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개가 내 목숨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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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개가 내 목숨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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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눈에 나는 그저 자신의 몸에 붙어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일 뿐이었다. 그는 내가 집안 돈을 빼돌려 친정에 퍼다 준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Chương (1)

第1章

남편의 눈에 나는 그저 자신의 몸에 붙어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일 뿐이었다. 그는 내가 집안 돈을 빼돌려 친정에 퍼다 준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가 제 친정의 '혈액팩' 노릇을 못 하게 하겠다며, 그는 매주 고작 3만 원이라는 푼돈을 생활비라며 던져주었다. 그러다 내가 납치당했다. 납치범은 몸값으로 10억을 요구했다. 전화를 받은 그의 첫 반응은 놀랍게도 '안도'였다. 그는 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이며, 그저 제 돈이나 축내는 식충이일 뿐이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는 납치범에게 나를 마음대로 처분하라고, 자신은 단돈 1원도 내놓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내가 납치됐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그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울며 빌었다. 제발 딸 좀 살려달라고. 아버지는 내가 풀려나기만 한다면 당신은 영원히 종적을 감추고 다시는 우리 삶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냉정하게 고개를 돌리며, 자신이 피땀 흘려 번 돈을 나 같은 여자에게 허투루 쓸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중병을 앓고 있던 아버지는 나를 구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피를 팔러 다녔다. 그것도 모자라 신장까지 팔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처절하게 일궈낸 돈으로 간신히 지옥에서 풀려났지만, 아버지는 과로와 기력 쇠진으로 끝내 내 곁을 떠나고 말았다. 임종 직전까지도 아버지는 내게 좋은 삶을 주지 못한 못난 애비라며 자신을 원망했다. 나는 피눈물을 흘리며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따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우연히 그의 비서인 하연주의 SNS를 보게 되었다. 남편은 그녀의 남동생을 위해 한남동에 수십억 짜리 빌라를 사주고, 롤스로이스 팬텀까지 한 대 뽑아주었다. 연주의 부모님까지 서울로 불러 모셔오더니, 그들을 수발들 가사 도우미를 여덟 명이나 고용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심지어 연주가 키우는 퍼그 녀석의 목에는 내 팔목만큼 굵은 금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납치범들에게 보름 넘게 고문을 당한 내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아버지는 나를 데려와 어린 시절처럼 등에 업어주었다.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아버지는 만신창이가 된 나를 업고 병원까지 걸어갔다. 의식이 흐릿해져 가는 와중에도, 나는 아버지와 의사가 나누는 짧은 대화를 들었다. “입원비가 60만 원입니다.” 1 확실히 비싼 금액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아버지에게는 단돈 1,000원조차 없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제발 나를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바싹 마른 목구멍에선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정신없이 사흘을 잠들었다가 깨어났을 때, 내가 마주한 것은 아버지가 과다 헌혈로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아버지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내 병상 곁에서 숨을 거두었다. 