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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버린 최악의 사원은 에이스였다
오늘 전까지만 해도 가방 깊숙이 찔러 넣어둔 사직서를 정말 제출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대 위에서 내 이름이 불렸다. ‘최악의 ...
Chương (1)
第1章
오늘 전까지만 해도 가방 깊숙이 찔러 넣어둔 사직서를 정말 제출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대 위에서 내 이름이 불렸다. ‘최악의 사원’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객석에서는 즉각 비웃음 섞인 폭소가 터져 나왔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상대까지 가는 거리는 분명 짧았지만, 양다리는 마치 납덩이를 매단 듯 무거웠다.
싸구려 플라스틱 트로피를 건네받는 순간, 마감이 덜 된 받침대 모서리가 손가락을 따끔하게 찔렀다.
내려다보니 받침대에는 잉크도 채 마르지 않은 종이가 삐뚤빼뚤하게 붙어 있었다. 거기엔 ‘올해의 최악 사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장 부장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분위기를 띄우려고 장난 좀 친 거니 너무 마음에 두지 말라며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한번 귀를 찌르는 웃음소리가 쏟아졌다.
나는 묵묵히 자리로 돌아와 그 우스꽝스러운 트로피를 가방에 처박았다.
손끝에 미리 접어둔 사직서의 감촉이 닿았다. 이제 더 이상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1.
송년회가 끝나고 다들 2차로 노래방에 갔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나는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층 전체가 캄캄했다. 비상구의 초록색 유도등만이 외롭게 빛나고 있었다.
어둠 속을 더듬어 내 자리로 가 컴퓨터를 켰다.
책상 밑에서 낡은 털실내화를 꺼내 갈아 신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만 구천 구백 원을 주고 사서 3년 가까이 신은 물건이었다.
오른쪽 밑창은 거의 다 닳아버려 바닥의 냉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모니터가 밝아졌다.
읽지 않은 메시지 47건.
가장 오래된 건 오후 2시에 온 것이었다. 거래처 담당자가 보낸 메시지였다.
[시스템 또 오류 났어요. 급합니다!!!]
느낌표가 세 개나 붙어 있었다.
관리자 페이지를 열어보니 늘 보던 문제였다. 파라미터 값이 튀어버린 것.
코드 두 줄을 수정하고 서비스를 재시작했다. 그리고 답장을 보냈다.
[처리되었습니다. 다시 확인해 보세요.]
상대방은 기다렸다는 듯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됐네요, 됐어! 역시 주호 씨가 제일 빨라요. 고마워요!]
답장하지 않았다.
계속 스크롤을 내렸다.
두 번째 메시지는 다른 업체에서 요구한 분기 보고서, 월요일까지 제출해야 한다.
세 번째는 장 부장이 ‘시간 날 때 정리하라’던 시스템 업그레이드 기획안.
네 번째는 협력업체에서 보내온 검수 요청 서류.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화면을 멍하니 응시했다.
47건.
오늘 송년회가 오후 2시에 시작됐으니 지금까지 꼬박 여섯 시간이다.
그 여섯 시간 동안 이 일들을 처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걸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무대 위에서 ‘최악의 사원상’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우스워서가 아니라 황당해서였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부서 단톡방에 송년회 사진이 올라왔다. ‘올해의 우수 사원’ 트로피를 든 민재가 찬란하게 웃고 있었다.
그 옆에서 장 부장은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었다.
나는 단톡방을 나갔다.
서랍을 열어 사직서를 꺼내 반듯하게 폈다.
텅 빈 사무실을 한 번 둘러보았다.
3년이다.
야근하는 밤마다 늘 이랬다. 이 넓은 층에서 내 자리의 불빛만 홀로 떠 있었다.
사직서를 키보드 밑에 끼워두었다.
내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할 첫 번째 일이다.
2.
다음 날 오전 9시 15분. 장 부장의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부장님, 사직서입니다.”
차를 마시던 그는 나를 힐끗 보더니 서류를 받지 않았다.
“어제 일 때문에 그래?”
“아닙니다.”
“그럼 왜? 연봉이 적어서?”
“결정했습니다.”
그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주호 씨, 여기서 3년이야. 언제부터 그렇게 까칠하게 굴었다고 그래? 송년회 때 그 상은 그냥 분위기 좀 살려보자고 농담한 건데, 그걸 진짜로 받아들이면 어떡하나?”
“진짜라고 생각 안 합니다.”
“그럼 됐네.” 그는 사직서를 내 쪽으로 밀어냈다. “가서 일 봐. 며칠 지나서 생각 좀 정리되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고.”
