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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는 나를 버렸다
나와 남편의 첫사랑이 동시에 납치되었다. 죽음이 눈앞에 닥친 상황에서 가까스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는 내게 연기 좀 그만...
Chương (1)
第1章
나와 남편의 첫사랑이 동시에 납치되었다.
죽음이 눈앞에 닥친 상황에서 가까스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는 내게 연기 좀 그만하라며 차갑게 나무랐다.
결국, 그는 첫사랑을 위해서만 범인이 요구한 몸값을 지불하고, 나와 그의 동생을 그대로 내버려둔 채 떠났다.
전화가 끊기기 직전, 그는 이렇게 쏘아붙였다.
“안유정, 그만 좀 해! 이젠 지긋지긋하다고! 연수가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알아? 네가 연수를 납치한 거 다 안다고! 두고 봐, 연수가 진정되면 제대로 따져 물을 거니까...”
그러나 그의 계획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첫사랑을 품에 안고 떠난 직후, 나와 자폐를 앓는 그의 동생은 범인의 칼에 찔려 목숨을 잃었으니까...
제1화
내 죽음은 처참했다. 두 다리는 살점이 모두 도려내져 하얀 뼈에 핏덩이만 몇 가닥 걸려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베테랑 형사마저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훔쳤다.
“살아서 능지처참당했다니... 얼마나 아팠을까? 얼굴에 난 상처만 봐도 범인이 얼마나 악랄했는지 알겠어. 그 와중에 숨이 끊어질 때까지 어린 동생을 지키려 했다는 거야? 세상에...”
죽기 직전, 너무나도 끔찍한 고통을 겪었기 때문일까? 나와 강민혁의 영혼은 저승으로 가지 못한 채 ‘남편’ 강민호의 곁을 떠돌았다.
그는 지금 첫사랑 임연수를 안고 병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는 진료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 의사의 가운을 움켜쥐며 울부짖었다.
“당장 연수를 살려주세요! 제발요! 연수는 발레리나예요. 발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고요! 알겠어요?”
강민호의 눈에는 절박함과 광기가 뒤섞여 있었다. 그동안 내가 본 적 없는 애틋함과 간절함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의사가 임연수의 발목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며 응급처치를 마치고 나서야 그는 안도하며 눈물을 쏟아냈다. 이어 비서에게 고급 병실을 예약하라고 지시하며 덧붙였다.
“연수가 회복할 때까지 아무 문제 없도록 신경 써.”
비서는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표님... 연수 씨는 구하셨지만, 사모님과 작은 도련님은 아직 납치범에게 잡혀 있습니다. 혹시...”
비서는 경찰에게 신고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강민호는 짜증스럽게 말을 잘랐다.
“유정이가 민혁이를 데리고 벌인 연극일 뿐이야. 이미 4천만 원이나 쥐여줬는데 그걸로 모자란다고? 연수가 지금 힘들어하는 게 안 보여? 미친 여자의 이름은 당분간 입에 올리지 마.”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갈 곳 없이 떠다니던 민혁의 귀를 막았다.
아이의 초점 없는 눈동자와 슬픔 어린 표정을 보며 나는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마치 끝없는 지옥으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그래... 강민호는 늘 나를 계략만 꾸미고 다른 사람을 속이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지. 민혁이를 망친 사람도 나라고 여긴 거겠지... 그런 사람이 우리를 구하러 올 리가 없었잖아...’
우리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강민호는 알 리가 없었다. 그가 임연수의 발을 주무르며 안심하고 있을 때, 우리는 범인의 칼에 찔려 죽었다.
죽기 직전, 나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전화를 걸어 애원했었다.
“민호 씨... 제발... 우리 좀 구해줘. 진짜 죽일 것 같아...”