밤새 내 곁을 지키던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떠났고, 다음 날 아침 간호사가 발견했을 때는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간호사들은 연고지 없는 노인의 모습이 가여워 그를 안치실로 옮겨주었다고 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홀로 외롭게 떠났다. 나는 안치실에서 실신할 정도로 울었지만, 아버지는 다시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나는 평소 알고 지내던 모든 이에게 구차하게 고개를 숙이며 돈을 빌렸다. 그렇게 겨우겨우 구색만 맞춘 장례식. 작고 허름한 빈소에는 구경꾼 같은 친척들이 몰려와 손가락질하며 차가운 말들을 내뱉었다. “강제현 대표 장인이 이런 곰팡내 나는 폐가 같은 곳에서 살았다니! 창문 하나 없는 꼴 좀 봐.” “남편이라는 사람은 다른 여자 부모님한테 도우미를 여덟 명이나 붙여줬다는데, 본처인 얘는 몸값 줄 돈도 아까워서 납치범한테 버려졌다며? 여자로서 참 실패한 인생이야.” 비웃음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나는 입술을 깨물며 침묵을 지켰다. 그들은 계속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가난뱅이 부녀 아니랄까 봐, 죽어서도 관 실을 차 한 대 빌릴 돈이 없어서 구걸이나 하고. 정말 재수 없네!” 나는 묵묵히 아버지의 관을 운구차에 실었다. 화장장으로 향하는 길, 불길 속으로 사라지는 아버지의 시신을 보며 이미 퉁퉁 부은 눈에서 다시 쓰라린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때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전화를 받자마자 남편, 강제현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심이안, 너 미쳤어? 왜 연주 게시물에 댓글 달아서 사람 기분을 잡쳐놔!” 꾹 참았던 눈물이 흘러넘쳤다.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샌 탓에 눈물을 닦을 힘조차 없었다. 나는 쉰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뗐다. “그 불륜녀도 기분 나쁜 걸 알긴 하나 보네?” 제현은 폭주하듯 소리를 질렀다. “어디서 감히 어린 애한테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려! 그렇게 독한 년이었어?” “한마디만 더 해봐. 네 입 찢어버릴 테니까!” 나는 헛웃음을 삼켰다. 강제현은 하연주가 '재미있겠다'는 한마디를 던졌다는 이유로, 내가 납치범들에게 보름 동안 고통받는 걸 방관한 남자다. 연주를 위해서라면 그는 정말로 내 입을 찢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내가 대답이 없자, 제현은 다시 협박을 이어갔다. “당장 댓글 삭제해. 안 그러면 네 아버지가 살고 있는 그 집 당장 빼버릴 거야. 길바닥에서 늙어 죽게 만들고 싶지 않으면 처신 똑바로 해!” 아버지라는 단어가 나오자 내 안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강제현은 잊은 모양이다. 과거 자신이 얼어붙은 호수에 빠졌을 때, 목숨 걸고 뛰어들어 자신을 구한 게 우리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그 일로 아버지는 평생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게 되었다. 밤마다 통증으로 잠 못 이루는 아버지를 위해 진통제 몇 알 더 사드리고 싶어 돈을 요구했을 때, 제현은 불같이 화를 냈었다. “나이 먹고 왜 그렇게 엄살이야! 아프면 참든가! 내 돈 아까운 줄 몰라?” 그런 주제에 하연주가 재채기 한 번만 해도, 그는 전국의 전문의들을 밤새 수소문해 불러들이던 사람이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아파도 내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내가 남편에게 구박받을까 봐 참으신 거다. 심지어 아버지는 나를 기죽게 하지 않으려고 아픈 몸을 이끌고 공사장에서 벽돌을 나르셨다. 