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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목숨값을 상간녀에게 송금한 너에게
딸아이가 유괴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납치범의 요구는 현금 5천만 원.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는 경찰에 신고하거나 허튼짓을 하면 ...
Chương (1)
第1章
딸아이가 유괴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납치범의 요구는 현금 5천만 원.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는 경찰에 신고하거나 허튼짓을 하면 딸의 시신을 보게 될 거라며 나를 짓눌렀다.
나는 미친 듯이 안방으로 달려가 금고를 열었다. 그곳엔 우리 집의 모든 통장과 비상금이 보관되어 있었다.
하지만 금고를 연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건 돈다발이 아닌 한 장의 송금 확인서였다. 남편이라는 작자가 집안의 모든 돈을 밖으로 빼돌린 것이다.
그 5천만 원은 우리 가족의 전 재산이었다. 딸 서아를 위해 차곡차곡 모아둔 교육 보험금이자, 양가 부모님의 노후 자금, 그리고 우리 집이 융통할 수 있는 유일한 현금이었다.
“이 돈, 다 어디로 갔어?”
나는 송금 확인서를 강승준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정은아, 일부러 숨기려던 게 아니야.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 그가 횡설수설하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희수네 아들이 선천성 심장병이래. 당장 수술비가 없으면 아이가 죽는다는데… 한 아이의 생명이 꺼져가는데 내가 어떻게 모른 척을 해….”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 큰돈을, 그는 나한테 말 한마디 없이 다른 여자를 구하기 위해 써버렸다.
그 돈은 엊그제야 통장에 입금된 돈이었다. 그런데 어젯밤에 바로 이체되었다니. 이게 과연 우연일까?
1
“정은아, 내가 잘못한 거 알아. 하지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정말 몰랐어. 지금 당장 어떻게든 해볼게. 돈을 빌리든, 누구한테 무릎을 꿇든 해서 서아 꼭 구해올게.”
“당신이 무슨 수로? 말해봐, 대체 무슨 방법이 있는데!” 참다못한 내 목소리가 날카롭게 터져 나왔다.
“빌려올게. 지금 당장 여기저기 전화해 볼게. 아직 늦지 않았을 거야….” 그가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내 눈물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빌려? 당신이 무슨 염치로 누구한테 빌려?”
“몇 년 전 당신 사업 말아먹고 빚더미에 올랐을 때, 내가 밤낮없이 일해서 이 집 겨우 지켜낸 거 잊었어? 이 돈조차 우리 부모님이 남겨주신 집 보상금이야. 그런데 이제 와서 당신이 5천만 원을 빌려오겠다고?”
그는 사색이 된 채 입술만 파르르 떨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돈이 없으면… 차라리 죽이라고 해.” 나는 절망 섞인 목소리로 내뱉었다.
“심정은! 당신 미쳤어?” 강승준이 내 팔을 거칠게 붙잡았다. “우리 서아야! 우리 딸이라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나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럼 당신이 말해봐. 대체 무슨 방법이 있냐고!”
그때, 다시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강승준은 미친 사람처럼 달려들어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납치범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현금만 받는다. 이 해외 계좌로 당장 입금해.”
“제발, 제발 시간 좀 더 주세요. 돈은 어떻게든 마련할 테니 제발 아이만은 해치지 말아 주세요.” 강승준이 전화기에 대고 비굴하게 애원했다.
상대방의 비릿한 비웃음소리가 들렸다.
“돈 못 모으면, 애 장례식 치를 준비나 해.”
나는 그의 손에서 휴대폰을 뺏어 들었다.
“돈 없어요.”
“시간 됐으니, 마음대로 하세요.”
2
강승준은 겁에 질려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그는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정은아, 제발 정신 차려! 서아잖아! 하나뿐인 우리 자식인데 어떻게 이렇게 독하게 굴어?”
나는 다시 한번 그의 손을 차갑게 쳐냈다.
“이제야 서아가 당신 딸인 게 실감 나?”
“집안 마지막 재산인 5천만 원을 그 여자한테 보낼 때는, 서아 생각 눈곱만큼이라도 했어?”
“서아가 잘못된 건 당신이 자초한 거야. 이게 당신이 내린 선택의 결과라고.”
