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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또 다른 빛은 나였다
고작 10살밖에 안 되던 난 유흥가에 버려졌었다. 그런 나를 유남준이 살려줬었다. 평생 옆에서 지켜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어느덧 15살이 되어 난 심창민...
Chương (1)
第1章
고작 10살밖에 안 되던 난 유흥가에 버려졌었다.
그런 나를 유남준이 살려줬었다.
평생 옆에서 지켜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어느덧 15살이 되어 난 심창민을 만나게 되었다.
그 역시 평생 옆에서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내 삶의 빛과 같았던 그 두 사람은 직접 나를 바다로 던져버렸다.
두 사람의 백월광을 위해서...
제1화
풍덩-
난폭하기 그지없는 그의 손에 난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로 빠져버렸다.
떨어지는 그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유람선 갑판에서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바닷속에서 아등바등하고 있는 나의 생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채로.
난 본능적으로 허우적거렸고 젖 먹던 힘으로 살려달라고 외쳤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짜고 씁쓸한 바닷물뿐이었다.
“살려주세요.”
“제발 좀... 나 좀... 살려줘...”
내가 구조요청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더욱더 흥미진진한 빛을 드러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바닷속으로 빵을 던지거나 와인을 붓기도 했다.
뭐가 그렇게도 재밌는지 하나같이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바닷속에 있는 내가 존엄이 있는 인간이 아니라 재미를 제공하는 노리개인 듯 말이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난 서서히 사지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종아리에 쥐까지 나면서 온몸이 저 깊은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난 그때 갑판에 서 있는 두 남자가 어렴풋이 보였다.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와 나한테 새 삶을 선물해 준 남자.
그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를 덤덤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평생 나한테 잘해주겠다고 약속했었던 남자.
그는 세상 다정한 모습으로 다른 여자를 품에 안고 있었다.
주위 사람과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잔인하게도 그 얼굴에는 희롱과 비웃음이 가득했다.
너무 힘들었다. 마음도 힘들었고 몸도 그에 만만치 않게 힘들었다.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있고 싶었다.
잔잔하게 파도치고 있는 바다는 마치 엄마의 품과 같아 긴장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자장가를 불러주면서 조심스레 몸을 흔들거리던 엄마의 품 말이다.
난 ‘엄마의 품’에서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입꼬리도 슬그머니 올라가 있었다.
‘엄마의 품’에 안겨 있는 난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다.
그 사람들이 나한테 진심인지 아닌지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난 그냥 ‘엄마의 품’에 기대어 편안하게 자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잔인하게도 그 편안함은 잠시뿐이었다.
나지막이 얘기를 나누고 있는 소리에 난 마지못해 두 눈을 다시 떴다.
눈초리를 파르르 떨면서 천천히 눈을 떠 보니 온통 하얀색이었다.
기억을 잃은 듯, 난 머리가 하얘진 채로 내 이름마저 알 수 없었다.
눈을 뜬 나를 보고서 나지막했던 소리는 더욱더 또렷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환자분 깨어나셨어요! 어서 보호자들께 알려드리세요!”
“다시 한번 체크하고 본격적인 치료에 들어가겠습니다.”
난 병상에 가만히 누워 몸을 의료진에게 맡겼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나에게 물을 먹여주었다.
차가운 물이 바짝 마른 목구멍을 타고 들어오자 난 그제야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
마침내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난 유남준의 파트너로 유람선에서 열게 된 이연희의 생일파티에 참석했었다.
어느 정도 파티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자 주인공인 연희가 내기를 제안했었다.
남준과 심창민 두 사람 사이의 내기에 나랑 연희가 베팅으로 정해졌었다.
지는 쪽의 파트너가 아무런 보호장치도 없이 바닷속으로 뛰어 들어가 5분 동안 있는 것이었다.
생사는 오로지 운에 맡긴 채로.
극한을 추구하는 연희와 달리 난 이런 부질없는 일에 목숨까지 걸고 싶지 않았었다.
하지만 남준과 창민은 변태에 가까운 연희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나의 의사를 외면한 채 나를 베팅 자리에 앉혔었다.
한 사람의 생사가 달린 일인데 내기는 의외로 간단했다.
‘짓고땡’으로 3판 2승제로 승부가 갈리는 게임이었다.
