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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를 첼로 상자에 가뒀다
어둠, 그리고 매캐한 송진 가루의 냄새.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기억이다. 그날 밤, 나는 악몽을 꾸다 깨어나 울며 엄마를 찾았다. 하지만 ...
Chương (1)
第1章
어둠, 그리고 매캐한 송진 가루의 냄새.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기억이다.
그날 밤, 나는 악몽을 꾸다 깨어나 울며 엄마를 찾았다. 하지만 엄마는 달래주는 대신, 차가운 손길로 나를 첼로 케이스 안에 밀어 넣었다.
사실 징조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내 네 살 생일날, 장난감을 떨어뜨려 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엄마가 처음으로 불같이 화를 냈던 그날부터.
엄마는 꽤 이름난 첼리스트였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지만, 정작 엄마 자신은 아주 작은 소음에도 날카로울 정도로 민감했다.
그날 밤도 어떤 전조나 설명 같은 건 없었다. 방문 너머로 아빠가 조심스럽게 엄마를 말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연아, 애 놀라겠어. 그만해.”
그 한마디가 도화선이 된 걸까. 엄마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나를 쏘아봤다. 예전의 그 다정했던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지독한 증오만이 가득했다. 나는 바보같이 엄마가 잠시 기분이 안 좋은 것뿐이라고, 조금만 지나면 다시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
첼로 케이스 안은 점점 숨이 막혀왔고, 호흡은 갈수록 버거워졌다. 밖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들. 아마 엄마가 연주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엄마를 부르려고 입을 벌렸지만, 목소리는 목구멍에 걸려 눅눅한 신음이 되어 흩어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귀를 찌르는 이명 소리가 밖에서 들리는 첼로 소리를 덮어버렸다. 심장 박동 소리는 왜 이렇게 크게 들리는 건지.
이상하게도 더는 답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솜털처럼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엄마가 켜는 곡,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었다. 아주 다정하고 포근한 자장가였다.
이제 잠이 온다.
의식이 서서히 흐려지는 와중에 나는 내 몸이 투명하게 변해가는 것을 보았다.
나…… 정말 죽은 걸까.
케이스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조용해졌네! 울기만 하고, 시끄러워 죽는 줄 알았어.”
“소리 내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예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다니까!”
활이 현을 거칠게 긁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아빠의 목소리는 조금 멀리서, 망설임이 섞인 채 들려왔다.
“서연아, 훈육도 적당히 해야지. 애 그러다 정말 큰일 나겠어.”
“큰일?”
엄마의 목소리가 비웃음을 머금고 높아졌다.
“당신, 혼자 착한 척 좀 하지 마! 이런 철없는 애는 매가 약이야. 하룻밤 가둬둔다고 안 죽어! 고생을 좀 해봐야 이 집 주인이 누군지 알지!”
아빠는 침묵했다. 잠시 후, 아빠의 체념 섞인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래, 알았어. 당신 뜻대로 해. 내버려 두자고. 내일 아침이면 지도 느낀 게 있겠지.”
비록 나는 죽었지만, 영혼은 여전히 그 좁은 첼로 케이스 안에 갇혀 있었다. 좁고, 고요한 공간. 나는 차갑게 식은 나의 뺨에 얼굴을 맞대고, 그저 잠든 척을 했다.
그렇게 긴 밤을 보내고 나서야 아빠가 나를 꺼내주러 왔다.
“날 밝았다. 이제 그만 꺼내주자.”
“겁 잔뜩 먹었을 거야. 이제 밤에 떼쓰는 버릇은 고쳐졌겠지.”
아빠가 케이스 뚜껑을 톡톡 두드리며 다정하게 말했다.
“수아야, 잘못한 거 알지? 이제 나와. 아빠가 따뜻한 우유 줄게.”
나는 서러운 마음에 아빠에게 크게 대답하며 밖으로 나가려 발버둥 쳤다. 하지만 아빠에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박수아, 아직도 아빠한테 심술부리는 거야? 어서 나와!”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물컵을 들고 지나가던 엄마가 케이스를 싸늘하게 훑으며 한마디 던졌다.
“죽은 척은. 능력 있으면 평생 거기서 나오지 말지 그래?”
아빠는 눈살을 찌푸리며 케이스를 열었다. 내 팔을 잡아당기던 아빠의 손길이 굳어졌다. 팔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코웃음을 쳤다.
