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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원한 대로 나는 사라져 주었다
2년을 기다린 기증 심장을 남편이 내 친부모의 양녀 윤채린에게 넘겨 이식했다. 의사는 내게 마지막으로 남은 시간이 일주일뿐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
Chương (1)
第1章
2년을 기다린 기증 심장을 남편이 내 친부모의 양녀 윤채린에게 넘겨 이식했다.
의사는 내게 마지막으로 남은 시간이 일주일뿐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사후에 내 몸을 냉동 보존하기로 했다.
나는 내 시신을 윤채린이 일하는 연구소에 기증했다.
기증 동의서에 서명한 날, 아들 강이준이 내 품으로 뛰어들면서 엄마가 드디어 이모와 화해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부모님은 내가 드디어 자매끼리 아끼고 서로 돕는 법을 알게 됐다며 칭찬했다.
남편 강도윤은 내가 마침내 앙금을 내려놓고 사리를 분별하게 됐다며 안도했다.
나는 살짝 웃었다. 맞다. 이번에는 내가 정말 말을 잘 듣게 됐다.
나는 윤씨 집안의 친딸이라는 자리를 윤채린에게 돌려주고, 모두를 만족시켜 줄 생각이었다.
제1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남은 기간 동안 가족들과 제대로 작별하세요.”
주치의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안쓰러움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은 거대한 돌덩이처럼 내 심장을 짓눌렀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다.
그래도 ‘사형 선고’를 직접 듣자, 나는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나는 겨우 스물여덟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나는 계속 버텨 왔다.
하지만 어렵게 기다린 심장 기증을 남편이 빼앗아 갈 줄은 몰랐다.
남편은 심장 기능이 조금 일찍 약해진 정도였던 가짜 딸 윤채린에게 그 심장을 이식시켰다.
나는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처럼 윤채린의 병실로 갔다.
그곳에는 내 부모님, 내 남편 강도윤, 아들 강이준이 모두 윤채린 곁에 둘러서서 살뜰히 챙기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윤채린에게 물을 먹이던 강도윤은 바로 컵을 내려놓고 다가와 물었다.
“의사가 뭐래?”
내가 강도윤을 바라보자, 강도윤은 바로 죄책감 어린 눈빛으로 시선을 피했다.
이어 더듬거리듯 변명했다.
“그때는 상황이 급했어. 채린이에게 심장을 이식하지 않았다면 채린이는 고통 속에서 죽었을 거야.”
엄마가 곧바로 말했다.
“강 서방 말이 맞아. 세류야,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었잖니? 설마 이 정도 일로 우리에게 화낼 만큼 철이 없는 건 아니겠지?”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말이 입술 앞에서 맴돌다 사라졌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화 안 났어요. 의사가 일주일 뒤에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고 했어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우리 모두에게 좋은 소식이요.”
강도윤은 콧등 위의 금테 안경을 밀어 올렸다. 안경 너머 길게 휘어진 눈매에는 바로 웃음이 번졌다.
“이렇게 빨리 맞는 심장이 나온다고? 역시 그날 내 결정이 옳았어.”
아버지도 한숨을 놓으며 웃었다.
“우리 채린이는 복이 있는 아이야. 심장을 채린이에게 양보하지 않았다면, 채린이는 일주일 뒤까지 버티지도 못했을 거다.”
엄마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윤채린의 관자놀이에 흘러내린 잔머리를 부드럽게 귀 뒤로 넘겨주며 말했다.
“우리 채린이 복은 이제부터 더 좋아질 거야.”
“누구와는 다르게 말이야. 기다리면 다른 심장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 굳이 난리를 피워서 우리 윤씨 가문 체면을 완전히 구겼지.”
나는 이미 이 사람들에게 실망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자, 내 가슴은 여전히 따끔하게 찢어졌다.
나는 치맛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그래야 눈가를 뚫고 터져 나오려는 슬픔을 겨우 밀어낼 수 있었다.
강도윤은 부드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몸이 떨릴 만큼 차가웠다.
“그날 그런 행동은 확실히 너무 충동적이었어. 채린이에게 사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강도윤을 바라보았다.
‘윤채린이 내 심장을 빼앗아 갔는데, 나보고 윤채린에게 사과하라는 말인가?’
엄마가 맞장구쳤다.
“그래. 게다가 그날 네가 채린이를 괴롭히지만 않았어도 채린이가 흉통을 느낄 일은 없었어.”
