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뒤에야 나를 믿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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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뒤에야 나를 믿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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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을 떠돌며 아래에 쓰러져 있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마음 한구석이 엄마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득 찼다. 이번에도, 나는 엄마를 창피하게 만들고 말...

Chương (1)

第1章

허공을 떠돌며 아래에 쓰러져 있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마음 한구석이 엄마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득 찼다. 이번에도, 나는 엄마를 창피하게 만들고 말았나 보다. 모든 일은 그놈의 10km 완전군장 산악 구보에서 시작됐다. 엄마는 우리 중대의 중대장이었다. 그녀는 혹여라도 생길 특혜 논란을 피하고자, 천식을 앓고 있는 나를 기어코 훈련에 참여시켰다. 20kg이 넘는 군장을 짊어지고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나는 찢어질 듯한 폐를 움켜쥐며 거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절반쯤 왔을까,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증상을 완화해 줄 흡입기를 꺼내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끝이 채 닿기도 전에, 뒤따라오던 박하은이 낚아채듯 그것을 뺏어 산 아래로 던져버렸다. 그러고는 대열 맨 앞에 선 엄마의 환심을 사려는 듯 큰 소리로 외쳤다. “중대장님! 이서윤 이병이 또 꾀병을 부리려고 합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끝까지 책임지고 뒤처지지 않게 하겠습니다!” 엄마는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 서려 있었다. “온 중대원이 너 하나 때문에 지체되고 있어. 부끄럽지도 않니?” “못 걷겠으면 기어서라도 가. 그것도 못 하겠으면 그냥 굴러버려. 여기서 내 얼굴 먹칠하지 말고.” 그 말을 끝으로 엄마는 다시는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발을 뗐다. 보이지 않는 손이 가슴을 옥죄는 것 같았고, 눈앞은 서서히 암전되어 갔다. 결국 8km 지점에 다다랐을 때,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바닥 위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1 출발할 때 몇몇 병사들이 내 곁을 지나가며 수군거렸다. “중대장님 진짜 독하시네. 자기 딸한테 저러기 쉽지 않은데.” “그러게 말이야. 예외라는 게 없네.” “근데 중대장님 딸은 원래 군악대 소속이라 이런 훈련 안 받아도 되는 거 아니었어?” “에이, 뭘 모르네. 중대장님이 일부러 그러시는 거잖아. 안 그러면 누가 영을 따르겠어.” 그 말들이 웅성거리며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차가운 돌과 흙먼지 속에 얼굴을 묻고 엎드려 있었다. 무거운 군장이 여전히 나를 짓누르고 있었고, 국방색 전투복은 풀숲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아니, 그들은 내 몸을 밟고 지나갔다. 어디선가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다. 마지막 사람이 지나갈 때, 군화 끝이 내 전투복 자락을 건드렸다. 바닥을 긁으며 굳어버린 내 손이 드러났다.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든 일어나보려 발버둥 쳤던 흔적이었다. 