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잡러인 내게 상사가 다섯 번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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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잡러인 내게 상사가 다섯 번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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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누워 멍하니 스마트폰 화면을 넘기고 있었다. 새벽 공기가 차갑게 내려앉은 시간, 실시간 인기 급상승 게시글 하나가 내 시선을 붙들었다. 글쓴...

Chương (1)

第1章

침대에 누워 멍하니 스마트폰 화면을 넘기고 있었다. 새벽 공기가 차갑게 내려앉은 시간, 실시간 인기 급상승 게시글 하나가 내 시선을 붙들었다. 글쓴이는 오늘 하루 동안 무려 다섯 명의 여자에게 대책 없이 마음을 빼앗겼노라 고백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사랑에 빠진 대상들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했다. 버블티 매장의 앳된 알바생, 음식을 배달해 준 라이더, 택시 기사, 숏폼 플랫폼의 스트리머, 그리고 새로 온 비서까지. 댓글창은 이미 난리가 나 있었다. 사람들은 날 선 농담을 던지며 글쓴이를 조롱했다. [한 사람 사랑하기도 벅찬 세상에, 이 아저씨는 오등분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진짜 무섭다. 밥 시키다 사랑에 빠지고 택시 타다 사랑에 빠지고... 금사빠도 정도가 있지.]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그 다섯 개의 정체가 사실 모두 '나'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하루 24시간을 쪼개 다섯 개의 잡을 뛰며 살아가는 나의 처절한 생존 기록이 누군가에겐 로맨틱 코미디의 소재가 된 셈이다. 그리고 그 글을 올린 주인공. 안면인식장애가 있는 나의 직장 상사, 강이준 대표가 분명했다. 1 새벽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본 게시글의 제목은 이랬다. [동시에 다섯 여자와 사랑에 빠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좋죠?] 돈 버는 속도에 방해만 되는 연애질 고민이라니. 바로 뒤로가기를 누르려는데, 작성자의 프로필 사진이 지나치게 익숙했다. 우리 회사 대표, 강이준 아닌가? 나는 홀린 듯 다시 글을 클릭했다. 서사 방식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오늘 하루 동안 버블티 알바생, 배달 라이더, 택시 기사, 스트리머, 그리고 비서에게 영혼을 빼앗겼다는 기막힌 이야기. [오늘 출근길에 람보르기니랑 포르쉐가 동시에 고장이 났습니다. 어쩔 수 없이 호출 앱으로 택시를 불렀는데, 운전석에 앉은 그녀의 달콤한 미소가 제 심장을 때리더군요. 더 대박인 건, 끼어들기 하려는 차를 향해 상대방 조상님 안부까지 물어가며 거칠게 몰아붙이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우아하던지.] 댓글창은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어느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재벌 3세인가요?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셨네. 롤스로이스는 어디 두고?] [욕하는 모습에 반하다니, 취향 참 독특하시네.] 작성자가 곧장 답글을 달았다. [롤스로이스는 정기 점검 중이라 아직 안 왔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욕한 건 다 이유가 있었어요. 제가 회의 늦겠다고 하니까 칼치기까지 해가며 정시에 도착시켜 줬거든요. 순전히 저를 위해서였죠.] 나는 깊은 침묵에 빠졌다. 오늘 아침, 평소처럼 택시 부업을 나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손님을 태웠다. 바로 우리 대표님이었다. 빌라 단지 내 속도 제한 때문에 단지를 빠져나가는 데만 10분이 걸렸고, 시간은 이미 아슬아슬했다. 그의 회의는 10시였지만, 내 출근 체크는 9시 반까지였다. 그래서 눈에 불을 켜고 번개처럼 달렸다. 끼어드는 놈들에겐 찰진 육성으로 참교육을 시전하며 그를 회사 앞에 정확히 내려줬다. 그런데 강이준이, 그 모습에 반했다고? 당황할 틈도 없이 새 글이 올라왔다. [오전 내내 그 기사님 생각에 입맛이 없어서 대충 배달을 시켰습니다. 