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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속 남편의 무자비한 복수
강은설이 사람들을 데리고 세 번째로 내 침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을 때, 나는 아주 느긋하게 셔츠 깃을 정리하고 있었다. 강성그룹의 법무팀장 오승택...
Chương (1)
第1章
강은설이 사람들을 데리고 세 번째로 내 침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을 때, 나는 아주 느긋하게 셔츠 깃을 정리하고 있었다.
강성그룹의 법무팀장 오승택이 수술용 메스처럼 차가운 음성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
“한민준 씨, 이걸로 혼인 기간 중 세 번째 외도가 입증되었습니다.”
“혼전 계약서 내용은 잘 알고 계시겠죠. 귀하는 지금 즉시 빈손으로 이 집을 나가야 하며, 아이에 대한 양육권과 면접 교섭권 또한 영구히 박탈됩니다.”
그의 뒤에 서 있는 은설을 보았다. 한때 사랑을 속삭이던 그 눈동자에는 이제 독기 어린 증오만이 남이 있었다.
“첫 번째는 모르는 여자라고 했고, 두 번째는 기억이 안 난다고 했지.”
“삼세번이라더니, 이번엔 또 어떤 소설을 써낼 작정이야?”
그녀는 이혼 합의서를 침대 옆 탁자에 거칠게 내던졌다. 잉크 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도, 합의서에 적힌 가혹한 조항들도 쳐다보지 않았다. 손끝이 만년필에 닿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이 밀려왔다.
서명을 마친 그 순간, 은설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뒤돌아 방을 나설 때 복도 끝에서 그녀의 히스테릭한 비명이 들려왔지만, 그게 이제 나랑 무슨 상관일까.
결국, 이게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결말 아니었나?
…
오승택은 내가 서명한 합의서를 낚아채듯 가져갔다. 마치 내가 마음을 바꿀까 봐 겁이라도 나는 사람처럼 은설을 향해 돌아섰다.
“대표님, 서명 끝났습니다.”
은설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나를 노려봤다.
아마도 앞선 두 번의 상황처럼 내가 합의서를 찢어버리거나, 바닥에 머리를 짓찧으며 피를 흘리고 울면서 “아이를 봐서라도 한 번만 믿어달라”고 빌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나는 만년필 캡을 닫아 조용히 내려놓았다.
“짐은 최대한 빨리 빼도록 하지. 그리고 아이 면접 교섭권 말인데…….”
“당신은 아비가 될 자격도 없어.”
그녀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내 말을 잘랐다.
“앞으로 다신 내 아들 볼 생각 마.”
나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그저 픽 웃었다.
“그 말을 하려던 참이었어. 아이 면접 교섭권…… 나도 포기할게.”
은설의 눈에 어린 냉소는 변하지 않았지만, 아주 잠깐 내게로 시선이 머물렀다. 나의 갑작스러운 ‘깔끔한 태도’를 가늠하려는 눈치였다.
지난 4년, 그녀와 아들 이안이는 내 세계의 전부였다. 아이가 오승택을 ‘삼촌’이라고 부르며 따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던 나였다. 그런 내가 아이를 포기하겠다니, 그녀가 아는 한민준답지 않은 행동이었을 테니까.
“바람기에 눈이 멀더니.”
그녀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내 이상 행동에 대한 합리적인 결론을 내린 듯했다.
“밖의 그 천박한 년 때문에 제 핏줄까지 내버리겠다니, 정말 대단해.”
“그렇게 쉽게 버릴 애를, 대체 무슨 속셈으로 내 침대로 기어 들어와 억지로 갖게 만든 거야?”
그녀의 독설을 들으면서도 변명하고 싶은 욕구가 조금도 생기지 않았다.
처음 호텔에서 ‘불륜’ 현장을 들켰을 때,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결백을 호소하며 절규했다. 그녀는 내가 자신 없이는 못 산다는 걸 확신하고 있었고, 상대 여자가 이미 도망쳐 호텔 CCTV에 뒷모습만 남긴 덕에 일단은 나를 믿어주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아들을 내게서 떼어놓았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면접 교섭조차 일주일 전부터 오승택에게 예약해야 했고, 만나는 내내 그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아이를 한 번 더 안아보는 것조차 그의 눈치를 봐야 했으며, 장난감 하나를 사주려 해도 오승택의 재가를 받아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그 선물은 영원히 아이 손에 닿지 못했으니까.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나에게 두 번째 외도 사건이 터졌다.