“채린이가 지금 이렇게 무사히 누워 있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너를 딸로 인정하지 않았을 거야.”
나는 그날을 떠올렸다. 윤채린은 내 앞에 서서 목에 남아 있는 애정의 흔적을 득의양양하게 보여 주었다. 강도윤이 자신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또 얼마나 자신을 참지 못했는지 자랑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윤채린의 뺨을 때렸다가 하필 그 장면을 모두에게 들키고 말았다.
강도윤은 분노한 채 달려와 나를 밀쳐 냈다.
나는 바닥에 넘어졌고,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사이에 엄마가 달려와 나를 마구 때렸다.
아버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차갑게 서 있었다. 마치 나도 조금쯤 혼이 나야 한다고 여기는 듯했다.
이어 내 심장병이 발작했다.
윤채린도 심장을 움켜쥐며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두는 내가 연기하는 거라고 생각했고, 윤채린만 진짜라고 믿었다.
그 기억들을 떠올리자, 나는 억지로 쓴웃음을 입가에 걸고 담담하게 말했다.
“미안해. 내 잘못이야.”
내가 이렇게 순순히 사과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강도윤의 눈에는 나를 살피는 기색이 섞였다.
윤채린도 예쁜 눈썹을 찌푸리며 ‘어떻게 이렇게까지 연기를 잘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부모님도 경계하듯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내가 다시 덤벼들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들 같았다.
오직 내 아들 강이준만이 기뻐하며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엄마, 다행이다. 엄마가 드디어 잘못을 인정했어.”
“앞으로는 이모 괴롭히지 마. 아니면 나도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처럼 엄마 안 좋아할 거야.”
나는 고개를 숙이고 강이준을 바라보았다. 부모와 남편의 냉담함, 오해, 편애는 모두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강이준만은 달랐다. 10개월 동안 내 뱃속에 품고 낳은 내 아이가 윤채린을 더 아낀다는 사실만큼은 견딜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더 이상 다툴 힘이 없었다.
나는 가볍게 강이준의 뺨을 어루만지며 웃었다.
“엄마가 이준이 말 다 들을게.”
그제야 엄마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세류야, 이제야 네가 좀 말을 듣는구나.”
강도윤도 완전히 안도한 듯 말했다.
“내 아내가 이제야 철이 들었네.”
애써 다정한 척하는 강도윤의 모습을 보니, 나는 가슴속에서 역겨움이 치밀었다.
“아파...”
바로 그때 윤채린이 갑자기 외쳤다.
강도윤은 즉시 윤채린에게 달려갔다.
방금 전까지 나를 안고 있던 강이준도 손을 놓고 뛰어가면서 외쳤다.
“이모, 어디가 아파? 이준이가 호 해 줄게.”
부모님은 눈시울까지 붉히며 윤채린을 걱정했다.
멀리 떨어져 서 있는 나는 광대 같았다.
나는 더 이상 이런 분위기를 견딜 수 없어서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병실을 나왔다.
제2화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심장에서 밀려온 통증 때문에 나는 거의 쓰러질 뻔했다.
나는 벽에 기대고 쪼그려 앉았다.
급히 강한 진통제를 찾아 몇 알이나 삼킨 뒤에야 통증이 조금 가라앉았다.
병실 안에서는 아직도 엄마가 내 냉정함을 나무라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내가 윤채린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그곳에 있기만 해도 윤채린은 불편해한다.
그건 윤채린이 관심을 빼앗기 위해 늘 쓰는 방식이었다.
사실 윤채린은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부모님, 남편, 아들이 사랑한 사람은 가짜 딸인 윤채린이었으니까.
부모님이 지어 주신 내 이름은 ‘세류’였다.
조용히 흘러가다 사라져도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이름.
부모님은 나를 찾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찾아와 친딸이라고 밝혔을 때도, 부모님은 내게 그런 이름을 붙였다.
나는 정신없이 병원을 떠난 뒤, 택시를 타고 윤채린이 있는 ‘다온 바이오연구소’로 갔다.
나는 이미 연구소 측과 약속을 잡아 두었다.
내 시신을 기증해 냉동 보존 및 소생 연구에 쓰게 하겠다고.
동의서에 서명할 때, 직원이 물었다.
“윤세류 님, 부모님과 배우자분도 이 결정을 알고 계신가요?”
나는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가족들은 모두 제 결정을 존중하고 지지해 줘요.”
직원은 부럽다는 듯 말했다.
