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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행위를 저지른 상속인과 놀았던 바보
나는 어릴 때부터 눈치가 없다는 둥, 곰 같다는 둥 하는 소리를 듣곤 했다. 하지만 사실 그건 내 나름의 영악함이었다. 남들보다 반 박자 느리게 반응하...
Chương (1)
第1章
나는 어릴 때부터 눈치가 없다는 둥, 곰 같다는 둥 하는 소리를 듣곤 했다. 하지만 사실 그건 내 나름의 영악함이었다. 남들보다 반 박자 느리게 반응하며 상황을 관조하는 것, 그게 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두고 '돈만 축내는 짐 덩어리'라고 입버릇처럼 욕하셨다. 그 말에 화가 치밀었던 어린 날의 나는, 집안에 있던 비상금을 몽땅 털어 세상에서 제일 비싼 보험을 내 명의로 들어버렸다. 그게 내 첫 복수였다.
고등학생 땐 소위 노는 애들이 나보고 '가식 떨지 마라'며 시비를 걸었다. 나는 그게 칭찬인 줄 알고 눈을 반짝이며 "칭찬 고마워!"라고 대답했다. 그날 이후로 내 가식은 더 견고해졌다.
그런 내가 결혼을 했다. 남편 도윤에게는 가족보다 더 가깝다는 소꿉친구, 유라가 있었다.
결혼식 당일 밤, 뒤풀이 자리에서 그녀가 샴페인 잔을 흔들며 농담조로 던진 한마디가 화근이었다.
"새언니, 앞으론 고생 끝 행복 시작이겠네? 우리 도윤이가 밤일은 진짜 끝내주잖아."
주변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덧붙였다.
"기억나, 도윤아? 예전에 한 번은 네가 너무 몰아붙여서 나 며칠 동안 침대에서 못 일어났던 거."
순간, 사람들은 내 반응을 살피며 비웃음을 참는 눈치였다. 나는 그저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얼굴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거 연기한 거 아니야? 도윤 씨, 그게 좀... 많이 작던데."
……
순간, 현장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누군가 참지 못하고 풋, 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야, 임도윤. 네 와이프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너 진짜 심각한 거 아니냐?"
남자들 세계에서 자존심은 곧 거기로 통한다. 특히 이런 노골적인 비교 앞에서는 더더욱. 남편 임도윤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졌다. 불쾌함이 가득 서린 눈이 나를 쏘아보았다.
그가 입을 떼기도 전, 소꿉친구 신유라가 먼저 선수차고 나섰다.
"언니, 혹시 화난 거예요?"
그녀는 입을 가리고 꺄르르 웃으며 나를 향해 눈짓했다.
"아니, 난 오늘 분위기도 좋고 해서 장난 좀 친 건데... 설마 그렇게 죽자고 달려들 줄 몰랐죠. 근데 언니,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그렇게 말하면 도윤이 체면은 뭐가 돼요?"
유라의 말에 도윤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반면, 소동을 일으킨 장본인은 기세등등한 눈빛으로 나를 도발하고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한참 동안 빤히 응시하다가 비로소 깨달았다.
'아, 장난을 저런 식으로도 칠 수 있는 거구나?'
그렇다면 나도 질 수 없지. 나는 유라의 조잘거리는 소리를 가볍게 무시하고, 폭발하기 직전인 도윤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그리고 유라가 했던 것처럼 잔뜩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도윤 씨, 미안해. 알잖아, 나 좀 보수적인 거. 우리 결혼 전까지는 순결 지키기로 약속했으니까 난 당연히 도윤 씨 사이즈가 어떤지 알 리가 없지..."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이거 다 유라가 말해준 거야. 여자애들끼리 모이면 원래 이런저런 얘기 다 하잖아. 유라랑 도윤 씨는 어릴 때부터 워낙 각별한 사이니까, 유라가 나한테 이런 비밀까지 말해주길래 난 당신도 괜찮은 줄 알았지..."
