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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첫날밤, 식물인간 남편이 갑자기 눈을 뜨다
아버지 회사가 파산 직전까지 몰린 진아연은 계모에 의해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거물급 인사 박시준과 결혼하게 된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과...
Chương (1)
第1章
제1장
오늘은 A 시의 상류층 자제 진아연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평범한 결혼식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결혼식에 가장 중요한 사람인 신랑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신랑 박시준.
그는 반년 전 교통사고로 인해 현재 식물인간 상태이다.
의사는 그런 그가 이번 연말을 버티기 힘들 것이라 말했다.
그의 어머니 박 사모님께서는 큰 절망에 빠졌고 그런 자신의 아들이 죽기 전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사실 박 씨 집안은 A 도시에서 매우 잘나가는 부자였지만 시한부 남편과 결혼할 여자를 찾기란 매우 어려웠다.
...
화장대 앞.
진아연의 메이크업이 방금 막 끝이 났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는 그녀의 우아한 몸매가 드러나게 살포시 감싸주었고, 눈처럼 하얀 그녀의 피부를 더욱 눈부시게 받쳐주었다.
신부 메이크업은 그녀의 오목조목한 얼굴을 더 돋보이게 했고, 그런 그녀의 모습은 마치 꽃망울이 터지기 직전의 붉은 장미처럼 화사했다.
다만 그녀의 눈빛은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결혼식 20분 전, 그녀는 초조하게 답장을 기다리며 애꿎은 휴대폰 화면만 만지작거렸다.
사실 그녀는 박시준과 결혼하기 전 사귀던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녀의 남자 친구는 바로 박시준의 조카 박우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둘의 사이가 공개된 적은 없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결혼식 전날 밤 우진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내심 그가 자신을 데리고 A 도시에서 도망쳐 주기를 바랐다.
밤새 기다렸던 그의 메시지는 오지 않았고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기다리고만 있을수 없어 의자에서 일어나 휴대폰을 손에 쥐고 핑계를 대며 잠시 대기실에서 나왔다.
그러다 복도를 가로질러 라운지를 지나가던 그녀의 발걸음이 멈췄다.
라운지의 문은 열려 있었고 그녀의 여동생인 진희연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우진아. 우리 어리석은 언니가 널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거야! 지금이라도 가서 좀 달래주지 그래. 혹시 후회하고 결혼 안 한다고 하면 어쩌려고 그래?"
박우진은 희연을 안으며 그녀의 가느다란 목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오늘이 결혼식 당일인데 결혼 안 한다고 말한다 한들. 그게 마음대로 되겠어? 후회한다고 도망치면 우리 집 경호원들이 끌고 가서라도 결혼 시킬걸!"
그 말에 신이 난 듯 크게 웃는 희연의 웃음소리가 거슬렸다.
"진아연이 나랑 당신이 매일 밤 같이 보내는 걸 알면 분해서 제 명에 못 살 거야. 호호호!"
그 말에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기분이 들었다.
진아연은 충격에 몸을 가누지 못했고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웨딩드레스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으려 애썼다.
사실 얼마전 아버지 회사의 투자가 갑자기 중단되며 자금 압박이 들어왔고 결국 아버지께서는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셨다.
그래서 재혼한 계모 왕은지가 자신의 이속을 크게 챙기기 위해 아연과 박시준 집안을 정략결혼 시켜버린것이다.
그러면서 아연에게는 모두 진 씨 가문을 위해 그런 것이라 말했지만 정확하게는 아연을 집에서 내쫓기 위한 계획이라는 것쯤은 아연도 이미 예상했었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달콤하게 속삭이던 그가 오래전부터 자신을 배신하고 있었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쩐지 박우진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에게 아무 의미 없는 결혼이라고 하면서 박시준이 죽고 난 뒤, 다시 자신과 결혼을 해도 늦지 않다며 설득한 게 다 이런 이유였다니.
모두가 그녀를 속인 것이다!
그녀의 평화롭고 아름답다고 느꼈던 삶의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고, 이런 상황이 너무 기가 막혀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제 방해꾼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듯. 방 안 두 사람의 소리는 점점 격해졌다. 두 사람이 격해질수록 아연의 눈빛은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
이 모든 일은 자신의 어리석음이 불러일으킨 것이라 생각했다. 그저 아버지가 힘들어하실까 봐 새엄마와 이복동생의 괴롭힘을 꾹 참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바보처럼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원래 그녀의 몫이었던 것들. 빼앗긴 그녀의 모든 것들을 다시 되찾아 올 것이다!
그렇게 결혼식은 시작됐다.
진아연은 하얀 면사포를 뒤집어쓴 채 부케를 들고 로맨틱한 선율에 맞춰 식장으로 천천히 걸어들어 왔다.
혼자 결혼 맹세를 하고, 결혼반지를 꼈다.
자리에 참석한 귀빈들 모두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금부터 아연은 박 사모님이라 불릴 것이며, 누구든 그녀를 쉽게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다만 그녀의 남편이 된 남자. A 시를 움직일 수 있는 그 사람이 얼마 살지 못한다는 점이 신경쓰였을 뿐이다.
...
그날 밤.
진아연은 박시준의 별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가 있는 이 저택은 도시의 가장 중심부에 있는 부유층이 제일 많이 살고 있는 곳이다. 집값이 천억이 훨씬 넘는 곳이라고 들었다.
아연은 이곳 별장 구조를 둘러보기도 전에 장 이모님에 의해 침실로 안내를 받았다.
그녀는 바로 침대에 누워 있는 남자에게 시선이 끌렸고 천천히 침대 옆으로 걸어가 누워있는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이목구비가 매우 입체적이었고 양미간은 타고난 귀족 기질이 다분했다.
오랫동안 실내에 누워있어서 피부는 유난히도 창백했지만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잘 생겼다.
아마 그가 이렇게 아프지 않았더라면 그의 신부가 될 수는 없었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큰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기 전에 그는 엄청난 능력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가 경영하는 ST그룹은 A 시에서 10위 안에 꼽힐 정도로 대단했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무자비한 폭군이었으며, 그를 배신한 자들은 모두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이 이런 대단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빠져있을 때, 침실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박우진이였다!
"아연아, 미안해! 오늘 진짜 일이 너무 바빠서 겨우 빠져나왔어."
박우진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아연에게 다가와 사과를 했다.
하지만 진아연은 차갑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당신 삼촌과 결혼한 사람이야. 아직도 날 아연이라 부르다니. 어떻게 불러야 할지 가르쳐줘?"
"아연아, 나한테 많이 화났구나. 사실 당신을 데리고 도망칠 수도 있었는데... 그러면 당신이 너무 힘들잖아. 그게 나는 싫었어. 삼촌은 신경 쓰지 마. 뭐... 거의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으니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삼촌을 잘 보내드린 다음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도록 내가 유명한 변호사를 붙여 줄게!"
아무것도 모르는 박우진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신나게 말했다.
"그러고 나면 이 모든 것들이 우리 것이 되는 거야!"
아연은 갑자기 그와 진희연이 함께 있던 장면이 떠올라서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졌다.
"이거 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손을 떨쳐냈다.
아연의 외침에 박우진은 잠시 당황해했다. 자신이 알던 진아연이 맞는 건가 하며 바라봤다.
예전의 착하고 바보처럼 웃기만 하던 진아연은 단 한 번도 자신에게 큰 소리를 친 적이 없었다.
혹시 그녀가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약간의 죄책감을 느낀 우진이 그녀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하려던 찰나. 순간 그는 믿기지 않는 듯 진아연의 뒤쪽을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 삼촌..."
잠깐이었지만 침대에 누워있던 박시준이 눈을 떴다.
제2장
크리스탈 샹들리 아래에 누워있는 박시준의 눈빛은 흑요석처럼 깊게 빛났고, 그 모습은 매력적이고도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환자처럼 보이지 않는 그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런 모습을 본 박우진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고 주춤거리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아... 아연아. 아! 아니. 숙모님! 그러고 보니 시간이 너무 늦었네. 그, 그럼 둘이 좋은 시간 보내세요!"
박우진은 식은땀을 흘리며 비틀대다 침실을 빠져나왔다.
진아연은 갑자기 당황해하며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몸을 떨며 나가는 그의 모습을 지켜봤다.
설마... 박시준이 일어난 건가? !
그럴 리가...! 시한부라고 하지 않았나?!
그녀는 그에게 말을 걸어볼까 했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가까이서 보고 싶었지만 두 발은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엄청난 두려움이 그녀를 덮쳐오는 거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아래층으로 달려갔다!
"이모님...! 박시준 씨가 깨어났어요! 눈을... 눈을 뜨고 있어요!"
이모님은 그 말을 듣고는 서둘러 위층으로 올라갔다.
"사모님, 사실 매일 같이 눈을 뜨세요. 그렇다 해서... 정신이 온전히 돌아온 것은 아니에요. 보세요. 우리가 이렇게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반응이 없으시잖아요."
이모님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날 확률은 극히 낮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진아연은 뭔가 두려웠다.
"저... 밤에 불을 켜도 될까요? 조금 무서워서요."
"물론이죠. 그럼 얼른 주무세요! 내일 아침 일찍 본가로 넘어가야 할 거예요. 그럼 내일 아침에 깨우러 올게요."
"네."
이모님을 보낸 후, 진아연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옆에 앉아 잘 생긴 박시준의 얼굴을 바라보며 손을 뻗어 그의 얼굴 앞에서 손을 휘저었다.
"박시준씨,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하지만 그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갑자기 슬퍼졌다.
이렇게 몸을 거두지 못하는 그에 비하면 자신의 고통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지 않을까?
"박시준 씨, 꼭 일어나요. 당신의 그 수많은 재산이 박우진의 손에 들어간다면 당신은 죽어서도 눈 못 감을 거니깐."
그녀의 말이 끝나자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녀는 그런 그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심장이 북처럼 쿵쿵 뛰었다.
간혹 식물인간이라도 의식이 있다고 하던데 혹시 방금 그녀의 말을 이해한 건가?
진아연은 불안한 마음을 다잡고 그의 옆에 조심히 누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이제 정말 박 사모님이고 아무도 자신을 괴롭힐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만약 박시준이 죽는다면. 그러면 이곳 가족들 역시 자신을 그냥 놔두진 않겠지?
