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Đang tải thông tin quảng bá...

처음부터 너였어, 우리 재혼해

GoodNovel Hoàn thành
집착권력남의순정오해/착각

남하준은 중동 전쟁에서 혈투를 벌여 적을 물리친 영웅이자 온 국민이 사랑하는 국방 장군이다. 한편 그녀는 미천한 신분에 악명이 자자한 나쁜 여자...

Chương (1)

第1章

제1화 M국, 변경. 서다인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친오빠라는 자가 도박 빚을 갚기 위해 그녀를 2천만 원에 팔아버렸다! 이 암담한 사기 센터에는 전화 사기, 인신매매, 장기매매, 구타와 학대가 매일 발생하고 있다. 이곳은 사람을 풀 베듯 함부로 죽이는 곳이다. 서다인은 수려한 미모를 지녀 범죄자들에게 강제로 이끌려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다. 그녀는 죽을지언정 필사적으로 반항하여 혹독하게 두들겨 맞아 옷이 갈기갈기 찢어졌고 몸에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서다인은 고통과 두려움에 휩싸여 절망의 끝자락에 놓였을 때 문득 남편 남하준이 떠올랐다. “제발 저 건드리지 마세요. 우리 남편더러 돈 보내오라고 할게요... 얼마든지 다 드릴 수 있어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그녀는 울먹이며 애원했다. 이건 최후의 몸부림이나 다름없다. 금전 갈취는 그들의 업무 중 하나이다. 앞장선 김호영이 화색을 띠며 서다인을 두들겨 패는 부하들을 멈춰 세우고 재빨리 그녀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네 남편에게 40억 가져오라고 전해! 10원 한 장이라도 모자라기만 해봐. 그땐 여기 있는 우리 애들을 네가 전부 먹여 살려야 할 거야. 몸을 팔아서 손님들 돈을 벌어와야 한다고, 알아들었어?” 서다인은 온몸에 소름이 쫙 돋고 겁에 질려 눈동자가 흔들렸다. 짝사랑한 지 3년, 혼인 신고한 지 1개월이 지났지만 단 하루도 함께 지내지 않은 그녀의 남편이 진짜 40억을 내놓으며 그녀를 구할까? “알았어요.” 서다인은 무기력하게 대답한 후 남하준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건 마지막 동아줄이다. 그녀의 생사가 걸린 마지막 전화 한 통이다. 전화가 연결되자 수화기 너머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그 순간 서다인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것처럼 눈앞이 캄캄하고 마음이 텅 비었다. 그녀는 아픈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나 초조하게 말했다. “저는 남하준 씨 아내 서다인이에요. 실례지만 남하준 씨 바꿔줄 수 있나요?” 전화기 너머로 여자가 담담하게 말했다. “오빠 지금 낮잠 자고 있어요. 용건 있으면 저한테 말하세요.” 서다인은 씁쓸한 마음을 추슬렀다. “지금 당장 휴대폰 하준 씨한테 넘겨요.” 여자는 못 들은 척하며 화제를 돌리고 버럭 화냈다. “서다인, 네가 오빠랑 결혼했다고 정정당당한 아내가 된 줄 아나 본데, 넌 그저 오빠네 할머니를 이용해서 강제로 오빠랑 결혼한 거야. 네가 오빠를 강요했다고! 알아들어? 하준 오빠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야, 넌 우리 사이에 끼어든 제삼자이고. 이런 비겁하고 파렴치하고 더러운 걸레 같은 년, 오빠는 널 거들떠보지도 않아. 젊은 나이에 과부로 살아 그냥!” 서다인은 사색이 되었다. 심장은 칼에 베인 듯 피가 뚝뚝 떨어지고 은은한 고통이 밀려왔다. 이때 휴대폰 너머로 남하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린아, 누구 전화야?” “사기 전화예요.” 여자가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장내에 있던 남자들은 야유에 찬 웃음을 날렸다. “네 남편 밖에 여자 있네. 네 생사는 안중에도 없을 거야. 돈 가져와서 널 구할 리는 더더욱 없고.” 남하준에겐 일찌감치 가슴 깊이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구나. 서다인이 3년 동안 짝사랑한 건 일방적인 과대망상이었다! 할머니는 남하준이 그녀를 좋아하기에 결혼한 거라고 거짓말을 하셨다. 일편단심이었던 그녀의 진심이 정작 남의 감정을 파괴한 제삼자로 전락하다니. 서다인은 천천히 눈을 감고 맑은 눈물이 두 볼을 타고 창백한 얼굴에 흘러내렸다. 가슴의 상처는 육체적인 고통보다 몇백 배는 더 아팠다. 이때 부하가 바짝 긴장하며 말했다. “형님, 이 여자가 방금 언급한 남편 이름이 혹시... M국 군전 그룹의 수장 남하준 씨인가요?” M국에서 남하준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한때 중동 전쟁이 가장 치열할 때 그는 부대를 이끌고 침입자의 시신을 가로지르며 포탄에 맞아 집까지 잃은 가여운 백성들을 구했다. 제2화 국가의 안위를 위해 침략자를 몰아내며 피로 물든 전쟁을 이어가면서도 두려운 기색은 추호도 없었다. 남하준은 중동 내부전쟁에 참가한 군사의 왕이고 위기에 처한 이 나라를 구한 영웅이며 가장 참혹한 전쟁에서 포위를 뚫은 신과 같은 존재인데 눈앞에 있는 연약한 여자가 그의 아내라니, 이건 당최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김호영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부하를 타일렀다. “걱정들 붙들어 매. 남하준이 어떤 사람이야? 권력이 하늘을 찌르고 단지 이름 석 자만으로도 사람을 간담이 서늘해지게 하는데 그런 사람의 아내를 누가 감히 팔겠어? 내가 알기로 남하준은 아직 미혼이야. 아마 동명이인일 거야. 이년 남편한테 계속 연락해서 40억 갖고 오라고 해!” 남자들은 계속 남하준에게 연락했다. 서다인은 마음이 재가 되어 구석에 털썩 주저앉아 절망감에 휩싸인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귀가 쩌렁쩌렁 울리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콰당!” 대지가 흔들릴 정도의 폭격 소리였다. 서다인은 화들짝 놀라며 두 눈을 떴다. 방에서 한창 카드놀이를 하며 서다인의 몸값을 기다리던 남자들이 식겁하여 넋을 놓았다. 밖에 있던 부하들도 공포에 휩싸여 큰소리로 외쳤다. “보스, 큰일 났어요. 우리 대문이 폭발해버렸어요.” “폭발?” 김호영은 겁에 질렸다. “누구 짓이야?” “그게... 군전 그룹 사람들이에요. 어마어마한 군부대가 거침없이 쳐들어와 우리 센터를 포위해버렸어요.” 부하는 상공을 가리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전투기 헬리콥터도 두 대 더 있어요...” “필레 전쟁에 참여한 군전 그룹을 말하는 거야? 우린 이젠 뒈졌어!” 