그때 나는 소일거리 삼아 일을 시작했을 때였다. 출장을 갔던 날, 영문도 모른 채 호텔 방에 들어갔고 깨어보니 웬 낯선 여자가 내 옆에서 자고 있었다. 경찰을 불렀지만 검사 결과 침입의 흔적은 없었다고 했다. 은설은 내가 ‘범행’을 저지르기도 전에 들킨 것이라 단정 지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의 유치원 참관 수업조차 갈 자격을 잃었다. 은설은 학교에 일이 생길 때마다 오승택을 보냈고, 나에겐 집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말라고 했다. “망신시키지 말고.”
아들이 내 코앞에서 손가락질하며 “나쁜 사람”이라고 욕할 때도, 그녀는 곁에서 묵인했다.
그리고 세 번째…….
나는 이제 이 지긋지긋한 게임이 질려버렸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왜 친자식까지 포기하느냐고 묻다니.
오승택이 은설의 곁으로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며 귀띔했다.
“대표님, 합의서대로 양육권을 포기하긴 했지만…… 저도 이 바닥에 오래 있었지만 자기 자식을 이렇게 흔쾌히 버리는 아비는 처음 봅니다.”
“한민준 씨는 여러 번 외도를 저지른 사람이니 아마 벌써 다음 수를 생각했겠죠. 아이가 있으면 새 출발에 걸림돌이 될 테니까요. 그러니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말을 마친 그가 나를 슬쩍 쳐다봤다. 눈 속에 비열한 승리감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헛웃음을 삼켰다.
그는 잊은 모양이다.
4년 전, 외도 횟수까지 정밀하게 규정된 그 황당한 혼전 계약서를 초안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은설의 얼굴이 한층 더 차갑게 굳었다.
“그 말 꼭 지켜. 나중에 무릎 꿇고 빌어도 소용없으니까.”
그 말을 던지고 그녀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갔다.
나는 멀어지는 그녀의 등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럴 일은 없을 거야, 강은설.
당시 너를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를 설득하려 전국의 절을 돌며 빌었을 때, 점괘는 늘 최악이었다. 그러다 8,000리 밖 먼 곳까지 찾아가 하룻밤을 꼬박 새워 절하며 겨우 얻어낸 답이 ‘천생연분이나 출신을 묻지 마라’였다.
그 지독한 연분이 결국 악연이 될 줄이야.
이번에는 내 무릎이 꺾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오승택이 나를 보며 입꼬리를 비릿하게 올렸다.
“민준 씨, 즐거운 밤 보내야 하는데 저희가 방해했네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문이 닫히고 방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나는 침대 위에서 여전히 잠들어 있는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위장이 뒤집히는 구역질이 올라왔다.
나는 그녀보다 먼저 깼고, 사실 그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고양이와 쥐 같은 게임을 끝내고 싶어 여기서 기다렸다.
나는 코트를 걸치고 미련 없이 방을 나섰다.
다음 날 저녁, 짐을 챙기러 본가로 돌아갔다.
안방 문을 열자 내가 평소 입던 옷이며 물건들이 죄다 사라지고 없었다.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는 내 눈을 피하며 우물거렸다.
“민준 씨…… 물건들은 다 지하 창고로 옮겨졌어요. 오 팀장님이…… 이제 안방에 곧 새로운 주인이 올 테니 빨리 비워야 한다고 해서요.”
나는 쓰게 웃었다.
결혼 4년, 나에게는 제대로 된 이별의 예우조차 허락되지 않는구나.
발길을 돌려 뒤뜰에 있는 창고로 향했다.
문을 열자 박스들이 겹겹이 쌓여 있고 비닐봉지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나는 주저앉아 물건들을 하나하나 뒤졌다. 다른 건 상관없다. 어머니의 옥팔찌만은 찾아야 했다. 외할머니가 어머니에게, 다시 어머니가 나에게 주신…… 이 집에서 유일하게 오롯이 내 것인 물건.
마침내 박스 밑바닥에서 그것을 찾아냈다.
손바닥에 꽉 쥐자 길고 깊은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옷 몇 가지를 챙겨 떠나려는데, 문가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고개를 돌리니 어린 한이안이 문을 막아선 채 서 있었다. 은설을 쏙 빼닮은 외모에, 오승택과 똑같은 거만한 자세로.
“내 물건 챙기는 중이야.”
나는 다시 고개를 숙여 짐을 정리했다. 평소라면 아이가 싫어해도 다가가 안아주고 뽀뽀를 퍼부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말도 안 되게 차분했다.
“그거 아빠 거 아니야.”
내가 대꾸하지 않자 이안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러고는 바닥에 흩어진 내 옷가지들을 짓밟았다.
