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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국가급 천재 새엄마
실시간 스트리밍 창은 이미 지옥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안티팬들은 모두 이른 아침부터 키보드를 잡고 앉아, 갓 재벌가에 입성...
Chương (1)
第1章
실시간 스트리밍 창은 이미 지옥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안티팬들은 모두 이른 아침부터 키보드를 잡고 앉아, 갓 재벌가에 입성한 내가 망신당하는 순간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성격 파탄자로 유명한 '현대판 재벌 3세'이자 톱스타인 그 도련님이 밥상을 엎어버리는 자극적인 장면을 기대했으리라. 하지만 화면에 잡힌 모습은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기묘한 공기를 머금고 있었다.
천하에 무서울 것 없다던 그 오만한 소련님은 지금 거실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붉게 충혈된 눈을 한 채, 불평등 조약이 빼곡히 적힌 A4 용지 한 장을 보물이라도 되는 양 움켜쥐고서. 그 옆에서 청순한 이미지로 사랑받던 여배우 유소희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눈물을 쏟아내며 나를 가리켰지만, 정작 입술만 달달 떨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작 주인공인 나는? 아주 우아하게 미디엄 레어로 익힌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나이프와 포크가 고급 본차이나 접시에 부딪히며 경쾌한 금속음을 냈다. 나는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지능이 낮은 생명체를 보듯 싸늘한 시선으로 그들을 훑었을 뿐이다.
"계속 울어봐. 데시벨 60 넘으면 층간소음으로 간주해서 민원 넣을 거니까. 아, 변호사 통해서 내용증명은 이미 뽑아놨어."
채팅창이 3초간 정지했다. 그리고 이내 폭발했다.
이게 어디 봐서 재벌가에서 버림받은 비련의 여주인이란 말인가? 이건 연예계를 참교육하러 강림한 저승사자가 분명했다. 제작진이 파놓은 함정은 이미 내가 가루로 만들어버린 지 오래였다. 카메라를 든 촬영 감독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1
새벽 6시. 강남의 최고급 빌라 단지는 새소리조차 조심스러울 만큼 고요했다. 리얼리티 예능 '디어 마이 패밀리' 시즌 5의 제작진은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이 펜트하우스 문 앞까지 쥐새끼처럼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조연출은 카메라를 향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마스터키를 만지작거렸다. 실시간 댓글창은 이미 악의적인 기대감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강서윤 민낯 보나?], [떡진 머리에 잠꼬대하는 거 박제 가즈아!]
띠릭.
적막을 깨는 전자 도어록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카메라를 든 무리가 한탕 하겠다는 기세로 현관을 들이닥쳤다. 하지만 그들이 기대했던 당황스러운 비명이나 흐트러진 차림의 낭패감은 어디에도 없었다.
거실의 통창 커튼은 이미 완벽하게 걷혀 있었고, 이탈리아제 가죽 소파 위로 황금빛 아침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갓 내린 커피의 고소하고 쌉싸름한 향이 감돌았다.
나는 몸에 부드럽게 감기는 실크 홈웨어를 입고,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게 올린 채 앉아 있었다. 잔머리 한 가닥까지도 철저하게 계산된 각도로 고정된 상태였다. 손에 든 본차이나 커피잔을 가볍게 쥔 채 다리를 꼬고 앉아 침입자들을 바라보는 내 모습은, 집이 아니라 마치 상장 기업의 이사회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발표하려는 집행관 같았다.
맨 앞에 서 있던 카메라 감독이 주춤하며 카페트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 조연출의 얼굴에 떠올랐던 비열한 미소도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나는 잔을 내려놓았다. 찻잔 받침과 부딪히는 소리가 고요한 거실에 챙그랑 울려 퍼졌다.
"무단 가택 침입. 형법 제319조에 의거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오셨겠죠?"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다. 아무런 감정의 기복도 없었지만, 현장의 모든 이들은 등 뒤로 서늘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조연출은 이마의 식은땀을 닦으며 애써 제작진의 위엄을 되찾으려는 듯 미션 카드를 내밀었다.
"강서윤 씨, 이건 예능의 묘미인 기습 촬영입니다. 계약서에도 명시된 내용이라 저희에겐 촬영 권한이 있어요."
"계약서 제7페이지 세 번째 줄. '업무 시간 내의 돌발 촬영에 협조한다'고 되어 있죠."
나는 손목을 들어 다이아몬드가 박힌 시계를 톡톡 두드렸다.
