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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지킨 은밀한 관계
결혼 5주년이 되던 그날 밤, 남편은 내 친구랑 우리 침대에서 잤다. 아들의 어린 목소리가 CCTV를 통해 들려왔다. “이모, 엄마는 절대 못 들어오게 문...
Chương (1)
第1章
결혼 5주년이 되던 그날 밤, 남편은 내 친구랑 우리 침대에서 잤다.
아들의 어린 목소리가 CCTV를 통해 들려왔다.
“이모, 엄마는 절대 못 들어오게 문 앞에서 잘 지킬게요!”
김지아는 진수현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가볍게 입 맞췄다.
“아들 참 괜찮네. 정아랑 하나 더 낳을 생각은 없어?”
진수현은 베개로 김지아의 얼굴을 덮으면서 말했다.
“정아 배에 남은 흉터만 봐도 토할 것 같아.”
제1화
수현이와 이혼하던 날, 법원에서 나올 때 하늘은 당장에라도 비를 쏟을 것처럼 어두웠다.
“정아야.”
수현이는 조수석 문을 열며 말했다.
“집까지 데려다줄게.”
아직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뒷좌석에서 다람이가 손목시계를 내밀었다.
“아빠, 이모가 오늘 저녁에 탕수육 해주신다고 했잖아. 장 봐서 집 앞에 계신대.”
수현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림이를 힐끗 봤다.
“먼저 타.”
다람이는 나를 잠깐 흘겨보고 억울한 표정으로 차에 올라탔다.
“괜찮아.”
난 단호히 말했다.
“너희 방해하고 싶지 않아.”
수현이는 고개를 숙인 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저녁에 네가 제일 좋아하는 샤브샤브 먹으러 가도 돼...”
“수현아.”
난 부드럽게 말을 끊었다.
“우리 이혼했어.”
수현이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다가 잠시 눈가가 붉어지더니 금세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래... 근데 헤어져도 잘 지내자고. 게다가 우리 세 식구가 오랫동안...”
“그 식당 두 달 전에 문 닫았어.”
난 차분하게 대답했다.
“내가 그때 얘기했었잖아.”
그 식당은 우리가 대학 시절부터 자주 가던 곳이었다.
두 달 전, 가게 주인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SNS에 올렸을 때도 난 두 번이나 말했다.
하지만 수현이는 바빴다.
그리고 수현이가 시간이 생겼을 때는 이미 가게는 문을 닫았고, 우리 9년의 관계도 그 사이 끝나버렸다.
“수현아, 너랑 다람이 잘 지내. 더는 방해하지 않을게.”
그 말을 남기고 난 짐을 챙겨 택시에 올랐다.
짐은 많지 않았지만, 몸과 마음은 상처투성이였다.
그렇게 난 경주를 떠났다.
수현이의 외도를 처음 알게 된 건 동창 모임 이후였다.
우스운 건 그 상대가 다름 아닌 대학 시절 내 룸메이트였던 지아였다는 사실이다.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일을 끝낸 상태였다.
수현이는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고, 지아는 내 아들과 함께 레고를 맞추고 있었다.
마침 해적선의 마지막 조각을 끼우던 다람이는 지아의 얼굴에 뽀뽀하며 신 나게 말했다.
“이모 최고예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모예요!”
지아는 흐뭇하게 웃으며 다람이를 안으려다 내가 돌아온 걸 보고 팔을 내리며 멈칫했다.
“정아야?”
지아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오늘 안 온다고 하지 않았어?”
난 가방을 내려놓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원래는 더 놀다 오려고 했는데, 다람이가 신경 쓰여서 왔어.”
남편 혼자 아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할까 봐 지아를 불렀던 건 맞다.
그런데 카메라 속에서 그 둘은 침대에 누워있었고, 다람이는 옆에서 문을 지켜주고 있었다.
이때 수현이는 샤워를 마치고 물기 어린 머리를 헝클어진 채 내리고 있었다.
닦지 않은 물방울이 수현이의 등을 타고 흘러내려 수건에 스며들고 있었다.
수현이는 나를 보자 잠시 멈칫하더니, 테이블 위에 있던 컵을 들었다.
“왔네. 잘 놀다 왔어?”
난 수현이와 지아 사이에 흐르는 기묘한 공기를 깨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응, 나쁘지 않았어.”
지아는 당황해 일어서다 발로 쓰레기통을 차버렸다.
그 안에서 몇 개의 사용된 콘돔이 굴러 나왔다.
지아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서둘러 쓰레기를 주워담았다.
