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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가짜 임신을 위해 나 자신을 희생했다
잠이 오지 않는 깊은 밤, 습관적으로 SNS 피드를 넘기다 절친한 친구였던 유라의 게시물을 발견했다. 그녀가 공유한 성격 테스트 결과에는 요부 라는 단...
Chương (1)
第1章
잠이 오지 않는 깊은 밤, 습관적으로 SNS 피드를 넘기다 절친한 친구였던 유라의 게시물을 발견했다.
그녀가 공유한 성격 테스트 결과에는 요부 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고, 그 위에는 묘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문구가 덧붙여져 있었다.
[주인을 기다리는 섹시한 아기 고양이, 지금 접속 중~]
평소처럼 대담한 그녀의 농담에 장난스러운 댓글을 달아주려던 찰나, 내 시선이 한 댓글에 멈춰 섰다. 심장이 그대로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익숙한 아이디. 수년 전 내가 몰래 팔로우해두었던 남편 도훈의 부계정이었다.
내용은 눈을 씻고 봐도 믿기 힘들 만큼 노골적이었다.
[순금으로 만든 케이지는 이미 준비됐어. 아기 고양이, 천천히 달려와야지.]
내 눈을 의심했다. 침대 위에서조차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던 그 무뚝뚝한 남자가, 어떻게 이런 저질스럽고 노골적인 말을 내뱉을 수 있단 말인가.
수만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헤집었지만, 나는 당장 달려가 따져 묻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세상 사람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권도훈에게 ‘이유라’는 건드려서는 안 될 금기라는 것을.
심지어 우리 결혼식 날조차, 혹시 모를 충돌을 피하기 위해 나는 유라를 신랑측과 가장 먼 좌석에 배치했을 정도였다.
다음 날, 단 한 번도 야근한 적 없던 도훈이 갑작스럽게 야근을 핑계로 늦는다고 했다. 의구심은 확신으로 변해갔고, 나는 홀린 듯 유라의 집으로 향했다.
창문 너머로 보인 풍경은 기괴했다. 집에서 물 한 방울 손에 안 묻히던 그 남자가, 앞치마를 두른 채 주방에서 요리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없었다. 그저 발길을 돌려, 서재 구석에 처박혀 있던, 도훈이 존재조차 잊었을 이혼 서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내 이름을 적어 넣었다.
·········
증거를 남기기 위해 다시 그 부계정에 접속했다.
문득 그가 댓글을 남긴 시간을 확인했다. 하필이면 내 생일날이었다.
그것도 정확히 자정.
내가 그와 평생을 함께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던 그 짧은 30초 동안, 그는 내 친구와 음담패설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코끝이 찡해졌다.
그때 핸드폰이 진동했다. 도훈의 메시지였다. 평소처럼 다정하고 부드러운 말투.
[가윤아, 오늘 프로젝트가 바빠서 좀 늦을 것 같아.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나는 헛웃음을 삼켰다. 지독하게도 야비한 친절이었다.
예전처럼 1초 만에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결혼 생활 3년 동안, 도훈은 남들 보기에 완벽한 남편이었다.
유독 유라를 혐오한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가끔 그녀의 이름이 나오기라도 하면 그의 안색은 차갑게 굳어버리곤 했다.
5년 전, 그가 유라를 쫓아다니다 수차례 거절당했다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마지막 고백 때, 유라는 사람들 앞에서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너처럼 재미없고 낭만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남자를 내가 왜 만나?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그날 이후 도훈은 다시는 유라를 찾지 않았다.
심지어 비즈니스 미팅에서 누군가 유라의 외모를 칭찬하기라도 하면, 그는 그 사람과의 협력을 영구히 끊어버릴 정도로 그녀를 증오하는 듯 보였다.
시간이 흘러 양가에서 혼담이 오갈 때, 그는 자연스럽게 나에게 결혼을 제안했다.
결혼 후 그는 나에게 지극정성이었다. 사람들은 ‘냉혈한 권도훈이 낭만을 모른다는 건 최대의 거짓말’이라며 입을 모았다.
