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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 왕의 귀환
「애도하라! 애도하라!」 「구주 군신이 어제 10개 나라에서 온 강자의 연합공세로 죽음의 바다에서 전사했습니다.」 「이 전쟁으로 파란 바다가 핏빛...
Chương (1)
第1章
제1화
「애도하라! 애도하라!」
화진의 모든 서버는 묵념하며 구주왕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강성시의 한 해변가.
비키니를 입고 완벽한 몸매를 드러낸 소채은이 미간을 찌푸리고 핸드폰으로 묵념하는 장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뭐야?”
“벌건 대낮부터 무슨 애도람?”
“서버 전체가 묵념하고 애도한다고?”
“아, 미치겠네. 어떤 사람이 죽었길래 다들 이렇게 난리인 거지?”
핸드폰 화면을 5분동안 뚫어져라 지켜보고나서야 소채은은 헤드 메세지를 클릭했다.
빨간색으로 적힌 몇글자가 소채은의 눈에 들어왔다. 대형 사이트의 홈페이지마다 헤드라인으로 걸려 있었다.
「구주 군신이 어제 10개 나라에서 온 강자의 연합공세로 죽음의 바다에서 전사했습니다.」
「이 전쟁으로 파란 바다가 핏빛으로 물들었고 망망대해에 시체가 떠올랐습니다.」
「이 전쟁은 한 사람이 한 군을 이끌고 10개 나라의 백만 군사를 온힘을 다해 격파한 전쟁이었습니다.」
각 대형 사이트의 헤드라인을 보며 소채은의 앵두같은 입술이 동그랗게 오무려졌다.
‘구주 군신? 할아버지가 자주 말씀하시던 무패의 전설 아니었나? 그런데 전사했다니.’
“그래서 서버 전체가 묵념하고 있구나. 이 무패의 전설이 죽은 거였어?”
이 “구주 군신”의 사망 소식을 조금 더 검색해보다가 소채은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구주왕은 진짜 대단한 사람이었고 화진의 레전드 히어로가 맞았다.
하지만 소채은과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게다가 지금 자신에게 벌어진 시끄러운 일도 아직 다 해결하지 못했다.
소채은은 바닷가에 누워 집안 일을 고민했다. 그러자 절세의 미모에 걱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따르릉!”
그때 그녀의 전화가 울렸다. 소채은은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했다. 친구였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친애하는 소채은 아가씨, 도대체 요즘 어디를 싸돌아 다니길래 연락이 안되는 거야?”
“란이야, 왜? 나 지금 옛 본가에서 휴가 중인데.”
소채은이 음료수를 마시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헐! 너 혹시 까먹은 거 아니지? 두날 뒤면 너 중해 그룹 도련님과 결혼하는 날이잖아. 지금 휴가 갈 기분이야?”
이 말을 들은 소채은은 스스로 자기를 비웃으며 말했다.
“결혼한다고 휴가를 못 와?”
“게다가 나를 도구처럼 정약 결혼에 쓰는데 나와서 바람 좀 쐬는 게 뭐 어때서?”
란이가 멈칫하더니 말했다.
“채은아, 너 중해 그룹 도련님과 결혼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지?”
“소문도 더러운데다가 바람둥이에, 3년이나 여학생을 성폭행했다고 지목 받은 사람인데 내가 결혼하고 싶겠니?”
수화기 너머는 다시 침묵이 흘렀다.
한참이 지나서야 란이가 입을 열었다.
“싫다면 너를 제일 아끼는 할아버지한테 부탁해보지 그래.”
“할아버지 쓰러지신지 이미 일년이 넘었어. 지금은 그 독한 큰아버지가 집안을 꽉 잡고 있어.”
“그런데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이 말을 들은 란이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채은아, 미안해. 너희 집안 상황이 이렇게 복잡한 줄 몰랐어.”
“괜찮아.”
“우리 집안에서 나는 원래 도구나 다름없는 존재라 이제 적응했어.”
소채은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언제 돌아와?”
란이가 물었다.
“일단은 내일까지 여기 있으려고.”
“그래. 돌아오면 꼭 연락해. 끊을게.”
전화를 끊고 소채은은 침대식 의자에서 일어났다.
해빛이 그녀의 하얀 피부와 완벽한 몸매를 비춰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는 맑은 눈망울로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봤다.
“만약 내가 물고기가 되어 자유로워 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채은은 한숨을 내쉬더니 샤워 타올을 벗었다. 그러자 완벽한 몸선이 드러났다.
그러더니 바다로 들어갔다.
바다 바람이 불어와 파도를 일으켰다. 소채은 그렇게 점점 더 깊은 곳으로 헤엄쳐 갔다.
파도가 멀리서 한겹 한겹 다가오고 있었다.
소채은이 아무런 목적없이 수영을 하고 있는데 멀리 떨어진 곳에 떠있는 까만 무언가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잉? 저게 뭐지?”
소채은이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그쪽을 바라봤다.
“헐, 사람이야?”
“이렇게 깊은 바다에 왜 사람이 떠있지?”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소채은은 바로 그 사람에게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채은은 그 사람 옆에 도착했다.
가까이서 더 자세히 보니 바다 한가운데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둥둥 떠있었다.
제2화
이 남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파도에 휩쓸리면서 그저 둥둥 떠 있을 뿐이었다.
착한 소채은은 이 모습을 보고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바로 사람을 구하려 했다.
다행히 수영을 꽤 잘하는 편이라 소채은은 생사를 알 수 없는 검은 옷 남자를 끌고 바닷가로 힘껏 헤엄쳐 갔다.
젖 먹던 힘까지 다 써서야 소채은은 그 남자를 바닷가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소채은은 크게 숨을 내쉬고는 얼른 남자의 생사를 확인했다.
맥을 짚어보니 뛰고 있긴 했지만, 너무 미세했다. 그래도 살아있었다.
소채은은 다시 고개를 숙여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는 몸을 웅크린 채 누워 있었고 옷은 이미 바닷물에 푹 절여져 있었다.