마음 한구석이 조여왔다.
그녀는 박시준이 죽기 전, 박 사모님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그녀의 모든 것을 되찾아 올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녀를 가지고 놀았던... 모두에게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할 것이다!
......
다음날, 아침 8시.
이모님은 진아연을 데리고 이곳의 어르신인 박 사모님이 계시는 본가로 문안인사를 왔다.
집안사람들 모두가 그곳에 모여 있었고, 진아연은 거실로 들어가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하고 차를 따라부었다.
박 사모님은 그런 진아연을 묵묵히 바라보았고, 보면 볼수록 싹싹하고 착한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아연아, 어젯밤엔 잘 쉬었니?"
진아연은 얼굴을 약간 붉히며 말했다.
"아, 네. 덕분에 푹 쉬었습니다."
"그래. 시준이는 어떠니? 혹시 시준이 때문에 놀라진 않았니?"
진아연은 잘 생겼지만 생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던 그의 얼굴을 생각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아니요. 전혀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비록 그는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그의 품은 따뜻했다.
어젯밤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그를 쿠션처럼 안아버렸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놀라 일어나긴 했지만 말이다.
"다행이구나. 참, 아연아. 네게 줄 선물이 있어."
박 사모님은 말하면서 보라색 보석함을 열어 그녀에게 건넸다.
"이 팔찌가 너와 잘 어울릴 거 같아 샀는데. 어떠니? 마음에 드니?"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진아연은 부인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었다.
"아! 네, 너무 마음에 들어요. 감사합니다."
"아연아, 사실... 네가 많이 속이 상할 거라는 거 안다. 하지만... 시준이는 이미 저렇게 되었고... 널 아껴줄수는 없지만... 그래도 네가 절대 섭섭하지 않게 보답해 줄 방법이 있긴 해."
그리고 노부인은 이어서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시준이가 저렇게 되기 전에, 일이 너무 바빠 연애할 시간도 없었단다. 당연히 자식도 없었고..."
이 말을 들은 진아연은 약간 멈칫했다.
아이?
설마... 박시준의 아이를 그녀가 낳아주기를 원하는 건가?
"... 사실 난 네가 시준이의 아이를 가져 우리 가문의 혈통을 이어줬으면 좋겠구나."
노부인의 말이 끝나자 진아연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경악했다.
"어, 엄마... 시준이가 저렇게 오랫동안 누워있는데. 어떻게 아이를 가져?" 박시준의 친형인 박한이 말했다.
박시준은 살아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벌써부터 하나둘 그의 재산을 탐내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듣더니 노부인은 크게 웃었다.
"걱정 말거라. 이미 손을 써두었으니. 시준이의 가업을 물려받을 아이가 있어야 하지 않겠니? 그 큰 재산을 아무에게나 상속 할 수는 없지. 난 그래서 우리 아연이가 시준이의 아이를 낳아줬으면 해.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어."
노부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두의 시선이 진아연에게 쏠렸다.
제3장
모두의 관심은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연이는 내가 알기로는 아직 학교에 다닌다고 들었는데? 만약 임신을 하면 학업에 지장이 있을 텐데..." 박한의 아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박한이 한술 더 떠 말했다 "그러니깐! 아연이는 지금 공부할 나이인데. 집에서 애를 키우고 싶진 않겠지!"
장남과 큰 며느리의 생각을 뻔히 다 알고 있는 노부인은 아들 박시준의 후손을 만들어 줘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아연아, 네 생각이 중요하단다. 우리 시준이의 아이를 낳아주겠니?"
노부인은 그녀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네가 시준이의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시준이의 모든 재산은 그 아이가 상속받게 된단다. 시준이의 재산이라면 아연이 너와 아이들이 평생 돈 걱정 없이 살아도 될 정도로 많고."
진아연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박우진이 박시준의 재산을 빼앗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그 정도는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녀가 거절을 한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강제로라도 아이를 낳게 될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녀의 대답을 들은 노부인은 매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역시 아연이가 현명하구나. 모두들 시준이가 죽을 사람이라 얻는 게 없을 거라 생각하던데... 호호!"
그렇게 가족 모임이 끝난 뒤, 진아연은 본가에서 나와 박시준이 있는 별장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그런 그녀를 박우진이 붙잡았다.
뜨거운 태양이 견디기 힘들다는 듯 매미들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진아연은 자신을 붙잡은 박우진의 얼굴을 보니 짜증이 났다.
그녀는 이모님에게 바로 말했다. "이모님, 먼저 선물들을 가지고 가주세요."
이모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선물들을 챙겨 자리를 떠났다.
박우진은 주변을 살피더니 아무도 없자 말을 꺼냈다.
"아연아! 너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나랑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있을 때는 만지지도 못하게 하더니... 어떻게 네가 삼촌의 아이를 낳겠다고 하는 거야."
"왜? 아이를 낳으면 그의 전 재산을 내게 준다는데. 내가 못할 이유가 있어?" 그녀는 일부러 그를 더 자극했다.
그런 그녀의 생각은 적중했다.
"아연아, 나쁘지 않은 생각인거 같긴 해! 하지만 이렇게 하는게 더 낫지 않을가. 내 아이를 가져서 그냥 삼촌의 아이라고 말해. 나 역시 박 씨 집안사람이고. 물론 이 사실을 할머니께서 알게 된다면 엄청 화를 내시겠지... 하지만 낙태까진 하라고 하시진 않을거야."
진아연의 얼굴은 점점 굳어져갔다.
"박우진. 그래. 네 야망? 인정해. 하지만 정도껏 욕심부려. 야망만 가득하고 머리는 텅 비어있는건 정말 위험한 일이야. 그리고 너 어디 가서 그런 바보 같은 말 하지 마."
진아연은 다시 그를 일깨워줬다.
"박시준 씨의 사람들. 하나같이 엄청 무서운 사람들이라는 거 알지. 그가 이렇게 멀쩡히 숨을 쉬고 있는 한 그의 부하들은 그가 일어나기만 기대하고 있을 거야. 그런 그들이 내가 네 아이를 임신했다는걸 알게 된다면? 널 그냥 가만히 놔둘 거 같아?"
진아연의 말을 들은 박우진은 순식간에 정신이 번쩍하고 들었다.
누구보다 그는 삼촌의 부하들이 얼마나 무자비한 인간들인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삼촌이 그렇게 된 후, 그들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 해서 그들이 없어졌다는 것은 아니다.
"노... 농담 좀 한 거야! 뭐... 아무튼 네가 내 아이를 낳든 삼촌의 아이를 낳든 간에. 모, 모두 우리 집안사람이지. ... 사, 삼촌이 떠난 뒤에는 내가 아빠가 돼서 친자식처럼 대할 수 있다... 뭐 그런 말이지." 박우진은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진아연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랑 시준 씨의 아이는 같은 촌수라는 거 잊지 마."
그 말을 들은 박우진은 벌레를 삼킨 것 마냥 안색이 더 안 좋아졌다.
"아연아... 이제 그만. 우리 삼촌이 죽을 때까지 이 문제로 이렇게 다투지 말자."
진아연은 무심코 물었다. "그가 죽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고 날 계속 기다려 줄 수 있어?"
그녀의 질문에 박우진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아연은 대답을 하지 못하는 그를 보며 비웃었다.
"그럼 이만 가볼게. 어머님께서 의사를 집으로 부르셔서 난 이만 네 삼촌 집으로 가봐야 될거 같아."
......
그렇게 진아연은 다시 별장으로 돌아왔고 곧바로 의사 두명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져 검진을 받았다.
검사를 통해 난자가 성숙한 상태라면 바로 그 난자를 체외로 빼낼 것이고, 만약 그게 아니라면 배란 주사를 맞아야 한다.
"박 사모님,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조금 아프실 수도 있지만 박 대표님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신다면 집안에서 사모님의 위치가 확고해지실 거예요." 여의사는 그녀를 위로했다.
진아연은 침대에 누웠고 심장 박동 소리가 자신의 귀에까지 들리는 듯했다.
"얼마나 걸릴까요...?"
제4장
여의사는 말했다. "빠르면 3~4개월 정도 걸릴 거예요. 늦으면... 음, 정확하게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그리고 조금 망설이더니 다시 말했다."사모님께서는 나이가 어리시니깐 분명히 잘될 거예요."
이곳으로 오고 난 뒤, 많은 시간이 흘렀고 A 시에 첫 가을비가 내렸다.
저녁.
진아연은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왔다.
그러고는 침대 쪽으로 다가가 오늘 새로 사 온 수분크림을 피부에 천천히 발랐다.
"아, 박시준 씨도 제가 좀 발라드릴게요! 요즘 날씨가 많이 건조해졌어요."라고 말하며 박시준의 곁에 다가갔다.
침대 가장자리에 걸 터 앉아 손가락에 크림을 살짝 묻혀 그의 얼굴에 천천히 발라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눈이 번쩍하고 뜨였고, 마주친 그의 눈동자는 보석처럼 깊고 그윽했다.
그녀는 그의 눈빛에 정신이 아찔했고 너무 놀라 호흡이 거칠어졌다.
비록 매일 이런 일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그의 눈동자를 마주칠 때마다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 내가 너무 많이 움직였나? 그렇다고 그렇게 세게 만진 것도 아닌데!"
호흡을 다시 가다듬은 뒤, 그의 뺨을 부드럽게 마사지했다.
그러면서 천천히 말을 건넸다.
"박시준 씨, 인터넷 뉴스에서 보니깐 연애를 안 하신 이유가 건강 때문이라는 말도 있던데... 그러기엔 너무 건강하신데?! 튼튼한 팔... 튼튼한 허벅지..."
그녀는 크림을 발라준 뒤, 무심코 그의 팔과 다리를 쓰다듬었다.
다른 의도는 전혀 없었고 순수한 호기심으로 살짝 쓰다듬기만 했다.
하지만 그 뒤의 그의 반응에 그녀는 순식간에 눈이 커졌다.
왜냐하면... 분명 남자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렸던 것이다.
"박시준씨...? 당신이? 바, 방금 말한 거예요?!"