나를 만날 때마다 아버지는 몰래 챙겨온 쌈짓돈을 내 가방에 찔러 넣어주며 잘 챙겨 먹으라고 당부하셨다. 정작 당신은 소금물에 밥을 말아 드시면서 말이다. 참다못해 남편에게 이 사실을 말하며 조금이라도 마음이 움직이길 바랐지만, 그는 비싼 산해진미를 연주의 반려견에게 던져주며 비웃을 뿐이었다. “수년 동안 내 돈 축내며 살았으니, 네 아비도 양심은 있나 보네. 내 몸에 붙어 피 빨아먹는 너랑은 다르게 말이야.” “설마 내가 네 아버지를 도와줄 거라 기대하는 건 아니지? 꿈 깨. 너희 식구는 전부 기생충이니까!” 하지만 그가 말한 생활비는 고작 일주일에 3만 원이었다. 아버지는 그 돈조차 한 푼 쓰지 않고 낡은 철제 상자에 차곡차곡 모아 내게 남겨두셨다. 상자 옆에는 비뚤비뚤한 글씨로 자책 섞인 쪽지가 놓여 있었다. [이안아, 아빠가 능력이 없어서 너를 고생만 시키는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확인한 CCTV 속에서, 아버지는 강제현의 회사 앞에서 사흘 밤낮을 무릎 꿇고 빌고 계셨다.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르는데도 그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는 불법 헌혈소로 발길을 돌려 수없이 피를 뽑아냈고, 마지막엔 신장까지 떼어주셨다. 내가 아버지의 유해를 안고 오열하던 그 시각, 포털 사이트에는 강제현이 하연주를 위해 수십억 대의 최고급 별장을 선물했다는 기사가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고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전화기 너머로 포효했다. “닥쳐! 넌 우리 아버지 이름조차 올릴 자격 없어!” 전화를 끊고 나는 바닥에 쓰러져 가슴을 쥐어뜯으며 통곡했다. 2 장례식장의 TV 화면 속에서 하연주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직원 두 명이 화면을 보며 수군거렸다. “저 여자 대체 누구야? 강 대표가 방송사 시간대를 통째로 샀다며? 스케일 장난 아니네.” 다른 남자가 대답했다. “몰랐어? 하연주잖아. 강 대표가 애지중지하는 여자. 강아지 생일 축하해준다고 방송사랑 유람선까지 다 빌렸대.” 강제현의 가족이었던 내 아버지는 연주의 개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다. 심지어 화장 비용조차 내 결혼반지를 팔아서 마련해야 했다. 휴대폰에 알람이 떴다. 오늘은 아버지의 생신이었다. 하지만 이제 내게 아버지는 계시지 않는다. 가슴이 칼날로 난도질당하는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왔다. 나는 멍한 상태로 일어나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이것 좀 출력해 주실 수 있나요?”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서류인가요?” 유골함을 안은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얗게 질린 손가락 끝이 떨렸다. “이혼 합의서요.” 이 우스꽝스러운 비극을 끝낼 때가 왔다. 이혼 서류를 챙겨 곧장 연회장으로 향했다. 강변을 따라 수 미터 간격으로 하연주와 강아지 코코의 등신대가 세워져 있었다. 제현은 연주의 반려견 생일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초대했고, 막대한 돈을 뿌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 봉투를 주우며 환호했다. “강 대표 진짜 통 크네! 강아지한테 생일 축하한다고 말만 해도 5만 원 권이 든 봉투를 주다니!” “5만 원이 문제야? 하연주가 원하면 5,000억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쓸 사람이야. 이따 불꽃놀이도 한다던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변을 따라 화려한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강물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들 정도로 거대한 규모였다. 옆에 서 있던 연인이 부러움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강 대표가 이 이벤트를 하려고 기획 단계부터 직접 참여했대. 예산 상관없으니까 무조건 하연주를 웃게 만들라고 했다더라.” “해외에서 비밀리에 프로포즈도 했다며? 이제 막 사회생활 시작한 인턴이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난 거네. 정말 부럽다.” 