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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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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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현대물시리어스막장

결혼한 지 3년이 지났다. 나는 내가 완벽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다정하고 배려심이 많았고 아들은 똑똑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날은 ...

Chương (1)

第1章

결혼한 지 3년이 지났다. 나는 내가 완벽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다정하고 배려심이 많았고 아들은 똑똑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날은 모처럼 일을 일찍 마치고 귀가할 수 있는 날이었다. 집에 들어서니 아내는 아기 침대 옆에서 피곤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아내가 너무 안쓰러워서 침실로 안아가려고 다가가는 순간, 갑자기 아내의 휴대폰 화면이 켜졌다. [청하야, 우리 아들 자고 있어?] 제1화 드디어 승진했다. 수년 동안 묵묵히 일만 해왔더니 오늘 마침내 팀장으로 임명된 것이다. 번거롭고 피곤한 일들은 이제 더 이상 내 몫이 아니었다. 이제는 아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아내가 느끼던 가사 부담도 덜어줄 수 있게 된다. 업무 인수인계를 마치고 나는 정말 오랜만에 일찍 퇴근할 수 있었다. 혼자서 아들을 돌보고 있을 아내를 떠올리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일부러 꽃집에 들러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을 샀다. 승진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였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는 아기 침대 옆에 엎드린 채 곤히 잠들어 있었고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아들은 얌전하게 유모차에 앉아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꽃을 옆에 내려놓고 살며시 다가가 아내를 침실로 안아 가려는 순간, 아내 옆에 있던 휴대폰 화면이 갑자기 켜지면서 메시지 알림이 떴다. 나는 아내의 휴대폰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지만, 수년 동안 서로에게 충분한 신뢰를 주었기에 서로의 휴대폰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귀신이 홀린 듯 나는 메시지를 열어보았다. [청하야, 우리 아들 지금 뭐 하고 있어?] 그 메시지를 본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완전히 얼어버렸다. 심지어 나는 내가 언제 보낸 메시지를 아내의 휴대폰이 늦게 받은 게 아닌가 의심까지 해봤다. 하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카톡 프로필 사진과 이름, 그리고 화면을 가득 채운 달콤한 대화 내용은 나의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산산조각냈다. 나는 대학 시절 심청하와 처음 만났다. 우리는 5년간 연애를 했고 졸업과 동시에 결혼했다. 나는 고아였지만 심청하는 나의 집안 배경이나 돈이 없다는 사실에 신경 쓰지 않고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와 결혼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더욱 열심히 일해서 더 나은 삶을 주겠다고 다짐했다. 그해, 나는 일에 치여 심청하에게 소홀했고 그렇게 우리는 첫 아이를 잃고 말았다. 여자아이였다. 그리고 3년이 지나서야 우리는 두 번째 아이를 맞이했다. 장난꾸러기 아들 재민이었다. 아내가 힘들게 아이를 낳은 걸 알기에 나는 더 열심히 일에 매진했다. 모든 고된 일을 도맡아 했고 불평 한마디 없이 동료의 실수를 대신 덮어주기도 하고 상사의 술자리까지 대신하며 나섰다. 그리고 몇 번이나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술을 마시다 위출혈로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그 덕에 거액의 보너스를 받기도 했었다. 오랜 술자리와 업무로 나의 몸매도 점점 변해갔다. 대학 시절 학우들이 나를 과탑 얼짱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지금 거울을 보면 나는 중년의 느끼한 아저씨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직 잠들어 있는 아내를 바라보며 나는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아내의 휴대폰을 뒤적였다. 이건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내의 계정이었고 거기엔 단 한 명의 연락처만 저장되어 있었다. 저장된 이름은 ‘사랑하는 여보’였다. 허...사랑하는 여보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우리는 8년 넘게 함께 했지만, 그녀는 늘 나를 태성 오빠라고 불렀다. 아내가 ‘여보'라고 부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나는 그때의 모습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제2화 첫 번째는 우리가 약혼하고 나서였다. 