통화가 연결되는 순간, 나는 희미하게나마 희망의 빛을 본 줄 알았다. 하지만 3년간 나의 남편이었던 강민호는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
“안유정, 또 쇼야? 연수가 얼마나 무서워했을지 알기나 해? 네가 감히 이딴 짓까지 벌이고, 내 동생 민혁이까지 끌어들여? 네가 이렇게 비열한 줄은 몰랐어!”
나는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숨마저 끊겨가는 민혁이를 품에 안았다. 피투성이가 된 민혁이의 얼굴을 보여주려 했지만, 강민호는 내 말을 들을 생각조차 없었다.
대신 냉담하게 쏘아붙였다.
“네가 오늘 벌인 짓... 두고 봐. 나중에 제대로 따져 물을 거야.”
그러고는 상처투성이가 된 나를 완전히 무시한 채 전화를 끊었다.
끊기기 직전, 나는 임연수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임연수는 그저 발목을 삐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강민호는 병실에서 사흘 밤낮을 지새우며 그녀 곁을 떠나지 않았다. 마치 깨지기 쉬운 도자기를 다루듯, 임연수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 온 마음을 쏟아부었다.
강민호는 그릇 속의 죽을 조심스레 불어 식힌 뒤, 천천히 임연수의 입가에 가져다 대며 그녀를 위로하려 애쓰고 있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대... 발 삔 거 보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어...”
임연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강민호에게 애교를 부렸다.
“민호 오빠... 유정 언니랑 민혁이가 날 그 폐공장으로 데려갔을 땐, 정말 이렇게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오빠가 날 구해줘서 다행이야. 오빠가 없었으면 난...”
‘말도 안 돼! 나랑 민혁이는 임연수 때문에 납치된 건데, 어쩜 이렇게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거지?’
임연수는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닦아내더니, 감사하다는 표정으로 강민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민호 오빠, 오빠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이제부터 난 오빠의 여자야.”
강민혁은 슬픈 눈으로 두 사람의 따뜻한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개를 숙이고 조용히 말했다.
“형... 형수님이랑 나보다 연수 누나가 더 중요했던 거지?”
하지만 강민호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다정하게 임연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비서에게서 건네받은 초대장을 임연수의 손에 꼭 쥐여주며 말했다.
“모스크바 발레단의 수석 자리야. 네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고 있어. 이건 내가 너에게 주는 작은 위로야. 빨리 회복해서 멋진 무대를 보여줘. 내가 안심할 수 있도록...”
초대장에는 화려한 금박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모스크바 발레단은 모든 발레리나의 꿈과도 같은 예술의 성지였다. 나도 그 자리를 꿈꿨었다.
임연수는 초대장을 매만지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민호 오빠, 왜 이렇게 잘해줘? 정말 고마워...”
그러면서 몸을 움츠리며 망설이는 듯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근데... 이 자리 유정 언니 거 아니었어? 언니가 알면, 또 민혁이를 시켜서 나를 혼내지 않을까?”
제2화
임연수가 내 이름을 꺼내는 순간, 강민호의 얼굴에 드리웠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걔 얘긴 왜 꺼내? 돈이 없으면 없다고 말했어야지. 배우까지 고용해서 납치극까지 벌이고 날 속여 돈을 가져갔으면 됐잖아. 그런데 너까지 이렇게 힘들게 만들었잖아! 이 수석 자리? 원래 네 자리였어. 네가 받을 자리를 뺏으려고 했던 거야. 앞으로 우리 집에서 지내. 내가 걔랑 민혁이 불러다 무릎 꿇고 사과하게 할 거야. 네가 겪었던 만큼 꼭 돌려줄 테니까 지켜봐.”
그는 임연수를 품에 안으며 부드럽게 달래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마. 네가 이렇게 억울한 일 겪은 거 내가 반드시 다 갚아줄 거야.”
그렇게 말하며 강민호는 임연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집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자기들이 한 짓에 책임질 자신도 없었던 거야? 이제는 집에도 안 들어와?”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고, 그의 분노는 더 끊어 올랐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건 나의 엄마, 김경은의 떨리는 목소리였다.
