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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 이제 네꺼야
결혼 전야, 역사학 교수인 약혼자 고태오가 암에 걸린 첫사랑 엄정아와 한옥 마을에서 전통 혼례를 올렸다. 은은한 별빛 아래 고태오가 엄정아를 안고 ...
Chương (1)
第1章
결혼 전야, 역사학 교수인 약혼자 고태오가 암에 걸린 첫사랑 엄정아와 한옥 마을에서 전통 혼례를 올렸다. 은은한 별빛 아래 고태오가 엄정아를 안고 부드럽게 웃었다.
“전통대로라면 가문에 먼저 발을 들인 사람이 본처지. 내가 아무리 이은지랑 결혼 등기했어도 이은지는 첩이야.”
그렇게 두 사람은 하객의 축복을 받으며 러브샷을 하고 첫날밤을 보냈다. 나는 그저 옆에서 조용히 이 모든 걸 지켜보다 몰래 중절 수술을 예약했다.
열다섯부터 서른까지, 나는 고태오를 15년간 사랑했지만 고태오의 마음속엔 내 의붓동생인 엄정아밖에 없었다. 나도 할 만큼 했으니 이제 손을 놓을 때가 된 것 같았다.
그 뒤로 나는 고태오에게 이혼 서류 한 장과 이혼 선물을 던져주고는 세상과 단절된 남극 탐사 연구팀에 합류했다.
하지만 무슨 원인인지 나에겐 관심조차 없던 고태오의 머리가 하루만에 하얗게 세고 말았다.
제1화
나는 비를 맞으며 한옥 마을에서 50미터 떨어진 계단에 서서 내 약혼자인 고태오와 의붓동생의 전통 혼례를 지켜봤다. 고태오가 입에 옥으로 만든 패물을 물고 전통 혼례복을 입은 어여쁜 엄정아에게 전해주자 엄정아가 얼굴을 붉히며 입으로 받았다. 고태오는 엄정아가 입에 문 패물을 꺼내기도 전에 냉큼 엄정아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하객의 호응과 축복 속에 서로를 끌어안고 열정적으로 키스를 나눴다. 그렇게 20분간 지속된 키스는 엄정아의 다리에 힘이 풀리고 나서야 겨우 멈췄다.
가을바람에 장식으로 걸어둔 비단들이 휘날려서야 나는 어두운 불빛 아래 환호하는 사람 중에 내 가족과 친구들도 있음을 알아챘다.
내가 목숨을 걸고 지켰던 동생 이진욱은 한복을 입고 결혼식 사회를 보며 주인공인 엄정아만 신경 썼다. 전에 엄정아와 엄정아의 어머니에 의해 게임 중독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세워진 학교에 보내져 죽을 뻔한 기억은 이미 지워버린 것 같았다.
“누나, 형부,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알콩달콩 잘살길 바라요.”
이진욱이 큰소리로 축복하자 옆에 있던 하객이 미리 준비한 불꽃을 터트렸다. 터지는 불빛과 함께 고태오가 엄정아를 번쩍 안아 들었고 흥분한 이진욱이 분위기를 절정으로 끌어올리려고 큰 소리로 말했다.
“하객 여러분, 결혼식은 여기서 마칩니다. 신랑, 신부 이제 합방해도 좋습니다.”
현장은 시끌벅적했지만 나는 숨이 막힐 듯한 절망감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이내 핸드폰을 꺼내 이진욱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원히 내 편에 서겠다고 약속했던 내 친동생에게 말이다.
이진욱은 핸드폰 화면을 한번 쓱 훑더니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쉬지 않고 고태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건 전화임을 확인한 고태오는 순간 표정이 굳어버렸고 그대로 끊어버리려는데 엄정아가 한 말을 듣고 짜증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내가 가벼운 목소리로 묻자 고태오는 하객이 보는 앞에서 비아냥대기 시작했다.
“또 조사질이야? 임신까지 했는데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 애정 결핍이야, 뭐야.”
“남자 없이는 못 살아?”
“내가 말했잖아. 이번에 정아랑 한옥 마을에 온건 새로운 문물인 관이 발견돼서라고. 맨날 추잡스러운 생각만 하고 있으니까 일하러 온 사람 자꾸만 바람피운다고 의심하지.”
귀에 담기도 힘든 말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나는 미련이 남아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근데 태오야, 오늘 내 생일이잖아… 전에 약속했잖아. 무슨 일이 있든 생일만큼은 내 옆에 있어 주겠다고. 그래서 출장간 곳이 1,000킬로가 넘는 곳이라 해도 차 10번을 갈아타고 무서운 산길까지 홀로 걸어서 온 거잖아. ”
하지만 도착해서 현지 주민들에게 들은 말은 이곳에 오래된 관은 없지만 고씨 성을 가진 교수가 반년전부터 사랑하는 사람과 한옥 마을에서 전통 혼례를 올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제2화
고태오는 그제야 이 일을 떠올린 듯 잠깐 멈칫하다가 다시 입을 열려는데 옆에 있던 이진욱이 핸드폰을 앗아갔다.
