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수의 도시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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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수의 도시 생활

GoodNovel Hoàn thành

소년 여진수는 깊은 산속에서 스승님을 따라 수련을 하다 속아서 하산하게 된다. 신통한 의술, 남다른 무력으로 모든 불의에 맞서 싸우며 도시를 제패...

Chương (1)

第1章

제1장 대한민국, 북쪽의 한 깊은 숲 속. “스승님, 저 왔어요. 오늘 저녁은 토끼 고기예요.” 깊은 숲속에는 통나무집이 몇 채 있다. 열예닐곱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통통한 야생 토끼를 손에 쥔 채 울퉁불퉁한 돌무더기 위를 뛰어넘더니 통나무집 앞에 서는 것이 보였다. 소년의 이름은 여진수, 어렸을 때부터 스승님과 함께 이곳에서 지냈다. 그는 스승님을 따라 이곳에서 무예를 수련하고 약초를 채집하며 의술을 배우고 글을 익혔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여진수의 안색이 순식간에 돌변하더니 들고 있던 토끼 고기를 내팽개쳤다. 포단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노인은 고개를 푹 떨구고 있었다. 그에게서 아무런 숨결도 느껴지지 않는다. “스승님, 스승님, 어떻게 된 거예요!” 깜짝 놀란 여진수는 우선 그의 경맥을 짚어봤지만 이미 아무런 맥박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진수는 얼른 은침을 꺼내 침을 놓기 시작했다. 소용이 없었다! 이내 여진수는 자신의 두터운 진기를 넘겨주었지만 여전히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거대한 슬픔이 마음속에 차올랐다. 어렸을 때부터 스승님과 함께 의지하며 지낸 터라, 별안간 이런 악재를 마주하게 되니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때, 옆에 놓인 쪽지를 발견한 여진수는 집어 들어 살펴봤다. [여진수야, 며칠 전부터 내 끝이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지는구나. 이 몸이 죽거든,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 첫째, 내 예전에 형원 그룹의 회장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는데, 당시 나에게 5%의 지분을 주었었다. 작년에 이미 네 명의로 돌려놓았으니 하산하거든 그를 찾아가거라. 둘째, 내 그동안 ‘약왕주(藥王珠)’가 누구에게 있는지 알아냈다. 서울의 한 부상의 딸이 가지고 있는데, 이름은 윤설아, 현재 서울에서 대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다고 하더구나. 네 입학 절차는 내가 대신 마쳤으니 8일 전으로 학교에 도착하면 돼. 반드시 약왕주를 가져오거라. 약왕주가 있어야만 넌 그 관문을 넘어 약왕(藥王)이 될 수 있어. 셋째, 내가 죽거든 장례는 치르지 말고 이곳은 전부 불태우면 된다.] “스승님, 스승님의 당부를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 여진수는 스승을 향해 세 번 크게 절을 한 뒤 등을 돌려 떠났다. 불을 지르자, 통나무 집 몇 채가 전부 불에 타버렸다. 커다란 불길 속, ‘죽은’ 스승님이 별안간 두 눈을 번쩍 떴다. 손으로 얼굴을 잡아당기자 사람 가죽 가면이 찢기며 세상에 보기 드물 정도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얼굴이 드러났다. 피부마저 매끈하게 빛이 났다! 그녀의 별처럼 반짝이는 두 눈동자는 보고만 있어도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녀의 주변으로 무형의 힘이 있어, 커다란 불길은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여진수가 떠난 쪽을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에 아쉬움이 드러났다. “세상에 나아가기엔 아직 어려. 어서 성장했으면 좋겠구나. 그렇지 않으면 그 고난이 다가왔을 때, 그 누구도 벗어나지 못할 테니…” 한 시간 뒤, 여진수는 하산했다. 그는 하얗게 바랠 정도로 씻은 청바지와 티셔츠에 캔버스화를 신고 있었다. 등에 메고 있는 천 가방에는 건량과 의약품이 들어 있었다. “으흠?” 앞쪽에 척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차가 세워져 있었다. 덩치가 우람한 두 사내가 짧은 막대기를 든 채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몸길이가 2m는 되는 듯한 야수가 있었다. 그 야수는 당나귀의 머리에 늑대의 몸을 하고 있었고 눈빛은 사납기 그지없었다. 두 사내도 싸움에는 능했지만 지금은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다. 그 야수가 뿜어내는 사나운 기운만으로도 그들은 잔뜩 겁을 집어먹고 말았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바로 등 뒤에는 사장이 있었다. “젠장, 재수도 없지. 하필 이런 때에 연료 탱크가 고장이 나!” “사장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간 우린 다 끝이야!” 차 안의 남자는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어, 무슨 일이 벌어졌다간 얼마나 큰 파란이 일지 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 버티셔야 해요!” 차 안, 한여름은 조급한 얼굴로 자신의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오늘 쉬는 날이라, 할아버지와 함께 나와서 힐링이라도 좀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할아버지의 병이 발작할 줄은 전혀 예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연료 탱크에서 또 기름이 샌 데다 앞에서는 야수 한 마리가 호시탐탐 자신들을 노리고 있으니 한여름은 더없는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크르릉! 차량 밖, 거대한 야수의 포효에 한여름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내, 처참한 비명이 들려왔다. 건장한 사내 둘은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괴수의 음산한 이빨에서 섬뜩한 빛이 번뜩였다. “어떡해, 어떡하면 좋아.” 한여름은 조급함에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그렇게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별안간 차창 밖으로 검은 인영이 빠르게 스치는 것이 보였다. 이내, 야수의 처참한 비명이 들려와 한여름은 얼른 고개를 돌려 앞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녀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광경을 목도했다. 그 흉악하고 체구가 호랑이와 엇비슷한 야수가 한 소년에게 맞아 날아가 버린 것이다! 여진수는 주먹을 휘두르며 코웃음을 쳤다. “당나귀 머리 늑대라니, 드문 일이네.” 크르릉! 당나귀 머리 늑대의 입가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당나귀 머리 늑대는 몸을 낮춘 채 살기 어른 눈빛을 번뜩이며 끊임없이 위치를 바꾸었다. 당나귀 머리 늑대는 눈앞의 남자가 너무 두려웠다! 여진수가 오른발을 들어 바닥을 세게 찧자 돌 몇 개가 튀어 올랐다. 곧장 그것을 한 손에 잡은 여진수는 암기 삼아 그것을 던졌다. 쉭, 쉭, 쉭… 돌멩이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당나귀 머리 늑대는 체형이 너무 거대해 도무지 피할 수가 없었다. 돌멩이 하나하나에 실린 힘은 놀라울 정도로 커, 그것에 맞은 당나귀 머리 늑대는 고통에 연신 비명을 지르다 끝내 등을 돌려 도망갔다. 여진수는 그 건장한 사내 둘을 쳐다봤다. 몸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주변을 둘러본 그는 길가에서 망초를 따와 잘게 으깬 뒤 두 사람의 상처 부위에 펴 발랐다. 야생 데이지를 닮은 망초는, 지혈과 통증 억제에 아주 탁월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 약초였다. “고맙습니다!” “당신은 의사입니까?” 여진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의술을 조금 할 줄 알아요.” 두 사람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얼른 저희 회장님 좀 구해주세요!” “지금 차 안에 계십니다.” 그 말을 들은 여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로 다가가 차 문을 열었다. 야만인같은 여진수를 본 한여름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뭐 하려는 거야?” “제가 이 사람 구해줄게요.” 한여름은 곧바로 거절했다. “안돼. 야만인같아 보이는데 무슨 능력으로 우리 할아버지를 구하겠다는 거야? 할아버지에게 손대지 마!” 방금 전 여진수가 구해준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할아버지의 병은 벌써 몇 년이나 앓고 있었고, 국내 수많은 명의들도 두손 두발을 다 들었었다. 그런데 저런 야만인이, 무슨 능력이 있어서? 여진수가 그녀에게 설명했다. “전에 자주 스승님을 따라 의술을 행하러 다녔었어요. 실력은 괜찮은 편이에요. 아직 제 손에 치료받다 죽은 사람은 없거든요.” 한여름이 물었다. “의료자격증 있어?” 여진수는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그 말에 한여름은 버럭 화를 냈다. “없다고? 아무것도 없는 돌팔이 주제에 감히 할아버지를 치료하겠다고? 얼른 꺼져!” 여진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는 성격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숲속에서 그는 패왕 노릇을 하고 다녔다. 만약 스승님이 그에게 여자는 때리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뺨을 때리고도 남았다. 치미는 분노를 누르며 여진수는 차갑게 대꾸했다. “맘대로 해, 그럼 자기 할아버지가 죽어가는 걸 지켜보든지.” 말을 마친 여진수는 그대로 등을 돌려 떠나려 했다. “부디… 도와주게나…” 노인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한여름은 깜짝 놀라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저 사람은 야만인이에요. 할아버지를 구할 능력이 있을 리가요. 치료받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괜찮다…. 난 저 청년의 의술을 믿어… 부탁하네.” 여진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께서는 늘 사람 목숨 한 번 구해주는 게 죽은 사람을 위해 탑을 짓는 것보다 훨 높은 공덕을 쌓는 일이라고 했다. 여진수는 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한여름이 달려들어 이리저리 마구 할퀴어 댔다. “야만인 주제에, 얼른 내려!” 제2장 “썩 꺼져, 이 야만인. 타지 마, 할아버지를 건드리지도 말고!” 마구 할퀴어 대는 한여름은 잔뜩 화가 난 고양이와도 같았다. 한여름의 발악에 여진수는 짜증이 확 솟구쳤다. 구해주겠다는데 이 지x이야! 정신에 문제라도 있는 건가? 한여름의 손을 덥석 잡은 여진수는 힘을 주어 잡아당겨 그녀를 차에서 끌어 내렸다. 한여름은 있는 힘껏 발버둥 쳤다. “아아악, 이거 놔! 이 망나니가!” 짝, 짝! 여진수는 그런 한여름을 봐주지 않고 곧바로 허리를 잡아 들어 올린 뒤 세게 두 번 때렸다. 