나는 마침내 대출금을 모아 회사와 가까운 곳에 신혼집으로 쓸 아파트를 마련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반대했고 가족들과 번갈아 가며 나에게 장단점을 설명해주었다. 결국, 내가 산 것은 그녀의 부모님이 20년 동안 살던 낡은 아파트였다.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은 그 아파트를 나에게 팔고 받은 돈과 내 결혼 혼수금을 더해 새로 개발된 강변 대형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때 아내는 내 품에 안겨 달콤하게 ‘여보'라고 불렀다. 그녀는 이 집이 최고의 학군과 가까워서 우리 아이가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거라며 나와 함께 미래를 계획하고 꿈꾸었다. 그때 내 마음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래서 낡은 아파트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니까. 회사와 좀 멀긴 했지만 내가 조금 더 노력해서 차를 사면 출퇴근도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아내가 유산한 직후였다. 그 당시 아내의 남동생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신부 쪽에서 1억 2천만의 혼수금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은 집을 사는 데 돈을 다 써버렸기에 그녀는 나에게 동생의 결혼비용을 대신 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아직 몸조리 중이었던 아내는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나를 간절히 바라보며 내가 들었던 것 중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용히 나를 ‘여보'라고 불렀다. 아내에 대한 사랑과 미안한 마음에 나는 술 접대 때문에 피를 토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그때 받은 프로젝트 보너스 전액과 차를 사려고 모아둔 돈까지 모두 보태서 남동생의 혼수금을 마련했다. 그 두 번을 제외하고 아내는 늘 차갑게 나를 태성오빠라고 불렀다. 나는 늘 그녀가 부모의 남아선호 사상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동생만 신경 쓰는 환경에서 자라서 감정 표현에 서툴고 사랑을 내색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녀도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와 이 ‘사랑하는 여보’가 주고받는 대화는 열정적이고 솔직했으며 그런 말들을 보고 있자니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만약 내가 그녀의 법적 남편이 아니었다면 정말 행복한 세 식구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대화 내용에는 재민이가 처음 웃었던 순간, 처음 기어 다녔던 순간, 그리고 처음 ‘아빠'라고 불렀던 순간을 그 남자와 함께 공유한 기록들이 있었다. 그건 내가 너무 아쉬워하며 놓친 아들의 소중한 성장 순간들이었다. 그 사진들을 보며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옆에 얌전히 앉아 있는 재민을 바라보면서 전에는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던 아들의 모습이 이제는 전혀 닮은 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들의 감각은 매우 예민했다. 재민은 내가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전의 다정한 아빠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느꼈는지 무서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금세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평소 재민의 버릇을 잘 알고 있던 나는 서둘러 아이를 안아 들었다. 그때 아내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곧 깨어날 것처럼 보였다. 나는 급히 메시지를 읽지 않은 상태로 돌려놓고 휴대폰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 “음. 당신 왔어.” 심청하는 눈을 비비며 말했다. 그녀는 내가 재민을 안고 있는 것을 보더니 서둘러 일어나 아이를 받았다. “고생했어. 밥솥에 남은 밥 있으니까 가서 먹어.” 그녀는 항상 이렇게 나와 재민이가 가까워지는 걸 극도로 꺼렸다. 재민이가 나와 더 친해질까 봐 걱정하는 듯 말이다. 전에는 그녀가 정말 내 고생을 이해해서 내가 집에 오면 아이까지 돌보는 수고를 덜어주려는 거라고 생각했다. “먹었어. 오늘은 좀 피곤해서 먼저 잘게.” 지금의 나로서는 어떤 표정으로 그녀와 재민을 대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제3화 나는 들킬까 봐 얼른 방 안으로 들어갔다. 깊은 밤, 심청하와 재민은 이미 잠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다. 그동안 심청하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되새겨보며 나는 이 모든 게 거짓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이렇게 오래 함께했지만, 그녀는 내가 야근으로 늦게 귀가해도 불평하지 않았고 숱한 회식에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매번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좋은 아내가 있으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지금 보면 그게 다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지 않으니 내가 집에 돌아오든, 누구랑 회식하든 신경 쓰지 않았고 사랑하지 않으니 내가 매일 밤 술 냄새를 풍기며 돌아와도, 몇 번이나 피를 토하고 허약해진 모습이었어도 일부러 모른 척했다. 