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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혼만 남게 된다면
아들이 대학 수능을 마친 날, 나는 암 말기로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다만 남편이란 인간은 호텔에서 첫사랑을 끌어안고 있었다. “우리 자기 조만간...
Chương (1)
第1章
아들이 대학 수능을 마친 날, 나는 암 말기로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다만 남편이란 인간은 호텔에서 첫사랑을 끌어안고 있었다.
“우리 자기 조만간 은찬의 새엄마가 될 거야.”
아들 이은찬도 바에서 술을 퍼마시면서 친구들에게 푸념해댔다.
“우리 엄마는 내 인생을 너무 공제하려고 들어. 마음 같아선 확 멀리 떠나가 버리고 싶다니까.”
또한 시어머니 한라희는 이웃들과 이런 식으로 입을 나불거렸다.
“지유 걔는 종일 하는 게 뭐야? 우리 집에 빌붙어 사는 애 차라리 없기만 못해!”
나는 그런 그들에게 일일이 반박할 수가 없었다.
이번엔 드디어 모두의 소원을 이뤄준 듯싶었다.
제1화
병원에서 암 말기로 죽은 날, 내 영혼은 도시 상공을 떠돌아다녔다.
의사는 나의 시신을 보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가망이 없어. 가족들에게 알려.”
착잡한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곧이어 통화가 연결됐다.
“임지유 씨 가족분 되시죠? 임지유 씨가 암 말기로 사망하셨습니다. 병원에 오셔서 시신 인수하길 부탁드립니다.”
전화기 너머로 한참 침묵이 흐른 후 차가운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 잘못 거셨어요. 앞으로 저한테 연락하지 마세요.”
이때 의사 옆의 간호사가 의료 차트를 펼치고 날짜를 재차 확인했다.
“그럴 리 없는데... 이 번호로 적어도 세 번은 등기했거든요...”
전화가 끊긴 후 의사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기 전화라고 오해했을 수도 있지.”
그들은 여전히 날 위로하려 했지만 아쉽게도 침대에 누워있는 나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박약한 의지에 따라, 나의 신념에 따라 어느 호텔 방 앞에 도착하자 슬립 잠옷을 입은 여자가 이제 막 전화를 끊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스스로 위로하고 있었다.
“그년 끝내 죽었네.”
이때 나의 남편 이도진이 달랑 타올 한 장만 두른 채 뒤에서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뭐해, 자기야?”
여자는 일부러 홀가분한 척하며 답했다.
“귀신 같은 당신 와이프 전화를 받았어. 내가 대신 받았다고 원망하는 건 아니지?”
“지유한테서 전화가 왔다고?”
이도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여자가 가출한 지 한참 됐는데 갑자기 웬 전화야?’
다만 그는 눈앞의 아름답고 유혹적인 여자를 바라보면서 마음속의 의문을 꾹 짓누른 채 그녀에게 덮쳐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 늙은 아줌마랑 세련된 커리어 우먼이랑 비교할 바가 안 되니까.
하지만 이도진이 정작 잊고 있었던 게 한 가지 있는데 애초에 그가 내게 전업주부가 되어달라고 애원했었다.
“지유야, 은찬이는 지금 한창 엄마가 필요할 때니 집에서 애만 키워. 약속할게. 너랑 은찬이 평생 책임지고 보살펴줄 거야 내가.”
그토록 진지한 얼굴로 맹세를 해대니 우리 엄마마저 마음이 흔들려서 사위 대신 나를 설득했다.
그때부터 나는 무려 18년 동안이나 집안일이라는 지옥에 갇혀 살았다.
결국 사망하고 나서야 진정한 해탈을 얻은 셈이다.
나는 이도진이 내연녀를 데리고 집에 돌아오는 걸 묵묵히 지켜봐야만 했다.
시어머니 한라희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음식을 한 상 차려놓고 임신한 몸의 유이서를 반겨주었다. 이씨 일가에 손주 녀석을 안겨줄 여자이니까.
한라희가 늘 하는 말이 있는데 아이를 못 낳는 여자는 폐인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내가 난산에 출혈까지 심해져서 더는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됐을 때 이도진은 내 얼굴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한 명으로 족해. 괜찮아, 지유야.”
하지만 한라희가 옆에서 야유 조로 쏘아붙였다.
“고작 한 명만 낳을 거면서 뭣 하러 이 비싼 병원에 택해? 돈 아깝게!”
그때 내가 말할 기력이라도 있었다면 그들 귀에 또박또박 잘 들리게 얘기했을 것이다.
아이를 낳는 게 얼마나 아픈지, 수술대에서 얼마나 두려웠는지, 이대로 죽는 건 아닌지,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다고 부디 살려달라고 애원하고픈 마음이 간절했다고 말이다.
제2화
병상에 누운 내가 고통으로 몸부림칠 때 이도진은 몇십만 원 하는 PCIA를 내게 써줄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한라희가 간호사의 시선을 피해 그에게 고개를 내젓자 이도진은 끝내 나의 고통을 무시한 채 단돈 몇십만 원을 아끼려 들었다.