"정말 미안해, 도윤 씨. 당신을 곤란하게 만들려던 건 절대 아니었어..."
내 연기는 완벽했다. 당황한 유라의 입이 벌어졌다. 그녀가 다급히 해명하려 했지만, 내가 한발 더 빨랐다. 나는 겁먹은 척 도윤의 등 뒤로 숨어버렸다.
"유라야, 화내지 마. 나도 정말 나쁜 뜻은 없었어. 네 말대로 그냥 분위기 띄우려고 농담한 것뿐이야."
"넌 도윤 씨를 친오빠처럼 생각하니까 이런 은밀한 얘기도 나한테 해준 거겠지. 도윤 씨도 이해해 줄 거야. 아, 그리고 너 나한테 그랬잖아. 도윤 씨 어릴 때 강아지 사료 뺏어 먹다가 들키고, 개집에서 자다가 똥통에 빠져서 똥독 올랐었다고... 그런 치부까지 공유해 줘서 난 우리가 정말 친해진 줄 알았지."
홀 안은 이제 죽은 듯한 정적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경악 섞인 눈으로 도윤을 바라보았다.
도윤은 어릴 적 주의력 결핍 장애(ADHD)가 있어 기행을 일삼았다. 성인이 된 후로는 자존심이 하늘을 찔러서, 과거의 결점을 언급하는 사람과는 그 자리에서 절교할 정도로 예민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시어머니가 사석에서 푸념하듯 하시는 걸 우연히 엿들었을 뿐이다.
나는 아차 하는 표정으로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실수로 말을 내뱉었다는 듯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도윤을 올려다보았다.
"어머, 내가 또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거야? 미안해, 유라야. 내가 워낙 눈치가 없어서... 나 안 미워할 거지?"
유라의 정교하게 화장된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그녀는 화를 참지 못하고 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차연우, 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그녀가 발악할수록 내 마음속에서는 쾌감이 차올랐다. 방금 배운 기술이 이렇게나 잘 먹히다니. 역시 사람은 밖으로 다니며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성장하는 법이다.
내가 대꾸도 하지 않자, 유라는 금세 눈물을 그렁거리며 도윤의 소매를 붙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피해자라도 된 것처럼.
"도윤 오빠, 아니야. 저 여자가 다 지어낸 말이야. 내가 오빠에 대해 어떻게 그런 말을 해!"
하지만 도윤은 그녀의 말을 듣지도 않고 거칠게 손을 뿌리쳤다.
"입 닥쳐. 이 사실을 너 말고 누가 또 안다고 그래?"
"입이 그렇게 가벼워서야, 네 아버지랑 진행하려던 사업 협력도 다시 고려해 봐야겠군."
유라는 사색이 되어 울음을 터뜨렸다.
"오빠, 정말 아니야! 저 불여시 같은 게 우리 사이 갈라놓으려고 거짓말하는 거라고!"
유라가 더 악을 쓰려 하자, 도윤이 그녀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
"그만해! 명심해, 이 사람은 네 새언니야. 한 번만 더 무례하게 굴면 네 집안 자체를 이 바닥에서 매장해 버릴 테니까."
엉망이 된 분위기에 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두 발자국도 떼기 전, 그는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유라는 당황해서 도윤의 팔을 흔들며 곡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도윤 오빠! 오빠 정신 좀 차려봐! 오빠 무섭게 왜 이래!"
구경하던 사람들은 불똥이 튈까 봐 멀찌감치 물러섰다. 나는 한발치 뒤에서 이 촌극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충분히 즐겼다 싶었을 때쯤, 나는 느릿하게 휴대폰을 꺼내 119에 신고했다.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 도윤의 심박수는 이미 위험 수준이었다. 하루 꼬박 이어진 응급 수술 끝에 도윤이 중환자실에서 나왔다. 의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환자분은 원래 심인성 부정맥이 심해서 정서적인 안정이 절대적입니다. 도대체 어떤 자극을 주신 겁니까? 조금만 늦었어도 생명이 위험할 뻔했습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도윤의 부모님은 그 말을 듣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
"이게... 이게 무슨 일이니? 우리 아들이 수년 동안 아무 일 없었는데, 어쩌다 갑자기..."
