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벌가 사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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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벌가 사위다

GoodNovel Hoàn thành
억만장자사위복수먼치킨사업가

WS 그룹 집안에 데릴사위로 얹혀 살고 있는 은시후는 온 집안 식구들로부터 온갖 구박과 무시를 받으며 살았지만, 사실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막대한 ...

Chương (1)

第1章

1장 화려한 조명과 불빛이 WS 그룹 회장의 저택을 밝히고 있다. 오늘 밤은 WS 그룹 신옥희 회장의 칠순 잔치가 열리는 날이다. 그녀의 손자, 손녀들과 그 배우자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여 선물을 전했다. "할머니께서 차를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1g에 700만 원이나 하는 세상에서 제일 귀하다는 이 대홍포 차를 선물로 드리려고 중국까지 다녀왔답니다. " "할머님께선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셨지요? 다이아몬드가 세팅 된 은십자가가 흠잡을 데 없는 이 묵주는 6,000만 원도 넘어요." 화목하고 행복한 분위기 속에 예쁘게 포장된 색색의 꽃과 선물 상자를 바라보며, 생일 파티의 주인공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미소 지었다. 한 남자의 말이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를 깨었다. 그 때 갑자기 그녀의 맏손자사위인 은시후가 말했다. "할머님, 정말 죄송하지만.... 부디 저에게 2억 원만 빌려주실 수 없을까요? 보육원의 이씨 아주머니가 비인두암 3기 진단을 받아서 치료비가 필요해요..." 온 가족들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충격과 경악을 감추지 못하며 시후를 바라보았다. 더부살이 중인 이 손자사위는 정말이지 염치도 없고 뻔뻔했다! 칠순 생일파티 날 할머님을 위해 생신 선물을 준비하지 않은 것도 모자라, 뻔뻔하게도 그녀에게 2억 원을 빌려 달라고 부탁하다니...! WS그룹 김영식 전 회장이 아직 건재하던 3년 전 어느 날, 은시후와 함께 저택에 돌아와선 손녀인 유나와 결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 시후는 찢어지게 가난하고 불쌍하기 짝이 없었다. 김영식 전 회장은 유나와 시후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그 후 WS그룹 일가 모두 시후를 내쫓으려 했지만, 그는 온갖 모욕과 조롱을 받는 상황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늘 태연 했고, 데릴 손자사위로서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그런 그가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할머님께 돈을 빌려야 했다. 시후를 거두어 그를 절망에서 구원해 주었던 이씨 아주머니가 비인두암에 걸리고 말았다. 수술에 입원, 해외에서의 항암 치료를 하는 데는 적어도 2억 원이 필요했다. 시후에겐 신옥희 회장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는 오늘이 생일인 만큼 신옥희 회장이 기꺼이 자비를 베풀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던 신옥희 회장의 입꼬리가 돌연 내려갔고, 그녀의 눈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녀는 손에 든 찻잔을 바닥에 내던지며 호통쳤다. "너란 놈은 내 생일을 축하하러 여기에 온 게야? 아님 돈을 빌리러 온 게야!" 유나는 서둘러 앞으로 나서며 "할머니, 그이가 생각이 짧았어요. 시후 씨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곤 그녀는 남편을 다급히 끌어당겼다. 그 순간, 유나의 사촌인 혜빈이 경멸스럽다는 듯이 비웃었다. "김유나, 네가 결혼한 이 등신 같은 인간 좀 봐! 우리 현우 씨는 아직 정식으로 결혼도 안 했는데, 할머님께 선물을 준비했다고! 빈손으로 온 것도 모자라서 뻔뻔하게 할머니한테 돈을 빌려 달라고 하다니...!" "혜빈 씨 말이 맞아요! 우리 둘 다 WS그룹 손자사위인데, 시후 씨는 그게 뭔가요? WS그룹의 수치네요, 정말!" 이 말을 내뱉은 남자는 혜빈의 약혼자이자 로이드 그룹 재벌 2세인 임현우였다. 임현우는 곧 김혜빈과의 결혼을 앞두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는 유나가 그의 약혼자보다도 훨씬 더 아름답고 우아해 보였다. 김유나는 한남동에서 소문난 미인이었는데, 그런 그녀가 은시후 같은 빈털터리 거지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임현우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WS그룹의 미래를 위해서 이런 구제불능은 당장 내쫓아야 돼요!" "맞아! 은시후 넌 우리 집안의 망신거리야!" "아마 은시후의 목적은 돈을 빌리는 게 아니라, 할머니 생신 파티를 망치는 걸 거야!" 온 가족들이 입을 모아 시후를 모욕하고 조롱하자,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시급한 사안만 아니었다면, 그는 진작에 이런 짜증나는 곳을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시후는 아버지의 말씀이 머릿속에 맴돌았기에 이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그의 부친은 도움을 받으면 감사히 여기고 10배로 갚으라고 가르쳤었다. 그의 안에서 서서히 고조되는 분노와 모욕감을 억누르며 신옥희 회장에게 말했다. "할머님,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온 세상을 구한 것과 같다는 말도 있습니다. 부디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방 안에 있던 누군가가 들으라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은시후, 할머니께 감성팔이 하는 건 그쯤 하지? 누굴 구하고 싶다면 알아서 하면 되지, 네가 뭔데 감히 할머니한테 돈을 빌려 달라고 하는 거야?" 혜빈의 오빠인 김혜준이 말했다. 이 마음씨 고약한 남매는 모든 방면에서 그들보다 우월했던 유나를 줄곧 탐탁지 않게 여겨왔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아 시후를 힐난하곤 했다.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유나가 입을 열었다. "시아버님은... 시후 씨가 고작 8살이었을 때 돌아가셨어요. 보육원에서 그를 키워 주셨던 건 다름아닌 이씨 아주머니셨어요. 그이가 이렇게 간곡히 부탁드리는 건... 자길 길러준 은혜에 보답하고 싶어서예요. 시후 씨를 도와주실 수 없을까요, 할머니...?" 할머니 신옥희는 분노에 차 소리 질렀다. "내 도움이 필요해? 좋아, 그럼 당장 저 녀석하고 이혼하고 주원이랑 재혼해!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당장 2억이든 몇 억이든 주마!" 신옥희가 말한 주원이란 유나가 결혼을 했는데도 계속 따라다니는 대현그룹 재벌3세 박주원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 때 집사가 뛰어 들어와서는 말했다. "대현그룹 박주원 님이 회장님께 선물을 보냈습니다! 수억 원은 호가하는 블루 다이아몬드 반지입니다!" "뭐라고? 어서 가져와서 보여줘!" 신옥희 회장은 활짝 웃으며 집사에게 재촉했다. 탄성이 터져 나오는 파티 회장을 가로질러, 서둘러 집사는 푸른 빛의 반지를 회장에게 전했다. 이 블루 다이아 묵주 반지는 깊고 영롱한 푸른 빛이 매력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빛깔을 띠고 있었다. 순간 똑같은 선물을 한 임현우의 얼굴에 짜증이 드리워졌다. 그는 WS 그룹 일가와 상관이 없는 박주원이 이렇게 아낌없이 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신옥희 회장은 반지의 다이아 십자가를 기분 좋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아~ 주원이는 정말 센스가 있다니까! 주원이가 내 손자사위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곤 그녀는 유나에게 눈길을 돌려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내 조건을 받아들일 맘이 생겼니?" 유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할머니. 저는 절대로 시후 씨와 이혼하지 않을 거예요." 신옥희 회장의 눈동자 속에 폭풍이 몰아쳤다. 그녀는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 질렀다. "이 배은망덕한 것!! 저런 인생 낙오자가 뭐가 좋다고? 내 집에서 당장 저 거렁뱅이를 쫓아내! 내 생일 파티에 저 녀석이 있는 거, 용납 못 해! 저 놈 면상 따위 꼴도 보기 싫으니까! " 은시후는 실망과 아쉬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고 싶지 않았기에 유나에게 말했다. "유나 씨, 전 이만 이씨 아주머니께서 계시는 병원에 가 볼게요." "저도 함께 갈게요." 유나가 재빨리 대답했다. 신옥희는 다시금 소리 질렀다. "지금 네가 가면, 넌 더 이상 내 손녀도 뭐도 아니니까!! 네 어미와 아비, 그리고 저 놈까지 싹 데리고 나가 버려!" 유나는 자신의 할머니를 바라보며 충격을 받았다. 할머니가 자기에게 그렇게 모진 말을 할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시후가 불쑥 대화에 끼어 들었다. "당신은 여기에 있어요. 제 걱정은 하지 말고..." 유나가 심난한 마음을 미처 가다듬기도 전에, 그는 돌아서서 나가 버렸다. 김혜준은 시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비웃었다. "잠깐, 친애하는 우리 시후 씨가 주린 배를 움켜쥐고 가면, 길거리에서 먹을 거라도 구걸할 건가? 그러면 우리 WS그룹에 먹칠을 하는 게 될 거라고! 자, 여기 만 원을 줄 테니 빵이든 뭐든 사 먹어요!" 혜준은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서 시후의 발치에 던졌다. 온 식구들의 웃음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다. 시후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이를 악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택을 빠져나왔다. *** 시후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틀 남은 병원비 납부 기한을 연장해 달라고 사정하기 위해 바로 총무과로 향했다. 하지만 그가 간호사들을 만났을 땐 이미 이씨 아주머니는 치료를 위해 상급종합병원으로 이송되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시후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곤 서둘러 물었다. "치료비는 얼마죠? 치료비를 낼 방법은 어떻게든 찾겠습니다!" "입원 치료비 모두 합쳐서 9천만 원입니다. 3,000만 원은 이미 납부되었고, 남은 6천만 원은 1주일 안에 납부해 주셔야 해요." "누가 3,000만 원을 냈죠?" 