"현재 시각 오전 5시 58분. 계약서상 명시된 업무 시작 시간인 6시까지 정확히 2분 남았네요."
자리에서 일어나자 실크 천이 몸의 곡선을 타고 유려하게 흘러내렸다. 차가운 향수 냄새가 공기를 스쳤다.
"나가요."
단 두 마디. 간결하고도 강력했다.
채팅창은 잠시 멈췄다가 이내 뒤집어졌다.
[와, 포스 미쳤다.], [싸가지 없다고 욕하고 싶은데, 법 조항 읊는 게 우리 집 고3 담임 같아서 다리가 후들거려.], [대본 아냐? 누가 6시에 풀메이크업하고 커피를 마셔?]
조연출은 내 아우라에 압도되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정말로 팀원들을 데리고 현관 밖으로 쫓겨났다. 나는 다시 소파에 앉아 태블릿 PC를 켰다. 카메라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6시 정각을 알리는 알람이 울리자, 나는 그제야 고개를 살짝 돌려 문밖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스태프들에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들어와요. 신발은 벗고. 카페트 1억짜리니까 오염되면 출연료에서 깔게요."
카메라 감독은 흙탕물이 묻은 운동화를 내려다보고, 눈이 시리도록 하얀 양모 카페트를 번갈아 보더니 말없이 신발을 벗었다. 양말만 신은 채 까치발로 들어오는 그들의 모습은 예능 촬영이라기보다 황실 알현식에 가까웠다.
2
2층에서 무거운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걷어차이는 굉음이 들려왔다.
지후였다. 헝클어진 까치집 머리에 해골이 그려진 블랙 티셔츠 차림의 지후가 잠이 덜 깬 짜증 섞인 얼굴로 계단 끝에 나타났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아이돌이자 강 회장의 금지옥엽인 그는 안하무인으로 행동할 자격이 충분했다.
채팅창에는 지후의 팬들이 '우리 오빠 잠도 못 잤다'며 제작진과 나를 향해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지후는 거실에 단정히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혐오감을 드러내며 난간을 타고 훌쩍 뛰어내렸다. 모델 같은 비율로 가뿐하게 착지한 그는 건들거리며 내 앞으로 다가와 티테이블 옆의 가죽 스툴을 발로 걷어찼다.
"야, 아줌마."
지후는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턱을 치켜들었다. "난 안 가. 위약금은 내 돈으로 낼 테니까, 그쪽이나 가서 원숭이 쇼 실컷 하시지?"
현장의 공기는 순식간에 영하로 얼어붙었다. 조연출은 흥분으로 손을 떨었다. 바로 이거다! 새엄마와 재벌 아들의 정면충돌!
나는 천천히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눈꺼풀을 들어 지후의 반항적인 얼굴을 2초간 응시했다. 화를 내지도, 달래지도 않았다. 그 어떤 감정도 섞이지 않은 무미건조한 시선이었다. 그리고 가방에서 카드 단말기 하나를 꺼냈다.
"위약금 100억. 카드? 아니면 계좌이체?"
지후는 멍청한 표정을 짓다 이내 코웃음을 쳤다. "미쳤어? 나 우리 아빠 법인 카드 있어. 누구 돈으로 긁든 그게 그거 아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모든 카메라가 지켜보는 앞에서 은행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스피커폰으로.
"안녕하세요. 강태건 회장님 대리인 강서윤입니다. 강지후 씨 명의의 모든 부속 신용카드와 통장을 즉시 정지시켜 주세요."
[네, 강서윤 님. 본인 확인 완료되었습니다. 즉시 정지 처리되었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공기가 갑자기 적막해졌다. 지후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휴대폰을 꺼내 이체를 시도했지만, 화면에 뜬 붉은색 '거래 불가' 메시지가 그의 얼굴을 벌겋게 물들였다.
"당신이 뭔데?!" 지후가 꼬리를 밟힌 고양이처럼 펄쩍 뛰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는 그보다 작았지만 기세는 그를 완전히 눌러버렸다.
"네 아빠가 서명한 위임장 덕분에. 그리고 난 법적으로 네 보호자니까. 넌 지금 빈털터리고, 오늘 아침 식사비조차 낼 능력이 없다는 뜻이야."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정갈한 샌드위치를 가리켰다.
"이 샌드위치 원가만 5만 원이야. 먹고 싶니? 그럼 '어머니'라고 불러봐."
지후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지고 목에 핏대가 섰다. "꿈 깨! 굶어 죽으면 죽었지 절대 안 해!"