진아연은 후닥닥 침대에서 튕기듯이 일어났고, 큰 두 눈으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역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예전과 다른 게 있다면 전에 그의 눈빛은 초점이 없어 보였다면, 지금은 그의 눈빛이 그녀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었으며 감정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약간의 분노, 증오, 의심이 담겨있는 눈빛이었다.
"이모님!" 진아연은 고양이처럼 재빠르게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이모님! 이모님! 박시준 씨가 깨어났어요! 이번엔 말까지 했어요! 정말이지 깨어났어요!"
그녀의 얼굴은 빨개졌고 심장은 거칠게 쿵쾅거렸으며 숨이 가빠져 왔다.
박시준이 일어났다.
그녀는 확신했다. 방금 눈을 뜨고 난 다음,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탓에 그의 목소리는 매우 거칠었고 거의 숨소리에 가깝게 들렸지만 분명히 들었다.
그녀에게 "넌 누구야."라고 한것을.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새하얘졌다.
모든 사람들이 그가 곧 죽을 것이라 말해주었기때문에 그가 이렇게 깨어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그녀의 말을 듣고 이모님과 의사, 경호원이 급히 달려왔다.
그리고 30분 후, 별장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리고 이곳에 온 모두가 박시준이 깨어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하는 눈치였다.
"시준아... 엄마는 네가 깨어날 거라는 거 믿고 있었어...!" 박 사모님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의 형 박한이 말했다. "시준아. 일어났다니 다행이다. 우리가 널 얼마나 걱정했는데. 엄마 좀 봐. 네 걱정 하느라 머리카락이 다 하얗게 세셨어."
의사는 박시준의 상태를 확인한 뒤, 박 사모님에게 말했다.
"사모님, 이건 정말 기적입니다! 분명 저번에 확인했을 때는 전혀 가망이 없었는데... 이렇게 박 대표님께서 말까지 하실 정도로 회복이 되시다니. 바로 재활 치료를 받으신다면 건강하셨던 모습으로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그 말에 박 사모님은 기쁨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박한은 그런 어머니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방안에는 의사와 이모님, 경호원이 남았고 문밖에는 아직 방에 들어오지 못한채 가만히 서있는 진아연만 남아 있었다.
박시준이 깨어난 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정말이지 무서웠다.
그는 지금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앉아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 같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었다.
"저 여자는 누구야?"
처음으로 정확하게 들린 그의 차갑고도 낮은 목소리는 그녀를 위압하는데 충분했다.
의사 역시 숨 막히는 분위기에 숨소리조차 조심스럽게 내쉬었다.
이모님은 고개를 떨구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게... 대표님이 정신을 잃고 계실 때, 어머님께서 대표님의 결혼상대로 맞아들인 새신부에요. 저분의 이름은..."
알고 싶지 않다는 듯 박시준은 차갑게 말했다.
"당장 꺼져!"
제5장
진아연은 겁에 질려 주춤 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확실히 그가 잠들어 있을 때는 전혀 몰랐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그는 마치 한 마리의 야수처럼 사나워보였다.
이모님이 방에서 나와 문을 닫았다.
겁에 질려 있는 진아연의 모습은 마치 새끼 사슴처럼 가여워 보였다.
"사모님, 걱정 마세요. 대표님께서 깨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혼란스러워 그런 걸 거예요. 그러니 오늘 밤은 손님 방에서 주무신 다음 내일 다시 이야기하시죠. 박 사모님 또한 아연 씨를 마음에 들어 하시니 분명 사모님 편이 되어 주실 거예요."
진아연은 머릿속에 폭풍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박시준이 금방 세상을 떠날 거라는 생각만 했지 그가 이렇게 깨어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모님, 제 물건이 방에 있어서요..." 진아연은 침실 쪽을 힐끗 쳐다봤고 들어가서 자신의 물건을 꺼내오고 싶어 했다.
차갑게 자신을 바라보는 박시준의 눈빛은 떠올리며, 분명 그녀를 아내로 받아들일리 없을거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언제든지 이곳을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이모님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중요한 물건이 아니라면 그냥 두셔도 돼요! 내일 제가 갖다 드릴게요."
진아연이 말했다. "네. 혹시 이모님도 무서워하시는 건 아니죠?"
이모님은 웃으면 대답했다. "오랫동안 곁에서 대표님을 모셔왔습니다. 차갑고 냉정해 보이셔도 절 곤란하게 만드신 적은 없으셨습니다."
진아연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비록 그녀는 그의 법적인 아내는 맞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가 일어난 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다. 그의 성격이라면 그녀에게 충분히 적대적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밤, 그녀는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했다.
박시준이 일어난 뒤, 그녀의 생활 패턴은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
다음날.
아침 8시, 이모님은 침실에 있던 진아연의 물건을 손님 방으로 가져왔다.
"사모님, 아침 드실 시간입니다. 대표님께서는 이미 식당에 계세요. 어서 나오세요! 대표님과 대화하시면서 서로를 알아 가셔야죠." 이모님이 말했다.
진아연은 당황해하며 말했다.
"... 그분은 절 알고 싶어 하지 않을 거예요."
이모님이 다시 말했다 "그래도 아침은 드셔야죠. 가시죠! 그리고 제가 대표님에게 말씀드렸어요. 어머님께서 사모님을 엄청 좋아하신다고요. 대표님 또한 전혀 화를 내지 않으신걸요! 아마 어제보다는 조금 나으실 거예요."
진아연은 식당에 도착하기도 전에 휠체어에 앉아있는 박시준을 보았다.
그래도 기존에 몸 관리를 잘한 덕에 직접 휠체어를 움직일 수 있는 듯했다. 휄처어를 타고 있는 그였지만 큰 키와 모델같은 몸매를 가지고 있다는것을 한눈에 알아볼수 있었다.
불안한 마음을 다잡으며 테이블에 조심스럽게 마주 앉았다.
이모님은 그녀의 자리에 수저를 놓았다.
그녀가 젓가락을 집어 들 때까지 그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흘끔 쳐다보았고 그런 그녀의 시선은 그의 주의를 돌리기에 충분했다. 그 역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그녀를 집어삼킬 듯한 끝이 안 보이는 블랙홀 같았다.
"그... 저, 저기 제 이름은 진아연이라고 해요......" 초조하게 그녀가 말했다.
박시준은 커피 잔을 들고 천천히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듣기론 네가 내 아이를 가졌다고."
진아연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고 식욕이 완전히 사라졌다.
"수술 아니면 약물. 어떤 방법이 더 마음에 들어?"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았다.
진아연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모님은 새하얗게 질린 그녀의 표정을 보더니 무례를 무릅쓰고 말했다. "대표님...! 아이는 대표님 어머님께서 원하셨습니다. 사모님은 아무런 잘못이 없으세요."
박시준은 이모님을 흘끗 쳐다봤다. "어머니로 그만 협박하지 그래."
이모님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진아연: "박시준... 씨."
박시준: "내 이름이 이렇게 아무나 부를 수 있는 거였나?"
진아연은 다시 정신 차리고 말했다. "이름을 안 부르면 뭐라고 부르죠? 뭐... 남편이라고 불러요?"
박시준: "..."
그녀는 그가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두눈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화를 내기전에 그녀가 말했다. "아직 안 했어요. 그날이에요. 못 믿겠다면 청소부 이모님에게 물어보세요. 제가 이모님에게 생리대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으니깐요."
박시준은 아무 말 없이 다시 커피 잔을 들고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진아연은 다시 허기가 져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급하게 아침을 먹고 난 뒤, 그녀는 가방을 챙겨 외출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같은 공간에 있으면 숨이 막힌다.
"진아연. 이혼할 거니깐 그런 줄 알아." 그의 목소리는 서늘하다 못해 차가웠다.
진아연은 자리에 멈춰 예상했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지금 가면 되나요?"
"아니. 이틀 안에."
사실 그의 어머니 박 부인이 어젯밤 흥분한 탓에 고혈압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하여 박시준은 이혼에 관한 일은 그의 어머니가 퇴원한 후 처리하기 위해 이틀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아, 네... 결정되시면 말씀해 주세요." 그녀는 빠르게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5분 후, 가방을 들고 방에서 나왔다.
하지만 거실에는 예상치도 못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박우진이 왔다.
박우진은 다른 날과 달리 박시준의 휠체어 옆에 정중하게 서있었다.
"삼촌, 부모님은 할머니 보러 병원에 가셨고, 아버지가 삼촌 보러 가라고 해서 한번 들렸어요." 박우진은 그가 들고 온 물건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박시준은 옆에 있던 경호원을 쳐다봤다.
그러자 경호원은 박우진이 들고 온 선물을 집어 던졌다.
박우진이 당황해하며 말했다. "삼촌! 얼마나 어렵게 구한 약인데! 시, 싫으면... 다른 걸로 바꿔올 테니깐 진정하세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경호원 한 명이 그의 무릎 한 쪽을 차더니 순식간에 그를 무릎 꿇게 만들었다.
진아연은 숨이 턱하고 막혔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박시준은 그의 조카에게 너무나도 폭력적이었다.
"내 조카 박우진, 너 내가 일어나서 실망한 건 아니고?"라고 무심하게 말하며 박시준은 담배 한개비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경호원이 허리를 숙여 바로 그에게 불을 붙여줬다.
그 작은 담배의 불꽃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어젯밤에 막 깨어난 그는 아침에 커피를 마셨을 뿐더러 지금은 담배까지 피우고 있다. 자신이 휠체어를 타고 있는 환자인데 말이다?
박우진은 강제로 무릎이 꿇려 아팠는지 겁에 질려 울먹이고 있었다.
"사, 삼촌이 일어났는데... 당연히 좋죠...! 깨어나길 얼마나 바랐으면 삼촌이 일어나는 꿈까지 꿨다고 그래요..."
"니가 감히 나한테 개긴다?"
박시준은 눈썹 한쪽을 치켜 올리며 무심하게 말했지만 그의 말에서는 살기가 느껴졌다.
"감히... 내 변호사를 돈으로 매수하려 한 걸 인정하지 않겠다?"
그는 일부러 박우진의 얼굴 쪽으로 담뱃재를 털며 말했다.
"꺼져. 다시는 내 눈앞에 얼쩡거리지 마. 내 눈에 보일 시, 그때는 네가 식물인간이 될 테니깐 말이야!"
박우진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부리나케 도망쳤다.
