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친구의 배신을 당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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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친구의 배신을 당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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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롭힘을 당한다는 소꿉친구와 함께 전학을 가기로 약속했는데, 도장을 받기 하루 전 송창훈은 말을 바꿨다. 송창훈의 친구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

Chương (1)

第1章

괴롭힘을 당한다는 소꿉친구와 함께 전학을 가기로 약속했는데, 도장을 받기 하루 전 송창훈은 말을 바꿨다. 송창훈의 친구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진짜 대단하다. 그렇게 오래 괴롭힘 당하는 척한 이유가 결국 임주아를 떼어 놓으려는 거였어?” “그래도 임주아가 너랑 유치원 때부터 붙어 다닌 사이잖아. 낯선 학교에 혼자 보내도 마음이 편해?” 송창훈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같은 연울시 안에 있는 다른 학교일 뿐이야. 멀어 봐야 얼마나 멀겠어.” “매일 옆에 붙어 있는 것도 지겨웠는데, 오히려 잘됐지.” 그날 나는 문밖에 오래 서 있다가 결국 돌아섰다. 전학 신청서의 희망 학교란에는 연울고등학교 대신 부모님이 원하던 해외 고교, 하미르국제고를 적었다. 모두 잊고 있었다. 나와 송창훈은 애초부터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걸. 제1화 진실이 귀에 들어오자, 내 심장이 거칠게 흔들렸다. 지난 한 달 동안 송창훈은 무리에게 맞았고, 억울한 누명도 여러 번 썼다. 나는 할 수 있는 만큼 송창훈을 지키려 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빈틈은 생겼다. 더는 참을 수 없어서 전학을 권했다. 그때 송창훈은 얼음물을 뒤집어쓴 직후였다. 말끔하던 얼굴은 창백했고, 처연할 정도로 위태로웠다. 송창훈은 내 손을 붙잡았다. “주아야, 낯선 곳에 혼자 가는 건 무서워.” 나와 송창훈은 유치원 때부터 등하교를 함께한 사이였다. 10여 년 동안 달라진 적이 없는 일상이었다. 게다가 나는 오래전부터 송창훈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약속했다. “무서워하지 마. 네가 어디를 가든 내가 같이 갈게.” 하지만 이제야 알았다. 전부 나를 밀어내려고 송창훈이 공들여 꾸민 연극이었다. 나는 속으로 물었다. ‘창훈은... 내가 그렇게 싫었을까?’ 룸 안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임주아는 너한테 정말 진심이잖아.” “이 시점에 다른 학교로 가면, 임주아가 다른 애 좋아하게 될까 봐 겁 안 나?” “임주아가?” 송창훈이 헛웃음을 흘렸다.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말을 들었다는 투였다. “나 때문에 싸움판에도 뛰어들고, 맞아서 멍이 들어도 물러서지 않던 애야. 임주아 마음이 바뀔 것 같아?” 누군가 작게 중얼거렸다. “혹시 모르지. 임주아도 만만한 성격은 아니잖아.” 송창훈의 목소리는 나른했다. “그럴 일 없어. 연울고등학교에 잘난 집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임주아가 다른 애한테 눈길이라도 준 적 있어?” 그의 말투에서는 은연중에 경멸하는 기색이 묻어났다. “매일 내 뒤만 따라다니잖아. 강아지도 그렇게는 안 붙어 다니겠다.” 룸 안에서 날카로운 웃음이 터졌다. 그 소리는 내 뺨을 후려치는 것 같았다.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발바닥은 바닥에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고스란히 듣고 있었고, 그만큼 아팠다. 다른 친구가 혀를 찼다. “자기가 좋아하는 애를 밖으로 밀어내는 건 처음 본다. 인정한다, 친구야.” “근데 임주아가 너무 붙는 게 싫으면 그냥 말하면 되잖아. 임주아가 매달릴 타입은 아니던데.” 송창훈이 살짝 혀를 찼다. 슬슬 귀찮아진 목소리였다. “임주아는 존재감이 너무 세. 정면으로 말하면 조용히 끝나겠어?” 송창훈은 말을 돌렸다. “하정이는 임주아를 보기만 해도 위축돼서 힘들어해. 내가 곁에 있어야 겨우 괜찮아지고.” “하정이를 위해서라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임주아가 잠깐 힘든 건 어쩔 수 없지.” 그 말에 모두가 바로 알아들었다. 시기를 계산해 보니, 송창훈이 괴롭힘을 당하는 척하기 시작한 때는 류하정이 연울고등학교로 전학 온 지 딱 일주일 뒤였다. 누군가 웃으며 송창훈을 놀렸다. “야, 류하정이 오자마자 마음에 든 거네?” “근데 류하정은 진짜 보호본능을 자극하긴 해. 얼굴도 여리고 성격도 말랑하잖아. 