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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날 도망간 아내가 빌기 시작했다
온 도시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 결혼식의 비극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아내와 뒤늦게 올리기로 한 결혼식 당일이었다. 하객들은 모두 도...
Chương (1)
第1章
온 도시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 결혼식의 비극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아내와 뒤늦게 올리기로 한 결혼식 당일이었다. 하객들은 모두 도착했고, 식장은 꿈처럼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인 신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사회자가 당혹감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때, 호텔 지배인이 보안 요원들을 대동하고 나타나 나를 포위했다. 신부가 방금 모든 선결제 금액을 취소했다며, 내게 수십억 원에 달하는 대관료를 지불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나를 더 무너뜨린 건 식장 대형 스크린에 갑자기 재생된 영상이었다. 내 아내는 바닷가에서 첫사랑과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었다. 영상 속 그녀는 카메라를 향해 비웃으며 말했다. 예전에 내가 그녀의 첫사랑이 차를 뽑을 때 망신을 줬으니, 이제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버림받는 기분이 어떤지 느껴보라고.
비극의 시작은 몇 달 전이었다. 그녀는 내 명의의 카드를 몰래 가져가 첫사랑의 이른바 ‘마음의 병’을 고쳐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남자는 그 돈으로 덜컥 포르쉐를 샀다.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즉시 은행에 연락해 송금을 취소시켰고, 그 남자는 출고식 당일 영업사원들에게 끌려 나가는 수모를 당했다.
그날 집에 돌아온 그녀는 오히려 나를 껴안으며 경제 관념이 철저하다며 칭찬했다. 그런 허영심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고 맞장구까지 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이 잔인한 연기였다.
1.
"신랑님, 그만 보시죠. 서윤 대표님은 안 옵니다."
지배인 박 실장이 내 앞을 막아서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납덩이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클라우드 힐 펜트하우스 연회장 한복판에 서 있었다. 사방에는 정재계 인사들이 가득했고, 발밑에는 생화가 깔려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축복받아야 할 성대한 결혼식이었다.
물론 지금도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긴 했다. 축복이 아닌, 조롱 섞인 구경거리로서 말이다.
나는 이미 꺼져버린 핸드폰을 손에 쥐었다.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렸다.
"박 실장님, 이게 무슨 무례입니까?"
박 실장이 손짓하자, 뒤에 서 있던 보안 요원 열댓 명이 고무 진압봉을 든 채 다가왔다.
"서윤 대표님이 방금 선결제된 모든 금액을 회수하셨습니다. 그리고 덧붙이시더군요. 이 결혼식은 신랑이 억지로 밀어붙인 거니, 알아서 처리하라고 말이죠."
그가 청구서 한 장을 내 얼굴 앞에 흔들었다.
"대관료, 식대, 인건비까지 합쳐서 총 15억입니다."
"서윤 대표님 말씀이, 이 돈은 지안 씨가 직접 내야 한답니다."
장내가 술렁였다. 날카로운 수군거림이 고막을 찔렀다.
"세상에, 강서윤 정말 독하다. 결혼식 당일에 도망을 가?"
"남자가 자업자득이지. 고아 출신이라 배경도 없다며? 억지로 재벌가에 발 들이려니까 저 모양이지."
"15억? 쟤를 장기매매라도 해야 나오는 돈 아니야?"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요동치는 심장을 억눌렀다.
"서윤이를 직접 만나야겠습니다."
박 실장이 콧방귀를 뀌었다.
"대표님을요? 감히 당신 따위가?"
그가 무대 중앙의 거대한 LED 스크린을 가리켰다.
"대표님이 당신이 미련을 못 버릴까 봐 특별히 영상을 남기셨거든."
스크린이 번쩍이더니 화면이 밝아졌다. 배경은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였다. 화려한 셔츠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서윤이 샴페인 잔을 들고 있었다. 그녀의 품에는 한 남자가 안겨 있었다.