난 애절한 눈빛으로 남준을 바라보면서 그가 이성적으로 움직이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남준은 나한테 시선조차 주지 않았고 오로지 들고 있는 카드만 바라보았었다.
난 마지막 동아줄을 잡고서 창민을 바라보았으나 그의 두 눈에는 오로지 연희뿐이었다.
창민은 비웃는 모습으로 나를 한 번 보더니 입꼬리를 ‘씩’하고 올렸었다.
그리고 한다는 말이...
“수아야, 그렇게 벌벌 떨지 마. 남준이가 이길 수도 있잖아.”
그렇다, 두 사람은 이미 내기를 두판 했고 서로 동점인 상황이었다.
난 또다시 희망을 안고 남준을 바라보았다.
심지어 일생의 행운을 하찮기 그지없는 이번 내기에 올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남준은 카드를 엎으면서 스스로 패배를 인정했었다.
그 순간 믿어지지 않는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었다.
물론 나 역시 그 상황이 믿어지지 않아 두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승리욕이 강하기로 소문난 남준의 입에서 ‘내가 졌어’라는 소리가 나왔으니 말이다.
그때 창민은 피식 웃으면서 확인 사살을 했었다.
“수아야, 이거 참 미안하게 됐네? 이번 판은 내가 이긴 것 같거든.”
알 수 없는 좌절감에 난 온몸이 나른해졌고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만 같았었다.
연희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면서 손뼉까지 쳤었다.
세상 매혹한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멘트도 날렸었다.
“수아 씨, 제가 이기게 돼서 미안해요. 그래도 내기는 내기이니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게 맞겠죠?”
“자, 다들 옆으로 좀 비켜줘. 전망이 가장 좋은 자리에서 승리한 기분을 만끽하고 싶단 말이야.”
이윽고 두 경호원이 다가와 나를 강제로 끌고 갔었다.
남준의 앞으로 지나가던 그 찰나, 난 남준의 옷자락을 힘껏 잡아당겼었다.
바닥이 난 희망을 다시 끄집어 올리면서 살려달라고.
“오빠... 남준 오빠... 나 수영할 줄 몰라... 제발 나 좀 살려줘...”
그때 남준은 덤덤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큰 손으로 나의 손등을 감쌌었다.
“수아야, 오빠가 졌어. 내기는 내기니깐 지켜야 하지 않겠어?”
무더운 여름이었으나 난 온몸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추웠었다.
말라 죽은 고목과 같은 난, 그렇게 두 남자의 손에 바다로 빠져버리게 되었었다.
해면과 충돌하면서 난 바로 머리가 어지러워졌고 관자놀이가 터지는 것만 같았었다.
내 삶의 빛과 같았던 그 두 사람은... 평생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었던 그 두 사람은...
죽음의 신처럼 한겨울의 칼바람과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만 했었다.
그 순간 난 전례 없는 절망을 뼛속 끝까지 느끼게 되었었다.
제2화
지금에 와서 다시 떠올려도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무섭고 한스러운 일이었다.
다시 병실로 돌아와서...
병실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었다.
남준과 창민이 잇달아 들어왔고 두 사람 뒤에는 연희도 함께 했었다.
연희는 병상 끝자락에 자리 잡고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수아 씨, 미안해요. 이게 다 제 탓이에요. 괜히 내기를 하자고 해서 이런 사달이 난 거잖아요.”
“참 분수도 없이 제가 너무 한 것 같아요. 수아 씨 병원비는 제가 다 책임질 테니 부디 저 좀 용서해 줬으면 좋겠어요. 이번 일로 저한테 억한 감정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부드러운 모습으로 마음을 다해 사과하고 있는 듯한 연희였다.
유람선에서 말도 안 되는 내기를 제기했었던 악마와는 달리 말이다.
난 머리가 윙윙거렸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바늘이 동시에 머리를 찌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천천히 눈을 감고 이를 악물어야만 그 고통을 잠시나마 무마할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고통을 이기고자 했었던 나의 본능적인 행동은 남준과 창민의 눈에 달리 보였었다.
연희를 증오하고 절대 용서하지 않는 것으로.
남준은 나의 병상 곁에 서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차가운 모습으로 나를 내려다보았었다.
그가 보는 앞에서 죽을 뻔했었지만, 아무런 파장도 일으키지 못한 나였다.