진아연 역시 그의 이런 모습을 본 뒤 쉽게 진정할 수 없었다.
그녀는 무서웠다.
박시준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박우진처럼 비겁한 남자가 박시준의 앞에 서니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발견하기 전에 빨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어깨에 멘 가방끈을 꽉 부여잡고 재빨리 거실에서 나갔다.
사실은 오늘, 그녀가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가는 날이다.
생리 기간이 자꾸 늦어졌고 생리량도 너무 적었다.여태껏 없었던 일이었다.
병원에 도착한 그녀는 서둘러 의사에게 상황을 말했고, 의사는 그녀에게 초음파 신청서 한 장을 건네줬다.
약 1시간이 흐른 뒤, 초음파 검사를 마치고 검사 결과를 받았다.
결과서에 따르면 그녀의 자궁에 별도의 출혈은 없었다.
출혈은 없지만 그녀의 자궁벽에 작은 아기집이 보인다고 쓰여져 있었다.
그렇다...
그녀는 임신을 한 것이다!
제6장
하지만 출혈이 있기 때문에 유산의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의사의 말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진아연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선생님, 만약에 제가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면요...?"
현재 그녀는 박시준과 이혼을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실상 아이의 문제는 다시 한번 고민해야 했다.
의사는 그녀를 한번 훑어보며 말했다. "왜 원하지 않으시죠?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지 아십니까?"
그녀는 생각에 잠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근데 남편은 왜 같이 안 왔죠?"
의사는 "아이를 원하지 않더라고 남편과 먼저 상의하세요."라는 말했다.
진아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난처해하는 그녀와 의료 기록서를 번갈아 쳐다보던 의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겨우 21살이군요! 결혼은 안 했나요?"
진아연: "결... 결혼은... 하지 않은 거나 다름없죠!" 이제 곧 이혼을 하니깐 말이다.
"낙태 수술이 그렇게 간단한게 아니에요. 아연 씨가 결정한다 해서 오늘 바로 해드릴 수도 없어요. 우선 집에 돌아가서 좀 더 고민해 봐요. 남자친구와의 지금 관계가 어떻든 아이에게는 잘못이 없어요."
의사는 그녀에게 의료 기록을 보여줬다. "지금 약간 출혈이 있는 상태여서, 만약의 경우에 잘못된다면 앞으로 아이를 살릴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려워요."
진아연은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선생님... 그럼 아이는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죠?"
의사는 다시 그녀를 쳐다봤다. "낙태하려는 거 아니었어요? 왜요? 마음이 좀 그러세요? 음, 이렇게 예쁜 엄마라면 아이도 분명 엄마를 닮아 예쁠 거예요. 우선 제가 약을 처방해 드릴 테니 일주일 정도 푹 쉬신 다음, 일주일 뒤에 다시 병원에 오세요."
......
그녀는 병원에서 나왔고 눈부신 햇살때문에 제대로 두 눈을 뜰 수도 없었다. 하지만 등 뒤로는 식은땀이 흘렀고, 발걸음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그녀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할지, 누구와 이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매우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박시준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의 경호원들이 자신을 강제로 수술대에 눕히고도 남을 것이다.
사실 그녀 역시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서 혼란스러웠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는 길가에 택시를 세우고 외삼촌 집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한 후, 어머니는 외삼촌 집으로 들어갔다.
외삼촌의 집안은 재벌만큼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꽤 부유한 편이었다.
"어머, 아연아. 혼자 온 거니?"
외숙모는 빈손으로 온 그녀를 보고 실망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아니, 저번에 아버님 집에 갈 때는 두 손 가득 비싼 선물들을 가지고 갔다던데! 뭐... 네 집이 아니라 예의도 차릴 필요가 없다 이거야."
진아연이 집에 온다 해서 잘 대접할 생각이었는데 빈손으로 온것을 보고 그럴 마음이 싹 사라졌다.
복잡한 마음으로 이곳을 찾아왔기에 진아연은 당황했다.
"아! 외숙모. 죄송해요. 그게...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다음에 올 때는 꼭 선물을 준비해서 올게요."
"됐다! 뭐 지금 아연이 네 표정을 보니 그 집에서 쫓겨난 모양이네? 박시준이 깨어났다고 듣긴 들었는데. 무슨 대접을 받았길래 그렇게 죽을 상으로 이렇게 달려온 거니?"
진아연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장희원은 수치스러워 하는 자기 딸의 모습을 보고 이내 두둔했다. "내 딸이 그 집에서 쫓겨난 거랑 너랑 무슨 상관이야?"
"어머, 장희원. 내가 틀린 말 했니? 내가 너무 정곡을 찔렀나 보네? 너야말로 지금 누구 집에 얹혀 사는지 잊었나 보구나... 그렇게 잘났으면 당장 나가든가!"
장희원은 부들부들 떨며 뭐라고 반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진아연 역시 이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더욱더 복잡해졌고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엄마가 외삼촌 집에 살면서 분명 자신보다 편하지는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나쁠지는 몰랐다.
특히나 엄마와 외숙모 사이가 이렇게 나쁜줄은 생각도 못 했다.
"엄마, 나가서 원룸에서라도 사는게 어때? 돈이라면 나한테 조금 있으니깐..." 진아연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장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30분도 채 안 돼 모녀는 외삼촌 집에서 나와 택시를 탔다.
"아연아, 돈 문제는 걱정하지 마. 돈이라면 나도 있으니깐. 내가 외삼촌 집에 계속 있었던건 건강이 좋지 않은 외할머니께서 같이 있어주라 해서 그랬던거야. 네 외할머니만 아니었다면 엄마는 진작 나왔을 거야." 장희원은 억지 미소를 지었다.
진아연은 눈을 떨구고 몇 초간 고민하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사실 외숙모 말이 맞아... 이틀 뒤에 박시준 씨와 이혼할 예정이야."
장희원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 그녀를 위로해 줬다. "그래. 잘 생각했어. 졸업도 안 했으니, 이혼한 뒤 학업에만 집중하자."
"응... 엄마. 이혼한 후에는... 아빠 집에 들어가지 않고 엄마랑 같이 살래...!" 진아연은 조심스럽게 장희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하지만 자신의 임신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말했다가 매일 같이 걱정하다 쓰러지실 수도 있으니까.
저녁이 되서야 진아연은 박시준의 집으로 돌아왔다.
넓은 거실은 쥐죽은듯이 조용했다.
"사모님, 저녁은 드셨어요? 저녁 식사를 준비해 드릴게요. 아, 그리고 부탁하셨던 생리대는 여기요." 이모님이 갑자기 나타나 진아연은 깜짝 놀랐다.
"아! 이모님. 밥은 먹었어요. 감사합니다. 근데 집이 왜 이렇게 조용하죠? 그 분... 집에 안 계시나요?" 진아연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기 전에 물었다.
"네, 대표님께서는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어요. 휴, 의사 선생님이 집에서 푹 쉬셔야 한다고 했는데도 저렇게 말을 안 들으시네요." 이모님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대표님이 은근히 고집이 있으셔서 아무도 대표님을 못 말리네요."
진아연은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짧은 만남에서 그녀에게 잊지 못할 무서운 추억을 만들어 줬으니깐 말이다.
매우 저돌적이며, 예민하고, 극악무도한 사람...
사실 그가 깨어나기 전에는 환자로서 약간의 동정심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날 밤.
역시 진아연은 쉽게 잠을 청할 수 없었다.
뱃속에 있는 아이를 생각하니 병원에 있을 때보다 자신의 아이라는 느낌이 더 크게 와닿아 슬퍼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시간은 벌써 아침이 되었다.
그녀는 일부러 박시준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침 9시 30분. 이모님이 문을 두드렸다.
"사모님, 대표님이 나가셨어요. 나오셔서 아침 드세요."
진아연은 이모님께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거 같아 얼굴이 빨개졌다.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진아연은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학교 선배의 전화였고, 그로부터 원고 번역 일을 부탁받았다.
"아연아, 네가 논문 준비로 바쁘다는 건 아는데. 이거 너한테는 정말 껌이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거! 페이가 엄청 높아. 근데 12시 전까지는 마무리해 줘야 해."
진아연은 돈이 필요했기에 더 고민할 필요도 없이 하겠다고 말했다.
오전 11시 30분.
번역이 끝나고 원고를 두 번 정도 다시 체크한 다음 선배에게 문서를 보내기 위해 노트북을 켰다.
근데 갑자기 화면이 두 번 정도 깜박였다.
그리고 화면이 파랗다가 갑자기 검게 바뀌는 것을 보는 순간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노트북이 작동을 안 하는 것이었다!
문서는 다행히 USB에 저장해놓았다.
그녀는 숨을 크게 한번 쉬고는 USB를 천천히 노트북에서 빼냈다.
그리고 집에 있는 다른 컴퓨터를 사용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모님, 제 노트북이 작동이 안 돼서요. 혹시 집에 다른 컴퓨터가 있나요? 문서 하나만 보내면 돼요."
"있죠. 하지만 대표님 컴퓨터입니다."
진아연은 그 말을 듣고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감히 박시준의 컴퓨터를 사용한다?
"문서만 보내시는 거라면 오래 걸리시진 않으시죠?"
이모님은 그녀의 불안한 얼굴을 보니 도와주고 싶었다.
"대표님께서 함부로 자신의 물건을 만지는 걸 좋아하진 않으시지만, 그래도 급한 일 먼저 처리하셔야죠. 괜찮을 거예요."
진아연은 시계를 봤다.
벌써 열한시 오십분이었다.
열두시까지 원고를 반드시 보내야 한다.
박시준의 서재는 2층에 있다.
그가 식물인간인 상태일때도 청소부 이외에는 아무도 그의 서재에 들어가지 못했다.
진아연은 박시준에게 들킬까 봐 두려웠지만 지금은 돈이 더 급했다.
그녀는 돈이 필요했다.
만약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지워야 한다면 수술비가 필요했다.
아이는 그녀 혼자서 가진 것이 아닌 어쨌든 박시준의 아이이기도 했다.
박시준은 그녀에게 수술비를 마련할 수 있도록 컴퓨터를 빌려준다면 그 역시 그가 원하던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서재에 들어간 후, 그녀는 책상에 앉아 컴퓨터의 전원을 조심스럽게 눌렀다.