“승택 삼촌이 그랬어. 이 집에 있는 건 다 엄마 거라고. 아빠는 아무것도 가져가면 안 된대.”
내 손이 멈췄다. “이건 내 물건이야.”
“아빠가 쓴 돈도 다 엄마 돈이잖아.” 아이는 뒷짐을 지고 말했다. “엄마 돈은 강성그룹 거고, 강성그룹 물건은 외부인이랑 상관없는 거야.”
외부인?
나는 고개를 들어 아이를 보았다.
네 살짜리 아이가 내 앞에서 도둑을 보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에 서린 냉담함은 은설보다 더했다.
“딱 하나만 가져갈게.” 나는 팔찌를 움켜쥐고 일어났다. “나머진 필요 없어.”
“안 돼.” 아이는 성큼 다가와 양팔을 벌리고 문을 막았다. “강성그룹 물건 훔치면 안 된다고 했어.”
“이안아, 비켜.”
“싫어!” 아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빠는 거지잖아! 물건 훔치는 거지! 삼촌이 그랬어, 아빠는 나가면 다시는 들어오면 안 된다고. 들어오면 도둑질하는 거래!”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마지막으로 말한다. 비켜.”
“싫어! 그거 놓고 가!”
아이가 달려들어 내 손에 든 붉은 천 주머니를 낚아채려 했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뒤로 뺐고, 순간 주머니가 뜯겨 나갔다.
옥팔찌가 바닥으로 미끄러져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여러 조각으로 박살 났다.
멍하니 서서 어머니가 내 손에 팔찌를 끼워주며 하던 말이 떠올랐다.
‘민준아, 이건 우리 집안에서 6대째 내려온 거야. 나중에 네 딸한테 주고, 딸이 없으면 며느리한테 주렴…….’
나에겐 딸도 없고, 며느리도 없다.
오직 이 팔찌뿐이었다.
수 세대를 이어온 역사가 내 대에서, 내 친아들의 손에 부서져 버렸다.
이안은 옆에 서 있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빠가 안 놔서 그런 거잖아…….”
나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아이를 보았다. “외할머니 유품이라고 말했잖아.”
“너, 네 할머니가 누구 때문에 요양원에 누워 있는지 알아?”
아이는 당황한 듯 뒷걸음질 쳤다.
“난 할머니 같은 거 몰라. 그냥 돈 먹는 할망구라는 것만 알지…….”
피가 머리끝까지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승택 삼촌이 그랬어. 그런 좋은 병실에 있으면서 엄마 돈만 엄청 쓰고 고치지도 못한다고. 그냥 돈 태우는 노인네라고—”
“다시 말해봐.”
내 목소리가 변했다. 스스로도 낯선 음성이었다.
이안은 내 기세에 눌린 듯 주춤하다가 입술을 깨물고 오기를 부렸다.
“돈 먹는 할망구 맞잖아, 왜— 악!”
나는 아이를 밀쳤다.
아이는 발이 엉키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잠시 멍해 있더니 이내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엄마아!”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손바닥이 저릿했다. 바닥에 주저앉아 발을 구르며 우는 아들을 보는데, ‘돈 먹는 할망구’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 ‘돈 먹는 할망구’는 내 어머니고, 아이의 외할머니였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수술 마친 몸을 이끌고 한 땀 한 땀 배냇저고리를 지어주던 사람. 매년 아이의 생일마다 요양원에서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이안아 생일 축하해’라고 전화를 걸어주던 사람.
그런데 이 아이는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박살 난 옥 조각의 날카로운 단면이 손바닥을 찔렀다. 통증이 밀려오자 오히려 정신이 맑아졌다.
은설이 달려 들어와 바닥에 누워 우는 아들을 안아 올렸다.
“이안아, 무슨 일이야?”
이안은 그녀의 품에 안겨 숨이 넘어갈 듯 울었다. “엄마, 아빠가 나 밀었어. 빨리 쫓아내 줘. 나 승택 삼촌 부를래…….”
은설은 아이를 달래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눈에는 차가운 불쾌감만이 가득했다.
“한민준, 너 미쳤어? 애를 때려?”
“때린 적 없어.” 내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그냥 밀었을 뿐이야.”
“그게 그거지, 무슨 차이가 있어?”
나는 손바닥 위의 깨진 옥을 내려다보았다.
“있어.” 내가 말했다. “때리는 건 아빠로서 교육하는 거지만, 민 건 이 자식이 자초한 거니까.”