“연기력이 아주 늘었어! 그래, 계속 그러고 있어 봐. 누가 밥 주나!”
나는 옆에 서서 짜증을 내는 아빠를 바라보며 눈물을 참으려 코를 훌쩍였다. 아빠는 그저 엄마를 화나게 하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아빠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니까.
그런데 왜일까, 갑자기 아빠가 주겠다던 그 따뜻한 우유가 너무 마시고 싶어졌다. 식탁으로 다가가 컵에 담긴 우유를 마시려던 찰나, 엄마가 컵을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챙그랑!
우윳빛 액체가 유리 파편과 함께 바닥 사방으로 튀었다. 엄마는 그 얼룩을 쏘아보며 가슴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따뜻한 우유? 당신 참 지극정성이네! 어디서 굴러먹던 근본 없는 애한테 그렇게 마음을 써?”
아빠의 얼굴이 순간 핏기없이 하얘졌다. 아빠는 무의식적으로 케이스 쪽을 슬쩍 보더니, 엄마의 팔을 붙잡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조용히 해! 애 앞에서는 절대 그 이야기 안 하기로 했잖아!”
“애는 무슨! 저건 빚쟁이야! 아무도 안 거두는 걸 당신이 마음 약해서 입양해오는 바람에……!”
엄마가 비명을 지르듯 내뱉었다. 엄마의 눈 속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지금 엄마는 아주 화가 나 있다. 나는 엄마 곁으로 다가가 화내지 말라고 엄마 손을 잡으려 했지만, 내 손은 허공을 갈랐다.
“그만해!”
아빠의 고함에 깜짝 놀랐다. 아빠의 이마에 핏대가 솟아 있었다.
“수아는… 수아는 우리가 가슴으로 낳은 아이야!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제발 진정해!”
“입양?”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차갑게 웃었다.
“뭐가 달라? 어차피 내 아이가 아닌데! 내 수아가 아니라고! 내 수아가 살아있었다면……!”
엄마는 갑자기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쥐고 흐느꼈다. 아빠는 안도 섞인 숨을 내쉬며 피곤한 기색으로 엄마를 끌어안았다.
“그래, 알았어. 그만하자. 수아 보고 싶은 거 알아… 나도 안다고……”
나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아빠 엄마의 친딸이 아니었던 걸까?
엄마는 왜 나를 근본 없는 애라고 부른 걸까?
그럼 엄마랑 아빠한테는 또 다른 ‘수아’가 있었던 걸까?
바닥에 번진 우유를 내려다보았다. 어제 아침, 아빠가 따뜻한 컵을 건네주었을 때 손바닥에 닿았던 그 온기가 기억난다. 이제 그 온기도, 우유도, 전부 차갑게 식어버렸다.
아빠는 거실 소파에 누워 있는 (죽은) 나를 보며 낮게 말했다.
“수아야, 엄마한테 너무 대들지 마. 엄마 몸도 안 좋잖아……”
아빠는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했지만, 나는 미동도 없었다. 한참의 침묵 끝에 아빠가 짜증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이 집구석은 정말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네!”
엄마를 부축해 안방으로 들어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서러움이 밀려왔다. 예전엔 아빠가 나를 보며 인상 쓴 적이 없었는데. 나를 안고 빙글빙글 돌리며 ‘아빠의 비타민’이라고 웃어주곤 했는데.
엄마도 그랬다. 나를 품에 안고 첼로 켜는 법을 다정하게 가르쳐주었다. 내가 삐걱거리며 몇 음절을 겨우 연주하면, 엄마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하며 칭찬해주었다.
“우리 수아 정말 최고네! 역시 엄마 딸이야!”
도대체 언제부터, 모든 게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
죽음 같은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잠시 후, 엄마의 연습실에서 경쾌하고 발랄한 곡조가 흘러나왔다. 쇼팽의 ‘강아지 왈츠’였다.
예전 같았으면 이 곡이 들리자마자 맨발로 뛰어나가 엄마 주변을 깡충깡충 뛰어다녔을 것이다. 그럼 아빠는 허허 웃으며 나를 번쩍 안아 들고 말하곤 했다.
“보렴, 우리 집 강아지가 음악 소리를 듣고 소환됐네.”
나는 엄마의 연습실로 들어가 예전처럼 엄마 무릎 곁에 엎드려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문가에 나타난 아빠가 담배를 입에 물더니, 복잡한 눈빛으로 소파 쪽을 바라봤다.