현우. 내 돈을 훔쳐 포르쉐를 사려다 망신을 당했던, 이른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그녀의 첫사랑이었다. 해풍에 머리칼이 날리는 현우는 세상을 다 가진 듯 웃으며 서윤에게 매달려 있었다. 서윤의 목소리가 최고급 음향 시설을 타고 내 고막을 때렸다.
"강지안, 당신 때문에 현우가 경찰 조사를 받고 심각한 트라우마가 생겼어."
"의사가 안정이 필요하대서 내가 같이 왔어. 현우 곁에는 내가 있어야 하니까."
"결혼식? 그건 당신이 알아서 수습해."
2.
화면 속에서 현우는 애교 섞인 몸짓으로 서윤의 뺨에 입을 맞췄다.
"서윤아, 지안 형 혼자 저기 있으면 너무 창피하지 않을까?"
서윤은 사랑스럽다는 듯 그의 코끝을 톡 쳤다.
"걔 낯짝 두껍잖아. 신경 꺼."
영상은 거기서 멈췄다. 식장은 죽은 듯 고요해졌고, 곧이어 폭소가 터져 나왔다. 수많은 핸드폰이 치켜들려졌고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졌다. 몇몇 인플루언서들은 카메라를 향해 자극적인 멘트를 내뱉으며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었다.
"여러분! 재벌가 역대급 스캔들입니다! 신부가 첫사랑이랑 도망가고 신랑만 거액의 빚더미에 앉았어요!"
"시청자 수 100만 돌파! 팔로우 부탁드려요!"
나는 스포트라이트 아래 서 있었다.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맞춤 수트가 지금은 우스꽝스러운 광대 옷처럼 느껴졌다. 밀려오는 수치심에 몸이 떨렸다.
박 실장이 마이크를 끄고 싸늘하게 나를 내려다봤다.
"다 봤으면 돈 내시죠."
나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카드를 안 가져왔습니다. 연락을 좀..."
"돈이 없어?"
박 실장의 얼굴에서 가식적인 미소가 사라지고 험악한 본색이 드러났다.
"돈도 없으면서 어디서 가오를 잡아? 여기가 너 같은 놈이 올 데인 줄 알아?"
"대표님이 그러시더군. 네놈이 분명히 발뺌할 거라고."
그는 내 몸을 위아래로 훑더니, 내 가슴팍에 박힌 장식용 다이아몬드 단추에 시선을 멈췄다.
"이 수트에 박힌 다이아는 좀 값이 나가겠는데."
"지불할 능력이 없으면, 이거라도 벗어서 갚아야지!"
주변의 보안 요원들이 낄낄거리며 다가왔다.
"하지 마..."
나는 본능적으로 가슴을 가리며 뒤로 물러났다.
"이건 불법이야! 경찰 부르겠어!"
"경찰?" 박 실장은 세상에서 가장 웃긴 농담을 들은 듯 자지러졌다. "이 클라우드 힐에선 내가 곧 법이야!"
"다 벗겨! 아주 깨끗하게 벗겨서, 허영심에 찌든 놈의 말로가 어떤지 구경시켜 주자고!"
거친 손 하나가 내 바지춤을 낚아챘다.
찌익—
천 조각이 찢어지는 소리가 소란스러운 연회장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바지가 찢어지며 내 맨다리가 드러났다. 수치심에 온몸이 떨렸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눈물은 약자의 무기일 뿐, 지금의 내게는 필요 없었다.
나는 순식간에 발을 들어 보안 요원의 발등을 강하게 짓밟았다.
"아악!"
요원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나는 옷매무새를 다잡으며 박 실장을 쏘아봤다.
"박 실장, 감히 날 건드려?"
"이 호텔 소유주도 나한테 함부로 못 해. 네가 뭔데?"
박 실장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배를 잡고 웃어댔다.
"소유주? 지안 씨, 충격이 커서 미쳤나 보네?"