유라는 눈치를 살피더니 금세 머리를 굴리는 듯했다. 그녀가 다급히 시부모님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내가 먼저 엉덩이로 그녀를 밀쳐내며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세상에서 제일 서러운 며느리 연기를 시작했다.
"아버님, 어머님... 다 제 잘못이에요."
"유라가 도윤 씨랑 잤던 얘기를 하면서 밤일이 너무 세서 힘들었다는 둥 농담을 하길래, 저도 분위기 좀 맞춰보겠다고 같이 장난을 쳤거든요... 제 입이 방정이에요. 도윤 씨가 저렇게 될 줄 알았으면 입이라도 꿰맸어야 했는데!"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시부모님의 안색이 돌변했다. 전형적인 상류층인 그들에게 체면은 목숨보다 중요했다. 아들의 결혼식 날, 소꿉친구라는 애가 그런 저질스러운 농담을 던져 가문의 먹칠을 했다니. 어느 부모가 참을 수 있겠는가.
시어머니는 몸을 부르르 떨며 유라를 쏘아보았다.
"신유라, 네가 평소에 우리 아들 곁에서 얼쩡거리는 건 봐줬다만, 결혼한 날에 그딴 상스러운 소리를 지껄여? 내 아들 인생 망치려고 작정했니?"
유라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어머님, 아니에요! 전 정말 그런 농담 한 적 없어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천진하게 물었다.
"농담이 아니었어? 그럼 설마... 진짜였던 거야? 너랑 도윤 씨, 정말로..."
나는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유라는 내가 판 함정에 연달아 빠지자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듯했다.
"차연우, 이 나쁜 년이 진짜...!"
욕설이 튀어나오려던 찰나, 시아버지가 차가운 발길질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입 닥쳐!"
"얼마나 더 가문을 망신시켜야 속이 시원하겠느냐? 네 아비가 널 어떻게 가르쳤기에 이 모양인지 모르겠구나. 당장 사과하고 꺼져!"
유라는 그제야 마지못해 나를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언니. 제 입이 싸구려라 그랬어요."
나는 혀를 차며 낮게 읊조렸다. "진심이 안 느껴지네. 우리 엄마가 그러셨거든. 잘못을 저지른 곳이 있으면 직접 벌을 받아야 한다고. 유라야, 어떻게 생각하니?"
유라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하지만 시부모님의 서슬 퍼런 눈빛에 결국 제 손으로 자신의 뺨을 세차게 두 차례 후려쳤다.
"이, 이제 됐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라는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갔다. 그녀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윤이 의식을 되찾았다. 시부모님이 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도윤은 나를 보자마자 간절하게 내 손을 잡으며 변명했다.
"연우야, 유라가 한 말 다 잊어줘. 걔가 철이 없어서 그래.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
"맹세해. 난 정말 너만 사랑해. 내 목숨도 줄 수 있어. 그러니까 절대 널 배신하는 일 따윈 없을 거야."
내 겉표정은 평온했지만, 속으로는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목숨을 준다고? 웩, 아무도 안 갖는 쓰레기를 줘서 뭐 하니. 짜증 나게.
재벌가인 그들이 나 같은 평범한 집안의 여자에게 이토록 저자세인 이유는 명확했다. 도윤의 고질적인 심장 질환은 현대 의학으로도 완치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내 어머니는 바로 그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명의였다.
그들이 수많은 정략결혼 자리를 마다하고 나를 며느리로 맞이한 건, 오로지 내 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했기 때문이리라. 나 역시 도윤의 외모가 나쁘지 않고 집안도 빵빵하니 적당히 맞춰주며 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절개를 잃은 남자는 매력이 없는 법이다. 뭐, 장난감으로는 좀 더 가지고 놀 만하겠지만.