은설은 당황한 듯 품 안의 아들을 내려다봤다. 이안은 엄마 품으로 파고들며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난 사실대로 말한 것뿐인데…… 삼촌이 그 할망구가 엄마 돈 다 태운다고 했단 말이야…….”
은설은 관자놀이를 짚었다.
“애가 하는 소리에 뭘 그렇게 정색해?” 그녀가 나를 훑어봤다. “승택 씨가 요즘 가계 재무 관리를 도와주다 보니 재무적인 관점에서 팩트를 말한 거야. 그걸 애가 들은 것뿐이고.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마.”
“그 사람이 이 집을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당신도 알잖아.”
그녀는 내 손에 들린 조각난 팔찌를 힐끗 보더니, 조금 누그러진 말투로 덧붙였다.
“오늘 일부러 애 데리고 온 거야. 둘이 대화 좀 해보라고. 근데 이혼 얘기는…… 당분간 애한테 비밀로 해. 정서에 안 좋으니까.”
대화? 무슨 대화를 한단 말인가.
결혼 4년 동안 그녀와 아들이 나에게 건네는 말은 오승택과 나누는 대화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분명 대학 시절, 나를 먼저 쫓아다니고 내 마음을 흔들어놓은 건 그녀였다. 보잘것없는 내 처지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믿고 싶어 절을 돌며 기도하게 만든 것도 그녀였다.
예상치 못한 임신이 아니었더라도, 나는 이미 용기를 내어 그녀와 함께하려 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차라리 그때 아무 말도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가 요양원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나는 가방을 챙겨 창고를 나왔다. 거실에는 오승택이 이안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다정하게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나는 무표정하게 그들 곁을 지나쳤다. 등 뒤에서 이안이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저 나쁜 사람이 왜 나 무시해!”
아이는 발을 구르며 짜증을 냈다. 늘 자신이 고집을 피우면 내가 눈물을 글썽이며 다가가 “아빠가 미안해, 화풀어”라고 달래주던 것에 익숙해진 탓이다. 내가 눈길 한 번 주지 않자, 그는 자신이 괴롭힘을 당했다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은설은 아무 말 없었지만, 시선 끝의 서늘함이 내 등에 와 박혔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문을 열려는 찰나, 그녀가 폭발하듯 소리쳤다.
“서!”
나는 멈춰 섰다.
“이리 와서 이안이한테 사과해.” 그녀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방금 애 밀어서 겁준 거 사과하라고.”
나는 잠시 멈칫했다. 이것이 마지막 만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는 다투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가가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미안하다.” 마지막으로 아이의 눈을 진지하게 응시했다. “아빠가 널 미는 게 아니었는데.”
이안은 코를 훌쩍이더니 갑자기 내 얼굴에 침을 뱉었다.
끈적한 액체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이는 혀 짧은 소리로 말했다. “더러운 아저씨, 꼴좋다.”
은설은 그 광경을 차갑게 지켜보기만 하더니 한마디 보탰다.
“밖에서 온갖 여자들하고 뒹굴고 다니니 애 눈에도 당신이 얼마나 추해 보이겠어.”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 얼굴의 침을 닦아냈다. 그리고 웃었다.
“내가 여자들하고 뒹굴어?”
그 어설픈 불륜 현장과 함정들을 그녀가 정말 모를까?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싶은 걸까.
그녀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결혼 4년 동안 당신이 저 사람이랑 붙어먹은 세월도 4년이야.”
“내 자식까지 저 사람 집에 보내서 키우게 하고. 강은설, 대체 누가 딴 마음을 품은 건데?”
“이제 이혼할 사이인데, 우리 서로 속이지는 말자.”
오승택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눈시울이 금세 붉어지며 울먹였다.
“민준 씨, 어떻게 저를 그렇게 모욕할 수 있습니까? 대표님, 저는……”
“한민준, 4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그 질투 못 버려?” 은설의 눈에 불길이 일었다.
“좋아, 우리가 그렇게 안 깨끗해 보인다면—” 그녀가 내게로 한 걸음 다가왔다. “진짜 지저분한 게 뭔지 똑똑히 보여줄게.”
그녀는 도우미에게 이안이를 데려가게 한 뒤, 내 손목을 거칠게 잡아끌어 침실로 던져 넣었다. 문이 닫히자마자 그녀는 넥타이로 내 손목을 묶어 바닥에 고정했다.
그러더니 오승택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 그의 귓가에 입술을 갖다 댔다.
“원해?”
오승택은 당황한 듯했으나 이내 그녀의 목을 감싸 안으며 응답했다.
“대표님, 이날만을 기다렸습니다…….”
