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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끝자락
엘리베이터 안에서 폐소공포증에 덜덜 떨던 나. 그때 강시헌은 어디 있었을까? 그는 나를 두고, 나이 어린 비서 송나은에게 감기약을 챙겨주고 있었...
Chương (1)
第1章
엘리베이터 안에서 폐소공포증에 덜덜 떨던 나.
그때 강시헌은 어디 있었을까?
그는 나를 두고, 나이 어린 비서 송나은에게 감기약을 챙겨주고 있었다.
결국, 나는 이혼을 결심했다.
그리고 강시헌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이혼 서류에 서명했다.
그는 친구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좀 삐진 거야. 부모도 없는 애가 어디 갈 데나 있겠어? 이혼숙려기간도 있잖아? 좀 지나고 나서 내가 받아주면 다 끝날 일이지.”
다음 날, 그는 송나은과 찍은 커플 사진을 SNS에 올렸다.
[너의 모든 수줍은 순간을 기록해.]
나는 조용히 하루하루 날짜를 세었다.
그리고 마침내, 짐을 모두 정리한 후, 전화를 걸었다.
“삼촌, M국 가는 비행기 티켓 좀 예매해 주세요.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고요.”
제1화
[세윤아, 잘 결정했어! 네가 이렇게 오랜만에 돌아와 줘서 삼촌이 정말 기쁘다.]
전화기 너머 한층 밝아진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통화가 끝나자마자,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강시헌이 보였다.
강시헌과 함께 낯선 여자 향기가 따라 들어왔다.
진하고, 달콤했지만, 어딘가 역겨운 냄새였다.
“누구랑 통화했어?”
그는 별 관심도 없다는 듯, 내게 시선을 주지도 않고 휴대폰 화면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내가 막 대답하려던 순간, 강시헌의 전화가 울렸다.
곧장 사람을 녹일 것 같이 간드러진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강 대표님! 며칠 전에 약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덕분에 감기 증상이 좀 나아졌어요. 대표님 없었으면 저 어쩔 뻔했죠?]
강시헌이 순간적으로 스피커 음량을 낮췄다. 이런 행동 자체가 이미 매우 수상쩍었다.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네.’
‘우린 어차피 이혼을 앞두고 있으니까’
나는 조용히 내 짐을 정리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나 자신을 위한 따뜻한 우유 한 잔을 준비했다.
강시헌은 방금까지도 전화기 속 달콤한 목소리에 빠진 채로, 이내 습관적으로 테이블 위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강시헌은 방금 전화기 너머로 다정한 대화를 나눈 뒤, 소파에 앉아 평소처럼 신문을 넘겨보고 있었다.
그런데 늘 내가 그를 위해 늘 내가 준비해 두던 허브차가 없다는 걸 깨닫자, 비로소 나에게 눈길을 주었다.
강시헌의 표정이 눈에 띄게 짜증스러워졌다.
“엘리베이터 고장 났을 때 내가 못 구해줬다고 이러는 거야?”
“나은이 친척이 의사인데, 당신 폐소공포증 별거 아니라더라. 그렇게 유난 떨 필요 없어.”
“그리고 당신이 먼저 이혼하자고 해서 내가 받아들인 거잖아. 근데 왜 하루 종일 이런 얼굴이야?”
그날 밤, 나는 야근을 마치고 돌아오다 엘리베이터에 갇혔다. 설상가상으로 정전이 되었고, 휴대폰 배터리도 거의 바닥이었다.
그 와중에 폐소공포증이 도지면서 나는 공황 상태로 손을 벌벌 떨며 강시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당신이 알아서 해결해. 나 바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정신을 잃었다.
나는 시간이 지나서야 강시헌이 오지 못한 이유를 결국 알게 됐다.
그날 밤, 강시헌은 송나은에게 감기약을 가져다주느라 나를 구하러 올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혼을 결심했다.
“걱정 마. 이혼하고 나면 당신은 더 이상 내 얼굴 볼 일 없을 거니까.”