나는 서류를 집어 들지도, 물러나지도 않았다.
“부장님, 근로기준법상 퇴사 30일 전에 서면으로 통보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이 1월 15일이니, 2월 14일까지만 근무하겠습니다. 날짜는 딱 맞네요.”
그제야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화가 난 게 아니라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내가 ‘근로기준법’ 같은 단어를 입에 올릴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둘렀다. “거기 두고 나가봐.”
사무실을 나왔다.
내 자리로 가는데 민재가 슬쩍 다가왔다.
“주호 형, 그만두신다면서요?”
소문 참 빠르다.
“어.”
“아니, 왜요?”
나는 그의 책상 위에 놓인 ‘우수 사원’ 트로피를 보았다. 금빛으로 빛나는, 제대로 된 각인이 새겨진 진짜 트로피.
내가 받은 플라스틱 트로피는 받침대에 붙은 종이가 벌써 너덜거리고 있었다.
“좀 쉬고 싶어서.” 내가 짧게 답했다.
민재는 입으로는 “아유, 아쉬워라”라고 말했지만, 눈동자에는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
그는 내가 모를 줄 아나 보다.
지난달 고객사에서 극찬했던 그 피드백 개선안, 내가 쓴 거였다.
장 부장이 회의에 들고 들어갔을 때, PPT 표지에는 ‘작성자 : 이민재’라고 적혀 있었다.
그때 내가 민재에게 물었었다. “이 기획안에서 네가 수정한 부분이 어디야?”
그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가독성 좋게 폰트랑 줄 간격 좀 맞췄어요.”
폰트랑 줄 간격.
서른두 페이지짜리 기획안에서 그는 폰트 수정을 하고 ‘작성자’가 되었다.
나는 더 대꾸하지 않았다.
점심시간, 식당에 갔다.
우리 부서가 앉는 긴 테이블은 하나, 의자는 열 개다. 부서원은 나까지 열한 명.
항상 의자는 열 개뿐이었다.
그리고 항상 서서 먹는 사람은 나였다.
식판을 들고 테이블 모서리에 간신히 걸쳐 서 있으면, 누군가 떠들썩하게 웃다가 나를 힐끗 보며 말했다.
“주호 씨는 왜 맨날 서서 먹어?”
“습관 돼서 그래요. 서서 먹어야 소화가 잘되더라고요.”
오늘도 나는 앉지 못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이런 식사도 이제 몇 번 남지 않았다는걸.
3.
오후에 장 부장이 다시 나를 불렀다.
“최주호 씨, 혹시 연봉 협상 결과에 불만 있어?”
“없습니다.”
“그럼 대체 뭐야? 진짜 이유가 있을 거 아냐.”
나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다물었다.
연봉에 대해서는 정말 불만이 없었다. 이미 익숙해진 것에 대해 새삼스레 불만을 가질 수는 없으니까.
작년 내 성과급은 40만 원이었다.
민재는 360만 원을 받았다.
보너스가 나오던 날, 민재는 팀원들에게 커피를 돌렸다.
“주호 형은 뭐 마실래요?” 그가 휴대폰을 내밀며 물었다.
“나 목 안 말라.”
그는 더 묻지 않았다.
40만 원. 월세 내고 나면 10만 원 남는 돈.
360만 원을 받은 그는 SNS에 이렇게 적었다. [내 노력을 알아주는 곳이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노력이라.
지난 추석 연휴, 고객사 시스템이 터졌을 때가 떠올랐다.
토요일 아침 7시, 전화를 받고 회사로 달려왔다.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사투를 벌였다.
무려 14시간.
그날 고치지 못했다면 계약 위반으로 6천만 원의 위약금을 물어내야 했다.
월요일 아침 회의 때, 장 부장이 말했다.
“주말에 시스템에 아주 작은 문제가 있었는데, 잘 처리됐습니다.”
누가 처리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 6천만 원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고 물을 뜨러 가다 장 부장의 방 앞을 지나는데, 그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 네. 제가 옆에서 딱 붙어 지켜봤죠. 문제없습니다.”
나는 컵을 든 채 문앞에 2초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자리로 돌아갔다.
어느 날은 밤 11시 반까지 야근을 하며 고객사가 요구한 시스템 플로우차트를 수정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소리가 나더니 장 부장이 내렸다.
나를 본 그가 잠시 멈춰 섰다.
“이 시간까지 고생이 많네. 건강 챙기면서 해.”
그게 끝이었다.
그날 나는 새벽 1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다.
다음 날 아침 회의, 장 부장은 내가 밤새 만든 자료로 브리핑을 했고, 고객사는 “장 부장님 팀은 참 효율이 좋다”며 칭찬했다.