예전의 남준이는 분명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고작 10살밖에 되지 않았던 난 유흥가로 버려졌었다.
그때 아빠는 나한테 붉은색 장미를 주면서 나지막이 당부했었다.
“수아야, 아빠 말 잘 들어.”
“여기서 가만히 기다렸다가 네가 들고 있는 이 꽃을 가져가는 사람이랑 가면 돼. 알았어?”
난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유를 묻지 않았었다.
부드러운 모습으로 상냥하게 말하는 아빠의 모습이 처음이라 당황함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아빠는 내가 고개도 끄덕이지 않고 대답도 하지 않자 조급해지셨고 그 어리고 여린 나를 미친 듯이 흔들었었다.
밀려오는 통증에 난 정신을 차렸었고 익숙한 아빠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었다.
‘그럼, 그렇지... 이게 우리 아빠의 본모습인데...’
그렇다, 우리 아빠는 허구한 날 술을 마시고 도박까지 하고 심지어 가정 폭력까지 서슴지 않는 가장이시다.
불쌍한 우리 엄마는 가정 폭력으로 돌아가셨고 남겨진 나는 아빠의 짐이 되었었다.
따라서 아빠는 짐인 나를 버리면서 한몫 챙길 생각이셨다.
난 나와 똑같이 붉은 장미를 들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누군가가 다가와 붉은 장미를 가져가면 무조건 그 사람 따라서 가야만 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이를 불문하고 바로 유흥업소로 팔려 들어가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때 나의 앞을 지나가는 사람은 많았으나 단 한 명도 걸음을 멈춰 서지 않았었다.
물론 내가 들고 있었던 붉은 장미를 가져가는 사람도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빠는 서서히 조급해지셨고 화까지 나셔서 어린 나한테 온갖 욕설을 퍼부었었다.
나 같은 건 짐밖에 안 된다면서...
나 같은 건 죽어야 한다면서...
나 같은 건 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면서...
아무도 나를 선택하지 않자, 아빠는 놀라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던 나를 악마의 문턱으로 끌고 갔었다.
‘내 삶이 이대로 끝을 보겠구나!’ 하던 그때 한 소년이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와 꽃을 가져갔었다.
소년은 덤덤한 모습으로 그의 뒤에 있는 경호원에게 지시를 내렸었다.
이윽고 경호원이 다가와 아빠랑 무엇인가 얘기를 주고받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는 양손 넉넉히 돈을 챙기게 되었었고 연신 허리까지 굽혔었다.
딸인 나를 전혀 안타까워하지 않은 채 우리가 떠나는 것을 함박웃음까지 지으면서 좋아하셨다.
난 그렇게 소년과 함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었다.
소년은 나한테 글을 가르쳐 주었고 예의범절까지 일일이 알려주었었다.
하지만 그날이 지난 뒤로 난 그 소년을 다시 만나지 못했었다.
그렇게 3년이 흐르고 나서 난 3년 전보다 한껏 밝아진 모습으로 그 소년을 다시 만나게 되었었다.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소년은 전과 다름없이 덤덤한 얼굴이었지만, 나를 보게 된 순간 두 눈에 빛이 반짝거렸었다.
그 만남으로 난 소년의 이름이 유남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었다.
“앞으로 남준 오빠라고 불러.”
다시 만나게 된 소년을 난 ‘남준 오빠’라고 부르면서 10년을 함께 했었다.
“수아야, 넌 내가 10년 동안 키운 사람이야. 앞으로 오빠가 평생 널 지켜줄 거야. 그 누구한테도 상처받지 않게 괴롭힘 받지 않게 애지중지 널 지켜줄 거야.”
하지만 남준은 어느 한 순간부터 나한테 했었던 약속의 여주인공을 연희로 두고 있었다.
내가 죽음의 문턱으로 들어섰는데도 남준은 연희를 위해 주장하고 있었다.
“수아야, 연희한테 뭐라고 하지 마. 과음으로 잠시 좀 흥분한 것뿐이었어. 네가 좀 이해해 줘.”
시종일관 차갑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입술을 사리물고 있는 남준이었다.
난 그런 남준의 얼굴에서 그 어떠한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목이 하도 말라서 말하고 싶어도 소리가 나지 않았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남준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언짢은 듯이 말했다.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 남준의 뉘앙스에서 난 바로 알 수 있었다.
“한수아.”
