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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품은 남의 자식
스마트폰 화면이 미친 듯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대학 동기 단톡방의 알림음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터진 건가 싶어 화면을 올...
Chương (1)
第1章
스마트폰 화면이 미친 듯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대학 동기 단톡방의 알림음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터진 건가 싶어 화면을 올리자마자, 과대표가 나를 태그하며 올린 사진 한 장이 튀어나왔다.
사진을 확인한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사진 속 남자는 내가 7년 동안 사랑했던 연인, 임진우였다.
그는 돌이 조금 넘었을 법한 사내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내 앞에서는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로.
단톡방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축하 메시지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진우야, 애가 벌써 이렇게 컸어? 와, 진짜 감쪽같이 속였네!]
[축하한다! 국수는 언제 먹여줄 거야?]
나는 떨리는 손으로 심장을 짓누르며 억지 미소 이모티콘을 보냈다.
[과대님, 농담이 너무 심하시네요. 저희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애가 어디서 나와요.]
하지만 과대표의 답장은 광속이었다.
[에이, 왜 이래? 내가 그 애가 진우한테 ‘아빠’라고 부르는 걸 내 귀로 똑똑히 들었는데!]
사진 속의 익숙하고도 낯선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지난 반년 동안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는 늘 야근이라며, 출장이라며 집을 비웠다. 돌아올 때면 늘 녹초가 되어 쓰러져 잠들곤 했다.
나는 그런 그가 안쓰러워 매일 밤 정성껏 보양식을 끓이며 자정 너머까지 그를 기다렸다. 바보같이.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그는 피곤했던 게 아니었다. 다른 곳에 가서 아빠 노릇 하느라 바빴던 거다.
1
그 사진이 단톡방을 뒤집어놓은 뒤,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휴대폰은 끊임없이 명멸했고 수백 개의 메시지가 쌓였지만, 나는 답장할 수도, 그럴 힘도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가장 친한 친구인 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채 두 번 울리기도 전에 지수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나도 봤어! 서연희, 너 가만히 있어. 내가 그 여자 누군지 당장 알아낼 테니까!”
IT 기업에서 운영팀장으로 일하는 지수는 마당발이었다. 사람 하나 찾아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멍하니 거실에 앉아 있었다.
이 집에서 산 지 3년. 가구 하나, 소품 하나까지 진우와 내가 머리를 맞대고 고른 것들이었다.
냉장고에는 아직도 ‘내 집 마련 D-365’라고 적힌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이제 와 보니, 그 카운트다운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진우와 나는 대학교 2학년 때 시작했다.
졸업 후 우리는 서울에 남기로 했고, 이 도시에서 함께 뿌리를 내리기로 약속했다.
처음 2년은 정말 지독하게 가난했다.
반지하 원룸에 살며 여름에는 곰팡이와 싸우고 겨울에는 외풍에 떨었다.
한번은 내가 고열로 쓰러졌는데, 진우는 한밤중에 나를 등에 업고 응급실까지 뛰었다. 접수비조차 빌려서 내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때 그가 숨을 헐떡이며 나에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연희야, 조금만 참아. 나중에 내가 돈 많이 벌어서, 너 평생 고생 안 시키고 호강시켜 줄게.”
그의 등에 업혀 정신이 몽롱한 와중에도 마음만큼은 화로처럼 뜨거웠다.
그 후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자 우리는 공동명의 통장을 만들고 매달 꼬박꼬박 돈을 저축했다.
그는 그 돈이 우리의 ‘결혼 자금’이라고 했다. 아파트 계약금만 모이면 바로 결혼하자고.
나는 그 약속을 7년 동안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반년, 모든 게 변했다.
야근이 잦아졌고 주말마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물어보면 항상 프로젝트가 바쁘다는 핑계뿐이었다.
나는 그저 그를 믿고 보필했다. 집을 보러 다니자는 말에도 그는 늘 “조금만 더 있다가”, “나중에 더 좋은 데 나오면”이라며 미루기만 했다.
그렇게 끌어온 게 벌써 6개월이었다.
나는 휴대폰 속 사진을 확대하고 또 확대했다.
아이를 안은 그의 눈빛에는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그때 지수에게서 장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알아냈어. 이름은 주나영. 스물여섯이고 작은 회사 경리래.]
[둘이 만난 지 최소 2년은 됐어. 둘이 쇼핑몰 다니는 거 봤다는 사람들도 수두룩해.]
[그리고...]
지수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공동 통장의 이체 내역 캡처본을 보냈다.
[임진우가 너희 공동 통장에서 거의 2억 가까이 빼갔어. 여러 번에 나눠서 1, 2천만 원씩. 그 여자 이번에 아파트 계약했더라. 명의는 여자 단독이고, 그 계약금... 네 돈이야.]