소채은은 남자를 반듯하게 눕히고 나서야 남자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잘생긴 얼굴을 가진 절세 미남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바닷물에 너무 오래 떠 있어서 얼굴이 창백하고 핏기가 없었다.
“너무... 잘생겼잖아!”
소채은은 남자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심박수가 빨라졌다. 하지만 소채은은 얼빠가 아니었다.
심호흡을 하고는 남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시전했다. 몇십 번 정도 시전하니 남자의 맥박이 돌아왔다. 남자를 살려낸 것이었다.
“와, 드디어 살렸네!”
소채은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근데 이 사람 누구지? 왜 바다에 버려진 거지? 이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이렇게 사람 하나 없는 외진 곳에 버려뒀다가 밀물이라도 들어오면 죽게 놔두는 거나 다름없잖아.”
한바탕 고민한 끝에 소채은은 이 생판 모르는 남자를 잠시 옛 본가에 데려가기로 했다.
옛 본가에 도착해 소채은은 남자를 자기의 침대에 눕혔다.
온몸에 모래가 묻은 소채은은 쓰러진 남자를 보고 먼저 샤워를 한 뒤에 병원에 데려가려 했다.
한편, 굽이진 산길에 3대의 벤츠가 달리고 있었다.
“채은이 이 계집애 진짜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니야?”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혼자 옛 본가에 휴가를 와?”
“채은이 친구가 제때 알려주지 않았으면 이 계집애를 어디서 찾아?”
소리를 따라가 보면 면상은 음침하지만, 비싼 슈트를 차려입은 중년 남자가 시가를 태우며 뒷좌석에 앉아 있는 게 보인다.
“형님, 너무 성내지 마요. 채은이도 그냥 나와서 바람 좀 쐬는 거지, 선 넘는 행동은 안 할 거예요.”
다른 쪽에 앉은 점잖아 보이는 남자가 얼른 입을 열었다.
“둘째야, 내가 뭐라고 하는 건 아닌데 딸 교육 잘 좀 해야지.”
“생각해 봐. 중해 그룹과 정략결혼이 깨지기라도 하면 앞으로 우리 소씨 가문 어떡할 거야?”
훈수를 들은 소청하는 그저 “예”하며 대답만 할 뿐이었다.
“잘 들어. 이번에 데려가면 중해 그룹 도련님과 결혼할 때까지 잘 묶어놓든지 해.”
“내 명령 없이는 이 계집애 문밖으로 다시는 못 나가!”
소천홍의 엄격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4대의 고급 승용차가 빠른 속도로 소씨네 옛 본가로 향하고 있다.
옛 본가.
소채은은 샤워를 마치고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피부는 옥과도 같았고 맨발로 젖은 머리를 닦으며 욕실에서 걸어 나왔다.
소채은은 아직도 기절한 채 누워있는 남자를 보고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운이 좋아서 나를 만난 거야. 시에 있는 병원으로 데려가서 살려내면 잘 보답해야 할 거야.”
소채은은 젖은 머리를 다 닦고는 시내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러다가 얼떨결에 남자가 입은 축축한 옷을 보고는 적어도 남자에게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혀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소채은은 손을 뻗어 남자의 젖은 옷을 전부 벗겨냈다.
소채은은 남자의 벌거벗은 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 도대체 누구를 구한 거야?”
소채은은 남자의 몸에 난 흉측한 상처를 발견했다. 그 상처들은 서로 얽히고설켜 토템처럼 두 눈을 자극했다.
더 무서운 건 남자는 등에 용의 머리를 문신했다.
그 문신은 군주가 강림한 듯 패기 넘쳤다.
그와 동시에 옛 본가의 문이 벌컥 열렸다.
“채은아, 우리 집으로 돌아... 가자...”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소채은의 아빠 소청하와 큰아버지 소천홍이었다. 그 뒤로는 소씨 집안의 보디가드들이 따라서 들어왔다.
소청하와 소천홍은 샤워 가운을 걸친 소채은과 침대에 벌거벗은 채로 누워있는 남자를 보고 순간 넋을 잃었다.
제3화
“아빠, 큰아버지,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어요?”
소채은은 안으로 들어온 사람을 보고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채은아,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남자는 또 누구야?”
소청하가 호통을 쳤다.
특히 소채은이 샤워 가운을 두른 채 벌거벗은 남자와 침대에 있는 걸 보니 뇌출혈이라도 올 것만 같았다.
소채은은 그제야 이상함을 감지하고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나 해명하기 시작했다.
“아빠, 오해하지 마요. 이 남자 모르는 사람이에요.”
“뭐? 모르는 사이라고?”
“이 계집애야! 미쳤어? 모르는 사이에 잠자리를 가져?”
소청하가 포효하다시피 했다.
“아빠 일단 내 말 좀 들어봐요. 진짜 모르는 사람이예요. 그냥...”
소채은이 해명하려는데 큰아버지 소천홍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둘째야, 진짜 대단하다.”
“딸을 참 훌륭하게 키웠어. 모르는 남자와 잠자리까지 다 들고.”
“곧 중해 그룹과 정략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이 계집애 어떻게 처리할지 좀 말해봐.”
소청하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온몸을 부르르 떨었고 눈동자마저 빨개졌다.
“망할 계집애, 우리 소씨 가문이 뭘 잘못해서 너 같은 불효녀를 낳은 거야?”
“차라리 때려죽이고 말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소청하는 손을 들어 소채은의 뺨을 때리려 했다.
소청하의 손이 소채은의 어여쁜 얼굴에 거의 닿으려는데 갑자기 누군가의 차가운 손이 소청하의 팔목을 움켜잡았고 소채은을 자기 뒤로 숨기기까지 했다.
소채은은 순간 멍해졌고 고개를 들어보니 건장하기 그지없는 뒷모습과 등 뒤에 새겨진 용의 머리가 보였다.
‘이 남자 깨어난 거야?’
소청하는 건장한 체구를 가진 남자에 의해 단번에 손목을 잡혔고 팔이 부러질 것처럼 아파 언성을 높였다.
“너... 너... 뭐하자는 거야?”
남자는 거기 선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가운 눈빛으로 군주처럼 소청하를 내려다봤다.