"여긴 내 세상이야! 서윤 대표님이 오늘 너를 아주 매장시켜 버리라고 하셨거든!"
"네가 아직도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아? 강서윤이 버린 넌 개보다 못한 존재라고!"
그때, 대형 스크린의 화면이 다시 바뀌었다. 녹화 영상이 아닌 실시간 영상 통화였다. 구역질 나는 서윤의 얼굴이 다시 나타났다. 배경은 초호화 요트였고 파도 소리가 선명했다. 현우는 옷을 갈아입고 서윤의 품에 안겨 가짜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지안이 형, 미안해. 내가 너무 아파서 서윤이가 없으면 안 됐어."
"서윤이 탓하지 마. 내가 돌아온 게 잘못이야."
그 가증스러운 태도에 위액이 역류하는 것 같았다. 나는 스크린을 노려보며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강서윤, 이게 네가 준비한 결혼식이야?"
"5년의 세월. 내가 네 밑바닥부터 같이 일궈온 시간이, 저 자식의 엄살 한 마디보다 못해?"
서윤은 귀찮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화면 너머로 그녀의 혐오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강지안, 적당히 해."
"현우 몸이 안 좋잖아. 네가 정식 남편이 될 사람이었으면 좀 대범하게 이해해 줄 수 없어?"
"그리고 이 결혼식, 네가 보상받고 싶다며 억지로 우겨서 한 거잖아."
"이제 웃음거리가 된 건 자업자득이지."
하객들은 이 광경을 보며 손가락질했다.
"여자가 쓰레기긴 한데, 남자도 참 구차하다."
"그러게. 대놓고 바람나서 도망갔는데 거기서 감정을 따지고 있네."
그때, 한 여자가 무대 위로 뛰어 올라왔다. 내 장모였다. 평소엔 자비로운 척 불공을 드리러 다니지만, 실상은 누구보다 천박하고 독한 노파였다. 그녀는 앞뒤 가릴 것 없이 내 뺨을 내리쳤다.
찰싹!
어찌나 강하게 때렸는지 귀에서 이명이 들리고 입가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이 재수 없는 놈! 여자 하나 간수 못 해서 우리 집안 망신을 다 시켜!"
장모는 내 코앞에 삿대질하며 고함을 질렀다.
"애초에 고아 따위를 들이는 게 아니었어. 운도 지지리도 없지!"
"서윤이가 오죽했으면 집을 나갔겠어? 그러고도 네가 여기가 어디라고 난동이야!"
나는 뺨을 감싸 쥐고, 5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모셨던 노인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
"어머니, 바람을 피운 건 서윤이입니다..."
"닥쳐!" 장모가 말을 끊었다. "여자가 바람 좀 피울 수도 있지, 그만큼 우리 서윤이가 능력이 좋다는 뜻 아니야!"
"너는 5년 동안 씨 하나 못 받아서 집안 대도 못 잇게 만들더니, 밥만 축내고!"
옆에서 박 실장이 거들었다. "여사님, 이 남자가 호텔에 15억을 빚졌습니다. 대표님은 안 내신다네요."
장모는 돈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선을 그었다.
"얘랑 우리 집은 상관없어! 빚진 놈한테 받아!"
박 실장이 비열하게 웃으며 나를 봤다. "들었지? 이제 네 뒤를 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대표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여기서 무릎 꿇고 현우 씨한테 사과하면, 예전에 감옥 보냈던 거 반성한다고 빌면, 그 15억은 대신 내주시겠대."
화면 속에서 현우가 교태 섞인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서윤아, 지안이 형 자존심이 세서 무릎 꿇는 걸로 부족할 것 같아."
"바닥에 흘린 술이나 핥아 먹으라고 해. 그럼 용서해 줄게."
서윤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지, 강지안? 무릎을 꿇든가, 바닥을 핥든가."
"아니면 평생 감방에서 썩든가."
장내에선 환호와 야유가 뒤섞여 터져 나왔다.