남자가 흔들리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임주아랑은 다르잖아. 성격이 차갑고 늘 사람을 밀어내는 분위기라서, 예뻐도 부담스러워.” 룸 안에서는 나를 두고 멋대로 평가하는 말들이 밀물처럼 이어졌다. 내가 여러 해 동안 몰래 좋아했던 송창훈은 말리지 않았다. 반박도 하지 않았다. 중간중간 동의하듯 웃기까지 했다. 나는 문밖에 서서 마음이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마음이 텅 빈 듯 답답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큰소리로 묻고 싶었다. 왜 나를 속였는지... 나를 지키려는 척하면서, 내가 대신 맞고 다치는 걸 볼 때 양심은 조금도 아프지 않았는지... 10 몇 년을 함께한 시간은 송창훈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는지. 하지만 마지막에는 엄마의 말이 귓가에 되살아났다. 쓸데없는 일은 하지 말라고.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변하는 게 아니라는 그 말이. 나는 돌아섰고, 그 룸 앞을 떠났다. 제2화 가늘게 퍼지던 통증이 뒤늦게 온몸을 파고들었다. 원래라면 이렇게까지 아프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친한 친구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고 그냥 넘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친구라는 선을 먼저 넘은 쪽은 송창훈이었다. 송창훈과 함께 전학을 가기로 결정한 날, 송창훈은 해방을 축하하자며 나를 라운지 바로 데려갔다. 낮은 조명과 잔잔한 음악이 몸을 감쌌다. 나는 오랫동안 몰래 좋아했던 사람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멍해졌다. 그래서 송창훈이 가까이 다가와 입을 맞췄을 때, 나는 밀어내지 못했다. 오랜 세월 눌러 둔 감정이 한꺼번에 자라났다. 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물었다. “창훈아, 우리 이제 무슨 사이야?” 송창훈은 다정한 표정으로 내 이마에 다시 입을 맞췄다. “바보야, 무슨 사이겠어?” 룸 안에서는 환호성이 올라왔다. 뜨거운 분위기는 내 마음처럼 달아올랐다. 그런데 이틀도 지나지 않아, 송창훈은 내 기대를 직접 산산조각으로 만들었다.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눈물은 마음대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래서 그 모호한 되물음도 류하정 때문에 나를 빨리 보내려고 던진 거짓말이었을까? 방 안의 풍경이 달린 모빌이 짤랑이며 흔들렸다. 작은 소리가 내 눈물을 조금씩 말렸다. 부서졌던 마음도 천천히 다시 모양을 잡았다. 송창훈은 잘못 생각했다. 그는 송씨 집안의 혼외자식일 뿐이고, 나는 한씨 집안의 유일한 딸이었다. 우리는 애초에 붙어 있을 수 없는 사이였다. 격이 맞지 않았으니까. 내 손에 든 전학 신청서는 눈물에 젖어 번졌다. 잉크가 흐트러져 종이가 지저분해졌다. 그래도 괜찮았다. 더러워진 종이는 버리고, 깨끗한 종이에 다시 쓰면 된다. 한씨 집안에는 늘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 나는 새 신청서를 출력했다. 전입 학교를 적는 칸 앞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지난번에 해외에서 공부하라고 했던 학교가 어디였죠?” “네. 저 혼자 갈게요.” 방 안의 모빌은 맑은 소리를 내며 울렸다. 마치 나를 축하하는 소리 같았다. 나는 눈을 살짝 감았다. 이번에 떠오른 얼굴은 송창훈이 아니었다. 송창훈과 좀 닮았지만, 훨씬 단정하고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던 남자애가 내게 웃었다. 2년 전처럼 확신에 차 있고 진지했다. “임주아, 넌 언젠가 송창훈을 포기하고 나를 선택하게 될 거야.” 그때 나는 장난으로만 여겼다. 이제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송창훈, 나는 정말 너를 버릴 거야.’ 새 신청서를 다 채우고 나니 한숨이 길게 흘러나왔다. 내 마음도 어느새 고요해져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나는 멈칫했다. 이 집은 줄곧 나 혼자 지냈고, 현관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문을 열자 예상대로 송창훈의 얼굴이 있었다. 송창훈은 평소처럼 부드럽게 말했다. “주아야, 친구들에게 인사하러 안 와서 걱정됐어.” 나는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를 냈다. “속이 좀 안 좋아서 안 갔어.” 문을 닫으려던 때, 시야 끝에 뜻밖의 사람이 잡혔다. 류하정이 송창훈 옆에 작은 체구를 붙인 채 있었다. 내 눈과 마주치자마자 어깨를 움츠렸다. 송창훈은 류하정의 작은 움직임까지 살피고 있었는지, 곧바로 류하정을 가볍게 품 안쪽으로 감쌌다. “주아야, 하정이가 놀랐잖아.” 또 이런 식이었다. 