강승준은 내 말에 할 말을 잃은 듯 무너져 내렸다.
“서아 포기하지 마. 제발… 내가 빌게. 내가 이렇게 머리 박고 빌게, 됐어?”
그가 바닥에 머리를 짓찧으며 빌더니, 갑자기 생각난 듯 본가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시부모님이 들이닥쳤다.
“서아는? 내 강아지 서아는 어떻게 된 거야?”
시아버지는 들어오자마자 강승준을 쏘아보았다. “집 판 돈 들어왔다며! 그런데 왜 몸값 줄 돈이 없다는 거야?”
나는 대꾸하지 않고 침실로 들어가 캐리어를 꺼냈다.
그 모습에 시어머니가 기겁하며 내 앞을 막아섰다.
“정은아, 너 지금 뭐 하니? 애가 잡혀갔는데 짐을 싸? 너 진짜 미친 거니?”
나는 어머니의 손을 하나하나 떼어냈다.
“아드님이 제 딸을 구할 생각이 없으니, 전 이혼하고 떠나야죠.”
시어머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이 상황에 이혼이라니! 서아가 아직 유괴범 손에 있는데!”
시아버지가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나는 말없이 이체 내역서를 건넸다.
“집 팔고 대출 갚은 뒤 남은 5천만 원, 어제 새벽 세 시에 아드님께서 ‘장희수’라는 사람한테 단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다 보내셨더라고요.”
시어머니가 내역서 속 이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장희수가 누구냐?”
강승준의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그게… 회사 동료인데, 아들이 많이 아파서 수술비가 급하다고 하길래… 일단 빌려준 거예요. 상황 좋아지면 갚는다고….”
“동료?”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쪽 아드님이 말하는 동료는 전 여자친구예요. 돈 보낼 때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로맨티시스트처럼 굴더니, 막상 자기 딸 목숨값 필요하니까 그 여자한테 전화 한 통 못 하네요.”
“전 여자친구?”
시아버지가 강승준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이 못난 놈!”
시어머니도 정신이 나간 듯 강승준에게 달려들었다. “네 딸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밖에서 굴러먹던 계집년한테 돈을 줘? 지금 당장 전화해! 당장 돈 돌려받으란 말이야!”
“뭐 하고 있어! 빨리 전화 안 해? 남의 자식새끼가 네 친딸보다 귀해?”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문가에 기대어 차갑게 뱉었다.
“왜, 전화 못 하겠어?”
“돈 안 돌려줄까 봐 겁나? 아니면 당신들의 그 구역질 나는 관계가 들통날까 봐 무서워?”
강승준의 입술이 경련하듯 떨렸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은아….”
“내 이름 부르지 마. 강승준, 당신 정말 역겨우니까.”
그는 휴대폰을 쥐고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끝내 번호를 누르지 못했다.
“보셨어요? 이게 어머니 아버지가 애지중지 키우신 아들의 실체예요.”
3
시어머니가 강승준을 밀치며 소리쳤다. “서아 잘못되면 나도 너 안 본다!”
시아버지도 얼굴이 흙빛이 되어 꾸짖었다.
“네 인생 망치는 건 상관없는데, 자식 앞길까지 막다니! 내가 어쩌다 너 같은 걸 낳았을꼬!”
그때 다시 벨소리가 정막을 깨뜨렸다.
강승준은 떨리는 손으로 스피커폰을 켰다.
“마지막 한 시간이다. 입금 안 되면 네 딸 다신 못 볼 줄 알아. 1분 늦을 때마다 손가락 하나씩 잘라 보낼 테니까.”
나는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버텼다.
시어머니는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내 서아, 불쌍해서 어쩌나!”
시아버지는 안절부절못하며 외쳤다. “집에 귀금속이고 뭐고 돈 될 만한 거 다 가져와! 땅문서라도 들고 가서 빌려봐야지!”
강승준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시간이 없다고요! 담보든 뭐든 시간이 걸리는데, 한 시간 안에 어떻게 5천을 만들어요!”
그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문밖에는 웬 여자가 서 있었다.
화려한 옷차림에 공들인 화장을 했지만, 초조함이 역력한 얼굴.
그녀는 문을 연 사람이 나인 걸 보고 흠칫 놀라더니, 다급하게 소리쳤다. “승준 씨!”