“놔, 이거 놓으라고!”
소청하가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남자의 손은 마치 무쇠처럼 전혀 풀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봐라, 이 새끼 처리해.”
소청하의 분노가 끝내는 터지고 말았다.
자기의 딸이 모르는 남자와 잔 것도 모자라 지금 그 남자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에게 손찌검을 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뒤에 서 있던 소씨 가문 경호원들도 놀고 먹는 사람들은 아니었기에 소청하가 팔을 붙잡힌 걸 보고 다 같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남자가 손을 쓰는 걸 보기도 전에 여러 번 “퍽”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경호원들이 전부 나동그라졌고 바닥에서 신음을 내고 있었다.
‘하늘이시여,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소채은은 자기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낯선 남자가 손가락 몇 번 놀려서 보디가드들을 날려버린 것이다.
이 광경에 소청하, 소천홍 모두 넋을 잃었다.
제일 재수 없는 건 소청하였다. 아직도 남자에게 팔목을 잡힌 채로 있었다.
이러다 진짜 팔이 부러질 것 같아 소채은이 얼른 말했다.
“우리 아빠 놓아줘요.”
남자는 소채은의 목소리를 듣자 그제야 손을 풀었다.
“아빠 괜찮아요?”
남자가 손을 풀자마자 소채은은 달려가서 아빠를 위로했다.
하지만 소채은이 다가가자마자 소청하는 소채은을 밀쳐내며 소리를 질렀다.
“망할 놈의 계집애, 나 건드리지 마.”
“겨우 키워놨더니 저런 놈과 손잡고 아빠를 때려?”
“그래, 좋다 이거야.”
“오늘부로 다시는 소씨 가문에 발 들이지 마.”
늘 점잖기만 하던 소청하는 이렇게 말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소채은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아빠를 불렀다.
“아빠... 아빠...”
아쉽게도 소청하는 소채은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지 않고 떠나버렸다.
자리에 주저앉은 소채은은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좋은 마음으로 사람을 구했는데 아빠에게 이런 오해를 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한참을 울다가 소채은은 눈물을 닦아내고는 고개를 돌려 눈앞에 보이는 낯선 훈남을 노려봤다.
“다... 당신 때문이에요.”
“당신만 아니었으면 이런 오해를 살 일도 없었어요.”
“그리고 누가 우리 아빠한테 손찌검하라고 했어요?”
소채은은 맞은편에 앉은 남자한테 서러움을 퍼붓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렇게 몇 초간 멍하니 서 있다가 갑자기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남자가 쓰러지자 소채은도 깜짝 놀랐다. 다시 한번 남자를 검사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그냥 잠시 정신을 잃은 것뿐이었다.
남자를 이리저리 보던 소채은은 이제 어떡해야 할지 몰랐다.
오해를 풀 방법은 이미 사라졌다. 소채은은 쓰러진 남자를 바라보며 그냥 여기에 버려두고 가버릴까 망설였다.
“아, 어쨌든 간에 나를 도와주려고 아빠를 막은 거잖아. 그렇다면 끝까지 좋은 사람이 되는 수밖에.”
소채은은 결국 남아서 이 남자를 보살피기로 했다.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잡아끄는데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명령패가 남자의 몸에서 떨어졌다.
“잉?”
“이건 또 뭐지?”
소채은은 놀란 표정으로 시커먼 명령 패를 주었다.
꽤 무게가 나가는 명령 패였다. 무슨 재질인지는 알아볼 수 없었다.
손에 들고 있으니 뼈가 시릴 정도의 한기가 느껴졌다. 위에는 “9주”라고 새겨져 있었다.
소채은은 “9주” 명령패를 들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뭐지?”
몇 번 더 살피고는 아무렇게나 옆으로 던져버렸다.
낯선 남자는 아직도 기절한 상태였다.
하지만 소채은은 걱정하지 않았다. 이미 목숨은 구했기 때문이다.
제4화
소채은은 옷을 갈아입고 멍해서 쓰러진 남자 곁을 지켰다.
이 남자는 진짜 잘생겨도 너무 잘생겼다. 게다가 온몸으로 군주의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쓰러져 있지만 않으면 남신이 분명했다.
“이 사람 도대체 누구지?”
“왜 바다에 떠 있었던 거지?”
“그리고 왜 간단한 손놀림만으로 소씨 가문 보디가드를 쓰러뜨릴 수 있는 거지?”
무수히 많은 의문이 소채은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호기심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인지 소채은은 이 남자를 더 알아가고 싶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소채은은 침대맡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때 소채은은 작은 움직임을 느꼈다.
비몽사몽인 상태로 눈을 떴다가 이내 “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 기절했던 남자가 깨어 있었다.
그리고 아주 올곧은 자세로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소채은 놀라서 뒷걸음질 쳤고 경계 태세로 물었다.
“당... 당신... 뭐하자는 거예요?”
남자는 막연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주변을 빙 둘러보더니 멍한 눈빛으로 다시 소채은을 쳐다봤다.
“당신은... 누구고... 여긴 어디죠?”
매력 있는 목소리였지만 의문으로 가득 찬 말투였다.
소채은이 얼른 대답했다.
“저는 소채은이라고 해요. 제가 바다에서 당신을 구한 거예요.”
“바다요?”
남자가 다시 막연한 표정을 지었다.
“맞아요. 바다에 떠 있었던 거 기억 안 나요?”
소채은이 귀띔했다.
남자는 바다라는 말을 듣더니 멈칫했다.
갑자기 머릿속에 수많은 죽음을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고 셀 수도 없는 시체들이 핏빛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장면이 보였다.
매캐한 연기와 군함이 불바다 속에서 망가지고 있었고 많은 사람이 불구덩이에서 목 놓아 부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사방에서 까맣게 몰려오는 강자들이 그를 향해 달려오던 걸 떠올렸다.
최후의 최후에 그는 사람들이 그를 향해 “구주왕... 구주왕...”이라고 외쳐대는 걸 들었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는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을 느꼈다. 마치 칼로 가르고 침으로 찌르는 듯한 아픔이었다.