나 역시 우리가 선결혼 후연애를 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 모든 ‘사랑’은 가짜였다.
두 사람은 언제부터 다시 시작한 걸까. 유라가 이혼한 직후부터일까, 아니면 훨씬 전부터?
텅 빈 집으로 돌아왔다. 욕실의 샤워기 온도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온도로 맞춰져 있었다.
추위를 잘 타는 나를 위해 도훈은 늘 온도를 미리 조절해두고, 수건을 따뜻하게 데워두곤 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애처가처럼.
이제 보니 그 모든 행동은 치밀한 위장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촌 동생 태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분노가 서린 내용이었다.
[누나, 권도훈이 이유라한테 보낸 돈이 벌써 20억이 넘어.]
[둘이 매주 몰래 만나고 있었어. 누나 야근할 때마다 그 자식은 그 여자 옆에 있었다고.]
[이거 엄마한테 다 말할까? 우리 집안에서 가만 안 둘 거야.]
나는 차분하게 답했다. [충동적으로 굴지 마. 내가 알아서 해.]
도훈이 깊은 밤 귀가했을 때, 나는 이미 감정을 깨끗이 갈무리한 상태였다.
그는 내 몸에서 배어 나오는 한기를 느꼈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안으려 했다.
“왜 아직 안 잤어? 많이 기다렸지?”
유라의 이름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그저 덤덤하게 내뱉었다.
“응, 잠이 좀 안 와서.”
도훈은 나를 품에 끌어안고 정수리에 턱을 괸 채 미안한 듯 속삭였다.
“요즘 너무 바빠서 신경 못 써줬네. 주말에 선물 사줄게.”
여전히 완벽한, 나의 남편.
다음 날 아침, 그가 서둘러 옷을 갈아입을 때 내가 물었다.
“오늘 토요일인데 어디 가?”
“회사에 급한 회의가 생겨서. 꼭 가야 해.”
도훈은 빠르게 넥타이를 매고 차 키를 챙겼다.
나는 나지막이 말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잊었어?”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달력을 확인하고는 짐짓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 내 정신 좀 봐. 우리 결혼 3주년 기념일이었지.”
“근데 회의를 미룰 수가 없어서 그래. 저녁에 제대로 보상해줄게, 응?”
속으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보상? 다른 여자의 살냄새를 묻히고 돌아오는 게 보상이라고?
“다녀와. 나도 약속 있어.”
도훈은 안도하며 서둘러 집을 나섰다.
나는 그의 차가 단지를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본 뒤, 곧장 유라의 회사 근처로 향했다.
점심 무렵, 사람들로 붐비는 레스토랑.
나는 그들의 바로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도훈이 직접 껍질을 까서 유라의 앞접시에 새우를 놓아주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온몸에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그는 생선 비린내가 싫다며 지난 3년 동안 우리 집 식탁에 해산물 한 번 올리지 못하게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는 비린내 따위 상관없다는 듯 정성스럽게 새우를 까고 있었다.
시선이 도훈에게 박혔다.
그는 유라의 입가에 묻은 소스를 손가락으로 닦아주며 자연스럽게 미소 지었다.
유라는 애교 섞인 손짓으로 그의 손을 밀어냈다. “이러지 마, 보는 사람 있잖아.”
“보라고 해. 내 고양이 밥 먹이는데 누가 뭐라 그래.”
도훈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내 귀에는 천둥소리처럼 선명하게 박혔다.
고양이.
또 그놈의 고양이.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가는 곳마다 뒤를 쫓았다. 우리가 함께 갔던 장소, 즐겨 앉았던 자리까지 소름 끼치도록 똑같았다.
가슴 한구석이 아릿하게 아파왔다.
유라의 그 말 한마디 때문에 그는 그토록 노력해서 낭만적인 남자가 된 것이었다.
어쩌면 나에게 보여준 그 모든 다정함은 그저 유라에게 가기 위한 연습 과정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바보처럼 그 연습의 상대가 되어 놀아난 꼴이었다.
해 질 녘, 나는 퇴근하려는 유라를 길목에서 가로막았다.
