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타에서 주인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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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타에서 주인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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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만나온 남자친구랑 드디어 부부로 되던 날이었다. 결혼식 당일, 남자친구의 첫사랑이 찾아와 나 대신 신부 자리에 앉겠다고 했었다. 나의 웨...

Chương (1)

第1章

10년 동안 만나온 남자친구랑 드디어 부부로 되던 날이었다. 결혼식 당일, 남자친구의 첫사랑이 찾아와 나 대신 신부 자리에 앉겠다고 했었다. 나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의 결혼반지를 끼꼬서 그녀는 세상 아련한 모습으로 나의 남자를 넘봤었다. “이현 언니, 저 많이 아파요.” “언니는 앞으로 평생 오빠 곁에서 행복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 제발 결혼식만은 저한테 양보해주세요.” 그 소리를 들은 남자친구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편을 들었었다. “소이현, 욕심 좀 그만부려! 나랑 혼인신고도 하고 내 아이까지 품고 있잖아! 그 많은 걸 얻고서 결혼식 하나쯤은 양보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적나라한 하객들의 손가락짓까지 신부인 난 모두의 웃음거리가 되어버렸었다. 하지만 난 눈물 하나 흘리지 않고 덤덤하고 너그러운 모습을 보였었다. 아이를 지우겠다고 산부인과에 예약을 하고나서 난 남친의 첫사랑을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결혼식도 10년 동안 쓰다 남은 쓰레기도 너한테 다 줄게.” 제1화 “소이현! 너 미쳤어!” 박지현의 손만 잡고 있던 나의 남자친구인 이정훈은 마침내 그 손을 놓고서 나를 잡아당기려고 했다. 다가오는 정훈을 바라보면서 난 주저없이 그를 향해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정훈은 믿어지지 않는 듯 얼굴을 부여잡고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치맛자락을 살포시 들고서 지현은 바로 정훈에게 다가가 그를 확 끌어안았다. 여린 몸이지만 자기 힘으로 자기 남자를 지키겠다는 듯한 의지를 보이면서. 이윽고 지현은 연약한 모습으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현 언니, 이제 그만 화 좀 푸세요. 우리 오빠 제발 그만 때려요.” “결혼식도 웨딩드레스도 언니한테 돌려줄 테니 제발 그만 하세요. 저 그냥 홀로 외로이 죽을게요.” 마음과 전혀 다른 말을 내뱉으면서 지현은 입고 있던 웨딩드레스를 벗으려고 했다. 그러자 정훈이 그런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 “지현아, 이 웨딩드레스의 주인은 처음부터 너였어. 결혼식의 주인공도 오직 너 하나뿐이었고.” 지현의 웨딩드레스를 꼼꼼히 정리해주면서 정훈은 부드럽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형적인 첫사랑의 이미지에 걸맞은 지현은 같은 여자가 봐도 청순하고 예뻤다. 맞춤 제작이라도 한듯한 웨딩드레스까지 입고 있는 지현은 ‘빛’ 그 자체였다. ‘저 웨딩드레스는 내 것인데 왜 쟤한테 어울리는 걸까?’ 난 문득 웨딩드레스를 피팅하던 그날이 생각났다. 그날, 난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 여러 곳을 수선보려고 했으나 정훈은 맞춤제작한 웨딩드레스라 그럴 수 없다고 했었다. ‘그런 거였구나... 처음부터 박지현을 위한 웨딩드레스였어...’ 어느새 나의 입가에 차가운 웃음이 새어 나왔고 그 모습을 정훈이 보게 되었다. “소이현, 이제 마음에 들어? 