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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
“이혼해, 그녀가 돌아왔어.” 결혼 2주년을 맞이한 심윤아는 진수현에게 무자비하게 버림받았다. 그녀는 임신 테스트기를 손에 꼭 쥐고 세상에서 사...
Chương (1)
第1章
제1화
서울.
서울대학교병원.
“축하합니다, 임신하셨습니다. 아기는 매우 건강합니다.”
심윤아는 건네받은 보고서를 움켜쥐고 약간 놀란 기색을 보였다.
‘임신?’
심윤아는 놀라고 기뻤다. 그녀는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 정해진 날짜에 외래 오셔서 검사받으셔야 하세요. 아기 아빠도 함께 오셨어요? 함께 오셨으면 진료실로 들어오라고 하세요, 몇 가지 당부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의사의 말에 심윤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심윤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남편은 오늘 안 왔어요.”
“참, 아무리 바빠도 임신한 아내의 곁에 있어야죠.”
병원에서 나왔을 때, 밖에서 가랑비가 끊임없이 내리기 시작했다. 심윤아는 아랫배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작은 생명이 하나 있다니. 나와 수현 씨의 아이라니...’
핸드폰의 진동을 느끼고 심윤아는 문자를 확인했다. 바로 남편 진수현이 보낸 메시지였다.
「밖에 비가 많이 오네. 이 주소로 우산 좀 갖다줘.」
심윤아는 주소를 읽어 보았다.
「XX클럽하우스」
‘여기가 어디지? 오늘 컨퍼런스 있다고 하지 않았나?’
심윤아는 문자를 확인하고 나서 망설이지 않고 진씨 가문의 기사 진수에게 이 주소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진 기사님, 먼저 돌아가 계세요.”
“사모님, 나오실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심윤아는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이따가 사모님과 함께 돌아가면 됩니다.”
심윤아는 진수현을 기다려 그와 함께 집에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진씨 가문의 기사 진수는 재빨리 차를 몰고 떠났다.
조금 전까지 가랑비만 계속 내렸지만, 지금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내렸다.
심윤아는 우산을 쓰고 클럽 입구까지 걸어갔다.
이곳은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당구 클럽이었다. 심윤아는 소위 말하는 ‘입구 컷’을 당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회원 카드를 보여 주시겠습니까?”
심윤아는 생각 끝에 결국 클럽 입구에서 나와 진수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수현 씨, 나 도착했어. 언제 끝날 것 같아? 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문자를 보내고 나서 그녀는 우산을 들고 근처에 서서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임신 진단서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따가 만나면 바로 알려줘야 하나? 아니면 며칠 뒤, 생일을 축하해 주며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해줘야 하나?’
심윤아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심윤아는 자기가 클럽 안에 있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창가에 기대어 아래서 비를 맞으며 진수현을 기다리고 있는 심윤아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현아, 보아하니 저 여자는 쇼윈도 마누라 역할에 아주 최선을 다하고 있네, 우산을 가져다 달라고 문자 한 통 보냈다고 정말 쪼르르 찾아왔네, 설마 우산이 없다고 네가 비를 맞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너무 사랑해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겠죠?”
“헛소리 좀 그만해.”
룸에 나른하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자는 키가 훤칠했고, 다리가 길었고, 뚜렷한 이목구비에 피부가 맑고 투명했다. 약간 반달을 닮은 눈매가 유난히 매력적이었다. 그는 회색빛의 양복을 입고 긴 다리를 꼬고 있었다. 그가 손을 살짝 들자, 손목에 찬 정교하고 호화로운 손목시계가 드러났다.
“갖고 와.”
장난친 친구는 그에게 핸드폰을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
“쯧, 벌써 돌려줘야 하는 거야?”
“됐어, 됐어. 만약 소영이 여기 있지 않았다면, 너는 핸드폰을 가져갈 기회조차 없었을 거야.”
많은 사람이 농담하며 그의 곁에 앉아 있는 흰 치마를 입고, 얼굴이 예쁘게 생긴 여자를 쳐다보았다.
말을 듣고 그녀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했다.
“그만해, 너희들은 수현 씨의 휴대전화를 가져가 장난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거야.”
주위의 친구는 결코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고 오히려 야단법석을 떨었다.
“수현의 마음속에는 소영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누가 몰라?”
“그러니까, 수현이한테 직접 물어봐도 그렇게 대답할 거야, 그렇지 않아?”
강소영은 그 말을 듣고 나서 참지 못하고 진수현을 바라보았다. 진수현은 입술을 삐쭉 내밀며 부정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진수현이 부정하지 않자 더욱 야단법석을 떨었다.
“진작 말했지만, 수현의 마음속에는 소영이보다 더 중요한 사람은 없을 거야!”
제2화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진수현은 눈을 내리깔고 빠르게 심윤아에게 소식을 전했다.
「우산은 필요 없게 됐어, 먼저 돌아가.」
이 뜬금없는 문자를 받았을 때, 심윤아는 문뜩 어리둥절 해졌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그녀는 그 자리에서 비를 맞으며 잠시 기다렸지만, 진수현은 다시 답장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정말 바쁜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심윤아는 일단 돌아가기로 했다.
“잠깐만.”
뒤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부르자, 심윤아는 고개를 돌렸다.
잔뜩 멋을 부린 두 여자가 심윤아 앞으로 다가왔다. 그중 키가 큰 편인 여자가 그녀를 흘겨보며 시큰둥하게 물었다
“네가 심윤아야?”
그 여자의 얼굴에는 혐오가 가득 서려 있었다. 심윤아도 참지 않고 상대방의 질문에 당당하게 대답했다.
“네, 그쪽은 누구죠?”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소영이 돌아왔다는 거야. 제발 눈치 챙기고 진수현의 곁에서 물러나지?”