간호사는 자신도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시후는 당혹감에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그가 몸을 돌리자,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백발의 신사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것을 알아챘다. 두 사람은 눈길을 주고받았고, 백발의 중년 신사는 시후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도련님! 드디어 도련님을 찾았군요! 그 동안 도련님께서 온갖 고초를 겪으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시후는 눈살을 찌푸리며 마치 전혀 다른 사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박 기사...?" "저를 기억하고 계셨군요, 도련님!" 그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후는 잠시 놀랐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당연히 기억하지!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어. 자네가 나와 어머니, 아버지를 한남동에서 억지로 내쫓았지. 그 와중에 우리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시고, 난 고아가 됐어. 이제 와서 나한테 뭘 원하는 거지?" "도련님, 할아버님께서 아버님의 부고를 듣곤 매우 슬퍼하셨습니다. 회장님께선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련님을 찾으셨습니다. 자, 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갑시다!" 기사 박상철이 슬픔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은시후는 싸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혼자 가, 난 만나고 싶지 않으니까." "도련님, 아직도 회장님께 화가 안 풀리신 건가요...?" "당연한 거 아냐?" 시후는 큰 소리로 말했다. "난 절대로,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을 거야!" 박 기사는 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여기에 오기 전에 회장님께서도 도련님이 절대로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라 말씀하셨습니다." "알고 있다니 다행이네!" 박 기사는 뒤이어 "아버님께서 힘든 시간을 보내신 걸 알고, 도련님께 보상하기 위해 저에게 부탁하신 겁니다. 만약 도련님께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하면, 한국에서 제일 큰 회사를 도련님께 사 주실 겁니다. 그리고, 여기... 이 카드를 받아 주세요. 핀 번호는 도련님의 생일입니다." 박 기사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블랙 카드를 건넸다. "도련님, 국내에서도 이런 카드는 5장밖에 없답니다." 시후는 단호히 거절했다. "이런 거 필요 없어. 도로 가져가." "도련님.... 이씨 아주머니는 당장 병원비 때문에 6천만 원의 빚이 있지 않았나요? 병원비를 제때 내지 못한다면 상황이 더 악화될 지도 모릅니다..."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건가? 이게 다 계획의 일부고?" 박 기사는 두 손을 격하게 내저었다. "설마 그럴 리가! 감히 그런 일을 저지를까요! 카드는 가지고 계십시오. 병원비를 내기에 충분할 겁니다." "이 카드 한도가 얼마나 되는 거지?" 시후가 물었다. "회장님께서 도련님을 위해 약간의 용돈을 넣어두셨다고 하셨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요. 딱 10억입니다." 2장 10억 원?! 시후는 자신이 들은 액수에 당황했다. 그의 두 눈은 충격에 휘둥그레지고,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는 할아버지가 굉장한 부자라는 건 알았지만, 그 당시의 시후는 돈의 개념을 이해하기엔 너무나 어렸다. 그래서 집안 재산이 얼마나 되는 지까진 몰랐던 것이다. 드디어, 지금, 이 순간 이해할 수 있었다. 10억 원이 푼돈이라면, 조부의 재산은 몇 조 원은 족히 넘을 거라는 것을 의미했다. 솔직히 말해서, 순간 그의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그러나 시후는 돌아가신 부모님과 부모님이 돌아가시게 된 원흉이 할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결코 간단히 할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다. 시후의 동요를 감지한 박 기사는 재빨리 말했다. "도련님은 집안의 유일한 상속자입니다. 회장님의 전 재산은 도련님의 것이나 다름없죠.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도련님 아버님의 것이지만요." "회장님께선 도련님만 집으로 돌아와 준다면, 총 사업규모 수백조 원에 달하는 가족 사업을 물려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도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으시다면... 이 돈은 도련님의 생활비로 써 주십시오." "아 그렇지, 알려드릴 소식이 하나 더... 어제 할아버님께서 한국 최대 우량기업인 엠그란드 그룹을 통째로 인수하였답니다. 주식 전량이 현재 도련님 명의로 되어있으니, 내일부터 회사 경영권을 행사하실 수 있답니다!" 박 기사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아 어안이 벙벙했다. 자신을 위해서 그런 막대한 투자를 하다니, 조금 과한 게 아닌가? 한도 10억짜리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블랙 카드에 자산 총액 300조 원의 엠그란드 그룹이라니...! 엠그란드 그룹은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이었다. 그 어떤 유망하고 영향력 있는 재벌가도 엠그란드 그룹 앞에선 고개를 숙여야 했다. 오늘 그를 욕보인 재벌가 모두..... WS 그룹, 로이드 그룹을 포함해 여전히 시후의 아내를 넘보고 있는 대현 그룹 마저도, 엠그란드 그룹 앞에선 평범한 사람들에 불과했다. 그런 대단한 회사가 이제 그의 것이라고? 박 기사는 시후에게 명함을 건네며 말했다. "도련님께선 지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실 테니, 전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명함에 제 연락처가 있으니,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그 말을 남기곤 박 기사는 자리를 떠났다. 시후는 박 기사가 떠난 뒤에도 넋이 나간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조부의 지원을 받아들여야 할지 말지 망설여졌다. 지난 십여 년의 고난과 수치의 나날들... 유나와 결혼하고 겪었던 굴욕을 떠올렸다. 이건 정당한 보상이다!! 지금까지의 고통의 시간을 보상하기 위한 정당한 배상금인 것이다! 그러니 그가 이것을 받으면 안 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무엇보다도 당장 이씨 아주머니의 치료를 위해 2억 원이 시급했다. 시후는 입술을 깨물며 카드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이내 그는 총무과로 되돌아갔다. "저, 실례합니다. 병원비를 정산하겠습니다." 직원이 카드를 긁었고,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결제가 완료되었다. 6천만 원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정산되었다. 그는 여전히 허공을 맴도는 기분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백만장자가 되다니.... *** 시후는 넋이 나간 채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집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다. 유나와 그녀의 부모님은 WS 그룹 회장의 대저택에 살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처럼 그냥 그런 집에 살고 있었다. 유나와 시후가 결혼한 뒤 김영식 전 회장이 타계하자, WS 그룹 일가족은 그들을 집에서 쫓아냈다. 그의 장모는 경악하며 소리쳤다. "은시후,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김유나! 너 지금 당장 저 녀석이랑 이혼하지 않으면, 네 할머니가 널 WS 일가에서 완전히 쫓아내실 거라고!" 유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할머니께서 정말 그러신다면, 전 그냥 다른 직장을 찾아 봐야죠." "너 정말....!!!" 유나의 어머니가 호통쳤다. "저런 병신이 뭐가 그렇게 좋다고? 왜 그냥 이혼하고, 주원이랑 재혼하지 못 하겠단 거야? 네가 주원이랑 결혼만 하면, 우리 가족 모두가 고개 뻣뻣이 들고 살 수 있다고!" 그녀의 아버지도 덧붙여 말했다. "네 엄마 말대로다! 네가 주원이랑 결혼하면 우리 가족은 바로 일가의 보물이 되는 거라고! 네 할머니가 너를 애지중지해주실 거라고!!" 유나가 입을 열었다. ".... 제발 그만 하세요! 전 시후 씨랑 이혼하지 않을 거라 고요!" "얘가 정말!!" 시후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유나의 부모는 그녀를 어떻게든 설득하려 하고 있었다. 그의 장인 장모는 시후를 발견하자, 경멸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의 장모는 진저리 치며 말했다. "난 또 저 병신이 집에 오는 길을 까먹었나 싶었네! 흥!" 시후는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장모는 항상 그를 업신여겼는데, 그가 이제 엠그란드 그룹의 주인이 된 데다 현금만 해도 10억 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장모가 안다면 어떻게 나올까? 하지만 지금은 실체를 밝힐 때가 아니다. 그는 오랫동안 할아버지와의 연이 끊겼었다. 한국 제일의 재력을 자랑하는 은씨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누가 알겠는가? 은시후가 자신의 정체를 폭로했을 때, 누군가가 그를 노리면 어떡하는가? 지금으로선 이 사실을 함구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머리 숙여 공손하게 말했다. "장모님, 오늘 할머님 생신파티에서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 그의 장모는 소리쳤다. "물의...? 그게 물의야? 너란 놈이 우리 입장을 얼마나 곤란하게 만들었는지 알아?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내 집에서 당장 나가!" 유나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엄마,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시후 씨는 엄마 사위라고!" "사위라니 누구 맘대로!" 그녀의 모친은 윽박질렀다. "난 저런 병신 같은 사위 둔 적 없어! 