그녀는 신상 원피스를 입고 화사하게 화장을 한 상태였다. 나를 발견한 그녀의 눈에 당혹감이 스쳤지만, 이내 자연스럽게 웃어 보였다.
“가윤아! 여기 웬일이야? 나 기다린 거야?”
나는 가식을 걷어내고 직설적으로 뱉었다.
“이유라, 권도훈 내 남편인 거 누구보다 잘 알잖아.”
12년의 우정이 추잡한 불륜 앞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유라의 미소가 옅어졌다. 그녀는 억울하다는 듯 연기했다.
“무슨 소리야? 너도 알다시피 권도훈이랑 나, 예전부터 얼마나 사이 안 좋았어.”
나는 조소하며 핸드폰을 꺼내 블랙박스 영상, 캡처본, 송금 내역을 그녀 앞에 던졌다.
“사이 안 좋은 사람한테 가방 선물 받고, 수억씩 입금받고, 호텔까지 같이 가? 사이가 안 좋아서 너를 ‘아기 고양이’라고 부르면서 케이지까지 준비해?”
유라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내가 이 모든 걸 알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터였다.
“나… 도훈 씨랑 진심이야.”
유라는 입술을 깨물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네 가정을 깨고 싶진 않았어. 도훈 씨가 먼저 다가온 거야. 너랑은 아무 감정 없다고…”
그녀의 어설픈 연기가 가증스러워 실소가 터졌다.
“진심?” 내가 서늘하게 대꾸했다. “네 손에 들린 그 가방, 나랑 권도훈 공동 계좌로 긁은 거야.”
“내 돈 쓰면서 내 남편이랑 잠까지 자놓고, 나한테 진심을 운운해?”
유라는 굳어버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 시선은 그녀의 목에 걸린 목걸이에 머물렀다. 작은 고양이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
“목걸이 예쁘네.”
내 목소리는 평온했다. “근데 그거, 우리 엄마가 내 생일 선물로 남겨주신 거야. 도훈이가 잃어버렸다고 했던 건데, 여기 있었네.”
4년 전, 어머니가 외국으로 떠나시기 전 나에게 잘 보관하라며 건네주신 유품이었다.
당시 도훈은 나를 안아주며 그녀가 남긴 모든 것을 지켜주겠노라 약속했었다.
그 ‘지킴’의 방식이 고작 다른 여자에게 넘겨주는 것이었다니.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목에서 목걸이를 가차 없이 낚아채 주머니에 넣었다.
“너…!” 유라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감히 나를 막아서지는 못했다.
내가 등을 돌려 가려 할 때, 유라가 나를 불러세웠다.
[가윤아, 나 임신했어. 도훈 씨 아이야.]
[나 원망하지 마. 도훈 씨가 처음부터 사랑한 건 나였어. 이혼하고 나서야 나도 알겠더라, 도훈 씨가 얼마나 괜찮은 남자인지.]
[뺏으려는 건 아냐. 넌 여기 서울에 있어, 난 해외로 나갈 테니까. 그저 아이한테 아빠가 누군지 알게만 해주고 싶을 뿐이야.]
계획 한 번 철저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비굴하게 남편을 공유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흐르는 눈물을 내버려 둔 채 걸었다.
12년의 우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집에 돌아와 증거들을 정리하고 나니 도훈이 들어왔다.
내가 들고 있는 서류를 본 그의 안색이 급변했다. 그리고 이내 불같이 화를 냈다.
“나를 뒷조사한 거야? 서가윤, 너 언제부터 이렇게 음험한 애였어?”
나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그를 쏘아보며 차갑게 말했다.
“음험? 내 뒤에서 바람피우고 내 친구랑 놀아난 당신에 비하면 이건 애들 장난 아냐?”
“아기 고양이니 뭐니 하면서 케이지까지 만들었다며? 상간녀 신세가 그렇게 부끄러워? 평생 숨어서 살 생각이었어?”
도훈의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이내 손을 휘둘렀다.
‘짝-!’
정적이 감도는 거실에 날카로운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내 고개가 돌아갔다.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목소리는 얼음장 같았다. “권도훈, 지금 나 때린 거야?”