심윤아는 동공이 움츠러들었다. 소영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지가 아주 오래된 것 같았다... 그동안 심윤아는 그녀의 존재를 거의 잊고 지냈다.
그녀의 기분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심윤아를 불러세운 두 여자가 시큰둥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놀라는 거야? 설마 2년 동안 가짜 진씨 가문 사모님으로 지냈다고 그 자리에 눌러앉으려는 건 아니겠지? 그게 정말 네 자리라고 생각하는 거야?”
심윤아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우산을 들고 있던 손마저 희끗희끗해졌다.
“뭐야? 저 반응은 뭔데? 설마 소영이한테서 진수현을 뺏으려는 거야?”
“주제도 모르고 어디 감히?”
심윤아는 그녀들의 말에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돌아섰다. 이윽고 두 여자가 비아냥대는 소리는 빗속에 가려졌다.
그녀가 진씨 가문으로 돌아올 때쯤, 집사가 인기척을 듣고 문을 열어주려고 현관으로 나갔다. 비에 잔뜩 젖은 사람이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집사는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집사는 심윤아의 얼굴을 똑똑히 본 후 다급히 소리쳤다.
“사모님! 왜 이렇게 젖었어요? 어서 안으로 들어와요.”
심윤아는 팔과 다리가 꽁꽁 얼어서 약간 무감각해졌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도우미가 큰 수건을 가져와 그녀의 몸에 덮어주었고, 또 다른 도우미들이 다급하게 다가와 젖은 머리를 닦아주었다.
“얼른 가서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들이거라!”
“그리고 생강차 한 잔 타오거라.”
진씨 가문의 도우미들은 심윤아가 물에 빠진 생쥐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것을 보고 난리가 났다. 그 때문에 아무도 진씨 저택으로 차 한 대가 들어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훤칠한 그림자가 현관 앞에 나타났다.
남자의 차가운 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지고 나서야 도우미들은 인기척을 느끼고 화들짝 놀랐다.
“무슨 일이야?”
이 목소리를 듣고 소파에 앉아 있던 심윤아는 순간 움찔했다.
‘벌써 돌아왔다고? 강소영의 곁에 있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도련님, 사모님께서 비를 잔뜩 맞고 돌아오셨습니다.”
‘비를 맞아?’
진수현의 짙은 눈동자가 소파 위의 작은 그림자에 머물렀다. 그는 긴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비에 젖은 심윤아의 모습을 가까이서 본 진수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때의 심윤아는 마치 물에 빠진 닭 같았다.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심윤아의 창백한 피부에 달라붙었고, 앵두 같던 입술에도 핏기조차 없었다.
“너 왜 그래?”
진수현은 눈살을 찌푸렸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심윤아는 애써 자신의 감정을 억제한 후에야 고개를 들어 진수현을 향해 허탈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조금 전의 상황을 설명했다.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되었더라고... 돌아오는 길에 어린아이가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있는 걸 보고 쓰고 있던 우산을 건네줬어.”
진수현의 눈빛이 갑자기 차가워졌다.
“너 문제 있어?”
심윤아의 입가에 번졌던 미소가 굳어졌다.
“그 아이가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있다고 해서, 네가 쓰고 있던 우산을 건네고 대신 비를 맞았다는 말이야? 너 몇 살이야? 네가 착한 일을 했다고 칭찬이라도 받을 줄 알았던 거야?”
주위에 둘러선 도우미들은 입을 열 엄두도 내지 못하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심윤아는 눈을 내리깔았고 눈앞에는 이미 물안개가 자욱했다. 그녀는 애써 밀려오는 서러움을 참아냈다.
그리고 진수현이 다가와 그녀를 와락 끌어안자, 참아왔던 뜨거운 눈물이 그녀의 손등에 떨어졌다.
제3화
진수현은 그녀를 욕조에 내던지고 밖으로 나갔다.
심윤아는 줄곧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진수현이 떠나자 비로소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손을 뻗어 얼굴에 얼룩진 눈물을 가볍게 닦았다.
잠시 후, 그녀는 욕실 문을 잠그고 병원에서 받은 임신 진단서를 주머니에서 꺼냈다.진단서 내용은 이미 빗물에 씻겨 얼룩졌고 글씨가 흐릿해졌다. 서프라이즈로 보여 주고 싶었는데, 이제 전혀 쓸모가 없어졌다.
진수현과 한 이불을 덮고 잔 지도 2년이 되었는데, 그녀가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진수현은 한시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편인 것은 맞지만, 굳이 그녀에게 일부러 그런 메시지를 보내어 우산을 가져오라고 해놓고 다시 돌아가라고 농락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심윤아는 분명히 누군가가 그의 핸드폰을 가져가서 그녀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고 그녀를 우스꽝스러운 꼴로 만들려 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그녀가 우산을 쓰고 클럽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위층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키득거렸었다.
심윤아는 비에 젖은 진단서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자기 자신을 비웃으며 천천히 진단서를 찢어버렸다.
30분 후, 심윤아는 조용히 화장실에서 걸어 나왔다.
진수현은 소파에 앉아 늘씬한 두 다리를 꼬고 앉은 채, 무릎에 노트북 하나를 올려놓고 못다 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심윤아가 나오는 것을 보고 진수현은 옆에 있는 생강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생강차야, 식기 전에 마셔.”
“알았어.”
심윤아는 앞으로 걸어가 생강차를 집어 들었다. 차를 마시려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심윤아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진수현을 불렀다.
“진수현.”
“왜? 할 말 있어?”
진수현의 말투는 냉담했다. 그는 대답하면서도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심윤아는 진수현의 날카로운 턱선을 바라보며 창백해진 입술 삐쭉 내밀었다. 그리고 진수현은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짜증이 났는지 별안간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다.