이때 김호영이 가녀린 체구의 서다인을 잡아당기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윽박질렀다. “네 남편이 정말 군전 그룹 수장 남하준이야?” 서다인은 무기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호영은 순간 미친 듯이 후회가 밀려왔다. 그는 서다인에게 총을 겨눈 채 밖으로 나갔다. 사기 센터 밖에는 수십 대의 무장 차량이 이곳을 가지런히 에워쌌다. 수백 명의 건장한 무장 병사가 강렬한 포스로 빽빽이 둘러쌌다. 각자 손에 최신형 무기를 들고 검은색 야전복 차림으로 질서정연하게 제자리에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상공에는 전투기 두 대가 선회하고 있으며 저격수는 AK를 들고 헬리콥터 안에서 목표 인물을 조준하고 있었다. 이토록 웅장하고 장대한 광경에 일부 사람들은 식겁하여 바로 무기를 내려놓고 투항했다. 그들은 두 손 들어 머리를 안고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감히 꿈쩍하지 못했다. 김호영은 서다인을 인질로 붙잡고 포효했다. “날 놓아주면 이 여자도 살려둘 거야.” 이때 가까운 곳에 있던 차량 뒷문이 열리고 카리스마 넘치는 남자가 덤덤하게 내려왔다. 준수한 외모에 훤칠한 체격, 몸에 꼭 맞는 검은색 군복은 늠름한 기품을 더 돋보였고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내뿜었다. 그는 온몸에 한없이 차갑고 막강한 포스를 내뿜어 사람들을 간담이 서늘해지게 했다. 눈앞의 남자를 본 서다인은 두 눈이 반짝거리고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진짜 남하준이었다! 남하준은 싸늘한 눈길로 차갑게 쏘아붙였다. “다인이 내려놔.” 그의 목소리를 들은 김호영은 두려움에 휩싸여 사색이 된 채 몸을 벌벌 떨었다. “도련님, 저는 진짜 이분이 도련님 부인인 줄 몰랐습니다. 저를 살려주신다면 지금 당장 풀어드리겠습니다.” 남하준의 짙은 두 눈에 섬뜩한 기운이 가득 차올랐다. 그의 시선은 단 한순간도 서다인을 향한 적이 없다. 그는 서서히 총을 들어 김호영을 조준한 후 섬뜩하리만큼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이 여자가 죽으면 너도 함께 매장해버린다. 탄알이 일곱 발 있으니 널 아작내기엔 충분해.” 제3화 김호영은 겁에 질려 몸을 벌벌 떨며 끝까지 협박했다. “그럼 도련님 아내분과 함께 죽을 겁니다.” 남하준은 살인에 늘 단호한 법이다. 그 누구에게도 협박당해보지 못한 그였기에 두 눈에 살기가 스쳤다! 별안간 일곱 발의 탄알이 폭발하는 소리가 서다인의 고막을 울렸다. 그녀는 몸을 움찔거리더니 온몸에 피가 굳은 듯 제자리에 경직되어서 두 눈만 질끈 감고 있었다. 잔인한 참살이 이뤄지고 선홍빛 핏물이 창백한 그녀의 얼굴에 튀었다. 이 순간 그녀가 남하준의 아내란 신분은 단지 우스갯소리에 불과했다. 이토록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니! 남하준이 구한 건 그녀가 아니라 사기 센터에 갇힌 수천 명의 피해자였으니 실수로 그녀를 죽여도 전혀 괜찮겠지?! 서다인은 한없이 연약한 몸으로 이런 충격을 견디지 못해 비통한 슬픔에 젖은 채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 군전 그룹 본사. M국 최대 규모의 무기 생산 기지이자 삼엄한 경계를 이룬 국영 병기 공장. “안돼...” 악몽에서 놀라 깬 서다인은 땀에 흠뻑 젖어서 두 눈을 부릅떴다.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의식이 흐트러진 채 사방을 둘러보다가 침대 맡에 서 있는 여자에게 시선이 멈췄다. 의학의 힘을 빌린 정교한 이목구비는 마치 인형 같았고 요염함 속에 은은한 청순함이 돋보였다. 여자의 손에 쥔 쟁반에는 온수 한 잔과 전복죽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 “깼어? 오빠가 먹을 것 좀 가져다주라길래.” 백하린이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고마워요.” 서다인은 친절하게 고마움을 표하고는 나른한 몸을 이끌고 겨우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그녀는 종일 물 한 방울도 안 마셔서 지금 허기지고 온몸에 기운이 쫙 빠졌다. 백하린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나더러 네게 음식을 갖다 주라고 하긴 했지. 근데 아쉽게도 네가 대접받을 급은 아니잖아.”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백하린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수중의 음식을 바닥에 내던지고 본인도 잇따라 주저앉았다. 물건이 깨지는 요란한 소리가 문밖까지 울려 퍼졌다. 백하린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놀란 듯이 외쳤다. “으악!” 서다인은 어안이 벙벙하여 꿈쩍하지도 못했다. 바짝 긴장해있던 그때 방문이 열리고 남하준이 성큼성큼 들어왔다. 바닥에 주저앉은 백하린을 본 순간 그는 안색이 돌변하고 두 눈이 싸늘해졌다. 그의 뒤엔 부하 류청이 서 있었다. 남하준은 백하린의 옆으로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 “괜찮아?” 백하린은 고개를 숙이고 속상한 표정을 지으며 온갖 가여운 척을 다 해댔다. “다 하린이의 잘못이에요. 다인 언니가 안 먹겠다고 하는데 제가 한사코 음식 좀 먹으라고 권유하다가 결국 언니 심기를 건드렸네요. 음식도 낭비하고 바닥도 어지럽혔어요.” “여긴 나한테 맡기고 넌 일단 돌아가서 쉬어.” 남하준이 다정하게 말했다. 백하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떠나기 전에 그의 손을 꼭 잡으며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 “하준 오빠 절대 언니 탓하면 안 돼요. 다 내 잘못이에요.” 남하준은 알겠다며 머리를 끄덕였다. 서다인은 그녀의 구차한 연기를 본 순간 역겨워 토 나올 지경이었다. 백하린이 나간 후에야 방 안이 조용해졌다. 남하준의 강렬한 카리스마가 방 전체를 차갑게 뒤덮었다. 서다인은 숨 막히는 압박감에 긴장하면서도 조심스러워졌다. 반듯한 자세로 서 있는 남하준은 위엄이 차 넘쳤다. 그는 담담하고 소외감이 느껴지는 눈길로 서다인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왜 화냈어?” 백하린을 깊이 사랑하는 그가 어찌 그녀의 자작극을 믿을 수 있겠는가! “화 안 냈어요.” 서다인이 너무 속상한 나머지 목소리까지 작아졌다. 남하준은 차가운 눈길로 그녀를 노려보며 정색했다. “한 번만 더 하린이한테 함부로 대하면 그땐 절대 가만 안 둬.” 남자의 편애하는 말투가 딱딱한 채찍이 되어 그녀의 몸을 여러 번 후려쳤다. 