“투정 부리지 마!”
그렇다, 나의 모든 고통은 남준에게 있어서 한낱 보잘것없는 투정에 불과했다.
난 손끝을 힘껏 움켜쥐면서 손톱이 살을 파고 들어가는 고통을 느꼈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덜 아플 것만 같아서...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방법은 남준이가 알려준 것이었다.
투정 부리는 것이 아니라고 화가 난 것도 아니라고 이렇게 그냥 넘어가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을 살짝만 벌려도 목구멍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만 같아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보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창민은 슬슬 언짢기 시작했는지 마침내 입을 열었었다.
티끌만 한 죄책감마저 완전히 사라져 버린 채 나를 윽박지르기 시작했었다.
“한수아, 투정도 정도껏 부려야 귀여운 거야.”
“연희가 미안하다고 직접 사과까지 했잖아. 괜찮다고 말하면 어디 덧이라도 나?”
“네가 무슨 국가 보물이야? 그깟 장난도 할 수 없는 거야? 주제 파악 똑바로 해.”
“남준이 밑에서 10여 년 동안 지내면서 배운 게 고작 투정뿐이야?”
제3화
나를 바라보는 창민의 눈빛은 보이지 않는 비수와 같았다.
그 비수는 나뿐만 아니라 나한테 평생 옆에서 지켜주겠다고 했었던 그 자신도 소리 없이 찌르고 있었다.
창민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 건 남준의 성인을 축하하는 생일파티였다.
그날, 남준은 나를 유씨 가문 고택으로 데리고 가서 가족들에게 소개해주었었다.
그때 남준은 세상 따뜻한 말을 했었다.
“앞으로 수아는 유씨 가문의 일원으로 우리와 함께 지낼 거예요.”
“수아는 제가 옆에서 끝까지 책임지고 지켜줄 사람이에요.”
게임을 하고 있던 창민은 그 말을 듣자마자 게임에서 눈을 떼고 나한테로 고개를 돌렸었다.
위아래로 나를 한참이나 훑어보기까지 했다.
불편한 시선을 느끼고 있던 그때 창민은 입꼬리를 올리면서 입을 열었었다.
“남준이 입에서 나온 말이니 나 역시 수아 너를 내 사람으로 여기면서 지낼 거야.”
“수아야, 나도 너 지켜줄게.”
창민의 말을 끝으로 모든 좋고 나쁜 시선들이 나에게로 쏟아졌었다.
조금 전 창민과 같은 시선, 질투심이 가득한 시선, 부러워하는 시선...
난 순간 어찌할 바를 몰라 애꿎은 손만 잡아당겼었다.
그러나 창민은 핸드폰을 버리고서 바로 커다란 손으로 나의 손을 감싸면서 말했었다.
“수아야, 오빠랑 정도 쌓을 겸 나가서 놀자.”
이윽고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창민은 나를 차로 밀어 넣고서 도시 안을 누볐었다.
만약 남준의 재촉 전화만 아니었다면 창민은 나를 바다로 데리고 가려고 했었다.
차에서 내릴 때 창민은 나의 얼굴을 꼬집으면서 진지한 모습으로 말했었다.
“수아야, 남준이 말고 나랑도 좀 놀아줘. 나도 좀 바라봐줘. 나도 네 오빠야.”
그 뒤로 난 남준과 한집에 살았고 창민은 거의 매일 집으로 찾아왔었다.
나를 데리고 자주 놀러 갔었던 창민이었다.
국내에서 더 이상 놀 곳이 없자, 창민은 나를 데리고 해외까지 갔었다.
대학 졸업식이 열리던 그 날에 창민과 남준은 나의 졸업을 축하해주고자 직접 학교로 찾아오기도 했었다.
난 그렇게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공주님’처럼 지냈었다.
그리고 그날, 창민은 바닷가에서 나를 위해 밤새 폭죽을 터뜨려주었다.
물론 고백도 했었고.
순간 마음이 미친 듯이 흔들린 건 사실이었다.
창민의 고백에 입을 열려고 하던 그때 커다란 손이 나를 입을 막아버렸었다.
남준이었다.
그의 기운이 나를 가득 감싸 안았고 더 이상 웃지 않는 창민의 얼굴이 시야로 들어왔었다.
남준은 그때 나지막이 말했었다.