방금 샤워를 마치고 나온 심윤아는 핑크색이 겉도는 뽀얀 피부를 드러내고 있었고 입술 색도 금방 비를 맞고 돌아왔을 때처럼 창백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를 맞은 탓에 약간 아파 보이는 안색이었다.
그런 심윤아와 눈이 마주친 순간, 진수현의 마음속에서 욕망이 들끓어 올랐다.
심윤아는 마음이 복잡하여 진수현의 감정변화에 전혀 관심을 기울일 겨를이 없었고, 어렵지만, 하고 싶은 말을 꺼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너... 윽!”
심윤아가 핑크빛이 감도는 입술이 막 열렸을 때, 진수현은 주체할 수 없다는 듯 그녀의 턱을 꼬집으며 그녀를 향해 몸을 기울고 거칠게 키스했다.
그의 거친 손가락이 그녀의 하얀 피부에 순식간에 붉은 자국을 남겼다.
진수현의 숨결은 매우 뜨거웠는데, 이 순간만큼은 마치 불덩이가 된 것 같았다. 심윤아는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진수현과의 키스에 거의 질식할 뻔했다.
심윤아가 온 힘을 다해 그를 밀어내려고 할 때, 마침 책상 위에 올려놓은 진수현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진수현은 흠칫하더니 격렬한 키스를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다시 심윤아의 입술에 가볍게 쪽하고 입술을 포개고 나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강차야, 식기 전에 마시고 일찍 자.”
그리고 일어나서 핸드폰을 들고 나갔다.
그는 전화하러 발코니로 나가더니 문을 닫았다.
심윤아는 키스에 정신이 팔려 잠시 앉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일어났다.
그녀는 침실로 들어가지 않고 발코니로 향했다. 반쯤 열린 문틈 사이로 불어오는 밤바람과 함께 진수현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떠나지 않을 거야. 딴소리하지 말고 얼른 자.”
진수현의 목소리는 사르르 불어오는 밤바람처럼 부드러웠다.
심윤아는 잠시 서서 통화 내용을 엿듣다가 가볍게 입꼬리를 올렸다.
‘수현 씨도 이렇게 다정할 때가 있었구나. 애석하게도 그 상대는 내가 아니네.’
그녀는 침실로 돌아가서 침대 옆에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사실 두 사람의 결혼은 원래부터 잘못된 선택이었고 단지 하나의 거래에 불과했다.
2년 전에 심윤아네 집이 파산하면서 하룻밤 사이에 온 남성에게서 웃음거리가 되었다.
심씨 가문은 예전에 한창 잘나가는 시절에 너무나 많은 적수를 두게 되었기에 몰락한 후에 무수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다.
심지어 심씨 가문의 큰딸을 자기 노리개로 만들 수만 있다면 대신 심씨 가문의 빚을 갚아줄 수도 있다고 호언장담하기까지 했었다.
제4화
심씨 가문이 몰락하기 전, 심윤아를 쫓는 남자들이 부지기수였지만, 지금까지 그녀의 눈에 들어온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모두 심씨 가문의 큰아가씨가 가식적이라고 손가락질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한 무리의 남자들은 심윤아를 희롱하며 은밀히 그녀의 몸값을 부르기까지 했다.
그녀가 가장 초라하고 굴욕을 당하고 있을 때, 진수현이 돌아왔다. 그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호들갑을 떨던 한 무리의 남자들에게 비참하기 짝이 없는 대가를 치르게 하고 나서, 심씨 가문의 빚을 대신 갚아 준 다음 그녀에게 청혼했다.
“윤아야, 나랑 약혼해 줘.”
심윤아는 깜짝 놀랐고 한참 동안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진수현은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놀라긴? 내가 덮치기라도 할까 봐? 걱정하지 마, 가짜 약혼일 뿐이야. 할머니가 아프셔서 급하게 약혼해야 해. 그런데 할머니는 너를 많이 좋아하시니까, 우리 둘이 가짜 약혼이라도 해서 어르신을 즐겁게 해드리는 게 어떨지 싶어. 대신 내가 심씨 가문을 되살릴 수 있게 도움을 줄게.”
‘아, 가짜 약혼이었구나.’
알고 보니 진수현은 심윤아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할머니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가짜 약혼을 하자는 말이었다.
진수현의 마음을 알게 되었음에도 심윤아는 기꺼이 승낙했다. 진수현의 마음속에 자기가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약혼 후 심윤아는 진수현과 지내는 것이 사뭇 어색했다.
두 사람은 죽마고우였지만, 줄곧 친한 친구로 지내왔다. 하루아침에 진수현이 약혼자가 되어버리자, 심윤아는 설명할 수 없는 어색함을 견딜 수 없었다.
반면, 진수현은 오히려 자연스럽게 각종 연회 행사에 모두 그녀를 데리고 다녔다.
1년 후, 진씨 가문 큰 사모님의 병세가 다시 악화되자, 두 사람은 마침내 결혼식을 올렸다. 그렇게 심윤아는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진시 가문 작은 사모님이 되었다.
이런 사연도 모르고, 죽마고우 한 쌍이 마침내 결실을 보았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잠깐 생각에 잠겼던 심윤아는 갑자기 피식 웃었다.
‘애석하게도 우린 마침내 결실을 본 게 아니라, 단지 네가 원해서 거래했을 뿐이네.’
“아직 안 잤어?”
갑자기 진수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심윤아는 주변 공기에 진수현이 풍기는 상쾌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너한테 할 말이 있어.”
심윤아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녀는 진수현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이때, 진수현이 입을 열었다.
“우리 이혼하자.”