나는 손을 멈추지 않고 계속 정리를 했다.
강시헌은 오히려 더 예민해진 듯한 얼굴로 소리를 높였다.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어!”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말이었다.
내가 짐 정리에만 몰두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강시헌은 문을 세게 닫고 나가버렸다.
‘별일이네. 화낼 이유가 없을 텐데.’
나는 차분하게 남은 일을 마치고, 우유 한 잔을 더 마신 후 뜨거운 물로 샤워했다.
그런데 샤워를 마치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
강시헌이었다.
[나 술 마셨으니까 좀 데리러 와. 요구르트 하나 사 오고.]
나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바로 다음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직 이혼 확정된 거 아니야. 아내로서 의무는 다해야지.]
‘이제 와서 무슨...’
그저 피곤할 뿐이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
클럽 앞에 도착했을 때, 안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는 너무나 익숙했다.
강시헌과 송나은.
그 순간, 나는 얼마 전 강시헌이 술에 취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시헌아, 진짜로 세윤이랑 이혼할 거야?”
강시헌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냥 좀 삐친 거야. 돌아가서 의지할 부모도 없는 주제에, 걔가 날 떠날 수 있겠어?”
“어차피 이혼숙려기간도 있으니까. 시간 조금 지나서 내가 대인배답게 도로 받아주면 될 일이지.”
결국, 강시헌은 내가 떠날 수 없을 거라 믿고 있었다.
사랑도 아니고, 배려도 아니고, 단순히 내가 ‘부모도 없이 혼자’라는 이유였다.
‘당신은 날 더 붙잡고 있을 명분이 없어, 강시헌.’
제2화
나는 문을 열고 룸 안으로 들어섰다.
강시헌은 나를 보자 순간적으로 눈썹을 찌푸리며 놀란 기색을 보였다.
“당신 여기서 뭐 해? 혹시 나 몰래 스토킹이라도 하는 거야?”
남자의 목소리는 나를 경계하는 기색이 뚜렷했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당신이 보낸 메시지잖아.”
그 순간, 송나은이 입을 삐죽이며 강시헌의 팔을 살짝 잡아당겼다.
“강 대표님! 그냥 제 장난이었어요. 제가 대표님 폰으로 세윤 언니한테 요구르트 사 오라고 한 건 진짜 농담이었는데... 설마 화난 건 아니죠?”
강시헌의 굳어 있던 표정이 풀어졌다.
‘참 우습네.’
송나은의 한없이 가벼운 장난, 그리고 강시헌의 묵인.
예전 같았으면 내 가슴이 미어졌겠지만, 이젠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예전처럼 소리치지도, 흥분하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오히려 강시헌이 뜻밖의 행동을 했다.
“오늘 나은이랑 그냥 업무적인 자리였어...”
남자의 변명을 들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니 나는 조용히 요구르트를 내밀었다.
강시헌은 술을 마신 상태라 직접 운전할 수 없었다.
결국 송나은을 먼저 보내고, 나는 강시헌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택시는 도로 건너편에 서 있었다.
나는 무심히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강시헌이 내 팔을 세게 잡아당겼다.
“위험해!”
쌩 하고 지나가는 차량이 내 바로 앞을 스쳤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앞 좀 보고 다녀.”
남자의 목소리는 다그치듯 날카로웠다.
그리고... 나는 내 손을 꼭 잡은 강시헌의 손을 보았다.
순간, 내 머릿속에서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는 내가 길을 건널 때마다 강시헌이 내 손을 꼭 잡아주곤 했다. 하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이젠 그런 감촉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도로를 다 건너자 나는 그의 손에서 내 손을 조용히 빼냈다.
강시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다음 날 아침.
나는 출근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그때 강시헌이 느닷없이 말했다.
“내가 데려다줄게.”
어제 그 일로 늦게 잤고, 지금 지하철을 타면 출근 시간에 간신히 맞출 수 있는 상황이었다.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어서, 나는 조용히 차에 올랐다.
그런데 조수석 문을 열자마자 달콤한 향이 코를 찔렀다.