“좋네요. 가족분들이 윤세류 님을 많이 사랑하나 봐요. 언젠가 다시 깨어날 수 있기를 바라시는 거겠죠.”
직원의 부러움 섞인 눈빛을 보고 있으니, 내가 정말 부모와 사랑하는 사람에게 깊이 사랑받는 여자라도 된 것 같았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자기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나는 동의서를 건넸다.
문서 확인이 끝난 뒤, 나는 연구소를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내 물건들이 거실 가득 쌓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사람들을 지휘하고 있는 박상미를 바라보았다.
박상미는 윤채린을 키운 도우미 아주머니였다.
그런데 왜 여기 있는 걸까?
박상미는 내 부모님처럼 진짜 딸인 나를 싫어했다.
나를 보자, 박상미는 웃는 듯 웃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큰아가씨, 채린 아가씨가 오늘 퇴원해요. 강 대표님이 저더러 채린 아가씨를 돌보러 오라고 하셨고, 병이 낫는 동안 쓸 방도 하나 고르라고 하셨어요.”
“안방이 남향이라 햇빛도 잘 들고 공기도 잘 통해서, 채린 아가씨 몸조리하라고 안방을 정리했어요.”
“저택의 다른 방들은 다 용도가 있어서요. 죄송하지만 큰아가씨는 1층 창고방에서 지내셔야겠어요.”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알았어요.”
박상미는 아마 내가 이렇게 순순히 받아들일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 속에 가득 준비해 둔 말들을 입속에서 삼켜 버렸다.
박상미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큰아가씨, 화 안 나세요?”
나는 고개를 저은 뒤, 창고방 쪽으로 돌아섰다.
박상미가 멸시하듯 말했다.
“큰아가씨가 정말 철이 들긴 들었나 보네요. 진작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진작 이랬으면 회장님과 사모님도 큰아가씨를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을 거예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창고방에 들어서자, 코를 찌르는 곰팡내가 밀려왔다.
비좁은 공간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했고, 한쪽에는 1인용 작은 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침대의 절반은 책으로 덮여 있었고, 나머지 절반만 비어 있었다.
나는 곧장 그 위에 누웠다. 머리가 몽롱해졌고 그대로 잠에 빠졌다.
나는 너무 지쳐 있어서 그저 제대로 한숨 자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바람마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거친 힘에 끌려 잠에서 깼다. 눈을 뜨자, 공포로 가득한 강도윤의 눈이 보였다.
내가 깨어난 걸 확인하자, 방금 전까지 걱정이 담겨 있던 강도윤의 눈은 바로 차갑게 식어 있었다. 강도윤은 큰 소리로 따져 물었다.
“왜 우리 둘이 결혼했다는 일을 인터넷에 올렸어?”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채린이에게 악플을 다는지 알아? 채린이는 수술을 막 끝낸 상태라 몸도 약해.”
“그 일 때문에 채린이가 충격을 받아 바로 쓰러졌다고!”
“네가 정말 말을 잘 듣게 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조용히 우리에게 복수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거야?”
내 머릿속에는 커다란 망치로 미친 듯이 두드리는 듯한 통증이 울렸다.
강한 통증 때문에 강도윤의 말도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힘없이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 못 믿겠으면 내 핸드폰을 봐.”
강도윤은 분노에 차 소리쳤다.
“그만해! 기자들이 다 인정했어. 네가 돈을 주고 이 일을 크게 퍼뜨리라고 시켰다고!”
“언제까지 시치미 뗄 건데? 빨리 따라와. 채린이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해!”
제3화
강도윤은 거칠게 나를 침대에서 끌어내렸다.
그리고 그대로 나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강도윤이 너무 급하게 걷는 바람에, 내 다리가 문에 세게 부딪치면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나는 고통에 몸이 떨렸다.
하지만 강도윤은 그저 뒤를 한 번 바라봤을 뿐, 계속 나를 밖으로 끌고 갔다.
거실에 도착하자, 강도윤은 나를 바닥에 거칠게 내던졌다.
온몸의 뼈가 흩어지는 듯했다.
내가 막 일어나려는데, 엄마가 달려와 내 뺨을 몇 차례 세게 때렸다.
막힌 하수구에서 썩은 물이 역류하듯 피비린내가 목구멍으로 치밀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윤채린은 아버지의 품에 숨은 채 처량하게 울고 있었다.