만약 그가 노트북에 암호를 설정했다면 그녀는 욕심부리지 않고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컴퓨터 화면이 자동으로 켜졌다.
제7장
다행이라 해야 할지 그는 암호를 설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컴퓨터 속도도 엄청 빨랐다.
그녀는 마치 나쁜 짓을 하는 사람처럼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심호흡을 하고 USB를 그의 컴퓨터에 연결한 뒤, 소셜 계정에 로그인했다.
로그인 후, 재빨리 문서를 선배에게 발송했다.
순조롭게 일은 진행됐다.
선배 역시 12시 이전에 성공적으로 고객에게 발송했다.
불안한 마음에 그녀는 1초도 더 서재에 머물고 싶지 않았고, 재빨리 종료 버튼을 누르려다 실수로 다른 것을 클릭했다.
그리고 한 폴더가 갑자기 열렸다.
호기심이 동한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폴더의 내용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5분 후, 그녀는 서재에서 나왔다.
이모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보세요. 대표님께서는 이 시간에 안 돌아오신다니깐요."
서재에서 나온 진아연의 마음은 매우 복잡했다. 박시준의 비밀 하나를 알아버렸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의 컴퓨터를 사용하지 말 걸 하며 후회했다.
"이모님, 혹시 그의 서재에 뭐... CCTV나 뭐 그런 감시 장치가 있나요?"
"음, 서재 밖에 있기는 해요."
진아연은 온몸의 피가 '슥'하고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럼... 제가 서재에 들어간 건 아시겠네요."
"대표님께서 돌아오시면, 그때 먼저 말씀드리세요. 아마 괜찮다고 하실거예요. 10분도 안 걸렸고 문서만 보냈는데 이해하실 거예요." 이모님은 그녀를 위로했다.
'띠링-'하는 소리와 함께 휴대폰이 울렸다.
진아연은 휴대폰 메시지를 확인했다.
선배 이름으로 그녀에게 입금된 40만 원의 은행 메시지.
생각지도 못한 돈이었다. 단 2시간 만에 40만 원을 벌다니!
입금 문자는 순식간에 그녀의 두려움을 잠재워줬다.
사실 고의로 그의 컴퓨터를 사용한 것도 아니었고, 특히나 훔쳐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가 돌아오면 제발 화를 내지 말고 그녀의 말을 잘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그녀는 그와 이혼하기로 합의하였고, 이혼 후에는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것이다.
그가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든 앞으로는 그녀와 상관없는 일이다.
점심을 먹은 뒤, 진아연은 방에 돌아가 방문을 닫았다.
그리고 화장대 앞에 앉아 아직은 납작한 자신의 배를 만지며 낮게 속삭였다. "안녕, 아기야. 아직 엄마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네가 세상 밖에 나오면 엄마보다 힘든 삶을 살 수도 있는데 정말 괜찮을까..."
임신을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긴장을 너무 해서 그런 건지 화장대 위에 엎드린 채 잠이 들었다.
오후. 방 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진아연은 그 소리에 눈을 떴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녀의 방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사모님...! 혹시 대표님 컴퓨터에서 다른 걸 건드리셨나요?!" 이모님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진아연 역시 겁에 질려 목소리가 떨렸다.
"아... 그... 그가 돌아왔나요? 뭔가... 발견했나요?"
이모님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문서만 보내면 된다고 하지 않았나요? 대표님께서 방금 다른 것도 건드렸다면서 지금 서재에서 엄청 화가 나 계세요...! 사모님... 이번엔 제가 도와드릴 수 없어요...!"
진아연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 들었다. 난 이제 끝났다!
이혼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가 오늘 그녀를 죽일 수도 있으니깐 말이다.
그녀의 큰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이모님... 죄송해요. 하지만 절대 고의로 보려던 게 아니었어요. 컴퓨터 전원을 끄다가 그만 실수로... 정말 잠깐 보고는 바로 껐어요..."
이모님은 그녀의 말을 믿었지만 도울 방법이 없었다.
"대표님께서 제게도 엄청 뭐라 하셨어요. 아마... 일을 그만둬야 할 수도 있어요."
그 말을 들은 진아연은 더 패닉상태에 빠졌고, 이 와중에도 자신이 처벌을 받는 건 괜찮지만 아무 잘못 없는 이모님까지 끌어들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방에서 나와 박시준을 찾아가 해명이라도 하려던 찰나...
1층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리며 경호원들과 함께 박시준이 내렸다.
별장은 총 3층이지만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두 눈은 매섭게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고, 목은 화를 참기 위해 힘을 준 탓인지 빨개져 있었다.
화를 낼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 화를 낼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박시준 씨... 죄송해요." 불안한 마음을 꾹 참고 천천히 말했다.
"사실 오전에 제 노트북이 고장 나서 제가 잠시 컴퓨터를 사용했어요. 이모님은 아무런 잘못이 없으세요. 이모님께서는 안된다고 하셨지만 제가 마음대로 그런 거예요."
모든 잘못을 그녀가 뒤집어썼다.
경호원이 그의 휄체어를 밀어 거실로 데려왔고, 그녀는 조심스레 그를 쳐다봤다.
역시나 아직도 그는 화가 나 있었다.
진아연은 다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너... 다 봤지?" 박시준의 얼음장같이 차갑운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그를 언뜻 보면 휠체어에 두 손을 모아 편안하게 앉아있는것 같이 보였지만, 실상은 손가락 마디 뼈가 보일 정도로 손에 힘을 주며 참고 있었다.
휠체어 신세만 아니였더라면 아마도 그는 손에 힘을 주는 대신 그녀의 목을 잡았을 수도 있다.
이 여자가 증말... 왜 그런 거지!
정말 이 집안의 사모님이라 생각했던 건가?
감히 그의 서재에 들어가는 것도 모자라 함부로 만지기까지 하다니...!
제길할!
그녀는 고개를 세게 가로저었다.
"저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그냥 정말 실수로 켰다가 바로 껐어요! 일부로 사생활이나... 뭐 그런 걸 볼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박시준씨 서재라서 긴장한 나머지... 실수로 폴더를 클릭한 거..."
"닥쳐!"
그녀가 늘어놓는 변명을 들으며 그는 더욱더 분노했다.
"당장 방으로 들어가! 그리고 이혼하기 전까지 절대 그 방에서 나올 생각 마!"
진아연은 더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다.
그냥 몸을 돌려 서둘러 방으로 돌아갔다.
확실한 건... 그는 정말이지 그녀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방문이 닫힌 후, 박시준이 이모님에게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물, 음식! 아무것도 주지 마."
정말 그는 그녀를 방에 가둬서 굶어 죽게 할 작정인 건가.
이모님은 불쌍한 진아연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의 명령을 거역할수 없었다.
이곳에서는 박시준의 말이 곧 법이다.
......
이틀 후.
박시준의 어머니인 박 사모님의 혈압이 안정되어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이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박 사모님은 바로 박시준의 별장으로 왔다.
"시준아, 몸은 좀 어떠니? 의사가 뭐래? 언제쯤이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하니?" 박 사모님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박시준: "곧 회복하는데 문제없다고 했어요. 어머니, 상의 드릴게 있습니다."
박 사모님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 결혼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니? 사실 결혼은 순전히 내 욕심 때문에 진행한 거다. 아연이는 좋은 아이야. 마음에 들어... 그러고 보니 아연이는? 설마 벌써 내쫓은 거니?"
"아닙니다."
박시준은 이모님을 쳐다봤다.
이모님은 바로 진아연이 있는 손님 방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이틀 동안 물 한 방울 마시지 않은 그녀의 상태가 너무 걱정됐다.
제8장
방문이 열리자 박 사모님이 문 앞에 서서 방안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방안에는 진아연이 무릎을 두 손으로 꼭 껴안은채 고개를 숙이고 벽에 기대어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녀는 망연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문쪽으로 돌렸다.
"아, 아연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니?!"
박 사모님은 진아연의 창백한 얼굴을 보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아연아... 상태가 왜 이러니? 설마... 시준이가... 이렇게 만들었니?"
박 사모님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진아연은 며칠 전보다 많이 말라있었다.
얼굴에는 핏기가 조금도 없었고 입술은 메말라 거칠어 보였다.
오랜만의 사람의 온기가 느껴져서 그런가 가슴속부터 벅차올랐지만 소리를 낼 힘이 없었다.
이모님이 바로 따뜻한 우유 한 잔을 가지고 와서 건넸다.
"사모님... 어서 마시세요... 이제 박 사모님께서 오셨으니 다 괜찮으실 거예요. 얼른 음식을 가져다드릴게요..."
박 사모님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이게 다 무슨 일이니? 시준이가... 설마 아연이에게 밥을 주지 말라고 한 거야? 어쩐지... 아연이가 갑자기 너무 말랐다고 했어! ... 아연이를 굶겨 죽일 셈인 거야?!"
진아연의 모습은 박 사모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녀는 재빨리 거실로 나가 아들에게 말했다.
"시준아. 아연이는 내가 어렵게 데려온 네 아내야. 근데... 네가 이렇게 아연이를 괴롭히면 엄마 마음은 어떻겠니?"
"잘못을 했다면 벌을 받아야죠.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제가... 그녀를 제 집에 두지 않았을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함 그 자체였다.
"이틀 굶는 건 저 여자가 한 짓이 비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 여자는 마음대로 집안을 돌아다녔고. 선을 넘었는데 어떻게 그냥 둡니까?"
"뭐라고? 아연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박 사모님이 알고 있는 진아연은 착하고 눈치빠른 아이여서 절대 어리석은 행동으로 박시준을 화나게 만들고 그럴 사람이 아니였다.
박시준은 어머니의 말에 아무 대답 없이 가만히 있었다.
"... 시준아. 그래. 결혼도 그렇고 아이도 그렇고 낳고 싶지 않다는 거 안다... 하지만 엄마로서 그런 널 그냥 둘 수 없어... 아연이는 착한 아이야. 네가 아연이를 좋아하라는 말은 아니야. 그저 너희 둘... 명의상 부부라도 좋으니 그냥 함께 있어주면 좋겠어!"
박 사모님은 이 말을 마치며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흘렸다.
말을 하면 할수록 숨이 가빠져 왔다.