우리 지현이를 이렇게까지 몰아세워야 네 속이 시원하겠어?” “네 뱃속에 있는 아이부터 생각해! 아빠 없이 키우고 싶지 않으면 늘 그래왔듯이 순순히 말 들어!” 순간 결혼진행곡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두 화동이 꽃가루를 뿌리면서 두 사람 앞으로 꽃길을 깔아주었다. 모두가 주목하는 가운데 정훈은 그렇게 지현의 손을 잡고서 ‘꽃길’을 걸었다. 행복을 상징하는 피아노 소리가 들려올 때쯤, 난 산부인과에 예약 전화를 걸었다. 아이를 지우겠다고... 행복으로만 가득 찬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하객들은 나한테 손가락짓을 했다. 마치 내가 불청객인 것처럼 말이다. 사회자 앞에 서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게 평생을 약속했고 난 하객들의 시선이 너무 따가워서 처량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도망쳐나왔다. 허겁지겁 뒤돌아서서 뛰쳐나가려고 하던 그때 난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나의 가족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오늘의 신부가 내가 아닌 지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놀라움이 일도 없었다. 심지어 내 동생은 무대로 올라가서 칭찬을 서슴치 않았다. “여러분, 이렇게 화려하고 사랑이 넘치는 결혼식은 처음이죠? 역시 우리 매형!” 마치 무대 위에 있는 지현이야말로 자기 누나인 것처럼 말이다. 무대에서 내려온 동생은 내가 보이지 않자, 바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누나, 당장 돌아와. 매형 창피하게 하지 말고. 별것도 아닌 것으로 왜 그렇게 유난이야? 어차피 혼인신고는 누나랑 한 거잖아.] [얼른 와서 매형한테 진지하게 사과해. 다음 달에 매형이 새 차로 뽑아준다고 약속했단 말이야. 계약서까지 다 체결한 상황인데, 매형이 누나 때문에 화나서 계약금 주지 않으면 나 진짜 끝이야!] 순간 난 가슴이 쥐어뜯기는 것만 같았다. 떨리는 속으로 겨우 키보드를 누르면서 답장을 보냈다. [내가 그동안 매달 용돈 보냈잖아. 근데 왜 그 비싼 걸 정훈한테 사달라고 한 거야?] 돌아오는 답장은 아무리 기다려도 없었지만 아빠와 엄마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물론 다짜고짜 욕부터 들려왔다. [내가 너 같은 걸 낳고 미역국을 마셨다니! 넌 대체 양심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동생이 큰 걸 바란 것도 아니고 그깟 차 좀 뽑겠다는 데 순순히 협조 못 해? 돈 많은 시댁으로 시집간다고 좋아했건만 그딴 짓이나 펼치고 말이야! 나도 참 쪽팔려서! 너 때문에 내가 살 수가 없어!] 아빠와 엄마의 욕설 속에서 난 마침내 알게 되었다. 돈만 밝히는 여자라고 시어머니께서 나한테 늘 인상만 쓰셨던 그 이유를. ‘그런 거였어... 내 가족이 나를 팔아 넘긴 거였어...’ 모든 퍼즐이 맞추어지는 순간 난 온몸이 나른해지고 말았다. 예식장 밖에 있는 계단에 힘없이 주저앉아버렸다. 아빠와 엄마는 마음껏 욕설을 퍼붓고 난 뒤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었다. 제2화 한참 발버둥치고 나서야 난 겨우 자리에서 일어설 수 있었다. 후들거리는 다리 때문에 계단을 내릴 때 그만 발목까지 삐긋하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미어지는 가슴에 이어 온몸으로 통증이 파고 들어왔다. ‘웨딩 드레스뿐만 아니라 웨딩슈즈도 내 것이 아니었구나...’ 난 그전까지 이 모든 것을 정훈의 세심하지 못한 성격 때문이라고 여겼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정원에는 온통 하얀 장미와 스톡뿐이었다. 그렇다, 그 역시 지현이가 가장 좋아하는 꽃들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위한 결혼이 아니었어...’ 발에 맞지 않은 신발을 신고서 정원을 지나 예식장으로 향했을 때 나의 발은 이미 다친대로 다쳐있었다. 