엄마는 흉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엄마의 눈동자에는 나를 향한 혐오와 증오만 가득했다. 마치 나를 난도질해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아마 내 눈빛이 지나치게 차가웠던 탓인지, 엄마는 다시 손을 들어 내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피를 토했다.
피가 엄마의 손과 얼굴에 튀자 엄마는 멍해졌다.
엄마의 손은 내 뺨 위에서 멈췄다. 마치 아주 가볍게 나를 쓰다듬은 것 같았다.
나는 참지 못하고 엄마의 손에 뺨을 비볐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나도 원했다. 정말로 원했다.
내 엄마가 윤채린을 만지듯 나를 부드럽게 만져 주기를.
늘 차디찬 손바닥으로 나를 향한 혐오를 쏟아 내는 대신에.
엄마는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사람처럼 손을 거둬들였다.
나는 지쳐서 바닥에 쓰러졌다. 코에서도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강도윤이 겁에 질린 채 앞으로 달려왔다.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왜 그래? 왜 이렇게 피를 많이 토해?”
나는 강도윤을 바라보았다. 강도윤의 두 손은 떨리고 있었다.
마치 정말로 나를 걱정하는 사람 같았다.
나는 나를 부축하려는 강도윤의 손을 밀쳐 냈다. 막 일어나려고 했지만, 다시 초라하게 입가에서 피를 쏟아 냈다.
엄마의 눈에 드디어 두려움이 어렸다.
엄마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 나는 뺨 몇 대 때렸을 뿐이야. 아무것도 안 했어!”
말을 마친 엄마는 드물게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세류야, 너 왜 그래? 엄마가... 엄마가 지금 병원에 데려갈게...”
아버지도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이야? 빨리, 먼저 세류를 일으켜.”
아들 강이준도 달려와 크게 울었다.
“엄마, 피가 너무 많이 나. 엄마 죽는 거야?”
엄마가 날카롭게 말했다.
“그런 말 하면 안 돼!”
그때 박상미가 갑자기 걸어 나왔다. 박상미의 손에는 봉지가 하나 들려 있었다. 박상미는 분개한 얼굴로 말했다.
“큰아가씨, 어떻게 가짜 피 주머니로 사모님과 강 대표님을 놀라게 할 수 있어요?”
‘가짜 피 주머니? 무슨 가짜 피 주머니?’
내가 이해하기도 전에 엄마는 이미 박상미 앞으로 달려갔다.
박상미의 손에 든 걸 확인하자마자, 엄마는 분노에 차서 그걸 바닥에 내던졌다.
엄마는 격하게 욕했다.
“윤세류! 너는 역시 단수가 높구나. 가짜 피 주머니로 우리 동정심을 얻으려고 해?”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미 말을 잘 듣게 됐는데...’
‘왜 이 사람들은 아직도 나를 놓아주지 않는 걸까?’
강도윤은 몸을 낮추고 실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세류야, 너 어쩌다 이렇게 됐어?”
분노에 찬 아버지는 윤채린 곁으로 돌아가서는 혐오를 감추지 않고 말했다.
“못된 딸 같으니! 역시 시골에서 굴러온 들짐승이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피도 눈물도 없구나!”
“우리 채린이의 반도 못 따라가. 아니, 채린이 머리카락 한 올만도 못해!”
나는 말하지 않았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피를 억지로 삼켰다.
조금 전까지 내 품에 안겨 있던 강이준도 이제는 싫다는 듯 나를 힘껏 밀쳐냈다.
강이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엄마, 나는 엄마가 변한 줄 알았어. 엄마가 이렇게 나쁘면 나 이제 엄마 안 좋아해!”
그렇게 말한 강이준은 윤채린 곁으로 달려갔다. 윤채린의 다리에 엎드리며 말했다.
“이모가 내 엄마였으면 좋겠어!”
순간 내 마음은 식어 버렸다.
나는 미친 듯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손톱에 찢어진 손바닥에서 피가 나도, 내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강도윤은 한숨을 쉬더니, 손을 들어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강도윤이 물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기분이 얼마나 힘든지 너도 알잖아.”
“그런데 왜 그런 짓을 했어? 지금 채린이의 평판은 망가졌고, 우리 회사 주가도 흔들리고 있어.”
“이 모든 게 너 때문이야. 그러니까 너는 사과만 할 게 아니라, 보상할 방법도 내놔야 해.”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윤채린이 울기 시작했다.
윤채린은 목이 메어 말했다.