박시준은 어머니에게 변명을 하려 했지만 어머니의 상태가 다시 안 좋아진 것을 느끼고 바로 경호원에게 어머니를 부축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 시준아,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 한... 아연이를 내보낼 생각은 하지 말거라! 이혼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니야... 아니면 네가 좋아하는 여자를 내앞에 데려오든가...엄마는 네가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꼴을 두고 볼수 없어! "
박 사모님은 부축을 받고 소파에 앉았지만 점점 더 어지러워졌다.
이 말을 끝으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30초 후, 박 사모님의 고개는 천천히 한쪽으로 기울었고 끝내는 소파에 털썩하고 쓰러졌다.
오늘 아침에 퇴원한 박 사모님은 다시 급하게 병원에 실려갔다.
박시준은 어머니의 태도가 이렇게 강경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화를 낼 줄은 예상도 못 했다.
진아연과의 이혼 문제는 빨리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진아연이라서 싫은 게 아니라 다른 여자라도 똑같이 대했을 것이다.
그래서 진아연과 이혼을 하기 위해 굳이 다른 여자를 찾을 필요는 없었다.
......
방 안에서 진아연은 우유를 마신 뒤,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거실에서 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다 들었다.
박시준은 별말을 하진 않았지만 사모님은 그때문에 열받아서 쓰러지셨다.
이모님은 그녀에게 얼른 죽을 만들어 가져왔고 빗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빗겨주었다.
"사모님, 들으셨죠? 대표님께서도 사모님을 바로 내쫓으실 수는 없으실 거예요." 이모님은 그녀를 위로했다.
진아연은 이틀 동안 방 안에서 갇혀있으면서 생각들을 정리했다.
"전... 이혼할...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거칠었지만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이제는... 그가 싫다고 하더라도. 제가... 반드시 이혼할 거예요."
마음 같아서는 일분일초라도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박시준! 악마 같은 사람!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이모님은 당황해하며 "사모님, 우선 먼저 뭐라도 먹고 이야기해요. 제가 나가서 상황을 보고 올게요."
이모님이 방을 나가려던 찰나, 거실에서 경호원을 밀치고 이쪽으로 오는 박시준의 모습이 보였다.
"대, 대표님. 사모님께서 지금... 상태가 좋지 않으세요."
박시준은 평소와 같은 무표정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보는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모님이 자리를 비키자, 경호원들이 휄체어에 앉은 그를 모시고 방문어구까지 갔다.
진아연은 고개를 들어 올리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둘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불꽃이 타닥-하고 튀었다.
"좋아요! 이혼해요! 박시준씨!" 진아연은 죽 그릇을 내려놓고 자신의 캐리어를 끌고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이미 그녀는 언제든 떠날수 있도록 만단의 준비를 했었다.
"당신이 좋아하는 여자랑 결혼하세요!" 그녀는 흥분하며 말했다.
박시준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 이 태도는 지금 네가 잘못한 게 없다?"
"아니요! 있죠! 잘못한 거라고는 제가 당신 컴퓨터를 사용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거죠!"진아연은 거친 숨을 고르며 "그래서 지금 이렇게 벌받았잖아요! 그럼 된 거 아닌가요?! 이혼 합의서는 준비되어 있겠죠? 없다면 제가 당장 가서..."
갑자기 자신에게 함부로 말하는 그녀를 보고도 박시준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내가 언제 벌이 끝났다고 했지?"
진아연은 마치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내 곁에 있는 게 고통스럽다면. 그래. 계속 박 사모님 소리 듣고 살게 해주지!" 박시준은 그녀와 상의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명령조로 이야기했다. "아, 물론 이혼은 하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는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진아연은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가 이혼하자고 하면 하는 거고, 안한다면 아닌 게 되는 거야?
설마 그녀 혼자 이혼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러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면서 땅이 거꾸로 움직이는 거 같았다.
그녀는 바로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오랜만에 침대에 누워서 그런지 흥분된 감정은 편안함에 쉽게 진정되었다.
아무리 박시준이라 할지라도 지금은 자신과 이혼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의 어머니 때문에 참고 있는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녀 역시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준 사모님을 위해서라도 조금 기다려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일주일 후.
그녀의 몸이 정상적으로 회복되었다.
아침 식사 후, 혼자서 재검사를 하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어떤 강한 예감이 들었다.
그녀의 아이가... 사라졌을 거란 예감 말이다.
박시준 때문에 이틀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스트레스 역시 엄청나게 받았기 때문이다.
분명... 아이 역시 극심한 스트레스와 영양 부족으로 버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의사는 그녀에게 다시 초음파 검사를 하자고 했다.
검사를 받는 진아연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 아기는... 잘못된 거죠...?"
의사: "왜 그렇게 말씀하시죠?"
"사실... 요즘 극심한 스트레스에...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질 못 했거든요... 그래서 아기도..."
의사: "아, 이틀 정도 안 먹는다고 해서 큰 문제될건 없습니다. 사실 입덧이 심한 경우에는 한 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할 수도 있거든요."
진아연은 긴장했다. "그럼 아기는..."
의사: "축하드려요! 자궁에 아기집 두 개가 보이네요. 쌍둥이입니다."
제8장~제9장
방문이 열리자 박 사모님이 문어구에 서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방안에는 진아연이 무릎을 두 손으로 꼭 껴안은채 고개를 숙이고 벽에 기대어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녀는 망연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문쪽으로 돌렸다.
"아, 아연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니?!"
박 사모님은 진아연의 창백한 얼굴을 보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아연아... 상태가 왜 이러니? 설마... 시준이가... 이렇게 만들었니?"
박 사모님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진아연은 며칠 전보다 많이 말라있었다.
얼굴에는 핏기가 조금도 없었고 입술은 수분 부족으로 메말라 있었다.
오랜만에 사람의 온기가 느껴져서 그런지 가슴속으로부터 뭔가 벅차올랐지만 소리를 낼 힘이 없었다.
이모님이 바로 따뜻한 우유 한 잔을 가지고 와서 건넸다. "사모님... 어서 마시세요... 이제 박 사모님께서 오셨으니 다 괜찮으실 거예요. 얼른 음식을 가져다드릴게요..."
박 사모님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이게 다 무슨 일이니? 시준이가... 설마 아연이에게 밥을 주지 말라고 한 거야? 어쩐지... 아연이가 갑자기 너무 말랐다고 했어! ... 아연이를 굶겨 죽일 셈인 거야?!"
진아연의 모습은 박 사모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녀는 재빨리 거실로 나가 아들에게 말했다.
"시준아. 아연이는 내가 어렵게 데려온 네 아내야. 근데... 네가 이렇게 아연이를 괴롭히면 엄마 마음은 어떻겠니?"
"잘못을 했다면 벌을 받아야죠.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제가... 그녀를 제 집에 두지 않았을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함 그 자체였다.
"이틀 굶은건 저 여자가 한 짓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 여자가 마음대로 집안을 돌아다녔고. 선까지 넘었는데 어떻게 그냥 둡니까?"
"뭐라고? 아연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박 사모님이 알고 있는 진아연은 착하고 눈치빠른 아이여서 절대 어리석은 행동으로 박시준을 화나게 만들고 그럴 사람이 아니였다.
박시준은 어머니의 말에 아무 대답 없이 가만히 있었다.
"... 시준아. 그래. 결혼도 그렇고 아이도 그렇고 낳고 싶지 않다는 거 안다... 하지만 엄마로서 그런 널 그냥 둘 수 없어... 아연이는 착한 아이야. 네가 아연이를 좋아하라는 말은 아니야. 그저 너희 둘... 명의상 부부라도 좋으니 그냥 함께 있어주면 좋겠어!"
박 사모님은 이 말을 마치며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흘렸다.
말을 하면 할수록 숨이 가빠져 왔다.
박시준은 어머니에게 변명을 하려 했지만 어머니의 상태가 다시 안 좋아진 것을 느끼고 바로 경호원에게 어머니를 부축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 시준아,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 한... 아연이를 내보낼 생각은 하지 말거라! 이혼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니야... 아니면 네가 좋아하는 여자를 내앞에 데려오든가...엄마는 네가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꼴을 두고 볼수 없어! "
박 사모님은 부축을 받고 소파에 앉았지만 머리는 점점 더 어지러워졌다.
이 말을 끝으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30초 후, 박 사모님의 고개는 천천히 한쪽으로 기울어졌고 끝내는 소파에 털썩하고 쓰러졌다.
오늘 아침에 퇴원한 박 사모님은 다시 급하게 병원에 실려갔다.
박시준은 어머니의 태도가 이렇게 강경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화를 낼 줄은 예상도 못 했다.
진아연과의 이혼 문제는 빨리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진아연이라서 싫은 게 아니라 다른 여자라도 똑같이 대했을 것이다.
그래서 진아연과 이혼을 하기 위해 굳이 다른 여자를 찾을 필요는 없었다.
......
방 안에서 진아연은 우유를 마신 뒤,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거실에서 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다 들었다.
박시준은 별말을 하진 않았지만 사모님은 그때문에 열받아서 쓰러지셨다.
이모님은 그녀에게 얼른 죽을 만들어 가져왔고 빗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빗겨주었다.
"사모님, 들으셨죠? 대표님께서도 사모님을 바로 내쫓으실 수는 없으실 거예요."
이모님은 그녀를 위로했다.
진아연은 이틀 동안 방 안에 갇혀있으면서 생각들을 정리했다.
"전... 이혼할...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거칠었지만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이제는... 그가 싫다고 하더라도. 제가... 반드시 이혼할 거예요."
마음 같아서는 일분일초라도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박시준! 악마 같은 사람!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이모님은 당황해하며 "사모님, 우선 먼저 뭐라도 먹고 이야기해요. 제가 나가서 상황을 보고 올게요."
이모님이 방을 나가려던 찰나, 거실쪽에서 경호원과 함께 이쪽으로 오고있는 박시준의 모습이 보였다.
"대, 대표님. 사모님께서 지금... 상태가 좋지 않으세요."
박시준은 평소와 같은 무표정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보는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모님이 자리를 비키자, 경호원들이 휄체어에 앉은 그를 모시고 방문어구까지 갔다.
진아연은 고개를 들어 올리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둘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불꽃이 타닥-하고 튀었다.
"좋아요! 이혼해요! 박시준씨!"