류하정은 늘 내가 괴롭히기라도 한 것처럼 약한 척을 했다. 내가 무슨 못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지만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내 목소리는 차가워졌다. “내 집에 아무나 오는 거 싫다고 했어.” 송창훈이 미간을 찌푸렸다. 기분이 언짢은 게 분명했다. “하정이는 아무나가 아니야.” “하정이도 네가 걱정이 돼서 따라온 거고.” 내가 대꾸하기도 전에 류하정의 눈가가 젖었다. “미안해. 네가 나 싫어하는 거 알아. 그래도 나 매일 씻어.” 류하정은 눈물을 머금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너희 집 더럽히지 않을게...” 그 말에 송창훈은 바로 표정을 굳히며 나를 보았다. “하정이가 형편이 어려운 건 맞아. 그래도 네가 생각하는 그런 애는 아니야.” “너 지금 하정이한테 너무 심해. 정말 실망스럽다.” 류하정은 조심스럽게 송창훈의 옷자락을 잡았다. 너그럽고 이해심 많은 사람처럼 굴었다. “창훈아, 나는 괜찮아. 주아랑 싸우지 마...” 류하정은 코를 훌쩍이면서, 억울하지만 꿋꿋한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주아가 말했잖아. 둘은 소꿉친구라고. 그런 사이인데 내가 어떻게 비할 수 있겠어?” “무슨 소리야. 나에게 너도 아주 소중한 사람이야.” 송창훈은 안타깝다는 듯 류하정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면서 조용히 달랬다. 다시 나를 향한 송창훈의 표정은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하정이 상태가 안 좋아. 먼저 데려갈게.” “너도 혼자 잘 생각해 봐. 전학 신청서에 직인 받는 거 잊지 말고.” 나는 정말 혼자 잘 생각해 봤다. 사람을 보는 내 눈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를... 그러고는 현관으로 가서 집 비밀번호를 바꿨다. 드디어 가슴에 뭉쳐 있던 답답함이 조금은 풀렸다. 제3화 다음 날. 나는 새 신청서를 들고 학교 행정실로 갔다. 내가 떠난다는 사실을 표시하는 선명한 직인이 종이에 찍히는 걸 보자, 마음 한쪽이 문득 텅 비었다. 잠시 멍하니 서 있던 내 앞을 누군가 막았다. 송창훈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너희 집 현관 비밀번호 바꿨어?” “어제 하정이 집에 데려다 주고 바로 너한테 갔는데 문이 안 열리더라.” 나는 말을 끊었다. “응. 바꿨어.” 송창훈은 기분이 상한 듯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친근하게 물었다. “새 비밀번호가 뭐야? 네 몸도 안 좋다면서. 내가 가서 챙겨 줄게.”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필요 없어. 전학 가면 이 근처에 안 살 거야.” 송창훈은 내가 집어 든 신청서를 보고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나 이거 까맣게 잊고 있었네.” “걱정하지 마. 내일 바로 직인 받을게.” 송창훈과 나란히 걸으며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일은 류하정이 연울고등학교로 온 뒤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눈을 살짝 감았다가 떴다. 남은 미련이 한 번쯤은 목소리가 되도록 내버려 두고 싶었다. “우리 사이에 걱정한다는 말이 왜 필요해.” 송창훈은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뜬금없이 입을 열었다. “주아야, 사실 나는...” 류하정이 송창훈 뒤에서 나타났다. 공책을 한 아름 안고, 친근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창훈아, 나 공부 봐 주기로 했잖아. 왜 갑자기 사라졌어?” 류하정은 공책을 송창훈에게 내밀었다. “네가 만든 보충 계획표가 두 달 뒤까지 잡혀 있더라. 그래서 날짜에 맞춰 자료 준비했어.” 류하정은 장난스럽게 눈을 깜빡였다. “내가 몰래 본 거, 화내진 않겠지?” “화내긴...” 송창훈의 웃음은 조금 어색했다. 죄책감이 든 듯 내 쪽을 훔쳐보았다. 내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자, 송창훈의 표정에는 오히려 서운함이 스쳤다. ‘나를 밀어내면서, 이미 다른 사람과 미래를 계획하고 있었구나.’ ‘다만 너의 미래에는 늘 내가 없었지.’ 나는 그나마 남은 체면을 지키려고 애썼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쓴맛이 짙은 술처럼 끝없이 번졌지만. 손바닥을 꼬집으면서 정신을 붙잡았다. “둘이 얘기해. 먼저 갈게.” 류하정은 이제야 나를 봤다는 듯 크게 놀랐다. “주, 주아야...” “혹시 내가 창훈이랑 공부해서 기분 나빠진 거야?” “나는 집안도 어렵고, 너처럼 뭐든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잖아.” 말을 잇던 류하정은 또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그 연극에 맞춰 줄 생각이 없었다. “비켜.” 