거센 통증에 그는 견딜 수 없다는 듯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고통스러워하는 남자를 보며 소채은이 다급하게 물었다.
“왜 그래요...”
한참이 지나서야 남자는 다시 안정을 찾으며 터질 듯한 머리를 문질렀다.
“머리가 너무 아파요. 너무.”
“머리가 아프다고요?”
“혹시 머리를 다친 거 아니에요?”
소채은이 얼른 되물었다.
“몰라요.”
남자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막연한 표정으로 답했다.
“왜 바다에 떠 있었던 거예요? 바다에 빠진 거예요? 그게 아니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소채은이 계속 질문을 던졌다.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모르겠다고 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를 보며 소채은이 다시 물었다.
“이름은 뭐예요? 이름은 기억나겠죠.”
남자는 이름이라는 단어를 듣더니 몇초 멍해 있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와, 큰일이네. 이 남자 지금 아무것도 기억 못 한다는 거 아니야.’
그러다 갑자기 소채은은 무언가 생각난 듯 한쪽으로 걸어가 전에 남자의 몸에서 떨어진 검은색 명령패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여기요. 당신 몸에서 떨어진 명령패에요. 잘 봐봐요. 뭐 떠오르는 거 없어요?”
남자가 멈칫하더니 검은색 명령패를 건네받았다.
명령패에 쓰인 “9주”라는 두 글자를 보자 남자는 또 뭔가 확 기억난 듯싶었다.
“구주... 구주...”
“윤... 구... 주...”
“잉?”
“윤구주? 혹시 이름이 윤구주에요?”
남자가 이상한 이름을 읊조리자, 소채은이 이상해하며 물었다.
남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윤구주”라는 이름을 계속 되풀이 할 뿐이었다.
소채은은 지금 머리가 아팠다.
바다에서 건진 남자가 재수 없게도 기억을 잃었다.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가족들은 내가 이 남자와 잠자리를 가졌다고 오해하고 있다.
제5화
“하...”
소채은은 한숨을 내쉬고는 윤구주를 힐끔 올려다봤다.
“됐어요. 너무 잘생겨서 제가 끝까지 선심 쓸게요.”
“어찌 됐든 간에 시내로 돌아가면 병원에는 데려가 줄게요. 치료받을 수 있게 노력해 볼게요.”
“그래서 회복되면 내 가족에게 잘 설명해 줬으면 좋겠어요.”
소채은이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시내로 돌아갈 짐을 쌀 거예요. 먼저 여기서 티비 좀 보고 있어요. 아무 데도 가면 안 돼요. 알겠죠? 내 물건에도 손대지 말고요.”
소채은은 낯선 남자에게 이렇게 당부하고는 윤구주에게 티비를 켜주었다.
윤구주는 멍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선을 티브이로 돌렸다.
마침 티브이에서 죽음의 바다에서 일어난 10개국 간의 전쟁을 방송하고 있었다. 화면속을 가득 채운 전함에서는 까만 연기가 솟아올랐고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전투기가 날고 있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뚫고 화진의 군사들이 10개국의 침략자들과 싸우는 장면이 윤구주의 눈에 들어왔다.
이 화면이 윤구주의 머릿속에 박히면서 또 “쿵”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그러면서 수많은 기억이 그의 머릿속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구주왕, 그는 윤구주였다. 화진에서 종횡무진하는 9주 군신 윤구주.
10개국 간의 전쟁은 서른 살도 안 되는 그가 최강의 경지에 접어들면서 다른 나라들이 벌인 침략 전쟁이었다.
10개국에서 무서워하는 저승사자, 그들에게 난 벗어날 수 없는 악몽 같은 존재다.
윤구주를 죽이기 위해 10개국에서 100여 명의 최강 고수를 파견했고 10개국을 지키는 열세 명의 신급 강자들이 오로지 윤구주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는 혼자서 한 개 군을 이끌고 10개국의 백만 대군을 맞섰고 결국 일곱 명의 신급 강자를 무찔렀다.
허나 결국 여자 하나 때문에 패전하고 말았다. 그 여자는 바로 선우아름, 윤구주가 제일 사랑했던 여자였다.
윤구주가 제일 사랑했던 여자는 대전이 끝날 무렵 윤구주에게 세상에서 제일 독하다는 기린 화독을 내렸고 그 화독이 심장을 공략한 바람에 윤구주는 10개국의 강자에 둘러싸여 죽음의 바다에서 패전하고 말았다. 윤구주도 중상을 입고 바다에 떨어졌다.
그 순간부터 화진의 전설이 몰락했다.
추억들이 밀물처럼 전부 윤구주의 머리로 흘러들어왔다.
원망과 분노가 화산처럼 곧 터질 것만 같았다.
그 순간 그는 드디어 자신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
“선우아름, 왜 나를 배신한 거야. 왜 나에게 독을 탄 거냐고.”
이 여자만 생각하면 윤구주의 마음은 칼로 난도질당한 것처럼 아파졌다.
분노의 불길이 야수처럼 그를 덮치려 했지만 결국 그는 이성을 되찾았다.
선우 일가는 화진에서도 제일 큰 가문이고 화진 4대 가문 중 으뜸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선우 일가는 재산이 어마어마하게 많을뿐더러 선우 일가에 강자가 속출하는 것도 다들 알고 있었다.
윤구주가 이 모든 걸 떠올리고 있는데 불로 지지는 것처럼 뜨거운 느낌이 심장에서부터 전해졌고 순간 온몸이 불타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젠장, 기린 화독이 또 도지고 있어.”
체내의 독성이 발작하는 걸 느낀 윤구주는 황급히 내력을 움직여 독성을 잠시 잠재웠다.
일 분쯤 지나서야 윤구주는 간신히 기린 화독을 억제할 수 있었다.
“기린 화독을 단기간에 치료하긴 글렀군.”
“그렇다면 참을 수밖에.”
“화독을 치료하기 전에 절대 내 신분을 들켜서는 안 돼.”
여기까지 생각하자 윤구주는 갑자기 아까 바다에서 자기를 구한 소채은이 떠올랐다.