이미 짐작하고 있었음에도 심윤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자신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언제?”
그녀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담담한 어조와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그녀의 이런 모습에 진수현은 눈썹을 찡그렸지만, 입으로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곧, 할머니 수술이 끝나면 이혼해.”
심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진수현은 어이가 없었다.
“... 더 할 말은 없어?”
이 말을 듣고 심윤아는 곁눈질로 그를 한 번 보았다.
“뭐라고?”
그녀의 맑은 눈빛을 보며 진수현은 그녀의 물음에 목이 메었다가 잠시 지나고 나서야 어이없다는 듯이 소리 내 웃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이 무심한 여자야.”
어쨌든 두 사람은 2년 동안 부부 행세를 해 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진수현이 갑자기 이혼을 제의했음에도 심윤아가 의외로 이렇게 평온하다니.
하긴, 원래 두 사람은 서로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거래하듯 진행한 결혼이었을 뿐이었다. 진수현의 존재는 단지 그녀 주변의 추종자들을 잊게 했을 뿐이다.
2년 동안 할머니의 건강 때문이 아니었다면, 진수현은 심윤아가 아마 오래전에 이 관계를 종료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진수현은 심윤아의 평온한 반응으로 인한 마음의 불편함을 지우고 그녀 곁에 누운 채 눈을 감았다.
“진수현.”
심윤아가 갑자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진수현은 눈을 번쩍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심윤아의 깊은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반짝 빛났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심윤아는 그의 잘생긴 얼굴을 바라보며 핑크빛 입술을 벙긋대며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2년 동안... 고마웠어.”
진수현의 눈 밑이 그림자가 드리우듯 어두워졌고 심윤아의 말을 듣고 나서 입꼬리를 씩 올렸다.
“딴소리하지 마!”
심윤아는 고개를 돌렸다. 이혼하고 나면 이런 말을 할 기회조차 없을 것 같았다.
제5화
다음날.
심윤아는 일어나서 약간 감기 기운 때문에 서랍에서 감기약을 꺼내고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랐다.
감기약을 입에 넣자마자 심윤아는 무슨 생각이 나서인지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더니 욕실로 달려가 삼키려고 했던 감기약을 뱉어냈다.
그녀는 세면대 옆에 엎드려 가글을 하며 방금 삼킨 쓴맛을 모두 토해냈다.
“왜 그래? 어디 불편해?”
허스키한 남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문 앞에서 들려오자, 심윤아는 깜짝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진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심윤아는 황급히 시선을 피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니야, 약을 잘못 먹어서 그래.”
말을 마치자, 그녀는 손을 뻗어 입가의 물기를 닦고 욕실에서 나갔다.
진수현은 몸을 돌려 조금 전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진수현은 심윤아가 어젯밤 집에 돌아왔을 때부터 어딘가 평소와 다른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아침밥을 먹고 나서 부부가 함께 외출했다. 진수현은 안색이 창백한 심윤아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내 차 타는 게 어때?”
심윤아는 어젯밤 비를 맞은 탓에 자고 일어난 후, 확실히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녀가 막 고개를 끄덕이려 하자, 진수현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진수현은 고개를 숙여 핸드폰을 확인했고 소영에게서 전화인 것을 보고 잠시 자리를 피해 전화를 받으려 했다. 하지만 고개를 든 순간, 심윤아는 이미 가버리고 없었다.
두 사람은 부부지만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해 주는 편이어서 심윤아는 평소에도 진수현의 통화를 엿듣는 습관이 없었다.
두 사람 모두 그런 식으로 서로를 배려하며 지내왔다.
하지만 오늘 진수현은 급급하게 자리를 피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찔렸다.
그러나 그 느낌은 오래가지 않았고 그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심윤아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두고 그를 훑어보았다. 진수현의 표정에서 심윤아는 그에게 전화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심윤아를 대할 때는 없었던 온화한 표정이었다. 심윤아는 심호흡하고 부러움을 가라앉히고 휴대전화를 꺼내면서 차고 쪽으로 걸어갔다.
5분 후.
진수현이 전화를 받고 다시 돌아왔을 때, 그곳은 텅 비어있었고 어디에도 심윤아의 그림자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들어왔다.
「급하게 회사에 가봐야 해서 먼저 갈게.」
진수현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응시하며 눈 밑에 그늘이 드리웠다.
심윤아는 아픈 몸을 이끌고 회사에 도착했다. 막 문을 열고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의자에 앉았고 이어서 책상 위에 엎드렸다.
‘머리가 아프네...’
그러나 심윤아는 지금 임신 중이라 약을 함부로 먹을 수도 없었다. 사실 그녀는 아직도 제대로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다. 이치대로 말하면, 두 사람의 결혼은 처음부터 쇼일 뿐이었다. 그러니 심윤아가 임신했다고 하더라도, 유일하게 진심으로 그녀와 함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진씨 가문 큰 사모님 한 사람뿐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심윤아의 배 속에 있는 아이를 반기지 않을 것이다.
심윤아가 보기엔 특히 진수현이 그럴 것 같았다.
어제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녀는 어쩌면 진수현이 이 아이를 받아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아이를 계기로 두 사람의 가짜 결혼이 진짜로 바뀔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그러나 심윤아는 소영이 돌아온 것과 소영에 대한 변함없는 감정을 확인하고는 일말의 기대조차 저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만약 진수현에게 이 사실을 알려준다면, 그의 첫 반응은 아마 소영과의 결혼에 걸림돌이 된다며 아이를 지우라고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심윤아는 서둘러 이 아이를 지워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엔 조금의 체면도 서지 않는 상황이 올지도 몰랐다.
“윤아 님.”