휴대폰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2억.
나와 진우가 먹고 싶은 것 참아가며, 한 푼 두 푼 모은 소중한 돈이었다. 나중에 내 남편이 될 사람이 약속한 우리의 미래였다.
그런데 그 돈이 다른 여자의 집이 되고, 다른 아이의 분유값이 되었다니.
지수가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연희야, 어떻게 할 거야?]
7년의 사랑, 내 진심이 통째로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그때, 현관문 너머로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야근’을 마친 임진우가 돌아온 것이다.
2
신발을 벗고 들어오던 그가 거실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멈칫했다.
“왜 불도 안 켜고 있어?”
나는 대답 대신 티 테이블 위에 켜진 휴대폰을 가리켰다.
그가 다가와 사진들과 대화 내용, 이체 내역을 확인했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연희야, 이건 그러니까... 내 설명 좀 들어봐.”
“설명? 야근하다 보니 아들이 생겼다는 설명?” 내가 그의 말을 잘랐다. “아니면 우리 결혼 자금이 다른 여자 아파트 계약금이 됐다는 설명?”
그의 눈빛이 당혹감에서 서서히 짜증으로 변했다. 내가 아주 잘 아는 표정이었다. 정곡을 찔리면 늘 저런 표정을 지었으니까.
“너 나 뒷조사했어? 서연희, 네가 무슨 권리로 내 사생활을 침해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임진우, 내 돈 훔쳐서 딴 살림 차린 놈이 사생활을 논해? 뻔뻔함도 정도가 있어야지.”
“훔치다니 말이 심하네!” 그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공동 통장인데 내 지분도 있잖아. 내 돈 내가 쓰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눈앞의 남자가 생전 처음 보는 괴물처럼 느껴졌다.
“거기엔 내가 밤샘 야근해가며 몸 축내고, 입을 거 안 입고 모은 돈이 들어있어! 그 돈을 가지고 딴 여자 집을 해줘?”
그는 입을 뻐금거리더니 갑자기 태도를 싹 바꾸었다. 내 앞에 무릎을 털썩 꿇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연희야, 내가 잘못했어. 그 여자한테 감정 같은 거 없어. 그냥... 애가 너무 불쌍해서 그랬어.”
술에 취해 딱 한 번 실수한 게 아이가 생겨버렸다고 했다.
주나영이 일부러 낙태를 안 하고 아이로 자기를 옭아맸다고 변명했다.
“연희야, 난 너밖에 없어.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줘, 응?”
고개를 숙이고 우는 그의 모습을 보니 역겨움만 치밀었다. 예전 같으면 저 눈물에 마음이 약해졌겠지만, 지금은 그저 구역질이 났다.
“그 2억은?”
그는 멍청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집을 이미 사버려서 돌려받기 힘들 거야... 내가 평생 갚을게. 약속해...”
“임진우, 나가.”
나는 현관을 가리켰다.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그는 뭔가 더 말하려다 결국 입을 다물고 코트를 챙겨 나갔다.
문이 닫히는 순간, 온몸에 힘이 빠지며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다음 날 은행에 갔다. 공동 통장 비밀번호를 세 번 눌렀지만 모두 틀렸다고 나왔다.
그놈이 비밀번호를 바꾼 것이다.
지수는 당장 경찰에 신고하자며 펄펄 뛰었다. “이거 명백한 재산 은닉이야! 고소해!”
나는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마음이 약해져서가 아니었다. 모든 증거를 완벽하게 정돈해서, 단 한 번에 끝내버려야 했으니까.
일주일이 지났다. 임진우는 마치 증발한 사람처럼 연락이 두절되었다.
나는 냉장고에 붙은 포스트잇을 떼어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끝났어. 우리의 7년은 여기서 끝이야.
다행이다, 아직 결혼 전이라서.
3
임진우가 사라진 지 8일째 되는 날, 주나영이 나를 찾아왔다.
오후 5시, 퇴근 시간이 다가올 무렵이었다.
안내 데스크에서 전화가 왔다. “서 대리님, 정문에 어떤 여자분이 아이를 안고 와서 급한 일이라고 찾으시는데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차가운 공기를 뚫고 회사 정문으로 나갔다.
계단 아래에 서 있는 여자는 사진보다 수척해 보였다. 눈시울이 붉어진 게 방금 전까지 울었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아이를 고쳐 안고 다가왔다.
“서연희 씨 맞죠?”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쏘아보았다.
그때였다. 그녀가 돌연 무릎을 꿇었다.
내 앞에서, 퇴근하는 수많은 동료들 앞에서, ‘석’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바닥에 무릎을 박았다.
“서연희 씨, 제발 부탁이에요. 우리 좀 살려주세요!”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길이 멈췄다.
회사 로비는 순식간에 구경거리로 변했고, 수십 개의 눈동자가 우리를 향했다.