익숙하지만 낯선 그 여자 향수 냄새.
그리고 카시트는 온통 핑크였다.
귀여운 헬로 키티 쿠션까지 놓여 있었다.
더 어이없는 건 앞좌석에 붙어 있는 작은 스티커.
[나은이 전용석]
‘우습군.’
완벽주의에 철저하고, 직장 내에서 냉철한 강시헌이, 자신의 차에 이런 장난스러운 물건을 두고도 가만히 있다니.
강시헌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어졌다.
“나은이는 그냥 어린애야. 괜히 신경 쓰지 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그 ‘어린애’와 커플 사진까지 찍은 건 뭐였을까?
이혼 서류를 신청한 다음 날, 강시헌의 SNS에 올라온 사진.
[너의 모든 수줍은 순간을 기록해.]
그게 나에 대한 단순한 복수심이었든, 아니면 다른 이유였든, 강시헌이라는 남자가 더 이상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나는 조용히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뒤에 앉을게.”
강시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병 하나를 내밀었다.
“아침도 못 먹었을 거 아냐.”
나는 강시헌을 바라보았다.
차 안에는 작은 간식 박스가 놓여 있었다. 거기엔 쿠키, 젤리, 말린 과일 등 다양한 간식이 가득했다.
강시헌은 지독한 결벽증이 있는 사실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 차 안에서 누군가가 음식을 먹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내가 차 안에서 저혈당 쇼크가 와서 손이 떨릴 정도였는데도, 그는 ‘차에서 음식 먹지 마’라며 단 한 모금의 음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송나은을 위해 이런 간식 박스를 준비해 두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이렇게도 명확하구나.’
나는 묵묵히 고개를 저으며 강시헌이 내민 병에 담긴 우유를 거절했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나의 정신없이 바쁜 하루가 시작되었다.
이제 곧 이혼할 사이지만, 내 손에는 아직 마무리해야 할 프로젝트가 남아 있었다.
책임감 때문이라도, 이 일을 끝낸 후 회사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정신없이 오전을 보내고, 잠깐 쉬려던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큰 상자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여기요! 대표님이 보낸 간식입니다!”
순식간에 사무실이 떠들썩해졌다.
“대박! 오늘은 버블티에 케이크까지?”
“우리 대표님 너무 대박! 이런 거 자주 해주시면 좋을 텐데.”
그때 누군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몰랐어? 나은 씨가 요즘 다이어트하는 거 보고 대표님이 안쓰러워서 간식 시켜준 거래.”
“우린 덕분에 그냥 얻어먹는 거지, 다 나은 씨 덕이야.”
사람들은 웃고 떠들었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타러 갔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쓰기만 한 커피 한 잔을.
제3화
“어? 대표님, 원래 세윤 언니랑 결혼하신 사이 아니었어요?”
“야, 조용히 해! 세윤 언니 듣잖아.”
“세윤 언니, 그냥 장난이에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나는 테이블 위에 한가득 놓여 있는 망고 빙수와 초콜릿 케이크를 바라보았다.
이걸 보니 나도 확신할 수 있었다.
송나은이 다이어트 때문에 안 먹느라 건강이 나빠질까 봐, 강시헌이 전 직원에게 간식을 사며 그녀를 챙겼다는 사실을.
‘정말 맛보고 싶네. 그 두 사람이 사랑한다는 증거를.’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망고 알레르기가 있고, 초콜릿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에도 그랬다.
강시헌은 나를 쫓아다닐 때도 이렇게 거창한 방식을 좋아했다.
혹시라도 내가 업무에 치여 끼니를 거를까 봐, 회의를 빌미로 날 붙잡아 밥을 챙겼고, 내가 몸이 아픈 상태로 일하고 있으면, 케이크 속에 슬쩍 약을 숨겨 가져와 억지로 먹이기도 했다.
내가 얼굴을 찌푸리며 쓴맛에 당황하는 걸 보고, 강시헌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때 사무실은 우리 둘의 이야기를 몰래 엿듣는 사람들로 활기찼다.