분대장 박하은이 뒤늦게 따라오다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나를 내려다보며 군화 끝으로 내 어깨를 툭툭 찼다. “여기서 뭐 해? 땡땡이치려고? 얼른 일어나. 중대장님한테 가서 다 말하기 전에.”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한번 걷어찼다. 이번에는 어깨가 크게 흔들릴 정도였다. 여전히 미동이 없자, 그녀는 나를 끌어다 옆쪽 수풀 속으로 던져버렸다. 진흙 인형처럼 힘없이 널브러진 나를 보며 그녀가 비웃음을 흘렸다. “연기력 하나는 끝내주네. 이래도 안 일어나? 이래서 군악대나 하는 건가.” 뒤이어 오던 병사 몇 명이 내가 쓰러진 것을 보고 멈춰 섰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묻자, 박하은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한 걸음 물러나 큰 소리로 외쳤다. “이서윤! 설마 여기서 버티고 있다가 중대장님이 직접 업어주길 바라는 거야?” 사람들은 그 말에 낄낄거리며 비아냥댔다. “중대장님 딸이라 대우가 다르네.” “특권층이라 이거지. 못 걷겠으면 누가 업어다 주고.” 나는 허공에 붕 뜬 채, 길가에 죽은 들개 보듯 내 시신 주위에 모여 있는 그들을 지켜보았다. 박하은이 먼 곳의 고지를 향해 소리쳤다. “중대장님! 이서윤 이병이 또 안 움직입니다! 바닥에 누워서 죽은 척하고 있습니다!” 언덕 위에 있던 엄마가 몸을 돌렸다. 나는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정말 죽었다는 걸 알게 되면, 엄마는 조금이라도 마음 아파할까? 엄마는 내 곁으로 다가와 세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 “이서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니?” 그녀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중대원 마흔 명이 너 하나 때문에 기다리고 있어. 창피하지도 않아?” “여기서 넌 내 딸이 아니라 군인이야! 너 한 사람의 잘못 때문에 팀 전체의 리듬이 깨졌어. 복귀하면 연병장 100바퀴 돌고, 위병소 앞에서 두 시간 동안 단독군장으로 서 있어.” 박하은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갔다. “중대장님,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닐까요…?” “아프긴 뭐가 아파.” 엄마가 말을 잘랐다. “내가 얠 몰라? 어릴 때부터 그랬어. 조금만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바닥에 드러누워 생떼를 썼지.” 차가운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지금도 내 마음 약해지길 바라는 거야. 중대원들 보는 앞에서 내가 자기 달래주는 걸 보여줘서, 자기가 특별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거지.” 나는 멍하니 엄마 곁을 맴돌며 필사적으로 설명하려 애썼다. 아니야, 엄마. 달래달라고 시위하는 게 아니야. 나 진짜 죽었단 말이야. 엄마는 나를 잘 안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가 아는 건 아주 어릴 때의 나일 뿐이다. 내가 얼마나 컸는지 엄마는 모른다. 내가 얼마나 참는 법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4km를 걸었을 때 이미 심장이 찢어질 듯 조여왔다는 것도. 엄마가 아끼는 박하은이 내 유일한 구원이었던 흡입기를 산 아래로 던져버렸다는 것도, 엄마는 전혀 모른다. 엄마, 나 엄마 마음 약해지게 하려던 거 아니야. 아무것도 증명하고 싶지 않았어. 정말… 정말 숨이 안 쉬어져서 그랬어. 미안해, 엄마. 이번에도 엄마 체면을 깎아 먹어서. 2 내가 여전히 움직이지 않자, 엄마는 더 화가 난 듯 보였다. 그녀는 성큼성큼 다가와 풀숲을 매서운 눈으로 훑었다. “이서윤.” 대답이 없었다. 그녀가 다시 소리쳤다. “이서윤! 당장 기어 나오지 못해!” 바람이 풀숲을 흔들자 군복 자락이 살짝 보였다. 엄마가 그것을 발견하고 거칠게 풀을 헤쳤다. 나는 얼굴을 땅으로 향한 채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마치 억지로 머리를 처박고 고집을 피우는 모습처럼 보였을 것이다. 