Đang tải thông tin quảng bá...
나를 값싼 사람이라 부른 당신에게
동료들의 동정 어린,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캐내려는 듯한 시선이 바늘처럼 온몸에 날카롭게 박혔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쩌면 심윤희와 나...
Chương (1)
第1章
동료들의 동정 어린,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캐내려는 듯한 시선이 바늘처럼 온몸에 날카롭게 박혔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쩌면 심윤희와 나의 관계는 아주 오래전에 마침표를 찍었어야 했다는 사실을.
아무것도 없던 시절부터 그녀가 화려한 조명 아래 서기까지 7년이라는 시간을 그림자처럼 지켜온 연인인 나조차, 그녀의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그 피아노에는 손끝 하나 댈 자격이 없었다.
그런데 방금 전, 오케스트라에 새로 들어온 신입 단원 한준우가 수석 연주자인 윤희 곁에 놓인 피아노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피아노, 선배님 남편분만 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저도 한번 쳐봐도 돼요?”
윤희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 한 마디로 대답했다.
“응, 돼.”
1
그날 채용 면접이 끝난 뒤, 오케스트라 매니저로부터 연락이 왔다.
“서도윤 씨, 심 수석님과의 피아노 연탄곡 공연은 준비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수석님께서 신입인 한준우 씨와 함께 연주하시겠다고 하네요.”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음에도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나는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번호를 눌렀다.
“민채영, 비엔나 무지크페어아인 황금홀에서 나랑 결혼하고 싶다던 말, 아직 유효해?”
상대방은 잠결에 깬 듯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코맹맹이 소리로 되물었다.
“나 지금 꿈꾸는 거야?”
“거절해도 돼.”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무언가 쿵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에서 떨어진 모양이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격양되어 돌아왔다.
“유효해, 당연히 유효하지! 언제든, 몇 번이고 유효해.”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하루 종일 짓눌려 있던 기분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윤희가 돌아왔을 때, 나는 짐을 싸고 있었다.
그녀는 내 행동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코트를 벗으며 무심하게 지시했다.
“해장국 좀 끓여줘. 신입 환영회였는데, 어린애가 하도 보채서 좀 많이 마셨네.”
그녀의 셔츠 깃에 묻은 연한 갈색 톤의 남자 립밤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심윤희, 우리 헤어지자.”
그녀는 멈칫하더니 그제야 내 발치에 놓인 캐리어를 발견했다.
윤희는 짜증스럽게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나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매혹적인 그녀의 눈매에는 피곤함이 서려 있었다.
“고작 그 피아노 한 번 만지게 해줬다고 이러는 거야?”
“도윤아, 속 좁게 굴지 좀 마. 실력 있는 인재를 우리 팀에 붙잡아두려고 배려해 준 것뿐이야.”
곡 하나를 연주하면서 열 군데 넘게 틀려대는 애를 두고 ‘실력 있는 인재’라니. 참으로 대단한 안목이었다.
그녀는 욕실로 향하며 툭 던졌다.
“가서 해장국이나 준비해. 쓸데없는 생각 좀 그만하고.”
“윤희야.” 내 목소리는 단호했다.
“말했지. 내 인생 계획에 서른다섯 전에는 꼭 결혼하고 싶다고. 나 올해 서른셋이야.”
그녀의 발걸음이 멎었다. 억지로 유지하던 인내심이 마침내 바닥을 드러냈다.
“서도윤, 자꾸 결혼으로 사람 숨 막히게 할래? 너 이럴 때마다 정말 값싼 사람처럼 보여.”
“말했잖아, 우리 오케스트라 지금 한창 올라가는 시기라고. 이런 무의미한 일에 내 에너지를 낭비할 순 없어.”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내 심장 가장 연약한 곳을 헤집어 놓았다.
7년이라는 시간. 오케스트라를 무에서 유로 일궈내기 위해 내가 쏟은 노력들. 새로운 공연을 따내고,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건강검진표에 빨간불이 켜질 정도로 뛰어다녔던 세월의 대가가 고작 ‘값싼 사람’이라는 취급이었다.