내 눈앞에서 썩 사라졌으면 좋겠다, 진짜!" 유나는 시후를 살짝 잡아당겼다. "우리 어서 방에 들어가요." 시후는 고맙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결혼한 지 3년이나 지났지만, 두 사람은 아직 첫날밤을 치르지 못했다. 항상 유나는 침대에서, 시후는 침대 옆 바닥에서 따로 잤다. 이날 밤, 그는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오늘 벌어진 일들은 실로 충격과 놀람의 연속이었기에, 이직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유나가 물었다. "아주머니 좀 어떠셨나요? 저한테 지금 당장 천만 원 정도 있어요. 얼마 안 되지만 병원비로 쓰세요." "괜찮아요. 어떤 사람이 아주머니의 병원비를 대신 내줘서, 치료를 받으러 지금은 상급종합병원에 입원하셨어요." "정말이요?" 유나는 감탄하며 외쳤다. "그럼 아주머니는 이제 괜찮으신 거죠?" "그럼요..." 시후가 이어 말했다. "아주머니는 한평생 선행을 베풀며 수많은 사람들을 도와 왔어요. 드디어 누군가 아주머니에게 그 은혜를 갚은 걸 거예요." "정말 다행이에요!" 유나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도 이제 마음이 좀 놓이겠어요." "그렇네요." "우리 이제 슬슬 잘까요? 요즘 회사에 일이 좀 많아서, 피곤하네요." "회사에 무슨 일 있어요?" "요즘 별로 상황이 안 좋아요. 할머니께서 엠그란드 그룹과 협업하길 바라시는데, 엠그란드 그룹에 비하면 WS 그룹은 너무 작아서.... 엠그란드 그룹은 우리를 상대해주지도 않을 텐데 말이에요." "응? WS 그룹이랑 엠그란드 그룹이 협업한 적이 있었던가?" 유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아니죠! 우리가 엠그란드 눈에 차기나 하겠어요! 혜빈이 약혼자의 로이드 그룹도 엠그란드 그룹 발끝에 겨우 미치는 수준이니까요. 그래서 혜빈이 곧 있을 결혼에 열을 내는 거겠죠. 그래도 로이드 그룹은 엠그란드와 인연을 맺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요."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WS 일가는 엠그란드 그룹과의 협업을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해왔다. 그런 신옥희 회장은 내가 엠그란드 그룹을 가지게 된 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시후는 엠그란드 그룹을 인수해 유나의 사업을 돕기로 결심했다. WS 그룹은 그녀를 제대로 대우해 주지도 않고 괴롭혀왔다. 유나의 남편으로서 시후에겐 그녀를 도울 책임이 있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유나 씨, 모든 게 이젠 달려졌어요...! 다시는 아무도 당신을 얕보지 못하게 하겠어! WS 그룹 일가 모두가 유나 씨에게 머리를 조아리게 하겠어!!' 3장 다음 날 아침, 식사 준비를 마치고 시후는 스쿠터를 타고 엠그란드 그룹 본사로 향했다. 그는 엠그란드 회사 주차장 한편에 스쿠터를 세웠다. 시후가 시동을 끄자 곧 그의 맞은 편으로 검은색 벤틀리가 천천히 들어왔다. 무심코 고개를 들자 한 젊은 커플이 차에서 내리는 것이 보였다. 고급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남자는 한 눈에 봐도 이지적인 느낌의 미남이었다. 한편, 여자 쪽은 화려하게 빼입고 있었다. 다소 천박한 느낌은 들었지만, 그녀 또한 미인이었다. 알고 보니 두 미남 미녀는 유나의 사촌 김혜빈과 그녀의 약혼자 임현우였다. 그들이 왜 여기에 왔는지 모르겠지만, 맞닥트려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불 보듯 뻔했다. 시후는 그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어째선지 그들에게서 도망치면 도망칠 수록 마주치게 되었다. "어머, 시후 씨 아니에요~" 시후를 발견한 혜빈이 큰 소리로 불렀다. 혜빈은 친근하게 다가왔지만, 시후는 소름이 온몸을 타고 퍼지는 것을 느꼈다. 아는 척하는 사람을 그냥 무시하고 갈 수 없었기에, 시후는 예의상 웃으며 물었다. "아, 혜빈 씨... 여기엔 무슨 일로 왔죠?" 혜빈은 비아냥거리며 대답했다. "저희야 엠그란드 그룹 이태리 부회장님을 만나러 왔죠." 그리곤 그녀는 임현우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로이드 그룹은 전부터 엠그란드 그룹과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거든요. 앞으론 로이드 그룹뿐 아니라 WS 그룹의 미래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시후는 로이드 그룹이 엠그란드 그룹의 사업 파트너 중 하나라는 사실을 몰랐다. 막 회사를 인수했기에 세부 사상을 검토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공손한 미소를 지으며 "현우 씨, 사업 수완이 대단하시네요! 두 분 정말 너무 잘 어울리세요."라고 말했다. 현우는 시후를 경멸의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이 새끼는 어제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망신을 당하고도, 지금 어떻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을 수 있는 거지? 어째서, 왜, 유나 씨 같은 사람이 이런 루저 새끼랑 결혼을 한 거지? 이 인간만 없었다면, 난 유나 씨와 잘 되었을 텐데... 누가 외모도, 인성도, 다 뒤떨어지는 김혜빈이랑 약혼하고 싶어 하겠어? 현우는 가식적인 어조로 물었다. "그러는 시후 씨는 여기에 어쩐 일이죠?" "전 이력서를 내러 왔어요." 시후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력서요?" 현우는 경멸을 담아 코웃음을 쳤다. "시후 씨가요? 시후 씨가 엠그란드에 이력서를 내러 왔다고요? 지금 농담해요?" 시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현우 씨와는 상관 없잖아요." 그들이 시후를 불러 세운 건 그를 모욕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엔 혜빈이 바통을 이어받아 시후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왜 그래요, 현우 씨~ 시후 씨 말대로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시후 씨, 학위는 있어요?" "내세울 만한 경력이나 능력은 있고요?" "시후 씨 같은 사람은 보안팀에 지원 했어도 엠그란드 쪽에서 사절이라고요. 사람이 분수를 알아야지. 길거리에서 고물이나 주워다 파는 게 안 낫겠어요? 그러면 한 달에 적어도 70, 80만 원은 벌겠죠." 그리고 나서 그녀는 시후의 발치에 물병을 내던지며 히죽 웃었다. "자, 그거 드릴 테니까 갖다 파세요. 어디 가서 제가 시후 씨 신경도 안 썼다고 그러지 마시고요." 임현우도 웃음과 함께 조소를 보냈다. "시후 씨 같은 구제불능도 가족은 가족이니까, 도와 드릴게요~ 제가 엠그란드 그룹 부회장님이랑 아는 사이니까, 화장실 청소부 자리 좀 마련해 줄 수 있는지 물어볼게요." 시후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차갑게 말했다. "제가 뭘 하든 알 바 아니잖아요? 두 사람 일이나 신경 쓰세요. 엠그란드 그룹은 초대기업이라서, 당신 같은 쓰레기와는 협업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 "지금 누가 쓰레기라고?" 현우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당신 말고 또 누가 있단 거지? 이 쓰레기 같은 새끼...!" 시후는 경멸에 찬 목소리로 말하고는, 임현우의 분노 어린 외침을 뒤로 한 채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시발! 거기 서! 거기 서라고!! 내 말 안 들려?!" 임현우는 성큼성큼 걸어가 이내 엘리베이터 앞에서 시후를 따라잡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시후의 얼굴에 한 방 날리고 싶었지만, 두 사람은 이미 엠그란드 그룹 건물 안이었다. 괜한 소동을 일으켜 사업 파트너의 심기를 상하게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으드득 "한 번만 봐준다, 진짜... 으득 다음엔 안 봐줄 거니까!" 그는 이를 갈았다. 그런 임현우를 보고는 은시후는 코웃음 치며 엘리베이터로 걸어 들어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 "임현우, 당신이란 인간은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본데. 조만간 후회하게 될 거야, 당신!" "너 이...." 현우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가 엘리베이터로 달려들려는 것을 혜빈이 말렸다. "저런 쓰레기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탈 필요 없잖아요, 현우 씨가 참아요." 그는 여기에서 손을 올리는 게 현명하지 못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았기에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운이 좋은 줄 알아!" *** 엘리베이터를 타고 시후는 곧바로 빌딩 최상층에 위치한 회장실로 향했다. 박 기사가 이미 엠그란드에서 그를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 모든 일을 담당한 사람은 이태리라는 여성이었다. 이태리는 한국에서도 저명한 여성 사업가로 명성을 떨쳤다. 그녀는 매력적인 외모에 탁월한 사업 수완까지 겸비하고 있었기에, 젊은 나이에 엠그란드 그룹의 부회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엠그란드 그룹의 성공 배경에는 그녀가 있었다. 이제 엠그란드 그룹은 인수되었기에, 전 회장은 은퇴했고 부회장 이태리는 새로 취임하는 회장을 보좌하기 위해 남아 있었다. 태리는 시후를 처음 봤을 때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신임 회장이 이렇게 젊고 매력적인 남자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재빨리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일단 제 사무실로 모시겠습니다." 4장 시후도 오늘 처음 부회장을 만났다. 그 또한 태리가 놀랍도록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녀는 늘씬하면서도 볼륨감 넘치는 몸매에 매혹적인 외모, 그리고 당당한 자신감을 가진 27, 28살 정도의 젊은 여성이었다. 시후는 태리의 책상에 앉으며 "전 사무실에 자주 오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저를 대신해서 앞으로도 회사를 경영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제 신원은 공개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당부했다. 태리는 지금 그녀의 앞에 앉아 있는 시후가 한국 최고의 재벌가인 은 회장의 가족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겐 엠그란드 그룹 따윈 그저 평범한 기업에 불과했다. 따라서 그가 직접 경영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다. "물론이죠, 회장님. 또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십시오." 