살이 찢기는 그 따가운 고통에 서다인은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남하준에게 속상한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마음을 추스른 후 그녀는 머리를 숙인 채 나지막이 말했다. “남하준 씨, 저는 그쪽이 할머니한테 강요당해서 저랑 결혼한 줄을 전혀 몰랐어요. 할머니는 하준 씨가 저를 좋아한다고 하셨고 저도 하준 씨가 평생을 맡길 만큼 우수한 남자라고 생각돼서 혼인신고 하기로 한 거예요. 다만 인제 보니 제 생각이 그릇됐나 봅니다.” 서다인은 서러운 마음을 부여잡고 애써 담담한 척하며 계속 말을 이었다. “남하준 씨는 좋아하는 여자가 있고 오늘 또 저한테 총까지 겨눴죠. 실수로 저를 죽일지 전혀 걱정하지 않고요. 이런 결혼생활은 더 이상 이어갈 필요가 없겠네요.” 제4화 남하준이 한없이 차가운 눈길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그 순간 뼈가 시릴 정도로 한기가 감돌았다. 남하준은 진중하면서도 냉담한 말투로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뜻이지?” 서다인은 굳건한 표정으로 그를 빤히 쳐다봤다. “우리 이혼해요.” 그녀는 이 남자를 3년 동안 짝사랑하며 바라는 건 단 하나, 순수한 결혼생활뿐이었다. 이젠 이 혼인 관계가 더는 순수하지 않으니 그녀도 굳이 타협하며 눈 감고 살아갈 필요가 없다. 남하준은 서늘한 눈빛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뒤에 서 있던 비서실장 류청이 언짢은 말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름, 서다인, 나이 25세, M국 안성시 출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가정폭력 성향이 있고 어머니와 오빠는 도박에 빠져 빚이 산더미입니다.” 서다인은 놀란 눈길로 류청을 쳐다봤다. 류청은 거리낌 없이 계속 말을 보탰다. “서다인 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중퇴하고 인터넷으로 만난 남자에게 사기를 당하여 유흥업소에서 몇 년 동안 아가씨로 몸담아왔습니다. 20살 때 해외에 있는 80세 노인에게 시집갔는데 2년도 안 돼 과부가 되었고 재산은 한 푼 상속받지 못했습니다.” “다인 씨는 기껏해야 초등학교 학력이고 이 몇 년 동안 아무런 성과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인간관계가 문란하고 복잡하며 성매매로 두 번 잡히고 성형을 15번 했습니다. 성병 치료 세 번에 알려진 남자친구만 32명입니다. 최대 5명까지 동시에 사귀었고 원나잇 상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3년 전에 M국으로 돌아와 일부러 어르신을 가까이하며 환심을 사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죠. 그러다 결국 재벌가인 남씨 일가에 시집와서 도련님의 아내로 거듭났습니다.” 서다인은 자신의 과거를 듣고 있자니 등골이 오싹해서 식은땀이 나고 머리가 곤두섰다. 화려한 과거사에 그녀도 실로 놀라울 따름이었다. 류청은 서다인의 신상정보와 과거의 흑역사를 적나라하게 캐내며 야유 조로 말했다. “서다인 씨 같은 사람이 도련님의 아내로 사는 건 하늘이 내린 축복이나 다름없는데 대체 무슨 염치로 이혼을 논하는 겁니까?” 옷이 발가벗겨진 것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난 수치심에 서다인은 주먹을 꽉 쥐고 손톱이 살을 파고 들어가 은은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 시각 남하준은 더없이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와의 결혼은 마치 할머니의 소원을 이룬 것일 뿐 그 외의 어떠한 가치도 없어 보였다. 서다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속절없이 해명했다. “남하준 씨, 저는 3년 전에 기억 상실해서 더럽고 문란한 과거에 대해 얼추 듣긴 했지만 현재로선 진짜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요. 저도 제가 왜 그 지경으로 인생을 망가뜨렸는지 모르겠어요. 하준 씨를 서운하게 했네요. 할머니께 강요당해 저 같은 볼품없는 년과 결혼하고 말이에요. 저는 하준 씨한테 어울리지 않으니 더더욱 이혼해야겠어요.” 남하준은 그녀 앞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그의 건장한 체구가 가녀린 그녀에게 이유 모를 위압감을 주었고 질식할 것만 같은 막강한 기운이 그녀를 뒤덮었다. 서다인은 긴장한 듯 머리 들어 그와 눈을 마주했다. 남자의 그윽하고 검은 눈동자가 뼈저리게 차갑고 거만했다. “이혼은 내가 정해. 그때 가서 당연히 너에게 알릴 거고.” 그럼 그녀는 대체 뭘까? 할머니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용당한 물건이란 말인가? 서다인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서운함을 토로했다. “과거에 제가 어떤 성품을 지녔는지는 잘 몰라요. 하지만 지금은 절대 저 자신을 속상하게 하고 싶지도 않고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자존심까지 짓밟으며 이 유명무실한 혼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아요.” 남하준은 두 눈이 번쩍이더니 야유 조로 쏘아붙였다. “지금 나랑 자존심을 논하는 거야?” 서다인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라고 자존심이 없어야 하는 걸까? 이 남자는 대체 그녀가 얼마나 하찮고 눈꼴사나운 거지? 서다인은 마음속으로부터 반항심이 차올라 정색하며 말했다. “남하준 씨, 만약 저랑 이혼하기 싫으면 본인 태도를 단정하게 하세요. 그쪽은 이미 유부남이니 여자 문제를 깨끗이 정리하고 저랑 부부로 살아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못하겠다면 바로 이혼하죠. 할머니껜 제가 직접 말씀드릴 테니 하준 씨를 난처하게 할 일은 절대 없어요.” 남하준은 표정이 돌변하여 불쑥 허리를 숙이고 한 손으로 침대 맡을 짚으며 바로 코앞에서 싸늘한 눈길로 그녀를 내려다봤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남하준에 그녀는 놀라서 침대 머리에 몸을 바짝 붙였다. 가슴에 스며들 것 같은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그녀의 마음도 잇따라 설렜다. 심장은 마치 잔뜩 흥분한 토끼처럼 마구 요동치고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으며 부끄러운 나머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왜 이래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물었다. 