모두가 뒤에서 우리의 사랑을 응원하고 있었다.
‘지금은 강시헌의 감정과 노력의 대상이 바뀌었네.’
하지만 감상에 젖어있을 틈도 없었다.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나를 붙잡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며칠 밤을 새웠는지 모른다.
오늘도 결국 야근이었다.
밖이 벌써 어둑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강시헌이 내 옆에 와 있었다.
“아직도 야근해?”
그가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무슨 일로 왔어?”
내가 거리감을 두자, 그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 프로젝트, 나은이에게 넘기는 게 어때?”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니,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막상 내 귀로 듣게 되니 생각보다도 더 아팠다.
“나은이에 대해 요즘 말이 많잖아. 이 프로젝트가 나은이 이름으로 올라가면, 실력에 대한 오해도 줄어들 거야.”
강시헌은 송나은을 위한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녀가 루머에 휩싸이는 걸 걱정하면서, 내가 이 프로젝트를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내 입안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 그렇게 해.”
강시헌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내가 쉽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이제 상관없다.
나는 이 회사에 할 만큼 했다.
딱 프로젝트 정리만 끝내고, 그대로 사직서를 내고 나가면 그만이다.
“내일 송나은더러 나한테 와서 인수인계 받으라고 해.”
남자의 표정에서 안도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내밀었다.
“이거. 당신 예전에 이 브랜드 목걸이 갖고 싶다고 했잖아. 그때는 신경 못 썼는데... 미안하다. 여자들은 이런 거 좋아한다며? 앞으로 더 잘할게.”
상자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였다.
확실히, 나는 한때 이 브랜드의 목걸이를 원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가 아니라 지금 준다면, 이건 단순한 ‘보상’일 뿐이다.
이젠 전혀 의미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먼저 한 대 때리고,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사탕을 주는 식의 위로는 싫었다.
나는 아무런 감정 없이 답했다.
“고마워.”
강시헌은 조금 안도한 듯했다.
그러다 갑자기 내 어깨에 외투를 걸쳐주며 말했다.
“당신도 이제 그만 마음 풀어. 그때는 내가 잘못했어. 이번 주 안에 이혼 서류 철회하러 가자.”
그리고 덧붙였다.
“그리고... 당신 예전에 여행 가고 싶다던 곳도 있지 않아? 이혼 신청 취소하고, 같이 여행 가자. 당신 좋아하던 곳도 있잖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시헌은 내가 침묵하는 걸 동의로 착각한 듯, 혼자서 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휴대폰을 열어 SNS 피드를 넘겼다.
그리고 송나은의 최신 게시물이 눈에 띄었다. 한눈에 봐도 나에게 준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화려한 목걸이.
같은 브랜드, 같은 상자.
하지만, 송나은의 것이 분명히 더 고급스러웠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받은 것은 ‘사은품’이었다.
우습지도 않다.
강시헌이 미안함에 대한 사과라는 명목으로 나에게 건넨 이 선물조차,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제품 중에서 제대로 고를 마음조차 없었다.
제4화
내일이면 이혼숙려기간이 끝난다.
내일이 지나면, 나는 강시헌과 완전히 남남이 된다.
나는 베란다에 둔 작은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그 순간, 손가락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반지였다.
내 눈이 깜짝할 새에 반지가 베란다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숙여 반지를 찾으려 했다.
그때, 강시헌이 내 팔을 강하게 붙잡고, 나를 뒤로 끌어당겼다.
“뭐 하는 거야!”
“위험한 짓 하지 마!”
남자의 눈에는 뚜렷한 걱정과 불안이 서려 있었다. 마치 아직도 나를 신경 쓰고 있는 것처럼.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반지가 떨어졌어.”
그 반지는 강시헌이가 직접 만들어 준 반지였다.
디자인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이었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계속 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반지가 떨어지는 순간, 본능적으로 주우려고 몸을 숙였을 뿐이다.