“부탁드려요.” 그녀는 아이를 품에 꼭 안은 채 눈물을 쏟아냈다.
“진우 씨가 일주일 넘게 집에 안 들어와요.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무시해요.
당신이 자기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했다면서요... 제가 잘못한 거 알아요.
하지만 애가 아직 너무 어려요. 아빠 없이 어떻게 키워요!”
품에 안긴 아이가 겁을 먹었는지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주나영은 아이를 달래며 콧물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애원했다.
“용서해달라는 말 안 할게요. 그냥 우리 모녀가 숨 쉴 구멍만이라도 열어주세요.
그 사람 직장까지 잃으면 우린 정말 길바닥에 나앉아야 해요...”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본처랑 내연녀인가 봐...”
“아이까지 안고 저러는 거 보니 좀 불쌍하네...”
나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영악했다. 일부러 퇴근 시간에 맞춰 와서, 사람들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여론을 흔들어 자신을 아이를 안은 ‘약자’로 포장하려는 속셈이었다.
“일단 일어나세요.” 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약속해주시기 전까지는 절대 안 일어나요!” 그녀가 더 크게 울부짖었다.
“서연희 씨, 제가 이렇게 빌게요. 제발요!”
그녀는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절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얼굴은 울음 끝에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주나영 씨,” 나는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여기서 이러셔도 소용없어요. 당신이 찾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임진우예요.”
“하지만 그 사람은 당신 말이라면 다 듣잖아요!” 그녀가 젖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당신이 고소 취하하고 봐주겠다고만 하면 돌아올 거예요. 제발요, 애한테 아빠를 뺏지 말아 주세요...”
“그건 당신 아이죠, 내 아이가 아니라.”
내 입에서 나간 말이었지만 서늘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게 진실이었다.
옆에 있던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한 분이 참다못해 주나영을 부축했다.
“새댁, 일단 일어나요. 바닥 차가운데 애 감기 걸리겠어.”
주나영은 막무가내였다. 숨이 넘어갈 듯 울며 버텼다.
구경꾼은 점점 불어났고, 몇몇은 휴대폰을 꺼내 촬영하기 시작했다.
입구 쪽에 서 있는 우리 부장님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골치 아픈 일 만들지 마’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여기서 더 소란이 피워지면 내일부터 회사에 어떤 소문이 돌지 뻔했다.
그때, 택시 한 대가 끼익 소리를 내며 길가에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리기 무섭게 임진우가 튀어 나왔다.
4
그는 주나영을 잡아 일으켜 세우더니 제 등 뒤로 숨겼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마치 원수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서연희,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주변 사람들이 움찔하며 물러났다.
“이 사람 아직 몸조리도 덜 끝난 산모야. 애는 이제 돌 지났어. 이런 사람을 길바닥에 무릎 꿇리다니, 너 진짜 양심도 없니?”
그가 여자를 보호하려 애쓰는 꼴을 보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내가 꿇렸다고?” 내 목소리가 분노로 떨렸다. “제 발로 와서 쇼하는 거야. 임진우, 너 눈 삐었니?”
“네가 안 받아주니까 오죽 답답해서 왔겠어!” 그가 핏대를 세우며 고함을 질렀다.
“그놈의 2억? 줄게! 내가 노가다를 해서라도 갚아준다고! 그러니까 제발 이 사람이랑 애 좀 가만 놔둬!”
“회사까지 찾아와서 난동 부린 건 저 여잔데, 내가 가해자라고?”
진우는 마치 보물이라도 지키는 기사처럼 주나영 앞을 가로막고 섰다.
“나영이가 오죽 무서웠으면 여기까지 왔겠냐고! 연희야, 아무리 그래도 이 사람은 내 자식 엄마야! 애가 이렇게 어린데 동정심도 없어?”
‘내 자식 엄마’라는 말이 내 가슴을 날카롭게 할퀴었다.
결국 그와 그녀는 한 가족이었고,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주나영은 그의 등 뒤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가련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아이는 계속해서 울어댔고, 주변의 수군거림은 비난의 화살이 되어 나를 향했다.
“본처가 너무 지독하네...”
“애가 있는데 좀 적당히 하지...”
그 말들을 들으며, 그리고 나를 적으로 규정한 임진우의 당당한 태도를 보며, 지난 7년이 한 편의 코미디처럼 느껴졌다.
7년.
반지하에서 같이 라면을 끓여 먹던 시간, 그의 어머니가 편찮으실 때 내 적금을 깨서 병원비를 보태던 순간, 그가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때 보름 넘게 병실을 지키며 간호하던 내 헌신...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도 모르게 가벼운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임진우, 내가 말 안 한 게 하나 있는데. 너, 절대로 네 자식 가질 수 없는 거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