제5화 남하준은 아찔하고도 강렬한 수컷의 기운을 내뿜었다. “감히 날 협박해?” 서다인은 그의 압도적인 기세에 숨이 막혀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녀는 불안감에 떨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발 사람 강요하지 말아요.” 남하준은 싸늘하고도 한없이 짙은 두 눈동자를 반짝이며 그녀의 얼굴을 담담하게 쳐다봤다. 매끄럽고 탱탱한 피부 결과 또렷한 이목구비, 작고 동그란 얼굴은 젖살이 채 빠지지 않아 귀엽고 앙증맞을 따름이었다. 그녀의 예쁘장한 얼굴은 백하린의 어릴 때 모습을 조금 닮아 있었다. 남하준은 넋 놓고 바라보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눈썹을 살짝 들썩거렸다. “네가 그 여자 어릴 때 모습이랑 비슷해지려고 갖은 수단을 부렸나 봐? 이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겠어. 이래서 할머니가 널 그렇게 좋아하셨구나.” 그 여자 어릴 때 모습이라니? 남하준이 말한 ‘그 여자’는 대체 누구일까? 서다인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남하준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알았어, 네 요구 들어줄게.” 그는 이 말만 남긴 채 부하를 데리고 방을 나섰다. 그 순간 서다인은 어안이 벙벙했다. 어떤 요구를 들어준다는 말이지? 이혼 아니면 부부로서 잘 지내는 거? ... 밤이 깊어지고 청량한 바람이 불어왔다. 류청이 저녁밥을 방 문 앞까지 가져왔고 서다인은 식사를 마친 후 방 안에서 병법에 관한 서적을 한 권 찾아내 흥미진진하게 새벽까지 책을 읽었다. 피곤이 몰려오자 그제야 씻으러 들어갔다. 욕실에서 30분을 씻은 후 갈아입을 옷이 없어 몸에 걸쳤던 때 묻은 옷을 깨끗이 빨아서 욕실 창문 밖에 내걸어놓고는 샤워가운을 두르고 밖으로 나왔다. 별안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그녀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라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남하준이 막 상의를 벗고 튼실한 몸매를 드러내며 버젓이 방에 나타난 것이다. 건강한 피부색과 탄탄한 근육, 군살 하나 없는 완벽한 몸매에 간간이 옛 상처가 보여 남자의 매력이 더 물씬 풍겼다. 말 그대로 상남자였다. 남하준이 상의 탈의한 채로 화끈한 몸매를 드러내며 그녀의 방에 나타나자 화들짝 놀란 그녀는 미처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남하준은 미간을 구기며 그녀를 쳐다봤다. 서다인의 두 볼은 지금 누가 봐도 빨갛게 달아올랐다. 맑고 영롱한 두 눈은 순진한 척하는 연기가 절대 아니었다. 남하준은 훤히 드러난 그녀의 새하얀 어깨를 바라보다가 늘씬한 흰 다리에 시선을 옮겼다. 성형을 십여 차례 했음에도 몸매와 외모 전부 이토록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니, 의사가 신이 내린 손길로 지금 눈앞의 완벽한 결정체를 만들어낸 듯싶다. 그는 시선을 거둬들이며 저도 몰래 목젖을 움직이더니 옷장에서 캐쥬얼한 여름옷 한 벌 꺼내서 무심코 욕실로 걸어갔다. 서다인의 곁을 지날 때 운동복 세트를 그녀의 품에 밀어 넣었다. 화들짝 놀란 그녀는 남하준이 건넨 옷을 와락 끌어안았다. 서다인은 머리가 백지장이 된 채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남자가 대체 왜 이러는 거지? 이때 남하준이 차갑게 명령했다. “입어.” 그녀는 재빨리 돌아서서 욕실로 들어가는 남하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하준 씨가 왜 제 방에 있어요?” 남하준은 그녀를 등지고 내심 불만을 토로하듯이 말했다. “제대로 된 부부생활을 하자던 사람이 누군데?” 그녀가 한 말이긴 하지만 이건 단지 이혼을 위해서일 뿐 내연녀에, 서로 감정도 없이 강요당해서 사는 비정상적인 혼인 관계를 죄스럽게 유지하자는 뜻이 아니었다. 남하준이 욕실에 들어가 문을 닫고 나서야 그녀는 내내 참고 있던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답답한 마음을 추슬렀다. 그녀는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다가 또다시 화끈거리는 얼굴을 쓰다듬었다. 미처 어쩔 바를 모르는 모습이었다. 15분 뒤. 남하준이 심플한 캐쥬얼 잠옷을 입고 개운하게 샤워를 마친 후 욕실에서 나왔다. 서다인은 잔뜩 긴장해서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하준 씨, 우리 얘기 좀 해요.” 물론 이 남자를 3년 동안 짝사랑했지만 가슴보다 머리가 먼저 알려주고 있다. 그와 억지로 이 결혼을 유지한다면 나중에 상처받을 사람은 무조건 그녀라는 것을. 남하준은 옷장 앞에 다가가 안에서 다른 이불을 꺼내더니 그녀 맞은편의 침대 가장자리로 다가갔다. “시간이 너무 늦었어. 용건 있으면 내일 다시 얘기해.” 서다인은 마음이 복잡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녀는 저도 몰래 옷깃을 꼼지락거리며 맑은 눈동자로 그를 지그시 바라보면서 다정하게 되물었다. “우리 이혼 안 하는 건가요?” 남하준은 이불을 펴고 침대 한쪽에 눕더니 눈을 감았다. “당분간은 안 할 거야.” 서다인은 바짝 긴장해서 나지막이 요구했다. “그럼 꼭 남편의 도리를 지켜요.” “알았어.” 남하준이 고민 없이 바로 대답했다. 서다인은 그가 이토록 흔쾌히 대답할 줄은 몰랐다. 침대에 누워 잠든 이 남자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불과 베개를 챙겨서 살금살금 바닥에 펴놓았다. 남하준의 마음속에 딴 여자가 있으니 분명 그녀와 한침대에서 자길 원치 않을 것이다. 서다인은 하는 수 없이 저 자신을 희생하며 바닥에서 자기로 했다. 이부자리를 다 펴고 불을 끈 후 창밖의 달빛을 빌어 담요까지 걸어가 살며시 누웠다. 몇 초 후 갑자기 불이 환하게 켜졌다. 서다인은 비스듬히 눈을 뜨고 남하준의 차갑고 준수한 얼굴을 마주했다. 그는 옆에 서서 거만한 눈길로 그녀를 내려다봤다. 굳게 잠긴 허스키한 목소리에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서다인은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자고 있잖아요!”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남하준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이부자리에 누운 그녀까지 함께 덥석 안아 올렸다. 태평양처럼 넓은 어깨에 어마어마한 팔뚝 힘까지 과시했다. “하준 씨?” 서다인은 허공에 붕 떠 있다가 미처 반응하지도 못한 채 그의 거친 손길로 침대에 내동댕이쳐졌다. 침대에서 살짝 튀어 올라 머리가 어지럽고 다친 몸에 이따금 고통이 밀려왔다. 