"기개 하나는 좋네."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스태프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출발하죠. 애가 배가 안 고프다네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한정판 에르메스 백을 챙겨 뒤도 안 돌아보고 밖으로 향했다. 지후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고, 조용한 거실에는 그의 뱃속에서 들려오는 '꼬르륵' 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나를 욕하던 채팅창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오빠가 불쌍하긴 한데... 왜 저 여자 멋있어 보이지?], [카드 정지 한 방에 상황 종료. 이게 진짜 재벌 사모님 포스인가?], [새엄마가 아니라 조련사 같은데?]
3
제작진의 버스 안은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미 다른 세 팀의 출연진이 도착해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하얀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인기 여배우 유소희였다. 그녀는 조카를 데리고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직접 구운 쿠키를 돌리며 누구에게나 살갑고 가녀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버스에 올라타자 유소희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내 앞으로 다가왔다.
"서윤 언니, 오셨어요! 평소에 집 밖으로 잘 안 나오신다고 들었는데, 오늘 이렇게 일찍 일어나셔서 정말 힘드시겠어요."
말투는 다정했지만, 속뜻은 명확했다. 나를 집안에만 박혀 있는 게으른 사모님으로 몰아가려는 수작이었다.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아 선글라스를 벗으며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안 힘들어요. 돈 세는 게 좀 지겨웠는데, 바람 쐬러 나오니까 좋네요."
유소희의 미소가 경련하듯 굳어졌다. 대화의 흐름이 완전히 끊겨버린 것이다. 버스가 출발하려는 찰나, 갑자기 급정거했다. 내 자리 옆에 서 있던 유소희는 비명을 지르며 과장되게 앞으로 고꾸라졌고, 손에 들고 있던 쿠키 박스는 바닥에 떨어져 가루가 되었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발목을 부여잡은 채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나를 원망스럽게 올려다봤다.
"서윤 언니... 저 싫어하시는 거 알지만, 그렇다고 발을 거시는 건 너무하잖아요... 이건 모두를 위해 준비한 아침이었는데..."
버스 안이 술렁였다. 다른 출연자들이 비난 섞인 시선을 보냈고, 뒷좌석에 앉아 있던 지후는 이어폰을 낀 채 비웃으며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댓글창은 다시 광분했다. [강서윤 인성 봐라! 진짜 독하다!]
나는 발치에서 열연 중인 유소희를 내려다보다가,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 쿠키 가루가 튄 바지 밑단을 천천히 닦았다.
"유소희 씨, 그쪽이 넘어진 자세는 물리 법칙에 전혀 맞지 않아요."
내 목소리는 판결문을 낭독하는 판사처럼 냉정했다.
"차는 앞으로 쏠렸는데, 몸은 대각선 뒤로 넘어졌네요. 그것도 딱딱한 모서리를 피해 정확히 살집이 많은 엉덩이 쪽으로. 이건 상당한 코어 근육의 통제가 필요한 동작이죠."
나는 허리를 숙여 당황한 유소희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 이 버스, 벤츠 최신형이라 천장에 360도 무사각 블랙박스가 달려 있어요. 지금 당장 기사님께 부탁해서 전국 시청자들에게 물리 수업이라도 한 번 해볼까요?"
유소희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녀는 잊고 있었다. 이 버스가 자신이 타던 일반 버스가 아니라, 재벌가 전용 리무진 버스라는 사실을.
"아... 아니에요. 제가 발이 꼬였나 봐요..." 유소희는 좀비처럼 벌떡 일어났다.
"알면 됐어요." 나는 다시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다음엔 좀 더 유능한 작가랑 상의해요. 대본이 너무 촌스러워서 졸리니까."
뒷좌석의 지후는 이어폰 한쪽을 뺀 채, 복잡미묘한 눈빛으로 내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여자, 소문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4
목적지는 한적하고 낙후된 시골 마을이었다. 감독이 확성기를 들고 규칙을 발표했다. "가족 간의 유대감을 위해 모든 출연진은 지갑, 휴대폰, 간식을 반납합니다. 제작진이 드리는 1만 원의 초기 자금으로 이틀을 버티셔야 합니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후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헝클이며 텅 빈 주머니를 뒤집어 보였다. "난 돈 없어. 아침에 다 정지당했다고."
감독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이제야 이 사모님이 당황하겠지 싶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아주 협조적으로 에르메스 백을 건네주고는 손을 내밀었다. "1만 원, 주세요."
돈을 받자마자 나는 지후를 데리고 길을 나섰다.
"야, 어디 가?" 지후는 배고픔에 예민해진 상태로 내 뒤를 쫓았다.