“민호야, 뉴스 보니까... 휴양지에서 살인사건이 났다던데, 거기 피해자의 인상착의가 글쎄... 유정이가 떠날 때 입고 있던 옷과 같더라... 유정이가 사흘째 연락이 안 되던데... 혹시 무슨 일이 난 건 아니겠지?”
엄마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원래부터 장모님의 말에는 참을성이 없던 강민호는 대뜸 짜증을 냈다.
“어머님 따님같이 악독한 여자가 무슨 일을 당했겠어요? 죽은 피해자가 누가 됐든 안유정은 절대 아니에요!”
그러고 나서 강민호는 뭔가 떠오른 듯 두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설마 유정이한테서 정보를 캐오라는 사주를 받은 거예요?”
엄마는 잠시 당황하다가 아니라고 하려고 했지만,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엄마를 차단해 버렸다.
분노에 찬 그는 집 안을 이리저리 서성였다. 그런 그의 뒤를 조용히 따르던 임연수가 그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
“민호 오빠... 혹시 나만 데리고 온 거에 화가 나서, 유정 언니랑 민혁이가 이모님께 도움을 요청한 거 아닐까? 나... 괜히 여기서 오빠네 가족 사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거 같아. 그냥 갈게...”
그녀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처럼 울먹였고, 그런 모습에 강민호는 마음이 무너지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급히 집 안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임연수를 위해 세면도구를 챙겼다. 심지어 벽에 걸려 있던 결혼사진까지 떼어냈다. 그리고 임연수가 머물도록 부부의 안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강민호의 얼굴에 희미한 붉은 기운이 돌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지금은 네 생리 기간이지? 내가 따뜻한 차를 끓여놨고, 네가 자주 쓰는 브랜드의 생리대도 사 놨어. 절대 찬물에 손대지 말고,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
‘강민호에게 이렇게 섬세하고 다정한 면이 있었다니...’
전에는 어땠던가? 내가 생리통으로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해서 간신히 따뜻한 물 한 잔만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진짜 끝도 없네! 내가 연수 만나러 갈 때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것도 질린다! 알아서 끓여 먹어!”
그러고는 문을 쾅 닫고 나가더니, 커다란 백합 꽃다발을 들고 임연수의 공연장으로 향했었다.
그가 임연수와 대기실에서 다정하게 사진을 찍고 있을 때, 나는 생리통으로 정신을 잃고 강민혁에게 업혀 병원으로 실려 갔었다.
내가 그때의 기억에 빠져 있던 중,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름 아닌 경찰들이었다.
“최근 시내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는데요... 피해자가 사모님과 작은 도련님일 가능성이 있어서 확인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이 사진들을 좀 봐주시겠습니까?”
경찰은 내 몸과 강민혁의 특징이 찍힌 사진을 한 장씩 꺼냈다. 그중 가장 위에 있던 사진에는 내 팔에 있는 나비 문신이 뚜렷하게 보였다.
‘그는 이걸 보고도 우리를 알아보지 못할까?’
이미 보이지 않는 영혼이 된 나는 강민호의 곁에서 떠다니며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강민호! 나야! 나랑 민혁이 좀 봐! 제발 확인 좀 해줘!”
나는 그가 우리를 알아봐 주길 바랐다.
그리고 궁금했다.
‘만약 강민호가 그의 작은 실수 하나로 나와 동생이 이렇게 끔찍한 죽음을 맞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는 어떤 심정일까? 우리를 잃은 고통으로 무너질까? 아니면 단순히 우리 둘이 없어졌으니 이제 임연수와 방해받지 않고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할까?’
“당신들도 연기하는 거예요?”
강민호는 얼굴을 찌푸리며 사진을 테이블 위로 던져버렸다. 그는 사진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우리 둘의 목숨은 그의 마음속에서 이렇게 하찮은 것이었나...’