그때였다. 한 비서가 문을 두드리며 "부회장님, 로이드 그룹의 임현우 님과 그의 약혼자분께서 만나러 오셨습니다." "지금 VIP를 만나고 있으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전해주세요." "임현우를 아시나요?" 시후가 물었다. "로이드 그룹은 저희 엠그란드의 파트너사 중 하나입니다. 몇몇 주요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 중이라 이전에도 여러 번 방문했습니다." 시후가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 엠그란드 그룹은 로이드와는 그 어떠한 사업 거래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행 중인 모든 프로젝트도 중단해주세요. 이 순간 이후로 우리 회사를 통해 로이드 그룹이 한 푼이라도 벌게 된다면, 이태리 씨 당신은 해고입니다." 도대체 로이드 그룹의 관계자 중 누가 이토록 이 남자의 심기를 건드린 거지? 태리는 깜짝 놀라 필사적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회장님! 지금 바로 직원들에게 로이드 그룹과의 모든 거래를 중단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시후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엠그란드 그룹은 저급한 쓰레기와 협업하는 것엔 관심이 없다고 말하고, 경비원에게 쫓아내라고 하세요." *** 사무실 밖에서 임현우와 김혜빈이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로이드 그룹은 이태리 부회장과 좋은 관계를 쌓아 파트너십을 강화해 엠그란드 그룹과의 협업에서 중심이 되길 원해 왔다. 그러나 예기치 못 한 일이 일어났다. 부회장의 비서가 경비원들과 함께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현우는 당황해서 "안녕하세요, 언제쯤 이태리 부회장님을 만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비서는 그에게 차가운 눈초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부회장님께서 엠그란드 그룹은 당신 같은 저급한 쓰레기와 협업하는 것엔 관심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부로 로이드 그룹과의 프로젝트를 중단할 것입니다!" "뭐라고요?!" 충격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와중에도 임현우에게는 왜 이 말이 이렇게 친숙하게 들리는 거지...? 아, 맞다! 은시후가 주차장에 있을 때 똑같은 말을 했었어! 이태리는 도대체 무슨 작정이지? 그 여자가 정말로 로이드 그룹과 모든 거래를 중단할 생각인 건가? 머리에서부터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모든 프로젝트를 중단한다고?? 로이드 그룹의 수익의 많은 부분은 엠그란드와의 협업을 통해 창출된 것이었다. 만약 엠그란드 그룹이 우리와 관계를 끊는다면, 로이드 그룹의 자산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걸 의미한다. 안 돼....!! 이럴 순 없어! "부회장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직접 물어 봐야겠어요!" 비서는 그를 힐끗 쳐다보곤 "죄송합니다만, 부회장님을 만날 순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곳에 출입을 금지합니다." 임현우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소리쳤다. "지금 나랑 장난해? 우리 로이드 그룹은 엠그란드의 장기 사업 파트너라고! 이렇게 맘대로 프로젝트를 끝내는 법이 어디 있어?!" 비서는 그의 외침을 무시하고 곁에 있던 경비원들에게 지시했다. "저 사람들, 쫓아 내세요!" 보안 팀장은 뒤에서 임현우의 팔을 잡아 비틀었다. 그가 고통에 비명을 지르자 보안 팀장은 코웃음을 쳤다. "당장 여기서 나가세요! 엠그란드 그룹에서 다시 소란을 피우면, 그 땐 이 정도로 끝나진 않을 겁니다!" "경비원 주제에 어디서 대들어? 너, 내가 누군지 알아?? " 보안 팀장은 임현우의 얼굴을 날리며 "당신이 뭔데?"라고 소리쳤다. 얻어맞은 뺨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폭발하려던 찰나, 갑자기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였다. 그가 전화를 받자, 전화기 너머에서 한껏 격앙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 이 새끼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엠그란드 그룹이 우리 쪽과 모든 프로젝트를 중단하겠다잖아!" "아니 아버지, 전 진짜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이 부회장님도 아직 못 만났다고요..." 임현우의 부친이 다시금 소리쳤다. "엠그란드 그룹이 너 때문에.... 너 같은 쓰레기 때문에 모든 거래를 끊겠다잖아! 당장 돌아와서 할아버지께 직접 설명해 드려!" 전화기를 쥔 채로 임현우와 김혜빈은 강제로 건물 밖으로 쫓겨났다. 그의 머릿속에 갑자기 시후가 떠올랐다. 그는 혜빈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혜빈 씨, 이거 은시후 때문 아니에요..? 혹시 그 새끼가 엠그란드 그룹과 무슨 관련이라도 있어요?" "네...?" 현우의 말에 혜빈은 적잖게 당황했다. 그녀가 곰곰이 생각해봤을 때, 이 모든 일이 그 루저랑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0(제로)는 아니지만...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아뇨, 은시후가 엠그란드 그룹과 관계가 있을 리가 없어요... 그 인간은 여기 화장실 청소할 자격도 없다고 봐요." 현우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혜빈 씨 말이 맞아요..." 격노한 그의 부친을 떠올리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당장 집에 들어가야 해요..." 엠그란드 그룹에서 로이드 그룹이 쫓겨났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졌다. 아무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로이드 그룹이 엠그란드 그룹의 역린을 건드린 건 명백해 보였다. 이렇게 가다가는 로이드 그룹은 끝이다. 로이드 그룹의 주식은 절반 수준 이하로 떨어졌다. 이 사건 이후로 그들은 계급 피라미드의 정점에서 순식간에 굴러 떨어졌다. WS 그룹의 신옥희 회장이 이 소식을 듣고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그녀는 손녀 혜빈과 임현우의 약혼을 취소하고 싶었지만, 이런 일이 있어도 로이드 그룹은 여전히 영향력 있는 집안이었기에 참기로 했다. *** 한편, 태리의 사무실에서 일련의 사건을 전해 들은 시후는 매우 흡족해했다. 그는 태리의 신속하고 단호한 일 처리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태리 씨, 정말 잘해줬어요! 월급을 지금의 2배로 인상해 드리겠습니다." 태리는 놀라서 입이 쩍 벌어졌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녀는 고개 숙여 감사를 전했다. 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태리 씨가 두 가지 발표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무슨 내용으로 할까요, 회장님?" "첫 번째는, 엠그란드 그룹의 소유권과 신임 회장 취임에 대해서 공식 발표하되, 제 신원은 밝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냥 은 회장님이라고만 하세요." "두 번째는 엠그란드 그룹이 1조 원을 투자해 한강 변에 5성급 호텔 건립을 추진 중이라는 것입니다. 전국의 건축 및 인테리어 회사들에 사업 입찰 공고를 보내주세요." WS 그룹의 주요 사업은 인테리어 디자인과 건축이었다. 분명 신옥희 회장은 한껏 꿈에 부풀겠지. 누구든 이번 입찰을 따내는 사람은 사내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을 것이다. 이제 엠그란드 그룹이 그의 소유가 됐으니, 아내를 위해서 나설 때가 되었다. 5장 엠그란드 그룹의 공식 발표는 한국 경제계를 떠들썩하게 뒤흔들었다. WS 그룹이 엠그란드 그룹의 신임 회장의 취임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 로이드 그룹과의 일체의 거래가 중단된 이유가 납득되었다. 엠그란드의 새 주인은 로이드 그룹을 홀대하고 있는 듯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신임 회장인 은회장은 도대체 누구인 것인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산총액 300조 원 상당의 엠그란드 그룹을 사들이다니, 이 베일에 싸인 '은 사장'이란 인물의 재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한국 굴지의 기업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딸을 시집 보냄으로써 엠그란드 그룹의 신임 회장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를 원했다. 무엇보다도 엠그란드 그룹의 1조 원 규모의 호텔 건설 사업 공고는 국내 건축, 디자인 업계를 뒤흔들었다. 1조 원...! 이 최대 규모의 호텔 건설 프로젝트의 일부라도 입찰을 따낼 수 있다면, 로또 복권에 당첨된 거나 다름없었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돈을 사랑하는 신옥희 회장을 포함해, 여러 회사들이 당첨의 꿈을 꾸며 로또에 참가했다. 신회장은 이번 사업 소식을 듣고 너무나도 행복했다. 이건 WS 그룹이 메가 프로젝트에서 계약을 따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번 일만 잘 되면 WS 그룹은 한 단계 레벨 업 할 수 있는 것이다! 신옥희 회장은 엠그란드 그룹의 메가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오늘 밤 긴급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이번 미팅엔 일가 한 명도 빠짐없이 참석해야 했다. 은시후는 그날 밤늦게 WS 그룹 회장 저택으로 향했다. 신회장이 일가 전원 소집을 명령했기에, 물론 시후도 참석해야 했다! 그는 신회장의 회의 주요 의제가 무엇일지 알고 있었기에, 이번 기회에 WS 그룹 내에서 유나의 입지를 공고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유나의 사촌 김혜준이 시후를 발견하곤 어김없이 조롱했다. "은시후 이 새끼가 뻔뻔하게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 왔어!?" 유나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그만해요, 혜준 오빠. 시후 씨는 내 남편이니까 엄연한 WS 그룹의 일원이라고." 혜준이 비꼬며 말했다. "하하! 은시후가 WS 그룹의 일원이라고? 저 녀석은 우리 집안에 얹혀사는 생판 남이야." "유나 씨, 그냥 무시하세요. 얘기해 봤자 소용없어요. 할머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어서 들어 갑시다." 아무리 사이가 안 좋은 두 사람이었지만 남이란 소리까지 들을 줄은 몰랐기에 시후는 조금 당황해 목덜미를 매만지며 유나에게 말했다. 