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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는 이제 그만두기로 했다
부유한 집안의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전화기 너머, 백서준은 족히 10초는 침묵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 그는 내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하지...
Chương (1)
第1章
부유한 집안의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전화기 너머, 백서준은 족히 10초는 침묵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
그는 내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저녁 한 끼는 대접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나는 대답 대신 가만히 수화기를 타고 흐르는 정적을 들었다.
너무나 담백한 그의 승낙은, 지난 1년 동안 나를 괴롭혔던 그 불안한 예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오늘 저녁 8시, 레스토랑 '아레스'에서 기다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1.
저녁 8시, 약속대로 아레스에 도착했다.
서준은 놀랍게도 내가 선물했던 그 회색 수트 차림으로, 커다란 레드 장미 꽃다발을 들고 서 있었다.
나는 왠지 모를 허탈함 속에서 꽃을 받아 들었다. “고마워.”
자리에 앉은 후에도 시선이 자꾸만 그에게 머물렀다.
그는 정말 근사했다. 큰 키에 조각 같은 외모, 세련된 매너까지.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여전히 그에게 매료되어 있다는 사실을.
서준은 특유의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때? 지안 네가 사준 정장인데, 잘 어울려?”
나는 답했다. “응, 정말 잘 어울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사실 그는 이 옷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는 것을. 선물한 지 반년이 넘도록 그는 단 한 번도 이 옷을 입지 않았다.
그가 입지 않았던 이유는 명확했다. 그의 기준에서 이 옷은 '싸구려'였으니까.
나는 이 수트를 고르기 위해 며칠 밤을 고민하고 머리를 쥐어짰다. 그리고 손을 떨며 5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이 옷을 샀다.
내게는 소비의 한계치였던 금액이었지만, 서준에게는 몸에 걸치기조차 민망한 저가형 기성복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그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지난번 쇼핑 때,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4천만 원짜리 가방을 결제해 내게 선물했던 사람이니까.
우리는 묵묵히 스테이크를 썰었다.
서준이 나이프를 내려놓더니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안아, 고마워. 정말로 고마웠어….”
그를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눈이 마주치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내 인생에 나타나 줘서 정말 고마워. 지안아, 넌 정말 좋은 사람이고, 훌륭한 여자야. 진심으로 좋아했어….”
나는 스테이크 조각을 짓이기며 묵묵히 듣기만 했다.
“만약 네가 마음을 바꾼다면, 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어. 우린 계속 연인으로 지낼 수 있다고.”
그는 반복했다. “난 정말 너를 좋아해.”
나는 용기를 내어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서준아, 우리 사이의 간극은 너무 커. 오늘이 아니더라도 내일, 혹은 모레… 우린 언젠가 헤어지게 되어 있어.”
서준이 내 손등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쳤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우리가 진심을 다했다는 거지.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나중에 웃으면서 후회 없었다고 말할 수 있잖아….”
“넌 항상 네가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그럼, 나를 사랑하기는 하니?”
그는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내가 원하던 그 대답을 내놓았다. “사랑해.”
“그럼 나랑 결혼할 수 있어?” 내가 말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그는 침묵했다.
그리고 조용히 손을 거두어 갔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잔을 들어 올렸다. “서준아, 우리의 1년을 위해서 건배하자.”
레스토랑의 부드러운 조명이 그의 눈동자에 부서지며 그를 이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주인공으로 만들고 있었다. 나는 가슴을 찌르는 통증을 억누르며 미소 지었다. 오늘 밤이 지나면, 그는 이제 다른 사람의 주인공이 될 테니까.
서준도 미소를 지으며 잔을 부딪쳐 왔다.
우리의 짧았던 1년에 완벽한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2.
다음 날, 회사에 사흘간 휴가를 냈다.
집에 틀어박혀 시체처럼 누워 지낸 지 이틀째 되던 날, 친구 혜진이가 문을 부술 듯이 두드렸다.
그녀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내 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맥주 캔들을 보더니 기가 찬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세상에, 한지안!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네가 먼저 차 놓고 왜 네가 청승이야? 진짜 못 봐주겠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혜진은 투덜거리며 거실을 치우기 시작했다. 나는 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했다. 그래,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지.
“그 좋은 남자를 왜 발로 차? 너 같은 조건에 백서준 같은 남자를 또 어디서 만날 줄 알고! 대체 머릿속에 뭐가 든 거야?”
혜진의 잔소리가 폭포수처럼 쏟아졌지만, 내 마음은 미동도 없었다.
서준과 함께 있을 때 확실히 행복했다.
그와 있으면 어디서 무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항상 완벽한 계획을 세워두었으니까.
스위스, 노르웨이, 핀란드, 몰디브….
그를 따라 경매장에 가서 수억 원대를 호가하는 예술품을 낙찰받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는 심지어 내 출퇴근이 편하도록 내 자취방 근처에 최고급 펜트하우스를 샀다. 그곳에 처음 들어갔던 날, 나는 정말 동화 속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었다. 나만의 왕자님을 만난 줄 알았다.