순간 흠칫한 한여름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여진수를 쳐다봤다. “너… 감히!” 여진수는 곧바로 한여름을 바닥에 내던진 뒤 사나운 말투로 위협했다. “닥쳐. 안 그러면 확, 가만 안 둘 거야! 이런 외진 곳에서 넌 절대로 도망 못 가. 야수도 내 상대가 못 되는 판에,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그 말에 한여름은 덜컥 겁을 먹었다. 여진수는 그런 한여름을 더 신경 쓰고 싶지 않아 곧장 차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노인의 맥부터 짚어 본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은침을 꺼내 소독했다. 그런 뒤 번개 같은 속도로 노인의 혈자리에 찔러넣었다. 방금전까지 숨 쉬는 것마저도 버거워하던 노인은 여진수가 침을 놓자 호흡이 점차 편안해졌다. 차 밖에서 그 광경을 목격한 두 경호원의 얼굴에 놀라운 기색이 드러났다. 회장님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두 경호원은 더 방해하지 않았다. 쳔천히 두 눈을 뜬 노인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네, 청년. 의술이 참 대단하군.” 여진수는 다시 한번 그의 맥을 짚었다. “강제로 무도의 경계를 돌파하려다 실패해 경맥에 울이 맺혀 있군요.” 노인이 두 눈을 빛냈다. “안목이 아주 좋군. 혹 무술에도 능한가?” 여진수는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스승님은 일찍이 그에게, 필요한 때가 아니면 절대로 자신의 무술 조예를 함부로 드러내지 말라고 했었다. 그랬다간 큰일이 난다고 하면서 말이다. “조금만 더 참아요. 맺혀 있는 기들을 전부 풀어줄게요. 체질이 사품 무사니까, 울만 풀리면 다른 병들도 절로 사라질 거예요.” 그 말을 듣자 노인은 동공이 확 수축하더니 호흡이 가빠졌다. “자네… 정말, 정말로 내 몸을 치료할 수 있나?” 어떻게 흥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노인도 위세가 대단한 큰 인물이었다. 하지만 요 몇 해 사이 강행 돌파하다 실패하는 바람에 그동안 쌓아온 힘들이 전부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배후의 세력도 예전과는 비할 바가 못 됐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명의를 찾아갔는지 모른다. 하지만 전부 속수무책이었다. 여진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의 상황은 그다지 심각한 축은 아니었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약왕에 도달할 수 있는 여진수의 의술로는 전혀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정말로 내 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 어떤 바램이든 다 들어주겠네.” 노인은 끓어오르는 듯했다! 최근 몇 해 동안 그는 이미 완전히 절망했었다. 일찍이 치료를 포기한 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 아들을 위해 길을 닦을 수 있기만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에게 살길이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진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돈깨나 있어 보이는 노인인데, 왜 이렇게 진중하지 못한 걸까? 별것도 아닌 걸로 호들갑은! 그는 노인의 몸에서 은침을 뽑은 뒤 소독을 하고 다시 찔러넣었다. 이번에는 전과 달랐다. 그가 시전한 것은 실전된 도세 십삼침이었다. 이 초식 한 번이면 이 세간의 모든 악재는 전부 넘겨, 죽으려고 작정해도 쉽지 않았다. 노인은 순간 숨이 헉 멎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여진수의 몸에서 그마저도 놀랄 만큼의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눈 깜짝할 사이, 열세 개의 침이 전부 놓아졌다. 따뜻한 기운이 그의 몸 구석구석에 흐르고 있었고, 손상된 경맥이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다. 창백하던 노인의 안색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쿵! 거대한 기운이 그의 몸에서 폭발했다. 깊이 잠들어 있던 늑대가 별안간 깨어난 것 같은 기운이었다. 차량 밖, 두 경호원은 다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해 하마터면 그대로 무릎을 꿇을 뻔했다. 차 안, 여진수는 노인의 기세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고작 사급 무사일 뿐이었다. 무사는 일부터 구품으로 나뉜다. 일품이 가장 낮고 구품이 가장 높으며 일품 이전에는 비무사 단계가 있다. 일부터 삼품은 하3품 무사이다. 사품부터 육품은 중품경 무사로, 사람들에게 대사라고 불린다. 칠품부터 구품은 고품계 무사로 사람들에게 종사라 불린다. 그리고 여진수는 구품을 전부 채운 무사로 종사라고 불리우는 존재였다! “다 나았어, 정말로 전부 회복했어!” 몸 안에 가득 차 있는 거대한 힘을 느낀 노인은 기쁨에 눈물을 흘렸다. 간만에 느껴지는 힘의 기운은 정말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이었다. “자네는 내 은인이야. 이 한형걸,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준 은혜에 깊은 감사를 전하네.” 말을 마친 그는 여진수를 향해 허리를 숙여 깊이 인사했다. 여진수는 담담하게 그 인사를 받았다. “전 공으로 도와준 게 아니에요.” 여진수가 말했다. “저희 의문의 규율에 따라, 가난한 자를 도와 치료하면 100원만 받아요. 하지만 부유한 자를 치료해 주었을 땐 50만 원을 받죠. 그리고 당신은 2천만 원으로 선행을 베풀어야 해요.” 한형걸은 여진수가 보상으로 수억, 수십억을 요구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정말로 요구했어도 한형걸은 줄 수 있었다. 그의 목숨은 그 정도 값보다 훨씬 비쌌다. 하지만 여진수는 고작 50만 원만 요구했고, 순간 그를 향한 호감이 배가 되는 것 같았다. 이제 보니 원칙이 있는 청년이었다! “아직 은인의 이름도 모르는군.” “여진수입니다.” “여진수, 여 은인이셨군.”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렸다. 한형걸은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이런 은인을 만나다니, 내가 전생에 아주 큰 덕을 쌓은 게 분명해!” 그 모습을 본 두 경호원은 얼이 빠졌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한여름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까지 위독하던 한형걸이었는데, 이렇게 멀쩡하다니? “할아버지, 이제 괜찮은 거예요?” 한여름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한형걸의 곁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다. 한형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상만 회복한 게 아니라 이 할애비의 무도 경계마저도 회복했다.” “정말 잘됐어요!” 한여름은 감격에 겨워 폴짝폴짝 뛰었다. 하지만 이내, 여진수를 가리키며 표독스럽게 말했다. “할아버지, 아까 저 자식이 절 괴롭혔어요. 얼른 저 대신 혼내주세요!” 그 말을 듣자 한형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무슨 그런 헛소리를. 저 청년은 우리 하씨 집안의 은인이야. 얼른 고개 숙여 사과해!” 한여름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한형걸을 쳐다봤다. “할아버지, 머리가 어떻게 된 거예요? 저 할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손녀잖아요. 제가 괴롭힘을 당했는데 제 편에 서기는커녕, 어떻게 저더러 저 야만인에게 사과를 하라고 해요?” 한형걸은 인내심있게 달래며 말했다. “여름아, 저분은 우리의 은인이야. 저 청년이 없었다면 이 할애비는 아마 오늘을 넘기지는 못했을 거야. 착하지, 말 들어. 어서 은인에게 사과해.” “싫어요!” 한여름은 두 눈을 붉혔다. “분명 괴롭힘을 당한 건 전데, 왜 제가 사과해야 해요? 제 편 안 들어줄 거예요? 그런 거라면, 절 쫓아다니는 사람에게 전화해 저 자식을 죽여버리라고 할 거예요!” 곱게 자란 아가씨인 한여름은 이런 모욕은 난생처음이었다. 지켜보던 여진수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정말 사랑만 받고 잘못 자란 아이였다. 자기중심적인 데다 그 누구도 안중에 없는 성격이었다. 한형걸은 몹시 화가 나 손을 번쩍 들어올렸지만 끝끝내 손을 대지는 못했다. 어찌 됐든 자신이 가장 아끼는 손녀라 아까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 사이 한여름은 이미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불러 널 죽여버리고 말 거야. 이 야만인!”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패왕이라 불리던 여진수는 말할 것도 없었다. 말끝마다 따라붙는 "야만인"이 여진수의 심기를 아주 제대로 건드렸다. 그는 한여름의 앞으로 한걸음 성큼 다가갔다. 제3장 짝! 손바닥이 한여름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하얗고 말랑한 볼이 곧바로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맑은소리가 메아리 치자 한형걸은 놀라 두 눈이 커다래졌다. 옆에 있던 두 경호원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한여름은 자신의 뺨을 손으로 감쌌다. 어마어마한 고통과 강렬한 수치심에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아 날카로운 비명을 질렸다. “아아아! 감히 날 때려?!” 여진수는 한여름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한형걸을 쳐다봤다. “손녀분이 안하무인에 위아래를 모르기에 대신 교육 좀 했는데, 불만 있으십니까?” 한형걸은 쓴웃음을 지었다. “감히 불만이 있을 리가. 내 이 손녀, 확실히 너무 곱게 자랐어.” “할아버지, 저 자식 죽여요. 당장 죽이라고요!” 한여름은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미칠 것만 같았다. 이 나이 먹도록, 뺨을 맞은 건 처음이었다. “다물거라!” 크게 호통을 친 한형걸은 무사의 기세를 조금 풀었다. “내가 평소에 널 너무 오냐오냐했던 것 같구나. 당장 은인께 사과하거라. 안 그럼 이제부터 너 대학 졸업할 때까지, 용돈은 한 푼도 없을 줄 알아. 모든 은행 계좌를 전부 동결시킬 테니까 가서 쓰레기나 주우면서 살아!” 한여름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한형걸을 쳐다봤다. 그녀는 단 한 번도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엄하게 혼이 난 적이 없었다. 한형걸의 낯빛은 아주 차가웠고, 말투 역시 거절할 여지도 없이 단호했다. 그녀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은행 계좌가 동결될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미! 안! 해!” 그녀는 몹시 힘겹게 여진수에게 그 몇 글자를 토해냈다. 굴욕감이 마음속에서 들끓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돌아가기만 하면 반드시 사지를 잘라버릴 거야!” 고개를 숙인 그녀의 두 눈에 더없이 짙은 원망의 기색이 담겨 있었다. 여진수가 손을 내저었다. “됐어, 너 같은 꼬맹이랑 물고 늘어졌다간 체면 깎여.” 여진수는 그대로 자리를 떠나려 했다. 투두두두- 그때, 한 헬기가 상공에 나타났다. 