유나도 남편의 말에 동의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혜준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집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이없어 하던 혜준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회의실에 도착한 두 사람은 회의실 가장 구석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신옥희 회장이 회의실에 들어와 긴급대책 회의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신회장은 상석에 앉아 탁자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 WS 그룹은 오랫동안 한국 최고의 그룹 반열에 오를 기회를 기다려 왔지. 그리고 마침내 때가 온 거야...! 이번 사업 공모에 선정되기만 하면 우리는" 그녀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큰 목소리로 "얼마 전에 엠그란드 그룹이 1조 원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를 발표한 건 다들 알 거야. 이번 사업에 입찰을 받기만 하면, 떼돈을 버는 거라고!" "게다가 이건 엠그란드 그룹의 경영권이 이양되고 나서 있는 첫 번째 주요 사업이야. " "만약 우리가 엠그란드 그룹과 협업해 신임 회장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으면,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달릴 거라고!!" 열정적으로 얘기하는 신옥희 회장에 비해, 회의 참석자들 분위기는 다소 가라앉아 있었다. 사실 신옥희 회장이 엠그란드와의 협업을 원하는 건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엠그란드 그룹이 몇 번이고 WS 그룹의 제안을 거절해왔던 것이었을 뿐. 대체 무엇이 신 회장이 이토록 헛된 희망을 품게 만든 것일까? 계속된 침묵에 신 회장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다들 갑자기 벙어리라도 된 거야, 뭐야! 아무도 이 초대형 사업 계약을 따낼 자신이 없단 거야?" 모두가 긴장된 눈빛을 주고받았다. 자리에 모인 일동, 입을 여는 사람 하나 없이 서로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신옥희 회장은 초조해졌다. "잘 들어! 엠그란드 그룹에게서 이번 초대형 사업 입찰을 따내는 사람은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이사에 추임 될 거니까!!" 예기치 못한 신옥희 회장의 폭탄선언에 회의실이 발칵 뒤집어졌다. 신옥희는 WS 그룹의 회장에 오르자마자 철권통치를 이어왔다. 그래서 신 회장이 취임한 이래로 임원을 두지 않았기에, 회장이 직접 추임하는, 이 미래의 이사는 엄청난 권력을 쥐게 될 것이 자명했다. 그녀는 이사라는 당근까지 내걸었으니, 분명 이제 누군가 나설 거라고 기대했다. 매우 매력적인 보상이었지만, 신 회장이 내 건 조건을 충족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엠그란드 그룹과 거래를? 심지어 1조 원 규모의 계약을 따내라고?? 모두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신회장이 직접 얘기하러 간다고 해도, 두 회사의 협업은 말할 것도 없고 애초에 만나주지도 않을 것이다. 회의실은 눈 굴리는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했다. 신옥희 회장은 회의실 탁자를 내려치며 소리쳤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정말로 나서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거야?!!" 그러곤 그녀는 돌아서서 혜준을 바라보았다. "혜준아, 이 건은 네게 맡기마!" 혜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할머니... 로이드 그룹도 쫓겨났다는데, 우리가 어떻게 엠그란드와 거래할 수 있겠어요...?" 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의 말에 더욱 분노한 신 회장이 소리 질렀다. "이 못난 것!!!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다니.... 저기 저 병신보다도 더 못한 놈 같으니라고...!!" 사실 신옥희 회장 본인도 이 건에 대해서 자신이 없었지만, 더 인정받고 싶고 더욱더 위로 올라가고 싶다는 야망이 가득했다. 엠그란드 그룹의 메가 프로젝트만이 지금 그녀의 꿈을 이루게 해 줄 유일한 찬스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바람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신옥희 회장은 손자 김혜준이라면 기꺼이 이 일을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면전에서 거절당했다. 신 회장의 제안을 거절한 혜준 역시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제정신으로 이런 불가능한 일을 받아들일 순 없다. 심지어 그는 엠그란드 그룹에서 문전박대 당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 땐 계약을 성립시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실패는 조롱과 비아냥의 대상이 될 터이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할머니의 명령에 따를 수 없었다. 신옥희 회장은 나머지 일가 가족들을 노려보며 외쳤다. "너희들 중에서도 이 안건을 맡아서 해볼 사람은 없는 거야?" 이때 시후는 팔꿈치로 유나를 살짝 찌르며 속삭였다. "유나 씨! 유나 씨가 하겠다고 하세요!" 김유나는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 "무... 무,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우리같이 작은 회사가 엠그란드 그룹과 협업이라니..." 시후는 싱긋 웃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걱정 마요, 유나 씨라면 분명 해낼 수 있을 거예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유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시후는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이죠! 유나 씨는 해낼 수 있어요! 한 번 절 믿고 두 번 다시 없을 이 기회를 잡아 보세요." 시후의 말에 최면이라도 걸린 것 같았다. 그녀는 본인의 입에 무슨 말이 나오고 있는지 채 이해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할머니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할머니.... 제가 해볼게요!" 6장 유나의 돌발 발언에 방 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모두들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유나가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공연히 앞에 나서 봤자 득은 커녕 실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 최고의 대기업이 WS 그룹 같은 약소 회사에 눈길도 주지 않을 게 뻔한데, 이런 무모한 도전의 결과는 나와 있었다. 가만히 듣고만 앉아 있을 수 없었던 혜준이 "김유나, 설마 니가 정말 엠그란드 그룹과의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라며 비꼬았다. 혜빈도 오빠 혜준을 따라 조롱을 이어 갔다.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나서는 건데? 네가 괜히 설치다가 우리 WS 그룹이 개망신 당하게 될 거라고!" "혜빈이 말이 맞아! 유나 네가 엠그란드 그룹에서 쫓겨나기라고 해 봐! 우린 그날로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거라고!" 온몸의 피가 얼굴로 몰린 듯 유나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시후와 결혼한 뒤, 집안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온 식구들은 그녀와 그녀의 부모까지 철저하게 무시하고 조롱해왔다. 그런 그녀가 만일 엠그란드 그룹과의 거래를 성사시킬 수만 있다면, 집안 내의 입지를 다시 되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더 이상 자신의 부모님이 다른 가족들 눈치 보지 않고 떳떳하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약'의 이야기. 사람들의 끊임없는 조롱에 다시 현실로 끌려 내려 왔다. 유나는 시후를 노려보며, '내가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했지...? 애초에 시후 씨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나를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그녀는 분노의 화살을 남편에게 돌렸다. 말다툼을 지켜보던 신 회장은 점점 부아가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 이번 일을 맡을 사람이 없냐 재차 물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더니, 막상 유나가 나서자 일제히 그녀를 무시하고 말리는 꼴이라니...! 줄곧 손녀인 유나를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오늘 일로 다시 보게 되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시작도 안 하려고 하는 일에 유나만이 도전했다. 반대로 이번 일로 줄곧 편애해왔던 혜준에겐 크게 실망했다. 그녀는 큰 소리로 "그쯤 해 둬! 엠그란드 그룹과의 사업 입찰 건은 유나에게 일임 하겠어." 갑작스런 선언에 유나는 당황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세요, 할머니... 최선을 다 할게요." 혜준이 코웃음 치며 "뭐? 최선을 다해? 네가 입찰에 실패하면 우리 모두를 망신시키게 될 거라고!"라고 말했다. "혜준 씨, 뭘 그렇게 유나 씨를 깔보는 거죠? 설마... WS 그룹이 엠그란드 그룹과 거래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요?" 혜준은 시후가 가족 모임에서 감히 목소리를 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신 회장의 눈에 서서히 분노가 서리는 것을 보고, 서둘러 변명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난 그저 유나가 거래를 성사시킬 수 없다고 생각할 뿐이라고!" 시후는 당황하는 혜준이 웃긴다는 듯이 웃으며 물었다. "그럼, 우리 내기할까요? 유나 씨가 해낼 수 있을지, 없을지." 혜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좋아! 내가 겁낼 줄 알고? 그래서 뭘 걸까?" "만약 유나 씨가 성공한다면,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내 앞에 엎드려 틀렸다는 걸 인정하고 우리에게 사과하세요. 