“정아야, 네가 왔으니 이제 가볼게. 쓰레기는 내가 버릴게.”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다람이가 지아의 손을 붙잡고 애원했다.
“이모 가지 마세요. 나 아직 이모랑 더 놀고 싶어요.”
제2화
지아는 나와 다람이를 번갈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엄마가 돌아왔으니까, 이모는 이제 가야 해.”
그러자 다람이는 바닥에 앉아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엄마 나가! 난 이모가 엄마였으면 좋겠어! 이모가 엄마가 돼줘!”
겨우 4살인 다람이가 철없이 던진 말이었지만, 그 순간 내 가슴은 찢어지는 듯한 고통으로 아팠다.
지아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애들은 원래 그래. 너무 신경 쓰지 마.”
곁에 있던 수현이가 바닥에 앉아 있는 다람이를 차갑게 끌어올리며 말했다.
“다시 그런 말 하면 밖에 나가서 한 시간 동안 벌 서야 할 줄 알아.”
수현이의 목소리에는 냉정한 위압감이 담겨 있었고, 다람이는 순순히 품에 안겼다.
조금 전까지 소란스럽던 거실은 다람이의 훌쩍거림만 남아 조용해졌다.
난 눈앞에 펼쳐진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보며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우리는 각자의 역할을 유지하며 이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수현이의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고 난 여전히 전업주부로 살아갈 수 있을 터였다.
지아 역시 여전히 내 고민을 들어주며 도와주는 친구로 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람이, 지금은 제멋대로 굴지만 결국 내가 낳은 아들이니 언젠가는 내 편이 되어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수현이를 바라보며 난 내 목소리라고 믿기 어려운 단호한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수현아, 우리 이혼하자.”
그렇게 난 고향 강주로 돌아왔다.
고향이라 부르긴 했지만, 그곳에서 나를 반겨줄 이는 보육원 원장님뿐이었다.
“정아야.”
원장님은 내 손을 꼭 잡고 눈물 글썽이며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려고 그래?”
난 원장님의 손을 감싸 쥐고 발아래 고인 작은 웅덩이를 바라보며 차분히 대답했다.
“다 잘 될 거예요.”
정말 그럴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남편, 아들, 그리고 절친.
내 인생에서 가장 가까웠던 세 사람이 단 하룻밤 사이에 모두 사라져버렸다.
어린 시절처럼 난 다시 혼자가 되었다.
원장님은 나를 꼭 안아주시며 말했다.
“힘들 땐 언제든지 집에 와.”
난 고개를 끄덕이며 출발하려는 찰나 뒤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한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들 몇 명에게 밀려 물웅덩이에 넘어져 있었다.
깨끗했던 하얀 드레스는 이미 흙투성이가 돼 있었다.
원장님은 다가가 아이들에게 호통을 치셨고, 난 자연스럽게 그 여자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 아이는 품 안에 작은 곰 인형을 꼭 안고 있었는데, 흙탕물이 튀어 곰 인형의 얼굴이 더러워져 있었다.
“이거 너한테 중요한 거야?”
그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손가락으로 인형의 얼굴에 묻은 흙을 닦으려 했지만, 오히려 더 더럽게 만들고 말았다.
원장님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아이는 매일 문 앞에서 가족이 데리러 오길 기다리지만, 이젠 돌아갈 가족이 없어.”
그 작은 뒷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문득, 나도 모르게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제가 이 아이를 입양할 수 있을까요?”
그날 문 앞에 서 있던 그림자는 하나에서 둘로 늘어났다.
가족관계 증명서의 한 장이 두 장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난 그 아이에게 강희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집에 도착한 후, 난 따뜻한 물을 받아 희연이의 온몸을 깨끗이 씻겼다.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희연이를 돌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람이는 말썽꾸러기에 항상 밥을 떠먹여 줘야 했고 편식이 심해서 자주 밥상을 엎곤 했다.
반면, 희연이는 말없이 내가 차려준 음식들을 조용히 먹었고 식사를 마치면 스스로 설거지까지 했다.
희연이를 돌보는 건 다람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월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진정한 가족이라는 느낌이 들진 않았다.
정기적으로 충치 검사를 하던 중, 희연이의 어금니 안쪽에 충치가 발견됐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엔 다람이가 떠올랐다.
다람이는 이가 썩어서 난 철저히 단 음식을 금지했다.
그날 다림이가 지아가 탕수육을 해준다고 했을 때도 수현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만큼 수현이는 다람이의 치아 상태에 관심이 없었다.
생각이 너무 길어지자 희연이가 내 팔을 톡톡 두드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 장난기가 발동해 말했다.