“연기라니요?”
경찰은 그의 행동에 당황한 듯 물었다.
“우리는 관할 경찰서 소속입니다. 연락이 닿지 않아 직접 방문한 겁니다. 이번 사건은 정말로 끔찍합니다. 피해자들은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가족의 협력이 절실합니다.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경찰의 말을 끝까지 들을 틈도 없이 강민호는 화를 내며 말을 잘랐다.
“진짜 경찰이라면 이렇게 찾아오기 전에 전화라도 했겠죠!”
경찰은 실제로 나와 강민혁의 시신을 발견한 첫날, 그에게 수십 번 전화를 걸었었다. 하지만 그때는 강민호가 한창 임연수의 발을 주물러주고 있을 때였고, 그는 아예 휴대폰을 꺼놨었다.
“안유정이 당신들한테 도대체 얼마를 준 거죠? 이렇게 경찰 흉내까지 내면서 쇼에 동참한 걸 보면 꽤 큰 돈이었나 보네요. 진짜 납치범이라면 연수가 이렇게 멀쩡할 리가 없잖아요?”
그는 여전히 내가 이 모든 것을 꾸몄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임연수가 무사했던 건 그가 그녀를 위해 거액의 몸값을 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었던 나와 강민혁은 단지 납치범의 분풀이 대상이 되어 능지처참당하며 죽음을 맞이했다. 그 고통은 지금도 내 영혼에 깊게 남아 있다.
경찰은 당황했지만, 신분증을 꺼내 보이며 침착하게 설명했다.
“저희는 정말 관할 경찰서 소속 형사들입니다. 사모님과 작은 도련님께서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은 것 같습니다. 지금 현실을 부정하신다면...”
“그만해!”
강민호는 경찰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문을 열어 그들을 집 밖으로 내쫓았다.
임연수는 테이블에 흩어진 사진을 쓰레기통에 쓸어 넣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민호 오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유정 언니를 한 번 찾아보는 게 어때요? 진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면 안 되잖아요...”
제3화
임연수는 강민호 앞에서 온갖 힌트를 남기며 모든 일을 내가 꾸민 것처럼 강민호에게 말하더니, 이제 와서는 또다시 착한 척을 하고 있었다.
“유정 언니랑 민혁이는 일부러 저를 데려간 게 아닐 거야. 아마 다들 너무 급해서 그런 거겠지... 그래도 유정 언니는 오빠의 아내이고, 민혁이는 오빠 친동생인데, 한 번쯤은 신경 써주는 게 좋지 않을까?”
강민호의 얼굴에는 연수에 대한 연민이 가득했다.
“연수야, 넌 어쩜 이렇게 마음이 넓어?”
그러면서도 그의 표정은 점점 짜증스러워졌다.
“안유정 그 여자는 너를 다치게 했던 사람이야! 넌 다리가 그렇게 심하게 다친 상황에서도 뻔뻔하게 나더러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했다니까. 진짜 한 번 혼쭐이 나야 정신 차릴 거야!”
임연수는 다시금 고개를 숙이며 미안한 척 말했다.
“유정 언니도 오빠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겠죠. 저는 민혁이도, 유정 언니도 전혀 원망하지 않아요.”
“네가 그렇게 자꾸 봐주니까 걔가 널 우습게 보는 거야! 민혁이까지 끌어들여 널 괴롭히는 거라고! 진짜 더는 못 참겠어!”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억울함에 몸부림쳤지만, 이미 죽은 내가 무슨 말을 한들 들릴 리 없었다. 무력하게 손만 축 늘어뜨렸다.
나는 처음부터 임연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예전에 무용실 근처에 변태가 출몰했을 때도, 내가 강민호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친구와 함께 있다고 말했지만, 임연수는 한밤중에 민호에게 전화를 걸어 혼자라며 하소연했다.
강민혁이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갈 때도, 임연수는 병원 밖에서 우연을 가장해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함께 보내게 상황을 만들었었다.