나는 비켜서서 거실의 모든 사람이 보이게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는 잠시 당황하는 듯하더니, 이내 눈시울을 붉히며 강승준에게 달려갔다.
“왜 전화를 안 받아? 오늘 남은 돈도 다 주기로 했잖아! 병원에서 독촉이 얼마나 심한지 알아? 우리 아들 수술 기다리고 있다고. 이러다 정말 큰일 나!”
시부모님의 안색이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강승준은 수치심에 몸을 떨며 그녀를 밖으로 밀어내려 했다.
“여길 왜 와! 누가 오라고 했어! 당장 나가!”
“내가 왜 못 와?”
밀쳐진 그녀가 휘청거리며 눈물을 쏟았다. “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모자 책임지겠다고 약속했잖아. 연락이 안 되는데 그럼 내가 어디로 가!”
시어머니가 독기 어린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넌 누구냐?”
여자는 입술을 깨물며 가련한 척 연기를 시작했다.
“어머니, 저 희수예요. 저랑 승준 씨는 정말 사랑하는 사이고요, 승준 씨가 우리 아이 병 고쳐주겠다고 했어요. 아내하고는 이미 정 뗐다고, 곧 이혼하고 저랑 결혼하겠다고….”
시어머니는 뒷목을 잡으며 강승준의 뺨을 다시 갈겼다.
시아버지는 아예 발로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강승준은 바닥에 처박혀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장희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는지 당황했다.
“당신… 분명 집에 돈 많아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잖아.”
나는 천천히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내 딸은 지금 유괴범 손에 잡혀 있어. 그런데 그 아이 친아빠라는 인간은 딸 목숨값을 당신 아들한테 갖다 바쳤고.”
시어머니가 폭발했다. 그녀의 머리채를 잡으려 달려들었다.
“이 여우 같은 년! 여기가 어디라고 발을 들여! 내 손녀 목숨 내놔!”
장희수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강승준은 자기가 매를 맞으면서도 기어코 장희수의 앞을 가로막았다.
“엄마! 건드리지 마요! 이 사람은 아무 잘못 없다고요!”
“내가 자진해서 준 거야. 이 사람 탓하지 마요.”
4
장희수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앙칼지게 말을 이었다.
“따님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아들도 소중한 생명이에요.”
“그리고… 우리 아들도 승준 씨 자식이라고요! 우리 모자 책임지겠다고, 애 고쳐주겠다고 약속했어요. 남자라면 그 약속 지켜야죠.”
순식간에 거실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뭐라고? 강승준, 너 밖에서 딴살림 차린 것도 모자라 애까지 낳았어?!”
장희수는 이제 막 나가는 듯 보였다.
“승준 씨랑 저, 대학교 때부터 사귀던 사이였어요. 3년 전 동창회에서 재회했을 때 승준 씨가 그랬어요. 사는 게 너무 불행하다고, 가슴 한구석엔 늘 저뿐이었다고. 아이도 그때 생긴 거예요.”
“닥쳐!” 강승준이 얼굴이 벌게져서 고함을 질렀다. “지금 그게 문제야?”
“그럼 언제 말해?” 장희수도 지지 않고 울부짖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부터 챙긴다더니, 부모님 오니까 바로 우리 내팽개치려는 거야? 강승준, 너 그러고도 남자야?”
강승준은 양쪽에서 공격받으며 진퇴양난에 빠졌다.
시어머니는 벽을 짚고 겨우 몸을 지탱했다.
“네 딸은 죽어 가는데, 그 돈을 빼돌려 사생아를 살리겠다고?”
강승준은 고개를 떨군 채 힘들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 준이(장희수 아들)는 정말 급해요. 의사가 이번 수술 놓치면 이번 달 넘기기 힘들지도 모른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결국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렇구나. 그러니까 서아는 죽어도 되지만, 그 아이는 안 된다는 거네?”
“강승준, 몸값 못 내놓는 상황에서도 당신은 돈 돌려달라는 소리 끝까지 안 했어. 두 아이 다 소중한 생명이라고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지만, 당신 마음속에선 이미 선택이 끝난 거야.”
강승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마치 내 말에 심장이 찔린 듯했다.
