준아, 이건 좀 아니지 않아?” 한 친구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이거 전국으로 생중계되는 공식 행사야. 이 틈을 타서 형수님이랑 혼인신고를 해버리면, 서희는 뭐가 돼? 전 국민 앞에서 망신 주는 거나 다름없다고.” 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곧이어 들려온 민준의 목소리는 무심하리만큼 차분했다. “어쩔 수 없어. 형수가 혼자 된 지 벌써 3년이야. 우리 부모님이 그 사람을 얼마나 구박했는지 너희도 알잖아. 내가 남편이 되어줘야만 형수가 우리 집안 사람으로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어.” “그럼 서희는? 서희랑은 결혼하기로 약속했잖아.” “서희와는 지금까지 정신적인 사랑, 그게 전부였어. 우리 관계에 굳이 결혼식이나 서류 같은 건 필요 없어. 서희도 그깟 종이 한 장에 연연할 애는 아니야.” 또 다른 친구가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잊었어? 서희, 예전에 네 형한테 차이고 강물에 뛰어들려던 거 네가 3년이나 공들여서 겨우 해방시켜 놓은 거잖아! 만약 자기가 사랑했던 남자한테, 그것도 똑같은 여자한테 두 번이나 남편을 뺏겼다는 걸 알면…… 걔 진짜 미쳐버릴지도 몰라.” 민준이 가볍게 그의 말을 잘랐다. “합동결혼식이라 사람도 많고 정신없어. 신부들은 다 면사포를 쓰고 있잖아. 나중에 그냥 사람을 잘못 봤다고 둘러대면 그만이야. 누구도 따지지 않을 거야.” 그는 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 “그리고 너희도 알다시피, 내가 처음에 서희한테 접근했던 건 형수가 우리 형이랑 무사히 결혼할 수 있게 판을 깔아주기 위해서였어. 이제 형도 없으니, 내가 형수를 책임지는 게 도리야.” 민준은 냉담한 어조로 다른 친구 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너희는 302호실 앞에 가서 지키고 있어. 서희가 밖으로 나와서 방해하지 못하게 해. 현장에서 도장이 찍히고 생방송이 끝나면, 우리 부모님도 어쩌지 못하실 거야.” 그 모든 말을 듣고 난 뒤, 나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소리 없이 나의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오늘 결혼식 단톡방에서 원래 형수와 매칭되었던 신랑을 찾아 메시지를 보냈다. [302호실 신부입니다. 파트너가 바뀌었는데, 저랑 같이 입장하실래요?] …… 1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화면은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서희야, 얼른 문 막아야지! 민준 씨네 벌써 첫 번째 관문 통과했대!” 내 입꼬리가 미세하게 실룩였다. 웃음이라기보단 경련에 가까웠다. 절친한 친구인 나은이가 내가 움직이지 않자 내 팔을 붙들고 재촉했다. “빨리빨리! 민준 씨네 팀 벌써 두 번째 미션 중이라니까. 곧 신부 데리러 올라올 텐데, 우리가 어떻게 골려줄까?” “그럴 필요 없어.” 내가 그녀의 손을 떼어내며 말했다. 나은이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그녀를 똑바로 응시하며 한 자 한 자 내뱉었다. “이 결혼, 안 할지도 몰라.” 나은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무슨 일 있어? 너희 둘, 이 합동결혼식 명단에 들려고 얼마나 애썼어? 그 어렵다는 신청까지 성공해놓고 이제 와서 왜 그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 정말 애써서 얻어낸 기회였다. 3개월 전, 민준은 내 앞에 신청서 한 장을 내밀었다. 국가에서 주최하는 백 인의 합동결혼식.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법적인 부부가 되는 쇼케이스 같은 예식. 그는 이 명단에 들기 위해 이틀 밤을 꼬박 새워 광클을 했다고 했다. 평생 한 번뿐인 결혼인데, 가장 화려하고 특별하게 기억되고 싶다며 웃었다. 그때 나는 망설였다. 엄마가 막 중환자실로 옮겨졌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평생 한은 젊은 시절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것이었다. 외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집안이 가난해 혼인신고만 하고 살았던 엄마. 엄마는 늘 내게 말했다. 딸을 낳으면 꼭 하얀 드레스를 입히고, 신랑 손에 내 손을 직접 쥐여주고 싶다고. 그 모습을 엄마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병실로 신청서를 들고 갔다. 신청서 하단에 적힌 작은 글씨가 마음에 걸렸다. ‘장소 협소로 인해 부모님의 신부 입장 동반은 생략됩니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네가 결혼하는 걸 살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 몇 걸음이 무슨 대수냐며 나를 다독였다. 