이제 발목까지 삐끗한 상황에서 다시 자갈로 가득 깔린 길을 걸어야 하니 가시밭이 따로 없었다. 내 앞을 지나가던 도우미들은 나에게 시선 한번조차 주지 않고서 쟁반을 들고 연회장으로 부랴부랴 달려갔다. 그 누구도 날 부축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예식장을 박차고 나왔을 때 내가 뒤돌아서자마자 그 누구도 나한테 관심을 보이지 말라면서 도와주지 말라면서 정훈이가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난 차라리 맞지도 않은 신발을 확 벗어버렸다.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 그 신발을. 따라서 맨발로 자갈 길을 걷게 되었고 서서히 반상출혈 현상이 나타날 때쯤 난 겨우 출구에 이르게 되었다. 콜택시를 불러서 병원에 가려고 했으나 은행 카드 잔액 부족으로 그럴 수 없었다. 순간 먹구름이 우르르 밀려오면서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내릴 것만 같았다. ‘잔액 부족? 그럴 리가... 매달 600만 원씩 월급이 들어올 것인데...’ 믿어지지 않은 상황에 난 다시 확인해 보았지만, 잔액은 여전히 0원이었다. 콜을 받고 온 택시 기사는 돈이 없어서 쭈뼛거리고 있는 나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돈 없으면 걸어서 다녀! 괜히 시간만 낭비하게 하고 말이야!” ‘돈이 어디로 갔을까?’ 난 한참이나 생각했고 그 끝에는 뱀파이어와 같은 가족들이 서 있었다. 가족의 지지와 사랑이 가장 필요할 시기인데 그들은 몰래 숨겨둔 칼로 나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 온 세상이 나랑 등진 것만 같아 난 무릎을 꽉 끌어안고서 길거리에 앉아버렸다. 핸드폰 벨소리에 정신을 차리기까지 말이다. 수신 버튼을 누르는 순간 길냥이에게 먹이라도 주듯이 베푸는 듯한 뉘앙스가 수화기 너머 들려왔다. [절차는 다 끝났어. 이제 와서 사진이라도 찍고 가. 결혼기념일에 봐야 할 건 있어야 하잖아.] “그럴 필요 없어.” 난 두 눈을 가려버린 빗물을 닦아버리면서 단호하게 대답했다. 갑작스럽게 쏟아진 비는 무려 한 시간이나 계속되어 난 홀딱 젖어버리고 말았다. [소이현! 좋은 말로 할 때 순순히 기어와!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 [너한테 땡전 한 푼도 없잖아. 거지꼴로 다녀봐야 정신 차릴래?] “나한테 돈 없다는 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의 주머니 사정을 똑똑히 알고 있는 정훈의 말에 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네 가족들 욕심이 한도 끝도 없어야 말이지.] 정훈은 하찮다는 듯이 덧붙였다. [내가 무슨 은행이야? 허구한 날 나한테만 손 벌리잖아. 내가 하도 귀찮아서 네 은행 카드 비밀번호 알려줬거든.] [근데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너 하나쯤은 내가 얼마든지 먹여살릴 수 있는데, 네 가족까지 내가 챙겨야 할 의무는 없잖아.] ‘그런 거였어... 내가 힘들게 번 돈을... 그렇게 탕진한 거야... 가족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너 하나로도 한없이 귀찮은데 주렁주렁 가족들까지... 우리 지현이 좀 봐봐, 얼마나 깔끔하고 좋아.] 정훈은 나의 가족을 향해 입에 담기도 힘든 막말을 퍼부었고 그와 반대로 지현의 가족을 높이 추켜세웠다. 부드럽고 자상하며 예의범절까지 갖춘 집안이라고. ‘정말 네 생각대로 그런 사람들일까?’ 난 문득 임신초기 때 일이 생각났다. 돈을 요구하는 가족에게 난 앞으로 일어나게 될 소비로 거절을 했었는데, 그때 동생은 홧김에 나를 계단에서 밀어버렸었다. 그때 난 아이를 잃을 뻔했었고 본능적으로 아이를 지키느라 팔까지 탈곡되었다. 난 바로 정훈에게 전화를 했었고 정훈은 그때 아빠와 싸우고 가출한 지현과 함께 있었었다. 정훈은 우리 가족과 관련된 일이라는 걸 듣고 난 뒤 바로 귀찮아하면서 전화를 훅 던졌었다. 이윽고 계속 지현이를 위로하면서 앞으로 지현의 부모님이 또다시 아들을 편애하면 자기가 나서서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했었다. 