남하준은 그녀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화들짝 놀란 서다인은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어 그의 가슴을 밀쳤다. “하준 씨...” 남하준은 양손으로 침대를 짚고 팔뚝 하나를 사이에 둔 거리로 그녀를 가둬두었다. 서다인은 그의 탄탄한 가슴에 손이 닿은 순간 너무 수줍어서 황급히 거둬들였다. 그녀는 보호 차원으로 제 가슴팍을 감싸 안으며 긴장하고 불안한 눈빛으로 이 남자의 그윽한 검은 눈동자를 쳐다봤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그녀였다. 남하준이 가까이 다가오니 두려우면서도 은근 기대되어 너무 긴장한 나머지 온몸이 경직됐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설마 그녀랑 하룻밤을 보내겠다는 건가?! 제6화 남하준은 어두운 표정으로 정색하며 물었다. “이 남하준의 아내가 바닥에서 잔다고? 지금 누굴 능멸하는 거야?” 막강한 남성호르몬과 아찔함 속에 스친 무언의 압박감에 서다인은 곧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녀는 복잡한 마음을 추스르며 잔뜩 긴장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그저... 하준 씨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 우리가 함께... 함께 자는 게 마땅치 못하다고 생각했어요.” 남하준은 눈썹을 치키며 입꼬리를 말아 올려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난 너한테 아무 감정 없어. 네가 발가벗고 내 앞에서 춤춘다 해도 쳐다보지 않을 거고 터치할 일은 더더욱 없어.” 서다인은 자존심이 와르르 무너지고 가슴 깊숙이 있는 가장 연약한 곳을 찔린 듯 숨이 턱턱 막혔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목이 불에 타듯 따가웠고 입만 열면 이 서러운 감정이 한꺼번에 분출될까 봐 두려웠다. 그녀의 맑고 영롱한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서다인은 결국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 침묵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동자에 수정처럼 맑은 눈물이 고인 순간 남하준은 무언가에 홀린 듯 잠시 넋을 놓았다. 이어서 그는 옆자리에 등지고 누워 차갑게 명령했다. “불 끄고 이만 자.”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방 안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서다인은 칠흑같이 어두운 방 안을 쳐다보며 마음이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자세를 다잡고 편하게 누웠다. 커다란 더블침대에 두 남녀는 각자 침대 양옆에 눕고 중간에 아주 넓은 거리를 두었다. 이날 밤 서다인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새벽에 너무 피곤한 나머지 끝내 참지 못하고 스르륵 잠들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그녀는 벨 소리에 놀라서 깼다. 비스듬히 눈을 뜨니 남하준이 멋진 검은색 군복 세트를 차려입고 위풍당당한 기운이 저절로 차 넘쳤다. 이런 게 아마도 한 사람을 짝사랑하는 자의 마음가짐이겠지. 그가 나타난 곳마다 눈부신 아우라가 풍기는 그런 느낌. 남하준이 전화를 받고 목소리를 낮췄다. “좋은 아침, 하린아, 무슨 일이야?” 서다인은 백하린이 뭐라 말하는지 모르지만 남하준의 말투가 조금 긴장해졌다. “어쩌다 감기 걸렸어? 지금 바로 갈게.” 서다인은 침대에 일어나 앉아 남하준이 다정하게 부르는 하린이란 이름을 들으며 가슴 한편이 씁쓸해졌다. 그녀는 흐릿한 두 눈을 비볐다. 남하준은 통화를 마치고 돌아서서 그녀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나갔다 올게.” 서다인은 속상한 마음을 참으며 천천히 대답했다. “어제 나랑 약속했잖아요. 부부의 도리를 지키겠다고요.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충성이에요.” 남하준은 그녀를 쳐다보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우리 두 집안은 대대로 내려오며 친한 사이를 유지했어. 나랑 하린이도 소꿉친구일 뿐 그 이상은 아니야. 이 결혼의 충성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 서로를 사랑하며 종일 떨어지기 아쉬워 꼭 붙어있는데 대체 뭐가 그 이상이 아니라는 걸까? 서다인은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꽉 막힌 듯 괴로웠다. 남하준이 떠나기 직전 그녀가 대뜸 불러세웠다. “남하준 씨 안 가면 안 돼요?” 남하준은 걸음을 멈추고 몸이 경직됐다. 감히 성까지 붙여서 그의 이름을 불러준 사람은 정말 오랜만이라 한순간 적응하지 못했다. 서다인은 그의 넓은 등판을 바라보며 쓰라린 가슴이 아련히 아파왔다. 그녀는 애원에 가까운 어조로 말했다. “하준 씨는 유부남이에요. 제발 내 기분도 생각해주면 안 돼요? 의사를 보내서 병 보이게 하면 되잖아요!” 남하준은 몇 초만 망설인 후 가차 없이 그녀의 애원을 무시하고 성큼성큼 방문을 나섰다. 매정하게 문이 닫히고 그녀는 커다란 침대에 엎드려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불을 꽉 잡은 두 주먹은 화나서 부들부들 떨렸다. 남편의 도리를 지키기는커녕 그저 이혼하지 않으려고 그녀를 속이는 핑계였을 뿐이다. 백하린을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누가 뭐래도 반드시 이혼해야만 한다! 서다인은 묵묵히 결심했다. 남하준이 기숙사를 나오자 대문을 지키던 부하가 공손하게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도련님.” 남하준은 순간 걸음이 무거워지고 머릿속에 서다인에게 했던 맹세가 생각났다. 남편의 도리를 다하겠다던 그 말! 그는 부하에게 말했다. “백하린 방으로 의사 한 명 보내.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아.” 제7화 부하가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남하준은 속절없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단지 서다인이 말한 남편의 도리를 잘 지키기 위해 이러고 있는 저 자신이 너무 뜬금없게 느껴졌다. ... 사흘 뒤. 서다인은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됐다. 