그녀의 고귀한 에너지는 자신의 피아노를 위해, 그리고 들어온 지 하루도 안 된 어린 남자애를 위해 쓰기에는 충분했다. 그 애의 피아노 의자 높이가 적당한지, 환영회 파티는 즐거웠는지 챙기는 데는 아낌없이 쓰이면서, 7년을 헌신한 연인인 내게는 그저 ‘낭비’일 뿐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지쳤어, 윤희야. 그러니까 결혼 아니면 이별이야. 네가 선택해.”
내 말에 윤희는 결국 마지막 남은 이성을 놓아버렸다.
그녀는 입고 있던 코트를 소파 위로 거칠게 내던졌다.
“헤어져, 그럼. 네 마음대로 해.”
욕실에서 들려오는 세찬 물소리를 들으며 가슴 속에서 비애가 밀려왔다.
알고 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심윤희에게 최우선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걸.
그녀 주변에는 늘 구애자들이 넘쳐났고, 내가 가진 것이라곤 남들보다 조금 더 질긴 집착뿐이었다. 그녀가 가장 밑바닥에 있을 때 곁을 지켰다는 사실 때문에, 윤희는 도덕적인 부채감에 나를 차마 내쫓지 못했을 뿐이다.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하지 않는 마음은 너무나도 선명했다.
생일날 케이크를 사다 달라고 하면 그녀는 사 왔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내가 좋아하는 맛을 맞춘 적은 없었다. 감기에 걸려 약을 사다 달라고 하면 그녀는 사러 나갔다. 다만, 내 감기가 다 낫고 난 뒤에야 뒤늦게 생각난 듯 약봉지를 내밀었을 뿐이다.
‘예비 신랑을 위한 가이드’, ‘결혼 전 관리법’ 같은 자료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사 올 때마다, 나는 윤희의 혐오 섞인 시선을 피해 그것들을 보물 숨기듯 깊숙이 감춰야 했다.
7년의 장거리 연애 같은 기다림 끝에, 기대는 식어버렸고 마음은 황폐해졌다. 정말로, 지칠 대로 지쳤다.
2
주머니 속 휴대폰이 연달아 진동했다.
한준우가 오케스트라 단체 대화방에 영상을 올린 모양이었다.
영상 속에는 윤희와 준우가 그녀의 아버지가 남긴 피아노에서 나란히 앉아 연주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윤희는 심지어 준우가 피아노 위에 술잔을 아무렇게나 올려두는 것조차 방치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얽히고, 뺨이 스칠 듯 가까워질 때마다 묘한 기류가 흘렀다.
준우는 짐짓 수줍은 척 메시지를 남겼다.
[이제 막 들어온 신입인데, 7년 넘게 계신 선배님들보다 더 대접받는 것 같아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감동이에요. 윤희 누나의 편애에 감사드립니다. ㅎㅎ]
샤워 중이라던 윤희가 그 즉시 답장을 달았다.
[너는 그럴 자격 있어.]
두 사람은 다정하게 대화를 주고받았고, 윤희는 평소 쓰지도 않던 귀여운 이모티콘까지 섞어가며 준우의 농담에 맞장구쳤다.
3년 전 일이 떠올랐다. 업계에서 따내기 힘든 큰 상을 오케스트라에 안겨주고, 나도 보통의 연인들처럼 단체 방에서 그녀에게 어리광을 부린 적이 있었다.
[수석님, 저 좀 대단하지 않나요? 얼른 칭찬해 주세요.]
하지만 내 메시지는 민망하게도 하루 꼬박 읽히지 않은 채 방치되었다.
나중에 윤희에게 따져 묻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도윤아, 나이가 몇인데 어린애들처럼 굴어? 네가 안 창피해도 내가 다 민망해. 나까지 우스운 사람 만들지 마.”
그때 내 나이 고작 스물아홉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정말 윤희를 곤란하게 만든 건지 자책하고 또 자책했었다.
하지만 보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심윤희라는 거대한 빙산도 스스로 몸을 낮춘다. 차이는 그저 ‘사랑의 크기’였을 뿐이다.
그날 밤, 나는 캐리어를 끌고 그녀의 집을 나왔다.
그날 이후, 나는 퇴사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오케스트라 업무에 더 이상 목숨 걸지 않았고, 윤희와도 철저히 거리를 두었다. 그녀와 준우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보면서도 못 본 척 넘겼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어머니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도윤아, 네 아버지가 너랑 윤희 헤어졌다는 말을 어디서 들으셨는지… 갑자기 쓰러지셨어.”