"돈 벌러."
"1만 원으로 뭘 해? 로또라도 사게?"
나는 지후를 데리고 마을에서 가장 고급스러워 보이는 한정식 집으로 들어갔다. 지후는 기가 찬다는 듯 소리쳤다. "미쳤어? 여기 보리차 한 잔도 만 원은 넘을 텐데!"
나는 대꾸도 없이 카운터로 가서 만 원짜리 한 장을 탁 내려놓았다. 그리고 벽에 걸린 커다란 서예 작품을 가리켰다.
"사장님, 저 글자 거꾸로 걸렸네요."
퉁퉁한 사장님이 고개를 들며 비웃듯 대꾸했다. "댁이 뭘 안다고 그래? 이거 유명한 서예가가 쓴 초서체야!"
"당나라 회소의 '자서첩' 모사본이네요. 세 번째 줄 두 번째 글자가 '광'자인데, 지금 걸어두신 건 '풍'자 방향으로 뒤집혔어요. 풍수지리상 이걸 '도행역시'라고 하죠. 순리에 어긋난다는 뜻이에요. 사장님 가게에 손님보다 파리가 많은 이유가 여기 있었네요."
내 말투는 담담했지만, 송곳처럼 날카로웠다. 사장님은 멍하니 있다가 달려 나와 글자를 살피더니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10분 후.
나와 지후는 식당에서 가장 좋은 방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정갈한 한정식 코스와 최고급 보이차가 차려졌다. 사장님은 옆에 서서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 "선생님, 이제 제대로 걸린 거 맞죠? 식사는 대접해 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이건 감사의 뜻으로 드리는 봉투입니다!"
나는 담담하게 50만 원이 든 봉투를 챙기고 수정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넋이 나간 지후를 바라봤다.
"먹어. 이게 지식 노동의 대가야."
지후는 침을 꿀꺽 삼키며 나를 쳐다봤다. 처음으로 이 여자가... 보통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눈치였다. 라이브 채팅창은 이미 난리가 났다.
[저 여자 정체가 뭐야? 초서체를 어떻게 알아?], [남들 생존 예능 찍을 때 혼자서 지식 예능 찍네.], [악독한 새엄마인 줄 알았는데 지성미 폭발...]
저녁 숙소 배정은 제비뽑기였다. 유소희는 가장 열악한 초가집을 뽑았지만, 카메라를 향해 억지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자연과 가까워지는 기분이라 아이도 좋아할 거예요, 그치?" 하지만 조카는 콧물까지 흘리며 울고 있었다.
나는 1번 방, 문도 제대로 안 닫히는 낡은 한옥 마당을 뽑았다. 지후는 쥐가 나올 것 같은 방을 보고 폭발했다. "난 여기서 못 자! 이게 사람 사는 데야? 쥐 나오면 책임질 거야?" 그는 울타리를 발로 차며 돌아서려 했다.
나는 지후의 뒷덜미를 낚아채서 병아리처럼 끌고 왔다.
"여기가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건 맞네." 나는 차분하게 주위를 둘러보며 동의했다. 지후는 내가 드디어 화를 낼 줄 알고 내심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휴대폰을 꺼내(제작진이 소통을 위해 돌려준 공용 폰이었다) 앱 하나를 켰다.
"근데 이 마을, 우리 강 그룹 산하 문화관광 재단에서 개발한 곳이거든."
나는 전자 지도를 확대해 산 정상에 있는 가장 호화로운 한옥 별장을 가리켰다.
"방금 소유주 확인해 봤는데, 저 건물 현재 내 명의로 되어 있어. 네 아빠가 지난달 생일 선물로 준 건데 깜빡했네."
지후: "......"
제작진: "......"
"그러니까," 나는 휴대폰을 집어넣으며 얼어붙은 감독에게 미소 지었다. "규칙 위반이 아니라 그냥 우리 집에 가는 거예요. 이건 무효 아니죠?"
10분 후. 다른 출연자들이 모기에 뜯기며 고생할 때, 유소희가 초가집에서 눈물을 훔치며 강한 척할 때, 나는 지후와 함께 산 정상 별장 테라스에 앉아 있었다. 발밑으로는 마을의 야경이 펼쳐졌고, 집사가 가져온 따뜻한 우유가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렸다.
지후는 우유 컵을 쥔 채 롤러코스터를 탄 듯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는 옆에서 별을 구경하는 내 옆얼굴을 훔쳐봤다. 차분한 그 옆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이 여자, 머리만 좋은 게 아니라 돈도 많구나.