남하준은 백하린을 만나러 간 그날부터 사흘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서다인은 3일을 꼬박 남하준의 그림자조차 구경하지 못했다. 그녀는 기분이 점점 가라앉아 훈련기지에 와서 이곳의 전사들에게 호신술을 몇 수 배우기로 했다. 남성호르몬이 폭발하고 양기가 차 넘치는 이곳에서 무술을 배우는 가녀린 그녀는 자연스럽게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훈련장에 건장한 사내들로 둘러싸였고 가까운 곳에서 백하린이 정호 비서실장과 함께 걸어왔다. “벌써 3일째인데 하준 오빠는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예요?” 정호가 말했다. “도련님은 아주 중요한 일을 처리하고 계십니다. 오늘 돌아오실 수 있을 겁니다.” 백하린은 한창 호신술을 배우는 서다인을 가리키며 눈가에 싸늘한 한기가 감돌았다. “저 여자가 왜 여기 있어요?” “사모님은...” 정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하린이 덥석 가로챘다. “사모님은 개뿔! 지금 나더러 사모님이라고 불러라는 거예요? 쟤 따위가 그럴 자격이 돼요? 심보가 고약하고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자인데. 오빠가 저 여자 때문에 얼마나 비참해졌는지 알아요? 유흥업소에서 아가씨 일까지 했었다고요. 온갖 문란한 짓은 다 하고 다녔는데...” 백하린은 정호의 귓가에 대고 오버하며 서다인의 험담을 늘려놓았다. 훈련장에서 땀에 흠뻑 젖은 서다인은 며칠 동안 우울했던 기분이 금세 맑아졌다. “고마워요, 선생님.” 서다인은 호신술을 가르쳐주신 코치에게 고개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몇 수 더 배우고 싶은데 또 가르쳐주실 순 없나요?” 코치가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가르쳐드려야죠.”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정호가 씩씩거리며 다가와 야유에 찬 눈길로 서다인을 노려봤다. “제가 가르쳐드리죠.” 서다인은 멍하니 그를 쳐다봤고 코치는 공손하게 정호에게 인사했다. “오셨어요, 정호 씨.” 정호는 코치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만 가보라고 눈치를 줬다. 서다인은 정호의 퉁명스러운 기운을 감지했다. 아예 모르는 남자인데 대체 왜 이렇게 섬뜩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걸까? “정호 씨? 저한테 뭘 가르쳐주실 거죠?” 서다인이 예의 바르게 질문했다. 정호는 도련님을 위해 한을 풀어드리려고 차갑게 쏘아붙였다. “근접 격투술이요.” 서다인은 울며 겨자 먹기로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정호는 격투술을 가르친다는 빌미로 그녀를 머리가 어질어질해지게 했다. 몇 수를 두고 나니 서다인은 몸이 부서질 듯 아팠다. 주위를 둘러싼 전사들은 그녀가 무척 안쓰러웠지만 권력이 미미하다 보니 감히 나서서 말리지 못했다. 또 한 번 쓰러진 후 서다인은 뼈가 부러질 것만 같아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 “나 그만할래요.” “이제 막 시작이에요. 아직 진수도 못 가르쳤어요.” 정호가 그녀를 잡아당기더니 뒤에서 목을 졸랐다. “만약 누군가 뒤에서 이렇게 목을 감으면 어떻게 해야 하죠?” 서다인은 그에게 목이 꽉 휘감겨 숨조차 올라오지 않는데 언제 반격할 겨를이나 있을까? 이때 저 앞에 있는 백하린이 보였다. 잔뜩 도발하는 눈빛으로 씩 웃고 있었다! 그 순간 서다인은 정호가 왜 이렇게 나오는지 알 것 같았다. 별안간 정호가 말했다. “상대의 발등을 짓밟고 엄지손가락을 그대로 꺾는 거죠...” 서다인은 그의 말대로 했지만 뭐가 잘못됐는지 또다시 휘청거리다가 바닥에 쓰러져 가슴팍이 부서질 듯 아팠다. 서다인은 초라한 몰골로 바닥에 엎드린 채 꼭 마치 바보처럼 놀림당해 모두의 웃음거리로 전락한 것만 같았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 주먹을 불끈 쥐면서 울화가 슬슬 치밀었다. 이때 두툼한 손바닥에 팔이 덥석 잡힌 채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세를 다잡은 후 자신을 부축한 남자를 쳐다봤는데 멍하니 넋 놓고 말았다. 남하준이었다니! 제8화 짙은 눈빛과 조각 같은 이목구비를 지닌 남하준이 싸늘한 말투로 정호에게 물었다. “지금 이 사람 가르치는 거야 그냥 놀리는 거야?” 정호는 바짝 긴장하여 침까지 삼켰다. “도련님, 저는 사모님께 호신술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장내에 있는 모든 이가 정호 대신 식은땀을 뺐다. 그의 비겁한 수작을 남하준이 모를 리 있을까. 그는 서다인을 옆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멀리 가 있어.” 서다인은 심장이 움찔거리고 이유 모를 설렘을 느꼈다. 남하준은 그녀를 제대로 쳐다본 적도 없지만 이 동작은 분명 그녀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니까. ‘하준 씨가 대체 왜 이러지?’ 그녀는 몹시 의아했다. 남하준은 여유 있게 손목시계를 풀며 말했다. “우리 한 판 붙어. 네가 이기면 여기 남는 거고 지면 당장 꺼져.” 정호는 식겁하여 사색이 된 얼굴로 횡설수설하며 해명했다. “도련님, 저는... 도련님께 상대가 안 돼요. 단지 사모님께 호신술을 가르쳐드렸을 뿐이에요. 제발 저 자르지 마세요. 제발 부탁드려요 도련님...” 남하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목시계를 서다인에게 건넸다. 그녀는 시계를 받으며 또다시 이유 모를 설렘을 느꼈다. 정호는 긴장하고 당혹스러운 채 꿈쩍없는 남하준을 쳐다보다가 결국 애원하는 눈길로 서다인에게 말했다. “사모님, 죄송합니다. 제가 일부러 넘어뜨린 건 아니에요.” 남하준은 그에게 시끄럽게 변명할 기회를 안 줬다. 그는 마치 맹수처럼 정호를 발로 힘껏 걷어찼다. “퍽!”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호는 1미터 밖으로 튕겨 나가더니 바닥에 쓰러진 채 괴로운 비명을 질렀다. 배를 끌어안고 서서히 몸을 움츠리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서다인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남하준의 충격적인 무력에 그만 입이 쩍 벌어졌다. 대박! 이토록 살벌한 공격이라니. 만약 아까 맞은 게 그녀였다면 한방에 하늘을 뚫고 올라갔을지도 모른다. 정호는 고통이 조금 가신 후 몸을 지탱하며 겨우 일어나 도련님이 여느 때보다 진지하단 걸 깨달았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오늘 무조건 잘릴 것이다. 정호는 마음을 다잡고 공격을 가했다. 주먹이 남하준에게 가까워지려는 순간 그가 날렵하게 피하며 허리를 숙이더니 천근만근 되는 주먹 사이즈로 정호의 복부에 또 한 번 펀치를 날렸다. 