시아버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몽둥이라도 들 기세로 소리쳤다.
“이 짐승만도 못한 놈! 네가 품에 안고 키운 친딸이야! 아빠, 아빠 하며 네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던 서아라고! 그런데 그 밖에서 낳아온 근본도 모르는 핏줄 때문에 서아를 버리겠다고?”
장희수는 ‘근본 없는’이라는 말에 얼굴색이 변했다.
“말씀 너무하시네요! 준이도 승준 씨 핏줄이에요! 왜 우리 애가 차별받아야 하는데요? 왜 우리 애만 죽어야 하냐고요!”
“그럼 내 딸은 죽어도 된다는 거야?”
내 서늘한 한마디에 장희수는 입을 다물었다.
“장희수, 당신 아들 목숨만 소중하고 내 딸 목숨은 쓰레기야?”
강승준이 본능적으로 장희수를 보호하려 움직였지만, 시아버지에게 붙잡혔다.
그때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강승준의 손이 미친 듯이 떨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스피커폰을 눌렀다.
“시간 다 됐다. 돈 보낼 거야, 시체 치울 거야?”
“제발 시간 좀 더 주세요. 부탁입니다, 제발….”
“셋 셀 동안 선택해. 입금하든지, 아니면 지금 바로 손가락 하나 잘라서 영상 찍어 보낼 테니까.”
“하나.”
“둘.”
시어머니가 비명을 질렀다. “돈 줘! 빨리 돈 주라고!”
“둘 반.”
시아버지가 강승준의 다리를 걷어찼다. “당장 돈 돌려받아!”
모든 사람의 시선이 강승준에게 꽂혔다.
그는 사색이 된 채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절벽 끝에 선 사람처럼 서 있었다.
나는 그저 냉정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나 또한 알고 싶었다.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과연 누구를 선택할지.
5
강승준은 장희수를 한 번, 나를 한 번 번갈아 보았다. 목울대가 격하게 요동쳤지만, 끝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한쪽은 유괴범의 손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친딸 서아.
다른 한쪽은 수술비가 없으면 죽는다는 숨겨둔 아들.
장희수가 허둥지둥 가방을 뒤졌다.
“신고할 거야! 경찰 부를게! 네 딸은 경찰한테 맡기고 돈은 우리 아들 줘, 응? 그게 맞아!”
나는 그녀의 휴대폰을 낚아채 던져버렸다.
“신고? 해 봐.”
“경찰 불러서 당신이 유부남인 거 알면서도 붙어먹은 거, 그리고 이 인간이 자기 딸 목숨값 빼돌려 불륜녀랑 사생아한테 보낸 거 다 까발려보자고. 오늘 내 딸 손끝 하나라도 잘못되면, 난 당신 아들 인생 똑같이 망쳐놓을 테니까.”
장희수는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거실에는 강승준의 거친 숨소리만 가득했다. 몇 초가 흐른 뒤, 그는 갑자기 무릎으로 기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정은아… 제발 준이 좀 살려줘. 애는 아무 죄 없잖아. 걔는 아무것도 몰라. 이제 겨우 두 살이야.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것은 간접적인 선택이었다. 그는 아들을 택했다.
“강승준, 당신은 정말 아버지 자격도 없어. 처음부터 끝까지 서아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지? 이 가정을 소중히 여긴 적도 없고.”
“알아… 내가 죽일 놈인 거 알아… 하지만 준이는 정말 안 돼. 정은아, 제발… 애가 너무 어리잖아. 한 번만 봐주면 안 될까?”
나는 강승준을 거세게 걷어찼다. 가슴 속에 맺힌 울화가 터져 나왔다.
“봐달라고? 그럼 내 딸은 누가 봐주는데!”
“강승준, 당신 사업 망해서 빚쟁이들이 칼 들고 집 앞까지 찾아왔을 때, 세 살짜리 서아 품에 안고 그 사람들 찾아가서 고개 숙인 거 나야! 집집마다 다니며 비굴하게 웃고, 각서 쓰고 영상까지 찍히며 당신 살려낸 거 나라고!”
“그때 서아는 겁에 질려 내 다리를 붙잡고 울면서도 아빠 때리지 말라고 빌었어. 그 어린 애가 울음을 참으면서 아빠 무서워하지 말라고, 서아가 옆에 있겠다고 했다고!”