하지만 결혼식 식순을 넘겨보던 엄마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럼…… 네가 드레스 입고 문 열고 들어오는 모습은 아예 못 보는 거니?” 나는 참지 못하고 병원 복도에서 엉엉 울었다. 그날 밤, 나는 민준에게 물었다. “합동결혼식, 꼭 해야 할까?” “그냥 작게 식을 올리자. 엄마가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내 손을 잡아줄 수 있게……” 민준은 나를 껴안으며 말했다. “어렵게 구한 기회야. 서희야, 너무 고집 피우지 마. 합동결혼식은 생중계가 되잖아. 엄마도 병실에서 다 보실 수 있어. 똑같은 거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똑같지 않다고. 하지만 민준은 눈시울을 붉히며 정말 최고의 결혼식을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고, 나는 그를 믿었다. 얼마 후 엄마의 병세가 악화되어 호흡기내과로 옮겨졌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정신이 맑았던 날,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엄마가 네 드레스 입은 모습, 직접 못 보겠구나.” “아니야, 볼 수 있어. 휴대폰으로 생중계하니까 꼭 봐요, 알았지?” 엄마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오늘, 민준은 이렇게 말했다. “서희와는 정신적인 사랑일 뿐이야. 결혼이라는 형식은 필요 없어. 서희는 그깟 증서 따위 신경 안 써.” 엄마는 병상에서 숨을 몰아쉬며 생중계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자신의 딸이 혼인신고서 한 장 받을 자격조차 없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복도에서 갑작스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묵직하고 차가운 소리였다. 나은이가 경계하며 문밖을 살폈다. “이상하네. 들러리 친구들만 둘 있고, 민준 씨는 어디 갔지?” 2 나은이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당혹스러워했다. “미션 다 끝났다는데, 왜 신랑이 제일 먼저 안 달려와?”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나은아, 이따 신랑 오면…… 너무 괴롭히지 마.” 나은이는 잠시 멍하더니 이내 입을 가리고 웃었다. “알았어, 알았어! 민준 씨 그렇게 아끼는 거 티 내지 좀 마!” “그래, 3년 동안 너 하나 보고 달려온 정성을 봐서라도 좀 봐줄게. 들러리들한테도 살살 하라고 문자 보낼게. 팔굽혀펴기 스무 개 정도만 시키라고.” 그녀는 신이 나서 문밖의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신부님이 봐주래! 신랑 체면 세워주자.’ 나는 대답 대신 입가에 엷은 미소만 띠었다. 원래라면 얼마나 달콤했을 장면인가. 나은이가 내 팔을 붙들며 소곤거렸다. “근데 민준 씨, 오늘 진짜 멋있을 거야. 너희 3년 사귀면서 손도 제대로 안 잡았다며? 오늘 드디어 법적으로 부부가 되네. 안 떨려?” “안 떨려.” 내가 무심하게 말했다. “거짓말. 입술이 이렇게 하얗게 질렸는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휴대폰이 진동했다. 엄마의 영상 통화였다. 항암 치료를 막 끝낸 엄마는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다. 안색은 황달기로 누랬지만, 눈매만은 휘어지게 웃고 있었다. “우리 딸, 오늘 정말 예쁘다. 엄마가 생중계 다 보고 있어. 민준이가 우리 딸 데려가려고 게임 하는 거 보니 정말 기특하더라. 이따가 너무 고생시키지 마라……” 나는 마른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너희 도장 찍는 거 얼른 보고 싶다.” 그때 간호사가 약을 갈러 들어오다 화면을 힐끗 보았다. “어머, 아드님 아니, 따님이 오늘 신부님이에요?” “네, 쉰 쌍이 같이 결혼한대요. TV에도 나오고요!” 엄마의 목소리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웠다. “우리 딸이 참 착한 남자를 만났어요. 3년 동안 한 번도 속 안 썩이고, 우리 딸을 눈에 넣어도 안 아프게 아껴줬거든요.” 나는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엄마는 모른다. 3년 동안 나를 쫓아다니며 사랑한다 말했던 그 남자가, 왜 굳이 이 소란스러운 합동결혼식을 고집했는지. 그저 혼란을 틈타 자신의 형수와 몰래 부부의 연을 맺기 위해서라는 것을. 허를 찔린 부모님이 어쩔 수 없이 그 부도덕한 결혼을 인정하게 만들려는 속셈이라는 것을.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화면을 향해 미소 지었다. “알았어, 엄마. 신호가 안 좋네. 이따가 혼인신고 끝나고 다시 전화할게.” 전화를 끊자 나은이가 내 붉은 면사포를 매만져주었다. “이런 전통 혼례 방식도 참 예쁘다. 전국 생중계라니, 엄마가 보시면 정말 병이 싹 나으실 거야.” 그녀가 창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근데 민준 씨는 왜 이렇게 안 와?” “다른 방들은 벌써 신부 데리고 나갔는데. 