음식을 들고 온 라이더와 마주쳤는데, 마침 회사 로비에서 취객이 행패를 부리고 있더군요. 그녀는 헬멧을 벗더니 정확한 포물선을 그리며 그놈의 뒤통수를 갈겼습니다. 그 절도 있는 동작, 너무 멋있어서 사랑에 빠졌어요. 한 손에 든 제 도시락은 국물 한 방울 안 흘리고 무사했죠.] 댓글은 이제 체념한 듯 보였다. [입맛 없다면서 배달은 왜 시킴? 전형적인 남자들 핑계 보소.] [그래서 또 사랑에 빠졌다고요? 택시 기사님은 잊었나요?] 답글이 달렸다. [아직 아주 많이 사랑합니다. 여기까지 벌써 두 명째군요.] 나는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도중에 전화가 왔다. 버블티 카페 사장이었다. “나채아, 너 오늘 왜 두 시간만 하고 도망가? 일당 안 받고 싶어?” 나는 물기도 닦지 못한 채 억울함을 토로했다. “사장님, 제가 두 시간 동안 남들 네 시간 치 물량을 뺐잖아요. 추가 수당 안 청구한 게 다행인 줄 아세요. 그리고 오늘 매장에서 손님 한 명 질식사할 뻔한 거 제가 응급처치해서 살려놓은 거 잊으셨어요? 아니었음 사장님네 가게 내일 뉴스 나왔다고요.” 사장은 잠시 침묵하더니 꼬리를 내렸다. “...알았다. 끊어. 내일 정시에 와라.” 전화를 끊고 보니 글이 또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퇴근길에 버블티가 마시고 싶어 매장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알바생의 미소가 왠지 낯익더군요. 어디서 본 것 같아 멍하니 쳐다보다가 들킬 뻔했죠. 당황해서 빨대를 세게 빨았더니 펄이 목에 걸려 죽을 뻔했습니다. 그때 그녀가 절 구해줬어요. 네, 세 번째 사랑이 시작됐습니다.] [진심을 다 바치는 게 너무 힘들어 친구에게 상담했더니, 주의를 돌리라며 숏폼 영상을 추천해 주더군요. 그런데 거기서 코로 풍선을 부는 엄청난 재능을 가진 스트리머를 발견했습니다.] 샤워실에서 나오다 휴대폰에 집중한 나머지 방송용 조명에 부딪힐 뻔했다. 댓글창은 이제 폭주 상태였다. [이게 무슨 재벌의 연애 일기냐, 보는 족족 사랑에 빠지게.] [재벌답게 행동하세요. 당장 비서한테 전화해서 '10분 안에 그 여자들 신상 털어와'라고 시키라고요.] 작성자가 이 댓글에 답을 남겼다. [그건 안 됩니다. 저, 제 비서도 정말 좋아하거든요... 일 처리도 확실하고, 무엇보다 이사회 늙은이들한테 저 대신 시원하게 독설을 퍼부어 주는데 정말 반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입사 전, 선배들은 경고했다. 우리 직속 상사가 지독한 안면인식장애라고. 그 병 때문에 이미 비서가 일곱 명이나 잘려 나갔다. 내가 여덟 번째였다. 출근 첫날, 나는 아주 정직하게 사원증을 가슴에 달았다. 강이준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깍듯이 인사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새로 온 비서 나채아입니다.” 남자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중얼거렸다. “돈...채아... 이름 좋네요.” 나는 이름값대로 살기로 했다. 내 목표는 단순하다. 돈, 아주 많은 돈을 버는 것! 2 지금 회사를 다니는 건 높은 연봉 때문이기도 하지만, 복지가 좋아서였다. 아침 9시 출근, 저녁 5시 퇴근. 게다가 점심시간은 넉넉히 두 시간. 나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씻고 나가서 택시 핸들을 잡는다. 9시 반이면 사무실 책상에 앉아 업무를 시작한다. 11시 반,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헬멧을 쓰고 배달을 뛴다. 오후 5시 퇴근 후에는 카페로 달려가 세 시간 동안 버블티를 흔든다. 밤 9시부터는 두 시간 동안 코로 풍선을 부는 기묘한 장기 자랑 라이브 방송을 한다. 일정은 꽉 찼고, 통장 잔고는 무섭게 불어났다. 모든 게 계획대로였다. 강이준이 나라는 한 사람을 두고 다섯 명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만 빼면. 글이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자 댓글의 수위도 높아졌다. [사랑하는 것도 피곤하겠다. 오등분해서 연애할 거임?] [남자들 '금사빠' 진짜 무섭네. 배달원한테 반하고 기사한테 반하고.] [돈은 있고? 요새 주작 글 쓰기 참 쉽네.] 사랑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실질적인 게 최고지. 비서 월급을 올려주든, 스트리머한테 후원을 쏘든, 라이더랑 기사한테 팁을 주든 해야지. 그 생각을 하는 찰나, 휴대폰에 강이준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 비서, 고생이 많네요. 이번 달부터 연봉 30% 인상입니다.] 