“기억 상실?”
“좋았어.”
“저 여자는 지금 내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일단은 저 여자 옆에 남아있는 게 좋겠어.”
“게다가 나를 구했는데 가족에게 그런 오해나 받고.”
윤구주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결의를 다졌다. 위풍당당한 화진의 구주왕은 그렇게 기억 상실 환자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6화
몇 분 뒤, 소채은이 짐 정리를 마치고 방에서 걸어 나왔다.
기억 상실인 척하는 윤구주는 자연스럽게 목석처럼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저기, 기억 잃으신 분, 이제 갑시다.”
소채은은 이렇게 말하더니 윤구주를 쳐다보지도 않고 짐가방을 들고는 밖으로 나가며 중얼거렸다.
“다 당신 때문이에요. 당신만 아니었으면 집안의 오해를 사는 일도 없었을 텐데. 이제 집에 가서 뭐라고 설명해요?”
소채은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짐가방을 끌고 밖에 세워둔 하얀색 미니 쿠퍼로 향했다.
짐가방을 트렁크에 실은 후 소채은이 말했다.
“타요.”
기억을 잃은 척 연기 중인 윤구주는 “네”라는 간단한 대답과 함께 차에 올라 문을 닫았다.
차 안은 핑크로 장식했고 향기로웠다.
앉자마자 소채은이 말했다.
“아주 복받은 사람이네. 이 차에 한 번도 남자를 태워본 적이 없는데.”
윤구주는 속으로 웃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내로 갑시다.”
소채은은 차에 시동을 걸었고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소채은은 운전하면서 노래를 들었다.
옆에 앉은 윤구주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몸 안의 기운을 움직여 온몸에 난 상처를 천천히 치유하고 있었다.
소채은은 드문드문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를 돌아봤다. 잘생긴 이목구비에 진한 눈썹과 맑은 눈동자, 어쩜 콧대도 높았다.
‘기억을 잃지만 않았어도 진짜 남신이 따로 없는데. 이런 남자가 내 남친이면 진짜 괜찮겠다.’
남자 친구는 무슨, 가족의 도구로서 곧 중해 그룹의 바람둥이와 결혼을 앞둔 마당에 자기의 행복을 선택할 자유는 없었다.
소채은은 씁쓸하게 웃더니 더는 생각하지 않았다.
차는 계속 앞으로 내달렸다.
여기서 강성시까지 가려면 적어도 5시간은 걸렸다. 고속도로에 다 와 가는데 “쿵”하는 소리와 함께 차 앞쪽 엔진에서 큰 소음이 들려왔다. 그러더니 차에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뭐야? 어떻게 된 거지?”
소채은은 깜짝 놀라 차를 길가에 세워두고 내려서 검사했다.
보닛을 열자 까만 연기가 엔진에서 끊임없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소채은은 연기를 맡고는 몇 번 기침하더니 얼른 뒤로 물러섰다.
“아, 큰일 났네. 차가 퍼졌어요.”
엔진에서 나오는 연기와 치치직거리는 이상 소음에 소채은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촌구석에 차량 정비소가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차 수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아, 재수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소채은은 짜증이 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고물 같은 차를 몇 번 세게 걷어찼다.
이때 윤구주가 차에서 내렸다.
“무슨 일이에요?”
기분이 엉망진창인 소채은은 윤구주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건드리지 마요.”
윤구주는 소채은이 짜증을 내자 아무 말 없이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소채은은 자기가 너무한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차에 생긴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을 탓할 수는 없었다.
소채은이 잠깐 고민하더니 말을 이었다.
“차가 퍼져서 기분이 엉망이네요. 마음에 담아두지 마요.”
윤구주는 그저 “네”하고 대답하고는 망가진 차 쪽으로 걸어갔다.
소채은은 그가 그쪽으로 걸어가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핸드폰을 꺼내 정비소에 전화를 걸어 견인차를 부를 생각이었다.
한편 윤구주는 차 앞쪽으로 걸어가 까만 눈동자로 엔진 상태를 살폈다.
제7화
그는 까만 연기를 뿜어내는 엔진과 회로판 내에서 전해지는 탄 냄새를 맡고는 바로 뭐가 문젠지 알아냈다.
화진의 유일한 구주왕으로서 차가 퍼진 문제는 그에게 너무나도 작은 문제였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트렁크 쪽으로 걸어가 차에 상비된 스패너를 꺼내 나사를 뽑고 엔진 커버를 열었다.
전화를 치던 소채은은 기억을 잃은 사람이 자신의 차 앞에서 이것저것 만지고 있으니 잠시 넋을 잃었다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뭐 하는 거예요?”
소채은이 걸어와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엔진 커버를 따는 윤구주를 쳐다봤다.
“잉?”
“지금 차 정비하는 거예요?”
소채은이 궁금해서 다시 물었다.
윤구주는 여전히 아무 대답도 없이 차만 만졌다.
2분 뒤 윤구주는 안에서 끊어진 두 개의 전선을 연결하고 말했다.
“됐어요.”
소채은은 더 멍한 표정으로 윤구주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렇게 빨리... 고쳤다고요? 진짜?”
윤구주가 그저 “네”하고 대답만 할 뿐이었다.
기억을 잃은 남자가 차를 고칠 줄 안다니, 소채은은 의문이 들었다.
의문을 가진 채 소채은은 빠르게 차로 돌아가 시동을 걸었고 아니나 다를까 차는 시동이 걸렸다. 아까 엔진에서 나던 이상한 소리도 사라지고 더 이상 연기도 나지 않았다.
확실히 고쳐진 차를 보며 소채은은 기뻐했다.
“하하, 몰랐는데 차도 고칠 줄 아네요?”
“혹시 전에 차량 정비하던 사람인가?”
“?”
윤구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전에 차량 정비공이었나보네.”
소채은은 윤구주의 예전 신분을 거의 확정하듯 말했다. 윤구주는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차는 윤구주에 의해 완전히 고쳐졌다.
소채은은 다시 기분 좋게 운전해 윤구주를 데리고 시내로 향했다.