거대한 기류에 주위의 온갖 초목이 이리저리 흔들렸고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그중 한 경호원이 말했다. “지원이 도착했습니다.” 한형걸이 여진수를 향해 읍했다. “은인, 부디 나와 함께 하씨 가문에 함께 돌아가지 않겠나. 내 제대로 보답하겠네.” 그 말에 여진수는 조금 솔깃해졌다. “서울에 있는 곳입니까?” “맞네.” “좋아요. 그럼 이왕 가는 김에 형원 그룹 근처까지 데려다줘요.” 그는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 없어 우선은 자신의 지분을 손에 넣은 다음 약왕주를 가지고 있는 여자애에게 접근할 생각이었다. 한형걸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이리 모시겠네!” 이내, 한껏 억울한 얼굴의 한여름을 보자 한형걸은 마음이 약해졌다. “뭘 넋을 놓고 있는 것이야. 얼른 와.” 한여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다가갔다. 잠시 후, 헬기는 큰소리를 내며 떠났다. 두 경호원은 그 자리에서 견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헬기 안, 한형걸은 이따금 여진수에게 말을 건네며 그에게서 뭐라도 알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스승님에게 여러 가지로 갈고 닦인 여진수는 능구렁이가 된 지 오래라, 쓸만한 정보는 조금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한여름은 구석 자리에 앉아 휴대폰으로 연락처에 있는 한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조성준, 나랑 사귀고 싶다며? 부탁 하나면 들어주면, 사귀어 줄게.]서울, 한 화려한 별장 안. 조성준은 집안 풀장 옆에 누워있었고, 그의 옆에는 비키니 차림의 미녀 두 명이 그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조성준은 형원 그룹 조성수의 유일한 아들이었다. 타고나길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터라 서울에서는 하늘도 가릴 수 있는 존재였다. 해치고 망친 여자들은 셀 수도 없었고, 심지어 임신한 몇 명은 자살까지 하기도 해싿. 그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을 확인한 그의 얼굴에 순간 기쁨이 드러났다. “하하하, 드디어 이날이 오는구나!” 그는 오래전부터 한여름에게 구애를 했었다. 한여름의 미모와 몸매를 탐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집안이 더 마음에 들었다! 하씨 가문은 형원 그룹보다는 훨씬 강한 가문이었다. 하씨 가문 어르신인 한형걸은 한때 중급 무사이기도 했다. 제자를 몇 명 거두기도 했었고 현재는 재계, 정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아들 역시도 대단한 인물이었다. 평소에는 조성준이 한여름에게 구애를 해도 그녀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었다. 조성준은 곧장 메시지를 보냈다. [여름아, 뭐든 말해. 하늘이 두 쪽이 된다고 해도 반드시 들어줄게!] 이내, 상대에게서 답장이 돌아왔다. [웬 촌뜨기가 날 괴롭혔어. 30분쯤이면 형원 그룹으로 갈 거야. 그때 와서 팔다리를 전부 부러트려.] 조성준은 두 눈을 빛내더니 벌떡 일어나며 비키니 차림의 두 미녀에게 지시했다. “가서 내 옷 가져와!” 이내 그는 전화를 걸었다. 형원 그룹도 음지에서 용병을 육성하고 있었다. 전화 한 통에 곧바로 열몇 명의 사람이 모였다. 이내 조성준은 위풍당당하게 형원 그룹으로 향했다. 30분 뒤, 헬기는 형원 그룹 옥상에 멈췄다. 한형걸은 사전에 미리 조성수에게 언질을 주었다. 이런 사소한 일은 이참에 빚도 지울 수 있어 당연하게 들어주었다. 여진수는 줄을 잡고 미끌어지더니 이내 착륙했다. 한형걸이 소리 높이 외쳤다. “다음에 또 보세, 은인!” 한여름은 원한 서린 얼굴로 다시 조성준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시각, 조성준은 이미 사람들을 이끌고 빌딩 아래에 도착해 있었다. 문자를 받은 조성준은 곧바로 위로 올라갔다. 조성수 사무실. 조성수가 비서에게 지시했다. “옥상으로 가지.” 한형걸이 직접 호송할 인물이면 간단한 인물이 아닐 게 분명했다. 숨을 크게 들이켠 여진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여긴 공기질이 참 안 좋네.”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대문 쪽으로 향했다. 쾅! 미처 가까이 가기도 전, 누군가가 대문을 발로 박찼다. 살기등등한 건장한 체구의 남자 열몇 명이 뛰어 들어오더니 여진수를 단단히 에워쌌다. 마지막으로 걸어 들어온 조성준은 여진수를 흘깃 쳐다보더니 무시와 혐오를 드러냈다. “정말 촌뜨기였잖아. 다들 가서 저 자식 손발을 부러트려.” 여진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채 침착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당신들은 누구지? 딱히 원한을 산 적 없는 것 같은데.” 조성준은 섬뜩하게 웃었다. “너, 내 여자친구에게 밉보였으니, 그에게 맞는 대가를 치러야지!” 여진수는 단박에 한여름이 떠올랐다. 이렇게 도가 지나치게 굴 줄이야. 정말 답도 없는 여자였다. “비키는 게 좋을 거야.” 여진수가 담담하게 말했다. “함부로 사람을 다치게 하고 싶진 않거든.” 의사인 그에게 있어 부상을 치료하고 사람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자 자리에 있는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내가 잘못 들은 건가?” “감히 저런 말을 하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녀석인가 보네!” 조성준 역시 폭소를 터트리다 이내 얼굴을 굳혔다. “됐어. 어서 처리해. 여자친구 만나러 가야 하니까!” 한여름의 그 섹시한 몸매에 청순한 얼굴을 떠올리니 그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의 말을 들은 열몇 명의 건장한 남자들은 주머니에서 삼단봉을 꺼내 들었다. 하나같이 흉흉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여진수를 단단히 노려봤다. “난 기회를 줬는데 너희가 잡지 않은 거야. 나중에 내 탓하지 마.” 여진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으며, 공격을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 분노에 찬 고함이 들려왔다. "멈춰!” 제4장 비서와 함께 올라 온 조준만은 눈앞의 광경을 목격하고는 곧장 크게 외쳤다. “멈춰!” 건장한 체구의 남자 열몇 명이 움직임을 멈췄다. “아빠?” 조성준은 놀라 멍해졌다. “여긴 웬일이에요?” 조준만이 물었다. “무슨 일이냐?” 조성준은 작은 목소리로 조준만에게 일의 경과를 이야기했다. 조준만의 두 눈에 빛이 반짝이더니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대략적으로 그는 무슨 일인지 알아챘다. 아마도 여진수가 마침 한형걸을 도와줬지만 동시에 한여름의 원한을 샀고, 그래서 눈앞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정말이지 조준만은 늙은 여우가 따로 없었다. 그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런 거라면, 시작하거라.” 그때, 여진수가 별안간 입을 열었다. “당신이 조준만입니까?” 이곳은 형원 그룹의 빌딩이었고, 스승님이 그에게 남긴 유언에는 조준만에 관한 정보도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조성준이 버럭 화를 냈다. “우리 아빠 이름이 네가 감히 부를 수 있는 이름인 줄 알아? 이 촌뜨기야!” 여진수는 그런 그를 무시한 채 말했다. “역시 당신이 맞았군요. 잘됐네요. 전 당신을 만나러 온 겁니다.” “오호?” 조준만은 조금 의아했다. “산에서 내려온 사람이, 나에게는 무슨 볼일로?” “이념이 제 스승님이십니다.” 쿵! 간단한 한마디에 조준만은 심신이 크게 흔들리며 동공이 확 수축했다. “아빠, 왜 그래요?” 조성준은 깜짝 놀라 조준만의 얼굴을 살폈다. “당시에 제 스승님이 당신을 구해주었고, 당신은 스승님께 지분 5%을 주었었죠. 현재 시장가로 당신에게 팔 테니 저에게 현금을 주세요.” 조준만의 낯빛이 이리저리 바뀌더니 끝내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은인의 제자였군. 당연히 그렇게 해 줄 수 있지. 사무실로 오게, 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지.” 말을 마친 뒤, 안내하는 자세를 취했다. 조성준은 깜짝 놀라 말했다. “아빠,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설마 저 촌뜨기가 정말로 우리 회사 지분 5%를 가지고 있는 거예요?” 조준만마저도 고작 15%의 지분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도 형원 그룹의 최대 주주였다. 그런데 여진수는 오자마자 3대 주주가 되다니. 그렇다면 지위가 그보다도 높다는 것 아닌가? 조준만이 호통을 쳤다. “닥쳐!” 그런 뒤 한껏 미소 지은 얼굴로 여진수를 향해 말했다. “이쪽으로.” 여진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인 뒤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 조준만의 얼굴에서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살기가 가득 찼다. “문 닫아. 저 자식을 죽여!” “네!” 열몇 명의 건장한 체구의 남자들이 뛰어 들어가자 조성준은 철문을 닫았다, 그가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아빠, 저 자식을 죽이고 나면 그 지분 우리가 가지게 되는 거예요?” 조준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시의 계약은 저 자식이 사인을 해야만 효력이 생겨. 저 자식을 죽이고 나면 그 지분은 영원히 우리의 것이야!” 5%의 지분은 현재 시가로 따졌을 때 약 400억에 달하는 값으로 엄청난 금액이었다. 퍽, 퍽, 퍽… 안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려왔다. 서로 시선을 마주한 부자는 잔혹한 미소를 띄며 웃었다. 이내, 안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사라졌다. 조성준은 휴대폰을 든 채 다급하게 철문을 열었다. “공으로 지분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한여름까지 손에 넣을 수 있다니, 정말 일타쌍피네요.’ 콰당. 문이 열렸지만 조성준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여진수가 참혹하게 죽어 있는 모습이 아니라,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채 그의 앞에 서 있는 여진수였다. 그리고 그가 육성하던 그 수하들은 전부 바닥에 쓰러진 채 하나같이 게거품을 물고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왜, 놀랍나?” 여진수가 차갑게 말했다. 역시, 스승님의 말이 맞았다! 참으로 음험한 세상이었다! 자신의 것을 되찾으러 온 것뿐인데 계략에 당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만약 그가 무예에 능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비명횡사했을 게 분명했다. 조성준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 조준만 역시도 놀라 슬쩍 뒤로 물러섰다. 여진수는 혼자서 열 몇의 남자를 상대하고도 옷자락에는 주름 하나 없었다. 이는 여진수의 실력이 그들의 용병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당신 무사였어? 1급? 아니면 2급인가?” 조준만이 잔뜩 굳은 얼굴로 물었다. 