엄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매몰차게 뱉었다. “이서윤, 너 대단하다. 이제 죽은 척까지 배워온 거야? 예전처럼 그렇게 하면 내가 또 항복할 줄 알았어?” 문득 기억이 났다. 내가 열두 살 때였다. 부모님이 해외 파병 임무를 맡게 되었을 때, 나는 가지 말라고 울며불며 매달렸다. 심지어 천식 발작이 온 척 연기해서 엄마를 곁에 머물게 했다. 하지만 그 임무에 혼자 나갔던 아빠는 유탄에 맞아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딴사람이 되었다. 내가 천식으로 고통스러워할 때마다, 엄마는 내가 또 거짓말을 한다고 믿었다. 엄마의 목소리가 파들파들 떨릴 정도로 화가 치밀어 있었다. “감히 나랑 머리싸움을 하려 들어?” 엄마는 쪼그려 앉아 내 옷깃을 움켜쥐더니, 상체를 썩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마치 전장의 적군을 다루듯 나를 다시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엄마는 내 뒷덜미를 짓누르며, 잡초가 무성하고 축축한 진흙 속에 내 얼굴을 처박았다. “연기가 꽤 그럴듯하네.”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소대장 김 중위가 다가오다 그 광경을 보고 멈칫했다. 그는 엄마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중대장님, 군의관을 불러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군의관은 무슨.” 엄마가 말을 잘랐다. “얘 어릴 때부터 꾀병 부리는 게 특기였어. 불쌍한 척해서 동정표 얻으려는 수작이라고. 오늘 내가 이 버릇 못 고쳐놓으면 앞으로 군 생활 어떻게 하겠어?” 엄마가 옷깃을 더 세게 움켜쥐자, 힘없이 처진 내 머리가 그녀의 손끝에서 흔들거렸다. “이서윤, 마지막으로 묻는다. 일어날 거야, 말 거야?” 엄마가 손을 놓자 내 이마가 땅바닥에 툭 하고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엄마는 일어나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좋아, 끝까지 안 일어나겠다 이거지?” 엄마가 발을 들어 올렸다. 딱딱한 군화 끝이 내 허벅지를 사정없이 짓눌렀다. “일어나!” 다시 한번 발길질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옆구리였다. “어디 계속해봐. 어디까지 연기하나 보자고.” 세 번째 발길질은 어깨였다. 김 중위가 참다못해 앞장섰다. “중대장님, 그만하십시오!” 엄마는 그를 밀쳐내고 내 어깨를 잡아채서 강제로 몸을 돌려 세웠다. 그러고는 내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찰싹,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내 고개가 반대편으로 꺾였다. “눈 안 떠?” 또 한 번 뺨을 때렸다. “연기 그만해.” 세 번째 손바닥이 날아왔다. “어디서 또 속이려 들어!” 김 중위가 뛰어들어 엄마의 팔을 붙잡았다. “중대장님! 이상합니다! 서윤이 얼굴 좀 보십시오!” 엄마는 김 중위의 손을 뿌리치고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몇 초간 내 얼굴을 빤히 응시하던 그녀가 차갑게 뱉었다. “이서윤, 이제는 시체 화장까지 하고 나를 속여? 이래서 군악대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내 얼굴에 먹칠하는 것도 유분수지.” 엄마는 손을 놓아버렸고, 나는 다시 풀숲 속으로 쓰러졌다. “누워 있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라 그래. 그 고집이 어디까지 가나 보지.” 엄마는 뒤돌아 걸어가 버렸다. 몇 걸음 가다 멈춘 그녀가 김 중위에게 명령했다. “전 부대 속보로 이동한다. 못 따라오는 놈은 그냥 여기 버려두고 가.” 김 중위는 입을 벙긋거렸지만, 엄마는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그는 결국 엄마의 뒤를 쫓아 달려갔다. 나는 제자리에 둥둥 떠서 내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뺨은 반쪽이 퉁퉁 부어올랐고, 입가에 흐른 피는 이미 말라붙어 있었다. 