“당신 빚쟁이 피해 도망 다닐 때, 나 혼자 낮엔 직장 다니고 밤엔 노점상 하면서 당신 부모님 모시고 애 키웠어. 서아가 고열로 펄펄 끓어도 돈 한 푼 아쉬워서 연차도 못 냈어.”
“애가 정신이 몽롱한 와중에도 해열 시트 붙여주니까 뭐라 그랬는지 알아? 엄마, 아빠 약부터 사줘. 아빠가 서아보다 더 아플 거야… 이러던 애야.”
“당신, 그때 우리한테 뭐라 그랬어? 상황 나아지면 평생 우리 모자 제일로 생각하겠다고, 절대 고생 안 시키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결과가 이거야?”
“당신 제일 밑바닥일 때 곁을 지켰고, 무시당할 때 같이 고개 숙였어. 서아는 장난감 하나, 예쁜 옷 하나 사달라는 소리 안 하는 철든 아이였어. 유치원 칭찬 스티커 모아오면 아빠 고생한다고 보여주며 웃어주던 애라고! 널 그렇게 믿고 사랑했는데, 넌 애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애가 납치당해서 전화로 아빠 살려달라고 울부짖는데, 넌 그 목숨값으로 다른 여자 아들을 살리겠다고?”
“지금 여기서 걔를 봐달라고 빌어? 그럼 내 딸은? 서아가 당신 때문에 겪은 고통과 공포는 누가 보상해주는데!”
“강승준, 당신이 나한테 빚진 건 이제 바라지도 않아. 하지만 서아한테 진 빚은 평생 못 갚아!”
강승준은 바닥에 엎드려 얼굴을 감싸 쥐고 통곡했다.
그때 다시 벨소리가 울렸고, 수화기 너머로 딸아이의 비명이 들렸다.
“아빠… 살려줘… 아파… 너무 아파….”
강승준은 완전히 무너졌다.
“돈 줄게요! 무조건 줄게요! 제발 건드리지 마요! 지금 당장 어떻게든 구할게요! 집을 팔든 장기를 팔든 다 해올 테니까 제발!”
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선 차가운 비웃음만 돌아왔다.
“늦었어.”
이어지는 날카로운 비명.
“아빠! 아빠 살려줘!!”
강승준은 털썩 주저앉아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울부짖었다.
“안 돼! 제발! 제발! 얼마든 줄게! 제발 해치지 마요!”
납치범은 마치 그를 농락하듯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살릴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듣자 하니 사생아가 하나 있다며? 걔 수술비 필요하다면서. 그럼 둘 중 하나만 골라.”
“10분 준다. 10분 뒤에 대답해.”
강승준은 얼어붙었다.
장희수가 먼저 달려들어 그의 손을 꽉 잡았다.
“승준 씨, 준이 포기하면 안 돼! 내일 수술 안 하면 정말 끝이라고 의사가 그랬잖아! 걔는 이제 두 살이야!”
시어머니도 눈물을 쏟으며 강승준에게 소리쳤다.
“서아가 네 친자식이야! 지금 나쁜 놈들 손에 있다고! 서아 골라, 빨리!”
시아버지는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일갈했다.
“강승준, 네놈이 사람 새끼라면 서아를 구해야지! 네 손으로 키운 자식 아니냐!”
나는 그가 누구를 택할지 끝까지 지켜보았다.
강승준은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휴대폰을 향해 잔인한 문장을 뱉었다.
“……준이를 택하겠습니다.”
그 순간, 내 심장은 갈가리 찢겨 나갔다.
이미 답을 알고 있었는데도, 이 남자가 쓰레기라는 걸 뼛속 깊이 알고 있었는데도, 서아를 버리겠다는 말을 직접 듣는 순간 가슴에 칼이 꽂혀 헤집어지는 기분이었다.
이게 내가 10년을 사랑하고, 밑바닥을 함께 견디며 평생을 약속했던 남자의 본모습이었다.
모두가 그 말에 얼어붙어 있을 때, 현관문 쪽에서 아주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모든 시선이 동시에 문 쪽을 향했다.
그곳에 서아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