만약 유나 씨가 실패한다면, 제가 엎드려 사과 드리죠. 어때요?" "푸하하핫" 혜준이 소리 내어 웃었다.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구나! 좋아, 그 내기 받아 주지." 시후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 여러분, 잘 들으셨죠?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이 이 내기의 증인입니다. 이 내기를 번복한다면, 그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가족 모두 가만두지 않겠어요!" 그는 의도적으로 '할머니'를 강조했다. 혜준이 내기에서 지고 약속을 어기길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혜준은 자신의 말을 취소할 수 없을 것이다. "알았어!" 혜준은 질 리가 없는 내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시후의 함정에 뛰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시후는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내기의 증인입니다. 혜준 씨가 제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하는 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유나는 일련의 사건에 계속해서 시후에게 눈치를 보냈지만, 그는 모른 척했다. 신옥희 회장은 내기 따위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그녀의 유일한 관심사는 엠그란드 그룹의 협력사 목록에 WS 그룹이 오르느냐 마느냐 이지, 저런 일엔 관심 없었다. 만약 거래가 성사되어, 혜준이 시후에게 극존칭을 쓴다 한들, 무릎 꿇어 머리를 조아리든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침착하게 말했다. "그럼 오늘의 비상대책 회의는 이걸로 마치는 거로 하지. 유나, 기한은 3일을 주마. 열심히 해 봐." *** 집으로 돌아오자, 유나와 시후에게 주먹이 날아들었다. 유나의 엄마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소리쳤다. "김유나 네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어떻게 앞뒤 생각도 안 하고 저 병신 말만 믿고 그 일을 하겠다고 한 거야?!" 유나의 아빠도 시후를 향해 몸을 돌려 소리 질렀다. "은시후 너 이 썩을 놈이 우리 딸을, 내 사랑스런 딸을 궁지로 몰아 넣었어!" "유나가 이번 일에 실패한다면, 유나는 물론이고 네 놈도 설 자리가 완전히 없어질 거라고! 사위가 땅바닥에 머리 조아리며 빌면, 내 체면은 또 어떻게 되고!!" 시후는 차분한 목소리로 "아버님 어머님, 모든 게 다 잘 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개소리 작작 해!!" 잔뜩 흥분해 소리쳤다. "엠그란드 그룹이 어떤 데인지 알기나 알고 그딴 소리하는 거야? WS 그룹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라고!!!" 시후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늘이 우리 편을 들어줄지 또 어떻게 아나요? 전 유나 씨를 믿고 있습니다, 아버님. 유나 씨라면 간단하게 계약을 성사시킬 거라고 생각해요." "네가 엠그란드 그룹 회장이라도 돼? 뭘 믿고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지껄이는 거야!" 7장 자신의 부모가 남편을 비웃는 것을 보고, 유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 아빠. 제가 결정한 일이에요. 시후 씨 탓이 아니라고요. 전 우리 식구가 더 이상 다른 가족들한테 무시당하지 않았으면 했어요..." 유나의 엄마가 끼어들었다. "그래도 안 돼! 너희 할머니께서 직접 가셔도 환대하지 않을 텐데, 네가 가서 뭘 하겠다는 거니!" 시후는 유나가 부모님과 말다툼하는 걸 지켜보며 쓰디쓴 웃음을 지었다. 이 사람들도 내가 엠그란드의 소유주라는 사실을 믿어주지 않을 거야... 바로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잠시만요...!" 유나의 모친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었다. 유나의 엄마가 갑자기 들떠서는 말했다. "어머, 주원이구나! 여기까지 어쩐 일이니?" 그 남자가 바로 유나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대현 그룹의 후계자 박주원이다. 주원은 싱긋 미소 지으며 "어머님, 엠그란드 그룹과 사업 제안서를 준비한다고 들어서, 유나 씨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아이디어를 주려고 왔어요." "세상에~ 역시 우리 주원이 밖에 없네!" 갑작스러운 주원의 방문에 유나의 엄마는 완전히 신이나 서둘러 안으로 들였다. "그래서 주원이가 우리 유나가 엠그란드와 계약을 따내는 걸 도와줄 수 있을까?" 주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시후는 완전히 무시한 채. 그는 곧장 유나를 향해 걸어가 상냥하게 말했다. "유나 씨, 이런 큰일이 났는데 왜 저한테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저희 대현 그룹은 엠그란드 그룹과 연줄이 있어요.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어떻게든 도와드릴게요." 사실 박주원의 부친은 그가 말하는 것처럼 영향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유나의 환심을 사고 싶었던 것이었다. 유나는 주원이 줄곧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주원 씨,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이건 제 문제이니 스스로 해결할게요."라고 정중히 거절했다. 유나가 거절하자 유나의 엄마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유나야... 너 제정신이니? 주원이가 기껏 너를 도와주겠다고 여기까지 와 줬는데... 어떻게 그걸 거절해?" 유나는 엄마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 때 잠자코 곁을 지키던 시후가 입을 열었다. "제가 궁금해서 그런데요, 주원 씨. 어떻게 유나 씨를 도와줄 수 있다는 거죠? 대현 그룹도 엠그란드 그룹과 얘기를 해 볼 만큼은 아닐 텐데요? 그런데 무슨 수로 거래가 성사되도록 도와준다는 거죠?" 주원은 비웃으며 경멸을 담아 말했다. "은시후 네가 뭘 알아? 대현 그룹은 오랫동안 엠그란드 그룹의 협력사였다고. 엠그란드의 이번 메가 프로젝트의 적어도 1/3은 우리 대현 그룹이 맡게 될 거라고! 이제 상황 파악이 돼?" "아~~ 저는 대현 그룹이 엠그란드 그룹과 그렇게 가까운 사이인지 몰랐네요!" "너만 모르지 경제계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주원은 거만하게 말했다. 그러곤 시후를 날카롭게 쏘아보며 한마디 한마디 힘주어 말했다. "은시후, 너한테 유나 씨는 과분해. 유나 씨를 행복하게 해 줄 능력이 없으면 당장 꺼져." "주원 씨!! 주원 씨 도움은 필요 없다고 했잖아요!" 자신에게 이렇게 차갑게 말하는 유나는 처음 봤기에 주원은 믿기지 않는다는 어조로 "유나 씨... 전 유나 씨를 돕고 싶었을 뿐인데 왜 이런 루저 새끼 편을 드는 거죠?" "시후 씨는 루저가 아니라, 제 남편이에요!" 주원의 얼굴에 분노가 떠올랐다. "알았어, 김유나! 그렇게 내 도움은 필요 없다니, 알아서 해 봐!! 나중에 가서 도와 달라고 사정해도 소용없는 줄 알아!!!" 그렇게 악에 받쳐 소리 치고는, 문짝이 부서질 듯이 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유나의 엄마는 서둘러 뒤쫓아 나갔지만, 그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박주원이 말은 그럴싸하게 했지만, 이미 대현 그룹이 엠그란드 그룹과의 계약을 따낸 것도 아닌데 어떻게 유나 씨를 돕겠다는 거죠?" "은시후, 그 입 좀 다물고 있어!" 장모는 시후를 계속해서 꾸짖었다. "이 멍청아! 방금 대현 그룹이 1조 원의 사업 중에 1/3을 가지고 올 수 있단 말 못 들었니?" 시후는 무표정 했지만 속으로 이를 갈고 있었다. '대현 그룹이 얼마나 잘나가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내 회사와는 끝난 줄 알아! 지금까지 수많은 프로젝트를 함께 했었다고 해도 말이야. 너희 대현 그룹과의 고리, 남김없이 하나하나 다 잘라내 주겠어!' 유나라고 해서 그의 속마음을 읽을 순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시후 씨를 그렇게 나무라지 마세요. 제가 엠그란드 그룹에 다녀올 때까지 믿고 기다려 주세요." "흥!" 콧방귀 뀌며 뒤돌아서는 그녀의 엄마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하늘도 무심하지... 내가 쓸모 없는 남자와 결혼한 것도 모자라, 내 딸은 훨씬 더 쓸모 없는 인간과 결혼하다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8장 다음 날 아침, 유나는 밤새 준비한 두툼한 제안서를 품에 꼭 안고, 시후와 함께 엠그란드 그룹 본사로 향했다. 유나는 65층짜리 빌딩 앞에 서자, 현 상황이 현실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같은 작은 회사가 어떻게 엠그란드 그룹과 협업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1조 원 규모의 사업이다. 지나가던 거지가 1조 원을 달라고 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유나는 모두의 앞에서 할머니와 약속을 했기에 어떻게든 이번 거래를 성사시켜야 했다. 우두커니 서서 발만 내려다보던 유나는 서류 뭉치를 더욱 힘주어 끌어안았다. 시후는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살포시 미소 지었다. "유나 씨, 걱정하지 마세요. 다 잘 될 거예요." 유나는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힘없이 대답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시후 씨는 여기서 기다려 줄래요?"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본사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가 걸어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던 시후는 더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자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태리 씨, 조금 전에 제 아내가 당신을 만나러 올라갔습니다. 태리 씨가 해야 할 일은 아시겠죠?" "물론이죠, 회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모님께서 오시면 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엠그란드 그룹과 대현 그룹이 상당히 가까운 사이라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네,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었고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도 다수 있습니다. 