나긋나긋한 여자의 소리에 심윤아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어시스턴트인 임연수가 그녀를 걱정스럽게 보고 있었다.
심윤아는 똑바로 앉아 그녀를 향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임연수는 따라서 웃지 않고 걱정스럽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윤아 님, 안색이 안 좋은데, 어디 아프세요?”
말을 들은 심윤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요, 어젯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하였을 뿐이에요.”
“정말요?”
임연수가 다시 걱정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안색은 정말 창백해요.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휴가 내고 병원이라도 다녀오세요.”
제6화
“정말 괜찮아요. 어제 부탁했던 일은 다 했나요?”
몇 마디 말도 없이 다시 업무에 관련된 이야기로 넘어오자, 임연수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정리한 자료를 가져다준 다음, 서둘러 심윤아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주었다.
“윤아 님, 병원에 가기 싫으시면 따뜻한 물이라도 많이 마셔요.”
임연수는 애당초 심윤아가 불러들인 그녀의 어시스턴트로서, 평상시에 열과 성을 다하여 일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일 외에는 어떠한 사적인 왕래도 없었다.
그 때문에 심윤아는 임연수가 자기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많이 쓸 줄은 몰랐다.
심윤아는 금세 마음이 따뜻해졌고 따뜻한 물을 몇 모금 마셨다.
으스스 추위를 타고 있던 심윤아는 따뜻한 물을 조금 마신 후에 심윤아는 마침내 편안해졌다. 그러나 임연수는 여전히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윤아 님, 오늘 업무 보고는 제가 할까요? 사무실에서 좀 쉬세요.”
심윤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만 컨디션이 좀 저조할 뿐이라, 심윤아는 그렇게까지 억지를 부리고 싶지 않았다.
만약 자잘한 일에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고 자기 일을 대신하도록 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스스로가 게을러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습관이 되면 앞으로 그녀가 불편할 때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싶기도 했다.
심윤아는 수중에 있는 자료를 다 정리한 후에 일어나서 진수현의 사무실로 갔다.
그녀의 사무실은 진수현의 사무실 사이엔 거리가 좀 있었다. 평소 같으면 별것 아닌 거리였지만, 오늘은 감기 기운 탓인지 더 멀게 느껴졌다. 심윤아는 피곤한 기색으로 걸어갔다.
“똑똑.”
“들어와.”
차갑고 허스키한 남자의 목소리가 문틈 사이로 들려오고 나서야 심윤아는 문을 밀었다.
문을 열어젖힌 후, 심윤아는 사무실에 한 점의 그림자가 더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얀 원피스가 강소영의 가녀린 허리라인을 그대로 드러냈고,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몸쪽으로 늘어져 있었다. 이때 통유리창으로 들어온 햇살은 강소영을 더욱 아름답게 비추었다.
상대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난 후, 심윤아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윤아 씨, 왔어요?”
강소영은 빙그레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오며 심윤아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몸을 기울여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심윤아는 몸이 더욱 굳어졌고. 눈빛은 강소영의 어깨 너머로, 마침 진수현의 칠흑 같은 눈에 마주쳤다.
진수현은 책상에 기대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깊은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심윤아가 어리둥절해하다, 강소영이 한발 물러났다.
“수현 씨에게 다 전해 들었어요, 힘들었겠어요.”
강소영이 안쓰러워하며 말을 이었다.
“윤아 씨,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저한테 부탁하세요.”
심윤아는 흠칫했다.
‘진수현이 모든 걸 설명해 줬다는 말인가?’
혼란스러운 것도 잠시, 심윤아는 재빨리 반응했다.
하긴, 그녀와 진수현의 결혼은 가뜩이나 만인의 주목을 받았는데, 강소영을 속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속일 수 없다면 더 확실히 말하는 게 옳았다. 더구나 강소영은 심윤아에게도 은인이었으니 말이다.
심윤아는 마음속의 씁쓸함을 감추고 창백해진 얼굴에 애써 웃음을 지었다.
“고마워요, 언제 돌아왔어요?”
“어제 비행기였어요.”
‘어제?’
즉, 그녀가 막 돌아왔을 때 진수현은 그녀를 만나러 갔던 것이었다. 역시 그가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은 강소영이었다.
“참,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요? 어디 아픈 거예요?”
강소영이 불쑥 물었다.
탁자에 기대어 시큰둥해 있던 진수현도 그 소리에 고개를 들어 심윤아를 바라보았다. 그는 심윤아를 자세히 살펴보더니 미간이 찌푸렸다.
“어젯밤 비를 맞아서요?”
“비를 맞았다고요?”
강소영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심윤아가 한숨을 내쉬며 막 설명하려고 하자, 진수현의 싸늘한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불편한데 왜 억지를 부려? 너 한 사람 없다고 회사가 돌아가지 않는 것도 아니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서 쉬어.”
진수현의 말을 들은 강소영은 무의식적으로 진수현을 한 번 보았다.
‘수현 씨, 왜 갑자기 화가 난 사람처럼 말하는 거지?’
제7화
심윤아는 좀 난감했다.
“그냥 비 좀 맞았을 뿐이야.”
말이 끝나자, 그녀는 앞으로 나와 어제 자 업무 보고서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것은 어제 자 업무 보고서야. 다른 일도 있어서 이만 가볼게.”
“두 사람 옛이야기도 나누고 좋은 시간 보내세요.”
심윤아가 강소영을 바라보자, 강소영은 곧 웃음을 지었다.
심윤아는 나갔으나 진수현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수현 씨?”
강소영이 그의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진수현의 이런 모습을 보고 강소영은 마음속으로 이유를 알 수 없는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 윤아 씨의 컨디션이 확실히 좋지 않아 보이거든, 비록 지금은 수현 씨의 비서로 일하고 있지만, 파산하기 전에는 어쨌든 심씨 가문의 큰 아가씨였잖아, 너무 매몰차게 굴지 마.”