정호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서다가 바닥에 주저앉아 입가에 피를 흘렸다. 장내에 있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정호는 이 두 번의 공격에 이미 내상을 입었다. 이때 백하린이 뛰어오며 남하준의 팔을 껴안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애원했다. “오빠, 그만 해요. 정호 씨는 진짜 진심으로 다인 언니한테 호신술을 가르쳤어요. 절대 언니를 괴롭힌 게 아니라고요.” 밖에 있던 부하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사정했다. “도련님, 정호 씨 그만 놓아주세요.” 남하준은 백하린을 보더니 부드러운 눈길로 변하고 목소리도 한결 다정해졌다. “너 이렇게 뛰어오면 내가 실수로 다치게 할까 봐 두렵지 않아?” 백하린은 빨간 입술을 내밀더니 흐물거리면서 그의 팔에 기대 나긋하게 속삭였다. “전혀요. 오빠는 절대 나를 다치게 안 하니까요.” 남하준은 자상하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눈꼴사나운 광경을 본 서다인은 심장을 쿡 찌르듯 아팠다. 그녀는 남하준의 손목시계를 꼭 잡고 눈앞에서 딴 여자랑 치근덕거리는 남편을 멍하니 쳐다봤다. 둘은 그야말로 서로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서다인은 마치 남하준에게 공격당한 듯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극심한 고통에 질식할 것 같아 그대로 굳어버렸다. 단지 몸싸움일 뿐인데 남하준은 백하린을 다치게 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정작 그녀에겐 어땠었지? 그녀를 납치한 범인에게 총을 쏘면서도 제 아내를 실수로 쏠까 봐 망설인 적이 없다!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가. 점잔을 빼는 남편, 두 여자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다른 위선자! “오빠한테 할 얘기 있어요. 우리 사무실로 가요.” 백하린이 그를 잡아당기며 밖으로 나갔다. 정호는 몸을 지탱하며 겨우 일어나 애원 조로 빌었다. “도련님, 정말 잘못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네?” 남하준은 백하린과 함께 떠나며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이 한마디만 내던졌다. “그건 다인이가 알아서 정해.” 정호는 서다인의 앞으로 다가가 자세를 한껏 낮추며 나지막이 애원했다. “사모님, 죄송합니다. 저는 도련님께 충성을 다했어요. 제발 저 사퇴하지 마세요. 이렇게 사죄드릴게요 사모님, 제발요...” 제9화 서다인은 손 내밀어 그의 말을 툭 잘랐다. “됐어요. 여기 남으셔도 돼요.” 그녀는 결코 속 좁은 여자가 아니다. 이런 사소한 일로 직업에 애정 품은 사람을 밥그릇을 잃게 할 생각은 없다. 정호는 희열에 넘쳐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사모님. 사모님은 역시 마음이 너그러운 분이시네요.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분부만 하세요. 사모님을 위해서라면 두 발 벗고 나서겠습니다.” 서다인은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혼란스러워 무심코 손목시계를 정호에게 건넸다. “두 발 벗고 나설 필요는 없고, 일단 이 시계를 하준 씨한테 돌려주세요.” “네.” 정호는 손목시계를 건네받았다. 이때 서다인이 또 물었다. “이 근처에 기차역이나 공항 있어요?” 정호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사모님 여길 떠나시게요?” 서다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제 남편이 딴 여자랑 알콩달콩한 모습을 한시라도 쳐다보고 싶지 않으니까. 이런 식으로 저 자신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자해 경향이 전혀 없다. 돌아가서 할머니께 잘 설명해 드리고 이 죽일 놈의 결혼생활에 얼른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정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사모님, 제가 내일 휴가 신청하고 바래다 드릴게요. 안성시까지 차로 가려면 6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 “그래요, 고마워요.” 서다인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몸에 기운이 쫙 빠진 채 나긋하게 대답했다. 이건 아마도 남하준을 향한 마음을 다 내려놓아서 그런 듯싶다. 그녀는 흐리멍덩하게 훈련장을 떠났다. 저녁 무렵 드리워진 따뜻한 노을빛은 아늑한 분위기를 한껏 자아냈다. 서다인은 방에 숨어 책을 보며 시간을 때웠다. 점심도 안 먹었는데 시계를 보니 어느덧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됐다. 그녀는 방에서 나와 곧게 주방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서 남하준과 마주쳤고 그의 뒤엔 류청과 정호 두 명의 비서실장도 있었다.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인사를 올렸다. “사모님.” 서다인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응했다. “네.” 남하준은 늘 그렇듯 삭막하고 소원감이 느껴지는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정호가 너 내일 떠난다고 하던데?” “네.” “여기 지내는 게 적응 안 돼?” 그가 따져 묻자 서다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충 핑계를 둘러댔다.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요.” 남하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차갑게 쏘아붙였다. “돌아가서 할머니께 이혼 얘기 꺼내려고?” 서다인은 속내가 훤히 드러나 불안한 표정으로 해명했다. “하준 씨는 할머니 소원을 이뤄드리려고 억지로 저랑 아무 감정 없는 결혼생활을 이어가잖아요. 피차 힘든데 이참에서 끝내죠.” 남하준이 대답했다. “넌 할머니 옆에서 3년 동안 병간호를 하면서 아직도 할머니 성격을 몰라?” 서다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할머니가 허락 안 하시면 우리 몰래 이혼하고 할머니 앞에선 부부인 척 연기하면 돼요.” 두 명의 부하가 다 듣고 있으니 남하준은 문득 얼굴이 뜨거워 났다. 