그걸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었다. 나는 몰래 심청하의 휴대폰을 가져와 그녀의 보조 번호를 확인하고 둘의 채팅 기록을 전부 백업해 두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보’라는 계정을 열어 꼼꼼히 살펴보았다. 상대도 부계정을 쓰는 것 같았다. 프로필 사진은 까맣게 되어 있었고 이름은 GQ, 카카오스토리에는 재민의 사진 외에 다른 유용한 정보는 없었다. 카톡을 닫고 다른 것들을 살펴보니 심청하의 계좌에는 매달 GQ로부터 600~1000만 원씩 입금받은 기록이 있었다. 카드에는 잔액이 5억6천만 정도 있었다. 그걸 보며 나는 나 자신을 바보라고 욕했다. 허허…. 심청하는 이렇게 돈이 많았던 거야. 내가 몇 년 동안 힘들게 모은 몇천만 원을 좋게 봐줬다니 너무 웃기잖아. 씁쓸한 마음을 억누르며 나는 입금 기록을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평소처럼 일어나 두 사람의 아침을 준비했다. 그리고 문을 나서기 전에 갑자기 몸을 돌려 그녀에게 말했다. “참, 청하야. 처남도 이젠 그 돈을 갚을 수 있겠지? 얼마 전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는데 그 친구가 좋은 프로젝트를 하나 가지고 있더라고. 그래서 나도 한번 해볼까 해서. 좀 어려우면 먼저 1억만 돌려줘도 괜찮아.” 말을 끝내자마자 그녀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나는 그녀가 입을 열기 전에 먼저 막았다. “회사 늦겠다. 처남한테 꼭 말해줘. 나 먼저 간다.” 집을 나서자마자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심청하의 남동생은 그저 사고만 치는 사람이어서 그동안 나도 얼마나 많이 수습해줬는지 모른다. 그러니 그가 돈을 갚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진지한 요구에 심청하는 과연 자기 돈을 쓸 것인가 아니면 그녀가 그토록 사랑한다는 동생을 희생시킬 것인가. 아니면 또다시 상냥하게 ‘여보’라고 부르면서 나 스스로 방법을 찾게 할 것인가?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보니 거실 소파에는 심청하의 부모님이 앉아 있었다. 내가 집에 들어왔지만, 그들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는 다가가며 말했다. “아버님, 어머님 오셨어요.” 윤숙희는 나를 흘겨보며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직설적으로 말했다. “듣자 하니 승진했다던데 월급은 안 올랐나? 나이 서른이 넘도록 저축도 없이 무슨 일만 생기면 처남한테 돈 달라고 하니 참으로 너무 한심하네. 벌레가 용이 될 리 없잖아. 그러니 남들처럼 투자 같은 건 꿈도 꾸지 말게. 그래서 난 처음부터 청아가 자네 같은 무능한 남자랑 결혼하는 걸 반대한 거야.” 윤숙희는 언제나 나에게 직설적으로 말했고 한 번도 말을 가린 적이 없었다. 이것보다 더 심한 말도 나는 청하를 위해 몇 번이나 참고 넘어갔다. 하지만 좀 놀랍긴 했다. 윤숙희가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까지 알고 있다는 게 말이다. 제4화 “맞아요, 승진했어요. 월급은 아마 다음 달부터 오르겠죠.” 아이를 안고 있는 심청하와 그 옆에 가지런히 놓인 짐가방을 보자마자 나는 그 패턴을 단번에 알아챘다. 매번 그랬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심청하는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리곤 했다. 그들은 내가 심청하와 아이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내가 먼저 머리를 숙이고 심청하를 데리러 가서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이게 했다. 역시나 윤숙희는 또 나를 비난하며 깎아내렸다. “그 돈은 자네가 알아서 해결하게. 누나가 동생을 도와주는 건 당연한 거야. 그리고 준 돈을 다시 받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창피한 일이지.” 옆에 앉아 있던 심진수는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끄고는 짜증스럽게 말했다. “청하랑 아이는 내가 데려가마. 잘 생각하고 우리를 찾아와.” 윤숙희도 서둘러 일어나더니 심청하의 짐을 들고 재빨리 문밖으로 나섰다. “빨리 갑시다. 이 집은 작고 후져서 해도 안 들어오는데 청하랑 재민이가 어떻게 여기서 살았는지 몰라.” 과거에 이 집을 나에게 팔기 위해 얼마나 치켜세웠는지는 이미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심청하가 아이를 안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심청하가 나를 그저 이용만 하고 사랑이란 전혀 없었다는 걸 까맣게 몰랐으니. 게다가 요즘은 그마저도 숨기려 하지 않고 있지 않은. 가족의 따뜻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던 나는 결혼 후에도 그저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가정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이 한심한 일가족은 거머리처럼 내게 기대어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해왔다. 그렇다면 나도 더는 참을 이유가 없었다. 심 씨네 식구들이 떠난 후 나는 집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재민은 아직 너무 어려서 머리카락을 찾지 못했지만, 휴지통에서 심청하가 재민에게 잘라준 손톱을 발견했다. 