“참 나, 전에는 이 노래만 나오면 토끼처럼 뛰어오더니. 오늘은 웬일로 엉덩이가 무겁네.”
곡이 끝났지만 소파 위의 작은 나는 여전히 뒤틀린 자세로 웅크린 채였다. 아빠는 담배를 비벼 끄고 다가왔다.
“수아야, 네가 제일 좋아하는 ‘캐치! 티니핑’ 시작한다. 지금 안 일어나면 놓쳐.”
예전 같으면 아무리 심술이 났어도 슬그머니 눈을 떴을 것이다. 한 번은 내가 열이 펄펄 끓어서 아무것도 못 먹고 있을 때, 아빠는 나를 안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내가 잠들 때까지 만화를 보여주곤 했다.
하지만 지금, 소파 위의 나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속눈썹 하나 떨리지 않았다. 나는 내 작은 육체 옆에 엎드려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내 몸 안으로 들어가 보려 애를 썼지만, 영혼은 자꾸만 미끄러졌다. 아빠를 부르고 싶었지만 입을 벌려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투명한 내 몸을 뚫고 누군가 지나갔다. 고개를 들어보니 엄마였다. 엄마는 혐오감이 서린 눈빛으로 내 어깨를 툭 밀었다.
“적당히 기회를 줄 때 그만하지, 지금 시위하는 거야?”
엄마의 손이 내 딱딱한 팔에 닿았다. 엄마는 억지로 내 팔을 펴보려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 경직은 뼈속 깊이 박힌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참나! 이런다고 누가 봐줄 줄 알아? 그래, 평생 그러고 있어 봐!”
망설임 없이 뒤돌아 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걸음마를 배우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의 나는 자주 넘어지곤 했다. 넘어질 때마다 아프다고 땅바닥에 누워 엄마가 안아주길 기다렸다.
엄마는 곧장 안아주지 않았다. 내 앞에서 무릎을 굽히고 앉아 스스로 일어날 수 있게 응원해주었다. 하지만 내가 서러워 울음을 터뜨리면, 엄마는 제일 먼저 나를 품에 낚아채 등을 토닥이며 다정하게 달래주었다.
“엄마 여기 있어, 수아야. 무서워하지 마.”
메마른 눈을 깜빡였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내 몸은 더 투명해지고 가벼워졌다. 마치 입바람 한 번에 흩어져 버릴 것처럼.
엄마, 나 너무 추워.
왜 예전처럼 내 등을 토닥이며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해주지 않는 거야……
그때, 집에서 키우는 치즈 고양이 ‘나비’가 구석에서 살금살금 기어 나왔다. 나비는 평소 내 무릎에 웅크리고 앉아 가르랑거리는 걸 제일 좋아했다. 나비는 소파로 다가와 습관처럼 내 손에 머리를 비비려 했다.
하지만 차갑고 딱딱한 내 손가락 끝에 코가 닿는 순간, 나비는 하악질을 하며 몸을 활처럼 둥글게 말았다. 그리고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내지르며 털을 바짝 세운 채 소파 밑으로 숨어버렸다. 아빠가 아무리 불러도 나비는 나오지 않았다.
마침 물을 마시러 나온 엄마가 그 광경을 보고는 신경질적으로 컵을 탁자에 탁 내려놓았다.
“짐승까지 쌍으로 난리네! 시끄러워 죽겠어!”
엄마는 소파 위의 나를 혐오스럽다는 듯 힐끗 쳐다봤다.
“저 꼴 좀 봐! 전생에 무슨 원수를 졌길래!”
아빠는 입을 벙긋거리다 결국 피곤한 듯 얼굴을 쓸어내리며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뿌연 연기가 아빠의 얼굴을 흐릿하게 덮었다. 아빠는 더는 나를 보지 않고 창밖의 태양만 바라봤다. 햇살은 저렇게나 좋은데, 내 작은 몸은 조금도 따뜻해지지 않았다.
그 뒤로 꼬박 하루 동안, 엄마와 아빠는 나를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밤이 되어서야 아빠는 참아왔던 인내심을 폭발시켰다. 아빠는 나를 거칠게 안아 들었다. 나는 옆에서 아빠가 나를 안는 모습을 지켜봤다.