그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라며 웃었다.
나는 맨 뒷줄에 앉아 차가운 컵을 꽉 쥐었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아무도 몰랐다.
밤 9시까지 야근을 하다 배가 고파 편의점에서 컵라면 하나를 사 왔다.
돌아왔을 때, 사무실엔 내 자리 불빛만 켜져 있었다.
컵라면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고, 나는 한 손엔 젓가락을, 한 손엔 키보드를 두드렸다.
휴대폰 화면이 반짝였다.
은행 알림 : [대출 이자 640,000원 출금 완료]
생일 축하 메시지는 단 한 통도 오지 않았다.
라면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짰다. 아주 많이.
4.
사직서를 낸 지 사흘째 되는 날, 장 부장이 또 나를 찾았다.
이번엔 말투가 확연히 달랐다.
“주호 씨, 갈 땐 가더라도 맡은 프로젝트 인수인계는 확실히 해야지. 관리하는 업체가 다섯 군데나 되는데, 시스템 현황부터 담당자 특징, 히스토리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정리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달 분기 정기 점검, 그거 내팽개치고 나가면 곤란해.”
“정기 점검은 2월 28일이고, 저는 14일에 퇴사합니다. 한 달이면 인수인계하고도 남는 시간입니다.”
내가 날짜를 정확히 꿰고 있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인수인계 누구한테 할 건데?”
“아무나 상관없습니다.”
“그럼 민재한테 넘겨.”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 민재한테 무슨 유감 있어?”
“아뇨. 인수인계서에 꼼꼼히 적어두겠습니다.”
자리로 돌아와 문서를 열었다. ‘인수인계 매뉴얼’ 작성을 시작했다.
첫 번째 업체의 시스템 구조부터 써 내려갔다.
모든 파라미터 값, 경고 알림 규칙 하나하나, 그리고 담당자들의 성격과 기피하는 행동까지.
[건설교통국 장 국장님은 텍스트보다 데이터 그래프를 선호함.]
[이 과장님은 금요일 오후 4시 이후엔 업무 전화를 극도로 싫어함.]
[시스템 캐시는 매달 15일에 수동으로 비워야 함. 안 그러면 뻗음.]
[협력업체 결제 주기는 45일. 하루라도 늦으면 독촉 전화 오고 사흘 늦으면 서비스 중단됨.]
…….
오후 내내 타이핑을 했다.
옆 자리 신입 주원이가 지나가다 내 화면을 슬쩍 보았다.
“주호 형, 뭐 쓰세요?”
“인수인계 문서.”
그는 한참을 서 있다가 아무 말 없이 주머니에서 우유 한 팩을 꺼내 내 책상에 놓았다.
“아침에 하나 더 샀어요.”
나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고마워.”
그는 말없이 돌아갔다. 우유는 따뜻했다.
주원이는 입사한 지 1년밖에 안 된 신입이었다.
평소 말이 없고 내 옆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가끔 내가 늦게까지 야근할 때면 그도 남곤 했다.
내가 물었었다. “주원 씨는 왜 퇴근 안 해?”
그는 “배울 게 많아서요”라고만 답했다.
나는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5.
2월 14일.
마지막 날이다.
인수인계 문서가 완성됐다.
총 247페이지.
한 부를 출력해 검은색 폴더에 끼워 장 부장의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는 대충 두어 페이지를 넘겨보더니 말했다.
“뭐 이렇게 많아?”
“3년 동안 쌓인 데이터들입니다.”
그는 폴더를 툭 내려놓았다. 더 읽어보지도 않았다.
“주호 씨,” 그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고 나를 쳐다봤다. “정말 다시 생각 안 해보겠어?”
“네.”
“자네 가면 이 프로젝트는 어떡하고?”
나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가 3년 만에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3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겨도, 기획안을 누가 썼는지도, 시스템을 누가 밤새 고쳤는지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물었다.
일을 해줄 사람이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3년 만에 처음 물어보시네요. 이 프로젝트 어떡하냐고.”
나는 그 말을 남기고 뒤돌아 나왔다.
그가 뒤에서 뭐라고 소리쳤지만, 들리지도 않았고 멈추지도 않았다.
자리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종이상자에 하나씩 담았다.
컵. 볼펜 몇 자루. 뜯지 않은 물티슈 한 갑.
그리고 그 플라스틱 트로피.
잠시 바라보다가 상자 맨 밑바닥에 처박았다.
마지막으로 몸을 굽혀 책상 밑을 살폈다.
낡은 털실내화.
집어 드는 순간, 오른쪽 발바닥에 뚫린 구멍이 선명하게 보였다.