진아연은 죽 그릇을 내려놓고 자신의 캐리어를 끌고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이미 그녀는 언제든 떠날수 있도록 만단의 준비를 했었다.
"당신이 좋아하는 여자랑 결혼하세요!"
그녀는 흥분하며 말했다.
박시준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네 이 태도는 지금 네가 잘못한 게 없다?"
"아니요! 있죠! 잘못한 거라고는 제가 당신 컴퓨터를 사용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거죠!"진아연은 거친 숨을 고르며 "그래서 지금 이렇게 벌받았잖아요! 그럼 된 거 아닌가요?! 이혼 합의서는 준비되어 있겠죠? 없다면 제가 당장 가서..."
갑자기 자신에게 함부로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박시준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내가 언제 벌이 끝났다고 했지?"
진아연은 마치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내 곁에 있는 게 고통스럽다면. 그래. 계속 박 사모님 소리 듣고 살게 해주지!"
박시준은 그녀와 상의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명령조로 이야기했다.
"아, 물론 이혼은 하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진아연은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가 이혼하자고 하면 하는 거고, 안한다면 아닌 게 되는 거야?
설마 그녀 혼자 이혼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러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면서 땅이 거꾸로 움직이는 거 같았다.
그녀는 바로 침대로 돌아가 누웠다.
오랜만에 침대에 누워서 그런지 흥분된 감정은 점차 진정이 되었다.
아무리 박시준이라 할지라도 지금은 자신과 이혼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의 어머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녀 역시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준 사모님을 위해서조금 기다려 주는것도 괜찮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일주일 후.
그녀의 몸이 정상적으로 회복되었다.
아침 식사 후, 재검사를 하기 위해 혼자 병원으로 향했다.
어떤 강한 예감이 들었다.
그녀의 아이가... 사라졌을 거란 예감 말이다.
박시준 때문에 이틀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스트레스 역시 엄청나게 받았다.
분명... 아이 역시 극심한 스트레스와 영양 부족으로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의사는 그녀에게 다시 초음파 검사를 하자고 했다.
검사를 받는 진아연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 아기는... 잘못된 거죠...?"
의사: "왜 그렇게 말씀하시죠?"
"사실... 요즘 극심한 스트레스에...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질 못 했거든요... 그래서 아기도..."
의사: "아, 이틀 정도 안 먹는다고 해서 큰 문제될건 없습니다. 사실 입덧이 심한 경우에는 한 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할 수도 있거든요."
진아연은 긴장했다. "그럼 아기는..."
의사: "축하드려요! 자궁에 아기집 두 개가 보이네요. 쌍둥이입니다."
제9장
이전 검사에서 아기집이 두 개까지 보이진 않았다.
불과 일주일 만에 다른 한 아이까지 세상에 나오고자 한다.
진아연은 초음파 사진을 들고 병원 복도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의사는 그녀에게 쌍둥이를 임신할 확률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그리고 만약 낙태를 할 경우에는 앞으로 절대 쌍둥이를 가지긴 힘들 거라 말했다.
진아연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 모든 것이 박 씨 가문 주치의의 걸작이다.
그들은 수정관 임신 시, 쌍둥이를 가질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었다.
아마도... 그들에게 있어서, 그녀는 단순히 가문의 혈통을 이어줄 도구에 불과했을 것이다.
지난주에 출혈이 있었고 그녀는 생리가 왔다고 주치의에게 말했었다. 아마 주치의는 임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박시준이 깨어난 뒤, 이혼까지 말이 나왔으니 주치의가 그녀를 찾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이제 아이의 생사는 그녀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
병원에 1시간 정도 앉아 있었고... 어느 순간, 가방 속의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자리에 일어나 병원 밖으로 천천히 걸어나가며 전화를 받았다.
"아연아...! 네 아버지가...! 어서 빨리 아버지 집으로 오렴!" 수화기 건너편의 어머니의 목소리는 많이 갈라져 있었다.
진아연은 순간 멈칫했다.
아빠가... 위독하시다고?
이렇게 갑자기?
그녀의 아버지는 회사 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시는 바람에 그녀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근데... 아버지 상태가 이렇게 심각할 줄은 전혀 몰랐다.
안 그래도 복잡해진 진아연의 마음은 더욱더 혼란스러워 졌다.
그녀와 아버지의 관계는 좋지 못했다. 다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른 아버지를 영원히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아버지가 쓰러져 많이 위중한 상태라고 하니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
아버지의 집에 도착했고, 거실은 난장판이었다.
장희원이 그녀를 데리고 침실로 들어갔다.
그녀의 아버지 진준은 침대에 누워있었다. 딸 진아연이 들어오자 그는 힘겹게 눈을 뜨며 천천히 그녀를 향해 팔을 뻗었다.
"아빠... 이렇게 아프면서 왜 병원에 안 가는 거야?" 진아연은 힘겹게 뻗어있는 아버지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 그러자 그의 두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맺혔다.
왕은지는 그녀를 바라보며 날카롭게 말했다. "말은 쉽지! 우리가 지금 병원에 입원시킬 돈이 어딨니?!"
진아연은 그런 그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 당신. 날 박 씨 집안에 팔아넘기면서 돈 많이 받았잖아? 왜 아빠를 치료하지 않는 건데?!"
왕은지는 입꼬리를 올리며 "그 돈은 빚 갚는 데 사용해야지! 네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 빚을 졌는지 아니? 진아연. 넌 내가 그 돈을 꿀꺽했다고 생각하나 본데! 네 아버지 병은 이미 가망이 없어! 그러니깐 그냥 보내드리는 게 맞아!"
왕은지는 그 말을 끝으로 침실을 나가버렸다.
그래도 여동생 진희연은 자리에 그대로 남았다.
과거가 어떻게 되었든 그녀는 진준의 피가 흐르는 친딸이었고, 아버지로서 그는 그녀를 항상 아끼고 사랑해 준 것은 사실이였다. 이렇게 아버지를 잃고 싶지 않은건 진희연도 마찬가지였다.
"아빠... 엄마 말은 너무 개의치 마세요. 치료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돈이 없어서 잠시 못하는 거니깐." 진희연 역시 침대 옆에 서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빠... 빨리 일어나야지..."
진준은 자신의 딸 진희연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하였다.
눈물을 머금은 두 눈은 진아연을 바라보며 힘겹게 입을 열어 말했다. "아연... 우리 예쁜 딸... 아빠가 미안... 하다... 네 엄마한테도... 미... 안해. 다음 생에... 다 갚으... 마..."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있던 아버지의 큰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그리고 흐느낌 소리가 온 집안을 울려퍼졌다.
진아연은 심장이 뜯겨져 나가는 듯했다.
그녀의 세계는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달라졌다.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가지게 되었으며...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분명 아직 그녀는 어린데,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아기에 불과한데, 세상은 그녀를 벼랑끝까지 몰고가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장례식 날. 하늘이 마치 그녀의 마음을 아는 듯 계속 비를 내렸다.
파산 위기의 집안이라 장례식장에 찾아오는 조문객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장례식이 끝난 뒤, 계모인 왕은지는 자신의 친구들을 불러 호텔로 가버렸다.
순식간에 조문객들은 빠져나갔다.
묘지에는 장희원과 진아연 두 사람만 남았다.
회색빛 하늘처럼 둘의 마음은 무거웠다.
"엄마. 아직도 아빠를 용서 못 하겠어?" 진아연은 씁쓸한 눈빛으로 아버지의 묘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장희원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당연히 용서 못 하지. 이렇게... 죽어도 용서 못 해."
그런 엄마를 보며 진아연은 말했다. "근데... 왜 그렇게 울어?"
장희원은 깊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사랑했으니깐 . 아연아. 사람의 감정은 매우 복잡한 거란다. 사랑도 미움이고, 미움도 사랑이란다. 참 모순적이지."
그날 저녁. 진아연은 지친 몸을 이끌고 박시준이 있는 별장으로 들어갔다.
아버지의 장례가 끝나고 날짜를 보니 3일이나 지나 있었다.
지난 3일 동안 그녀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에게 따로 연락이 오진 않았다.
그녀 역시 일부러 따로 말하지는 않았다.
박시준과 그녀의 관계는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관계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정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 별장 불이 밝게 빛나고 있었고 거실에 사람들이 많이 와있었다.
모두 고급스러운 옷차림에 한 손에는 다들 와인잔을 들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신과 너무 다른 즐거운 모습에 그녀는 잠시 주춤했다.
"사모님!" 이모님이 머뭇거리는 그녀를 보고 바로 반겼다.
며칠 사이 그녀의 표정은 너무나도 메말라있었다. 거실의 분위기와 너무나도 다른 그녀의 초췌한 모습에 이모님은 그녀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다가왔다.
"비가 와요. 어서 들어오세요!" 이모님은 그녀의 팔을 붙잡고 거실로 들어왔다.
진아연은 검은색 트렌치코트에 가냘픈 발목에는 검은색 플렛 슈즈를 신고 있었다.
그녀 역시 평소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으며 어딘가 모르게 차가워 보였다.
이모님은 그녀를 위해 분홍색 슬리퍼 한 컬레를 가져왔다.
무심코 슬리퍼로 갈아 신은 그녀는 거실을 쳐다보았다.
박시준의 손님들은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는 것처럼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눈빛은 대담하다 못해 무례했다.
진아연은 거실 중간에 있는 소파에 앉아 있는 박시준을 당당하게 쳐다봤다..
그의 손가락에는 담배 한 개비가 들려 있었고, 담배 연기 사이로 보이는 그의 차가운 얼굴 역시 연기처럼 사라질듯 위험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옆으로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여자는 긴 흑발에 몸매가 드러나는 타이트한 흰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으며, 화려한 화장이 잘 어울리는 미인이었다.
여자의 상반신은 거의 박시준에게 기대다 싶이 있었고, 그녀의 손에도 얇은 담배 한 개비가 들려있었다.
한눈에 봐도 그녀와 박시준은 특별한 관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진아연은 그 여자에게 시선이 잠깐 머물렀지만 바로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거뒀다.
"당신이 진아연?"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 아름다운 그녀는 소파에서 일어나 황홀하게 진아연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음, 사모님의 안목은 역시 다르네. 생긴 것도 나쁘진 않고. 다만... 어려. 아, 내 말은 나이가 아니라... 몸매가..."