헤어지던 날 밤, 그는 그 아파트를 내게 주겠다고 했다.
나는 거절했다.
이 관계에서 그는 이미 과분할 정도의 배려를 베풀었다. 비록 그에게는 사소한 부스러기에 불과했을지 몰라도.
서준 덕분에 스물다섯이라는 나이에 내 계급으로는 평생 구경도 못 할 것들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 화려함은 오랫동안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옷장을 열어 옷을 고르는데, 혜진은 이제 내 집안 사정까지 들먹였다. 연고도 없는 이 서울 하늘 아래서 혼자 살아남으려면 백서준 같은 빽이 있어야지, 왜 그렇게 쉽게 포기하느냐는 말이었다.
내 시선은 옷장 문에 걸린 4천만 원짜리 가방에 머물렀다.
혜진은 모른다. 내게 백서준이란 저 가방 같은 존재였다는 걸. 어깨에 매면 나를 빛나게 해줄 수는 있지만, 단 한 순간도 진정으로 내 것이라고 느껴본 적 없는 명품 가방.
지난 1년 동안 '내 자리가 아니다'라는 부적격감이 나를 얼마나 갉아먹었는지 그녀는 알 턱이 없었다.
방 정리를 마치고 혜진과 밥을 먹으러 나갔다.
식사 도중 그녀가 넌지시 물었다. “너 알아? 사람들 사이에서는 백서준이 너 버린 거라고 소문 다 났더라.”
나는 밥을 한 술 크게 뜨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아, 벌써? 난 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어젯밤에 강현민이 골드힐 빌라 통째로 빌려서 파티한 건 알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강현민. 백서준의 불알친구이자, 백씨 가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성 그룹의 후계자다.
혜진이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뉴스에도 떴어. 백서준 싱글 복귀 축하 파티라고….”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다. “돈 많은 사람들이 노는 건데 뭐, 당연한 거 아냐?”
혜진이 젓가락으로 내 손등을 툭 쳤다. “너 진짜 제정신이야? 아깝지도 않아? 백서준이라고! 대한민국 여자들이 줄을 서는 그 백서준!”
나는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혜진아, 너 정말 내가 그 계급의 벽을 넘어서 백씨 가문의 며느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혜진의 눈빛이 순식간에 흐려졌다.
그녀라고 왜 모르겠는가. 그저 구경꾼들처럼, 내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서준을 붙잡고 명예든 부든 챙기길 바랐을 뿐이다.
하지만 계급 차이가 극명할 때, 그 관계는 결코 평등한 연애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녀는 간과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먼저 연락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그가 얼마나 바쁜지, 그의 사교 활동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지인들 모임에 불려 나갈 때마다 나를 향해 쏟아지던 시선들은 묘했다.
노골적인 무시라기보다는, 마치 예쁜 장식품을 보듯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눈빛들.
그들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저 백서준 옆에 앉아 있는 '얼굴 마담' 정도로 치부할 뿐이었다.
서준은 완벽했다. 1년 동안 내게 단 한 번도 무리한 요구를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무심코 던지는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나는 본능적으로 그에게 맞추려 애썼다.
주변 친구들은 부러워했다. 잘생기고 돈 많고 다정하기까지 한 남자친구라고. 하지만 그 관계 속에서 내가 얼마나 자존감을 잃어가고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이 연애의 주도권은 영원히 그에게 있으며, 그는 언제든 내게 '종료'를 선언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이 나를 짓눌렀다.
식당을 나오며 혜진이 내 어깨를 툭 쳤다. “솔직히 말할게. 너 정말 독하다. 그 냉철함에 내가 무릎 꿇고 절이라도 하고 싶네.”
나는 농담조로 대꾸했다. “그럼 지금 해보든가.”
혜진은 웃으며 내 옆구리를 꼬집었다.
3.
연애가 끝나고, 나는 다시 기운을 차려 일에 매두했다.
야근과 마감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 집을 한 번 더 옮겼다.
넓지는 않지만 아늑한 전세방으로.
이사하는 날, 혜진과 그녀의 남자친구 도훈 씨가 놀러 왔다. 내가 차린 음식들을 나눠 먹으며 우리는 밤늦도록 수다를 떨었다.
뒷정리를 마치고 창가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화려한 네온사인이 보였다. 문득 서준이 생각났다.
지난 반년 동안 서준은 단 한 번도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독한 피로가 몰려와 소파 위로 몸을 던졌다.
서준의 넓은 펜트하우스, 나를 입 맞추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듯 감던 그의 눈동자.
햇살이 눈부시던 어느 아침, 통창 앞에 상체를 드러내고 서 있던 그의 뒷모습. 내가 부르기도 전에 그가 뒤돌아보며 말했었다. “지안아, 네가 있어서 정말 좋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사실 나는 아직도 그에게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것을.