대현 그룹 쪽에서 이번 호텔 건설 사업 건에 대해서도 협업 요청이 들어와 있는 상황입니다. 사업안 검토를 위해 제안서와 자료도 모두 제출 받은 상태인데 어떻게 할까요?" "앞으로 두 번 다시 대현 그룹과 엮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십니까? 알겠습니다." *** 그 사이, 유나는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부회장님과 만나게 해 달라고 면담 요청을 하고 있었다. 일류 대기업의 부회장인 이태리가 자신과 만나 줄지 모르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여비서가 그녀에게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김유나 님 맞으시죠? 부회장님께서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시니 저를 따라오세요. " "네...? 아, 네! " 면담 약속을 잡기 위해 온 거였는데, 기다리고 있었다니... 자신이 올 걸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지? 어리둥절해하면서 비서를 따라갔다. 이태리 부회장 같은 성공한 사업가가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도저히 무슨 영문인지 이해가 안 되었지만, 두 번 다시없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 비서의 뒤를 쫓았다. 부회장실에 도착하자 이태리가 의자에서 일어나 공손히 유나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유나 씨. 저는 엠그란드 그룹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이태리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유나는 국내에서 가장 저명한 여성 사업가를 직접 만나게 되자, 목소리가 떨리는 걸 겨우 참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이태리 부사장님! 오늘 귀중한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실은 엠그란드 그룹에서 사업 준비 중인 호텔 건설 프로젝트 건으로 찾아 뵈었습니다. 저희 WS 그룹은 다른 회사들에 비해 회사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저희는 맡은 사업에 항상 최선을 다하여 인테리어 디자인 업계에서는 인정받고 있습니다!" 유나는 서류 파일을 건네며 "이번 메가 프로젝트를 위해 저희 WS 그룹에서 준비한 포트폴리오입니다. 부디 검토 부탁드립니다." 태리는 싱긋 웃으며 서류를 건네받았다. 잠시 서류를 훑어본 후 태리가 입을 열었다. "유나 씨, 저는 WS 그룹이야말로 저희 엠그란드가 찾던 완벽한 파트너라고 생각해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유나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그 와중에 다시 의문이 떠올랐다. ‘일이 왜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되지? 이렇게 쉽고 빨리 정해지는 거였던가?’ 이태리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물론... WS 그룹이 저희의 요구사항이나 자격요건에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지만, 회장님께서 유나 씨를 높이 평가하고 계셔서 이번에 새로이 WS 그룹과 거래를 해보고자 합니다. " "회장님께서요?" 유나는 예상치 못한 사람의 등장에 놀라서 되물었다. "혹시 회장님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은 회장님이라고밖에 말씀드릴 수 없네요." "은 회장님이요?" "네, 회장님께서 신원이 노출되는 걸 원하지 않으십니다." "아... 그런 가요. 저는 제 남편 말고 은씨 성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태리가 유나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기에, 그녀는 그저 말없이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나는 남편 '은'시후 말고는 은씨 성을 가진 사람을 못 봤지만, 아주 아주 먼 친척이겠거니 싶었지 고아에 골칫거리 취급 받던 남편이 그 '은 회장님'일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했다. "유나 씨가 제안서에서 제시한 계약 금액이 150억 원이었죠?" 유나는 걱정스레 물었다. "액수가 너무 큰가요?" 이태리는 소리 내어 웃으며 "하하 아뇨, 사실 예상한 거랑 조금 달라서요." "무슨 말씀이시죠?" 태리는 잠시 책상으로 돌아가, 책상 위 서류 더미에서 파일 하나를 집어 와, 유나에게 건넸다. "회장님께서 견적서 금액을 300억에 맞추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저희 쪽에서 미리 300억 원 규모의 계약 초안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문제가 없다면 지금 당장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싶습니다만..." "네? 아, 저기 이건..." 유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제대로 말도 잇지 못했다. 제대로 얘기나 들어줄까 싶었던 엠그란드 그룹 쪽에서 미리 계약을 준비해 두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계약 규모는 두 배가 되었다! 할머니의 목표 금액은 150억 원이었는데, 계약서에 적힌 숫자는 300억 원이다! 문득 전날 밤 가족회의에서 자신에게 이 일을 맡으라고 말하던 남편의 진지하고 확신에 찬 눈빛이 떠올랐다. 그는 어떻게 그렇게 자신만만 했을까? 그들이 엠그란드 그룹 사옥 입구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이번 일에 비관적이었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걸 알기라도 했다는 걸까? 9장 순간 유나의 머릿속에 한 가지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이태리 부회장이 말한 '은 회장'이 만약 내 남편인 '은시후'였다면? 이 시나리오를 다시 곱씹어보곤 그녀는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깨달았다. 말도 안 돼. 시후 씨는 어렸을 때 부모님을 여의고 시설에서 자랐으니까. 그렇지만... 나에게 이렇게 잘해줄 사람이 시후 씨 말고 또 누가 있단 거지? 150억 원도 너무나 큰 데, 300억 원을 그냥 내줬다. 역시…. "이태리 부회장님, 혹시 은 회장님 성함이 '은시후'는 아닌가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던 유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어디서 회장의 신상에 대해 흘린 거지? 태리는 자신의 심장 박동이 점점 더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두근두근. 자신의 신원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는 회장의 엄명 때문에 대중에게도 그의 성만 공개한 상황이었다. 그의 아내와 만난 시점에서 그녀가 회장의 정체를 눈치채면, 자신의 입장이 매우 난처해질 것이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해야 한다...! "유나 씨, 이 얘기는 여기서 그만했으면 해요. 은 회장님은 한국 유수 가문의 자제분이세요. 제 재량으로 마음대로 회장님의 신원을 밝힐 순 없습니다." 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수 가문의 자제라는 말에 의심을 접었다. 시후는 고아였지, 그런 명문가 자제는 결코 아니었다. 그녀는 이 일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 부회장실을 나왔지만, 유나는 여전히 혼란스러움이 가시지 않았다. 그녀의 손에는 WS 그룹과 엠그란드 그룹 사이의 300억 원짜리 계약서가 들려 있었다. 아직도 모든 것이 믿기지 않았다. 빌딩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시후를 발견하자, 신이 나서 그에게로 달려갔다. "시후 씨! 시후 씨!! 계약, 따냈어요!!" 시후는 마음속으로 '제가 회장이니 당연히 계약이 성사되었겠죠.'라고 생각했지만, 놀란 척하며 말했다. "정말인가요, 유나 씨?! 정말 유나 씨는 대단해요!!" "사실 그렇지도 않아요. 엠그란드에서 이 프로젝트를 저희한테 그냥 준 것 같았어요." "네?" 시후는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유나는 있었던 일을 모두 얘기하면, 엠그란드 그룹 회장이 자신에게 보인 호의적인 태도에 시후가 질투할까 봐 재빨리 얘기를 돌렸다. "말하자면 길어요. 일단 어서 돌아가서 모두에게 이 소식을 전해요!" "그래요! 이번에야말로 김혜준 그 인간이 제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해야 할 거예요!" 유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까지 혜준 오빠가 그렇게 사람을 깔보고 무시했으니 이제 자신이 한 대로 돌려받을 차례 아니겠어요?" 솔직히 말하면, 유나도 나름대로 한 성질 했다. 김혜준이나 다른 가족들은 줄곧 철저하게 유나 부부를 무시해왔는데, 이런 불가능해 보이는 내기를 수락해서 가족들 콧대를 눌러줄 생각을 했으니... 10분 뒤, 두 사람은 WS 그룹 빌딩에 도착했다. 모두가 모인 회의실엔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유나가 아침 일찍 엠그란드 그룹 본사로 향한 걸 알았기에, 예상한 대로 계약 체결에 실패하고 돌아올 유나를 놀려줄 심산이었다. 그런데 유나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빨리 돌아온 것이었다. 유나와 시후가 회의실에 들어서자, 모두들 한껏 빈정대며 두 사람에게 흘긋 눈을 흘겼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건 김혜준이었다. "한 30분은 걸렸나? 거 봐, 내가 너네 둘이 가 봤자 문전박대 당할 거라고 했잖아! 푸하하" 혜빈도 오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말 한 시간도 안 돼서 돌아올 줄은 몰랐다, 진짜!" 신옥희 회장의 얼굴에는 분노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번 엠그란드 그룹도, 프로젝트 입찰 건도 다루기 어려운 사안이었던 건 알지만, 맡은 일이니 최소한 진지하게 했어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어? 신옥희 회장은 매서운 눈초리로 유나를 쏘아보며,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김유나, 너한테 실망했다." 시후는 사람들의 반응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정말이지 이 인간들한테는 구역질이 난다. 유나 씨의 말은 듣지도 않고 거래 성사에 실패했다고 멋대로 단정 지어서는 다짜고짜 그녀를 나무라고 있는 꼴이라니... 특히 김혜준.... 지가 잘난 줄 알고 깝죽거리는 이 새끼는 왜 매사에 나대는 거야? 넌 나한테 무릎 꿇을 준비나 하라고! 처음에는 잔뜩 신이나 들떠있던 유나도, 가족들의 면박과 조롱에 그녀의 속에서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죄송하지만, 엠그란드 그룹의 이태리 부회장님과 직.