처음에는 그녀와 대화를 시도해 보려 했지만 임연수는 나를 비웃으며 무례한 말까지 했었다.
“너 같은 늙은 여자에다 멍청한 민혁이가 나랑 비교가 된다고 생각해? 민호 오빠한테 부탁하면 널 죽이는 것도 문제없어.”
그러면서 우리가 함께 산 작은 곰 인형들을 가위로 조각조각 잘라버렸다. 화를 참지 못한 민혁이 그녀를 밀쳐냈고, 마침 그 순간 강민호가 들어왔다.
그는 민혁의 행동을 보자마자 내 뺨을 두 번 세게 내리쳤다.
“네가 질투심 많은 건 알겠는데, 민혁이를 부추겨서 손찌검까지 하게 해? 나랑 연수는 이미 끝난 사이야. 헛소리 좀 그만해!”
나는 필사적으로 해명하려 했지만, 임연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얼굴을 가리며 울부짖었다.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괜히 귀국해서 민호 오빠를 불편하게 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그 모습에 강민호는 오히려 그녀를 위로하며 나를 독설로 몰아붙였다.
‘나는 악독한 사람이 아니야. 악독한 사람은 따로 있어...’
그렇지만 나는 죽은 채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현재 눈앞에는 강민호와 임연수가 내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비쳤다. 매일 밤 그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깊은 밤까지 대화를 이어갔다. 마지막에는 마치 꿀을 머금은 듯 행복하게 ‘잘 자’라고 속삭이며...
한편, 경찰서로 불려 간 엄마는 시신 안치소 앞에서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채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게... 이게 어떻게 우리 유정이라는 거예요? 우리 딸은 얼마 전 모스크바 발레단에서 초청받았고 지금은 시동생인 민혁이랑 휴가를 떠났는데...”
경찰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시신을 덮고 있던 흰 천을 걷어냈다.
팔뚝 위에 있던 나비 문신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그 순간, 엄마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엄마는 울음을 꾹 삼키며 강민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같은 인간쓰레기! 내 딸이 살아 있다고 나를 속여놓고! 내 딸이랑 네 친동생을 잔인한 납치범들에게 내버려두고, 그 여자랑 놀아났다고? 어떻게 그런 짓을 하고도 살아 있니! 차라리 죽어버려! 이 천하의 나쁜 놈아!”
엄마의 비난에 강민호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어졌고, 특히 임연수를 겨냥한 말에는 냉소적으로 쏘아붙였다.
“장모님, 안유정이 쇼 한 번으로 4천만 원 받아서 회사 빚 갚은 거잖아요. 이제는 뭘 더 하겠다는 건데요? 같이 연극이라도 하겠다는 거예요? 아프다던 것도 부족해서 이제는 죽었다고까지 속이려는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요, 그런 악독한 여자는 진짜 죽었다 해도 안타까워할 필요조차 없어요.”
엄마는 분노에 휩싸여 더 이상 제대로 말을 이어가지 못했고, 강민호는 짜증이 난 듯 눈썹을 눌러 짚으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는 돌아서서 임연수에게 웃으며 말했다.
“안유정이 진짜 머리가 잘 돌아가긴 해. 자기 엄마까지 끌어들여서 나를 속이려고 하다니... 그깟 돈 몇 푼 때문에 자기 엄마 입으로 자기가 죽었다는 말까지 하게 한다고? 정말 역겹지 않아?”
임연수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오빠는 유정 언니랑 계속 함께 할 거야?”
강민호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대답했다.
“사실 유정이는 내게 잘해줬어. 이렇게 오래, 늘 내 옆에 있었고...”
‘그래...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길었어. 연애 2년, 결혼 3년...’