한때 아빠의 품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항구였다. 밤에 천둥이 치면 겁에 질려 웅크린 나를 아빠는 이렇게 안아주었다. 그리고 가락도 안 맞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방 안을 천천히 거닐었다. 나는 아빠의 규칙적인 심장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곤 했다.
아빠의 품은 그렇게 따뜻하고 든든했는데, 이제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아빠는 억눌린 분노를 터뜨리며 내 방 문을 발로 걷어차고 들어갔다. 내 몸은 작은 침대 위로 거칠게 던져졌다. 매트리스가 한 번 출렁이고는 다시 고요해졌다.
아빠는 침대 곁에 서서 가슴을 들썩였다. 아빠는 이를 악물고 틈새로 악에 받친 목소리를 뱉어냈다.
“박수아! 너 이번엔 정말 선 넘었어!”
“나랑 네 엄마가 오냐오냐해주니까 아주 우습지? 그래, 계속 그러고 있어 봐!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고. 누가 먼저 항복하나!”
나는 아빠를 붙잡고 싶었지만, 아빠는 단호하게 몸을 돌려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방안은 완벽한 어둠에 잠겼다.
아빠, 내가 어둠을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잊어버린 거야?
예전엔 항상 거실 불빛이 들어오게 문을 살짝 열어두면서 그랬잖아.
“수아야 무서워 마, 아빠가 바로 앞에 있을게.”
그런데 지금은 정말 너무 무섭다.
나는 무릎을 감싸 쥐고 침대 머리맡에 웅크린 채 몸을 떨었다. 창백한 달빛이 내 창백한 얼굴 위로 기괴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문밖에서 아주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들렸다. 엄마였다. 엄마는 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문턱에 멈춰 섰다. 내가 다가가 보니,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문틈을 살짝 열고 안을 살피고 있었다.
달빛 아래 비친 나의 부자연스러운 자세, 딱딱한 윤곽, 그리고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푸르스름한 얼굴. 엄마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문을 닫고 안방으로 돌아갔다. 아빠가 물었다.
“어때? 좀 누그러졌어?”
엄마가 내 이상함을 눈치챘을 거라 생각했지만, 엄마는 태연한 척 코웃음을 쳤다.
“누그러지긴? 우리가 마음 약해질 걸 정확히 알고 저러는 거야. 한두 번 속아?”
아빠가 뭔가를 더 말하려 했지만, 엄마는 거칠게 말을 잘랐다.
“잠이나 자! 내일 아침이면 배고파서라도 기어 나올 테니까!”
방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나는 내 침대 곁으로 돌아가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나를 내려다보았다. 달빛이 내 관자놀이 부근의 멍 자국을 비췄다. 어제 엄마가 밀칠 때 부딪혔던 상처였다.
아빠, 엄마.
나 정말 말해주고 싶어. 이번엔 연기하는 게 아니라고.
이제 배고프지도 않고, 시끄럽게 굴지도 않을 거야. 엄마 아빠를 화나게 할 일도 없어.
아빠, 엄마. 이제 두 분 다 편하게 주머니 잠드셔도 돼요.
새벽녘, 아빠가 일어났다. 아빠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내 방문을 벌컥 열었다.
“박수아! 날 밝았어! 그만하고 얼른 일어나서 학교 갈 준비 해!”
방안은 죽은 듯 고요했다. 나는 여전히 그 기괴한 자세 그대로였다. 아빠가 침대 곁으로 다가와 나를 밀쳤다.
“내 말 안 들려?”
아빠의 손바닥이 내 피부에 닿았다. 온기 대신 서늘하고 딱딱한 감촉만이 전해졌다. 아빠의 손이 멈칫하더니, 떨리는 손가락을 내 코밑에 갖다 댔다. 온기 섞인 숨결은 단 한 줌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아빠는 미친 사람처럼 내 목을 만지고 가슴을 압박했지만, 돌아오는 건 차가운 정적뿐이었다. 아빠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비명에 놀란 엄마가 잠옷 차림으로 뛰어 들어오며 미간을 찌푸렸다.
“새벽부터 왜 소리를 질러? 쟤가 또 무슨 쇼를 하는데?”
엄마의 시선이 아빠를 따라 내 위로 떨어졌다. 엄마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주… 죽었어……”
아빠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엄마의 온몸이 굳어졌다.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무슨 헛소리야? 누가 죽었다고 그래……”
아빠는 절망적인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수… 수아가 죽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