두 사람은 금세 뒤엉켰고, 옷가지들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신음하듯 내뱉었다.
“강은설, 이혼할 사이인데 언제든 둘이 알아서 하면 되잖아. 굳이 이렇게까지 날 모욕해야 해?”
그녀가 움직임을 멈추고 내 턱을 움켜쥐었다.
“모욕? 한민준, 네가 아직도 내 앞에서 모욕당할 가치라도 있다고 생각해?”
“대표님, 딴 데 신경 쓰지 마세요…….”
오승택이 뒤에서 그녀를 껴안으며 귓가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녀는 나를 뿌리치고 다시 그 달콤한 쾌락 속으로 침잠했다.
나는 눈을 감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때, 바닥에 떨어진 내 휴대폰이 진동했다.
어머니의 번호였다.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휴대폰에 손을 뻗어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들려오는 건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한민준 씨! 지금 당장 오셔야 해요. 어머니께서 이혼 소식을 들으시고 당신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 옥상으로 올라가셨어요—”
“뭐라고요?”
“어머니께서…… 뚜- 뚜- 뚜-.”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잡음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머릿속이 하얗게 폭발했다.
“강은설!” 나는 절규하듯 외쳤다.
“우리 엄마한테 일이 생겼어! 제발 가게 해줘, 제발!”
그녀는 비웃음이 서린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한민준, 우리 사이가 의심스럽다며? 내가 직접 보여주고 있는데 이제 와서 말도 안 되는 핑계로 도망치려고?”
“핑계 아냐! 병원에서 전화 왔어! 엄마가 이혼 소식 듣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하신대—”
“그만해.”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이혼 합의서에 이제 막 사인했는데 어머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뻔히 충격받으실 거 알면서 본인이 말해놓고 누굴 탓해?”
그녀가 다시 오승택에게 다가가려 했다. 나는 묶인 손을 휘저으며 소리쳤다.
“강은설! 난 말한 적 없어! 제발 가게 해줘, 아직 안 늦었을지도 몰라!”
“우리 엄마, 당신이랑 이안이 구하려다 차에 치였던 사람이야. 제발 그 목숨 가지고 장난치지 마…….”
“한민준!!!” 그녀의 눈에는 이제 혐오만이 가득했다. “당신한테 어머니는 인질이야? 바람피울 때는 애가 어리다고 동정 유발하더니, 이제는 어머니 목숨값을 내밀어?”
“아냐—” 눈물이 쏟아졌다. “이번엔 진짜야, 제발 부탁이야…….”
오승택이 은설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대표님, 누구나 알죠. 그때 어머님은 외손주 보러 가시다 사고 난 거지, 대표님 혼자였다면 그렇게 뛰어드셨겠어요? 대표님은 이미 할 만큼 하셨습니다.”
“자, 기분 잡치지 마시고 계속해요…….”
그녀의 눈에서 마지막 남은 망설임이 사라졌다.
나는 이제 그녀의 양심에 기대지 않기로 했다. 필사적으로 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문짝에 머리를 부딪쳐 피가 터졌다.
그녀가 성큼성큼 다가와 나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한민준!”
“네가 자초한 일이야. 오늘 이 연극, 끝까지 네 눈으로 똑똑히 봐.”
그녀는 테이프를 가져와 내 입을 막아버렸다. 그리고 나를 들어 올려 옷장 속에 처넣었다.
“똑똑히 들어. 나랑 저 사람이 얼마나 부적절한지!”
옷장 문이 닫히고 잠겼다.
마지막 빛 한 줄기마저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나는 밖에서 이어지는 그들의 행위를 들어야만 했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다음 날, 접대를 마치고 돌아온 강은설은 거실에 멍하니 서 있었다.
관자놀이를 누르며 습관처럼 한마디를 내뱉었다.
“민준아, 머리 아파. 해장국 좀 끓여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미간을 찌푸린 그녀가 도우미에게 물었다.
“아저씨는?”
도우미는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대표님, 저야말로 여쭤보려 했어요. 민준 씨 어디 계신지.”
“아침에 이안이가 열이 나서 계속 아빠만 찾았거든요. 39도까지 올랐어요. 그리고…… 병원에서 연락 왔는데, 어젯밤에 민준 씨 어머니가 투신하셨대요. 시신이 병원에 있는데 아무도 인계하러 안 온다고…….”
은설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 아저씨 안 내보내 줬어?”
도우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내보내다니요? 어디서요?”
그녀는 신발도 제대로 벗지 못한 채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발소리가 다급해졌다.
옷장 문을 거칠게 열어젖힌 순간, 그녀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