나는 침대 위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이어 배달 앱과 택시 앱에서도 연달아 팁 결제 알림이 울렸다. 라이브 방송 채널에는 개인 메시지(DM)가 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다음 방송은 언제인가요? 별풍선 많이 쏘고 싶네요.] 답장을 보내는 손이 떨렸다. 비서실 단톡방에는 강이준이 특보를 소환했다. [@최특보, 내일 이 버블티 매장에 감사장 전달하고, 내가 준비한 보너스 봉투도 전해줘요.] 특보는 즉시 확인했다고 답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머리를 굴렸다. 폭풍 같은 두뇌 회전 끝에, 나는 그 게시글에 댓글을 남겼다. [글쓴이님, 다들 비웃어도 저는 당신을 믿어요. 그 마음 너무 잘 알 것 같거든요. 걱정 말고 당당하게 직진하세요! 대신 진심을 담아 돈으로 정성을 보이세요. 망설이지 말고 팍팍 쏘셔야 합니다!] 그날부터 나는 강이준의 온 세상을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그의 출근길 택시 기사가 되었다. 어제 처음 탔을 때의 무심한 표정과 달리, 오늘의 그는 확실히 달랐다. 차에 타자마자 은은하게 풍기는 니치 향수 냄새. 머리는 정교하게 세팅되어 있었고, 수트의 커프스링크까지 완벽했다. 남자는 번호판을 확인하더니 얼굴에 반가운 기색을 띠었다. “혹시 어제도 기사님이 저 데려다주지 않으셨나요?” 백미러로 뒷좌석의 그를 보며 가볍게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강이준의 입가에 미소가 깊게 번졌다. “이틀 연속이라니, 이거 하늘이 정해준 운명 아닐까요?”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운명은 무슨. 내 솔로 기간만큼 단련된 신들린 손가락 클릭 속도로 낚아챈 배차인데. 번개처럼 달려 그를 회사에 내려준 뒤, 나는 슬쩍 QR 코드를 내밀었다. 그는 눈을 빛내며 휴대폰을 꺼냈다. “번호 따달라는 뜻이죠...?” 다음 순간, 결제 페이지가 뜨자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예약비 포함 13만 6천 원입니다. 별점 5점 부탁드려요.” 그가 내린 뒤, 나는 근처 주차장으로 차를 몰아 옷을 갈아입고 회사로 들어가 출근 도장을 찍었다. 오전 업무는 평화로웠다. 강이준이 가끔 벽 너머로 나를 훔쳐보는 게 느껴졌지만 모른 척했다. 점심시간, 또다시 신의 손으로 강이준의 배달 주문을 낚아챘다. 팁으로만 현금 2만 원을 더 받았다. 오후 외근 길에는 심부름 대행 두 건을 해치웠다. 저녁엔 버블티 매장에서 감사 인사를 하러 온 그를 맞이했고, 밤 라이브 방송에선 'YANJIN'이라는 아이디의 유저에게 거액의 후원을 받았다. 몸은 고됐지만 통장은 묵직해졌다. 돈을 세느라 손가락이 저릴 지경인데, 강이준의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다섯 명을 사랑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네요. 그런데 이상한 건, 그녀들이 점점 한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이미 화제가 된 게시물이라 조회수는 폭발적이었다. [대표님, 아직도 사랑 중이심? 밤에 혼자 자기 안 심심함?] 작성자가 답했다. [밤에는 늘 혼자 잡니다. 전 그녀들 모두를 아주 순수하게 사랑하거든요.] [순수한 사랑인데 다섯 명이나? 얼굴이 다 똑같아 보인다고? 그냥 취향이 소나무라고 솔직히 말해!] [언제까지 짝사랑만 할 거임? 이쯤 되면 직진해야지.] [비서한테 블랙카드 주면서 스폰 제안해 봐요. 배달원한테는 아예 업체 통째로 계약하겠다고 하고, 스트리머한테는 만나자고 들이대야지.]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라이브 계정 메시지함에 강이준의 메시지가 떴다. [스트리머님, 실례가 안 된다면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망설였지만 결국 수락했다. 다행히 강이준은 매너가 좋았다. 무례한 말은 일절 없었다. 그저 왜 이렇게 늦은 밤에만 방송을 하느냐고 물을 뿐이었다. 나는 낮에는 일이 너무 바빠서 그렇다고 둘러댔다. [아, 가여워라. 하루에 일을 몇 개나 하시는 거예요? 사장이 진짜 나쁜 놈이네.] 3 나는 속으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스트리머용 가상의 비극 서사를 지어내기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알코올 중독 아빠, 투병 중인 엄마, 공부하는 남동생, 무너진 집안. 성공적으로 강이준의 동정심을 자극했다. 기세를 몰아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방송 봐주시는 분들 덕분에 힘이 나요. 후원해 주시는 것도 영광이고요.” 