3년.
야근하는 밤마다 이 신발로 갈아 신었다.
새벽 2시, 3시가 되면 이 신발을 끌고 내 자리와 서버실 사이를 수없이 오갔다.
밑창이 두툼했던 신발이 닳고 닳아 바닥이 훤히 보일 때까지.
만 구천 구백 원짜리 물건 하나에 내 천 일의 밤이 녹아 있었다.
나는 신발을 책상 위에 그대로 두었다.
가져가지 않기로 했다.
짐 상자를 품에 안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주원이의 자리를 지나치는데, 그가 나를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주호 형…….”
“열심히 해.” 내가 말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사무실 전체를 눈에 담았다.
내 자리의 불이 꺼졌다.
이제 열한 개의 불빛이 남았다.
아니.
열 개다.
의자는 이제 충분할 것이다.
6.
내가 떠난 다음 날.
나중에 주원이가 들려준 이야기다.
아침 9시, 민재가 내 자리로 옮겨 앉았다.
내가 3년 동안 머물던 곳. 창가라 채광은 제일 안 좋고, 여름엔 에어컨 바람이 안 닿고 겨울엔 온기가 스미지 않던 그 자리.
아무도 앉고 싶어 하지 않아 입사하자마자 나에게 배정됐던 그 자리였다.
민재가 앉자마자 전화가 울렸다.
고객사인 건설교통국 장 국장이었다.
“주호 씨인가? 시스템 데이터 패널이 안 열리는데.”
“아, 국장님 안녕하세요. 이민재입니다. 최주호 씨는 퇴사했고, 이제 제가 담당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자네가 처리할 수 있나?”
민재는 관리자 페이지를 열었다. 3분을 들여다봤지만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국장님, 확인해 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는 전화를 끊고 인수인계 폴더를 펼쳤다.
247페이지.
그는 고작 세 페이지를 넘기다 멈췄다.
빽빽하게 적힌 파라미터, 프로세스, 연락처들.
그는 뒤쪽을 대충 넘겨보았다.
10페이지, 20페이지, 50페이지…….
모든 페이지가 글자로 꽉 차 있었다.
그는 폴더를 덮고 장 부장에게 달려갔다.
“부장님, 인수인계서 내용이 너무 많습니다. 주호 형한테 연락해서 설명 좀 해달라고 하면 안 될까요?”
“나간 사람을 왜 찾아? 네가 알아서 봐.”
“그게 아니라 내용이…….”
“뭐가 그렇게 어려워? 그냥 거래처 몇 군데 관리하는 거 아냐.”
민재는 자리로 돌아와 다시 폴더를 열었다.
오후 4시, 장 국장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패널은 어떻게 됐어?”
“국장님, 지금 확인 중입니다…….”
“전에는 주호 씨가 10분이면 해결했는데.”
민재는 수화기를 꽉 쥔 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간신히 87페이지에서 데이터 패널 관련 설명을 찾아냈다.
그대로 따라 하며 파라미터 하나를 수정했다.
그러자 패널은커녕 시스템 전체가 먹통이 됐다.
그는 몰랐다. 그 파라미터를 수정하기 전에 특정 서비스를 먼저 중지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그 내용은 88페이지 세 번째 줄에 적혀 있었다.
그는 거기까지 읽지 않았다.
7.
퇴사 후 첫 주가 지났다.
고객사 컴플레인이 네 번이나 들어왔다.
둘째 주.
건설교통국 이 과장의 보고서가 제때 제출되지 않았다.
보고서를 생성하는 스크립트가 서버 안에 있는데, 그 비밀번호는 나만 설정해 둔 것이었다.
인수인계서 162페이지에 적어두었지만, 민재는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민재는 IT 팀에 전화해 비밀번호를 물었지만, IT 팀은 “그건 프로젝트팀 개별 서버니 담당자에게 물으라”며 잘라 말했다.
그는 다시 장 부장을 찾았다.
장 부장이 전화를 세 통이나 돌리고 IT 팀장을 직접 만난 뒤에야 겨우 비밀번호 초기화 방법을 알아냈다.
이틀을 허비한 끝에 보고서가 발송됐다.
이미 48시간이나 늦어진 뒤였다.
이 과장이 전화로 쏘아붙였다.
“주호 씨가 담당할 때는 이런 일 한 번도 없었는데.”
장 부장은 그제야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캐비닛에 처박아두었던 247페이지짜리 폴더를 꺼냈다. 그리고 처음으로 첫 장부터 읽기 시작했다.
1페이지부터 30페이지까지 읽었을 때, 그의 안색이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