송창훈의 눈에 남아 있던 미안한 기색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내 손목을 잡아챈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 “임주아, 그게 무슨 말투야?” 송창훈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 류하정 앞으로 나를 끌고 갔다. 그러고는 소리쳤다. “하정이한테 사과해!” 내 마음속 마지막 ‘깨끗한 자리’까지 조용히 부서졌다.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나는 손을 들어 송창훈의 뺨을 후려갈겼다. “송창훈, 가장 먼저 사과해야 할 사람은 너야!” “류하정한테가 아니라, 나한테!” 제4화 나는 지난 10여 년 동안 송창훈이 내게 준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이 목걸이는 18살 생일 선물이었다. 학교에 한 번 하고 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류하정의 목에도 똑같은 목걸이가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류하정은 수줍은 듯 말했다. “창훈이가 그러더라. 다른 사람이 가진 건 나도 갖게 해 주겠다고...” 한정판 곰 인형은 상자만 남았다. 송창훈은 내가 뿌린 향수 냄새가 좋아서 인형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 날, 나는 류하정의 자리에서 그 인형을 보았다. 성년의 날에 받았던 하이힐, 디퓨저도 있었다. 내가 특별하다고 믿었던 것들은 오래전에 송창훈의 손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건네져 있었다. 사실 똑같이도 아니었다. 나는 갑자기 송창훈이 류하정을 감싸고, 끝없이 편들던 모습이 떠올랐다. 곧바로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이 정도라면, 이 물건들을 간직할 이유도 없었다. 나는 다음 날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마지막 밤을 조용히 보내려고 했다. ... 새벽 2시, 전화벨 때문에 나는 잠에서 깼다. 비몽사몽한 채 통화 버튼을 눌렀지만, 전화 너머는 계속 조용했다. 끊으려던 때 송창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아야, 미안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송창훈이 진실을 말하려는 거라면... 송창훈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정이가 자해했어. 지금은 하정이 혼자 둘 수가 없어. 전학 신청은 좀 지나서...] 마지막까지 혹시나 기대했던 마음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우스울 정도로 초라했다. 나는 송창훈에게 묻고 싶었다. 송창훈이 괴롭힘 당하는 척해서 내가 대신 겪은 수모와 통증은 무엇이었냐고. 송창훈의 말은 계속됐다. [사과해.] 나는 잘못 들었나 싶었다. “뭐라고?” 송창훈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주아야, 넌... 하정이한테 정말 사과해야 해.] [하정이 자해한 일에 네 책임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어?]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류하정이 끼어 있으면, 내가 하는 말은 뭐든 잘못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송창훈은 다시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차갑게 굳어 있었다. [너한테 정말 실망했어.] [사과만 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할게. 두 달 뒤에 새 학교로 가서 너와 함께 있어 줄 수도 있어.] [너 이렇게 제멋대로 굴면서 우리가 쌓아 온 시간을 버릴 생각이야?] 나는 그 말 속의 협박을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억울함도 서러움도 남아 있지 않았고 그저 귀찮기만 했다.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번호를 차단하고 친구 목록에서 삭제했다. 내일 비행기가 정말 간절하게 기다려졌다. ... 낯선 나라의 풍경은 새로웠다. 누군가 내 캐리어를 옮겼다. 고개를 들자, 송씨 집안의 정식 후계자였던 남자의 눈과 마주쳤다. “임주아, 오랜만이야.” 나는 손을 내밀며 환하게 웃었다. “오랜만이야, 서이후.” 그때 핸드폰 벨소리 때문에 대화가 끊어졌다. 화면을 보니 송창훈 친구의 번호였다. 의아해서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에서 송창훈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아야, 연울고등학교 몇 반으로 갔어?] [왜 어느 반에 물어봐도 너를 본 사람이 없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