"꿇어! 15억인데 무릎 좀 꿇는 게 대수냐!"
"자존심이 밥 먹여주냐? 빨리 핥아라!"
장모는 내가 가만히 있자 내 머리채를 잡고 바닥으로 찍어 눌렀다.
"안 들려? 꿇으라고! 현우한테 빌란 말이야!"
3.
장모의 발길질에 무릎이 꺾여 통증이 밀려왔지만, 나는 어금니를 사리물고 척추를 곧게 세웠다. 굴욕감이 해일처럼 나를 덮쳤지만, 그 파도는 강서윤에 대한 내 마지막 환상마저 깨끗이 씻어내 버렸다.
이 순간, 그녀를 사랑했던 '강지안'은 죽었다.
나는 장모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그 반동에 노인은 비틀거리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나 무대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이게 미쳤나! 네가 감히 나를 밀어?" 장모가 비명을 질렀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입가의 피를 닦아냈다. 눈가에 맺혔던 물기는 순식간에 증발했고, 그 자리에는 뼛속까지 시린 냉기만이 남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스크린 속 서윤을 똑바로 응시했다.
"강서윤, 고작 15억으로 나를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영상 속 서윤은 잠시 당황한 듯하더니 이내 조롱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강지안, 너 지금 주머니에 단돈 만 원도 없잖아. 어디서 허세를 부려?"
"네 카드 다 정지시켰고, 네 비자금도 전부 현우 차 사는 데 썼어."
"넌 이제 빈털터리야. 여기서 나갈 택시비도 없는 거지새끼라고!"
나는 비웃음을 흘리며 박 실장을 돌아보았다.
"10분만 줘."
"만약 내가 이 15억을 완불하면, 너와 강서윤, 그리고 저 장현우까지. 전부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박 실장은 나를 미친놈 보듯 쳐다봤다.
"10분? 장기를 팔아도 그 시간엔 안 되겠다."
화면 속 현우가 재미있다는 듯 끼어들었다.
"좋아! 지안이 형이 15억을 가져오면 내가 여기서 바다로 뛰어내려서 헤엄쳐 갈게!"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독하게 덧붙였다.
"못 가져오면, 형은 여기서 다 벗고 개처럼 기어서 나가는 거야. 어때?"
서윤이 거들었다. "하나 더 추가하지. 돈 못 내면 넌 앞으로 평생 현우 종이야. 때리면 맞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말 잘 듣는 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름 끼치도록 차분한 목소리였다.
"낙찰."
"여기 있는 모든 사람, 그리고 라이브 방송을 보는 500만 명이 증인이다."
식장은 순식간에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이만한 구경거리가 어디 있겠는가.
"저 남자 미쳤나 봐! 15억이 애 이름인 줄 아나?"
"시간 끌려는 수작이지."
"기어 나가는 거 찍으려고 핸드폰 용량 비워뒀다!"
나는 주변의 조롱을 무시하고 구석으로 향했다. 내 핸드폰은 방전되어 꺼진 지 오래였다. 나는 사회자의 손에서 마이크와 핸드폰을 낚아챘다.
"잠시 빌리지."
사회자가 당황할 새도 없이, 나는 5년 동안 단 한 번도 누르지 않았던 번호를 눌렀다. 오직 우리 가문의 핵심 인물들만 알고 있는 직통 라인이었다. 신호음이 단 한 번 울리고 전화가 연결되었다.
수화기 너머로 낮고 묵직하지만, 감출 수 없는 떨림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정말 도련님이십니까?"
전화를 쥔 내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울컥함을 누르고 짧게 내뱉었다.
"왕 실장님, 접니다."
"클라우드 힐 연회장인데, 파리떼가 좀 꼬였네요."
"정리해 주세요."
전화기 너머에서도 순간적인 살기가 느껴졌다.
"명령 받들겠습니다. 5분 안에 도착합니다!"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사회자에게 던져주었다. 박 실장은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남은 시간 9분."