나는 점점 의식이 흐릿해지고 온몸의 세포가 외쳐대는 것만 같았다.
PCIA 달라고, 나 혼자 그 돈 낼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온몸의 기운이 쫙 빠진 채 무기력하게 이도진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미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나와 함께 분만실에 들어오는 걸 포기했다.
내 아이는 배 속에 있었고, 남편이란 자는 분만실 밖에, 친정엄마는 병원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아파트에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도 나의 사활에 관심이 없었다.
친정엄마마저 우리 오빠네 아이를 돌봐준다면서 날 보러 오지 않았다.
내가 아이를 낳고 병원에 입원해 있던 한 달 내내 엄마는 단 한 번도 병문안을 오지 않았다.
한편 식사 자리에서 내연녀는 아예 젓가락을 들지도 않았다.
이도진이 정성껏 음식을 집어주자 열성적으로 반겨주는 척하던 한라희도 끝내 본심을 드러냈다.
“이서야, 들어와서 나랑 함께 설거지해.”
“싫어요, 나 안 할래요.”
한라희는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유이서를 쳐다봤다.
이에 유이서는 흐뭇해하며 이도진의 어깨에 기댄 채 거들먹거리면서 웃었다.
“아줌마, 나 임신했잖아요. 만에 하나 손에 물이 닿았다가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아줌마가 책임질래요?”
한라희는 어이가 없어 얼굴이 다 벌게졌다.
“임신이 뭐 벼슬이야? 설거지 안 하는 며느리가 어디 있다고 그래?”
“애까지 뱄으면서 우리 도진이한테 시집 안 오면 대체 누가 널 데려가겠니?”
이 말을 들은 유이서가 피식 웃었다.
“아이는 내 마음먹기 나름이죠. 싫으면 언제든지 떼버릴 수 있잖아요.”
“근데 도진 씨, 진짜 날 사랑하긴 하는 거야? 당신 엄마가 이렇게 날 괴롭히는데 계속 지켜보기만 하겠어?”
이도진은 순간 안쓰러운 표정으로 유이서를 품에 와락 안았다.
“엄마, 말이 너무 지나치잖아요. 이서가 임신했는데 엄마가 설거지 좀 해주면 안 돼요? 우리 이서 그만 괴롭혀요.”
유이서는 그의 품에 기대서 애교를 부렸고 한라희는 마지못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떠나갈 때 한라희는 속으로 이를 박박 갈았다.
자리를 떠난 유이서가 금세 한라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중에 저희 결혼하거든 절대 아줌마랑 함께 지낼 리 없어요. 그러니 미리 짐 싸서 나가주시죠. 우리 결혼식만 지체할라.]
근처 공원에 나온 한라희는 이웃에게 무려 두 시간이나 푸념해댔다. 줄곧 들어주던 이웃 아줌마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당신 남편도 당신 임신했을 때 설거지 안 시켰잖아. 뭣 하러 며느리한테 강요하고 그래?”
“설거지하는 게 뭐가 덧나? 지유 그년은 임신 때 집안일을 거의 다 했어...”
결국 한라희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눈치챘는지 말끝을 흐렸다.
서로 티격태격하는 한라희와 유이서의 모습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유이서의 표정을 따라 입꼬리를 씩 올리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유이서는 한 성격하기에 감히 건드릴 수 없고 나는 만만하니까 제멋대로 짓밟은 걸까?
한라희는 문득 고분고분 말만 잘 듣던 내가 그리웠나 보다.
“그렇지만.”
하지만 갑자기 태도가 확 돌변하는 그녀였다.
“그년은 우리 집에 빌붙어 사는 신세라 집안일까지 안 하면 너무 날로 먹는 거지.”
나는 습관처럼 아예 못 들은 척했다.
나의 시어머니는 늘 이런 식이다. 애초에 나를 며느리로 들이려고 어떻게 어르고 달랬든지 까맣게 잊은 채, 결혼 뒤에 나를 얼마나 모질게 대했든지 까맣게 잊은 채 늘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은 이 말 한마디뿐이다. 지유 그년은 애나 보는 가정주부라고...
한때 거액의 연봉을 받던 시절을 강제로 잊게 하고, 눈부시게 빛나던 나의 가치를 까마득히 잊게 하고는 제멋대로 나를 짓밟으며 야유를 퍼부었고 결혼이라는 무덤에 깊게 파묻은 후 이 한마디만 내던졌다.
“여자는 원래 다 이렇게 사는 거야.”
결국 결혼 뒤에도 이 말 한마디가 정정당당한 이유가 되어 나를 모질게 구박할 뿐이었다.
제3화
이도진과 유이서는 계단에서부터 집 문 앞까지 딥키스에 푹 빠져버렸다. 이도진이 성급하게 문을 열고 진도를 내빼려 할 때 마침 이은찬이 물컵을 들고 거실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봤다.