“그만해요, 형부... 언니가 몇 번이나 저를 해쳤는데, 사과까지 시키면 언니가 저를 더 미워할 거예요.”
“언니가 왜 저를 그렇게 싫어하는지 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저는 부모님을 위해서, 형부를 위해서, 언니와 더 따지지 않을게요.”
엄마는 안쓰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채린아, 네가 너무 착해서 저 아이에게 당하는 거야.”
“걱정하지 마. 엄마 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 우리가 널 지켜 줄 테니, 저 아이가 다시는 너를 해치지 못할 거야.”
말을 마친 엄마는 차가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잘 들어. 우리 윤씨 가문과 강씨 가문의 명예를 위해, 양가에서 이미 해결책을 정했다.”
“너와 도윤이는 내일 이혼 절차를 밟고, 도윤이는 채린이와 혼인신고를 할 거야.”
“우리는 외부에 도윤이와 채린이가 오래 전에 혼인신고를 했다고 발표할 거야. 다만 네 몸이 좋지 않고 네가 도윤이를 좋아해서 계속 숨겼다고 말할 거야.”
나는 강도윤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도 동의해?”
강도윤은 내 시선을 피했다. 미간을 찌푸리고 귀찮다는 듯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누가 사고를 치라고 했어?”
잠시 뒤, 강도윤은 말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 임시방편일 뿐이야. 일이 잠잠해지면 채린이와 정리할게.”
나는 강도윤을 바라보면서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강도윤은 아마 죄책감 때문이었거나, 내 침묵을 반항으로 여겼거나, 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했다. 강도윤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네가 동의하든 안 하든, 나는...”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축하해. 결혼 축하해.”
제4화
강도윤의 목소리가 뚝 끊어졌다.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강도윤의 마음속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공포가 번졌다.
강도윤에게 지금의 나는 너무나 가벼운 종이와도 같았다. 언제든 바람에 날려 강도윤이 볼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질 것만 같은 존재.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벽을 짚고 얼굴에 묻은 피를 닦은 뒤, 엄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와 강도윤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강도윤은 바로 채린이와 혼인신고를 할 수 있어요.”
엄마는 조금 의외라는 듯 물었다.
“너희 혼인신고를 안 했다고?”
강도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강도윤이 미간을 찌푸리며 설명했다.
“예전에는 계속 바빴고, 나중에는 그냥 잊고 지냈습니다.”
엄마는 오히려 손뼉을 치며 말했다.
“혼인신고를 안 했다니 잘됐구나.”
아들 강이준은 겁먹은 듯 나를 한 번 바라보고 물었다.
“그러면 앞으로 이모가 내 엄마야?”
나는 강이준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웃었다.
“좋아?”
강이준은 기뻐하며 폴짝 뛰었다.
“좋아! 이제 이모가 내 엄마야!”
말을 마친 뒤, 강이준은 내가 기분 나빠할까 봐 걱정됐는지 다시 덧붙였다.
“엄마, 아니 큰이모, 앞으로 우리 엄마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나도 큰이모를 계속 좋아할게.”
나는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말했다.
“알았어.”
윤채린은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언니가 정말 형부와 제 결혼을 허락해 주는 거예요?”
나는 평온하게 말했다.
“응. 앞으로는 ‘형부’라고 부르지 마.”
윤채린은 수줍은 표정으로 강도윤을 바라보았다.
윤채린은 강도윤이 기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강도윤은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곧바로 소매를 움켜쥔 윤채린은 고개를 숙여 눈 안쪽의 질투를 감췄다.
다시 눈을 들었을 때, 윤채린의 눈에는 전혀 무해한 느낌만 남아 있었다.
윤채린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언니.”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가족끼리 그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 없어.”
“게다가 앞으로는 내가 네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할 거야.”
윤채린은 내가 이미 시신을 윤채린이 일하는 연구소에 기증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저 의례적인 말이라고 생각한 윤채린은 바로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자매잖아요. 제가 당연히 언니를 잘 돌볼게요.”
엄마는 우리가 ‘화해’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렇게 해야지. 네가 진작 이렇게 철이 들었다면 나와 네 아빠가 왜 너에게 화를 냈겠니?”
나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정말 묻고 싶었다. 내가 정말 철이 없었느냐고.
분명 내가 윤씨 집안의 친딸인데, 모두가 나를 윤씨 집안에서 입양한 딸로 여겼다.