“건강보험증이 없어서 지금 당장 입원도 수속도 안 된다는데, 집에 모아둔 돈도 치료비 대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어쩌면 좋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난번 윤희에게 아버지의 심장병 전문의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며 넘겨주었던 건강보험증과 서류들이 떠올랐다. 윤희는 그 일을 까맣게 잊었는지 이후 아무런 말이 없었고, 서류들은 여전히 그녀에게 있었다.
마음이 급해져 미친 듯이 전화를 걸었지만 윤희는 받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녀의 집으로 달려갔다.
비밀번호를 눌렀지만 이미 바뀌어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창문을 깨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거실에 발을 들인 순간, 나는 눈앞의 광경에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집안은 온통 캐릭터 피규어와 게임기, 그리고 남자애가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양말과 담뱃갑으로 엉망이었다. 미니멀리즘을 고집하며 모델하우스처럼 깔끔함을 유지하던 윤희의 집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예전에 내가 마블 한정판 조명을 침실에 두고 싶어 했을 때, 윤희가 혐오감을 드러내며 했던 말이 귓가에 쟁쟁했다.
“도윤아, 네 그 값구린 취향으로 내 집 오염시키지 마.”
생각에 잠길 여유가 없었다. 서둘러 아버지의 서류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거친 발길질과 함께 나는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주거 침입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같이 가시죠.”
두 명의 경찰이 내 팔을 꺾어 눌렀다.
취조실에서 경찰은 나를 매섭게 몰아세웠다.
“심윤희 씨의 연인이라고 주장하시는데, 집 안에는 본인 물건이 하나도 없더군요.”
“오케스트라 총책임자라고 하셨죠? 방금 확인한 결과로는 총책임자 이름은 한준우 씨라는데요.”
“서도윤 씨, 입만 열면 거짓말입니까?”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압수된 휴대폰 화면에는 어머니의 부재중 전화가 끊임없이 명멸했다.
아버지의 상태가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나는 결국 포기했다.
“알겠습니다. 다 인정할 테니, 제발 아버지가 위독하셔서 그런데 한 번만 면회 가게 해주세요.”
“이젠 아버지 핑계입니까? 우리가 그렇게 우스워 보여요?”
“심 수석님과 그 남자친구분께서 재산 피해 규모를 다 파악할 때까지는 절대 내보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이틀 밤낮을 유치장에 갇혀 있었다. 사흘째 되는 날에야 윤희가 느긋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3
그녀의 뒤에는 화려하게 차려입은 한준우와 오케스트라 동료들이 서 있었다.
준우가 재빨리 다가와 가식적인 사과를 건넸다.
“아이고, 도윤 형님. 정말 죄송해요. 집에 들어온 게 형님인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제가 이번에 총책임자가 돼서 다 같이 여행 가려고 들뜬 마음에 그만… 형님을 며칠이나 고생시켰네요.”
“다 제 잘못이에요. 형님, 화 푸세요.”
하지만 윤희가 준우의 팔을 잡아끌며 가로막았다.
“사과할 필요 없어. 헤어지고도 남의 집에 몰래 들어온 건 이 사람 잘못이니까.”
나는 핏발 선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심윤희, 우리 아버지 건강보험증이랑 서류 어디 있어. 급하게 치료받아야 한다고, 당장 내놔!”
윤희는 내 첫마디가 그럴 줄 몰랐던 모양인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녀는 주춤하며 서류를 찾으려 했지만, 애초에 내 아버지 일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그녀가 그것들을 어디에 뒀는지 기억할 리 만무했다.
그때, 어머니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도윤아… 네 아버지가 방금 떠나셨다.”
힘없이 손이 떨궈졌다. 나는 윤희를 불러 세웠다.
“찾지 마. 이제 필요 없으니까.”
윤희는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더 이상 상관없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나가려는데 준우가 다시 앞을 막아섰다.
“도윤 형님, 며칠 고생하게 한 건 미안한데요.”
“그래도 무단침입은 사실이잖아요. 혹시 집에서 뭐 들고 나간 건 없는지 몸수색은 좀 해야겠는데요?”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준우는 내 가방을 낚아채 바닥에 쏟아버렸다. 며칠 전 민채영이 골라보라며 보내준 청첩장 샘플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흩어졌다.