진아연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네. 그쪽은 참 아름다우세요. 몸매도 얼굴도 저보다 다 나으세요... 그래서 언제 박시준 씨와 결혼하실 건가요?"
아무 감정 없이 내뱉은 그녀의 한 마디가 상대방을 오히려 자극했다.
"진아연! 너무 어려서 그런가? 상대를 봐가면서 덤벼야지! 내가 시준 씨랑 몇 년을 함께한 사이인지 알아? 지금 뭔가 착각하나 본데! 네가 시준 씨의 아내라고 하더라도 나한테 안돼! 지금 내가 네 뺨을 때리더라도 그는 눈 하나 깜빡 안 할걸!" 그러면서 여자는 팔을 들었다.
그때 '쨍그랑!' 하며 술병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진아연이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고급 와인 한 병을 집어 들고 테이블로 내리쳐 버린 것이다.
새빨간 액체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빨간 와인이 카펫 위로 흘러내렸다.
진아연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한 손에는 깨진 술병을 들고 그 여자에게 겨누었다.
"한대 치겠다?
그래! 해봐! 내 몸에 손대기만 해봐!
가만있지 않을 테니깐!"
그리고 술병을 들고있는 자세로 여자를 향해 조금씩 다가갔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충격에 빠져버렸다.
소문에는 소심하고 내성적이라고 했는데... 이 정도면 미친 여자가 아닌가!
박시준은 가늘게 뜬 눈으로 쳐다보며 담배 연기를 천천히 내뿜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독기가 한껏 올라와 있는 진아연의 작은 얼굴에 머물렀다.
제10장
삽시간에 조용해진 거실에는 숨소리만 들렸다.
진아연은 방으로 들어가며 문을 세게 닫았다.
'쾅!'
별장 전체가 흔들리는 듯했다.
감히 박시준이 있는 자리에서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여자는 진아연이 처음일 것이다.
모두들 긴장한 상태로 조심스럽게 박시준의 표정을 살폈고, 그의 태연한 표정을 보니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예를 들자면 그의 앞에서 감히 60데시벨 이상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방금 진아연의 행동은 최소 90데시벨을 넘고도 충분했는데 그는 평온해 보였다.
중요한 것은 방금 진아연이 깨뜨린 와인 한 병의 가격이 거의 이천만 원을 육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마실 기회를 잃었다.
그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순식간에 깨트려버렸다.
"음... 사실 어제 진 아가씨께서 부친 장례를 치렀다고 들었습니다. 검은 옷을 입으신 이유도 아마... 장례식장에서 바로 돌아오신 거 갔습니다."
긴 침묵을 깨트리고 누군가 말했다.
흰 드레스를 입은 여성의 이름은 강진. ST그룹의 홍보부장이다.
오늘은 그녀의 생일이다. 그리고 동시에 박시준의 회복을 축하하기 위해 모두들 박시준의 별장으로 와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방금 전 진아연과의 다툼으로 그녀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박시준이 지금은 차분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지만, 그녀는 그가 언제든지 자신에게 화를 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강진은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사과했다. "시준아, 미안... 진아연씨 부친상은 전혀 몰랐어."
박시준은 피다 만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껐다. 그리고 길다란 손가락으로 와인잔을 들어 한 모금을 마신 뒤, 테이블에 잔을 올려놓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생일 축하해."
강진의 귀가 빨개졌다. "고마워."
"근데... 진아연은 네가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박시준은 천천히 자신의 셔츠 깃을 가다듬고 목소리를 깔며 경고했다. "이 집 안에 있는 모든 것들. 나 말고 아무도 함부로 대할 수 없어."
강진은 많이 당황했다. "하, 하지만... 저 여자는 어차피 이혼할 사람이고. 너한테도 골칫덩어리잖아!"
박시준의 눈빛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설령 내가
이때 이모님이 와서 깨진 술병 조각들과 더러워진 버릴 사람이라 할지라도 내가 보는 앞에서 마음대로 그녀를 밟을 자격이 없어, 그게 누구든간에."
카펫을 치우려 했다.
박시준의 와인 잔에는 친구들이 따른 와인으로 이미 가득 찼다.
"알았어. 시준아... 화내지 마.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강진이가... 진아연 씨를 정말 때릴 리가 없잖아." 박시준의 반대편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수습하려 했다.
"그, 그래! 강진! 너 아직 벌주 세 잔 아직 안 마셨다? 오늘 네 생일이라고 너무 마음대로 하는 거 아니냐!"
강진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와인 잔을 들고 세 잔을 마시려 했다.
박시준은 옆에 있던 경호원을 흘끔 보았다.
경호원은 즉시 다가와 휠체어를 잡았다.
"그럼 다들 즐기다 가!" 이 말을 남긴 채, 박시준은 유유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강진은 자신에게 태도가 달라져버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충혈된 눈으로 와인 세 잔을 마시기 위해 걸어갔다.
"뭐야! 주인공도 없는데 계속 마시려고?"
"마시게 해! 강진이 속 좀 쓰릴 텐데. 항상 자기가 박 사모님이 될 거라고 생각했잖아!"
"그렇다고 오늘 이 일로 포기할 강진이 아니지! 어쨌거나 시준이 진아연과 이혼한대잖아."
"그나저나 진아연 씨, 예쁘긴 하더라. 근데 한 성격하는 거 같던데 시준이가 이혼 전까지 참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
손님방.
진아연은 무릎을 꼭 껴앉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3일 동안 참았던 모든 감정들이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
아버지가 임종 전, 힘겹게 자신에게 사과하던 그 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살아계실 때, 아버지를 미워하던 자신의 모습이 후회됐다.
그렇게 방 안에서 혼자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밤새 운 탓에 눈은 퉁퉁 부어 제대로 뜰 수 없을 지경이 되어 있었다.
샤워를 하고 깨끗한 잠옷으로 갈아입고 방에서 나왔다.
며칠 동안 입맛이 없어 제대로 먹질 않았더니 속이 약간 쓰렸다.
그녀는 식당으로 가다 박시준의 뒷모습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그때 이모님이 그녀를 발견하고 바로 인사를 건넸다. "사모님, 아침 식사하셔야죠! 어서 오세요!"
예전 같았으면 그녀는 그가 기분이 나쁠까 봐 최대한 피해 다녔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가 이혼을 미뤄야 하는 이유가 생겼으니 더 이상 죄인처럼 피해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도 그녀는 그와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았고, 이모님은 아침 식사를 그녀 앞에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젓가락을 들던 순간.
"어젯밤 그 와인. 이천만 원짜리야." 담담한 그의 목소리.
젓가락을 쥐고 있던 진아연은 심장이 덜컥하고 내려앉았다.
이, 이천만 원?
고작 와인 한 병에?
아니. 대체 어떤 와인이길래 그렇게 비싼 거지?
설마... 물어내라는 건가?
설마 그는 그녀가 물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갑자기 위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며, 온갖 생각들로 등에는 식은땀이 났고 입맛도 싹 사라졌다.
박시준은 조용히 그녀의 퉁퉁 부은 눈과 수척해진 얼굴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경고야. 내 허락 없이 그렇게 경거망동하면 그땐 가만 안 둬!"
다행히 이번에는 넘어가겠다는 그의 말을 듣자 다시 속이 괜찮아지는 기분이었다.
사실 임신 초기에 대다수의 여성들은하루 종일 누워있을 정도로 헛구역질이 심하다고 들었다.
다행히 그녀는 가끔 올라오는 메스꺼움을 제외하고는 헛구역질은 없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릇에 담긴 고기를 보니 갑자기 속이 불편해졌고, 그래서 바로 고기를 빼냈다.
"사모님, 혹시 입맛에 맞지 않으세요?" 이모님은 그녀가 고기를 빼내자 약간 긴장한 듯 물어보았다..
진아연은 고개를 저으며 "아, 저 사실 요즘 채소만 먹어요."
이모님은 그 말에 대답했다. "그러시군요! 앞으로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친 진아연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돌아갔다.
아버지 진준의 고문 변호사가 오늘 그녀에게 만나자고 했다. 정확히 무엇 때문에 만나자고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대략 예상이 갔다.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가방을 들고 방에서 나왔다.
하필이면 박시준 역시 외출 준비를 마치고 막 나가려던 참이였다.
운전사가 그를 데리러 왔다.
진아연은 시간을 한번 보았다. 열시에 변호사와 만나기로 했는데 벌써 아홉시가 다 돼갔다.
별장촌에서 빠른 걸음으로 10분 정도 걸어 나가야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어제 한바탕 가을비가 내린 뒤라 그런지 쌀쌀한 날씨였다.
갑자기 찬 바람을 맞아서 그런지 얼마 걷지도 못하고 속이 메스꺼워졌다.
은색의 벤틀리는 주차장에서 나와 출발했고, 멀지 않은 곳에서 진아연을 닮은 사람이 보이자 기사님은 약간 속도를 늦췄다.
"사모님 같은데..."
점점 가까워지자 기사는 중얼거리며 다시 속도를 줄였다.
기사는 사실 집에서 나올 때부터 그녀의 옷차림이 인상에 남아 알아본 것이다.
뒤에서 눈을 감고 있던 박시준은 기사의 말에 감긴 눈을 떴다.
"박 회장님, 사모님께서... 토하시는 거 같습니다." 운전석에 있는 기사는 그녀의 상황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진아연은 아침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헛구역질이 심하지 않아 속으로 내심 기뻐했다. 하지만 이렇게 길에서 토를 할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녀는 쓰레기통을 붙잡고 토한 다음, 집으로 돌아가 다시 세수를 할 생각이었다.
그러면서 뒤를 돌아본 순간, 박시준의 고급 세단이 보였다.
아침 햇빛에 비친 그의 차는 밝게 빛나다 못해 눈이 부셨다.
어느 순간 그녀 옆에 차를 세우더니 차창이 천천히 내려갔다.
그녀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박시준의 눈과 마주쳤다.
순식간의 그녀의 얼굴이 빨개졌다.
설마 의심하지 않을까 걱정한 것이다.
그녀는 미간을 찡그린 채, 뒷자리에 앉아있는 그를 의식하며 말했다. "아... 하하. 아침을 너무 많이 먹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