여진수의 나이에 1급 무사만 돼도 앞으로의 미래가 창창했다. 여진수가 대답했다. “내려가서 계약서에 사인부터 하죠. 다른 볼일도 있거든요.” 그는 몹시 평온해 보였다. 여진수의 아량이 넓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조준만의 이마에 있는 검은 기운과 손등에 있는 반점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시반이었다! 그 말인즉슨 그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당시 스승님은 그를 구할 때, 만에 하나를 위해 한꺼번에 완전히 치료해 주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나중에 말을 바꿀까 봐 미리 예방을 한 것이었다. 조준만은 살짝 멈칫했다. 그는 여진수가 분노에 못 이겨 그들 부자를 불구로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상대는 몹시도 침착했다. 생각이 바뀐 조준만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절 따라오세요” 현재 두 부자의 목숨이 전부 그의 손에 달린 상황이라 감히 다른 수작은 부리지 못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조준만은 곧바로 서랍에서 파일 하나를 꺼냈다. “사인하세요.’ 여진수는 서류를 살펴봤다. 비록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쌓아둔 지식은 적지 않았다. 그것들은 다 그의 스승님 덕이었다. 서류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됐습니다. 현재 주가에 따라 가지고 게신 지분의 가치는 400억입니다. 지금 바로 입금해 드릴까요?” 몹시 겸손한 태도의 조준만에게는 평소의 날 선 기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조준만은 서울 재계에서 가히 승냥이라고 불리는 자였다. 잔인한 수완에 전부 몰살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얌전하기 그지없는 꼴이었다. 만약 남들이 이 광경을 본다면 턱이 빠지게 놀랄 게 분명했다. 여진수는 자신의 은행 카드를 꺼냈다. “여기로 입금해 주세요.” 조준만은 고개를 끄덕이며 직접 송금했다. 그런 뒤 컴퓨터 화면을 여진수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보세요, 이미 이체했습니다. 하지만 금액이 워낙 큰 탓에 아마도 12시간은 지나야 입금될 겁니다.” 그 점은 여진수도 알고 있었다. 볼일을 마친 그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준만은 조성준을 향해 눈짓했다. “은인을 배웅하거라.” 조성준은 불쾌한 심정을 꾹 누른 채 여진수에게 길을 안내했다. 그들이 떠나자 조준만의 얼굴에 드리웠던 미소가 사라지고 굶주린 늑대 같은 음험함이 들어찼다. 휴대폰을 집어 든 그는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은행 쪽인가? 방금 이체한 그 돈 문제가 좀 생겼네. 송금 좀 막아주게나.” 거액 송금은 이렇게도 할 수 있었다. 은행 쪽의 확인까지 받고 통화를 마친 조준만의 입꼬리에 냉기가 서렸다. “나에게서 돈 받기란 그리 쉽지 않아!” 이내, 그는 자신이 키우고 있던 용병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들에게 정장을 입히고 무기를 들린 채 형원 그룹에 배치했다. 조준만이 보기에 설령 여진수가 2급 무사라고 해도 그의 휘하에 있는 백여 명의 사람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감히 다시 찾아온다면, 반드시 그 목숨값을 가져가 주지!” 그리고 한편, 형원 그룹을 떠난 여진수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쳐다봤다. 그는 우선 새 옷부터 사고 그 김에 가방도 살 생각이었다. 지금 이 꼴은 너무 궁상맞아 보여 어딜 가나 사람들의 이상한 눈초리를 받게 됐다. 그리고, 막 한 옷 가게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그대로 쫓겨나고 말았다. “썩 꺼져, 꺼져. 웬 거지 녀석이!” 제5장 가게 문 앞, 한 중년의 여자가 여진수에게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멀리 꺼져버려, 남 장사하는 데 방해하지 말고!” 그녀가 보기에 너덜너덜한 옷차림에 기운 흔적이 가득한 가방을 멘 여진수는 거지나 다를 바 없었다. 여진수가 말했다. “저 거지 아니에요. 옷 사러 온 거예요. 돈도 있고요.” 중년의 여자는 팔짱을 낀 채 연신 비웃음을 흘렸다. “거지 주제에 얼마나 있다고. 천 원? 2천 원? 그걸로는 이곳에서 옷 못 사. 들어오지 마. 가게 더러워져.” 여진수는 분노를 참으며 말했다. “저 돈 있다고 했잖아요. 문 열고 장사하면서 왜 못 들어가게 하는 거예요?” 중년의 여자가 버럭 화를 냈다. “아주 작정을 했구나, 너. 안 가면 맞을 줄 알아.” 그렇게 말하며 문 옆에 있던 빗자루를 집어 들더니 사나운 얼굴로 여진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저기요, 옷 구매하시려는 거예요? 이쪽으로 오세요.” 바로 그때, 옆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열여덟, 열아홉 남짓한 여자애가 조금 겁먹은 얼굴로 여진수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몹시 청순한 외모에 청바지와 흰 티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양 갈래로 땋은 여자애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젊은 청춘의 기운이 넘쳐흘렀다. 중년의 여자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이고, 방탕하기는. 거지도 놓치지를 않네. 병원에 있는 네 아버지가 알면 화병 나 죽겠다, 얘.”’ 두 가게는 맞닿아 있지만 장사는 확연히 달랐다. 소녀가 연 가게는 퇴근 시간, 하교 시간만 되면 구매를 하려는 손님들이 미어졌지만 그녀의 가게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자 중년의 여자의 마음에는 자연스레 질투와 원망이 쌓였다. 여자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주머니, 말을 그렇게 심하게… 하지 않으면 안 돼요?” 중년의 여자가 별안간 목소리를 높였다. “눈이 삐기라도 한 거야? 누구더러 아주머니래. 나 이제 서른인 거 안 보여!” “적어도 쉰은 되어 보이는데, 뚱땡이.” 코웃음을 친 여진수는 여자의 가게 쪽으로 걸어갔다. 중년의 여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사납게 일갈했다. “개 같은 한 쌍이야, 퉤!” 바닥에 침을 퉤 뱉고 나서야 그녀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여진수의 두 눈에 시린 빛이 번뜩이더니 남몰래 손가락을 굽혔다가 한번 튕겼다. 거센 기가 빠르게 쏘아지더니 중년 여인의 한 혈 자리로 들어갔다. 그녀는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여진수는 소녀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은 크지 않았지만 종류는 나름 다양했다. “손님, 어떤 옷을 찾으세요?” 소녀는 몹시 다정했고 눈빛 역시 맑았다. 여진수의 옷차림이 낡았다고 해서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무시하는 기색이 없었다. 여진수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는 옷에 대해 딱히 따지는 것이 없었다. 그저 단정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는 한 옷걸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흰색 운동복 세트랑 저 검은색 운동복 세트요.”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키가 180 정도 되시죠? 그럼 사이즈가 XXL이겠네요. 잠시만요…” 여진수가 마음에 든다고 한 옷은 가장 위에 걸려 있었다. 그녀는 막대를 들었지만 그래도 조금 모자라 의자를 가져왔다. 하지만 제대로 서지 못한 건지 몸이 뒤로 기울기 시작했다. “꺄악!” 소녀는 비명을 질렀다. 세상이 빙글 돌자 가슴이 철렁했다. 순간,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는 따뜻한 품에 폭 안기게 됐다. 여진수는 소녀를 안은 채 물었다. “괜찮아요?” “네?!” 이번에는 정말로 크게 다칠 거라고 생각했던 소녀는 여진수가 자신을 구해 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진수에게서는 좋은 냄새와 강렬한 남자다움이 느껴졌다. 부끄러운 마음이 한없이 커지자 온 얼굴이 다 붉게 물들었고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더듬거렸다. “고마워요. 저 좀 내려줄 수 있어요?” 여진수는 조심스레 그녀를 내려주었다. “앞으로는 조심해요.” “네…” 고개를 숙인 소녀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남자와 친근하게 스킨쉽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가 할게요.” 여진수는 막대를 가져오더니 옷 두 벌을 내렸다. 소녀는 왼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탈의실은 저쪽에 있어요.” 여진수는 옷을 들고 탈의실 안으로 들어가 갈아입었다. 여진수는 몹시 길쭉한 몸매라 겉으로 보면 조금 말라 보였지만 사실은 온몸이 전부 군살 하나 없이 근육으로 가득했다. 모든 피와 살에는 깜짝 놀랄만한 힘을 품고 있어 가히 완벽이라 할 수 있었다. 만약 이런 모습을 미시들이 보게 된다면 분명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여진수는 흰색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벗은 옷들은 천 가방에 넣었다. 몸을 움직여 보자 사이즈가 딱 맞았다. 아주 평범해 보이는 운동복을 여진수가 입으니 남다른 아우라가 느껴졌다. 하얗고 깨끗한 얼굴에 머리 스타일은 깍두기 머리를 하고 있어 몹시 활기차 보였다. 옷을 갈아입으니 분위기 자체가 달라졌다. 여진수는 몹시 마음에 들어 하며 탈의실을 나섰다. 소녀는 두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정말 잘생기셨어요!” 늘 이어져 오던 수련 덕에 그의 몸매는 완벽했고 거기에 준수한 외모까지 더해지니 보기만 해도 절로 호감이 생겼다. 소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이 다시금 붉어졌다. “신발 있어요? 흰색 운동화 한 켤레도 주세요.” 여진수가 말했다. “네, 있어요.” 소녀는 꿈에서 깬 듯 정신을 차리고는 여진수에게 흰색 운동화를 찾아주었다. 여진수는 운동화를 신어봤다. 발에 딱 맞는 데다 편했고, 다 닳은 헝겊신보다 예쁘기도 했다. “총 얼마예요?” 소녀는 입으로 암산했다. “옷 한 세트 4만 원, 신발 3만 원… 다 해서 10만 원만 주세요.” “그건 안 되죠. 손해 보게 할 수는 없어요.” 여진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가게에 들어설 때부터 소녀가 입고 있는 옷이 입은 지 오래된 옷이라는 걸 눈치챘다. 게다가 양손도 보통 여자애들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게 아니라 흔적들이 가득했다. 척 보기에도 고단한 삶이 보였다. 아마, 소녀의 처지도 마냥 좋지만은 않은 듯했다. 가게 밖에 있을 때,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 터라 여진수는 더더욱 소녀에게서 편의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소녀는 고집스레 말했다. “아까 절 구해줬잖아요. 당연히 할인해 드려야죠.” 그녀는 원칙이 있는 사람으로, 곧 죽어도 여진수의 돈을 더 받지 않으려 했다. “음… 그럼 이렇게 하죠.” 여진수는 나름 절충안을 생각했다. “저 아직 밥을 못 먹었는데. 11만 원 드릴 테니까 밥 사주실래요?” 