그 뒤로 며칠간은 평화로웠다. 부모님 댁으로 떠나기 전날, 유라가 다시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녀는 염치 좋게도 우리 짐 싸는 걸 돕겠다고 자청했다.
"언니, 미안해서 그래요. 이 정도는 제가 하게 해줘요."
호의를 베푸는 척하며 뒤통수칠 기회만 노리는 여우 같은 심보가 뻔히 보여서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도윤이 내 앞을 막아섰다.
"유라 성격 알잖아. 그냥 시켜. 그날 일은 오해였다고 나한테 다 설명했어. 이제 다 풀렸으니까 앞으로 자매처럼 잘 지내봐."
나는 눈앞의 남자를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일주일 전만 해도 화가 나서 죽을 뻔했던 주제에 소꿉친구라고 금세 용서하다니. 그들만의 끈끈한 우정이 참 눈물겹다. 뭐, 알아서 노예가 되겠다는데 굳이 말릴 이유는 없지.
"그래, 그럼 부탁할게. 방 안에 있는 물건들 다 종류별로 정리해서 넣어줘. 특히 저 상자들에 든 건 아주 귀한 거니까 조심해야 해. 딴 사람은 못 믿어도 유라 너니까 믿고 맡기는 거야."
유라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녀는 알겠다고 대답하더니, 상자를 들어 올리는 척하다가 고의로 손을 놓아버렸다.
챙그랑! 파칭!
날카로운 파열음이 방 안에 울려 퍼졌고, 소리를 들은 도윤이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유라의 눈에 희열이 스쳤다. 그녀는 금세 눈시울을 붉히며 가증스럽게 입을 열었다.
"상자가 이렇게 무거우면 미리 말을 해줬어야죠, 언니..."
"설마 내가 실수로 깨뜨려서 혼나는 걸 보고 싶어서 일부러 그러신 거예요? 아차, 내가 또 말실수를 했네. 미안해요 언니, 그냥 내 짐작이에요."
"도윤 오빠, 오해하지 마. 언니처럼 착한 사람이 무슨 속셈이 있겠어? 언니가 오빠 재산 보고 결혼한 것도 아닐 텐데, 그치?"
조잘조잘 쏟아내는 유라를 보며 내 마음속에 묘한 파동이 일었다. 어라, 이 수법... 어디서 많이 본 건데?
마침 잘됐다. 나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잔머리 굴리는 데는 일가견이 있으니까. 나는 그녀를 향해 '드디어 동지를 만났다'는 듯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손을 꽉 붙잡았다.
"유라야! 내가 착한 거 어떻게 알았어? 그러니까 이런 쓰레기 더미를 그렇게 정성스럽게 포장해 놨지!"
"근데 넌 쓰레기랑 귀중품도 구분을 못 하니? 너 혹시 좀... 모자란 거 아니야? 아, 미안. 나쁜 뜻은 아니고 그냥 농담이야. 신경 쓰지 마."
유라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녀는 목소리를 높이며 부르르 떨었다.
"뭐라고? 그 상자 안에 든 게 쓰레기라고? 차연우, 너 제정신이야? 쓰레기를 왜 이런 고급 가방에 담아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 척하다가 대답했다. "쓰레기를 여기 안 담으면 어디 담아?"
그러고는 옆에 있던 더 비싼 명품 쇼핑백을 그녀의 머리에 씌워버렸다.
"깜빡했네. 너한테도 하나 필요할 것 같아서. 짝수는 길조라잖아."
내 비유를 알아챈 유라가 폭발하려는 찰나, 도윤의 호통이 떨어졌다.
"그만해! 사고나 칠 거면 당장 꺼져!"