준우는 입을 틀어막으며 놀란 척 소리쳤다.
“어머나, 형님 아직도 윤희 누나랑 결혼할 꿈을 꾸고 계셨던 거예요? 아버님 아프시다는 것도 다 연기였던 거 아니에요? 누나 관심 끌려고?”
나는 대꾸할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
“확인 끝났지? 너희 물건 없으니까 비켜.”
준우는 원하는 반응을 얻었다는 듯 비아냥거리며 비켜섰다. 가방을 챙겨 나가려는데, 윤희가 쫓아와 내 팔을 붙잡았다.
“너 지금 어디서 지내?”
“너랑 상관없는 일이야. 한준우랑 잘 먹고 잘살아. 그게 나 도와주는 거야.”
윤희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너 지금 질투하는구나?”
“마음대로 생각해.”
“서도윤, 그만 좀 해! 며칠 소란 피웠으면 됐잖아. 적당히 좀 하라고.”
“그냥 몇 년만 더 기다려주면 안 돼? 왜 꼭 이런 식으로 날 압박해야겠어?”
나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내 목소리는 나조차 놀랄 만큼 차분했다.
“나 결혼해. 근데 신부는 너 아냐. 앞으로 널 압박할 일도, 기다릴 일도 없을 거야. 알아들었어?”
윤희의 얼굴이 순간 굳어버렸다. 하지만 이내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서도윤, 서른셋이나 먹어서 유치한 농담 좀 하지 마.”
“그 꼴을 해가지고… 나 말고 누가 너랑 결혼해 주겠어?”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
돌아서려는데, 윤희는 제 말이 너무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목소리를 낮추며 회유하듯 말했다.
“이번 주 토요일 네 생일이잖아. 우리 엄마 보고 싶어 했지? 우리 집에서 생일 파티 열어줄게. 됐지?”
솔직히 조금 놀랐다. 지난 7년 동안 늘 나만 그녀의 생일을 챙겼고, 그녀는 내 생일이 언제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했으니까.
일요일, 나는 결국 그 자리에 갔다.
윤희의 마음이 바뀌어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건넨 초대 명단에 내가 꼭 만나야 할 업계 거물들의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를 떠나기 전, 새로운 발판이 필요했다.
하지만 도착해서 마주한 광경은 내 예상과 달랐다. 그날은 윤희가 준우를 어머니에게 정식으로 소개하는 자리였다.
결국 그녀는 결혼할 준비가 안 된 게 아니었다. 그 상대가 ‘나’였기 때문에 미뤄왔던 것뿐이다.
발길을 돌리려는데 집사가 내 팔을 붙잡았다.
“아가씨가 부른 도우미 서 씨 맞습니까? 왜 이렇게 늦었어요. 만찬 시작합니다.”
“근데 그 옷차림은 대체 뭡니까? 본인이 이 집 사위라도 되는 줄 알았어요?”
4
집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려한 음악이 울려 퍼지며 윤희와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한준우가 입장했다.
나는 구석으로 밀려났고, 무대 위로 올라간 윤희가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제가 가장 아끼는 제자이자 파트너인 한준우 군을 여러분께 정식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연회장을 가득 메운 업계 권력자들을 보며 가슴이 답답해졌다.
예전에 전국 피아노 콩쿠르 결승을 앞두고 낙하산 인사에게 밀려났을 때가 생각났다. 윤희에게 공정하게 싸울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녀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도윤아, 세상에 절대적인 공정은 없어. 평범한 사람은 나 같은 배경을 가질 수도 없고.”
“특권에 기대려 하지 말고, 스스로 적응하는 법을 배워.”
그런 그녀가, 지금 준우를 위해서는 이런 호화로운 소개식까지 열어주고 있었다.
“그럼 준우 군의 자작곡 연주가 있겠습니다.”
윤희의 자랑스러운 목소리에 회상이 끊겼다.
무대 위에서 준우가 연주를 시작했다. 유려한 선율이 흐르는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저건… 내가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만든 곡이 아닌가?