‘매몰차게 굴어? 누가? 내가?’
진수현은 마음속으로 허탈하게 웃었다.
‘어느 누가 감히 심윤아를 가혹하게 할 수 있다고, 참!’
그러나 진수현은 이런 생각들을 꺼내지 않았고 다만 대답만 재깍 했다.
“응.”
심윤아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는 참지 못하고 책상에 엎드렸다. 현기증이 더 심해졌다.
조금 뒤 심윤아는 임연수의 목소리를 들었다.
“윤아 님, 급한 거 아니면 돌아가서 쉬세요.”
심윤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몹시 괴로워하며 작은 소리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아유, 나 눈 좀 붙일게.”
말을 마치고 심윤아는 깊은 잠에 빠졌다.
심윤아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그녀는 열여덟 살의 나이로 돌아갔다. 그날은 심윤아와 진수현의 성년식 파티였다. 양가의 성년식은 함께 거행되었는데, 당시 심윤아는 자기가 좋아하는 남색의 미니스커트를 입었고 일부러 웨이브 파마를 하고 손톱까지 받고, 그날이 가기 전에 진수현에게 고백하려고 했다.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진수현을 찾아다녔고, 마침내 작은 정원에서 진수현을 찾았다.
그녀는 치맛자락을 들고 걸어가려 할 때 진수현의 친구 몇 명이 그에게 장난치는 소리를 들었다.
“수현아, 어른이 다 되었구나, 좋아하는 여자는 있니? 이젠 약혼을 고려해 볼 만해.”
“윤아, 저 계집애도 괜찮은 것 같아. 하루 종일 네 뒤를 따라다니고 있어.”
심윤아는 이 말을 듣자, 자기도 모르게 진수현의 대답을 들으려고 걸음을 멈추었다.
결국, 그의 대답은 그녀가 다음에 해야 할 일에도 중요했다. 그러나 진수현이 대답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미리 말하였다
“윤아는 아니야, 수현이한테 윤아는 그저 여동생 같은 아이일 뿐이지. 우리 수현이의 마음속에는 오직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누가 모를까, 바로 그것이 바로 강소영이지.”
‘강소영...’
심윤아는 몰래 진수현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소년은 돌의자에 앉아 긴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그의 준수한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고 친구들의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확실히 소영 씨가 좀 더 다정하고 여성스럽지. 윤아는 그냥 계집애가 따로 없어. 가장 중요한 것은 소영 씨가 수현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라는 거야.”
이 말을 한 사람은 이선우였는데, 그는 진수현의 친한 친구 중의 한 사람이었다. 평소에 심윤아를 놀리는 것을 좋아하며, 그녀를 볼 때마다 그녀의 머리를 잡아당기며 장난치곤 했다. 그 때문에 이선우는 심윤아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누가 계집애야!’
“맞아, 소영이가 네 생명을 구했었지, 만약 그때 소영이가 강물에 뛰어내려 너를 구하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 이미 진수현은 없었을 것이다.”
진수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침내 모처럼 응하는 소리를 냈다.
은은한 달빛이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쾅...
심윤아의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사라졌고 창백하기 그지없게 변했다. 뜻밖에도 그녀는 고백조차 못 해보고 차인 신세가 되었다.
강소영이 진수현의 생명을 구한 것은 온 세상에 소문난 일이었다.
옛날에는 영웅이 미인을 구한다지만, 반대로 미인이 미소년을 구했다고 일파만파 퍼진 상황이었는데, 그 주인공들이 다르면 아닌 강소영과 진수현이었다.
제8화
그러나 이 일에 대해서 심윤아는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
그해 그녀도 물에 빠졌었다. 그녀는 고열에 시달리고 나서도 큰 병에 걸렸었다. 의식이 돌아온 뒤로 많은 기억을 잃었고 자기가 어쩌다 물에 빠졌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친구들은 그녀가 장난치다가 실수로 물에 빠졌다고 했다.
하지만 심윤아는 자신이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었다고 느끼지만, 아쉽게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후로 나이가 들고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당시의 기억들은 더 철저하게 잊혀갔다.
심윤아는 진수현이 자기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을 이렇게까지 마음에 담아둘 줄은 몰랐다.
‘차라리 진수현을 구하기 위해 뛰어내린 사람이 나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지금, 이 순간 심윤아는 꿈과 현실을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했다.
가슴은 큰 바위에 눌린 것처럼 답답하고 괴로웠고, 두통은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왜 그때 진수현을 구하기 위해 강가에 뛰어내린 사람이 그녀가 아니었을까?
‘만약에... 만약에...’
갑자기 눈앞에 진수현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의 눈빛은 한없이 차가웠다.
“윤아야, 아이는 지워.”
곧이어 그의 곁에 강소영이 나타났고 그녀는 진수현의 곁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었다.
“윤아 씨, 아이를 지우지 않으려는 게 설마 우리 관계를 망치려는 건 아니겠지?”
관계를 망치려 한다는 소리를 들은 진수현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 그는 몇 걸음 앞으로 다가오더니 심윤아의 턱을 움켜쥐고 말했다.
“말 들어, 그렇지 않으면 나도 강압적으로 아이를 지우라고 할 수밖에 없으니까.”
진수현은 심윤아의 턱을 쥐어뜯을 정도로 손에 힘을 줬다.
심윤아는 몸부림치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이미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리고 문득 창밖으로 뒤로 밀려나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꿈이었나? 어떻게 그렇게 생생할 수가 있을까...’
심윤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윤아 씨, 깼어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심윤아가 고개를 들자, 강소영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잘됐어.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봐 걱정했어요.”