나는 강민호가 더 잘 나갈 수 있도록 헌신했고, 민혁이를 데리고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게 하고, 그의 부모님이 아플 때는 그 옆에서 모든 걸 도맡았다. 하지만 지금 그가 내게 미련을 가지는 건 사랑이 아니라, 나를 편리한 가정부로 여기기 때문이었다.
강민호의 말을 들은 임연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무언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그때 강민호의 전화가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그의 아버지였다.
“강민호! 내가 어쩌다 너 같은 패륜아를 낳았는지 모르겠다! 네 동생이랑 유정이가 죽었는데, 너는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지낼 수가 있냐!”
강민호는 잠시 말을 잃더니, 이내 비웃으며 대꾸했다.
“아버지도 유정이네 가족 편에서 연극에 참여하는 거예요? 뭐 다들 나를 속이려고 작정한 거 같은데?”
강준모는 분노에 말을 잇지 못하다가 힘을 다해 외쳤다.
“연극? 누가 자기 목숨을 걸고 연극을 해! 유정이랑 민혁이 둘 다 죽었다고! 네 아내랑 네 친동생이 네 잘못 때문에 죽었다고!”
강민호는 처음에는 무심히 듣는 듯하더니 순간 표정이 굳었다.
제4화
강준모의 분노는 점점 고조되었고, 그 분위기를 감지한 임연수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 물었다.
“유정 언니... 진짜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 제가 같이 가서 확인할까?”
강민호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말끝을 흐렸다.
“아니야. 뭐... 설마... 그런 일이야 없겠지.”
그러면서도 강준모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던지려 했지만, 돌아온 것은 냉담한 한마디였다.
“지금 당장 경찰서로 와!”
강준모가 전화를 끊자, 강민호는 멍하니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다. 그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무언가를 고민할 때마다 항상 이러는 걸 알고 있었다.
임연수가 그의 곁으로 다가가 살며시 몸을 기대며 그를 안았다.
“우리도 경찰서로 가볼까? 유정 언니가 죽었을 리는 없겠지만... 혹시 다쳤을 수도 있잖아. 아버님, 어머님께서 원래 유정 언니를 좋아하셨으니까 오히려 두 분이 오빠랑 유정 언니 사이를 좀 더 좋게 만들려고 그러신 걸지도 모르지...”
임연수의 말에 강민호는 조금 안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천천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안유정은 원래 어른들 앞에서 잘하는 척하고 약한 척하잖아. 우리 부모님도 노인네라서 그런 걸 못 알아채고 넘어갔겠지. 민혁이랑 둘이 함께 꾸민 쇼니까 기껏해야 살짝 다쳤을 거야. 걔가 진짜 죽을 리가 있겠어?”
그 말을 듣고 있던 강민혁은 소파 구석으로 숨어들며 실망감에 어깨를 떨었다. 나는 그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강민혁이 먼저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형수님... 형은 우리를 버렸어요. 지금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더는 형을 가족으로 여기지 않을 거예요...”
그의 미소에 담긴 쓰라린 감정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강민혁은 강민호보다 17살 어렸다. 그러니 강민호가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형제간의 우애가 깊었다.
한때 강민호는 회사 일정을 미루면서까지 민혁을 병원에 데려가고, 그림을 그리게 하며 놀이공원에도 함께 갔었다. 그래서 민혁에게 강민호는 세상의 전부였다.
하지만 임연수가 돌아온 뒤, 모든 것이 변했다.
납치되었을 때, 임연수의 휴대폰에는 강민호가 보낸 다정한 메시지가 가득했다. 반면, 내가 마지막으로 강민호와 통화했던 것은 두 달 전이었다.
납치범들은 그녀에게는 깍듯이 대하며 다치지 않게 조심했지만, 나와 민혁은 그들의 손에 처참히 구타당했다.
임연수가 몸값을 받으러 올 때는, 일부러 납치범들에게 우리를 위한 새 옷까지 준비하게 했다.
“우리 강 대표님은 착하셔서 피 같은 건 못 보세요. 괜히 화나게 했다가 문제 생기면...”