“누나, 이제 그만 좀 해. 난 누나처럼 의부증이 심한 사람은 처음 봤어. 억지 부리지 마. 그러다 태오 형 업무 진척에 차질이라도 생기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건데. 누나가 질 거야? 미련한 짓은 누나가 다 하고 뒤처리는 항상 다른 사람이 하는 거 미안하지도 않아?”
이진욱이 이렇게 말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엄정아는 고태오의 품에 기댄 채 부드럽게 웃으며 이진욱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이렇게 달랬다.
“됐어. 언니 성격 한두 날이야? 오늘은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날이야. 그러니까 너도 화내지 말고 좋은 생각만 해.”
말 한마디에 이진욱은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하객들은 시끌벅적하게 신혼 방이 마련된 방향으로 향했다.
깜깜한 밤, 결혼식이 끝난 곳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지자 마치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광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더 서 있던 나는 핸드폰을 꺼내 중절 수술을 예약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15년을 노력해도 마음을 얻을 수 없다면 이제 버릴 때도 된 것 같았다.
시내로 돌아왔을 땐 이미 늦은 시간이라 대충 근처에 있는 호텔을 예약해 어렴풋이 잠에 들었다가 새벽에 요란하게 울려대는 벨 소리에 잠에서 깼다.
방송국에서 걸려 온 전화였는데 목소리가 초조하면서도 흥분에 차 있었다.
“은지 씨, 은지 씨가 있는 한옥 마을에 5.3급 지진이 일어났대요. 얼른 인터뷰 따러 가요.”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전화는 끊기고 말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지 않는 건데 말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생각하며 핸드폰을 확인하는데 엄정아가 올린 인스타가 보였다. 하얗고 작은 엄정아의 손에 고태오의 뼈마디가 선명한 큰 손이 올려졌고 커플링을 나눠 끼고 있었다.
나는 고태오 손등에 난 칼자국을 보며 싸늘하게 식었던 마음이 다시 아파오기 시작했다. 18살 되던 해 고태오는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하는 나를 구해주기 위해 날아온 맥주병을 손으로 막다가 상처를 입고 말았다. 나는 그 상처를 사랑의 증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사라진 나는 컴퓨터를 열고 인터뷰 소재를 작성한 뒤 변호사로 일하는 친구에게 이혼 서류를 작성해달라고 부탁했다.
다시 한옥 마을로 돌아와 보니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나는 사적인 감정을 일단 접어두고 침통함과 연민을 품은 채 피해를 본 수난자들을 도와 구조를 요청했다.
무슨 원인인지 이번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유난히 심각했다. 나는 새로 지어진 한옥 근처에 산을 개척하기 위해 쌓아놓은 뇌관을 보며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내 뒤에서 나를 힘껏 걷어찼다. 갑자기 들이닥친 공격에 무방비 상태에 있던 나는 지진으로 폐허가 된 바닥에 꼬꾸라졌고 손과 얼굴에 깊은 생채기가 났다.
이진욱의 매서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누나, 껌딱지야? 설마 증거 잡으려고 여기까지 내려온 거 아니지?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언제부터인가 이진욱은 엄정아 어머니의 핍박에 의해 비참하게 죽어버린 우리 어머니를 잊었고 엄정아가 시키면 뭐든지 하는 충실한 개가 되었다.
이런 동생이라면 없어도 딱히 아쉬울 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묻은 먼지를 탈탈 털고는 아무 표정 없이 이진욱 앞으로 걸어가 이진욱의 귀싸대기를 힘껏 후려쳤다.
어찌나 세게 후려쳤는지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간 이진욱은 내가 반격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이진욱이 반응하기도 전에 역겹다는 표정으로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다 아는 척 나대지 마. 엄정아가 그렇게 좋으면 가서 실컷 개노릇 하든지.”
“이 귀싸대기는 내가 당한 거 그대로 돌려주는 거니까 앞으로 다시는 엮이지 말자.”
나는 이진욱의 분노에 찬 눈빛을 무시하고 인터뷰를 이어 나갔다. 멀지 않은 곳에서 고태오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엄정아를 안고 다가오더니 켕기는 듯한 표정으로 해명하기 시작했다.
“은지야, 어제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준다는 게 깜빡했네. 발굴 작업 끝나면 생일 꼭 같이 보내자.”
제3화
나는 덤덤한 표정으로 깍지를 낀 고태오와 엄정아의 손에서 시선을 떼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필요 없어.”
예상 밖의 반응에 세 사람이 동시에 놀랐다. 뒤따라온 이진욱이 웃음을 터트렸다.
“누나,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거야. 그만해. 태오 오빠 졸라서 임신까지 하더니 이젠 밀당하려고? 꼴이 너무 우습다. 근데 임신하면 뭐 해? 정아 누나 시중들기도 변변치 않은데.”