유라는 분통을 터뜨리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발악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식사 시간, 집사가 생선 요리를 내오자 유라가 갑자기 입을 가리고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쏠리자, 그녀는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다.
"도윤 오빠, 나 왜 이러지... 갑자기 속이 너무 메스껍고 자꾸 잠만 와. 몸도 축 처지는 게... 아, 그러고 보니 이번 달 생리도 건너뛰었네..."
"설마 나... 생긴 거 아니겠지? 날짜를 계산해 보니까 저번에 오빠랑 우리 집에 갔을 때, 우리..."
유라가 말을 흐리자,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유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의자를 끌어당겨 도윤에게 바짝 붙었다.
"오빠, 나도 이렇게 쉽게 생길 줄 몰랐어... 맹세하는데, 언니랑 오빠 사이를 갈라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어. 하지만 아이는 죄가 없잖아. 그러니까 오빠가..."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내가 갑자기 탁, 소리가 나게 손뼉을 쳤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럼 그날 했던 말이 농담이 아니었구나."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도윤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 그는 다급히 나를 바라보며 당황해했다.
"연우야, 저 말 듣지 마. 절대 그런 일 없어. 난..."
하지만 유라가 그의 말을 가로채며 쐐기를 박았다.
"오빠, 내 처음을 오빠한테 줬는데 내가 이런 거짓말을 왜 해? 사생아로 키우기 싫어서 혼자라도 키우려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말하는 거야! 한 짓이 있는데 왜 발뼘을 해?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저런 여자가 도대체 어디가 좋아서 그래?"
도윤은 그녀의 발악을 무시하고 오직 나만을 주시했다.
"연우야, 정말 아니야. 날 믿어줘. 신유라, 당장 가서 지워. 내 아이를 낳을 사람은 연우뿐이야."
그 말에 이성을 잃은 유라가 가방에서 사진 뭉치를 꺼내 식탁 위로 뿌려버렸다.
"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도윤 오빠! 저 여자한테 속지 마세요!"
"차연우 이 나쁜 년은 이미 낙태를 몇 번이나 했는지도 몰라요. 몸이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애도 못 갖는 몸이라고요!"
식탁 위에는 내가 낯선 남자들과 입을 맞추고 있는 사진들이 흩어져 있었다. 분위기는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세 사람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자, 유라의 입가에 비열한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
"아버님, 어머님. 제가 저번에 농담했던 건 저 여자를 스스로 물러나게 하려던 거였어요. 근데 낯짝이 워낙 두꺼워야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뒷조사를 좀 했어요. 전 그저 두 분이 속는 게 너무 걱정돼서..."
나는 사진들을 훑어보았다. 합성 티가 너무 나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설마 이걸 믿는 바보가 있을까?
하지만 도윤은 살벌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차연우, 설명해 봐."
시어머니가 무언가 말하려는 듯했지만 결국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를 싸늘하게 응시하며, 내 인내심의 마지막 끈을 놓아버렸다.
"설명? 필요 없어. 이혼해."
내 무심한 태도에 도윤은 폭발했다. 그는 식탁을 쾅 내리쳤다.
"그래, 이혼해! 나도 지긋지긋해!"
"나 임도윤, 나중에 병이 도져 죽는 한이 있어도 너 같은 걸레 같은 년이랑은 절대 안 살아!"
그는 비서에게 연락해 이혼 합의서를 가져오게 했고, 거침없이 서명했다. 나 역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내 이름을 적어 넣었다. 드디어 준비해둔 카드를 꺼낼 때가 온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 도윤의 차가운 목소리가 다시 귀를 때렸다.
"왜 아직 안 꺼져? 우리 집 더럽히지 말고 당장 나가."
나는 기지개를 켜며 느긋하게 일어났다.
"가야지. 근데 가기 전에 선물 하나 줄게. 아주 좋아할 거야."
나는 미리 연결해둔 빔프로젝터를 켰다. 화면이 나타나자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숨을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