전투복은 온통 발자국투성이였고, 어깨 부근은 발길질에 움푹 들어가 있었다. 분명 죽었는데, 아무런 감각도 없어야 하는데. 왜 내 영혼은 찢어질 듯이 아픈 걸까. 3 김 중위가 몇 걸음 달려가다 발에 걸리는 무언가 때문에 멈춰 섰다. 풀숲을 내려다보니 천식 흡입기였다. 그는 그것이 내가 항상 지니고 다니던 약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박하은을 불렀다. 대열 중간에 있던 박하은이 황급히 뛰어왔다. “소대장님, 부르셨습니까?” 김 중위가 흡입기를 그녀의 코앞까지 들이밀었다. “이거 이서윤 거야. 이게 왜 여기 떨어져 있지? 출발 전에 서윤이가 네가 가져갔다고 하던데, 사실이야?” 박하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반 걸음 물러섰다. “소대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묻잖아. 서윤이 천식 약, 네가 던져버린 거 사실이냐고! 이거 없으면 사람 죽을 수도 있다는 거 몰라?!” 박하은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갔다. “아니에요… 전 모르는 일입니다. 제가 왜 약을 버리겠어요? 서윤이가 괜히 지어낸 말이겠죠.” 박하은은 스스로를 설득하려는 듯 점점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걔 어차피 연기하는 거잖아요. 중대장님도 그러셨어요. 걔 어릴 때부터 꾀병쟁이였다고. 저랑은 상관없는 일이에요.” 주변 병사들이 멈춰 서서 이쪽을 구경했다. “분대장님 혼나나 봐. 소대장님이 저렇게 화내시는 거 처음 보는데.” “이서윤 약을 일부러 버렸대.” “그 흡입기? 나도 본 것 같은데…” 누군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리 밖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다들 뭐 하는 거야? 왜 안 움직여!” 김 중위와 박하은이 동시에 돌아보았다. 엄마의 얼굴은 무표정했고, 눈빛은 서슬 퍼랬다. 김 중위가 먼저 다가가 흡입기를 내밀었다. “중대장님, 이것 좀 보십시오. 이거 서윤이 약 아닙니까?” 엄마는 그것을 무심하게 훑어보았다. “중대장님…” 박하은의 목소리에 울음 섞인 비굴함이 묻어났다. “전 정말 아니에요. 그냥 이 병이 뭐냐고 물어봤을 뿐인데…” “그만해.” 엄마는 박하은의 말을 자르고 흡입기에 적힌 이름을 쓱 훑었다. 김 중위가 무어라 덧붙이려던 찰나, 엄마는 흡입기를 멀리 던져버렸다. “가자. 시간 낭비하지 말고.” 김 중위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굳어버렸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한번 간곡하게 말했다. “전 서윤이가 걱정됩니다. 만약 정말로 몸이 안 좋은 거라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떤 단어가 엄마의 역린을 건드린 듯했다. 그녀가 갑자기 폭발하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꾀병이라고 몇 번을 말해! 방금 봤잖아, 훈련받기 싫어서 죽은 척까지 하는 거. 이건 이제 규율의 문제가 아니라 걔 인성의 문제야!” “훈련 끝나면 바로 전출 신청할 거야. 우리 부대에 이런 미꾸라지 같은 놈은 필요 없어.” “소대장은 집단 전체를 봐야지, 왜 한 사람의 연기에 휘둘리고 있어?” “더 이상 말하지 마. 한마디만 더 하면 너도 같이 연병장 돌 줄 알아!” 김 중위의 안색이 창백해졌지만, 결국 그는 입을 다물었다. 바람이 불어와 풀숲이 사그락거렸다. 내 몸 아래로 흐른 피가 흙 속으로 스며들어 조금씩 굳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머물며 멀어져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았다. 김 중위가 진실을 밝힐 뻔했다. 아주 조금만 더 하면 됐는데. 하지만 엄마는 나보다 박하은을 더 믿었다. 그녀는 단 하나의 가능성조차 제 손으로 짓밟아버렸다. 4 밤이 깊어서야 부대는 부대로 복귀했다. 하늘에서는 갑자기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연병장에는 몇 개의 가로등이 켜져 있었고, 빗줄기에 섞인 빛은 뿌연 황금빛 덩어리처럼 보였다. 엄마는 대열 앞에 서서 인원 보고를 받았다. 