"야." 지후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오늘... 고맙다고."
나는 고개를 돌려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하기엔 일러. 이 집 전기세, 수도세, 그리고 네가 마시는 그 우유값까지 다 네 장부에 달아뒀으니까. 이자는 시중 은행의 3배로 계산할 거야."
지후의 손이 떨리며 우유를 쏟을 뻔했다.
"강서윤! 진짜 독종이야, 당신!"
산 정상에서 소년의 절규가 울려 퍼졌고, 그 뒤로 여자의 낮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스트리밍 창은 [ㅋㅋㅋㅋㅋ]와 [이 조합 의외로 설렌다]는 반응으로 도배되었다. 이 재벌가 길들이기 게임은 이제 막 시작이었다.
5
물안개가 자욱한 시골 마을의 아침. 제작진은 어제 나에게 당한 수치를 설욕하려는 듯, 돈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미션을 가져왔다. 바로 '진흙탕에서 연근 캐기'였다. 규칙은 간단했다. 캔 만큼 먹을 수 있고, 못 캐면 굶는 것.
내가 다시 '집에 가서 밥 먹기' 같은 수를 쓰지 못하도록 감독은 모든 교통수단을 차단했고, 마을에서 10km나 떨어진 외딴 연못에 우리를 몰아넣었다.
지후는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검은 진흙을 보며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한정판 운동화와 진흙탕에 뛰어들 준비를 하는 유소희를 번갈아 보더니 완전히 자포자기했다.
"난 안 들어가. 더러워 죽겠는데 누가 해?"
유소희는 이미 연못가에서 바지를 걷어붙이고 있었다. 그녀는 하얀 종아리를 드러낸 채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지었다. "지후 군, 사실 그렇게 안 더러워요. 농부님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서윤 언니, 지후 군 좀 설득해 봐요."
또 시작이었다. 도덕적 우월감을 내세운 그녀의 발언에 팬들은 '역시 소희 언니는 개념 있다'며 나와 지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나는 화이트 린넨 슈트에 7cm 힐을 신은 채 논두렁에 서 있었다. 주변 환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유소희를 무시하고 곰방대를 물고 계신 동네 어르신에게 다가갔다.
"어르신, 올해 연근 농사 망치셨죠?"
어르신은 깜짝 놀라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아니, 그걸 어찌 알았소? 올해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뿌리가 다 썩어 나가서 속이 타 죽겠구만."
나는 선글라스를 벗고 예리한 눈빛으로 연잎 끝을 가리켰다. "잎 가장자리가 노랗게 변하고 줄기에 검은 반점이 있는 건 전형적인 연근 부패병이에요. 그냥 캐기만 해서는 내년에도 다 썩을 겁니다."
어르신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곰방대를 내려놓고 일어났다. "아니, 새댁이 그걸 어찌 그리 잘 아나? 해결 방법이 있소?"
"조금 알죠."
나는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지후의 옷에 달려 있던 장식용 천 조각 하나를 거침없이 뜯어냈다. 지후가 항의하려 했지만 내 눈빛 한 번에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 천 조각 위에 화학 공식과 약제 배합비를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이 처방대로 읍내 농약방 가서 약 사다가 물에 타서 뿌리세요. 사흘이면 잡힐 겁니다. 효과 없으면 서울 강 그룹 본사로 오세요. 10배로 보상해 드릴게."
어르신은 그 천 조각을 보물처럼 받쳐 들고 손을 떨었다. "이런 귀한 걸... 정말 고맙소! 큰 도움을 받았네!"
나는 미소 지으며 진흙 속에 묻힌 연근들을 가리켰다. "연근이 먹고 싶은데, 전 들어가기 싫거든요. 이 정도면 공정한 거래 아닐까요?"
"공정하다마다! 너무 공정하지!" 어르신은 옆 논에서 일하던 청년들을 불러 모았다. "얘들아! 여기 새댁 연근 좀 캐드려라! 제일 크고 싱싱한 놈으로 골라서 씻어서 숙소까지 배달해 드려!"
5분 후. 유소희는 진흙밭에서 다리가 빠져 낑낑대며 얼굴에 진흙 범벅이 된 채 고생하고 있었고, 다른 출연자들은 허리가 끊어질 듯 일해서 겨우 젓가락만 한 연근 두 개를 캤다.