강이준은 당장 내일도 오겠다며 약속했다. [근데, 이름이 뭐예요?] “저... '가희'라고 해요.” (돈'가'희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강이준은 어느새 버블티 매장의 VVIP가 되어 있었다. 택시, 배달, 심부름 앱에서도 '팁 요정'으로 이름을 날렸다. 결국 그는 나의 모든 '부캐' 연락처를 따내는 데 성공했다. 하루에 800번을 마주치면서도 그는 여전히 내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설정을 더 확고히 하기 위해 캐릭터마다 사연을 부여했다. 배달 라이더는 가난한 고학생, 스트리머는 기구한 가정사. 하지만 가끔 말실수를 할 때가 있었다. 며칠 전, 비서로서 야근을 거절하며 아빠가 아파서 간호하러 가야 한다고 둘러댔는데, 서류를 보던 강이준이 툭 고개를 들었다. “나 비서, 아버지는 일곱 살 때 돌아가셨다면서요?” “아... 새아버지예요.” 다행히 나의 임기응변과 연기력 덕분에 그는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대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자 사무실 안에서 나를 견제하는 시선이 생겼다. “나채아 씨, 이 서류 지사로 직접 갖다주고 와요.” 선배 한서연이 서류 뭉치를 내 책상에 던졌다. 임원 딸이라는 배경을 믿고 평소에도 나를 종 부리듯 하던 여자였다. 동료들은 참으라고, 가급적 대표랑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조언했다. “솔직히 말해줄게. 서연 씨가 우리 대표님 짝사랑하는 거 온 회사가 다 알아. 대표님 주변 5미터 안에 들어오는 여자는 다 숙청 대상이야.” 나는 기가 막혀 한숨을 내쉬었다. “왜 여자만 공격해? 대표님이 게이일 수도 있잖아.” 이건 불공평하다. 남녀평등은 어디 갔나. “나채아! 내 말 안 들려? 두 시간 안에 다녀오라고.” “밖에 비 오는데 심부름 센터 부르면 안 돼요?” “안 돼. 네가 가.” 서슬 퍼런 태도에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알겠어요. 그럼 거기 깔린 배달 앱 좀 켜보실래요? 주문 하나만 넣어주세요.” “말귀 못 알아들어? 네가 가라고.” “그러니까 제가 간다고요.” 나는 책상 밑에 숨겨둔 파란색 배달 조끼를 꺼내 입고 그녀를 향해 보란 듯이 웃어 보였다. “서연 언니, 돈 벌 기회 줘서 고마워요!” 비 오는 날이라 할증까지 붙는다. 서류 한 번 배달하고 2만 원 넘게 벌 수 있는데, 안 할 이유가 없지. 회사를 나서는 길에 동료가 문자를 보냈다. [너 미쳤어? 한서연 지금 사무실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어.]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별점 5점이나 줄지 고민할 뿐이었다. 그런데 회사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망했다. 강이준이다. 직원들은 죽어라 일하는데 대표가 로비에서 땡땡이라니. “초롱 씨? 당신이 왜 여기 있어요?!” (배달 라이더일 때의 내 가명이었다.)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강이준은 반가움이 가득한 눈으로 내게 달려왔다. “배달하러 온 거예요? 학비는 많이 모았어요? 사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데.”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안면인식장애라며? 대체 나인 걸 어떻게 안 거야? “저인 줄 어떻게 알았어요?” 내 물음에 강이준은 눈을 내리깔며 수줍게 대답했다. “사실 얼굴은 여전히 잘 기억 안 나요. 근데 이 옷을 입은 당신의 실루엣은 제 뇌가 기억하더라고요.”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어색하게 웃으며 도망갈 자리를 찾는데, 하필 한서연이 로비를 지나갔다. “나채아! 왜 이렇게 빨리 왔어?” “나채아? 당신 이름이 초롱이 아니라 채아였어요?” 강이준이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한서연이 점점 다가오자, 나는 다급히 지사에서 받아온 확인 서류를 그녀의 손에 쑤셔 넣었다. “손님, 주문하신 물건 배달 완료했습니다. 별점 5점 꼭 부탁드려요!” 한서연이 뭐라고 하려는 찰나, 나는 하늘을 향해 거대한 재채기를 내뿜었다. 침방울이 그녀의 얼굴에 튀자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아, 진짜 더러워!” 그녀가 질색하며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나는 뒤를 돌아 강이준의 시선과 마주쳤다.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신, 진짜 정체가 뭡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