익숙한 멜로디가 자물쇠를 열듯 봉인해두었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가난했던 일곱 살, 아버지는 피아노를 사줄 돈이 없어 책상 위에 건반을 그려 하나하나 음을 가르쳐주셨다. 어느 해 질 녘, 아버지는 창밖의 노을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멜로디를 흥얼거리셨다.
“도윤아, 이건 아빠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제목은 ‘노을 아래의 약속’이란다.”
그 멜로디를 함께 다듬어 완성했던 우리만의 노래.
피아니스트가 된 후 가장 먼저 악보로 옮겼던 그 소중한 곡이, 어떻게 한준우의 ‘자작곡’이 되었단 말인가.
이 곡을 들려준 사람은 윤희뿐이었다. 결론은 하나였다. 그녀가 내 곡을 준우에게 넘긴 것이다.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윤희를 바라보자, 그녀는 찔리는지 시선을 피하며 문자를 보내왔다.
[소란 피우지 마. 준우가 곧 나랑 비엔나 황금홀에서 협연해야 하는데, 실력 논란이 많아서 그래. 오케스트라를 위해서니까 이해해 줘.]
연주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윤희는 준우 곁에 서서 자부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윤희의 어머니도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준우 군, 연주 실력도 뛰어나지만 작곡 재능이 일품이네. 우리 윤희에게 이런 제자가 있다니 큰 복이야.”
“이런 사람이 우리 집안 사위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는데.”
윤희는 부정하지 않고 화사하게 웃었다.
“장모님, 과찬이세요. 다 윤희 누나가 잘 가르쳐준 덕분이죠.”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잠시만요.” 내 목소리가 들렸다. 갈라졌지만 선명했다.
“그 곡은 저와 제 아버지가 만든 곡입니다. 한준우 씨의 자작곡일 리가 없습니다.”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모든 시선이 내게 꽂혔다. 윤희는 미간을 찌푸렸고, 준우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가 이내 가련한 표정을 지었다.
“도윤 형님, 누나랑 결혼하고 싶어 하시는 마음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질투 때문에 저를 모함하시면 어떡해요.”
윤희의 어머니도 얼굴을 굳히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자네가 우리 윤희를 7년이나 괴롭혔다는 그 남자인가?”
“가정 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이리 무례해. 윤희가 자네랑 결혼 안 하길 천만다행이군.”
윤희는 나를 변호하기는커녕,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서도윤, 제발 그만 좀 해. 여기까지 쫓아와서 결혼 타령하며 깽판 치는 거, 정말 숨 막혀.”
하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 남자 알아요. 심 수석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던 사람이잖아.”
“사귀는 사이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 보네. 혼자 망상에 빠진 거 아냐?”
“결혼에 미쳤나 봐. 집안 어른들 다 모인 자리에서 저러고 싶을까.”
그때 준우의 눈에 비열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형님, 제 곡을 훔쳤다고 주장하시려면 증거가 있어야죠? 형님 폰에 작곡한 기록이라도 있나요?”
“보여주세요. 진짜라면 제가 무릎 꿇고 사죄하죠.”
아차 싶었다. 폰에는 증거 대신, 예전에 혼자 장난삼아 합성했던 윤희와의 웨딩 사진이 들어 있었다.
윤희의 어머니가 사람들을 시켜 내 폰을 뺏으려 했다. 몸싸움 끝에 바닥으로 밀려나면서도 나는 필사적으로 폰을 감췄다.
준우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못 보여주는 거 보니까 생사람 잡으신 거 맞네. 아, 정말 억울해서 살겠나.”
그는 나를 부축하는 척 다가와 귓속말을 내뱉었다.
“포기해, 서도윤. 누나는 내 거야. 넌 절대 못 뺏어.”
내가 멍해진 틈을 타 그는 내 폰을 가로챘고, 갤러리에 있던 합성 사진을 대형 스크린에 띄워버렸다.
연회장은 폭소로 뒤덮였다.
“세상에, 심 수석이랑 웨딩 사진까지 합성했어! 진짜 결혼에 미친놈이네!”
“너무 소름 돋는다. 내가 심 수석이었으면 무서워서 못 살 듯.”
비웃음 소리가 천장을 뚫을 듯했다. 윤희도 당황했는지 그만두라고 말하려는 찰나, 누군가 외쳤다.
“잠깐만요, 사진 속 신부… 심 수석님이 아닌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