나는 손톱을 모으고 재민이 자주 쓰던 젖꼭지 같은 물건도 챙겼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나의 샘플과 함께 병원에 보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집문서를 찾아내고 부동산에 집을 내놨다. 중개인에게 열쇠를 넘긴 뒤, 나는 회사에 사내 기숙사를 신청했다. 간단히 짐을 챙기다가 문득, 이 집에서 3년 동안 내가 가진 물건이 너무나 적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혼 초기에는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결혼 후에 심청하가 일을 나가지 않겠다고 해서 나는 그녀의 결정을 존중했다. 나는 모든 월급을 심청하에 주었다. 혹시나 살림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그녀 입장에서는 말하기 어려울까 봐 신경 썼다. 그때 나는 혼자 감동하며 그녀가 나를 위해 기꺼이 가정으로 돌아와 전업주부가 되기로 한 이상, 절대 그녀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나는 출근할 때 입는 정장 두 벌과 집에서 입는 편안한 옷 한 벌 외에 나 자신을 위해 사 본 것이 없었다. 업무 관련 서류와 일상적인 세면도구 외에 나의 소지품은 캐리어 하나에 다 들어갔다. 기숙사에 짐을 풀고 난 뒤, 나는 묵묵히 병원의 결과를 기다렸다.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아픈 건 피할 수 없었다. 재민은 내가 어린 시절에 못 받았던 아버지의 사랑까지 배로 쏟아부으며 키워온 아이였으니까. 제5화 그렇다면 재민의 아빠는 누구일까? 심청하는 별로 친구가 없는 것 같았고 예전 동창들과도 거의 연락을 하지 않는 듯했다. 내 기억으로는, 심청하는 가끔 친정에 들르긴 했을 뿐 그 외에는 외출도 거의 하지 않았다. 딩동. 휴대폰 알림 소리가 내 생각을 끊었다. 심청하였다. 하긴 심 씨네 집안도 가만히 있지 못할 만했다. 예전에 심청하가 친정에 갔다 하면 거의 이틀이 지나기 전에 나는 선물을 들고 찾아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5일이나 지났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으니. 심청하의 친정집은 그녀의 부모님과 동생네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꽤 널찍한 편이었다. 하지만 심청하와 재민이가 들어가면 약간 비좁았다. 더군다나 그녀의 부모님 인식 속에 시집간 딸은 다른 집의 사람이었다. 집에 도움을 주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너무 오래 친정에서 공짜로 지내는 것은 또 싫어했다. [태성 오빠, 요즘 바빠? 왜 집에 안 가?] 심청하의 메시지가 눈에 확 들어왔다. 나는 분명히 승진 소식을 심청하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다음 날 윤숙희는 곧바로 찾아와서 승진해서 월급이 올랐는지 물어보았다. 잠시 고민하다가 나는 며칠 휴가를 내서 심청하를 몰래 따라다니려 했던 생각을 포기했다. 나는 인터넷에서 꽤 비싼 탐정을 고용해 정보를 보낸 후, 보증금을 걸고 조용히 기다렸다. 심청하의 친정 쪽은 며칠 더 시간을 끌어야 할 것 같았다. [네 동생, 돈은 좀 모았어?] 메시지를 보냈지만 심청하는 답장이 없었다. 아마도 내가 그녀가 준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고 눈치 없는 행동을 했다고 화가 나서 말도 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사흘이 지났지만 사설 탐정에게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심청하는 며칠 동안 친정에 콕 박혀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들에게 뭔가 일거리를 줘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심청하의 남동생 심승우가 그때 나에게 쓴 차용증을 법원에 제출했다. 심청하만 있으면 나를 계속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때 심승우는 나를 달래려고 대충 차용증을 써줬었다. 그 집안사람들은 다 똑같이 자만하고 무지했다. 법원의 소환장이 심씨 가문에 도착하자 집안은 순식간에 발칵 뒤집혔고 윤숙희, 심청하, 심승우는 번갈아 가며 전화를 걸어왔다. 욕설을 퍼붓거나 심청하와 재민을 빌미로 협박하는 내용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청하는 자기 돈을 꺼내서 심승우의 빚을 메꿀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돈 받을 생각을 굳혔다는 걸 알고 난 윤숙희는 심청하를 계속 몰아붙였다. 결국, 심청하는 그 집에서 더 이상 못 버티고 다음 날 새벽 일찍 재민을 데리고 몰래 나갔다. 탐정은 심청하를 계속 따라다녔고 이틀 후 드디어 유용한 정보를 보내왔다. 사설 탐정이 보낸 자료를 읽고 나서 나는 깜짝 놀랐다. 심청하가 바람난 상대는 바로 우리 회사의 전무인 진준규였기 때문이다. ZQ가 도대체 누구일까 싶어서 내가 아는 성이 Z로 시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생각해 봤지만, 진준규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진준규는 사실 별 능력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회사 전무 자리까지 올라간 건 엄 회장의 딸과 결혼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설 탐정에게 진준규를 계속 조사해 보라고 했다. 진준규와 엄하온 사이에 다섯 살짜리 딸이 있다는 건 회사 전체가 다 아는 사실이었기에 자녀가 있는 동료들에게 조금만 물어보면 그들의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을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