"보안팀 준비해. 시간 되면 바로 작업 시작할 거니까 신랑 기다리게 하지 말고."
장모는 옆에서 침을 뱉었다. "허풍은! 네가 불러봤자 누가 오겠어!"
"돈 못 가져오기만 해봐, 네 껍데기를 확 벗겨버릴 테니까!"
나는 팔짱을 낀 채 무대 기둥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주변의 소음은 더 이상 내게 들리지 않았다.
강서윤, 장현우, 그리고 강 씨 일가.
너희가 그렇게 좋아하는 돈이 무엇인지, 진짜 부 가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주지.
4.
시간이 1초씩 흘러갔다. 박 실장이 악의에 찬 목소리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남은 시간 1분!"
"30초!"
스크린 속 서윤은 이미 축배를 들기 위해 샴페인을 땄고, 현우는 몸을 비틀며 웃어댔다.
"지안 형, 포기하고 벗어. 형 몸매 나쁘지 않으니까 구경 좀 시켜줘도 되잖아."
마지막 10초.
박 실장은 손에 든 청구서를 구겨서 바닥에 던졌다.
"시간 종료!"
"애들아, 시작해! 우리 신랑님 옷 벗는 거 도와드려야지!"
보안 요원들이 굶주린 늑대처럼 달려들었다. 누군가는 내 멱살을 잡으려 했고, 누군가는 내 머리채를 낚아채려 했다. 그 더러운 손들이 내 피부에 닿기 직전이었다.
쿠구구구—
엄청난 굉음이 천장을 뚫고 들려와 식장의 소음을 집어삼켰다. 연회장의 거대한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격렬하게 흔들렸고, 유리창이 덜덜 떨렸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귀를 막으며 공포에 질린 채 위를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통유리창 너머로 장관이 펼쳐졌다. 장원 상공에 세 대의 블랙 호크 헬기가 편대를 이룬 채 강풍을 일으키며 떠 있었다. 기체 옆면에는 금색으로 선명하게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KANG'
곧이어 수십 개의 로프가 투하되었다. 전신을 검은 수트로 무장한 보안 요원 수십 명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창문을 깨고 진입해 방범봉을 휘둘렀다.
퍽! 퍽! 퍽!
방금까지 기세등등하던 호텔 보안 요원들은 비명 지를 새도 없이 바닥에 처박혔다. 상황 파악도 못 하던 박 실장은 난입한 요원의 발길질에 무릎을 차여 그대로 꿇어앉았다.
"아악! 내 다리!"
그와 동시에, 굳게 닫혀 있던 연회장의 육중한 문이 굉음과 함께 열렸다. 검은색 롤스로이스 팬텀 수십 대가 끝도 없이 늘어서서 장원으로 밀고 들어왔다. 번호판은 모두 '서울 8888'. 압도적인 위압감에 하객들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저 문장... 설마 국내 최대 재벌인 강 씨 가문?!"
"세상에, 강 회장네 사람들이 왜 여기로 와? 저 남자가 대체 누굴 건드린 거야?"
영상 속 서윤도 얼어붙었다. 들고 있던 샴페인이 그녀의 옷 위로 쏟아졌다.
"강 씨 가문의... 차량 행렬?"
하지만 눈치 없는 현우는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지안 형이 사채라도 써서 강 씨 가문을 화나게 했나 봐! 저 사람들이 형을 처단하러 온 게 분명해! 서윤아, 우리 대박이다!"
차량들이 멈춰 서고, 정중앙에 있던 리무진의 문이 열렸다. 연미복을 입은, 위엄 넘치는 중년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 내려왔다. 그는 주변의 모든 사람을 투명 인간 취급하며 무대 중앙의 초라한 나를 향해 직진했다.
강 씨 그룹의 대집사, 왕 실장이었다.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내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가다듬더니 90도로 깊게 허리를 숙였다.
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연회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도련님, 늙은 종이 늦었습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정적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