그는 멍해진 표정으로 내 뺨을 만지려 손을 뻗었다.
“미안해, 고의가 아니었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네가 몰아붙여서 그랬어. 유라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됐지.”
웃음이 났다. 눈물이 나올 만큼 허탈한 웃음이었다.
나는 울먹임을 억누르며 한 자 한 자 내뱉었다. “유라한테 그렇게 마음이 있으면, 나랑 왜 결혼했어? 난 당신한테 뭐야? 장식품? 가림막? 아니면 비웃음거리?”
도훈은 험악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만해! 유라랑은 결백해. 억지 부리지 마!”
“결백?”
비웃음이 너무나도 명백했다.
결국 그는 기세가 꺾인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인정해. 처음엔 유라 자극하려고 너랑 결혼했어. 내가 얼마나 낭만적인지 증명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너한테 진심이 전혀 없었던 건 아냐. 그거면 충분하잖아?”
“유라한테 조금 더 신경 쓴 건, 그저 이혼하고 힘들다니까 마음이 쓰여서 그랬을 뿐이야. 우린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심장이 조여드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아무 사이도 아닌데, 그 아이는 어디서 솟아났단 말인가.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다시 물었다. “왜 하필 나였어?”
도훈은 한 걸음 다가와 내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네가 나 좋아하는 거 알고 있었으니까.”
잔인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었다.
울고 싶었지만 가슴이 너무 아파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몸이 덜덜 떨렸다.
그는 나의 오랜 짝사랑을 진작 간파하고 있었고, 그래서 거리낌 없이 나를 이용한 것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선결혼 후연애니 뭐니 하며 바보 같은 꿈을 꿨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두 사람이 나를 철저히 기만했다.
도훈은 나를 꽉 껴안으며 달래듯 말했다.
“가윤아, 유라를 멀리 보낼게. 너랑 부딪힐 일 없게 할 거야. 그게 너한테도 최선이잖아.”
나는 그를 밀쳐내며 차분하게 물었다.
“그러니까, 첩으로 살게 하겠다는 거야?”
도훈은 침묵했다.
이미 두 사람이 입을 맞춘 게 분명했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유라가 울면서 들어왔다. 그녀는 도훈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윤아, 나 때문에 싸우지 마. 사과하러 왔어.”
그녀는 내 앞에 서서 허리를 숙였다. 신들린 연기였다.
“가윤아, 미안해. 반년 전에 이혼하고 너무 힘들어서 술 마시다 도훈 씨를 만났어. 그냥 술김에 실수한 거야. 네 가정을 깨려는 마음은 없었어. 도훈 씨 용서해줘, 다 내 잘못이야.”
도훈은 즉시 그녀를 자신의 뒤로 숨기며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네 잘못 아냐. 내가 못나서 그래. 자책하지 마.”
눈앞의 광경에 속이 뒤집히고 구역질이 났다.
술김에 한 실수?
반년 동안 몰래 만난 게 단 한 순간도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그저 그 쾌락에 중독되었을 뿐이겠지.
도훈은 나를 거칠게 밀어내고 유라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넌 상관 마. 내가 데려다줄게.”
그는 끝까지 유라를 보호하며 떠났다. 문이 닫히는 그 순간까지 나를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식탁 위에 놓인 이혼 서류조차 보지 못한 채.
얼마 후, 태준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분노를 삭이지 못해 이를 갈았다.
[누나, 병원 인맥 동원해서 이유라 진료 기록이랑 임신 정보 다 캤거든? 근데 그 배 속의 아이, 권도훈 자식 아니야!]
내 손이 멈췄다. 태준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유라 이 여자, 이혼 전부터 딴 놈이랑 굴러먹었어. 본인도 누구 앤지 모를걸? 권도훈이랑 몰래 양수 검사했는데 불일치로 나왔대. 지금 당장 검사 결과지 보내줄게. 그 자식들 면상에 집어 던져버려.]
나는 눈을 감으며 나직이 말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나한테만 보내줘.”
진실은 추악했지만, 놀랍지도 않았다.
두 시간 후, 나는 친자 불일치 보고서를 받았다.