이진욱은 여전히 자기가 처한 상황을 알지 못했다. 지나치게 덤덤한 내 표정에 고태오도 짜증이 났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은지야. 나 미행하면서 내 업무를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심술까지 부리는 거야? 나도 참는 데 한계가 있어. 정아도 조용히 몸조리해야 하는데 네가 나타나면 오히려 기분이 영향 줄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 얼른 집으로 돌아가.”
고태오가 이렇게 말하며 나를 현장에서 끌어내려 하는데 여진이 시작되었고 고태오와 이진욱은 동시에 공터에 서 있는 엄정아에게로 달려갔다. 고태오는 많이 급했는지 나를 바닥에 넘어트리기까지 했다. 내 뒤로 콘크리트 전봇대가 무너지는 걸 분명 봤을 텐데 말이다.
전봇대는 내 다리로 떨어졌고 극심한 고통과 함께 나는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고 왼쪽 다리에 깁스한 상태였지만 옆엔 아무도 없었다.
간호사는 내가 잠에서 깨자 얼른 링거 바늘을 뽑아주며 걱정스레 말했다.
“다리를 다쳤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아이까지 위험할 뻔했어요.”
나는 덤덤한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애는 걱정할 필요 없어요. 중절 수술 예약하게 도와주실래요?”
간호사가 휠체어를 끌고 병실을 나서서야 나는 나를 병원으로 데려온 게 이 마을 이장님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정작 나를 다치게 한 장본인은 고태오는 문자 하나만 딸랑 보내왔다.
[정아가 너 다친 거 보고 놀라서 쓰러지는 바람에 구조용 헬기를 신청해서 진욱이랑 같이 정아를 해성시로 데려왔어.]
내가 다친 것에 대해서는 걱정 한마디 없었다. 이제 더 실망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가슴이 너무 아파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중절 수술은 세 시간 뒤로 예약했고 남은 시간 동안 나는 변호사로 일하는 친구와 함께 이혼 합의서를 작성했다.
채팅창에서 나가려는데 가족 채팅방에서 아버지 이성용, 이진욱, 고태오가 엄정아에게 기프티콘을 남발하는 게 보였다. 나는 창밖으로 날아가는 새들을 보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엄정아 생일은 유별나게 챙기네.’
이성용은 카톡으로 송금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을 송금하며 문자를 남겼다.
[우리 정아 생일 축하한다.]
이진욱도 질세라 얼른 송금하며 문자를 남겼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누나, 영원히 행복해요.]
고태오는 은행 계좌로 10억을 송금하고는 인증이라도 하든 사진을 보며 글을 남겼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든 나 고태오는 엄정아 너만 사랑할 거야.]
나는 화기애애한 채팅방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바로 채팅방에서 나갔고 고태오가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를 해왔다.
“이은지, 너 또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야? 정아한테 잘해주는 게 그렇게 눈꼴셔? 고등학교 다닐 때도 정아랑 정아 어머니가 너희 어머니를 죽였다고 모함했지? 근데 결과는? 아저씨가 다 얘기해줬어. 너희 어머니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가 자살한 거라고. 그 뒤로는 뭐였더라? 정아 어머니가 너랑 진욱이를 게임 중독 치료를 명목으로 학교에 가뒀다고? 허...”
고태오의 말투에서 경멸과 역겨움이 그대로 드러났다.
“조사해 보니까 그런 학교는 애초에 없었어. 진욱이 말로는 네가 진욱이를 폐교로 유인해서 머리를 다치게 하는 바람에 기억을 잃었다던데? 결국 또 정아가 나서서 진욱이를 한 달이나 보살폈잖아.”
고태오는 분노를 해소할 구멍이라도 찾은 것처럼 미친 듯이 불만을 퍼붓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너랑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 착한 정아가 혹시나 네가 신변을 비관할까 봐 걱정하지만 않았다면 그날 호텔에 갈 일도 없었고 네가 미리 약을 탄 그 술을 마실 일도 없었어.”
끝도 없이 떠드는 고태오를 멈추게 한 건 내 쪽에서 들려온 알림 방송이었다.
“37번 이은지 고객님 중절 수술실로 오시기를 바랍니다.”
고태오의 말소리가 뚝 끊기더니 숨소리가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아이 지우려고?”
어째서인지 고태오의 말투에서 당황함이 느껴졌다. 내가 입을 열려는데 수화기 너머로 엄정아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오빠 정말 바보 같아. 언니가 그 아이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중절 수술은 무슨.”
이에 고태오의 말투가 다시 차가워졌다.
“하긴. 은지야. 정말 갈수록 너무 실망스럽다. 같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넌 어쩜 그렇게 사악하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랑 결혼하더니 이제는 아이로 협박할 생각까지 하는 거야? 그렇다면 말해줄게. 나한테는 안 먹히니까 한 번만 허튼수작 부리면 바로 이혼하는 거야.”
고태오는 이렇게 말하더니 내가 울면서 빌기를 기다렸지만 나는 잠깐 뜸을 들이다 해탈했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러면 며칠 뒤에 법원 앞에서 보자.”
전화를 끊은 나는 중절 수술하러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