곰곰이 생각하던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하지만 변변치 못한 것들만 있어요.” 말을 마친 그녀는 혹시라도 여진수가 거절할까 긴장한 채 그를 바라봤다. 최근 몇 해 동안, 그녀에게 구애를 하는 도련님들도 적지 않았다. 그중에는 진짜로 부유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이 설렌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여진수를 보자 그녀는 남들과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진수는 웃으며 말했다. “전 산에서 내려온 사람이라, 뭐든 잘 먹어요.” “잘됐네요.” 소녀는 두 눈을 반달처럼 휘며 웃었다. 따르릉. 가게 안의 낡은 전화기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소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전화를 툭 떨어트린 그녀는 온몸에 힘이 빠진 듯 털썩 주저앉았다. 여진수가 재빨리 그녀를 부축했다. “왜 그래요?” 제6장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아빠가… 엉엉엉…” 소녀는 몹시 속상한 듯 울음을 터트리며 나가겠다고 버둥거렸다. “안 되겠어요. 병원에 다녀와야겠어요.” 여진수가 따라갔다. “제가 같이 가줄게요.” 소녀는 지금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당장 병원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가게의 문마저도 여진수가 대신 문단속을 해줬다. 이내 길가에서 두 사람은 택시를 잡아탔다. 차에 타자마자 여진수는 기사에게 크게 외쳤다. “병원으로 최대한 빨리요!” “알겠습니다!” 기사는 악셀을 세게 밟았고 차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던 소녀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바로 앞에 부딪칠 것만 같았다. 그때 여진수가 손을 뻗어 그녀를 막았다. 그렇게 막자, 그만 문제가 생겼다. 여진수는 얼른 손을 빼냈다. “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어요.”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평소였으면 분명 민망했겠지만 지금 그녀는 온 마음이 아버지에게 가 있었다. 별안간 기사가 욕설을 퍼부었다. “망할, 앞쪽이 막힌 것 같네. 교통사고가 난 것 같아요.” “어떡하죠.” 소녀는 다급함에 눈물이 다 나올 것 같았다. 여진수는 바깥을 살폈다. 차들로 세워진 길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상황을 보니 길이 뚫리려면 몇 시간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여진수는 돈을 꺼내 지불하며 말했다. “저희 여기서 내릴게요.” 말을 마친 그는 소녀를 끌고 차에서 내렸다. “저희 이제 어떡해요? 저희 아빠에게는 시간이 없어요.” 조급함에 눈물만 뚝뚝 떨구는 소녀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파왔다. 별안간 여진수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 “병원이 어느 쪽이에요? 제가 데려다줄게요.” 소녀는 깜짝 놀랐다. “그게… 병원까지 한참 멀었어요. 이거 놔줘요.” “괜찮아요. 저 체력 꽤 괜찮아요. 지금은 당신 아버지를 구하러 가는 게 급선무잖아요.” 소녀는 그 말에 감동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녀는 한 방향을 가리켰고, 이내 귓가에는 쉭쉭 하는 바람 소리만 들려왔다. 여진수가 두 다리에 힘을 주고는 별안간 튀어 나가는 속도는 들소가 질주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그는 차량 사이를 빠르게 지나갔다. 그 운전자들 눈에는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그림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가 지나가며 남은 기류에 머리카락이 다 쭈뼛 섰다. “방금 뭐가 지나간 거야?” “초인이야?” “세상에, 얼른 찍어!” … 여진수의 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소녀는 어쩔 수 없이 머리를 그의 가슴팍에 딱 붙였다. 그래야 그나마 견딜만했다. 진중하고 힘 있게 뛰는 여진수의 심장 소리를 들으니 소녀는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됐다. 여진수는 길 골목골목을 파고들었고 30분은 걸릴 거리를 10분 만에 도착했다. 소녀를 내려놓자 그녀는 곧바로 병실로 달려갔다. 병실 안에는 한 중년의 남자가 힘없이 누워있었다. 피부는 어둡기 그지없었고 두 뺨은 움푹 파인 채 몸에서는 악취가 풍기고 있었다. 죽음에 가까워져야만 나타나는 상태였다. 병실 앞에 서 있는 의사 몇 명이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신부전은 어쩔 수가 없어요.” “안타깝네요. 한 달 전에 신장을 이식받을 수 있었다면 살아나실 수 있으셨을 텐데.” 그 몇 명의 의사들 사이 유난이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서른쯤 되어 보이는 미인이었다. 정교한 얼굴에는 여튼 화장기가 보였다. 오똑한 코에 앵두 같은 입술. 품이 넓은 가운을 입고 있어도 그 안의 긍지는 언뜻 엿볼 수 있었다. 몇 명의 남자 의사들이 남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빛을 담은 채 이따금씩 그녀를 쳐다봤다. “아빠!” 안으로 뛰어 들어온 소녀는 침대 위에 누운 남자를 보자 엉엉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희 아빠 지금 어떤 상태인 거예요?” 미녀 의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장례식 절차를 알아보도록 하세요.” 그 말을 들은 소녀는 눈앞이 어두워지더니 하마터면 그대로 기절할 뻔했다. 그녀는 거세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우리 아빠 아직 이렇게 젊은데 돌아가실 리 없어요. 제발요, 저희 아빠 좀 구해주세요.” 미녀 의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희도 구해드리고 싶습니다만 적합한 신장이 없습니다. 게다가 비용도 최소 1억이에요…” 그녀는 이 소녀의 재정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설령 맞는 신장이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소녀의 얼굴이 놀랄 만치 하얗게 질렸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서로 의지하며 자랐다. 그녀의 온 세상이 전부 어두워지는 것만 같았다. 여진수도 따라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를 보자 그는 다가가 맥을 짚은 뒤 병실 안의 모두가 깜짝 놀랄만한 말을 꺼냈다. “걱정마요. 제가 당신 아버지를 구해줄게요.” 소녀의 두 눈이 순식간에 커다래졌다. “정말이에요?” 여진수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남의사가 화를 버럭 냈다. “당신 뭡니까? 여기서 헛소리하지 마세요!” 다른 남자 의사도 입을 열었다. “이미 신부전으로 신장 기능이 극에 달했어요. 그것도 두 신장 모두가요. 살리는 건 불가능이에요.” “이런 방식으로 어린 아가씨를 속이려고 하는 건가요? 정말 너무하는군요!” 미녀 의사도 미간을 찌푸렸다. 여진수를 향한 첫인상이 몹시 나빠졌다. 자신을 향한 의심에도 여진수는 담담하게 말했다. “신장이 확실히 완전히 망가지긴 했네요. 하지만 전혀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미녀 의사는 여진수가 더욱더 싫어졌다. “그럼 어디 말해보세요. 어떻게 할 생각이죠?” 해외에서 깊은 연구를 하고 온 베테랑 의사인 자신도 병세가 위급하다고 하는데 고작 열 몇 살밖에 안 된 꼬맹이가 환자를 구할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는 건 그동안 배운 의술이 전부 소용이 없다는 말 아닌가? 여진수의 시선이 소녀에게로 향했다. 그녀가 믿어줘야만 구할 수 있었다. “인체의 오장은 오행과 대응됩니다. 간은 목, 심장은 화, 비장은 토, 허파는 금, 신장은 물에 속하죠. 그리고 오행 중 금은 물을 생성합니다. 그러니 침술로 폐의 힘을 자극하면 신장을 자양할 수 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행을 활성화하여 상생하게 하여 하나의 고리로 만든다면 치료할 수 있습니다.” 여진수가 아주 간단하게 말했지만 침술로 오장의 힘을 자극하는 건, 온 대한민국에도 할 수 있는 의사가 몇 없었다. 여진수의 말을 들은 소녀의 두 눈에 희망이 나타났다. “정말요? 제발 저희 아빠 좀 구해주세요.” 미녀 의사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허튼소리. 허파는 금, 신장은 물에 속한다니. 과학적 근거가 전무하잖아요. 아가씨, 절대로 속으면 안 돼요. 딱 봐도 좋은 사람같이 안 보여요.” 다른 남자 의사들도 순진해 보이는 소녀를 보자 그녀가 속길 바라지 않는 마음에 연신 입을 열었다. “맞아요. 저 자식 이제 나이가 몇인데, 무슨 재주로 치료를 할 수 있겠어요?” “의사를 믿어야 해요. 이쪽 방면으로는 저희가 권위가 있는 편이에요.” “맞아요. 아가씨, 사람은 제대로 봐야 해요.” … 소녀는 순간 멍해졌다. 그녀는 의사의 말도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진수는 확실히 너무 어려 보였다. 고등학생 정도로밖에 안 보였다. 그리고 의술에서, 일반인은 보편적으로 나이가 많을수록, 의술이 좋다고 생각했다. 여진수는 소녀를 보며 말했다. “어차피 의사가 아버지를 구할 방도가 없다고 말했잖아요. 그렇다면 왜 제가 한 번 시도라도 해보게 하지 않는 거예요?” 잠시 생각한 소녀는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한번 시도해 보세요.” 지금 그녀도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이 병원은 온 서울에서 가장 좋은 병원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안 된다고 하니 그녀도 몹시 절망적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여진수가 늘 가지고 다니는 침을 꺼냈다. 미녀 의사가 별안간 가까이 다가오더니 여진수를 향해 외쳤다. “멈춰요!” 제7장 “멈춰요. 제 환자에게 몹쓸 짓 하지 마세요!” 미녀 의사는 드물게 화를 냈다. 두 눈빛도 몹시 날카로웠다. 다른 남자 의사들도 여진수의 행동을 보고는 그를 둘러쌌다. 여진수는 그 사람들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소녀를 쳐다봤다. “이건 당신 아버지잖아요. 살릴지 말지 당신이 결정해요.” 환자를 치료하려면 우선은 가족의 동의가 있어야 했다. “저… 구해주세요. 최악이라고 해봤자 똑같을 텐데, 선생님들도 막지 말아 주세요.” 미녀 의사는 원통하다는 듯 말했다. “아가씨, 이 자식에게 속지 마세요. 딱 봐도 좋은 사람이 아니잖아요!” “조용히 하세요!” 여진수가 별안간 크게 외쳤다. 마치 커다란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 해 병실 안의 환자와 소녀 외에 다른 사람들은 머릿속이 하얗게 질리며 두 눈에는 공포가 드리웠다. 여진수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보호자가 동의했는데, 당신들이 뭐라고 여기서 떠들고 있는 겁니까?” 말을 마친 그는 놀라 얼이 빠진 사람들은 무시한 채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은 알코올로 은침을 소독한 뒤 침을 놓기 시작했다. 도세 십삼침! 오직 이 진법에 그의 두터운 진기가 더해져야만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여진수는 진지한 얼굴로 하나하나의 혈 자리에 침을 놓았다. “저 자식은 이제 끝이야!” 