나는 그것을 이혼 서류의 마지막 페이지에 끼워 넣었다.
권도훈, 이건 내가 주는 마지막 결혼 선물이야.
나는 떠날 것이다. 하지만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일주일 뒤 출발하는 캐나다행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밑바닥을 보인 이후 도훈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 내가 먼저 백기를 들고 항복하기를 기다리고 있겠지.
조용히 떠날 날만 기다리려 했다.
하지만 출국 이틀 전, 재앙은 예고 없이 닥쳤다.
해외에 나가서 쓸 물건들을 사서 백화점을 나서던 길이었다. 검은색 승합차에서 내린 괴한들이 나를 강제로 차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의식이 혼미해지는 와중에도 익숙하고 당혹스러운 비명이 들렸다. 유라였다.
그녀 역시 납치된 모양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와 유라는 폐창고 기둥에 묶여 있었다. 거친 밧줄이 손목과 발목을 파고들어 비명이 나올 만큼 아팠다.
납치범들은 비열한 눈빛으로 우리를 훑었다.
유라가 자지러지게 울어대자, 그들은 도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고 문이 박살 나듯 열리며 도훈이 살기를 뿜으며 달려 들어왔다.
“풀어줘. 원하는 만큼 돈은 줄 테니까.” 도훈의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납치범은 비웃으며 단도를 만지작거렸다.
“권 사장님, 돈도 좋지만 재미도 좀 있어야지. 일단 이 계좌로 100억 먼저 쏴. 그럼 한 명은 살려주지. 자, 둘 중 하나 골라봐.”
둘 중 하나.
내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결국 이 지경까지 와서도 나는 유라와 이 비극적인 선택지에 놓여야 한단 말인가.
비서가 돈을 송금하자 납치범은 도훈을 압박했다. 도훈의 시선이 나와 유라 사이를 어지럽게 오갔다.
나를 볼 때 그의 눈에 잠시 미안함이 스쳤으나, 그건 찰나였다. 이내 유라를 향한 절박한 걱정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유라는 눈물 콧물이 범벅된 채 흐느꼈다.
“도훈 씨… 무서워… 우리 아기 잘못되면 안 돼…”
그 한마디가 마지막 낙타의 등을 꺾는 바늘이 되었다.
도훈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유라에게 달려가 소리쳤다.
“이 여자를 놔줘. 이 여자를 데려갈 거야.”
도훈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납치범에게 덧붙였다.
“내 아내는 해치지 마. 시간만 주면 500억 더 줄게.”
납치범들의 눈이 번뜩였다. 그들은 코웃음을 쳤다.
“1000억. 3시간 안에 안 들어오면 네 마누라는 죽는 거야.”
“알았어. 기다려, 가윤아. 금방 다시 데리러 올게. 무서워하지 마.”
그는 유라를 품에 안고 떠나버렸다. 나를 이 지옥 같은 어둠 속에 홀로 버려둔 채.
그의 마음속에서 나는 단 한 번도 유라를 이긴 적이 없었다.
창고 문이 서서히 닫히며 바깥 세상의 빛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시간은 잔인하게 흘렀다.
납치범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가 이내 초조해졌고, 바닥에 침을 뱉으며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저 새끼 우리 속였어!”
분노한 그들은 나에게 무차별적인 폭행을 가했다.
“내가… 내가 줄게요. 1000억 줄 테니 살려줘요.” 나는 가녀린 목소리로 애원했다.
하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오히려 더 거세게 발길질했다.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 속에 의식이 멀어져 갔다.
“권도훈은 안 돌아와. 살려둬 봤자 짐만 돼. 계획대로 처리해.”
그들은 내 몸에 무거운 쇳덩어리를 묶었다. 그리고 질질 끌고 가 깊은 바다로 향했다.
살을 에는 듯한 바닷물이 온몸을 마비시켰다.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차가운 해수가 나를 집어삼켰고, 나는 끝도 없이 가라앉았다.
권도훈, 당신이 죽도록 미워.
이틀만… 딱 이틀만 버텼으면 떠날 수 있었는데.
의식이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던 찰나, 갑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