강시헌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고작 반지 하나잖아. 새로 사면 돼. 그런 걸로 위험하게 굴 필요 없어.”
‘고작 반지 하나라고...’
나는 남자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텅 빈 손가락...
강시헌은 결혼반지를 뺀 지 이미 오래였다.
그런데도 그는 태연하게 말했다.
“내일, 우리 결혼기념일이잖아. 내가 데리러 갈 테니까, 같이 보내자.”
‘얼마만의 결혼기념일이지?’
‘아니, 솔직히 지금까지 제대로 보낸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나?’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 끝낼 때 끝내더라도 마지막으로 예의를 갖춰 끝내자.’
...
다음 날, 결혼기념일.
나는 예약된 레스토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점점 지나갔다.
나는 배가 고팠지만, 강시헌의 도착은 늦어지고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열어 강시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냥 솔직히 말하지? 오기 싫으면, 괜히 시간 낭비하게 만들지 말고.’
그러나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그때, 회사 동료들이 모두 있는 업무용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알림이 울렸다.
익명의 계정이 메시지를 올렸다.
[송나은, 유부남 상사 꼬셔서 승진하려고 하다니 역겹다. 젊고 예쁘다고 몸 파는 거, 얼마나 더러워?]
그리고 내가 프로젝트를 송나은에게 넘긴 내용이 첨부되어 있었다.
겉으로는 송나은을 비난하는 내용이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나를 겨냥하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봐도 이건 내가 퍼뜨린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 레스토랑 문이 거칠게 열렸다.
쾅!
강시헌이었다.
불같이 화가 난 남자의 얼굴.
“나는 당신이 기분 좋게 프로젝트를 넘긴 줄 알았어. 그런데 이게 뭐야? 이렇게 뒤에서 뒤통수 칠 줄은 몰랐네.”
그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나를 가해자로 단정 짓고 있었다.
“심세윤, 넌 진짜 악질이야.”
그 순간, 송나은이 강시헌의 뒤에 숨어 울먹였다.
“저... 저 프로젝트 안 가져도 돼요. 다들 뭐라고 해도 상관없어요. 그런데 세윤 언니, 저는 언니를 진짜 친구라고 믿었어요. 근데 왜 저한테 이러세요...?”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난 아니야. 내가 이미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그런 짓은 할 생각도 없어.”
“거짓말하지 마. 당신 말고 누가 나은이를 이렇게까지 모함하겠어?”
“심세윤, 당신 정말 역겨워!”
“나은이가 우리 결혼기념일 레스토랑까지 예약해 줬는데, 그럴 자격이 없는 당신이 여기 앉아 있네?”
순간, 강시헌은 손에 들고 있던 접시를 바닥에 던졌다.
산산이 부서진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마치... 이미 파탄난 우리의 결혼처럼.
‘10년이 넘는 세월. 이 모든 시간이, 강시헌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아니었던 걸까?’
나는 조용히 주머니에서 서류를 꺼냈다.
“마침 이혼숙려기간도 끝났으니까, 여기서 사인해.”
그리고 그 아래에 사직서를 함께 놓았다.
강시헌은 비웃듯 웃었다. 그리고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서명했다.
“당신 맘대로 해.”
그리고는 송나은을 감싸 안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레스토랑을 나갔다.
나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강시헌이 떠나는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제 남은 결혼기념일도, 의미 없어.’
나는 테이블에 놓인, 이미 식어버린 음식을 천천히 씹었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서, 한 끼를 마무리하고 떠나기로 했다.
그 후, 나는 조용히 의자를 밀고 일어섰고, 구석에 미리 두었던 여행용 가방을 끌어냈다.
그리고 택시를 불렀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가는 길, 나는 강시헌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
“집 키는 거실 테이블 위에 뒀어. 이제 우리 끝났으니까, 더 이상 연락하지 마.”
그리고, 나는 휴대폰을 껐다.
비행기 티켓을 확인한 후, 조용히 출국 심사를 통과했다.
나는 비행기를 타고 M국으로 떠날 예정이었다.