이 세상에 그의 아내가 되고 싶어 안달인 여자가 줄을 섰는데 이 여잔 대체 왜 이렇게 시큰둥한 걸까? 그는 거만한 말투로 말했다. “갖은 수단으로 나와 결혼한 이유가 돈 때문이었지? 말해, 얼마를 원해?” 서다인은 흠칫 놀라서 그대로 몸이 굳었다. 그녀는 심장을 쿡 찌르듯 아파 저도 몰래 주먹을 불끈 쥐고 파르르 떨었다. 눈물은 이미 앞을 가렸다... 이 남자 눈에 그녀는 대체 얼마나 저질스러운 여자인 걸까? 서다인은 차오르는 눈물을 꾹 참고 애써 담담한 척하며 자조적으로 말했다. “미안한데 난 돈 필요 없어요. 나처럼 방탕하고 문란한 여자는 이 몇 년 동안 남자들 몸에서 갖은 수단으로 더러운 돈을 실컷 벌어들였어요. 이젠 그만 언덕에 오르고 싶네요. 일편단심이고 충성을 다하는 바보 같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잘 살고 싶을 뿐이에요.” ‘내가 바보 같은 남자라고?’ 남하준은 눈빛이 어두워지고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뒤에 있는 두 비서실장은 웃고 싶지만 감히 그러지 못했다. 이때 한 과학 연구자가 부랴부랴 달려오며 초조하게 말했다. “도련님, 5번 연구소 건물에 화학 액체가 누출되어 많은 사람들이 중독됐고 하린 씨도 중독되셨습니다.” 남하준은 부리나케 5번 연구소 건물로 달려갔다. 화학 액체 중독이라니? 서다인은 뒷일도 마다한 채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가는 남하준을 보더니 안달이 나서 잇따라 달려갔다. 제10화 5번 과학 연구소 건물. 사람들이 줄지어 코를 막고 안에서 도망쳐 나왔다. 중독당한 대부분 사람들은 구토 증상을 일으키고 또 일부는 머리가 어지러워 바닥에 누워 있었다.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캠프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 전부 환자를 구하러 달려왔다. 서다인은 숨을 헐떡이며 현장으로 달려와 남하준의 안위가 걱정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때 남하준이 백하린을 안고 5번 건물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오더니 의료 침대에 눕혔다. 서다인은 문득 저 자신이 우스워졌다. 그녀의 신경은 온통 이 남자인데 정작 이 남자의 눈엔 백하린밖에 없다. 남하준은 백하린을 의사에게 넘긴 후 또다시 안에 들어가 사람을 구하려 했다. 이때 백하린이 그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애교 섞인 목소리로 울며 애원했다. “오빠, 가지 말아요. 나 너무 아파. 토하고 싶어요...” “착하지.” 남하준이 다정하게 타일렀다. “괜찮아. 의사 선생님이 옆에 있어.” 백하린은 머리를 내저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울먹이며 계속 중얼거렸다. “가지 말아요. 나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아요. 오빠, 나 진짜 죽으면 어떡해요?” 이때 류청이 달려와 보고했다. “도련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대피했고 총 35명이 중독되었습니다.” 남하준은 옆에 있는 연구원에게 물었다. “유 교수님, 대체 무슨 액체가 누출된 거죠? 생명의 위험은 있나요?” 유주헌이 사색이 되어 바짝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청유액이라고 해외에서 들여온 신제품이라 저희도 아직 연구 단계에 있습니다. 이 제품에 대해 아예 익숙하지 않습니다.” 남하준은 차가운 시선으로 의사를 쳐다봤다. 의사는 흠칫 놀라더니 긴장감이 더 조여왔다. “도련님, 제가 오랫동안 의학을 공부해왔지만 청유액이란 화학 물질은 들어본 적이 없어 그 독성도 잘 모릅니다. 각 환자의 화학 실험 보고서가 나와야 증상에 따라 약을 처방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물건을 왜 제대로 보관하지 못하고 누출하게 된 거죠?” 남하준은 분노 조로 쏘아붙였다. 카리스마 넘치는 포스에 장내에 있는 모든 이가 간담이 서늘해졌다. 유주헌은 긴장해서 심호흡한 뒤 불안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게 실은... 백하린 씨가 연구소에 와서 물건을 찾다가 부주의로 엎어버렸습니다.” 장내에 있는 모두가 표정이 일그러지고 책망하는 눈길로 백하린을 쳐다봤다. 백하린은 대성통곡하며 반박했다. “그건 당신들이 물건을 제대로 보관하지 못한 탓이지,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 남하준은 그녀의 말투에 사뭇 정색하며 말했다. “연구소는 기밀 유지 부서로 경비가 삼엄하고 허가 없이는 함부로 못 들어가. 네가 거긴 왜 갔어?” 백하린은 책임을 회피하려고 울먹이며 불쌍한 척했다. “오빠, 나 못 믿는 거예요? 흑흑... 나 중독돼서 너무 힘든데... 왜 아직도 내 탓만 하는 거예요?” 옆에 있는 의사와 간호사, 유주헌과 두 비서실장까지 짜증 섞인 눈길로 백하린을 쳐다봤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애교를 부려대는 모습이 참 눈꼴사나울 따름이었다. 옆에서 한참 지켜보던 서다인이 앞으로 다가오며 유주헌에게 물었다. “청유액은 유독 성분이 없어요. 혹시 레늄을 함유한 물질도 함께 엎어버렸나요?” 그녀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모두가 놀라서 의아한 눈길로 그녀에게 시선이 쏠렸지만 그 말뜻은 미처 이해하지 못했다. 유주헌은 충격에 휩싸인 눈빛으로 서다인을 쳐다보더니 의아함도 잠시 아주 성실하게 답변했다. “맞습니다. 레늄을 함유한 물질도 함께 엎었어요. 하지만 레늄은 흔히 전투기 엔진에 사용되며 마찬가지로 유독 성분이 없어요.” 서다인이 담담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청유액과 레늄이 화학 반응을 일으켜 무색, 무향의 독성 가스를 분해하죠. 중독자는 머리가 어지럽고 복통에 구토 증상을 보이며 나중에 구토와 설사를 병행하다가 탈수로 사망에 이릅니다. 현재 중독자 체내의 산도가 너무 높아 알칼리수를 마시면 증상을 완화할 수 있을 겁니다.” 서다인이 차분한 눈빛으로 정호를 바라봤다. “주방에 가서 식용 가능한 알칼리성 식용품이 있는지 확인하고 얼른 물에 타오세요. 이분들 빨리 마셔야 해요.” 정호는 화학에 대해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서다인의 분부는 바로 이해하고 서슴없이 명령을 이행하러 갔다. “네, 사모님. 지금 바로 준비해오겠습니다.” 정호가 부리나케 자리를 떠났다. 장내에 있는 모든 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남하준은 그녀를 쳐다보는 짙은 두 눈이 의미심장하게 변했다. 그의 마음속에 무심코 한줄기 파란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