이도진은 뻘쭘해서 유이서를 놓아줬다. 이에 유이서는 그의 가슴팍을 내리쳤고 남자는 사랑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한 손으로 그녀의 주먹을 감싸 쥐었다.
“애인 단속 잘해요. 엄마 돌아오면 또 미쳐 발광할라.”
외도 현장을 들키고도 뻔뻔스러운 두 사람을 지켜보며 이은찬이 담담하게 야유를 날렸다.
이도진은 당연하다는 듯이 돈으로 해결될 문제라고 여기면서 휴대폰을 꺼내 아들에게 계좌 이체했다.
“할머니 당분간 고향에 내려가 계실 테니 요 며칠 푹 쉬어. 돈 문제는 걱정 말고.”
입금 확인한 이은찬은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방으로 들어갔다. 뒤에 있던 유이서가 이 모습을 보더니 불만조로 말했다.
“은찬이 너무 감싸고 도는 거 아니야?”
이때 이은찬이 대뜸 걸음을 멈췄다.
“유 쌤, 경고하는데 입단속 잘해요.”
“나 아니면 쌤도 우리 아빠 만날 일 없었잖아요. 안 그래요?”
‘아들아, 너도 네 문제인 걸 알긴 해?’
나는 영혼이 이탈되어 아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귀싸대기를 날리려고 했지만 손이 닿는 순간 그대로 흩어지고 말았다.
이때 이은찬이 나지막이 물었다.
“엄마 어디 갔어요?”
한창 애인을 달래주던 이도진은 그의 물음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 방금 제대로 못 들었어.”
아이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닫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우리 엄마 여행 갔더니 아빠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연녀를 집에 데려오는 거 있지? 진짜 웃기지 않냐?]
그가 리아라는 여자아이한테 메시지를 보내자 곧장 답장이 도착했다.
[쌤통이야. 그러게 누가 너희 엄마더러 우릴 반대하래? 벌 받은 거지 뭐.]
[하긴, 엄마는 내 모든 걸 통제하려고 들어. 이렇게 나가 있는 동안 조용하게 지낼 수 있어서 좋아.]
이은찬은 메시지를 작성한 후 전송하려다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는 끝내 다 지우고 새로 작성했다.
[수능도 마쳤겠다, 이제 더는 우릴 반대하지 않을 거야.]
수능 성적이 나온 날, 이도진은 아들을 위해 가까운 친척들과 학교 선생님들까지 초대하여 연회를 열었다.
유이서도 자리에 함께했고 진행자가 이은찬이 고생 끝에 수능을 마쳤다고 축하 멘트를 날릴 때 그녀는 심지어 격려하는 눈빛으로 이은찬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둘 사이를 막으려고 가운데 떡하니 서 있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이은찬의 역겨워하는 표정을 지켜봐야만 했다.
한라희가 하객들에게 와주셔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있었고 이도진은 무대 뒤에서 성급하게 내게 전화를 걸었다.
도통 연결이 안 되니 며칠 동안 쌓인 감정이 드디어 폭발했는지 내게 폭풍 같은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대체 왜 잠수 타고 난리야? 지금 어딘데?]
[두 달 동안 밖에서 실컷 놀았으면 됐지 오늘 같은 중요한 날까지 안 오는 거야?]
[카드 정지 해버리는 수가 있어!]
[지금 네가 갖고 있는 카드도 전부 내 월급 카드야. 분실신고 해버리면 너도 꼼짝달싹할 수 없어.]
[대답해! 왜 아무 말 없어? 겁먹은 거야?]
[남편, 아들까지 다 버릴 셈이야?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야?]
[은찬의 엄마가 될 자격이나 있냐고?]
이도진은 미친 듯이 분노를 표출하다가 결국 본인만 더 초조해졌다.
내가 죽은 것도 모르고, 더는 답장할 수 없는 이 현실도 모르는 인간이었다.
이때 한라희가 허겁지겁 내려와서 그를 다시 불러갔다. 이도진은 여전히 분노가 삭이지 않은 표정이었고 이를 본 친척들이 의아한 듯 물었다.
“오늘 같은 좋은 날에 은찬이 엄마는 왜 안 보이는 거야? 엄마 어디 갔어?”
이은찬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채 겨우 대답했다.
“저도 이제 수능 마쳤으니 엄마가 바람도 쐴 겸 한동안 여행 다니셔야죠.”
옆에 있던 한라희는 쓴웃음을 지으며 구시렁댔다.
“여자가 되바라져서 두 달 동안 집에 오지도 않아!”
이도진도 짜증 섞인 얼굴로 한라희에게 말했다.
“안 되겠어요, 지유 그년 카드를 싹 다 정지해야겠어요. 더는 나다니지 못하게 말이에요.”
이에 친척들이 수군거렸다.
“두 달이나 연락이 안 됐으면 무슨 일 생긴 건 아닌지 걱정되지도 않아요? 쯧쯧...”
이때 이도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발신자를 확인하지도 않고 대뜸 큰소리로 외쳤다.
“아이고, 내 번호는 아직 기억하네? 차라리 밖에서 확 죽어버리지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