벌써 28번째 커플 입장한다고 방송 나오잖아.” 3 나은이가 테이블 위의 사탕 하나를 까서 입에 넣었다. “근데 진짜, 3년 전만 해도 네가 민준 씨랑 결혼할 줄 누가 알았겠어.” 나는 말이 없었다. 나은이가 사탕을 굴리며 아련한 눈빛을 했다. “그때 민호 씨 때문에 네가 얼마나 망가졌었는지…… 나 진짜 무서웠거든.” “민호 그 나쁜 놈, 진짜 연기력 갑이었지. 너랑 있을 땐 하늘의 별이라도 따줄 것처럼 굴더니. 우린 다 너희가 당연히 결혼할 줄 알았잖아.” 그녀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유진이가 나타날 줄이야.” 내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유진…….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민준과 사귄 지 반년이 지났을 무렵, 그는 나를 가족에게 소개했다. 그때 알게 되었다. 내가 죽도록 사랑했던 민호가 바로 그의 형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던 유진은 이미 그의 형수가 되어 있었다. 당시 나는 온몸을 떨며 뒤도 안 돌아보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민준은 내 손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서희야, 한 번만 기회를 줘. 평생 너한테 잘할게. 지난 일들은 그냥 다 지나가게 두면 안 될까?” 나는 오랫동안 괴로워했다. 민호와 유진을 볼 때마다 위장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민준은 정말 다정했다. 나에게 형이나 형수라고 부르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불편한 자리에서는 술을 대신 마셔주고, 음식을 챙겨주고, 그 두 사람이 내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막아주었다. “부르기 싫으면 부르지 마. 그 사람들은 너랑 아무 상관 없어.” 하지만 나는 그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민준의 가족이었고, 유진은 형수였다. 명절마다 마주쳐야 할 사람들이었다. 민준이 잘해줄수록 나는 과거에 집착하는 내 자신이 옹졸하게 느껴졌다. 반년 넘게 마음고생을 하던 어느 날, 식사 자리에서 나는 잔을 들어 유진을 향해 웃어 보였다. “형수님, 한 잔 받으세요.” 민준은 식탁 밑에서 내 손을 꽉 쥐었다. 그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줄곧 민준을 따라 그녀를 ‘형수님’이라 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호 씨가 공사 현장 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유진은 미망인이 되었다. “축복받아야 할 날에 이런 얘기 꺼내기 싫지만,” 나은이의 냉소적인 목소리가 내 생각을 끊었다. “진짜 화나는 건, 오늘 이 합동결혼식에 그 여자도 왔다는 거야. 나랑 내 남친은 신청했다가 떨어졌는데, 그 여자는 어떻게 온 거래?” “심지어 파트너가 민준 씨 대학 동기인 태오 씨라며? 외국 나갔다더니 언제 왔대?” “아니, 세상 남자들은 다 그런 불쌍한 척하는 타입에 환장하는 거야?” 나은이는 화가 치미는지 사탕 봉지를 구겨버렸다. “옛날에 너랑 민호 씨 약혼했을 때도 그래. 친척들 다 모인 자리에서 유진이 아프다고 너 버리고 달려갔었지? 알고 보니 둘이 호텔에 있었고! 진짜 쓰레기들이었어.” 나은이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그날 밤 너 혼자 강가에 서 있었잖아……” 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민준 씨가 물속으로 뛰어들어서 너 안 건져 올렸으면……” 그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얼굴을 훔쳤다. 나는 그녀에게 티슈 한 장을 건넸다. “민준 씨 말이야.” 나은이가 티슈를 받아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때 쫄딱 젖어서 입술이 보라색이 될 때까지 떨면서도, 네 옆에 주저앉아 ‘겁내지 마요, 내가 같이 있을게요’라고 했잖아. 생판 남이었는데 어떻게 그렇게까지 해줬을까?” 그녀의 말투가 다시 밝아졌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친구를 보는 안도감 같은 것이었다. “자기도 예전에 사랑에 속아본 적 있어서 네 마음 잘 안다고, 평생 곁에서 치유해주겠다고 했잖아.” “너 그때 몸무게가 40킬로도 안 나갔어. 아무하고도 말 안 하다가 민준 씨가 와야 겨우 밥 한 숟가락 뜨고. 우린 다 민준 씨가 하늘이 보내준 구원자인 줄 알았어.” 나은이는 티슈를 꽉 쥐었다. “3년 동안 네 손끝 하나 조심스럽게 대하는 거 보면서, 우리끼리는 민준 씨가 어디 고장 난 거 아니냐고 농담까지 했어. 근데 생각해보니 그게 다 널 너무 아껴서 그랬던 거더라. 진짜 사랑이지, 그게.” ‘사랑’이라는 단어에서 나은이의 눈가가 다시 붉어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았다. 그리고 픽 웃으며 말했다. “그거, 사랑 아니야.” 