미녀 의사는 이를 악물었다. “이건 살인이라고!” 자신의 전문 분야가 의심받는 기분이 들어 그녀는 몹시 화가 났다. “무슨 일이야?” 등 뒤로 나이 든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사들이 등을 돌리자 머리가 반쯤 하얗게 세고 몹시 정정해 보이는 노인이 보였다. “진 원장님!” “진 원장님, 안녕하세요!” “그게 말이죠…” 미녀 의사가 이야기의 경과에 대해 이야기했다. “터무니없는 짓을!” 진 원장은 침대 쪽을 쳐다봤다. 하지만 다음 순간, 동공이 확하고 수축했다. “이건… 헉! 도세 십삼침?!” 크게 놀란 그는 도무지 시선을 옮길 수가 없었다. 미녀 의사가 물었다. “원장님 도세 십삼침이 뭐예요?” 진 원장은 여진수에게서 시선 한 번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도세 십삼침이란 고전의학 중에서 가장 강한 침술이야. 이 침술을 시전하면 죽으려고 하는 것도 어렵지!” 자리에 있는 의사들은 소설 속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에 속으로는 전혀 믿지 않았다. 이 세상에, 그렇게 대단한 의술이 있을 리가? 그리고 그때, 여진수는 마지막 침을 놓았다. 13개의 침이 작게 떨리며 하나의 닫힌 고리가 되었다. 환자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기계에서 띠띠띠하는 경보음이 울렸다. 미녀 의사가 대경실색해서 말했다. “환자가 죽었어. 이건 살인이야!” 여진수는 호통을 치며 말했다. “닥쳐, 이 가슴만 크고 머리는 빈 멍청이가.” 병실 안으로 들어온 뒤부터 이 여자는 끊임없이 조잘조잘 대는 게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미녀 의사의 안색이 서슬 퍼레졌다 다시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난생처음 면전에 대고 이런 욕을 들었다! 막 다시 입을 열어 반박하려는데, 곧이어 그녀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여진수가 놓았던 침들을 하나하나 뽑아내는 게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은침을 뽑은 순간, 그들이 포기했던 환자가 두 눈을 떴다. 비록 아직도 병색이 짙긴 했지만 얼굴에 무려 붉은 생기가 돌았다. 그리고 다시 심전도를 보니 천천히 안전선까지 상승하는 게 보였다. “아빠, 어때요?” 얼른 가까이 다가간 소녀는 기쁨에 눈물을 흘렸다. “한숨 자고 나니, 많이 좋아진 것 같구나.” “엉엉엉, 정말 잘 됐어요, 아빠.” 소녀는 기쁨에 겨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럴 리가!” 미녀 의사는 연신 뒤로 뒷걸음질 쳤다. 눈앞의 광경은 그녀의 상식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다른 남자 의사들도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었다. 진 원장은 얼른 다가가 여진수를 향해 예의를 차리며 물었다. “안녕하십니까. 전 이 병원의 병원장 진광휘입니다. 혹시, 누구에게서 의술을 배우셨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그 광경을 보자 병실 안에 있던 의사들은 또 한 번 머리가 띵해졋다. 진 원장은 의술이 고명하고 덕망이 높아 평소에는 사회적 지위가 아주 높은 사람들도 그를 만나면 겸손을 보였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눈앞에는 진 원장이 꼬맹이에게 공손하게 굴며 존댓말까지 하는 것이 보였다. “죄송하지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여진수의 스승님은 일찍이 그에게 뭐가 됐든 절대로 그의 신분을 드러내면 안 된다고 경고했었다. 여진수는 스승님이 젊었을 때 사람들에게 원한을 많이 산 게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사실 오해였다. 그의 스승님이 신분을 드러내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당시에 구해줬던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중에는 권력자도 적지 않았다. 만약 여진수의 신분이 드러난다면, 그는 수련할 필요도 없이 곧바로 그 권력자들에게 떠받들어질 게 뻔했다. 그건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진광휘는 조금 실망했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은 채 명함을 건넸다. “의술이 아주 고명하던데, 나중에 함께 교류할 기회가 있을까요?” 여진수는 노인의 태도가 꽤 괜찮은 것을 보자 거절하지 않고 명함을 받았다. “그쪽 사람이 꽤 괜찮아 보이네요. 다만 휘하의 의사들은 안 되겠어요. 교양이 너무 없어요.” 그 말을 여진수는 미녀 의사를 보며 말했다. 그녀는 화가 치밀었지만 도무지 반박할 수가 없었다. 확실히 그녀의 문제가 맞긴 했다. 진광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청아가 성격이 좀 극단적이긴 하죠.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이진수도 여자를 잡고 물고 늘어질 생각은 없었다. “이분 퇴원 수속 도와주세요.” 뭐라고 말을 하려던 문청아는 진광휘의 눈빛에 입을 다물었지만 속은 몹시 언짢았다. 저 행동은 그들이 무능하다고 하는 것이지 않은가. 사실 여진수가 고려한 것은 소녀의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이었다. 계속해서 입원한다면 분명 비용이 많이 들 게 뻔했다. 게다가 그녀의 아버지는 이제 생명의 위험이 없어 집에서 한동안 몸조리만 잘하면 그만이었다. 진광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 일은 청아가 가서 처리하거라.” 뾰로통한 문청아는 속에서 짜증이 잔뜩 일었다. 하지만 감히 진광휘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어 나가기 전 여진수를 세게 노려보고 나서야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나갔다. 30분 뒤, 퇴원 수속이 전부 끝났다. 세 사람은 함께 병원을 나섰다. 떠나는 길에 두 부녀는 여진수에게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그는 한 생명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한 가정과 한 젊은 소녀의 미래도 구한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여진수는 소녀의 이름도 알게 되었다. 류미연,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류근수였다. 두 부녀를 집까지 바래다준 뒤, 여진수가 떠나려는데 류미연이 얼굴을 붉히며 그를 불렀다. “오빠, 시간도 늦었는데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가는 게 어때? 온 김에 밥도 먹고 가.” 류근수도 맞장구를 쳤다. “그래, 내 은인이기도 한데 이렇게 보내면 평생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 두 부녀의 거듭된 만류 끝에 여진수는 이 집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류근수는 여전히 몸이 허약해 돌아간 뒤 곧장 안방으로 가 누웠고 류미연은 몹시 기뻐하며 시장에 장 보러 나갔다. 그녀에게 있어 오늘은 십몇 년 이래 가장 기쁜 날이었다. 떠나기 전, 류미연은 여진수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다. 요즘 너무 바빴던 탓에 거실이 너무 더러워 도무지 앉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방에 여진수를 앉힌 뒤에야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나갔다. 여진수는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다 그의 두 눈에 흰색의… 제8장 덤벙거리는 성격인지 류미연은 자신의 속옷을 치우는 걸 깜빡한 듯했다. 헛기침을 하고 시선을 옮긴 여진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약왕경>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찍이 반년 전에 9급 무사의 정점에 달한 천재일우의 무도 천재였다. 그의 스승님 말에 따르면서 9급 무사 위로는 완전히 새로운 천지가 열린다고 했다. 다만 이 반년 동안 여진수는 아무리 수련을 해도 도무지 발전이 없었다. 한 시간 뒤, 돌아온 류미연은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향긋한 냄새가 났다. 여진수가 수련을 멈추고 주방으로 들어가자 열심히 음식을 하고 있는 류미연이 보였다. 정말로 훈훈하기 그지없는 풍경이었다. 류미연은 어질고 귀여운 여자임이 틀림없었다. 다른 여자애들은 저 나이에 아직도 공부를 하고 있을 텐데, 그녀는 벌써부터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다. “오빠, 왜 나왔어. 주방에 연기가 많아. 조금 있다가 와.” 여진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너 이제 학교는 안 다니는 거야?” 류미연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서울대학에 붙었어. 하지만…”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여진수는 속으로 400억이 입금되면 그중의 일부로 류미연의 학비를 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좋은 여자애가 학교를 다니지 못한다는 건 너무 아까웠다. 류근수는 이제 막 병이 낫기 시작한 테라 너무 기름진 건 먹을 수 없어 류미연은 그에게 죽을 끓여주었다. 식탁 위, 류미연은 맥주 두 캔을 따 각자 나눠 마셨다. “오빠, 내가 한잔 올릴게. 우리 아빠를 구해줘서 고마워.” 말을 마친 그녀는 맥주를 들더니 곧바로 들이켰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것을 보면 그다지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듯했다. 여진수가 미처 말리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절반을 마셨다. 배부른지 트림을 한 그녀는 얼굴이 붉게 물들어 보고 있으면 깨물어 주고 싶었다. “술 잘 못하면 마시지 마.” “괜찮아, 오늘 기분이 좋아서 그래.” 류미연은 여진수에게 음식을 집어줬다. “굴 좀 먹어 봐.” 류미연은 한 상 가득 맛있는 음식을 했다. 가짓수도 풍부한 데다 맛도 좋았다. 여진수는 음식을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맛있네. 너랑 결혼하는 사람은 분명 엄청 운이 좋은 사람일 거야.” 조금 눈이 풀린 류미연은 그 말을 듣자 부끄러워하며 여진수를 향해 작게 말했다. “오빠… 여자친구 있어?” 여진수는 고개를 저었다. “없어.” 그 대답에 류미연은 속으로 몹시 기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술에 취해 쓰러졌다. 여진수는 그녀를 몇 번 불렀지만 반응이 없자 그녀를 안방으로 안고 들어갔다. 지금의 류미연은 언제든지 쉽게 잡아 먹힐 수 있는 모습이었다. 붉은 얼굴에 꾹 감은 두 눈의 속눈썹은 살짝 떨리고 있었고 하얀 피부는 젤리같아 먹음직해 보였다. 여진수의 마음에 파동이 일며 피가 빠르게 도는 것만 같았다. 천천히 류미연을 내려놓은 그는 이불까지 잘 덮어준 뒤 방에서 나왔다. 비록 그는 혈기 왕성한 나이였지만 그래도 잠든 틈을 타는 짓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거실에서 한숨 잤다. 아침 6시, 그는 시간 맞춰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한 첫 번째 일은 바로 자신의 구형 핸드폰을 켜 입금이 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아직도 안 들어왔다고?” 