‘강소영? 그녀가 왜 여기에 있지?’
곧이어 심윤아는 무언가를 깨닫고 그녀 쪽으로 쳐다보았다. 역시 운전석에는 진수현이 앉아 있었고 강소영이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진수현은 차를 몰다가 그녀가 잠에서 깼다는 소리를 듣고 백미러로 그녀를 한 번 쳐다보았다.
“깼어? 또 어디가 아파? 조금 있다가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 얘기해.”
심윤아는 조금 전의 악몽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리다가 깨어난 후 가까스로 심장의 고동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진수현의 말에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아니, 병원에 갈 필요 없어. 난 괜찮아.”
심윤아의 말을 듣고 진수현은 다시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무슨 말이야? 너 지금 열이 나는 거 알아?”
강소영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윤아 씨. 고열은 병원에 가야 해요. 어젯밤에 비를 맞았다고 들었어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어떻게 된 거라고?’
앞에 놓인 강소영을 바라보던 심윤아는 창백한 입술이 살짝씩 움직여 봤지만 끝내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어제 그 해프닝에 강소영도 분명히 현장에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이렇게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서일까?
한창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강소영이 얼굴에 근심하는 기색을 드러내며 미안한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혹시 어제...”
진수현은 강소영의 말을 끊고 차분하게 말했다.
“어쨌든 병원에 먼저 가봐야 해. 요 며칠간 아프면 푹 쉬어. 당분간은 회사에 나올 필요도 없...”
강소영은 자기 말을 끊은 진수현을 약간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심윤아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 밑에 깊은 서늘함이 있었다.
‘역시 그가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는 강소영이라는 건가? 감싸고 도는 것 좀 봐!’
한참 후에야 심윤아가 고개를 들었다.
진수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오늘따라 심윤아가 제멋대로인 것 같았다.
“아픈데 병원도 안 가겠다고 하고, 도대체 어쩌겠다는 거야?”
심윤아는 입술을 깨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 몸은 내가 잘 알아요.”
제9화
병원에 가면 틀림없이 임신 사실을 들키게 될 테니, 심윤아는 병원에 갈 수 없었다.
우스꽝스럽게도 심윤아는 아이의 존재를 끝까지 숨기고 싶었다. 그녀는 얼마 남지 않은 자존심이라도 지키고 싶었다.
심윤아는 진수현에게 가짜 결혼을 승낙하던 순간에 이미 소위 말하는 자존심 따위는 개나 줘버려야 한다는 현실을 깨달았었다.
사랑하는 사람인 진수현 앞에서 그녀가 무슨 자존심을 내세울 수 있었을까? 하지만 아이의 존재를 알리는 것은 그동안 내려놨던 자존심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심윤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아무리 자존심을 내려놓은 지 오래됐다고 해도 존엄까지 잃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 할 순 없었다.
진수현은 그녀의 말을 들은 후, 눈살을 한껏 찌푸리더니 갑자기 핸들을 꺾어 갓길에 차를 세웠다.
심윤아는 진수현의 돌발행동을 보고 당장 차에서 내리라는 줄로 알고 손을 뻗어 차 문을 열려고 했다.
“딸깍!”
순간 차 문이 잠겼고 진수현은 백미러를 통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병원에 안 가려는 이유가 도대체 뭐야?”
어젯밤 비를 맞고 돌아온 이후로 진수현은 심윤아의 행동이 수상하게 느껴졌다.
심윤아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정말 아파 죽을 정도라면, 내가 병원에 가려고 했을 거야.”
진수현은 실눈을 뜨고 말을 잇지 않았다. 그러자 강소영이 끼어들었다.
“수현 씨, 나 때문인 거 같아. 난... 여기서 먼저 내릴게. 윤아 씨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와.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윤아 씨 상태가 아주 위태로워 보여.”
말을 마치고 강소영은 몸을 진수현 쪽으로 기울이며 차 문의 잠금 스위치를 누르려고 했다. 그러자 진수현이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제지했다. 그렇게 심윤아는 두 사람의 살결이 맞닿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진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심윤아를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강소영을 보고 말했다.
“딴소리하지 마, 네 탓 아니야.”
강소영은 진수현의 손에 잡힌 자기 팔목을 쳐다보며 수줍게 웃었다. 그리고 심윤아는 말없이 조용히 두 사람을 지켜볼 뿐이었다.
강소영과 눈을 마주치고 나서야 그녀는 약간 당황한 듯 시선을 거두었다.
“윤아 씨, 제가 오해했나 봐요. 저 때문에 윤아 씨가 수현 씨에게 투정을 부리는 건 줄 알았어요. 정말 미안해요.”
심윤아는 강소영을 힐끔 쳐다보았다.
강소영이 과거에 심윤아를 도와준 적이 있었던 게 아니라면, 심윤아는 그녀가 곰의 탈을 쓴 여우가 아닐지 의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강소영은 심윤아에게도 은인이나 다름없었기에 그녀는 내키지 않았지만,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때, 강소영이 웃으며 말했다.
“병원에 가기 싫은 이유가 혹시 병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가요? 제 친구 중에 귀국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스스로 작은 클리닉을 차린 친구가 있거든요. 거기로 가볼래요?”
말을 마치고 강소영은 진수현을 바라보았다.
“수현 씨, 어떻게 생각해?”
진수현은 즉시 승낙하지 않았고 한참 지나서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클리닉? 믿을 만한 곳이야?”
강소영이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믿을 수 없는 곳이라면 내가 어떻게 윤아 씨에게 추천하겠어? 수현 씨, 설마 나를 못 믿는 거야?”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진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 네 친구가 운영하는 클리닉으로 가자.”