하지만 동시에, 나는 누군가의 부속품으로 살고 싶지도 않았다.
적막한 밤, 텅 빈 방 안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낮게 읊조렸다.
“신데렐라, 여기가 네 진짜 세계야. 현실을 직시해.”
이것이 고통스러운 금단 증상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되돌아갈 수는 없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잘 알고 있으니까.
내가 원하는 건 평등함이다. 내려다보는 시선이 없는, 진정한 의미의 존중.
4.
이후 나는 보나 커뮤니케이션즈로 이직했다.
3년 뒤, 나는 업계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그사이, 서준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졌다는 소식도 들렸다.
그리고 그가 해외 지사로 나간다는 소식을 접했다.
출국 전날 밤, 그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3년 전의 내 모습이었다.
사진 속 나는 너무나 부드럽고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낯설 만큼.
서준의 커다란 손이 내 정수리를 쓰다듬고 있는 모습이 사진의 구석에 걸쳐 있었다. 그 사진의 유일한 그의 흔적이었다.
이 사진을 언제 찍었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답장을 하려던 찰나, 전화가 울렸다. 상사인 박 선영 팀장이었다.
바쁜 밤이었다. 기획안 세 개를 동시에 쳐내야 했고, 실행팀과 싸우며 플랜 B까지 준비해야 했다.
일을 다 마쳤을 때는 새벽 3시였다.
아침 7시, 어김없이 사무실로 출근했다.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기분이 좋아진 박 팀장은 우리에게 반차를 선물했다.
그제야 휴대폰을 확인했다. 어제 미처 보내지 못한 서준의 메시지들이 와 있었다.
어젯밤: [지안아, 나 내일 낮 11시 반 비행기야. 혹시 배웅해 줄 수 있을까?]
오늘 아침: [나 이제 가. 몸조리 잘하고 잘 지내.]
시간을 보니 이미 10시 50분이었다.
나는 1분 정도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가방을 챙겨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결국 한 발 늦었다.
집으로 돌아와 혜진에게 이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혜진이 물었다. “만약 그때 답장을 했고, 그를 만났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냥 배웅해주고 싶었을 뿐이야. 다른 의미는 없어.”
“차라리 잘됐어. 시간이 지날수록 네 결정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어. 그 사람, 지난 2년 동안 옆에 여자 마를 날 없었다더라.”
나는 대답 없이 화제를 돌렸다. “나 반차인데, 쇼핑이나 갈까?”
“좋지! 웬일로 한지안이 휴가를 다 쓰고. 가자, 어디든!”
5.
박 팀장이 들어오자마자 파일을 모니카의 책상에 던지며 말했다. “모니카, 대박 건 하나 물어왔어.”
우리는 보통 그녀가 말하는 '대박 건'을 '독이 든 성배'라고 불렀다.
모니카가 파일을 넘기자, 강현민의 그 잘생긴 얼굴이 나타났다.
박 팀장이 코트를 벗으며 몸매를 뽐냈다. “강성 그룹의 황태자, 강현민. 집안 배경 다 떠나서 이 이름 석 자만으로도 기사 2천 자는 뽑아낼 수 있어.”
모니카는 나와 동기이자 능력 있는 라이벌이었다. 그녀의 모토는 '도전 없는 인생은 죽은 인생'이었다.
모니카는 자신 있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이 케이스, 제가 맡을게요.”
하지만 강현민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결국 모니카는 인터뷰를 완전히 망쳐버렸다.
강현민은 박 팀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귀사의 전문성에 아주 감탄했습니다. 협업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 되네요.”
박 팀장은 울상이 된 모니카를 뒤로하고 사무실로 들어가며 전화를 이어갔다. “강 본부장님, 안 그래도 제가 설명해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임무는 결국 나에게로 넘어왔다.
다음 날, 나는 강현민을 만났다.
우리 팀원들과 함께 들어서자, 그는 사장실 의자에 앉아 통유리창을 등진 채 통화 중이었다.
“미국이 아무리 좋아도 한국만 하겠냐? 딱 한 마디만 한다. 빨리 들어와라. 90년산 로마네 꽁띠 따놓고 기다릴 테니까.”
의자가 빙그르르 돌았고, 강현민의 잘생긴 미소가 내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몇 초간 멍하니 나를 보더니 휴대폰 너머 상대에게 말했다.
“야, 대박…. 내가 지금 누굴 보고 있는지 알아?”
저쪽에서 뭐라 했는지 모르겠지만, 강현민은 얄궂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네 꿈속의 여인, 내 전 형수님.”
심장이 요동쳤다. 그가 누구와 통화하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
“끊어, 나중에 얘기하자.”
강현민은 전화를 끊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죠?”
“보나 커뮤니케이션즈에서 나왔습니다.” 팀원 승우가 대답했다. “이쪽은 기획팀 한지안 팀장입니다.”
강현민이 냉소하며 말했다. “그럼 시간 끌지 말고 시작하죠. 내가 어떻게 맞춰주면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