여진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제 오후 한 시에 송금한 거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가방에서 칫솔 치약을 꺼내 간단하게 세수를 마친 그는 류근수에게 다시 침을 놔주었다. 이번에는 도세 십삼침이 아니었다. 그저 몸조리를 위한 일반 침술이었다. “고마워, 은인.” 류근수는 감격에 겨워하며 말했다. 그는 확연하게 어제보다 상태가 좋아진 게 느껴졌다. 여진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고맙긴요. 의술을 행하고 병을 치료하는 건 제 천직이에요.” 류근수는 여진수가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아빠, 진수 오빠.” 문을 열고 들어간 류미연은 어색하게 그들을 불렀다. 조금 민망한 얼굴의 그녀는 여진수를 쳐다보지 못했다. 어젯밤에 취했는데 깨어나 보니 침대에 있었다. 여진수가 방까지 데려다준 게 분명해 보였다. 어젯밤에 혹시… 그렇게 생각하자 그녀는 점점 더 민망해졌다. 하지만 싫은 감정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류근수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딸아, 일어났냐. 얼른 식사 준비부터 하거라.” “알겠어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녀가 보기에도 류근수의 상태는 많이 회복한 것 같아 보였다. 얼굴에도 생기가 많아졌다. 그것을 보자 류미연은 여진수를 향한 감사의 마음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친 뒤, 여진수는 류미연에게 음식으로 몸조리하는 처방을 적어주었다. “여기에 적힌 대로 일주일을 먹으면 완전히 완치될 거야.” 말을 마친 그가 입을 열었다. “그럼 난 갈게.” 류미연은 심장이 저릿해졌다. “진수 오빠, 어디로 가려는 거야?” “서울 대학에 가려고.” 여진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 아버지는 이제 별문제 없으니까, 공부하러 가도 돼. 학비라면 내가 먼저 빌려줄게. 나중에 돈이 생기거든 그때 천천히 갚아.” 그는 직접 준다고 하지 않았다. 눈앞의 소녀는 유약해 보이긴 해도 자존심은 강한 편이었다. 류미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 줘?” 여진수는 농담하며 말했다. “속여 먹어서 아내 삼으려고.” 류미연의 얼굴이 또다시 붉어지더니 개미만 한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뭐라고?” 소리가 너무 작아 여진수는 제대로 듣지 못했다. “아, 아니야…” 류미연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러는 걸로 하고. 휴대폰 줘 봐.” 류미연은 얼른 여진수에게 휴대폰을 줬다. 그런 뒤 여진수는 떠났다. 떠나는 여진수의 뒷모습을 본 류미연은 못내 아쉬웠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여진수는 서울 대학으로 가는 노선을 찾았다. 오늘 길에 차가 유난히 많은지 툭하면 길이 막혔다. 여진수는 길을 등친 채 버스 노선을 쳐다봤다. 쉭! 화려한 스포츠카 한 대가 빠르게 지나치더니 별안간 악셀을 밟았다. 타이어가 지면과 마찰하며 귀를 찌르는 소리가 울렸다. 차 창문이 내려가고, 한 남자가 담배를 피며 말했다. “오늘 정말 시끌벅적하네. 다 우리 할아버지 생신 축하하러 가는 사람들이겠지.” 노선을 보고 있던 여진수가 눈썹을 까딱했다. 그는 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챘다. 바로 조성준이었다. 운전석에서 매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이번에 어르신을 위해 뭘 준비했어요?” 조성준은 하하 웃으며 말했다. “있잖아, 어제 어떤 멍청이가 지분 5%를 우리 아빠한테 팔았거든. 400억짜리를 말이야. 근데 어제 송금하고 나서는 은행에 전화해서 취소해 버렸어. 그러니까 어제 공으로 400억을 번 거지. 일단 골동품점에 가서 구경부터 하지. 이번엔 할아버지가 좋아할 만한 몇십억짜리 골동품을 살 생각이야!” 여진수는 음산하게 굳은 얼굴로 등을 돌렸지만, 그 스포츠카는 이미 멀어진 뒤였다. 스포츠카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여진수의 낯빛이 몹시 차가워졌다. “좋아, 감히 나도 속여? 정말 죽고 싶은 가 보군!” 구형 핸드폰을 꺼낸 그는 한형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조성준의 할아버지의 생신 연회가 어디서 열리는지 알아야 했다. 주소를 묻고 통화를 마친 여진수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그리고 한편, 휴대폰을 내려놓은 한형걸은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 “은인이 조장훈의 생신 연회에 간다고? 그럼 나도 가 봐야겠군!” 제9장 오늘의 조씨 가문 전원은 여느 때보다도 시끌벅적했다. 서울의 각 업계의 권력자가 전부 모였고 밖에는 고급 외제 차가 가득 세워져 있었다. 오늘은 조씨 가문 조장훈의 팔순 잔치 날이었다. 조장훈도 나름 전설의 인물로 3급 무사이며 휘하에 다양한 산업을 거느리고 있었다. 형원 그룹 외에, 열 개가 넘는 유흥 업소를 운영하고 있어 인맥이 몹시 넓었다. 서울에서 조씨 가문은 최상위권 재벌이었다. “대흥 부동산에서 백옥 비취 한 쌍을 선물했습니다.” “믿음 골동상이 불주 하나를 선물했습니다.” “진가 전당포에서 옥 여의 한 쌍을 선물했습니다.” … 문 앞에서 지사가 끊임없이 각 가문에서 보내온 선물을 외쳤다. 부리는 것 중 아무거나 하나 골라도 천 단위는 물론 억 단위도 올라갔다. 여진수가 도착했다. 손에는 검은색 비닐봉지를 든 채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나타나자 곧바로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오늘같이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는 모두 화려하게 차려입고 나타나기 마련인데 오직 그만이 운동복 차림이라 확실히 이질적이었다.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무시한 채 여진수는 곧장 대문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이내 가로막혔다. 정장 차림에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경호원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십니까?” “조장훈을 축하하러 왔다. 비켜.” 여진수가 기를 전부 내보이자, 경호원은 순간 얼어붙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여진수는 이미 그의 곁을 지나치고 있었다. 집사의 앞으로 간 그는 들고 있던 봉투를 무심하게 넘겼다. “손님께서 축의금을 선물했습니다.” 돈봉투인 줄 알고 얼결에 외치던 집사의 손에서 봉투가 열리더니, 동전 모양으로 오린 종잇다발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뭐? 시비 거는 거야?” 그 시각 여진수는 이미 안채로 들어섰다. 가장 안쪽에는 서울 각 업계의 헤드 급 인물들이 앉아있었다. 조장훈은 여든이었지만 겉보기에는 몹시 정정해 보였다. 두 눈에 언뜻 비치는 안광은 그를 조금도 얕잡아 보지 못하게 했다. 시끌벅적하던 분위기는 바깥에서 누군가가 지전을 선물했다는 말이 들리자 곧바로 얼어붙었다. 조장훈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조준만은 아예 테이블을 내리치며 버럭 화를 냈다. “누가 감히 오늘 같은 날에 이런 재수 없는 것을 선물해!” “나다!” 안으로 들어간 여진수는 형형한 눈빛으로 조준만을 쳐다봤다. “감히 겁도 없이, 나를 속여?” “네 자식이었구나!” 조준만은 코웃음을 쳤다. “여긴 네가 올 만한 곳이 아니야. 지금 당장 아버지께 머리를 조아리며 9번 절을 올린 뒤 썩 꺼져!” 여진수는 뒷짐을 쥔 채 섰다. “네가 뭔데? 조건은 딱 두 가지다. 첫째는 400억을 당장 내게 입금하는 것, 둘째는 너희 조씨 가문 위아래 모두가 나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는 것이야.” 여진수는 이 정도 벌은 약과라고 생각했다. 만약 스승님이 유언에 일을 처리할 땐 절대로 무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시간 낭비 따윈 하지 않고 곧바로 조씨 가문을 없앨 수도 있었다. “하하하하!” 그의 말이 끝나자 아내에 있던 빈객들이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대체 어디서 온 자식이야, 웃겨 죽겠네.”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까?” “어디서 굴러 온지도 모를 녀석이 조씨 가문 사람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를 하라고 한다고?” “죽으려고 작정했군.” … 조성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망할 자식, 감히 이 조씨 집안에게 사기를 치려는 건 네가 처음이구나. 죽고 싶은 모양이군!” 여진수는 웃음이 났다. “사기? 정말로 뻔뻔하군. 옛날에 내 스승님께서 조준만을 구해주었을 때, 보답으로 너희는 5%의 지분을 내어주었지. 그리고 어제, 난 그 지분을 너희에게 팔았지만, 너희는 그 자금을 가로채 갔지. 정말 부끄러움도 모르는 자식 같으니!” 여진수도 속으로 반성했다. 이건 그의 사회적 경험이 부족했기에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 “허튼소리!” 조성준은 대노했다. “우리 조씨 일가는 청렴결백하게 살아왔는데, 감히 모함을 하다니. 여기, 이 자식을 끌어내!” “잠깐.” 조장훈은 여진수를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꼬맹아, 오늘은 내 잔칫날이라 안 좋게 일을 키우고 싶진 않구나. 이러는 건 어떠냐? 2천만 원을 줄 테니 받고 떠나거라.” 조성준은 곧바로 그 말에 따라 품에서 수표를 꺼내 2천만을 슥슥 적은 뒤 여진수의 앞으로 다가갔다. “너 같은 사람 많이 봤어. 다 돈이 필요해서 그러는 거잖아, 받아. 2천만 원이면 한참은 쓸 수 있을 거야.” 손안의 수표를 여진수의 앞까지 들어 올린 그는 이내 손을 놓아 바닥에 떨어트렸다. 조성준은 한껏 비아냥대며 말했다. “수표 주워서 얼른 썩 꺼져, 야만인아.” 안채에 폭소가 터져 나왔고, 각 업계의 거물들도 비아냥대는 얼굴로 구경난 듯 여진수를 쳐다봤다. 여진수는 바닥에 떨어진 수표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말했다. “길은 네가 직접 선택한 거다. 이 자리에서 선포하도록 하지. 앞으로 조씨 가문은 없다.” 그 말이 나오자 또다시 사람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하나같이 바보를 보는 듯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조씨 가문을 없앤다니? 조씨 가문은 현재 전성기에 달하고 있는 세력이 방대한 가문이었다. 고작 꼬맹이 혼자서 조씨 가문을 없앤다는 건, 하늘의 달을 따오겠다는 말만큼이나 우스운 말이었다. 조장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꼬맹아, 우리 조씨 가문은 선을 베푸는 가문으로 돈도 주었는데 뭘 원하는 거냐? 사람이 너무 욕심이 많아서는 안 돼. 쉽게 다쳐.” 말속에는 협박이 가득했다. 여진수는 쓸데없는 논쟁은 하고 싶지 않아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은 나와 조씨 가문의 개인적인 원한이니 다치기 싫으면 지금 떠나는 게 좋을 겁니다.” “어딜 감히!” 얼굴에 뒤룩뒤룩 살이 붙은 중년의 남자가 일어서더니 여진수를 향해 호통을 쳤다. “너 이 자식,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감히 우리를 협박하다니!” 글래머한 몸매의 미시도 비웃음을 띈 채 말했다. “조씨 가문 어르신은 인자하셔서 너를 다치게 하기 싫으신 것 같으니, 이런 사소한 일은 내가 나서도록 하지.” 