결혼 생활 내내 강제현이 내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이것이었다. “심이안, 너는 원래 나랑 급이 안 맞는 여자야. 그러니까 감사하며 살아.” 그는 잊었다. 보증금도 없는 옥탑방에서 함께 노점을 하며 창업을 시작했던 건 나였다는 걸. 그때 그는 내게 약속했었다. “이안아, 내가 성공하면 반드시 너랑 아버님, 남부럽지 않게 호강시켜 줄게.” 제현은 정말로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대표가 되었지만, 그 약속의 수혜자는 내가 아닌 하연주가 되었다. 그녀에게는 수많은 슈퍼카와 저택, 산해진미, 24시간 밀착 케어 서비스가 주어졌다. 나는 아버지에게 고기반찬 한 번 사드렸다는 이유로 그에게 폭언을 들어야 했다. 나중엔 시장 본 영수증 하나하나를 검사하며 내가 단돈 1원이라도 빼돌릴까 봐 감시했다. 내가 납치당했을 때조차, 그는 내가 돈을 뜯어내기 위해 자작극을 벌이는 것이라 확신했다. 폭죽 소리가 계속되었지만, 내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만 번졌다. 이 사치스러운 연회에 쓰인 비용 중 단 일부만 있었어도 아버지는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제현은 나를 죽게 내버려 두고, 아버지가 스스로의 몸을 짜내게 만들면서까지 돈을 아꼈다. 그때, 금목걸이를 한 퍼그 한 마리가 내게 달려왔다. 하연주의 개, 코코였다. 3 녀석은 나를 향해 짖어대더니, 내 다리에 실례를 했다. 화려한 옷차림의 모자가 다가왔다. 여자는 오만한 표정으로 나를 꾸짖었다. “뭐 보고 있어? 당장 우리 귀염둥이가 묻힌 거 안 닦고! 오늘 밤 주인공인데, 네까짓 게 앞길 막았다가 우리 사위님이 가만 안 둘 줄 알아!” 옆에 있던 남자도 거들었다. “그러게! 매형은 돈을 그렇게나 쓰면서 왜 이런 질 떨어지는 여자를 고용한 거야? 눈치도 없고 옷차림은 왜 저래? 거지 같게.” 연주의 SNS에서 봤던 이들이었다. 하연주의 엄마와 남동생 하승우. 그들이 말하는 '사위'와 '매형'은 당연히 강제현이었다. “나는 강제현의 아내지, 그가 고용한 청소부가 아닙니다. 당신들 뒤치다꺼리할 의무 없어요.” 내 말에 두 사람은 과장되게 웃음을 터뜨렸다. “망상증 환자 많이 봤지만 이건 좀 심하네. 돈 몇 푼 벌어보겠다고 우리 언니 남자를 탐내? 이 노처녀 할망구가!” “코코야, 물어버려!” 명령이 떨어지자 개가 달려들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발을 뻗어 녀석을 밀어냈고, 개는 바닥을 굴러대며 낑낑거렸다. 멀리서 하연주가 달려와 개를 안아 올리며 제현의 품에 안겨 울먹였다. “이안 언니, 나를 괴롭히는 건 참을 수 있지만... 우리 코코한테까지 이러는 건 너무하잖아요...” 제현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심이안! 네가 감히 여기까지 와서 행패야? 당장 사과해!” 연주는 달려오면서 뾰족한 하이힐로 내 발등을 짓밟았지만, 제현은 오직 내 사과만을 요구했다. 내가 입을 굳게 다물자, 제현이 다시 협박했다. “말 안 들어? 생활비 끊기는 건 물론이고, 네 그 가난뱅이 아버지 길바닥에서 굶어 죽는 꼴 보고 싶어서 이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가 언제인데, 그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우리 아버지 이름 입에 올리지 마.” 연주가 이때다 싶어 끼어들었다. “언니 참 대단하시네. 그렇게 자존심이 세서 아버지 장례비는 벌 수 있겠어요? 아, 납치범들한테 보름이나 붙잡혀 있었으니 몸이 말이 아니겠네. 팔려고 해도 값이나 제대로 나오려나?” 주변의 빈객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몇몇 중년 남자들은 휘파람까지 불어댔다. “강 대표가 마음이 넓어서 아직 데리고 있는 거지. 나 같았으면 진작에 쫓아냈어. 부도덕한 여자 같으니라고!” 모욕적인 말들이 쏟아졌지만 제현은 막지 않았다. 오히려 만족스러운 듯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심이안, 들었지? 내가 너한테 얼마나 관대한지. 당장 사과하고 집으로 꺼져!” 생경하다 못해 혐오스러운 남자의 얼굴을 보며, 내 마음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가 나를 밀쳐내려 손을 뻗었다. 힘이 과했던 탓에 나는 바닥으로 거칠게 넘어졌다. 치마가 허벅지 위로 말려 올라가면서, 납치 기간 동안 입었던 선명한 피멍과 상처들이 드러났다. 사람들이 구경거리라도 생긴 양 몰려들었다. 연주는 입을 가리며 놀란 척 연기를 했다. “세상에, 이안 언니... 납치범들이랑 아주 화끈하게 노셨나 봐요?” “제 말이 맞죠? 이제 저 몸은 가치가 없어요. 언니 아버지처럼 피라도 팔든가 해야지.” 나는 충혈된 눈으로 제현을 바라봤다. “저 사람들이 당신 장인을 모욕하는데 보고만 있어? 