난 탈곡된 팔을 부여잡고서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오는 건 혼자서 해결하라는 차가운 말뿐이었다. 인간이길 포기한 짓을 그동안 그렇게 많이 하고서도 가족에게 은행 카드 비밀 번호를 알려준 것을 자랑스럽게 알려주고 있다. 나 대신 일을 해결했다는 뉘앙스로 말이다. 어처구니없는 가운데 수화기 너머 지현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이현 언니는? 오지 않는데? 우리 둘만 중간에 서서 사진 찍으면 언니가 질투하지 않겠어?] [괜찮아. 전화까지 했는데 싫다고 한 사람은 걔잖아. 사진 찍으러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너한테 사과는 무조건 해야만 할 거야.] 지현에게 하고 있는 말이지만 정훈은 나에게 협박을 더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주저없이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윽고 친구에게 돈을 빌려서 바로 산부인과에 연락했다. 제3화 부상 입은 발목에 비까지 쫄딱 맞은 난 결국 고열에 시달리고 말았다. 의사 선생님은 열이 내리고 난 뒤 수술을 해주겠다고 하셨다. 갈 곳도 없고 하여 난 차리라 입원을 하고 말았다. 그날 밤 정훈은 노기등등한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했고 어디에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캐묻기 시작했었다. 정훈의 옆에 있던 지현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격으로 덧붙었다. [오빠, 이현 언니는? 아직도 밖이래? 동료 집에라도 간 거야? 그 회사에 남자들 엄청 많다고 하던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려고 그래... 오빠는 걱정도 안 돼?] 그 말을 듣고서 정훈의 입가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넌 이현이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지? 개처럼 나한테만 달라붙고 아무리 떼어내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는 그런 사람이야. 바람은 무슨...] 그 말을 듣게 된 순간 이미 무너진 줄 알았던 내 가슴이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예전에 정훈으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난 그때 최선을 다해 정훈을 붙잡았었다. 나의 진심에 마음이 흔들린 줄 알았건만 나를 떼어낼 수 없는 ‘개’로 보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정훈의 말에 지현은 귀에 거슬릴 정도로 웃기 시작했다. [오빠도 참! 두 사람 헤어졌을 때가 내가 방금 귀국했을 때 아니야? 혹시 나 때문에 헤어진 거였어?] 그 말에 정훈은 순간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때 정훈은 나에게 깊이 생각하지 말라면서 넘어갔었다. “헤어지자고 말했던 거 진심이 아니었어. 난 너만 사랑해. 그렇지 않고서야 너랑 혼인신고할 일도 없잖아.” 이러한 멘트를 순진한 나한테 날리면서 말이다. 난 소리 없는 비웃음과 함께 전화를 끊어버렸다. 마침 병실로 들어왔었던 간호사는 통화 내용을 대충 듣고서 동정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같은 여자로서 내가 안쓰러워였을까 목소리도 한껏 부드러워졌었다. “수술은 언제쯤 할 수 있을까요? 가능한 한 빨리 했으면 좋겠어요.” “발목만 괜찮으시면 내일 당장 수술 받으실 수 있습니다.” 제4화 다음날, 난 간호사의 안내를 받으면서 수술실로 향했다. 