접. 만나서 거래하고 왔습니다!"라고 잔뜩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 네가 누굴 만나?" "말도 안 돼! 만나지도 못했으면서 거짓말하지 마!" 유나의 한 마디에 순식간에 회의실은 충격에 빠졌다. "김유나, 우리가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믿을 거라고 생각해?" 혜준이 크게 한번 숨을 가다듬었다가, 탁자를 치며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엠그란드 그룹의 이태리 부회장 같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가 왜 널 만나 주겠어?" 모두의 의심과 비난에 굴하지 않고 유나는 가방에서 계약서가 든 파일을 꺼내 들었다. "할머니, 여기 계약서에요. 한번 봐주세요." 계약서라는 말에 또 한 번 술렁였다. 여전히 혜준은 유나의 말을 믿지 않았고, 도리어 큰소리쳤다. "그 서류는 가짜야! 위조서류라고! 김유나가 엠그란드 그룹과 진짜로 거래를 할 수 있을 리 없다고!" "오빠 말대로야!" 혜빈도 눈에 띄게 동요한 기색이었다. "김유나가 이번에 제안한 건 150억 규모의 프로젝트였다고! 얘가 할 수 있는 거였으면, 내가 진작에 계약을 따냈을 거라고!!" 유나에게서 코웃음이 새어 나왔다. "혜빈아, 숫자는 정확하게 해야지~ 150억이 아니라, 300억이야." "말도 안 돼! 300억 원? 우리가 바보인 줄 알아? 300억이 무슨 옆집 개 이름이야? " 혜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김유나, 넌 지금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 말고도 할머니까지 바보 취급하는 거야." 그러고는 신옥희 회장을 향해 돌아서서 말했다. "할머니, 이번 일은 그냥 봐줘선 안 돼요!" 신 회장은 시뻘게진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신 회장이 사업계획서를 보고 줄곧 150억 원이라는 금액이 작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런데 1시간도 안 돼서 돌아온 유나가 300억 원짜리 계약을 따냈다고 말했다. 지금 이 새파랗게 어린 손주 놈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날 바보 취급한 거야? 이 집안의, 이 회사의 기둥인 내가, 정말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는 건가? 당장 이 괘씸한 손주 놈을 쫓아내지 않으면, 회장으로서의 체면이 서지 않을 것이다. 화가 치밀어 오른 신옥희는 테이블을 부서져라 내려치며 소리 질렀다. "김유나--!!! 지금 당장 사표 내!!!!!" 유나의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있었다. 왜 이렇게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번만 열어서 서류를 보면 되는 일인데.. 신 회장의 씩씩거리는 숨소리 외에 회의실 안은 조용했다. 그때 누군가가 외침이 적막을 깼다. "엠그란드 그룹이 공식 홈페이지와 SNS에 계약 체결을 발표했습니다! 300억 원 사업 수주는 진짜예요!" 10장 말 끝나기가 무섭게 모두가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엠그란드 그룹의 홈페이지와 SNS 계정을 검색했다. 맙소사... 엠그란드 그룹 공식 계정에 최근 글이 업데이트 되어 있었다. 계약 체결을 알리는 공식 성명에 방 안은 크게 술렁였다. 유나가 진짜 거래를 따냈네! 당초 계획안 금액의 두 배잖아! 그걸 1시간도 안 돼서 해내다니!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말도 안 돼! 김혜준에게 적잖은 충격과 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오늘 이 순간까지 지위나 능력 면에서 김유나와 비교할 게 못 되었다. 만약 어제 그가 그 일을 수락했다면, 결과가 어찌 되든 김유나가 주목받을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실패가 두려워 거절했다. 이번 사업 건을 거절한 건 자기 자신이었지만, 중요한 건 김유나가 성공적으로 거래를 성사시켰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에 배가 아팠다. 신옥희 회장은 신이 나서 계약서를 읽기 시작했다. "응! 응! 아주 좋아!! 유나 정말 잘 했어!" 그녀는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유나를 연거푸 칭찬했다. "그런데 어떻게 한 거야?" 유나는 "이태리 부회장님이 잘 봐주신 덕분이었어요. 부회장님은 우리 WS 그룹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하셨어요." 솔직하게 말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애초에 엠그란드 그룹의 회장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사실대로 말 한들 아무도 믿어 주지 않을 게 뻔했다. 그 말을 듣고 혜준은 닥치는 대로 다 때려 부수며 소리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유나가 계약을 따낼 수 있었던 것도 당연했다. 사실 엠그란드 그룹은 WS 그룹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말인즉슨, 결국 누가 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을 거란 말이 아닌가? 이런 절호의 찬스를 놓치다니...! 계속 입을 다물고 있던 시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혜준 씨, 우리 내기 아직 기억하죠?" 혜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시후를 바라보는 낯에 경멸이 가득했다. 어떻게 내기를 까먹을 수가 있었지? 진 사람은 땅바닥에 엎드려 사과해야 했다. 유나가 계약을 따냈기 때문에 그가 진 것은 명백했다. '안 돼! 이럴 순 없어! 저 루저한테 만큼은 굽실거릴 수 없어! 죽었다 깨어나도 난 못 해!' 그는 이를 악물고 비웃었다. "은시후, 네가 뭐라도 된다고 생각해? 넌 우리 집에 들어와 얹혀사는 쓸모 없는 인간일 뿐이라고! 그런 너한테 내가 절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 시후는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이죠. 전 쓸모 없는 인간이지만, 내기는 내기이니까요. 그리고 그 때 얘기했죠? 누구든 이 내기를 번복한다면, 그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가족 모두 가만두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그는 의도적으로 '할머니'를 강조했다. 아니나 다를까 신옥희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혜준을 힐끗 쳐다보며 차갑게 말했다. "나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좋겠어?" 혜준은 당황해서 "할머니! 저 녀석은 그저 저에게 망신을 주고 싶어서 할머니를 거들먹거리는 것뿐이에요!" 시후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혜준 씨, 할머님께 도와 달라고 비는 것도 그 정도로 해 두시죠. 모두의 앞에서 가족을 걸고 약속을 했는데, 그걸 어기면 비난 받을 거예요. 혹시 할머님께 무슨 일이 정말 있기를 바라는 건가요?" "할머니, 저 녀석 말은 무시하세요!" 신옥희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혜준에게 말했다. "내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거 알지? 하느님께서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고 하셨어." "할머니....." 정말로 할머니가 화가 났다. 할머니가 도와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자신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혜준은 자신의 체면을 지키고자 약속 지키기를 주저하는 것을 보고 신 회장은 테이블을 탁탁 쳤다. "약속할 땐 언제고 불리해지니까 이제 와서 거짓말하는 거니?" "할머니 그게 아니라..." 혜준은 머뭇거리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쥐어짰다. 만약 그가 약속대로 내기에서 진 걸 인정하면, 체면을 구기게 될 것이다. 반대로 그가 내기를 번복해서 할머니를 이 이상 화나게 하면, 체면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쌓아 올린 지위와 명성을 한순간에 잃게 될 것이다. 결심이 섰는지 그는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그래..! 약속을 지키는 게 나아." 시후는 그가 자기 앞에 무릎 꿇기를 기다리며 조용히 미소 지으며 바라보았다. 혜준은 시후에게 천천히 힘겹게 걸어갔다. 그와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다리가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그는 수치심에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다리에 힘이 풀리자 자연스럽게 그의 무릎이 지면에 닿았다. 쿵! 분주한 구경꾼들 중에는 조용히 휴대폰을 집어 든 이들도 있었다. 혜준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그리고 나서 그는 상체를 숙여 바닥에 머리를 대었다. "뭐라고? 잘 안 들리네요." 굴욕을 참으며 혜준은 다시 고개 숙여 큰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시후는 냉소를 지으며 물었다. 당장이라도 저 재수 없는 낯짝과 몸뚱어리를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싶은 맘이었지만,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견디면 끝난다. 그래서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유나가 못할 거라고 단정 짓지 말았어야 했어..."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렸다. 시후는 상쾌한 봄바람이 그의 몸을 스치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오늘 김혜준이 자신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게 만듦으로써, 오랫동안 품어왔던 원한이 사라지는 듯했다. 지금 눈 앞의 광경에 너무나도 후련했고, 좀처럼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모든 일을 바라보던 유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자신의 남편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어제 혜준과 내기를 할 때의 그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녀는 시후가 자신이 이길 걸 어떻게 미리 알고 있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생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