예전에 우리한테 했던 약속, 전부 잊은 거야?” 제현은 냉소하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네 아비가 무슨 대단한 존재라고! 나한테 돈 구걸하려고 바닥에서 개 흉내까지 낸 노인네야.” 재생된 영상 속에서, 아버지는 바닥을 기며 개처럼 짖고 있었다. 제현은 1,000원짜리 지폐를 던지며 더 크게 짖으라고 깔깔거리고 있었다. 평생 자존심 하나로 버티며 살아온 아버지가, 딸을 살리겠다고 그런 수치까지 견디셨다니...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강제현, 우리 아빠가 그때 널 구하지 말았어야 했어!” “본인이 원해서 한 일이야. 난 강요한 적 없어.” “그리고 지금 내 자리는 오로지 내 실력으로 일군 거야. 너희 부녀랑은 상관없으니 은혜니 뭐니 떠들지 마!” 휴대폰을 뺏으려 일어났지만, 제현은 다시 나를 밀쳐냈다. “심이안, 네 아빠가 또 개처럼 짖는 꼴 보고 싶어? 보름 동안 갇혀 있더니 정신 못 차렸지? 다시 납치범들한테 보내줄까?” 그 순간,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당신이었어?” 제현은 숨기지도 않았다. “그래, 나야! 내 돈 함부로 쓸 생각 하지 말라고 경고 좀 한 거지. 연주 말이 맞더라, 널 가둬두니까 돈 나갈 일이 없더라고. 그런데 네 아비가 진짜로 10억을 만들어 올 줄은 몰랐네.”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만든 10억은, 저들에게는 그저 잔인한 게임에 불과했다. 저 화려한 파티 비용 중 일부는 아버지의 피와 신장을 바꾼 돈이었다. 돈이 없어 나무로 된 평범한 상자에 담긴 아버지의 유골이 떠올라 가슴이 찢어졌다. 4 연주가 바닥에 떨어진 유골함을 집어 들었다. “이게 뭐야? 언니 보물인가?” 연주가 함을 열려 하자, 나는 필사적으로 기어갔다. “돌려줘! 제발!” 하지만 연주는 발로 나를 걷어찼다. “우리 코코를 다치게 했으면 사과를 해야지, 이딴 걸 들고 와서 뭐해?” 함이 열렸다. 강바람이 세차게 불어왔고, 아버지의 유골 가루가 눈 가루처럼 허공으로 흩어졌다. “안 돼! 안 돼...!” 나는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아버지는 바람을 타고 영영 사라지고 있었다. 연주는 얼굴을 찌푸리며 비웃었다. “뭐야, 그냥 싸구려 밀가루잖아? 언니, 사과 선물이 고작 이런 거야?” 그녀는 함을 강아지 앞에 던져버렸다. 코코가 유골 가루를 건드리려 하자 나는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제현이 다시 나를 걷어찼다. “또 우리 코코 괴롭히려고?” 주인이 편을 들자, 개는 기세등등하게 꼬리를 흔들며 남은 유골 가루 위에 오줌을 지렸다. 그리고는 엉덩이를 흔들며 연주에게 돌아갔다. 연주는 개를 쓰다듬으며 조롱했다. “언니, 이런 지저분한 걸 왜 파티장에 가져와요? 우리 코코가 화났잖아요.” 나는 대꾸할 힘도 없이, 오염되지 않은 가루를 조심스럽게 쓸어 담았다. 제현은 짜증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심이안, 또 무슨 신파극이야? 싸구려 가루 좀 쏟아진 거 가지고.” 내 손이 멈췄다. 나는 눈물 섞인 목소리로 포효했다. “이건 밀가루가 아니야... 우리 아빠 유골이라고!” 제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내 폭소를 터뜨렸다. “그 기생충 같은 노인네가 죽었다고? 날 속이려고 작정을 했구나!” 눈물이 뺨을 타고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제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동정심 유발하지 마. 코코한테 무릎 꿇고 사과 안 시킨 것만 해도 다행인 줄 알아.” 내가 울고 있는 건, 지난 세월 그에게 바쳤던 내 진심 때문이었다. 이 순간, 모든 것이 끝났다. 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한 자 한 자 내뱉었다. “이혼해.” 제현은 믿기지 않는 듯 굳어버렸다. 내가 먼저 이혼을 말하는 게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당황한 기색을 숨기며 물었다. “네가 정말 나랑 이혼하겠다고?” 나는 가방에서 이혼 합의서를 꺼내 그의 얼굴에 던졌다. “강제현, 이혼하자고.”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장난해? 너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 밥 벌어 먹을 능력도 없는 게 누굴 믿고 이래? 나 같은 남자니까 널 거둬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