그래서 강민호가 몸값을 들고 왔을 때, 그가 본 것은 깨끗한 옷을 입고 있는 나와 민혁, 그리고 먼지투성이의 임연수였다.
강민호는 그 모든 상황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은 채, 곧바로 임연수에게 달려갔다.
“민호 오빠... 유정 언니랑 강민혁이 사람을 시켜 날 여기로 끌고 왔어. 나... 너무 무서웠어. 발목도 삐었는데... 나 이제 다시는 춤 못 추면 어떡해...”
임연수는 강민호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 흐느끼던 그녀는 이내 기절하듯 그의 품에 축 늘어졌다.
강민호는 손이 떨리는 채로 임연수의 발목을 확인했다.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우리, 온몸이 피범벅이 된 나와 강민혁의 상처는 완전히 무시당했다.
강민혁은 그 모습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술을 달싹이며, 어눌한 발음으로 힘겹게 한 마디를 뱉었다.
“형...”
민혁이 처음으로 말문을 트고 부른 형이었지만, 강민호는 그마저도 듣지 못한 듯 임연수를 안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우리는 끔찍한 고문 속에서도 구해질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임연수를 안고 문을 나서는 순간, 우리의 희망과 생명은 같은 속도로 끝을 향해 달려갔다.
우리는 그렇게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강민호는 여전히 내가 민혁과 함께 연극을 꾸며 자신을 속이려 했다고 믿고 있었다.
경찰서로 들어선 강민호를 보자마자 강준모는 아무 말도 없이 그의 뺨을 내리쳤다.
“이 자식아! 네가 진짜 사람이냐! 네 친동생을 내가 너한테 맡겼는데, 네 동생이랑 네 아내를 납치범한테 내던지고 네가 그렇게 놀아났다고?”
분노에 가득 찬 그는 임연수를 향해 불같은 눈빛을 던졌다.
“너, 도대체 내 아들한테 무슨 소리를 해댄 거냐!”
임연수는 그제야 몸을 떨며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님, 아버님은 제가 어릴 때부터 저를 보아 오셨잖아요.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유정 언니가 무슨 말씀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오해가 있으신 것 같아요...”
임연수가 꾸며낸 눈물에 강민호는 단숨에 그녀 앞으로 다가가 몸을 감쌌다.
“아버지! 안유정이랑 민혁이한테 속으신 거라고요! 아버지야말로 유정이가 뭐라고 속삭였길래 이렇게 판단을 못 하세요? 연수는 저 두 사람한테 끌려가서 발목까지 다쳤는데도 말 한마디 안 했어요. 아버지가 누구를 탓하려면 유정이한테 하셔야죠!”
강준모는 말을 잇지 못하고, 처음 보는 사람처럼 강민호의 얼굴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차갑게 웃으며 경찰들의 만류를 무시하고, 강민호를 거칠게 끌어 경찰서 안으로 데려갔다.
대기실에 앉은 강민호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한숨을 쉬며 계속 투덜거렸다.
“안유정은 정말 끝을 모르네. 민혁이까지 끌어들여서 이렇게 쇼를 벌였는데도, 지치지도 않는 거야? 대체 왜 이렇게까지 유난을 떠는 건데...”
그의 이런 태도에 강준모는 숨을 가다듬으며 분노를 삼키고 있었다.
그러다 경찰이 나타나 말을 꺼냈다.
“강민호 씨, 안으로 들어가셔서 사모님과 동생의 시신을 확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강민호는 경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코웃음을 치며 돌아서려 했다. 하지만 강준모는 그의 행동에 폭발하듯 다리를 들어 강민호를 걷어찼다. 강민호는 그 충격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화가 나서 고개를 들고 강준모를 노려보려 했지만, 문 위에 쓰인 단어를 보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안치실]
분노로 일그러졌던 강민호의 얼굴은 공포와 혼란으로 뒤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