이름 하나하나가 불릴 때마다 대답이 돌아왔다. 마지막에서 세 번째 이름을 부를 때, 그녀의 목소리가 멈칫했다. “이서윤.” 대답이 없었다. 그녀가 다시 한번 불렀다. “이서윤.” 밤비가 시야를 흐려놓았다. 엄마는 고개를 들어 대열을 훑었다. “이서윤 어디 있어?” 엄마는 명단을 접어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끝까지 안 돌아오겠다 이거지?” 그녀는 중대원 전체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부로 이서윤 이병은 제명이다. 이런 식으로 임무를 이탈하고 동료를 기만하는 자는 내 중대에 있을 자격이 없어.” “오늘 밤 바로 보고서 올릴 테니, 다들 본보기로 삼도록.” 대열 중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첫 줄에 선 박하은은 고개를 숙인 채 입가를 미세하게 파르르 떨었다. 말을 마친 엄마는 보고서를 쓰러 텐트로 들어갔고, 김 중위는 한참을 망설이다 그녀를 따라갔다. “중대장님, 밖에 비가 너무 많이 옵니다. 서윤이 혼자…” 엄마가 말을 잘랐다. “그렇게 숨어 다니기 좋아하는 애가 비 하나 못 피하겠어?” 김 중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 비는 점점 거세졌다. 김 중위는 텐트 입구에서 빗줄기를 바라보다 다시 엄마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간이 책상 앞에 앉아 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만년필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서걱서걱 들려왔다. 김 중위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중대장님, 제가 소대를 이끌고 수색하러 가겠습니다.” 엄마는 고개도 들지 않았다. “안 돼.” “비가 이렇게 오는데, 혹시라도 사고라도 났으면—” 엄마가 펜을 놓고 고개를 들었다. “너, 걔한테 무슨 약점이라도 잡혔어?” 김 중위가 멍하니 그녀를 보았다. “서윤이 어릴 때부터 그랬어.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숨어버리고 온 가족이 찾게 만들었지. 그러다 찾으면 잘못했다고 울면서 불쌍한 척하고.” 엄마는 혐오감이 가득한 눈으로 김 중위를 쳐다봤다. “이번엔 절대로 안 속아.” 김 중위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중대장님, 만약… 만약 연기가 아니라면요? 만약 정말로—” 엄마의 안색이 순간 하얗게 질렸지만, 이내 다시 차갑게 굳어졌다. “지금 내 판단을 가르치려 드는 거야?” “전 그저 처벌을 하든 제명을 하든, 일단 사람부터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방치하는 건 도가 지나친 것 같습니다.” ‘도가 지나치다’는 말이 떨어지자 텐트 안은 빗소리만 남은 채 정적이 흘렀다. 엄마는 김 중위를 쏘아보며 가슴을 크게 들썩였다. “도가 지나쳐?” 그녀가 한 걸음 다가와 목소리를 낮췄지만, 그 안에는 서슬 퍼런 독기가 서려 있었다. “너, 걔가 열두 살 때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김 중위는 대답하지 못했다. 엄마는 말을 잇지 않고 다시 평정심을 되찾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숨고 싶으면 숨으라 그래. 어디까지 버티나 보지.” 김 중위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박하은이 텐트 천을 걷고 들어왔다. “중대장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엄마는 알겠다는 듯 김 중위를 보며 비웃음을 띠었다. “거봐, 내가 뭐라 그랬어. 연기라고 했지? 봐, 이렇게 제 발로 기어 들어오잖아. 앤 그냥 매가 약이야. 누가 관심을 줄수록 더 기어오른다고.” 그 순간, 텐트 입구가 거칠게 젖혀졌다. 비바람이 들이치며 바닥에 진흙탕을 만들었다. 부대 주임원사가 입구에 서 있었다. 온몸이 흠뻑 젖은 그의 얼굴은 철회빛으로 굳어 있었다. “중대장님! 낙오자가 생겼는데 왜 보고하지 않았습니까? 방금 수색대가 시신 한 구를 발견했습니다! 우리 부대 전투복을 입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