나은이가 멍청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무슨 소리야?” 4 나는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 “형수를 형이랑 결혼시키기 위해 나한테 접근했던 거야. 장애물을 치우려고.” 나은이는 완전히 멘붕이 온 듯했다. “뭐…… 무슨 뜻이야?” 나는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굳이 다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아름다운 날, 굳이 슬픈 사람을 한 명 더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나은이가 본 것은 나를 구원하는 다정한 민준이었겠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깊은 밤마다 형수의 전화를 받으러 조용히 나가던 그의 뒷모습을. 열 마디 중 여덟 마디가 “형수가 가여우니 네가 좀 이해해줘”였던 그 목소리를. 내 생일이나 기념일조차 “형수가 혼자 밥 먹는 게 마음에 걸린다”며 먼저 챙기고 나에게 오던 그 지독한 습관들을. 진작 깨어났어야 했다. 하지만 나를 심연에서 건져 올려준 그 손길을 차마 뿌리칠 수가 없었다. “너, 항상 좋은 것만 보여주려고 하더니 대체 무슨 일이야?” 나은이가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나도 눈치채고 있었어. 민준 씨가 형수라는 사람한테 가끔 선 넘게 잘해준다는 거.” “물어볼 때마다 네가 ‘괜찮아, 가족이니까 당연한 거야’라고 해서 입 닫고 있었던 것뿐이야.” 나은이가 코를 훌쩍였다. “근데 프러포즈하던 날, 네 회사 앞에서 무릎 꿇고 광장 가득 장미꽃 깔아놨을 때…… 네 이름 부르며 목이 메던 그 사람을 보면서 생각했어. 저런 사람이 어떻게 널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그녀는 스스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그런 나쁜 생각은 오늘로 끝내자. 내 친구 서희가 드디어 진짜 사랑이랑 결실을 맺는 날인데.” 그때였다. 문밖에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신랑 왔다! 신랑 왔다! 첫 번째 관문 통과!” 나은이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는 얼른 눈물을 닦아내고 입꼬리를 올렸다. “왔다! 민준 씨 왔나 봐!” “빨리, 얼른 앉아. 면사포 내리고, 얼굴 못 보게 해. 나 화장 안 지워졌지?” 나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나은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도 웃고 있고, 나도 웃고 있었다. 그녀는 민준이 왔다는 생각에 웃었고, 나는…… 진짜 내 ‘신랑’이 왔다는 사실에 웃었다. 5 문이 열리는 순간, 나은이의 얼굴에서 웃음이 삭 가셨다. 들어온 사람은 민준이 아니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합동결혼식 들러리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신랑님, 봉투 좀 줘요!” “노래 한 곡 뽑아야지!” 그들은 민준의 얼굴을 몰랐기에, 그저 이 방의 주인인 신랑이 온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은이는 알았다. 그녀가 홱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녀의 눈빛에는 혼란, 경악, 그리고 어렴풋이 짐작한 절망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 살짝 쥐었다. 그녀는 마치 무거운 둔기에 맞은 사람처럼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아마 내가 아까 했던 말, “형수를 결혼시키기 위해 나를 이용했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드디어 맞춰진 것이리라. 그리고 면사포 아래의 내가 너무나도 평온하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나은이는 입술을 깨물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신랑에게 길을 터주었다. 그 남자가 다가와 말없이 내 손을 잡고 밖으로 이끌었다. 복도는 고요했다. 다른 방들은 이미 시끌벅적하게 신부들을 데리고 나간 뒤였다. 오직 302호실만이, 신부가 낯선 남자의 손에 이끌려 조용히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광장에 도착하자 붉은 면사포를 쓴 신부 쉰 명이 다섯 줄로 가지런히 서 있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자, 마지막 커플까지 합류했습니다! 쉰 쌍 전원 입장 완료!” “지금부터 신랑 신부의 혼인 서약이 있겠습니다.” 유진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던 민준이 ‘입장 완료’라는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잠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