가는 길에 소채은은 윤구주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진짜 기술이 괜찮은데요?”
윤구주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천하의 9주 군신이 차를 정비하는 엔지니어로 불리게 될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한 그림이었다.
고속도로를 타자 소채은의 차는 속도가 붙었다.
이때 뒤에서 패기 넘치는 군용차가 차 페레이드를 하듯 한 줄로 줄지어 다가왔다.
그 뒤로는 수십 대의 탱크가 따라오고 있었다.
이렇게 위풍당당한 군용차를 보고 길에서 달리던 차들이 하나둘 비켜주기 시작했다.
강성시 부근에 주둔해 있는 남부 창용부대의 군용차량임을 다들 알아봤기 때문이다.
창문 너머로 실탄을 장전한 군인들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남부 창용부대는 화진의 10대 부대 중 하나였다.
이곳에 주둔해 있는 부대 책임자의 이름은 박창용이었다.
박창용은 군대에서 전설로 불리는 남자였다. 그보다 더 유명한 건 그가 화진 9주 군신 아래에 있는 4대 유명 장군 중의 한 명이라는 것이었다.
멋지게 열을 갖춘 군용차가 멀리서 다가왔고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소채은과 윤구주 옆으로 지나갔다.
그 군용차들을 보며 소채은이 흥분했다.
“역시 화진 10대 부대 중 하나라니까. 저 기세 좀 봐봐요. 진짜 대범하고 남다르지 않아요?”
윤구주의 시선도 지나가는 남부 창용 부대의 차로 향했다.
“창용이 그놈 내가 죽은 걸 알고 울지는 않겠지?”
전에 가깝게 지내던 좋은 친구를 생각하니 윤구주는 감개무량해지기 시작했다.
제8화
윤구주가 남부 부대의 차량을 보며 감개무량해하는데 소채은이 윤구주의 표정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기억을 잃은 윤구주 씨, 뭘 그렇게 열심히 봐요?”
윤구주는 재빨리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근데 그렇게 넋을 놓고 보고 있다고?”
소채은이 다시 캐물었다.
“그냥 익숙해서 뚫어져라 보는 거겠죠.”
“익숙하다고요?”
“기억을 잃은 사람이 남부 창용부대 차량을 보고 익숙할 게 뭐가 있어요. 혹시 전에 군인이었어요?”
소채은이 캐물었다.
그 물음에 윤구주는 어이가 없었다. 그는 군인만 한 게 아니었다.
윤구주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소채은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내가 봤을 때 당신은 그냥 차량 정비 엔지니어였을 거예요.”
“시내로 돌아가면 꼭 큰 병원으로 데려가서 기억상실증 고쳐줄게요.”
“기억 돌아오면 꼭 차 자주 고쳐주면서 보답해야 해요.”
소채은의 말을 들으며 윤구주는 쓴웃음을 지었다.
3시간 뒤, 드디어 소채은은 윤구주를 데리고 강성시로 돌아왔다.
주변에 즐비하게 서 있는 고층 빌딩을 보며 윤구주는 침묵을 유지했다.
소채은은 시내로 돌아오자 서란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채은아, 지금 어디야?”
전화를 받자마자 서란이 냉큼 물었다.
“베프”의 전화에 소채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 이미 강성시로 돌아왔어. 서란아, 하나 물어볼게. 우리 집안과 아빠가 어떻게 내가 옛 본가로 간 일을 알고 있지? 혹시 네가 일러바친 거야?”
소채은은 바보가 아니었다.
“베프”와 통화를 하고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아빠가 사람을 데리고 옛 본가에 나타났다. 이걸 과연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수화기 너머의 서란이 이걸 듣더니 다급히 해명했다.
“채은아, 미안해. 아버님이 계속 보채서 말할 수밖에 없었어... 채은아, 내 탓 하는 거 아니지?”
서란은 전화에 대고 불쌍한 척해댔다.
소채은은 원래 화가 잔뜩 나 있었지만 “베프”가 먼저 승인하자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말했다.
“됐어. 이번 일은 이렇게 넘기자. 네 탓한 적 없어.”
“고마워, 채은아. 사실 나도 너를 걱정했던 것뿐이야.”
“말해 봐. 지금 어디야? 내가 마중 나가야지.”
서란이 말했다.
단순한 소채은이 곧이곧대로 말했다.
“집에 거의 와 가.”
“아아, 그래.”
“맞다, 채은아. 아버님이 아까 전화하셨는데 네가 낯선 남자와 같이 있다고, 게다가... 진짜야?”
서란이 또 질문을 던졌다.
소채은이 듣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아, 다 오해야. 됐어. 만나서 자세히 얘기해줄게.”
“그래, 채은아. 집에서 기다려. 조금 있다 건너갈게.”
이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화려한 인테리어를 한 방에, 파마하고 호피 무늬 미니스커트를 입은 서란이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방안의 남자에게 요염하게 말했다.
“성훈 도련님, 이미 다 확인했어요. 약혼녀 곧 돌아온다네요.”
“근데 다른 남자와 같이 휴가 간 게 확실한 거 같아요.”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남자는 중해 그룹의 아들 조성훈이었다.
음침한 표정으로 자기 약혼녀가 곧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조성훈은 군말 없이 자기 가방에서 수표를 몇 다발 꺼내 서란에게 던져줬다.
서란은 바닥에 놓인 수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는 말했다.
“성훈 도련님, 저 너무 얕잡아 보는 거 아니에요? 전에 그렇게 많은 정보를 알려줬는데 설마 이 푼돈을 받자고 그랬겠어요?”
조성훈은 이 말을 듣더니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럼 목적이 뭔데?”
서란은 잘빠진 엉덩이를 요리조리 흔들며 걸어오더니 손은 조성훈의 몸 아래로 향했다.
서란이 한 단계 더 들어가려는데 조성훈이 그녀를 한쪽으로 확 밀쳐냈다.
“미안한데, 조씨 가문 문턱 꽤 높아. X 년은 용납 못해.”
조성훈의 말을 들은 서란의 표정이 확 변했다.