“예전에 본 영화에서 입양된 아이가 사실 성인 난쟁이였다는 이야기가 있거든. 그래서 네가 진짜 어린이인지 확인하려면 네 치아를 잘 검사해봐야겠어.”
그 말을 들은 희연이는 처음으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3화
저녁에 희연이가 베개를 안고 내 방문을 두드리며 물었다.
“같이 자도 돼요?”
난 희연이를 침대로 들어 올렸고, 그때 희연이가 살짝 떨고 있다는 걸 느꼈다.
“무슨 일 있어?”
희연이는 이불 속에서 눈만 내밀며 답했다.
“엄마가 말한 그 영화 봤는데... 좀 무서웠어요.”
순간 멍해졌다가 나도 모르게 크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거의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희연이는 이불을 더 끌어올리며 말했다.
“웃지 마요. 엄마.”
그날 이후로 희연이는 자주 나를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희연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으로부터 희연이가 누군가와 싸웠다는 전화를 받았다.
학교로 가는 길에 난 여러 가지 가능성을 떠올려 보았지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희연이는 또래보다 성숙한 아이였고, 감정 조절도 남다른 편이었다.
내가 희연이와 함께 지낸 이후로 흔들렸던 순간은 공포영화 사건 딱 한 번뿐이었다. 항상 차분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여온 아이가 어떻게 싸움을 벌였을까?
교실에 도착하니 선생님은 이미 두 아이를 떼어놓고 있었다.
선생님은 사건의 경위를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새로 전학 온 남자아이가 희연이의 전화 시계 화면을 보고 그 배경에 있는 여자가 자기 엄마라고 우겼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시계를 빼앗으려 했고, 결국 싸움이 벌어진 것이었다.
희연이는 내가 오자마자 펜을 내려놓고 책가방을 챙겨 나에게 다가왔다.
희연이가 다치지 않았고 감정도 차분한 모습에 안도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나에게 달려들며 외쳤다.
“엄마!”
희연이는 짜증 난 듯이 그 아이의 옷깃을 잡아채며 뒤로 밀어냈다.
“야, 콧물 엄마 치마에 묻었잖아.”
그제야 난 방금 엄마라고 부른 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비록 앞니가 빠지고 키가 많이 컸지만, 내 아들 진다람을 알아볼 수 있었다.
다람이는 울어서 눈이 부은 상태로 나를 가리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분이 내 엄마야. 내 엄마를 돌려줘!”
희연이는 똑같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내 엄마는 마라탕을 좋아하고 공포영화를 즐겨 봐. 네 엄마랑은 다르다고.”
다람이는 나를 향해 애원하는 눈빛으로 보며 내 손가락을 붙잡았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건 야채고, 공포영화는 절대 안 보잖아. 맞죠, 엄마?”
난 다람이의 손을 천천히 떼어내고 희연이의 책가방 끈을 어깨에 걸어준 후 볼에 가볍게 키스했다.
“희연아, 오늘은 혼자 집에 갈 수 있지?”
희연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떠나갔다.
다람이는 내가 희연이를 배웅하는 모습을 보고 눈빛이 점점 흐려졌다.
하지만 내가 다람이를 쳐다보자 애써 태연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엄마, 우리 언제 집에 가요?”
그 고집스러운 표정은 정말 수현이와 똑 닮았다.
“아빠는?”
다람이는 고개를 숙이며 신발 앞코만 바라보았다.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요.”
그때 선생님이 휴대전화를 들고 들어오며 말했다.
“수현 씨가 도착하셨어요. 양쪽 부모님이 한 번 만나보셔야 할 것 같네요.”
내 심장이 크게 두근거렸다.
다람이는 선생님과 함께 나가면서도 몇 걸음마다 뒤를 돌아보았다.
난 교실 앞줄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장난을 치듯 입을 열었다.
“왜 엄마가 집에서 야채를 많이 먹는지 알아?”
다람이는 고개를 돌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네가 야채를 한 입도 안 먹으려 해서 엄마가 너한테 영양 균형을 맞춰주려고 일부러 같이 먹어준 거야. 내가 열 입을 먹어야 네가 겨우 한 입을 먹었지.”
“그래서 넌 내가 야채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게 된 거야.”
“사실은 엄마도 공포영화를 엄청 좋아해. 근데 너랑 아빠가 공포영화를 싫어하니까 내가 너희를 맞추려고 다른 걸 봐준 거야.”
다람이의 눈가가 약간 붉어졌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엄마, 이제 야채도 먹고 공포영화도 같이 볼게요, 네?”
제4화
난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더는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았다.