산부인과 병동이라 출산한지 얼마 안 된 아이가 수술실에서 실려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이가 나오는 순간 가족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우르르 다가가 아이와 산모의 건강을 살피면서 걱정해 마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서 난 자기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고 고개를 숙인 채 배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간호사는 나의 그러한 모습에 내가 긴장이라도 한 줄 알고 핸드폰을 보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라고 했다. 난 영혼 없이 핸드폰을 손에 들고서 멍하니 넋을 놓기 시작했다. 손가락은 어느새 SNS 스토리를 향해 누르고 있었고 마침 지현이가 정성껏 올린 스토리를 보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행복한 여행.] 이러한 문구와 함께 손깍지를 하고서 다정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은 두 사람이 보였다. 비록 결혼식날에 난 이미 이 감정을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었었지만, 지현의 스토리를 보게 된 순간 어느새 눈물이 앞을 가리고 말았다. 평소 정훈은 사업으로 눈 코 뜰 새가 없었고 우린 결혼식을 한없이 뒤로 미뤄야만 했었다. 따라서 결혼식도 신혼 여행도 난 미뤄지는 시간 동안 이내 기대하고 기다려왔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기대의 끝에 이러한 실망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었다. 난 눈물을 닦고난 뒤 어느새 화면까지 적셔버린 눈물 방울을 닦으려고 했으나 그만 ‘좋아요’를 누르고 말았다. ‘취소’버튼을 누르기도 무섭게 바로 알림 소리가 들려왔다. [소이현, 이번 신혼 여행은 원래 너랑 가려고 했었어. 근데 네가 고집부리면서 싫다고 했잖아. 그렇다고 이미 예약해놓은 코스를 취소할 수도 없잖아.] 난 정훈의 연락처를 바로 차단해 버렸다. ‘차라리 보지 않은 게 편해.’ 그러자 정훈은 계속 전화를 걸러왔고 엉겹결에 간호사가 나를 부르고 있는 걸 듣게 되었다. 정훈은 그제야 내가 병원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관심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소이현, 너 아파? 얼마나? 지금 갈까?] 그러자 옆에서 말리고 있는 지현의 목소리가 뒤따라 들려왔다. [오빠, 이현 언니 말이야, 혹시 내가 올린 스토리 보고서 꾀병 부리는 거 아니야? 우리 여행 망치려고 말이야. 오빠, 절대 속아 넘어가면 안 돼. 아파봤자 나보다 심각하겠어?] 정훈은 잠시 생각하더니 지현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날 그렇게 세게 때려놓고 나서 갑자기 아프다니 말도 안 돼.’ 이윽고 정훈의 욕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이현! 제발 그깟 연기 좀 그만해! 수작도 제발 좀 그만 부리고! 그깟 꼼수에 내가 바보처럼 넘어갈 것 같아?] 제5화 정훈의 말을 끝으로 난 톡에 이어 그의 전화번호까지 차단해버렸다. 내 아이를 저 세상으로 보내주는 길만큼은 조용하길 바랬으니 말이다. 차갑기 그지없는 수술대에 누운 난, 천장을 바라보았는데 순간 두 눈이 아플 정도로 조명이 켜졌다. 지현은 계속 스토리를 올렸고 올리면 오릴수록 첨부된 사진은 점점 더 자극적이었다. 내 아이가 나와 한걸음 더 멀어졌을 때, 지현은 최고가로 낙찰한 다이아몬드를 스토리에 올려 자랑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경매장에서 뜨겁게 키스를 나누었고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와 축하의 물결이 가득 넘치는 댓글은 그들의 사랑을 더욱더 크게 노래했다. 병상에 누워 있는 난 몸도 마음도 갈기갈기 찢겨버린 것처럼 피가 멈추지 않고 있었는데 말이다. 병원에서 회복하고 있는 동안 정훈은 수없이 나한테 연락을 시도했었다. 그의 모든 연락처를 차단한 상황이라 정훈은 끝끝내 내 가족을 통해 나랑 연락이 되고 말았다. 가족들은 병실까지 찾아와서 나를 귀찮게 몰아세웠다. 