“서란아, 다시 한번 말할게. 너와 몇 번 잤다고 해서 네가 나와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마. 한번 X 년은 영원한 X 년이야. 그러니까 선 넘지 마.”
서란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정리했다. 그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요. 나 X 년 맞아요. 근데 X 년이어도 떳떳한 X 년이에요. 당신 약혼녀처럼 내일모레 잘난 중해 그룹 도련님과 결혼하는데 낯선 남자와 몰래 바닷가로 여행 가지는 않는다고요!”
“남녀 단둘이 바닷가에 두세 날을 보냈어요. 성훈 도련님, 약혼녀에게 배신당한 거 알고나 있어요?”
서란이 이 말을 내뱉자마자 조성훈은 서란의 목을 졸랐다.
“이 X 년아, 죽여버리기 전에 다시 한번 말해 봐.”
서란은 목이 졸려도 두렵지 않은 듯 계속 말을 이어갔다.
“죽여요. 차라리 죽이라고요. 하지만 배신당한 건 내가 아니라는 걸 기억해요.”
이 말을 들은 조성훈의 눈빛에 잔인함과 살기가 가득 찼다.
그는 눈앞에서 알짱대는 서란을 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결국 손을 풀었다. 그러고는 서란을 본 체도 하지 않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밖에는 고급 승용차 몇 대와 보디가드가 한줄로 서 있었다.
조성훈이 나오는 걸 보고 바로 예의를 갖춰 불렀다.
“성훈 도련님.”
조성훈은 표정이 어두웠다. 소채은과 낯선 남자가 같이 있는 장면만 생각해도 주먹에서 까드득 소리가 날 정도였다.
“빌어먹을 계집애, 감히 나를 배신하다니, 두고 봐.”
화가 단단히 난 조성훈이 이렇게 벼르더니 고급 승용차에 올라탔다.
“소채은 그 천한 계집애가 사는 곳으로 가.”
“그리고 아빠한테 전화 넣어. 소 씨 집안과의 모든 거래를 중단하라고.”
제9화
소채은은 “베프” 서란과 통화를 마치고는 윤구주를 데리고 스카이가든으로 향했다.
이 곳은 소채은이 세를 들어 지내고 있는 곳이었다.
어릴 때부터 가족의 미움을 받고 지내던 그녀는 진작에 이사를 나와 자취하고 있었다.
“드디어 돌아왔네.”
소채은은 단지 안까지 운전해 한 별장 앞에 세우고는 차에서 내렸다.
윤구주도 따라서 내렸다. 눈앞에 우뚝 솟은 단독 별장을 보고는 괜찮은 집이라고 생각했다.
“저기, 기억 잃은 윤구주 씨, 잘 들어요. 집에 아직 남자를 들인 적이 없어요.”
“그러니 이따 들어가면 아무데나 돌아다니면 안돼요. 알았죠?”
윤구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채은은 그렇게 짐가방을 들고 윤구주와 별장으로 들어갔다.
별장의 도어락을 열자마자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소채은을 향해 덮쳤다.
윤구주는 순간 표정이 변했고 손을 쓰려는데 소채은이 그 까만 물건을 안으며 즐겁게 불렀다.
“까망아, 나 왔다.”
소채은이 안고 있는 건 단단하고 날카로운 이를 가진 체형이 거대한 검은 강아지였다.
아니, 까만색 마스티프였다.
마스티프는 소채은의 품에 안겨 머리를 부비적대더니 멍멍 짖기까지 했다.
이 사나운 마스티프가 소채은에게만은 매우 친절하다는 걸 보아낼 수 있었다.
“까망아, 두날이나 못 봤는데 나 안 보고 싶었어?”
소채은은 마스티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승냥이보다도 사납다는 마스티프는 지금 소채은의 품에 안긴 채 온순한 장난감 같았다.
하지만 소채은의 뒤에 서 있는 낯선 남자를 발견하고는 갑자기 성질을 내며 낮은 소리로 으르렁대더니 매서운 눈빛으로 윤구주를 노려봤다.
까망이가 윤구주를 향해 으르렁대자 소채은이 재빨리 그를 당겼다.
“까망아, 안돼. 저 사람은 우리 친구야. 알았지?”
이 마스티프는 사람 말을 꽤 알아듣는 것 같았다. 주인이 이렇게 말하자 다시 차가운 눈빛으로 윤구주를 노려보더니 낮은 소리로 으르렁대며 머리를 숙였다.
소채은은 조금 더 까망이와 놀아주다가 그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됐어. 이제 알아서 놀아.”
이렇게 말하자 마스티프가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갔다. 가기 전에 윤구주를 향해 날카로운 이을 드러내는 걸 잊지 않았다. 마치 윤구주를 협박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기억 잃은 윤구주 씨, 무서워하지 마요. 까망이가 겉으로는 사나워 보이지만 사실 되게 좋은 애예요. 전제는 까망이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 나도 건드리면 안 돼요.”
소채은이 웃으며 윤구주에게 말했다.
윤구주는 멀어져가는 마스티프를 보며 물었다.
“여자가 왜 이렇게 큰 마스티프를 길러요?”
“잉?”
“기억 잃은 윤구주 씨, 까망이 품종도 알아볼 줄 아네요.”
소채은이 의문스레 물었다.
윤구주는 다시 어이가 없어지려 했다.
‘기억을 잃은 것뿐이지 바보가 된 건 아니잖아.’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혼자 있으면 너무 외롭고 무서워서 친구한테 까망이를 사달라고 부탁했어요.”
“솔직히 말해서 까망이만 있으면 저녁에 잠잘 때 더 이상 무섭지 않더라고요.”
소채은이 말했다.
윤구주는 그제야 소채은이 왜 마스티프를 키우는지 알게 되었다. 혼자서 큰 별장에서 지내는 게 두려워서 일부러 큰 마스티프를 키우는 것이었다.
가족의 미움을 받으면서 가족의 핍박을 못 이겨 억지로 결혼한다니 윤구주는 그런 그녀가 조금 불쌍해 보였다.
“됐어요. 아무 데나 찾아서 앉아요. 나는 좀 들어가서 씻어야겠어요.”