애초에 강도윤이 나와 결혼하겠다고 매달렸는데, 모두가 나를 끔찍한 가정파괴범 취급을 했다.
아내의 지위도 없이 아무 불평 없이 강도윤과 아들까지 돌봐 온 건 나였는데, 모두가 나를 제멋대로 구는 독하고 잔인한 여자라고 여겼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몰려오는 눈물을 참았다.
이 사람들 앞에서 더는 울고 싶지 않았다.
내가 울면 윤채린은 더 크게 울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내 눈물마저 잘못이 될 터였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오래도록 아팠던 마음이 완전히 무뎌진 듯했다.
낡은 시계가 완전히 멈춘 것처럼.
나는 강도윤을 바라보았다.
강도윤은 계속 나를 보고 있었고, 눈에는 뜻밖에도 안쓰러움이 묻어 있었다.
그 느낌이 너무 터무니없어서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돌아가서 쉬어도 돼?”
강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가서 쉬어.”
나는 한숨을 놓고 천천히 창고방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엄마가 말했다.
“짐 정리해서 집으로 돌아와 살아라.”
“지금 밖에는 기자들이 깔렸어. 네가 계속 동생 남편 집에서 지내는 걸 사람들이 알면 또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나는 말을 잘 듣는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엄마는 강도윤에게 나를 데려다 주라고 했다.
밖으로 나오자 강도윤은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일주일 뒤에 내가 수술실까지 같이 들어가 줄게.”
“수술이 끝나면 우리 제대로 이야기하자.”
“나와 채린이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야.”
나는 윤채린의 표정이 갑자기 굳는 것을 보았다.
나는 강도윤에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그래.”
강도윤은 이상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강도윤 앞에 서 있는 나는 감정이 없는 나무토막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강도윤은 조금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자.”
차에 오른 뒤, 우리는 내내 말이 없었다.
강도윤은 몇 번이나 입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창백하고 피로 얼룩진 내 얼굴을 볼 때마다 말할 마음이 사라지는 듯했다.
차가 반쯤 갔을 때, 강도윤은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바로 뒤, 강도윤은 차를 갓길에 세우고 초조하게 말했다.
“채린이가 갑자기 쓰러졌대. 거부 반응이 심한 것 같아.”
“내가 돌아가 봐야겠어. 너는 택시 타고 가.”
나는 계기판의 시계를 힐끗 보았다. 지금은 새벽 3시, 여기는 외곽릐 고가도로였다.
‘택시?’
‘내가 어디서 택시를 잡는단 말이야?’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얌전히 차에서 내렸다.
내가 제대로 서기도 전에, 강도윤은 액셀을 밟고 떠났다.
스포츠카의 굉음이 내 심장을 찢어 내듯 아팠다.
나는 가슴을 움켜쥐고 한참을 버틴 뒤에야 찢기는 듯한 고통에서 빠져나왔다.
간신히 숨이 조금 가라앉자마자 하늘에서 낮은 천둥이 울렸다.
마치 하늘마저 내 나약함을 보고 화가 나 포효하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콩알만 한 빗방울이 쏟아졌다.
어떤 빗방울은 정수리를 때렸는데, 이상할 만큼 아팠다.
퍽! 퍽! 퍽!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나는 우박이 내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급히 머리를 감싸고 앞으로 걸었다.
단단한 우박이 계속 손과 얼굴을 때렸다.
너무 아파서 나는 결국 목놓아 울었다.
울고 싶지 않았다.
다만 우박이 사람을 때리는 감각은 정말 너무 아팠다.
걷고 또 걷던 중, 눈앞이 까맣게 변했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아주 오래 시간이 지난 뒤, 나는 구급차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이어 익숙한 주치의 목소리도 들렸다.
울고 있는 듯했던 주치의가 계속해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분명 일주일은 더 버틸 수 있었는데, 왜 갑자기...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겁니까?”
갈비뼈가 너무 아팠다.
‘선생님, 지금 제 몸을 아주 세게 누르고 있는 것 같아요.’
‘심폐소생술을 하는 건가요? 하지만... 정말 아파요...’
‘살아 있는 게 너무 아파요...’
‘저를 보내 주세요...’
삐-
환자 윤세류는 6월 1일 새벽 5시, 구조와 응급 처치에도 불구하고 사망했다. 향년 28세였다.
동시에 유명한 ‘다온 바이오연구소’에서 윤세류의 시신을 인수해 냉동 보존 기술을 시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