한때는 그들을 사랑했기에 기꺼이 뭐든지 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 이상, 내가 무엇을 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수현이를 만나러 갔을 때 여전히 전화하고 있었고 피곤한 얼굴로 이마를 문지르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수현이가 바쁘게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내 말을 꺼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집에 혼자 남은 희연이가 배고파할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속에 이제는 신경 써야 할 것이 생겼기에 모든 게 하찮게 느껴졌다.
“진 대표.”
난 수현 앞에 서서 형식적인 미소를 지었다.
수현이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고, 상대에게 몇 마디를 더 하고 전화를 끊었다.
“네가 왜 여기 있어?”
“응?”
난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이혼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잖아. 그게 뭐 이상해? 근데 진 대표는 왜 경주에 있는 아들 두고 여기에 와 있는 건데?”
수현이는 순간 말문이 막힌 듯 나를 깊이 쳐다보았다.
나 역시 차분히 수현이의 시선을 맞받아쳤다.
잠시 팽팽한 침묵이 흐른 뒤, 수현이는 먼저 고개를 돌렸다.
“다람이가 널 보고 싶다고 계속 보챘어.”
난 살짝 웃었다.
“걔한테 이미 지아가 있잖아. 날 만나서 뭐 하려고?”
수현이는 갑자기 내 팔을 붙잡고 감정이 북받친 듯 말했다.
“정아야, 나 지아랑 결혼 안 했어. 그때 딱 한 번뿐이었어.”
수현이의 말은 나를 두 해 전 그 밤으로 되돌려 놓았다.
지아는 내가 임신했을 때 입었던 검은색 망사 원피스를 입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수현이는 지아의 얼굴을 베개로 덮어주고 열심히 몸을 섞고 있었다.
그리고 지아는 말했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속일 필요가 있어?”
수현이는 대답했다.
“정아의 흉터를 볼 때마다 혐오감이 들어.”
그날 이후, 수현과 나는 사실상 끝이었다.
설령 같은 침대에 누워도 그건 그저 의무를 다하는 행위일 뿐이었다.
난 담담히 말했다.
“그건 한 번, 두 번의 문제가 아니야. 네가 그 일을 한순간, 우리 사이는 끝난 거야.”
수현이와 난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첫날에 만났다.
오해는 말아 줘.
그건 첫눈에 반한 사랑 같은 게 아니었어.
오리엔테이션 도중, 수현이의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졌고, 난 바로 옆에 있었기에 심폐소생술을 해주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의사는 제때 조치를 취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현이는 고마움에 나에게 밥을 사주겠다고 했고, 심지어 개인적으로 돈을 주려 했다.
밥은 먹었지만 돈은 받지 않았다.
성격이 무뚝뚝한 수현과 나도 친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편이라 우리는 그냥 밥만 먹고 헤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가까워지지 않았다.
수현이는 집안 형편이 좋았고 외모도 준수해서 캠퍼스 내에서 주목받는 인물이었다.
우리 사이를 두고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룸메이트였던 지아는 날마다 이것저것 캐물었다.
하지만 난 나와 수현 사이에 특별한 일이 일어날 리 없다는 걸 확신했다.
우리는 가정환경도 너무 달랐고 성격도 맞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고개만 끄덕이는 사이로 대학교 1학년을 보냈다.
2학년이 시작된 후 수현이가 갑자기 사라졌다.
수업에서도 보이지 않았고 저녁에 운동장에 나가 산책할 때도 수현이가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캠퍼스에서는 여러 가지 소문이 돌았다.
수현이의 어머니가 다른 가정에 끼어든 사람이라는 소문도 있었고 수현이는 어떤 그룹 이사의 사생아라서 어머니가 본처에게 발각되어 결국 외국으로 보내졌다는 이야기였다.
더는 이곳에서 공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난 수현이에게 몇 번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내 마음은 답답했고 무슨 일을 해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밖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스테인리스 창틀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문득 수현이가 떠올라 메시지를 보냈다.
[괜찮아?]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답장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곧바로 휴대폰이 두 번 진동하며 수현이의 답장이 도착했다.
[나랑 술 한잔해 줄래?]
수현이의 어머니는 정말로 다른 가정을 파괴한 여자였고 본처에게 발각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외국으로 떠나지 않았고 어머니는 자살했다.
수현이는 공허한 눈빛으로 그저 병나발을 불며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취하지 않는 걸까?”
난 수현이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수현이의 눈에 비친 건 나뿐이었다.
“정말 취하고 싶어?”
수현이의 목젖이 움직였고 난 수현이의 입술을 덮었다.
그날 밤, 난 눈물을 흘리며 고통 속에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