“수아 아직 어려. 연애하기에는 아직 미숙하다고.”
“창민아, 순진한 수아 괴롭히지 마.”
그 말에 창민은 고개를 푹 떨구면서 상처받은 모습이 역력했었다.
난 처음으로 보는 창민의 모습에 가슴이 살짝 미어졌으나 남준이가 나를 막고 있는 바람에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난 그날 뒤로 창민과 한없이 차가운 사이가 될 줄 알았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창민은 전과 다름없이 집으로 찾아와 나를 데리고 나갔었다.
그리고 남준 역시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리지 않았었다.
우린 그렇게 달라진 것 하나 없는 모습을 평범한 시간을 보냈었다.
연희가 돌아오기 전까지...
연희가 돌아오고 난 뒤 난 창민을 자주 볼 수 없었고 남준 역시 집으로 자주 돌아오지 않았었다.
그 집은 그렇게 나 혼자만의 ‘집’이 되어 버렸었다.
난 겨우 입술을 핥고서 어렵게 입을 열었다.
“화나지 않았어.”
겨우 여섯 글자밖에 안 되는 말이지만 난 목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느끼게 되었었고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창민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면서 표정도 약간 누그러들었다.
“아니면 됐어. 수아야, 너 회복하고 나서 오빠랑 같이 나가서 놀자.”
난 입술을 사리물고서 덤덤한 표정으로 창민을 바라보았다.
창민은 나한테 고백한 뒤로 내 앞에서 ‘오빠’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었다.
내가 그를 ‘오빠’라고 부른 것도 싫어하고 부르지 못하게 했었다.
창민은 내가 그를 오빠라고 부르는 것보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좋아했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봄날의 햇살이 온몸을 스쳐 지나가는 것 같다면서.
연희가 돌아온 그 날에도 난 창민의 ‘요구’대로 룸에서 그의 이름을 불렀었다.
그러나 창민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마자 바로 안색이 어두워졌었다.
“수아야, 오빠라고 해야지.”
그렇게 나의 의사와 달리 창민은 또다시 자기를 ‘오빠’ 자리에 두기 시작했었다.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서 말이다.
난 지금 가슴 한쪽 곁이 너무 답답하고 아프다.
그때 그 기억들이 하도 예쁘고 달콤해서 아픔이 배로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그 모든 모진 일을 겪고서도 예전의 삶이 자기도 모르게 그리워질 만큼.
그러나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의도치 않게 계속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남준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전보다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서로 오해 다 풀었지? 수아야, 푹 쉬고 있어.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고 푹 자기만 해.”
푹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괜찮아질까?
푹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없던 일로 되는 걸까?
난 고개를 끄덕였지만,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남준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남준이가 떠나자마자 창민도 회사의 부름에 일어나게 되었다.
그렇게 병실에는 나와 연희만 남게 되었다.
나를 싫어하고 가장 먼저 떠나야 할 사람이 연희라고 생각했었는데, 마지막까지 병실에 있어서 다소 의외였다.
연희는 귀국해서 나를 보자마자 증오하고 싫어하는 감정을 적나라하게 보였었다.
그때 그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내 머릿속에 남아 있을 정도로 말이다.
도도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하찮은 개미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죽였었다.
지금과 다름없는 눈빛으로.
난 고개를 돌려 연희와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희의 목소리는 그대로 나의 귀를 찌르며 들려왔다.
“한수아, 너 조상님 꽤 잘 모시나 봐? 그런 일을 겪고서도 이렇게 버젓이 살아있다니... 나 원 참!”
“근데 살아 있는 것도 뭐 나쁜 건 아니야. 살아 숨 쉬면서 옆에서 잘 지켜봐. 나를 대체하려고 했던 네가 얼마나 하찮고 어리석었는지!”
“아니에요. 그건 오해예요. 난 단 한 번도 연희 씨 자리 대체하려고 한 적 없어요.”
나의 해석에 연희는 비아냥거리면서 윽박질렀었다.
“그래? 근데 왜 빈대처럼 걔들 곁에 붙어있는 거야? 무슨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는 둥 그딴 소리 하지도 마.”
“한수아, 너 아직도 모르겠어? 설마 네가 불쌍해서 남준이가 널 데리고 온 줄 알아?”
“다시 한 번 잘 봐봐. 너... 나랑 꽤 닮은 것 같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