심윤아는 눈썹을 찡그렸다.
“나는...”
순간, 진수현은 액셀러레이터를 밟았고 전방을 향해 돌진했다. 심윤아의 의사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리고 강소영은 여전히 옆에서 속 편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윤아 씨, 걱정하지 말아요. 제 친구는 성격이 아주 싹싹하고 환자를 대할 때도 엄청 친절하다고 소문이 났어요. 제가 미리 언질 줄 테니, 더 잘해줄 거예요. 불편한 점 있으시면 얼마든지 얘기해도 돼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라고 한다면, 강소영은 한없이 상냥하고 친절하다고 할 반면, 심윤아는 제멋대로 굴기만 하는 고집불통이 따로 없다고 할 것이다. 열이 펄펄 끓을 정도로 나고 아픈데도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생떼를 부리고 있다고만 생각할 테니 말이다.
이 상황에서 심윤아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심윤아는 질주하는 차에 몸을 싣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진료소에 도착한 후, 강소영이 심윤아를 부축하며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
“어때요? 아직도 머리가 아프면 제 어깨에 기대요.”
강소영은 가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고 몸에서 은은한 꽃향기를 풍겼다. 그녀는 일거수일투족이 가볍고 여성스러웠다.
제10화
심윤아는 눈을 내리깔고 생각했다. 강소영은 외모가 예쁘장하게 생겼을 뿐만 아니라, 인성도 매우 훌륭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진수현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심윤아는 자기가 진수현이었어도 강소영을 좋아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강소영은 친구를 만난 후, 바로 다가가서 한참 동안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 남자는 흰 가운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심윤아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이며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소영이의 친구시죠? 제 이름은 고현민입니다.”
심윤아도 고현민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열이 있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고현민은 손등을 심윤아의 이마에 대보며 나직하게 물었다.
갑작스러운 접근에 심윤아는 무의식적으로 옆으로 비켜섰고, 그녀의 반응에 고현민은 웃으며 속삭였다.
“열이 있는지 확인해 보려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고현민은 말을 잇지 않고 온도계를 내밀었다.
“체온부터 측정해 봅시다.”
심윤아는 체온계를 건네받았다.
뒤이어 진수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체온계 사용법은 알아?”
심윤아는 어이가 없었고 상대조차 하지 않았다.
‘어떻게 체온계조차 쓸 줄 모른다고 생각할 수가 있지?’
다만 머리가 어지러운 탓에 심윤아는 동작이 느릿느릿했다. 고현민은 체온을 측정하고 잠시 기다려 보자고 했다.
강소영은 상황을 지켜보다가 이 기회를 틈타 고현민에 진수현을 소개하였다.
“수현 씨, 이 친구가 바로 내가 전에도 몇 번 언급했던 고현민이야. 의학 방면에서 거둔 성과가 대단하지만, 자유를 추구하고 누구 밑에서 일할 성격이 아니라, 귀국한 후에 소소한 클리닉을 차리게 된 거야. 그리고 현민아, 인사해, 수현 씨야, 내...”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인 후에야 수줍게 말했다
“내 친구야.”
‘친구?”
친구라는 호칭에 고현민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무심코 심윤아의 얼굴에 눈길을 돌렸다가 다시 진수현을 보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고현민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한참 후에야 진수현은 손을 들어 상대방과 가볍게 악수했다.
“알고 있어요.”
고현민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한 마디 툭 뱉었다.
“수현 씨에 관해 하도 많은 얘기들을 들었어서, 처음 뵙는데도 내적 친밀감이 드네요. 소영이가 수현 씨를 아주 높이 평가하더라고요.”
“현민아.”
강소영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두 볼이 순식간에 발그레해졌다.
“왜? 설마 내가 실수한 것은 아니겠지? 평소에 사람들 앞에서 수현 씨를 엄청 많이 언급하고 칭찬하지 않았어?”
“그건 맞지만, 민망하니까 그만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때 진수현이 눈을 내리깔며 심윤아를 힐끗 훔쳐보았다. 심윤아는 구석에 앉아서 무거운 눈꺼풀을 살며시 감고 있었다. 헝클어진 몇 가닥 앞머리가 그녀의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심윤아는 헝클어진 머릿결 뒤에 숨어 모든 감정을 숨겼다.
그녀는 마치 자기와 관련 없는 일에 연루된 사람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진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5분 후, 고현민은 심윤아의 체온을 살펴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체온이 아주 높아요. 해열 성분이 포함된 수액을 맞으셔야겠네요.”
심윤아는 고개를 살짝 들고 말했다.
“수액은 싫어요.”
고현민은 심윤아를 다시 한번 자세히 쳐다보고는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찌를 때 아플까 봐 걱정하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 아주 유능한 의사예요.”
강소영도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윤아 씨, 잠깐 아픈 것보다 빨리 쾌차하는 게 더 중요하죠.”
심윤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고집스럽게 말했다.
“나는 주사도, 약도 다 싫어요.”
그녀의 고집스러운 모습에 진수현은 또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환자분께서 거부하신다면 우선 물리적으로 열을 내릴 수밖에 없겠네요. 제가 처방을 내리고 물품들을 가져올 테니, 먼저 젖은 수건을 머리에 올리고 계세요. 고열이 지속되면 패혈증에 걸릴 수도 있으니까요.”
고현민이 나가자, 강소영도 따라 나갔다.
“윤아 씨, 나도 따라가서 도울게요.”
두 사람이 나간 후, 방에는 심윤아와 진수현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심윤아는 아직도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그녀는 물수건을 이마에 올려 열을 내리고 싶었지만 지금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이때, 좀처럼 입을 열지 않던 진수현이 갑자기 말했다.
“억지 좀 그만 부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