권력자들은 모두 자신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조씨 가문이 자신에게 인정을 빚지게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니 그 누구도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내, 그들의 경호원을 불렀고, 족히 백이 넘는 사람이 모였다. 하나같이 근육이 빵빵하고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조성준이 그때 가식적인 말투로 말했다. “비록 네가 우리 집안에 사기를 치려했지만, 우리 집안 사람들은 다 마음씨가 착하니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 얼른 돈을 가지고 떠나거라. 그러면 이 일은 이대로 마무리하마.” 짝! 여진수는 그대로 손을 들어 뺨을 때렸다. “거 참 말 많네, 멍청이가.” 그가 살짝 힘을 주자 조성준의 몸이 그대로 허공에서 360도 회전을 하더니 쿵 하고 세게 바닥에 떨어졌다. 한쪽 얼굴이 커다랗게 부어올랐고 눈을 뒤집더니 그대로 기절했다. 이 한방에 여진수는 남몰래 힘을 더했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며칠이 지나 발현되기만 하면 7급 이상의 무사가 나서지 않는 한 죽음을 면치 못했다. 그 공격에 안채는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조준만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이 개자식이, 감히 내 아들을 때려? 다들 뭘 멍하니 있어. 당장 저 자식을 죽여!’ 말을 마친 그는 곧바로 기절한 조성준에게로 달려갔다. 명령을 받은 여러 경호원들은 들고 있던 쇠 파이프를 여진수의 머리를 향해 거세게 휘둘렀다. 여진수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보아하니 오늘은 크게 피를 봐야 할 것 같았다. 거대한 진기가 체내에서 연신 요동쳤다. 폭발한다면 모두가 놀랄 게 분명했다. “그만!” 바로 그때, 밖에서 커다란 고함이 들려왔다! 제10장 긴장감으로 팽팽할 때, 한형걸이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순간, 현장에 있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형걸에게서 거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경호원들은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못했다. “한 노선생님!” 조장훈은 기쁨을 금치 못하며 얼른 가까이 다가갔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더욱이 조준만은 미친 듯이 기뻐하며 말했다. “한 노선생님, 저희 아버지의 팔순 잔치에 참석하러 오신 겁니까?” 자리에 있던 빈객들은 그 말에 부러움과 질투 어린 눈빛으로 조장훈을 쳐다봤다. 한형걸이 무려 직접 여든 잔치에 참석하러 오다니, 얼마나 체면이 사는 일인가! 만약 조씨 가문을 한 마리의 뱀에 비유한다면 한형걸은 가히 거대한 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조씨 가문을 찍어 누르는 것쯤은 손가락 까딱하는 정도의 일이었다. 조장훈이 내민 양손에 한형걸은 마주 잡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차갑게 굳은 얼굴로 꾸짖었다. “자네가 뭐라고, 나와 악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미소를 띄고 있던 조장훈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여러 빈객들도 수군대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한형걸은 안색이 어두워진 조장훈은 무시한 채 여진수의 앞으로 다가와 깊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은공을 뵙겠습니다.” 쿵! 고요한 수면에 커다란 돌덩이가 던져진 듯, 한차례의 파동이 일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시선들이 여진수를 향했다. 도대체 어떤 녀석이기에 한 노선생이 허리를 숙이게 한단 말인가? 여진수는 조금 의아해하며 물었다. “여긴 어쩐 일입니까?” 한형걸이 웃으며 말했다. “은공께서 이곳에 온다기에,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걱정되어서 왔습니다. 그런데…” 등을 돌린 그는 조장훈을 보며 사정없이 꾸짖었다. “자네 가문은 참 겁이 없군. 이 한형걸의 은인도 모욕하다니!” 조씨 가문 일가는 크게 놀라 어쩔 줄 몰라 했다. 싸구려 차림의 소년이 무려 거물 같은 한형걸과 관계가 있을 줄이라고는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에 질투를 금치 못했다. 그들은 여진수가 분명 어쩌다 운 좋게 한형걸을 구해줬고, 한형걸이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장훈의 안색이 쉴 새 없이 바뀌었다. 그래도 능구렁이답게 이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이고, 한 노선생님의 은인이셨군요. 그럼 다 같은 식구지요. 한 집안사람끼리 서로 못 알아봤군요. 이 자리에서 제가 동생에게 사과를 하지요.” “늦었다.” 여진수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멸문당할 준비나 하지 그래.” 말을 마친 그는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오늘 밤 12시, 홀로 찾아올 테니,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기다려.” 오늘은 이미 8일이라 우선은 서울 대학에 가서 보고부터 하고 조씨 가문을 해결할 생각이었다. 홀로 온다고 말했던 것은 조씨 가문이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한 말이었다. 한형걸이 놀라 물었다. “은공, 정말로 제가 나서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말을 마친 그는 거대한 기세를 뿜어냈다. 그것은 4급 무사의 강렬한 위엄이었다! 순간, 안채의 모든 빈객이 두려움에 덜덜 떨며 놀란 얼굴을 했다. “한 노선생이 힘을 회복한 건가?” “흠, 한씨 가문은 이제 다시 일어서겠군!” “예전보다 훨씬 젊어진 것 같군!” … 반면에 조씨 가문 사람들은 하나같이 안색이 어두웠다. 무도의 힘을 잃었을 때도 그는 여전히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이 이제는 힘까지 회복했으니 손짓만으로도 조씨 가문을 몰락시킬 수 있었다. 여진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됐습니다. 보잘것없는 일가를 상대하는 일쯤은 혼자면 충분합니다.” 여진수는 원체 인정을 빚지는 걸 싫어했다. 여진수의 말을 들은 한형걸은 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은인이 이렇게 말을 한 걸 보면 그럴 능력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는 소매를 한번 턴 그는 조장훈을 흘깃 쳐다봤다. “주제를 알길 바라네!” 그런 뒤 여진수의 뒤를 따랐고, 그렇게 두 사람은 사람들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그제야 한시름을 놓은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생각에 빠졌다. 한형걸이 아무리 끼어들지 않는다고 말했어도, 조씨 가문은 한형걸에게 밉보인 게 분명했다. 안색이 흙빛인 조성준이 조장훈을 보며 말했다. “할아버지, 저희 이제 어떡해요?” 정신을 차린 조장훈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 자식 말 못 들었냐? 오늘 밤에 혼자 온다지 않더냐. 허세도 대단하지. 우리 조 씨 가문은 비록 강한 편은 아니지만 혼자서 상대할 수 있는 곳은 아니지. 자, 가서 키우던 용병들을 전부 불러 와. 오늘 제대로 본때를 보여줘야겠군!” 그는 차가운 냉기를 번뜩이며 머리를 굴렸다. 오늘 밤 여진수를 붙잡아야 했다. 감히 죽이지는 못하겠지만 한형걸에게 여진수를 풀어주겠다고 연락할 수는 있었다. 그렇게 되다면 양측의 관계를 조금은 회복할 수 있었다. 빈객들도 잇따라 떠나자, 떠들썩하던 연회 분위기가 순식간에 냉랭해졌다. 조준만은 직접 배치를 시작했다. 그는 여진수의 실력이 마냥 약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바깥, 여진수를 쫓아간 한형걸이 입을 열었다. “은공, 어디로 가십니까?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여진수는 손을 내저었다. “은공 말고 여진수라고 불러주시면 돼요. 먼저 가보세요, 전 학교에 가봐야해서요.” 한형걸은 두 눈을 반짝였다. “그럼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제가 사는 곳과 얼마 멀지도 않습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여진수는 더는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크게 기뻐한 한형걸은 기사더러 내리라고 한 뒤 직접 운전하여 여진수를 학교까지 데려다주었다. 이렇게까지 저자세로 나오는 것은 어제 자신의 한 오랜 친우에게 물어봤더니, 여진수의 의술은 세상에 둘도 없는 기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인물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앞으로 얻을 이득은 셀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몹시 저자세로 나왔다. 여진수도 그런 그의 속내를 뻔히 알고 있었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한 시간 뒤, 서울 대학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여진수는 방금 전 길가에서 산 새 가방을 메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 그의 차림은 나름 평범해 불필요한 문제는 없었다. 한형걸은 따라 들어가지 않았다. 그의 신분에 따라 들어갔다간 여진수에게 괜한 문제가 생길지도 몰랐다. 서울 대학은 몹시 컸고, 젊고 발랄한 여대생들이 곳곳에 보였다. 공기 중에도 젊음의 냄새가 풍기어 저도 모르게 긴장이 풀렸다. 여진수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고하는 곳을 찾았고, 이내 학생증을 비롯한 서류들을 받았다. 숙소는 귀찮을 것 같아 따로 신청하지는 않았다. 물건을 챙긴 여진수는 곧장 밖으로 나갔다. 이제, 윤설아라는 여자를 찾아야 했다. 오고가는 학생들을 보다 여진수는 안경 낀 남학생을 붙잡았다. “안녕하세요, 혹시 윤설아가 몇 반인지 알아요?” 그 학생은 헤헤 웃으며 남자끼리 다 안다는 듯한 표정을 했다. “지금 연습실에서 연습 중이에요. 사람 엄청 몰렸어요.” 여진수는 감사 인사를 한 뒤 연습실 위치를 물어보고는 곧장 달려갔다. 현재 가장 큰 목표는 바로 약왕주를 얻는 것이었다. 약왕주를 얻는다면 그의 의술은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약왕은 벌써 수백 년 동안 자취를 감춘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연습실 문 앞에 도착했지만,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가장 선두에는 체구가 우람한 소년이었는데 눈빛이 몹시 사나웠다. “꺼져, 주제에 설아가 연습하는 걸 보겠다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감히 따지지 못했다. 눈앞의 소년은 대단한 신분이라 그들이 건드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사람들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간 여진수는 곧장 대문으로 향했다. 체구가 우람한 그 소년은 성격이 불같아, 여진수의 행동을 보자마자 곧바로 주먹을 휘둘렀다. “내 말이 말 같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