반면 나는 어르신이 가져다준 대나무 의자에 앉아, 어르신이 직접 씌워준 양산 아래에서 갓 씻은 아삭한 연근을 씹고 있었다. 지후는 내 옆에 앉아 발 끝에 흙 한 방울 안 묻힌 채 연근을 받아먹으며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감독은 모니터 뒤에서 뒷목을 잡았다. 이건 생존 예능이 아니라 '농촌 진흥청 전문가의 현장 지도'였다. 댓글창의 여론은 완전히 뒤집혔다.
[와... 식물 병리학까지 알아?], [강서윤: 난 연근을 캐지 않는다. 과학을 캐지.], [유소희 얼굴 보고 강서윤 보니까 왠지 모를 쾌감이 느껴진다.]
6
점심시간, 마을 어귀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서 식사 시간이 마련됐다. 유소희는 속이 부글부근 끓는 모양이었다. 오전 미션에서 완패한 데다 화장은 지워지고 피부는 햇볕에 그을려 따가웠으니까.
반면 뽀얀 피부로 빛나는 내 얼굴을 보자 그녀의 질투심이 극에 달한 듯했다. 그녀는 뜨거운 국물을 한 대접 들고 내 옆을 지나가는 척하다가 발을 삐끗하며 국물을 내 손등을 향해 쏟으려 했다. 그녀가 자주 쓰던 수법이었다. 내가 피하거나 밀치면 그대로 넘어져서 '나쁜 새엄마' 프레임을 씌우려 했겠지.
하지만 나는 피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기묘한 각도로 손에 들고 있던 스테인리스 쟁반을 들어 쏟아지는 국물을 정확히 받아냈다.
챙그랑!
국물은 단 한 방울도 흐르지 않고 쟁반 안으로 담겼다. 유소희는 너무 세게 힘을 준 나머지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나는 태연하게 앉은 채로 힐을 신은 발끝을 살짝 들어 그녀의 무릎을 받쳐주었다.
유소희는 그대로 내 앞에 '콰당' 하고 무릎을 꿇었다. 아주 공손하고 간절하게 절을 올리는 자세였다. 현장은 적막에 휩싸였다. 물을 마시던 지후는 뿜을 뻔한 걸 참느라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유소희는 당황해서 2초간 멍하니 있다가, 곧바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무릎을 부여잡았다. "서윤 언니... 전 그냥 국물 가져다드리려고 한 건데 왜 발을 거세요? 제가 부족한 거 알지만 이렇게까지 모욕 주실 필요는 없잖아요..."
주변의 주민들과 스태프들이 모여들어 수군대기 시작했다.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이겼다고 확신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유롭게 쟁반을 내려놓고 티슈로 쟁반 끝에 튄 국물 한 방울을 닦아냈다.
"유소희 씨, 인간의 미세 표정은 무의식적인 동기를 완전히 숨길 수 없다는 거 알아요?"
나는 상체를 숙여 눈물 고인 그녀의 눈을 빤히 들여다봤다. 압도적인 압박감에 그녀가 주춤했다.
"넘어지는 척하기 0.5초 전, 그쪽 시선은 왼쪽 아래 낙하지점을 확인했어요. 국물이 쏟아지는 순간엔 입꼬리 근육이 미세하게 올라갔죠. 그건 '당황'이 아니라 '성취감'을 뜻해요."
나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가를 톡 건드렸다.
"그리고 진짜 아파서 흘리는 눈물은 동공 수축과 가쁜 호흡을 동반하죠. 근데 그쪽은 동공도 정상이고 호흡도 평온하네요. 눈물만 일정하게 흐르는 걸 보니, 이건 생리식염수 30%에 연기력 70%로 구성된 눈물이네요."
유소희는 넋이 나간 듯 눈물을 멈추고 입을 벌린 채 나를 바라봤다.
"기왕 무릎까지 꿇었으니."
나는 가방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그녀의 품에 던졌다. "절값이 좀 이른 감이 있지만, 난 공짜로 절 받는 성격 아니라서. 이거 가져가서 안약이나 좋은 걸로 사요. 다음엔 좀 더 진심을 담아 울어보든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가뿐히 넘어서 걸어갔다. 지후는 낄낄거리며 내 뒤를 따르다 유소희 옆에서 한마디 보탰다. "거기 아마 5천 원 들었을걸요? 우리 아줌마 현금 별로 없으니까 아껴 써요."
실시간 스트리밍 창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강서윤 인간 거짓말 탐지기네 ㅋㅋㅋㅋ], [미세 표정 분석 실화냐? 소름 돋아.], [지후가 마지막에 확인사살 하는 게 진짜 웃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