내가 무슨 이유로 병원에 있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이현아, 너 애까지 달고 이혼할 거야? 정훈이랑 이혼한다고 한들 누가 널 받아줄 것 같아?” 난 바로 반박해버렸다. “이혼해도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살 수 있어요. 전 그렇다 치고 아쉬운 건 아빠랑 엄마 아니에요? 돈줄이 뚝 끊어져서 불안해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난 그냥 내 사위 돈을 마음대로 쓰고 있는 것뿐이야! 너희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 아빠는 어이없게도 아주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요? 그래서 내 돈을 한 푼도 남겨주지 않고 모두 빼간 거예요? 비 오는 날 그깟 택시비 하나 없어서 비까지 쫄딱 맞게 하고! 당신들이 그러고도 내 부모야!” 이내 쌓아두었던 서러움이 터지면서 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소리를 질렀다. 아빠는 금세 뜨끔해하셨지만 동생은 여전히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 “그건 엄마랑 아빠가 응당 받아야 할 돈이야! 널 지금껏 키워주셨는데, 그게 얼마나 된다고.” 엄마 역시 바닥에 주저앉고서 막무가내로 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여러분, 여기 좀 보세요. 이래서 딸 키워봤자 소용없다고 하나 봐요! 시집갔다고 자기 부모 나 몰라라 하는 딸 좀 보시라고요!” 다른 병실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구경하러 오기 시작했다. 병원 직원이 절대 안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따끔하게 말하자 그제야 마지못해 병실에서 나갔다. 세 사람은 병실에서 나가기 직전까지 나한테 경고를 더 했었다. 만약 이혼한다면 정훈이네로부터 받은 모든 폐백은 절대 돌려주지 않겠다면서 나 스스로 빚을 갚아가라면서 말이다. 그때 핸드폰 알림 소리가 들려왔는데, 지현의 핸드폰으로 정훈이가 보낸 메시지였다. [봤지? 네 가족은 널 사랑하지 않아. 이 세상에서 널 사랑해줄 사람은 나 말고 없어.] 태어난 가정의 조건이 그다지 좋지 않아 난 늘 자격지심을 느끼면서 다른 사람이 아는 걸 두려워했었다. 하지만 정훈이를 만난 뒤 난 마음을 털어놓고 처음으로 가족 형편에 대해서 얘기를 했었다. 그때 정훈이는 나를 안쓰러워하면서 나의 귓가에 수없이 속삭였었다. ‘내가 널 사랑해줄게’라고. 하지만 점차 ‘나만 너 사랑해줄 거야’로 변하기 시작했었다. 그전까지 난 그러한 감정 속에서 발버둥을 치면서 나를 사랑해주기를 원하기만 했었다. 달라져버린 정훈의 말에 부들부들 떨려 밤새 잠을 잘 수도 없었고 잠에 든다고 한들 그에게 버림받는 악몽뿐이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난 속으로 스스로에게 자주 말하고 있다. ‘이현아, 괜찮아... 내가 널 사랑해줄게.’ 남을 사랑하기 전에 일단 자기 자신부터 사랑해야 하고 그 첫걸음은 나를 가스라이팅하는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난 그들의 연락처를 모두 차단해버리고 온수로 눈물까지 씻어버렸다. 이윽고 편안한 마음으로 아주 마음 편히 푹 잤다.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가 짐을 챙기고 있던 그날, 정훈이가 소현이를 데리고 돌아왔다. 난 다소 의아하기만 했다. 적어도 온전한 신혼여행 기간을 만끽하고 올 줄 알았는데, 다음 날 바로 돌아올 줄은 몰랐었다. 정훈은 캐리어를 들고 있는 나를 보고서 눈살을 찌푸렸다. “소이현, 너 아프다고 그래서 나 밤새 비행기 갈아타고 돌아오는 길이야. 이래도 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대체 뭘 더 어떻게 해야 만족하겠어!” 난 그런 그를 바라보지 않고 계속 남은 짐을 챙기면서 덤덤하게 말했다. “우리 이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