“기억해요. 아무 데나 돌아다니지 마요. 까망이가 물 수도 있으니까.”
“미리 말해드리지만, 까망이는 승냥이도 물어 죽이는 애예요.”
소채은은 좋은 뜻으로 귀띔하고는 씻으러 들어갔다.
윤구주는 혼자서 웃었다.
고작 마스티프 한 마리가 위풍당당한 구주왕에게 위협이 되기는 어려웠다.
그때 윤구주 옆을 지키는 4대 장군 중 한 명인 박창용을 따르는 백호는 앞발로 철을 찢었고 대가와 싸울 만큼 강했다.
그래도 윤구주를 보면 고분고분 고양이처럼 잘 따랐다.
추억을 떠올리자 윤구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걸음을 옮겨 아까 마스티프가 향한 곳으로 걸어갔다.
마스티프는 단독으로 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윤구주는 들어가자마자 피비린내를 맡았고 자세히 보니 마스티프는 거대한 까만 철제 우리안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깃덩어리를 물어뜯고 있었다.
사람이 다가오는 걸 느끼고 7, 8킬로는 족히 되는 놈이 바로 으르렁댔다. 앞발은 조금 구부린 채 피범벅으로 물든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윤구주를 노려봤다.
제10화
윤구주는 미소를 지으며 문 앞에 서서 세상에서 공격성이 제일 강한 견종인 마스티프를 쳐다봤다.
마스티프는 낮은 소리로 으르렁댔다. 음침한 두 눈은 언제든 윤구주를 덮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윤구주는 꼼짝하지 않고 그저 실눈을 뜨고 마스티프를 지켜봤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기운이 윤구주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 기운이 나타나자 방 전체가 갑자기 흔들렸다. 그러자 세상에서 공격성이 제일 강한 마스티프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거대한 몸체를 자기도 모르게 뒤로 빼기 시작했다.
마치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까망아, 무서워하지 마.”
“나는 널 해치지 않아.”
윤구주는 마스티프가 무서워하자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
그러자 마스티프는 너무 놀라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머리도 쳐들지 못했다.
윤구주는 마스티프의 목덜미를 살살 주무르며 말했다.
“가자, 산책 좀 하자.”
이렇게 윤구주는 마스티프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
소채은이 샤워하고 핑크색 츄리닝을 입고 나왔다.
윤구주가 얌전히 집에 있을 줄 알았는데 나오자 윤구주가 보이지 않았다.
“기억도 잃은 사람이 어디 갔대?”
“설마, 길 잃은 건 아니겠지?”
윤구주가 아직 기억을 잃은 상태기도 했고 낯선 곳에 금방 왔으니 소채은은 냉큼 밖으로 뛰쳐나가 윤구주를 찾았다.
밖으로 나가자마자 어이없는 장면이 소채은의 눈앞에 펼쳐졌다.
햇빛 아래 그녀가 반년을 넘게 길들인 까망이가 온순한 양처럼 윤구주의 발밑에 엎드려 있었다.
윤구주는 단지에 설치한 정자 안에 앉아 즐겁게 볕 쪼임을 하고 있었다.
‘미친 거 아니야?’
이 광경을 목격한 소채은은 자기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 사납고 공격성이 강하던 까망이가 기억을 잃은 사람 발밑에 엎드려 있다니, 말도 안 되었다.
“윤구주 씨!”
소채은이 재빨리 달려와 윤구주를 향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들은 윤구주가 잘생긴 얼굴을 돌려 소채은을 향해 웃어 보였다.
“기억도 잃은 사람이 이렇게 막 나오면 어떡해요?”
“말해봐요. 만약에 당신 잃어버리면 어떡해요?”
소채은은 윤구주를 보자마자 호되게 한 소리 했다.
윤구주는 소채은이 이렇게 자기를 관심하자 마음이 따듯해졌다.
“그리고 까망이는 왜 데리고 나왔어요? 까망이 마스티프인 거 몰라요? 세상에서 공격성이 제일 강한 견종이라고요. 그러다 물리면 어떡하려고요.”
소채은이 계속 잔소리를 퍼부었다.
윤구주는 코를 긁적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요. 나는 못 물어요.”
이 말에 소채은은 어이가 없었다.
“뭐라고요? 우리 까망이가 지금 당신을 못 문다고 한 거예요? 정신 놓은 거죠? 말해두는데 우리 까망이 순수 몽골 마스티프에요. 사자도 무서워하지 않는데 당신을 두려워한다고요?”
소채은이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진짜 나는 못 물어요. 못 믿겠으면 봐요.”
윤구주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더니 이내 바닥에 엎드린 까망이의 머리를 톡톡 건드렸다.
머리를 맞은 까망이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가만히 있었고 짖지도 않았다.
이 광경을 목격한 소채은은 자기 눈이 잘못된 게 아닌지 의심했다.
“까망아, 까망아?”
소채은은 다급하게 마스티프를 불렀다.
불쌍한 마스티프는 고개를 들어 소채은을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감히 다가가지는 못했다.
이 모습을 보자 소채은은 더 어이가 없었다.
“이런 독한 사람을 다 봤나. 우리 까망이 어떻게 한 거예요? 왜 갑자기 애가 이렇게 된 거죠?”
윤구주는 억울했다.
“내가 뭘 했다고 그래요. 그냥 데리고 나와서 햇볕 쪼임 좀 한 건데.”
소채은이 반박했다.
“안 믿어요. 우리 까망이 전에는 완전 사나웠어요. 근데 왜 지금 이렇게 순둥순둥해진 거냐고요?”
윤구주가 속으로 씁쓸하게 웃으며 생각했다.
‘나 진짜 아무 짓도 안했는데.’
소채은은 얼른 마스티프에게로 달려가 그를 끌고 별장안으로 돌아갔다.
별장으로 돌아와서도 소채은은 까망이를 계속 옆에서 보살폈다.
오히려 윤구주만 혼자 심심하게 앉아 있었다.
이때, 고급 승용차 몇 대가 소채은의 별장 앞에 멈춰 섰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얼굴에 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